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진리 장로교회

은혜와 진리 장로교회 은혜와 진리 장로교회입니다. Grace and Truth Presbyterian Church

06/12/2026

황진수 장로님께서 요약하신 주일설교입니다.

설교 제목 : 벗어나기 힘든 죄악의 늪
본문: 열왕기상 16:8~14 | 6월7일2026년
애굽을 나온 백성들은 오래 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운다. 12 지파로 시작한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범죄로
인하여 두 나라로 나누어지고, 북 이스라엘은 더욱 깊은 범죄에 빠져 나중에는 소멸하여
없어진다. 나라가 없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열두 지파 중에 북 이스라엘에 속한 열
지파들이 사라진다. 완벽한 증발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쩌다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는가? 오늘은 그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또한 그 문제의
해답을 생각하고고자 한다.
Ⅰ. 여로보암의 죄에 대한 심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여로보암은 임금이 된 후 두려움과 불안으로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거듭 경고하셨으나 그가 끝내
돌아오지 않자 공의의 심판을 선포하셨다.
●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부름받고 열 지파를 맡았으나, 백성이 남쪽으로 돌아갈까
두려워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떠남
●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백성 전체를 우상숭배로 이끔
●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거듭 보내 돌아오라 촉구 하였으나
● 끝내 거부함
● 심판 선고: "성에서 죽으면 개가 먹고, 들에서 죽으면 새가 먹을 것이다" — 처참한
저주의 죽음을 예고
●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 왕위 1년 만에 군대장관 바아사가 반란을 일으켜 나답을
죽이고 여로보암 집안을 남김없이 멸절 — 말씀 그대로 성취
요약: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도 두려움과 탐심으로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경고 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공의의 심판이 반드시 임한다.
Ⅱ. 선지자 집안
하나님은 심판의 역사 속에서도 선지자를 끊임없이 세워 "돌아오라"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선지자의 사명은 목숨을 걸고 듣기 싫은 진리도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 바아사가 임금이 되어 같은 죄악의 길로 가자, 하나님은 하나니의 아들 예후를
선지자로 세우심
● 아버지 하나니 → 남쪽 유다 아사 왕을 책망 / 아들 예후 → 북쪽 적국 바아사 왕
앞에 직접 들어가 심판을 선포
● 왕 앞에서 목숨을 걸고 "여로보암의 집이 당한 것과 같은 심판이 임할 것"이라
선포
● 성도들이 좋아할 말만 하는 설교는 설교자도, 청중도 함께 심판 앞에 세우는 일
● 말씀을 각색하여 영혼을 실족하게 하는 거짓 선지자의 책임은 더욱 무거움 (마
18:6)
●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인 동시에, 목숨을 건 선지자의 마음을 가져야 할 성도
요약: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선지자를 보내 돌아오라 하셨고, 참 선지자는
목숨을 걸고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다.
Ⅲ. 북 이스라엘 땅에 드리워진 죄악의 사슬
자기 눈으로 여로보암 집안의 심판을 집행한 바아사조차 임금이 되자마자 같은 길로
걸어갔다. 여로보암의 우상숭배는 북 이스라엘의 원죄가 되어 왕조가 바뀌어도 아무도
그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바아사 — 심판의 도구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의 길"을 그대로 답습
● 선지자 예후가 바아사에게 동일한 심판을 경고했으나 바아사도 돌아서지 않음
● 바아사의 아들 엘라, 즉위 2년 만에 부하 시므리에게 암살 — 바아사의 가족과
친구들까지 모두 학살
● 시므리는 오므리의 군대에 포위되자 왕궁에 불을 지르고 자결 — 즉위 7일 만에
종말
● 210년간 8번의 정변, 19명의 왕 — 단 한 명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함
● 마치 아담의 원죄처럼, 여로보암의 우상숭배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후대 왕들의
영혼 깊은 곳까지 지배함
● 하나님을 떠남 → 불안 → 탐심 → 우상숭배 → 심판의 반복 — 이것이 죄의 사슬이
작동하는 방식
요약: 죄의 세력은 왕조와 혈통을 초월해 전이되며, 경고와 심판을 목격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사슬을 끊을 수 없다.
Ⅳ. 죄의 권세를 끊는 능력
사도 바울조차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탄식했다. 그러나 그 탄식은 곧 감사로 바뀐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바울의 고백: "나는 비참하고 처절한 존재다" — 아무리 충성해도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없음을 체험으로 알았기 때문
● 목사도, 선교사도, 어떤 신분도 예외 없음 —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사망의 권세
아래 있음
● 로켓을 쏘고 화성으로 날아가도 사람의 죄는 사라지지 않음 — 그것이 인간의
한계
● 율법은 우리를 자유케 하지 못함 — 율법의 기능은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우쳐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는 것
● 구원은 선물 — 내가 잘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단번에
주어지는 것
●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하나: 방향을 조금만 틀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 여로보암도, 바아사도, 그 자리에서 눈을 돌렸다면 구원받을 수 있었음
● 하나님이 구원하지 못할 만큼 무너진 영혼은 없고, 치유하지 못할 죄악도 없음
요약: 죄의 권세를 끊는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만 있으며, 그
앞에 눈을 드는 것이 믿음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결론
북 이스라엘 210년의 역사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죄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역사 내내 선지자를 보내셨으니, 그것은
심판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초청이 주어져 있다 — 처절한 자리에서라도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라. 그
단순한 믿음 하나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시는
것이 복음의 은혜다. 탐심을 내려놓고, 염려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의 길을 담대히 걸어가자.

06/05/2026

황진수 장로님께서 요약하신 주일설교입니다.

설교제목 :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
열왕기상 14:6~13
5월31일2026년
하나님의 역사는 때때로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 이해하기 힘들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왜 하나님은 선한 사람에게 악한 자들도 경험하지 않는 고통을 주실 때가 있는가?
그리고 반대로 악한 자들은 당장에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런 문제도 없이
살게 하시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우리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그런데 하늘이 땅에서 높은 것처럼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다.
1. 굳어버린 마음 (6~9절)
여로보암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된 사람이다. 아들 이름 **"아비야"(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에서 그의 초기 신앙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왕이 되자 달라졌다.
● 세상 두려움이 하나님 신뢰를 밀어냈다
● 처음엔 양심의 경고가 왔지만, 반복되자 그 감각마저 사라졌다
● 마침내 9절,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 두려움 대신 세상 근심이 그 자리를 채운다. 굳어지기 전에
돌이키는 것이 은혜다.
2. 잘못된 동기 (10~11절)
아들이 병들자 왕비를 변장시켜 선지자에게 보낸다. 여기서 두 가지가 드러난다.
● 변장 →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함
● 자기가 직접 가지 않음 →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꺼림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동기다. 그는 회개하러 간 것이 아니라 단지 미래가 궁금했을 뿐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눈먼
아히야는 발소리만 듣고도 말한다. "어찌하여 변장하고 왔느냐."
3. 무서운 심판의 경고 (10~11절)
● 다윗과 달리 악을 행하고 백성을 우상숭배로 이끌었다
● "걸음더미 쓸듯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버리리라"
● 성에서 죽으면 개가, 들에서 죽으면 새가 먹을 것이다
이 심판은 갑자기 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수없이 경고하셨다. 지금 이 말씀이 경고로
들린다면, 그것 자체가 아직 돌이킬 기회가 있다는 하나님의 긍휼이다.
4. 심판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긍휼과 섭리 (12~13절)
아비야도 죽을 것이라 하셨다. 그러나 그 죽음의 의미는 달랐다.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서 그가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우상숭배가 가득한 환경에서도 홀로 믿음을 지킨 아비야를 하나님은 기억하셨다. 그의
이른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앞으로 임할 심판에서 먼저 건져내신 하나님의 섭리였다.
범죄의 원인은 환경이 아니라 자기 욕심이다(약 1:14). 새옹지마처럼, 불행으로 보인 일이
결국 생명을 구하는 일이 된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어나는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결론
여로보암은 은혜로 세워졌으나 세상 욕심에 이끌려 하나님을 등 뒤에 버렸고 집안에
비극을 자초했다. 그러나 같은 환경에서도 믿음을 끝까지 붙든 아비야를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 우리 삶의 어떤 상황도 하나님의 섭리 밖에 있지 않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다.

05/22/2026

황진수 장로님께서 요약하신 주일설교입니다.

설교제목: 말씀을 떠난 자의 결말
본문: 열왕기상 13장 20~24절 5월17일2026년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말씀을 얼마나 가깝게 여기고, 그 말씀을 이해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순종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자신이
원하는 바를 따라서 각색하고 왜곡하여 해석하고 자신의 무너진 신앙을 오히려
정당화하려고 시도하는 시대이다.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 과격하게 보이고, 그렇게 하는 것에는 본인도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을 조금씩 변경하고 뒤 틀어서 진리에서 벗어난 자리로 나아간다.
그러면 그 결말이 어떻게 되겠는가?

1. 줄거리 요약
●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우상숭배를 책망하기 위해 유다에서 한 선지자를 벧엘로
보내심.
● 유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다른 길로
돌아가라)을 받고 순종하여 돌아가던 중,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 속임을 당해
명령을 어기고 식사를 함.
● 결과적으로 길에서 사자에게 물려 죽고, 시체가 길에 버려짐(나귀와 사자가 그
곁에 있음). →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의 결말을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 사건.
2. 유다 선지자의 벧엘 방문
●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유다 선지자는 여로보암 앞에서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을
담대히 선포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어떠한 대접도 받지 않고 곧바로 돌아가려
함.
●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임.
● 그러나 상황(피곤함, 친절한 초대, “천사가 말했다”는 거짓 증언) 앞에서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을 잠시 내려놓음.
3. 벧엘의 한 늙은 선지자
● 벧엘에 거주하던 늙은 선지자는 유다 선지자의 담대한 순종을 보고 자신의 영적
나태와 타협을 깨닫게 됨.
● 그러나 부끄러움을 회개하고 변화하는 대신, 거짓말(하나님의 천사가 자신에게 새
명령을 주셨다고 함)로 유다 선지자를 유혹하여 자기 집으로 데려옴.
● 이는 시기·경쟁심·자기 정당화 욕구에서 나온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타협하는 대표적 모습.
4. 선지자의 죽음 (결과와 적용)
● 식사 중에 늙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너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으므로 죽을 것”이라는 심판 선언이 내려짐.
● 유다 선지자는 사자에게 물려 죽음. 이는 작은 타협, 상황에 따른 말씀 왜곡이
가져오는 엄중한 결말을 보여줌.
● 적용: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씩 각색·타협·정당화하려는
유혹을 받지만, 말씀을 떠나는 순간 영적 죽음과 심판이 따름. 상황이 변해도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이며 변경될 수 없음.
결론
말씀을 떠난 자의 결말은 사망과 공허와 심판뿐입니다. 유다 선지자처럼 처음에
순종하다가도 한 번의 타협으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상황이나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을 끝까지 붙잡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오직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05/15/2026

황진수 장로님께서 요약하신 주일설교입니다.

설교 제목: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가정
본문: 에베소서 6장 1-4절 5월10일2026년
현대 사회는 지금 위기를 맞았다. 전통적인 사회의 삶의 질서가 파괴되고, 무질서와
혼돈으로 짙은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어지러운 사회의 혼란을 어디서부터 바르게
세울 수 있겠는가? 사회의 안정과 인간다운 삶의 질서의 회복은 가정이 바르게 서는
것이고, 교회가 이 일에 힘을 공급해야 한다. 그리하여 성경에서 말씀하는 바의 가정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과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일에 가장 확실하고 의미
있는 지름길이다.
1. 부모 공경 (6:1-2)
● 자녀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
● 이는 십계명 다섯째 계명으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 축복의 약속: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공경의 근거: 부모의 사회적 지위·능력이 아니라, 우리를 낳고 길러 주신 사실
자체에 있다.
● 의미: 부모 공경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이며, 이 계명이 무너지면 다른 계명들도
쉽게 무너진다.
2. 자녀 양육 (6:4)
●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 긍정적 명령: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 교훈: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
○ 훈계: 선을 벗어날 때 단호하게 바로잡음
● 잘못된 양육 경고: 감정적 대처, 성공 강요, “기죽지 마” 식 교육 → 관계 파괴와
고립 초래
● 자녀가 성년이 된 후에도 기도로 영적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
3. 남편의 아내 사랑 (5:25 연계)
●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기 몸을 주신 것 같이”
사랑하라.
● 현실적 적용: 아내의 갱년기(40대 후반~50대) 호르몬 변화로 인한 감정 기복,
우울, 공황장애, 분노를 이해하고 긍휼히 여겨라.
● 진정한 사랑: 감정적 칭찬이 아닌, 연약함을 인내하며 돌보는 실천적 사랑.
4. 아내의 남편 존중 (5:33 연계)
● 아내는 남편을 존중(경외)하라.
● 현실적 적용: 남편의 에이지 커브(남성 호르몬 감소)로 인한 근력 저하, 무력감,
우울, 생의 의미 상실을 이해하라.
● 존중의 태도: “존경할 만해서”가 아니라, 불쌍히 여기고 세워주는 긍휼의 마음.
결론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가정은 완벽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공경하며, 긍휼과 인내로 섬기는 가운데 세워진다.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며, 부부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존중으로 하나 될 때 가정이 든든해지고, 가정을 통해 사회도 회복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정을 세워 주님의 축복과 참된 행복을 누리는 믿음의 가정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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