뉴욕은혜교회

뉴욕은혜교회 Grace United Church of Christ
85 Chatterton Ave, White Plains, NY 10606
Phone 914)260-0071

담임?

뉴욕은혜교회는 1989년 11월 8일 Bronx에서 개척되어 2006년 White Plains로 이전하였습니다.
뉴욕은혜교회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 예배시간 안내 ***
주일예배: 낮 12:00
학생청년모임: 주일 오후 2:00
새벽기도회: 오전5:30(화수목토)

01/02/2021

아침묵상 2021년 1월 2일(토)
성경통독: 예레미야애가 4~5장

(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이미 예루살렘 성은 불타서 사라지고, 성벽들도 다 무너지고, 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이미 다 멸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비롯하여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회개와 순종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백성들에게 전했지만, 여러 왕들과 백성들은 끝까지 불순종하고 회개하지 않음으로 결국 유다의 멸망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나라가 이미 다 멸망하고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소망이 없고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수 없는 허무한 외침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미 다시 회개하고 순종으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잃은 것입니다.

기원전 586년에 이스라엘(남 유다)이 완전히 멸망한 후 이스라엘은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비잔틴, 아랍, 오스만, 영국 등 다른 나라에 의하여 약 2,500년간 지배되어왔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에 이스라엘의 건국을 다시 선포하게 됩니다.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시작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유대인들은 2,500년이 넘도록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한 내에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였기에 완전한 멸망을 경험한 것입니다.

한 나라의 멸망을 한 사람의 삶에 비유하자면, 아마도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을 마감하고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아직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기회가 여전히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이라는 한 나라의 멸망이 매우 절망적으로 보이고 2,500년이 넘어서야 겨우 다시 나라가 회복된 것을 볼 때에 더욱 더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이라는 유형의 나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적인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법칙을 초월하고, 인간들이 정해 놓은 국경을 초월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사라졌지만,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시작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소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는 채로 2021년 새 해를 맞이 하였습니다. 나에게 여전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 해에는 불순종이 아니라 순종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1/01/2021

1/1/2021
예레미야애가 1-3장

(1: 9)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니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게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 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예레미야애가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패망하고난후 성전은 불타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초토화된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백성들의 처참한 삶을 보며 예레미야가 찢는 마음을 갖고 기록한 노래입니다. 예레미야서에서 선지자는 통곡하며 유다의 방백들과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않고 자신들의 뜻대로 겁없이 행하다가 결국은 이렇게 비참한 지경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의 기록 목적은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속아 계속 죄악속에서 질주하는 자의 결국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1: 9)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니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게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 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심은대로 거둡니다. 회개의 눈물로 기다림의 눈물로 씨를 뿌린 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의 축복이 있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어있습니다. 진리는 아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진리를 듣기 보다는 내 귀에 달콤한 위로의 말을 듣기를 더 좋아합니다. 거짓선지자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큰 뜻을 떠나 위로라는 달콤한 말로 어긋난 길을 가는 자들을 그냥 그길로 계속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핍박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 그대로를 외쳤기 때문이고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유다의 패망이 코 앞에 와있는데도 백성들을 회개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소망으로 이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세 때에는 잔치집에 가서 술을 거나히 마시며 즐거움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초상집에 가서 죽음이라는 현실을 보며, 삶의 결국인 죽음 후에 갈 천국과 지옥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이 더 좋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언행의 결국을 내다보며 오늘의 발걸음을 조절할 수 있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2021년의 첫날입니다. 2021년은 2020년 보다 세상이 더욱 강도높은 뉴노말로 갈 것이며 세계는 내놓고 통제사회로 들어갈 것이고 경제는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어제 캐나다에 계신 심상대목사님과 통화를 했는데, 캐나다는 미국보다 더 철저하게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나 자유로운 여행 등이 금지되어있고 교회에는 10명이상이 모이면 절대 않되고 어길 시 적지 않는 벌금이 부과된다고 합니다. 토론토의 전성호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직장의 동료들이 여행규제로 성탄절 고향에 내려갈 수 없어 집에서만 지내야했고 경제는 말이 아니게 힘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회개의 때입니다. 회개치 않고 더러운 치마를 그대로 입고 있으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어, 결국은 유다와 같은 꼴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앉아, 잘했다 칭찬받을 수 없는 모든 것들은 다 회개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 없이 돈이 내 손에 들어올 수 없고 영적 육적 강건함을 지킬 수 없고 자손들의 영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2021년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거역지 않고 살겠다는 결단이 있어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고 지금까지 잡혀 살았던 모든 죄악들을 원통히 여기며 통회 자복함으로써 밝은 새해를 맞이하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라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2/31/2020

아침묵상 2020년 12월 31일(목)
성경통독: 예레미야 52장

(52:32-34)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2020년의 마지막 날에 예레미야 마지막 장인 52장을 묵상하며 마치게 되었습니다. 52장은 이미 39장에서 나왔던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을 하는데,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정복되고 성벽은 허물어지고, 유다가 완전히 멸망을 당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마지막 장을 묵상하면서 두 가지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첫째로,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과 계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여러 번 여러 왕들과 백성들에게 계속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매우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심판하시겠다고 매우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계획들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성취된 결과가 유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심판이요 멸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멸망을 당해버리는 아이러니한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성취되기를 믿고 바라며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성취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 과연 나에게 “복”이 되는가 아니면 예레미야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나에게 “심판”이 되는가 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려면, 우리의 인생의 방향이 하나님의 뜻과 같은 길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부터 시작하여 약 16년동안 세 번에 걸쳐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28-30절). 첫 번째로 포로로 잡혀갔던 여호야긴 왕은 18세에 잡혀가서 37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바벨론의 에윌므로닥이 새 왕으로 즉위한 것을 기념하여 극적으로 석방되었습니다(31절). 이후 바벨론 왕의 은혜를 입고 죽는 날까지 좋은 대접을 받게 됩니다(32-34절). 북 이스라엘의 멸망, 그리고 남 유다의 멸망, 그러나 성경은 포로였던 여호야긴 왕이 은혜를 입은 이야기를 자세히 말씀하시면서 예레미야서를 마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희망의 말씀이자,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의 메시지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면 안됩니다. 아니, 그리스도인은 최악의 고통과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절대로 소망을 버릴 수가 없는 존재들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0년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내가 정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왔는가, 그리고 소망이신 예수님을 끝까지 의지하였었는가 스스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새 해에는 내 계획을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고, 진리와 생명 그리고 소망되시는 예수님을 절대로 놓지 마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2/30/2020

12/30/2020
예레미야 49-51장

(50: 7) 그들을 만나는 자들은 그들을 삼키며 그 대적은 말하기를 그들은 여호와 곧 의로운 처소시며 그 열조의 소망이신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인즉 우리는 무죄하다 하였느니라

교만한 자는교만한 자를 미워하고 그의 교만에 분개하며 게으른 자는 게으른 자를 싫어하고 게으르다 정죄하며 야단치기를 좋아하고 열등의식에 잡혀 있는 자는 열등한 자를 보면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이 올라와 함께 있는 것조차가 용납되질 않습니다. 한 여인이 삼백데나리온의 향유를 담은 옥합을 깨뜨려 주님 발에 붓자, 유다가 분노하여 그 여인을 나무랍니다 누가복음은 이러한 유다의 모습을 이렇게 해석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향유를 팔아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 감이러라” 12명의 제자중 유독 이 여인의삼백데나리온에 관심을 갖고 분노한 자는 유다 하나뿐입니다. 저는 도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택한 백성을 다스리시는 방법은 바로 사람들의 이와같은 역학적 상관관계를 통해서입니다. 돈관리에 서툰 목회자에게는 돈을 끔찍히 사랑하는 장로를 옆에 붙여주시어 목회자가 돈 쓰는 것을 사사건건 간섭하고 분노케 하여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결국 그로 인해 목회자를 사임케 하고 목회자는 홀로 깊은 회개의 시간을 갖게 하사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쓰임받게 하시고, 장로는 자신의 혈기대로 쓰임을 받아 목회자를 정죄하는 철퇴가 되었으나 이또한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무섭게 다루십니다. 바벨론이 자신의 야욕을 위해 유다를 침공하여 유린하면서 내세운 명분의 말입니다.

(50: 7) 그들을 만나는 자들은 그들을 삼키며 그 대적은 말하기를 그들은 여호와 곧 의로운 처소시며 그 열조의 소망이신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인즉 우리는 무죄하다 하였느니라

틀린 말이 아닌듯하나 맞는 말도 아닙니다. 유다는 하나님께 범죄하였고 많은 선지자들이 회개할 것을 외쳤으나 듣지 않고 계속 범죄하여 징계를 받아야 할 상황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유다의 죄를 다스릴 철퇴로 쓰임받을 바벨론은 유다를 침공하면서 말합니다. 너희들이 하나님께 지은 죄의 댓가를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 징계하시는 것이니 우리는 무죄하다. 유다의 죄를 보되 자기속의 악을 보지 못한 바벨론의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유다를 벌하기 위한 철퇴로 사용하심은 바벨론의 악한 기질과 그의 야수같은 야욕을 사용하신 것뿐,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는 데 쓰임받은 바벨론의 악을 하나님께서 칭찬하지 않습니다. 바벨론은 유다가 완전히 패망한 후 47년 만인 주전 539년에 별볼일 없었던 변방의 메데-바사에 의해 어이없게 패망하고 맙니다. 이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예레미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50: 9) 보라 내가 큰 연합국으로 북방에서 일어나 나와서 바벨론을 치게 하리니 그들이 항오를 벌이고 쳐서 취할 것이라 그들의 화살은 연숙한 용사의 화살 같아서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리로다.

내 안에 있는 악의 모습을 항상 잘 살펴서 누군가의 악을 다스리는 철퇴로 쓰임받은 비극적인 일이 없도록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는 복된 날 되시기를 바라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12/29/2020

12/29/2020
예레미야 46-48장

(48: 10)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당할 것이로다

모압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말씀입니다. 모압 땅은 지리적으로 사해 동쪽에 위치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사막이 연결되어 있어 북방의 나라들의 남방의 나라들을 침략하러 갈 때에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지 않아 역사상 이방국가들과의 큰 전쟁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모압 사람들은 전쟁을 방비하며 살아나야겠다는 근성을 훈련할 필요가 없었고 하나님 보시기에 나태가 몸에 베인 민족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러한 모압에 대한 심판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자주를 받을 것인데, 그 가운데 특히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나약한 심정을 갖고 있어 일상의 안일함으로 도피하여 “NO”라는 말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NO”를 말해야할 때에 말하지 못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챙기지 못할 뿐 아니라 갖고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맺고 끝냄이 분명해야 하고, 같이 가서는 않될 사람과 같이 가며 계속 어울리고, 자기 것을 빼앗아 가고 있는데도 겁이 나서 사랑과 용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짜르지 못하는 것, 정의로운 분노를 내지 못하는 것, 이러한 유약한 심정을 갖고 있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경고하십니다.

“…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당할 것이로다.”

이스라엘왕 아합 때에, 아람왕 벤하닷이 사자들을 보내어 당돌하고 무례한 요구를 합니다 네 처들과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는 내것이요 은금도 내것이니 내게 붙이라. 이런 어이없는 말을 전해 들은 아합왕은 당연히 진노하여야 할 것이나 겁이 나서 거절치 못하고 겁쟁이의 말을 하고는 사자들을 돌려보냅니다. 그리고나서 장로들을 불러모아 말합니다, “… 저가 나의 처들과 자녀들과 은금을 취하려고 사람을 내게 보내었으나 내가 거절치 못하였노라.” 모든 장로들과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 분개하였고 일심으로 아람과의 전쟁에 임하여 승리를 거듭니다. 전쟁에서 패한 아람왕 벤하닷의 목숨이 이스라엘 왕에게 달려 있게 되자 그는 태도를 바꾸어 친절한 미소를 띠며 나는 너희 형제니 긍휼히 여기라 내 부친이 이스라엘에서 빼앗은 모든 성읍들을 돌려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아합은 기분이 좋아져서 벤하닷과 화친하여 그를 살려서 돌려보냅니다. 이러한 아합의 행위에 대해서 한 선지자가 아합왕에게 하나님의 경고를 전합니다.

(열상 20:42) 저가 왕께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은 지혜와 실력을 갖춘 출중한 자였으나 심정이 유약한 자라 지독한 아내 이세벨에게 휘둘렸고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절개와 결단이 없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라는 오명을 남깁니다. 오늘의 말씀이 내게 적용되어 생명의 능력이 있기를 바라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12/29/2020
12/28/2020

12/28/2020
예레미야 43-45장

(44: 10) 그들이 오늘까지 겸비치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열조 앞에 세운 나의 법과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느니라
(44: 11)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재앙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왔고 은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두 개 모두의 궁극적인 목적은 거룩이며 믿는 자들로 구별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은 두려움을 수단으로 삼아 사람들로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하나님앞에 겸비케 하는 반면, 은혜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에 이르게 합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켜 행하게하는 동력은 두려움이나, 은혜의 때에 말씀의 열매를 맺는 동력은 사랑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온전히 나의 주님이 되어 성령님께서 사랑으로 나를 다스려 주시기 전까지 사람들로 말씀안에 거하며 거룩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이것은 두려움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면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두려움과 겸비함을 잃었기에 대담무쌍하여져서 율법과 규례를 어기고 방자히 행하며 더욱이 한술 더떠 하늘 여신을 섬기고 분향하니,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아비나답의 집에서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소들이 뛰므로 언약궤가 떨어질까하여 웃사가 손을 들어 언약궤를 잡자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유다의 선왕 중 하나였던 웃시아는 하나님이 그를 크게 도우셔서 그가 강력한 왕이 되자 교만해져서 패망길에 들어섰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겸비함이 사라졌다는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율법을 우습게 알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려하기 까지 했습니다. 대제사장 아사랴가 제사장 80명을 데리고 들어가 이를 저지하려 하였으나 듣지 않고 향단곁에서 분향 하려던 웃시아가 버럭 화를 내자, 그 순간 그의 이마에는 갑자기 문둥병이 발생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만나지 못한 자들에게는 구약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앞에 겸비치 않고 입으로 행위로 범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즉각적으로 임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진노에서 날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조금전까지만해도 무서운 죄를 저질렀던 죄인이라 할지라도 뉘우치고 주님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면 그의 사랑의 품에 언제든지 다시 안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할 줄 알하고 감사할 자에게 감사할 줄 아는 것은 복된 자의 심령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사람들을 생각하고 세상일을 생각하기전에 먼저 주님을 만나 아침 인사드리고 나같은 죄인을 위해 흘리신 보혈의 은혜를 감사하며 오늘도 겸비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고 기도하는 복된 심령들이 다 되시기를 바라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12/26/2020

아침묵상 2020년 12월 26일(토)
본문: 예레미야 42:1-22

41장에는 유다 총독으로 있었던 믿음의 사람 그다랴가 장관 이스마엘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스마엘을 죽이기 위하여 요하난이 일어나 추격하지만, 이스마엘은 암몬으로 도망을 합니다. 요하난과 남겨진 유다 사람들은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서 애굽으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42장에서는 요하난과 남은 유다 사람들이 애굽으로 가기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모든 백성들이 나아와서 기도를 요청합니다(1-2절). 백성들은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하면서 분명히 다짐을 합니다.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5절)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러면서 한 번 더 확실하게 다짐을 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6절)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좋던 싫던 무조건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은 유다 백성들은 순종이 축복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러한 백성들의 기도의 요청에 십일 동안 기도를 합니다(7절). 십일 간의 기도를 마치자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셨습니다. “너희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하지 말고 유당 땅에 머물러 있어라. 유다에 남아있으면 내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고, 애굽으로 도망하면 죽을 것이니라.”(10-17절) 이러한 분명한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유다 백성들은 왠지 하나님의 말씀에 또 불순종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유다 백성들은 왜 자꾸 이러는 것일까요?

자신들이 원하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응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너무 두려웠고, 자신들은 살기위해 이미 애굽으로 떠나려고 마음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무엇인지, 순종을 통해 축복을 받는다는 것도 지식적으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키지 않는 말씀을 듣고 나니, 결국 자기들의 마음에 좋아 보이는 길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유다에 남아있는 것이 전혀 좋아 보이지가 않는 것입니다. 남아있으면 죽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전혀 바라볼 줄 모르고, 여전히 합리적, 이성적인 기준으로만 결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그러다가 멸망을 당했는데도, 이렇게 여전히 불순종하는 남은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였어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20-22절)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도 그랬고, 오늘 본문의 요하난과 남은 유다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다 알았지만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많이 아는 것이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방해 합니다. 믿음은 단순한 것입니다. 판단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순전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머리를 굴리기 보다 믿음의 순종으로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2/25/2020

아침묵상 2020년 12월 25일(금)
성경통독: 예레미야 40~42장

(40:5-6)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함락되고 유다가 멸망했을 때, 바벨론의 군대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놓아주게 됩니다.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를 놓아주면서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는데, 함께 바벨론으로 가서 살던지, 네 마음대로 아무데나 가서 살던지, 미스바에 있는 그다랴에게 가서 함께 살던지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느부사라단의 호의에 예레미야는 그다랴에게 가서 함께 살게 됩니다.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로 소개되는 이 사람은 유다의 대표적인 귀족 집안 사람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인 서기관 사반은 요시야 왕때에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왕 앞에서 낭독했었고, 여선지자 훌다에게 전달받은 회개의 말씀을 왕에게 전달했던 믿음의 서기관이었습니다. 아버지 아히감은 요시야 왕을 도와 우상과 산당을 없애는 종교개혁과 신앙운동에 헌신했던 사람이었고, 여호야김 왕이 백성들을 부추겨서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을 때에도 예레미야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아히감 이었습니다. 이렇게 대대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왔던 집안의 그다랴 또한 예레미야를 통해서 선포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해서 이 멸망의 날에 목숨을 구원 받은 것 뿐만 아니라, 유다의 총독으로 세움을 받게 되었고 유다에 남겨진 백성들과 함께 미스바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예레미야는 주저하지 않고 믿음의 사람인 그다랴와 함께 살기로 결정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이시거나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던 사람들만을 구원하셔서 그다랴를 중심으로 미스바에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미스바는 사무엘 선지자 때부터 회개와 신앙회복을 상징하는 지역이었습니다. 남은 백성들이 그러한 회개의 마음과 신앙회복의 소망으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과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오직 믿음의 사람들만이 미스바에 남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시 바랍니다. 이 성탄의 아침에, 우리를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끝까지 믿음으로 붙들고, 인내하며, 순종하며, 믿음으로 승리를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24/2020

아침묵상 2020년 12월 24일(목)
성경통독: 예레미야 37~39장

(38:20) “예레미야가 이르되 그 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넘기지 아니하리이다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아뢴 바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전하시리이다”

오늘 통독하게 되는 예레미야서에는 드디어 남 유다의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함락되고 멸망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에서 두 명의 사람이 극명하게 대조되어서 나타나게 되는데, 유다 왕 시드기야와 내시 에벳멜렉이 바로 그 두 사람입니다.

남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기본적으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기 원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신하들을 보내어 하나님께 기도를 요청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37:3-10). 예레미야가 요나단의 웅덩이에 갇혀 있을 때에도 은밀하게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묻기도 했습니다(37:17). 시드기야 왕은 시위대 뜰에 숨어 있던 예레미야에게 역시 은밀하게 하나님의 뜻을 계속해서 물어보았습니다(38:14-23). 이렇게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드기야 왕에게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로 계속해서 변함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이 멸망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항복을 하면 너와 네 가족과 예루살렘 성이 구원받을 것이다!” 이러한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기만 했으면, 모두가 다 안전하게 구원을 받았을 것인데, 결과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바벨론에 먼저 항복한 유다인들이 두려웠습니다. 혹시나 느부갓네살 왕이 늦게 항복하는 자신을 그 유다인들에게 넘겨주어 조롱거리가 되게 할까봐 두려웠습니다(38:19). 결국 끝내 항복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고,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함락하고 불사르고, 시드기야 왕의 아들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을 뽑히게 됩니다(39:1-10).

이러한 멸망과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내시 에벳멜렉은 죽음의 위기에 있던 예레미야 선지자를 말기야의 구덩이에서 구출해 냅니다(38:7-13).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던 에벳멜렉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39:17-18)

수도 없이 여러 번 하나님의 동일한 말씀을 열심히 들었지만, 끝까지 순종하지 못했던 시드기야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던 에벳멜렉의 결과를 볼 때, 말씀을 열심히 듣는 것보다 한 번의 순종이 얼마나 더 중요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아뢴 바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전하시리이다”
순종은 생명입니다.

12/23/2020

12/23/2020
예레미야 34-36장

(36: 23) 여후디가 삼편 사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36: 24) 왕과 그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그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36: 25) 엘라딘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사르지 말기를 간구하여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유다의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증손이고 유다의 선왕 요시야의 둘째 아들인 엘리야김왕은 므낫세의 악을 본받아 산당을 세우고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섬김으로 하나님의 노를 격발시킨 왕이었습니다. 엘리야김왕 때에 바벨론은 두번에 걸쳐 유다를 침공했고 2차 침공때에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엘리야김 왕 때의 이야기입니다. 엘리야김의 악행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엘리야김이 회개치 않으면 처참한 결과를 당할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서기관 바룩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두루마리에 기록하게 하고 유다 백성들과 방백들에게 읽어주고 왕에게 전하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바룩의 두루마리가 엘리야김 왕에게 전달되어 방백중 하나가 왕에게 읽어 들려주었으나 왕과 그 신하들은 행위를 돌아보고 찔림을 받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칼로 두루마리를 베어 화로불에 던져 살라버립니다. 이미 패망이 작정된 유다의 왕 엘리야김은 무서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마지막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잡지않고 자신의 악한 뜻대로 계속 질주하며 유다 패망의 확실한 명분을 쌓아갑니다.

(36: 23) 여후디가 삼편 사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루 부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36: 24) 왕과 그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그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36: 25) 엘라딘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사르지 말기를 간구하여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형벌이 작정된 사람들의 특징은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뜻을 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돌아본다해도 양심에 화인을 맞아 회개에 이르지 못하고 하나님 눈에 보시기에가 아니라 자기 눈에 보기에 좋은대로 행하며 잘될 것이라 믿고 계속 나아가다가 그 열매인 형벌을 맞이합니다. 회개의 기회를 놓치게 되면 다시 회개하여 제길에 들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회개하며 애통하는 심령을 갖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는 회개로 상한 심령이며 회개로 상한 심령은 천국이 저의 것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회개를 생명처럼 귀히 여겼습니다.

(사도행전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는 세레요한의 외침,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주님의 경고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앉아 나의 생각과 감정과 뜻과 계획을 말씀에 비추어보며 나 보기에게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지를 헤아려볼 수 있는 복된 날 되시기를 바라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

12/22/2020

12/22/2020
예레미야 31-33장

(31: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모세의 언약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갖게 할 수 없음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에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언약을 주십니다. 새언약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돌판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판에 기록하여 지키려는 노력없이 신의 성품이 자유롭게 우러나며, 알려는 애씀없이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행함이 따르게 됩니다. 새언약의 특징을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법 즉 말씀을 사람들 마음속에 두고 그 마음에 기록하는 것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법이란 변개될 수 없는 집행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중력의 법칙에 의하면 질량을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은 땅으로 떨어진다라는 것인데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평생 영원토록 중력의 법칙을 바꿔 물건을 떨어뜨렸더니 하늘로 올라가더라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법의 집행능력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 법이 사람의 마음에 기록된다하니, 마음이 말씀의 법의 집행능력에 잡혀 말씀의 열매를 저절로 맺는 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이를 두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새언약의 중보되시는 예수그리스도안에 있을 때 말씀의 열매가 절로 열릴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마음에 들어오시는 성령님 때문에 그러합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계시면 마음판에 새로운 생명의 법을 기록하시니 마음판에 기록된 말씀이 사람의 지,정, 의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이끌어가며 한 새사람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성령의 새 사람이 내 안에서 삶을 시작하는 것이니 바울이 말대로 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즉 두개의 다른 법이 마음에서 전쟁을 일으키며 살고 있으니 마음은 영적전쟁터입니다.

(7: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8:1)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삶의 현장에 전진이 있고 발전이 있기를 원한다면 마음의 법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엣것이 가야 새것이 오고 옛사람이 가야 새사람, 새시대가 열립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것을 하며 원치 않는 것은 행하고 원하는 것은 행치 않는다면, 죄의 법에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내 마음을 다스립니다. 생명의 법의 특징은 주의 성품인 온유와 겸손이며 온유와 겸손이 마음을 다스리는 마음의 법이 될 때에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새사람이 되어 어떠한 역경도 능히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승리자의 기개가 있고 두려움 때문에 가보지 못했던 길 그러나 가고싶었던 길 을 믿음으로 갈 수 있어 새삶이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복된 날 되시기를 바라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Address

85 Chatterton Avenue
White Plains, NY
10606

Telephone

(914) 260-0071

Website

Alerts

Be the first to know and let us send you an email when 뉴욕은혜교회 posts news and promotions.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used for any other purpose, and you can unsubscribe at any time.

Contact The Place Of Worship

Send a message to 뉴욕은혜교회: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