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1/2026
060126 오늘도 주님 생각
고린도전서 11:1-16
‘다름’에서 오는 구분을 차별로 오해하고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은 당시 문화와, 전통, 사회의 통념,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 안에서 남녀의 다름을 구분했다. 그리고 다름에서 오는 ‘서로 다른 사회적 행동양식’이 있었다. 예컨대 공예배에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고, 여자는 무엇을 쓰는 양식과 같은 것이다.(4-7절) 다시 말하지만 이는 다름이요, 틀림이 아니고, 차별도 아니다. 바울이 본문에 기록하듯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11-12절)
언젠가부터 사회 안에 다름을 틀림이라 주장하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들이 있다. 다름에서 오는 구분이 곧 차별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마땅히 지켜져야 하는 양식이나, 개념, 이해나, 행동 양식, 법까지도 바꾸려고 한다.
일단 이렇게 접근해보자. 틀린 것들은 바꿔야 하는 것이 맞다. 차별하는 것이라면 바꾸는 것이 맞다. 불의고, 악이라면 정정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다름에서 오는, 창조의 질서에서 오는, 건강한 전통과, 옳은 전통에서 오는 구분은 바꿔야 하는 ‘사회악’이 아니다. 예컨대 남녀 평등을 위해서 남녀가 섞여서 모든 스포츠를 경쟁하지 않는다. 이것이 틀림이나 차별이 아닌 다름에서 오는 구분이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마저도 차별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성경은 남녀 차별을 주장하지 않는다. 성경은 남녀의 다름을 얘기한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안 쓰고는 남녀를 차별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꼭 모두가 같아야만 평등한 것이 아니다. 그가 하는 것을 내가 해야만 평등한 것이 아니다. 수영장에서 남녀 불평등을 외치며 “여자도 남자처럼 topless를 허락하라!”가 정말 차별과 평등의 문제일까?
정말 모두가 같아야만 그것이 진짜 차별 없고 평등한 세상을 의미하는 것일까?
구분에 대한 병적인 오해, 자격지심에 기반한 오해, 뭐든지 다름과 분별은 틀렸다고 받아들이는 피해자적인 인식을 조심해야 한다.
차별이라면 바꾸되 건강한 구분, 다름에 대한 올바른 적용은 건강하게 수용하는 것이 지혜라 할 것이다. 무조건 싸우려 들 것도 아니고 논쟁하려 달려들 것도 아니다. 먼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그리고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