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New York Ha-Il Global Methodist Church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New York Ha-Il Global Methodist Church 39-50 Douglaston Parkway, Douglaston NY 11363
담임목사 박영관 (Rev.

Young Gwan Park)

주일예배 1:30 PM (예배실)
토요새벽예배 6:00 AM (예배실)
성경공부: 매주일 식사 친교 후 (친교실)
말씀묵상나눔 매주 목요 8:00 PM (Zoom)

06/13/2026

[붕대 위에 그린 나이키, 내 몸에 익은 영혼의 물맷돌]

6-14-26 겨자씨 한알 137번째
박영관 목사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지난 2019년, 필리핀의 한 지역에서 육상대회가 있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무려 3개의 금메달을 따며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레아 불로스이며 당시 11살이었습니다. 레아는 400미터, 800미터, 1500미터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소녀에게 주목한 진짜 이유는 금메달을 3개나 땄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녀의 발 때문이었습니다.
그 소녀는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신발을 살 수 없는 형편이어서 발에 붕대를 감고 뛰었습니다. 더 마음을 짠하게 했던 것은, 발을 감싼 붕대 위에 나이키 로고를 직접 그려 넣었다는 점입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사방에서 후원자들이 생겼고, 그녀에게 진짜 나이키 신발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진짜 감동은 가난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땄다는 영웅담에 있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했더니 좋은 후원이 이어졌다는 해피엔딩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본질은 바로 ‘익숙함이 어설픔을 이겼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소녀는 평소에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달리곤 했습니다. 신발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값싼 신발은 소녀의 엄청난 훈련량을 따라가지 못해 금세 닳아 없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어설픈 운동화를 신고 뛰는 것보다 맨발로 뛸 때의 기록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기록에 도움이 될 만큼 좋은 신발이었다면 레아도 마다하지 않고 신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발에 붕대를 감고 뛸지언정,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한 상태가 경기력에 더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도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 사울이 준 화려한 갑옷과 칼 대신, 평소 자신에게 가장 익숙했던 물맷돌을 들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저 작은 물맷돌로 강력한 골리앗을 대적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별 볼 일 없어 보일지라도 내 몸에 완전히 익숙해진 무기는 거인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관건은 그 익숙함이 영적 무기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꾸준함’이 있느냐입니다. 우리는 쉽게 중도 포기하곤 합니다. 매년 새해가 시작될 때 많은 사람은 ‘성경 통독’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우리 교회도 연초부터 성경 읽기를 진행 중인데, 성도님들은 어떻게 잘하고 계시는지요? 기도는 또 어떠신가요?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성경 읽기가 마치 길들지 않은 새 신발처럼 딱딱하고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꾸준히 하여 ‘익숙한 습관’이 될 때까지 실행한다면,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의 물맷돌처럼 우리에게 익숙해진 그 영적 습관이 ‘영혼의 물맷돌’ 그 이상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난 주일 처음 시작한 ‘월초 기도회’ 역시 아직은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혹시 그동안 성경 공부의 동력을 잃어버리지는 않으셨는지요? 신앙생활에서 익숙해질 때까지 꾸준히 실행한다면, 우리 영혼은 기지개를 펴고 다시 힘차게 달릴 준비를 할 것입니다. 어설픈 세상의 방법보다 나에게 ‘말씀의 무기’를 장착하는 일이 익숙해질 때까지 한번 도전해 보시면 어떨까요? 한 달이 될지, 일 년이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꾸준히’ 하는 자에게 반드시 복이 임할 것입니다. 나에게 익숙한 영적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꾸준함’이 중요합니다.

Send a message to learn more

06/06/2026

[마음의 틈을 메우는 법]

6-7-26 겨자씨 한알 136번째
박영관 목사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저희 집 아이가 조금 컸다고 요즘 ‘잔소리’가 많아졌습니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며 엄마 아빠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그중 하나가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나 약을 버리는 것입니다.
한번은 부엌 찬장 한구석에서 김을 찾았습니다. 유통기한이 일주일 남짓 지났더군요. 저야 당연히 그냥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본 아이는 유통기한을 확인하더니, 김을 빼앗아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저거 썩었어, 먹지 마 아빠!" 한마디를 남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것을 먹는다고 무슨 큰일이야 나겠습니까만, 아이가 저렇게 유통기한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 그 마음을 존중해 주기로 했습니다. 괜히 아까운 김 한 통만 없어져 속이 좀 쓰렸지만 말입니다. 저희 아이에게 유통기한은 꼭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삶의 어떤 기준이 있으신지요? 세상살이의 기준이 다르고, 사람을 보는 기준이 다르고, 신앙을 바라보는 눈이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은 창조 이전의 세상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여기서 혼돈(Chaos)이란 곧 ‘기준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인 3절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뒤에야, 혼돈 가득했던 창조 이전의 상태에서 질서가 잡힌 창조 이후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혼돈을 질서로 바꿉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공허한 영혼을 가득 채우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둠을 몰아내고 빛으로 세상을 밝힙니다.
우리 믿음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실패나 어려움을 겪으면 ‘염려, 두려움, 걱정’에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곤 합니다. 마귀는 귀신같이 이를 알고, 우리가 염려하고 근심하는 마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우리가 염려와 걱정을 단호히 거부해야 하는 영적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나 걱정, 근심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딤후 1:7).
중세 시대 ‘전신갑주(Full Armor)’를 입은 기사들을 떠올리면, 흔히 빈틈없는 갑옷을 입고 긴 칼을 멋지게 휘두르는 모습을 연상합니다. 하지만 중세의 격투술 기록을 보면 실제 기사들의 전투는 상상처럼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전투용 판금 갑옷의 무게는 보통 20~25kg에 달했습니다. 오늘날 소방관이나 군인들의 완전군장 못지않은 육중한 무게입니다. 온몸이 강철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기사들은 상대의 눈구멍, 목, 겨드랑이, 팔꿈치 안쪽, 무릎 뒤, 장갑 사이 같은 작은 ‘틈새’만을 노렸습니다. 그래서 기사들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먼저 상대를 넘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사를 넘어뜨려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후, 그 빈틈으로 단검을 찔러 넣는 식으로 싸웠던 것입니다.
마귀 역시 우리 마음의 틈을 노립니다. 걱정으로 벌어진 틈, 근심과 염려 때문에 생긴 영혼의 틈새를 호시탐탐 노리며 우리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삶의 문제들이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문제는 끊임없이 밀려올 것이고, 그때마다 염려와 근심은 또다시 우리 마음의 틈을 벌리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결책은 오직 하나, 주님께 다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길 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항상 돌보시기 때문입니다(벧전 5:7). 과감하게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떠맡기십시오. 한 번에 안 되면 될 때까지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지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두 팔을 벌려 준비하고 계십니다.

Send a message to learn more

05/30/2026

[15분과 60시간의 비밀]

5-31-26 겨자씨 한알 135번째
박영관 목사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1957년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커트 리히터(Curt Richter)’ 박사는 물을 채운 매끄러운 유리 실린더에 쥐들을 넣고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관찰했습니다. 쥐들은 미끄러운 실린더 벽을 타고 기어오를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헤엄을 쳐야만 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 대상은 체력과 생존력이 뛰어난 야생 들쥐들이었습니다. 야생 쥐는 다른 쥐들에 비해 생존 조건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실험 결과, 물에 빠진 야생 쥐들은 평균 15분을 넘기지 못하고 물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두 번째 실험 대상은 들쥐들에 비해 안전한 곳에서 자랐고,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먹고 자라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실험용 쥐들이었습니다. 실험 조건은 첫 번째 야생 들쥐들과 같았습니다. 벽이 미끄러운 실린더에 물을 채우고 실험 쥐들을 넣었습니다. 다만 두 번째 실험에서는 쥐들이 힘이 빠지고 스스로 포기하려 했던 14분 전후에 쥐를 물에서 꺼내 털을 말려주고 쉬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속으로 빠뜨렸습니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자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물에 넣었다 구조하는 과정을 반복했던 쥐들이 물속에서 무려 60시간을 버틴 것입니다. 리히터 박사의 결론은 ‘조금만 버티면 손이 내려와 나를 구해줄 것이다’라는 믿음이 쥐들로 하여금 버틸 힘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한번 구조된 경험이 있는 쥐들은 다시 물에 들어갈지라도 버텼습니다. 힘든 환경을 이겨낸 것입니다. 실험용 쥐들이 들쥐보다 근육이 많았기 때문에 생존한 것이 아닙니다.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 소망이 없을 때는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음은 단순한 기대를 넘어 실제 결과를 이끌어내는 마중물과 같다.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 안의 잠재력은 동면 상태에 빠지고 실패를 정당화할 근거만을 수집한다. 반면 할 수 있다는 확신은 한계를 돌파할 창의성과 끈기를 깨운다. 결국 결과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우리는 마음속에서 이미 승리와 패배를 결정짓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믿음이 곧 우리의 한계가 된다.”
구원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버틸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고 포기하려 한다면, 그가 나를 구원하셨던 은혜의 경험을 다시금 확인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며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전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에서의 ‘승리’는 무언가를 얻고, 쟁취하고,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지켜내는 것입니다. 버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버텨내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에 성도들과 공원에 나와 야외 예배를 드립니다. 5월의 마지막 주일,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며 하나님이 바람 결에 실어다 주시는 구원의 진한 기억을 다시금 마음속에 품고 기쁨 충만한 주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Send a message to learn more

05/23/2026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끝까지 순종함으로]

5-24-26 겨자씨 한알 134번째
박영관 목사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예수님의 공생애는 ‘성령에게 이끌리어’ 시작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셨으니 늘 좋은 일만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성령에 이끌리어 간 곳은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뼈가 사무치도록 춥습니다. 물도 없고, 먹을 것은 당연히 없습니다.
성령께 이끌림을 받았지만, 그곳에는 영적으로 마귀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께서 이끄셨기에 하나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순종하셨을 때,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아내가 삼겹살과 여러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음식 준비가 길어졌던지 조금 늦게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제가 늦게 식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딸아이가 저에게 한마디 합니다. “엄마가 음식 만드느라 힘들었어. 늦었지만 아무 소리 말고 먹어!” 그래서 저는 아이의 말에 순종해서 아무 소리 안 하고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차려진 게 많아서 이것저것 먹었더니 정작 삼겹살은 많이 먹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가 듣지 못하게 작은 소리로 제 얼굴 가까이 대고 소곤거립니다. “엄마가 힘들게 차린 음식이야. 뭐 하는 거야, 아빠 더 먹어!”
순종은 눈에 보이는 권위 있는 사람에게만 내 뜻을 내려놓고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내가 왜 저 사람 말을 들어야 하지?’ 싶은 사람의 말이라도, 그 말이 옳다고 생각되면 의지를 가지고 따르는 것이 진짜 순종입니다. 반면, 힘 있는 사람의 말을 마지못해 무조건 따르는 것은 ‘복종’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에 맞섰던 본회퍼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24살에 신학 교수가 될 정도의 천재 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나치의 핍박을 피해서 안전한 미국에서 교수직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지 몇 주 만에 성령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가 동료 신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에게 남긴 편지에는 성령의 음성을 따랐던 그의 심경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독일 역사 속 이 힘든 시기를 동포들과 함께 나누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난 후 독일의 기독교 삶을 재건하는 데 참여할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다시 독일로 돌아가서 나치에 맞섰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다는 이유로 1945년 4월 새벽, 플뢰센뷔르크 강제 수용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셨습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순교하는 순간까지 성령의 이끄심을 받으며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언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였습니다. 그는 성령의 이끌림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순교한 것입니다.
성령에 이끌림 받는 삶은 만사형통의 삶이 아닙니다. 성령에 이끌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할 때도 있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이라고 확신했는데 어려움이 찾아온다면 포기해야 할까요? 진정한 승리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나를 내려놓고 ‘순종’할 때 일어납니다. 성령의 이끄심이 있다면 하나님 말씀 붙들고 그 어떤 고난과 시험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끝까지 순종함으로,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Send a message to learn more

05/16/2026

[‘~할 걸’이 ‘감사’로 바뀌는 순간]

5-17-26 겨자씨 한알 133번째
박영관 목사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제가 교회에서 집으로 갈 때는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크로스 아일랜드 파크웨이(Cross Island Parkway)를 타거나, 노던 블러바드(Northern Blvd.)로 계속 직진하는 방법입니다. 흔히 시간 단축을 위해 크로스 아일랜드 파크웨이를 이용하지만, 이 고속도로는 한 번 막히면 대책이 없기 때문에 진입 전 꼭 구글 지도로 교통 상황을 체크하곤 합니다.
그런데 어제는 왜 그랬는지 아무런 확인도 없이 덜컥 크로스 아일랜드 파크웨이를 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도로에 들어선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차들이 서행하더니 급기야 모든 차선이 주차장처럼 멈춰 서 버렸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운전자들은 기린처럼 차 문을 열고 발판 위로 올라가 까치발을 들고 사고 상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저 역시 토요일은 주일 준비로 다른 날보다 마음이 분주한데, 이런 식으로 도로 위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살짝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에 꾹 눌러두었던 못된 생각의 습관이 튀어나왔습니다. ‘노던 블러바드로 갈 걸’, ‘네비게이션을 켜고 도로 상태를 먼저 확인할 걸…’ 하며 말입니다.
그렇게 혼자 ‘~할 걸’을 두세 번 반복하며 후회하던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제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피어오른 ‘두 가지 감사’가 불쑥 튀어나온 후회들을 지그시 누르며 깊은 평안을 전해 주었습니다.
첫 번째 감사는, 새벽예배 후 개인 기도 시간에 교회와 성도님들을 위해 조금 더 간절히 기도하길 잘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만약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기도 시간을 줄이고 5분이라도 일찍 출발했더라면, 어쩌면 제가 바로 그 사고의 당사자가 되었거나 사고 지점에 갇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5분 더 기도 자리에 머물 수 있도록 제 중심을 붙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감사는, 비록 사고로 길은 막히고 제 계획은 지체되었지만, 차 안에서 설교 말씀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 운전하며 좋아하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곤 하는데, 길이 막히지 않았다면 집까지 가는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겨우 한 편도 다 듣지 못하고 집에 도착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조금 더 말씀 앞에 머무를 시간을 선물해 주셨다고 생각하니, 조급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설교 말씀이 더 큰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신앙은 ‘리플렉션(Reflection)’, 곧 되돌아봄이요 반영이며 회개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나 자신을 깊이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처럼 삶의 예기치 못한 순간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주님의 뜻을 내 삶에 투영해 낸 ‘신앙의 리플렉션’으로 가득합니다.
우리 안에서 이런 영적인 되돌아봄이 일어난다는 것은, 지금도 성령께서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 삶에 찾아오는 분주함과 멈춤의 순간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영적인 리플렉션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 7:14)

Send a message to learn more

05/09/2026

[고난의 리프트 밸리, 높아지는 영적 헤모글로빈]

5-10-26 겨자씨 한알 132번째
박영관 목사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지난 4월 런던 마라톤 대회에서 마라톤 2시간 벽이 깨졌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마라톤 2시간 벽은 인류가 넘기 힘든 한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Sabastian Sawe) 선수가 1시간 59분 30초의 기록으로 우승하며 마의 2시간 벽을 넘어선 것입니다. 종전의 기록은 2023년 켈빈 킵툼이 세운 2시간 35초였습니다. 일상생활에서 65초는 그리 커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시간대와 2시간대의 벽은 전혀 다릅니다.
이 기록을 두고 많은 이들은 최적의 조건과 최첨단 러닝화가 빚어낸 합작품이라 입을 모읍니다. 그러나 기술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습니다. 인류가 갑자기 마라톤에 특화되도록 발달한 것도 아닙니다. 영국 BBC는 마라톤 2시간 벽을 깬 결정적 요인으로 마라토너들이 ‘리프트 밸리’(Rift Valley) 지역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 지역은 케냐와 에티오피아에 걸친 동아프리카 지구대입니다. 남자 마라톤 역대 최고 기록 20개 가운데 18개, 여자 마라톤 역시 최고 기록 20개 중 18개를 ‘리프트 밸리’ 지역 출신 선수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해발 고도가 높아 산소 농도가 낮은 환경입니다. 이곳 선수들은 이런 환경에서 정기적으로 훈련하기 때문에 심장과 폐 기능이 다른 지역 출신들과는 다르게 발달했다는 분석입니다. 물론 전 세계 고지대 사람들이 모두 마라톤에 특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경제적인 결핍을 채워야 하는 ‘헝그리 정신’과, 이미 성공한 지역 선배들을 보고 배운 영향도 컸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리프트 밸리’ 지역에 숨겨진 마라톤 보석들이 여전히 많다고 말합니다. 척박한 환경과 간절함, 그리고 “선배도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앞으로 더 많은 꿈나무로 하여금 2시간 벽을 깨게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훈련하기 어려운 고지대가 오히려 축복의 리프트 밸리인 셈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마라톤 선수를 비롯한 기록 경기 선수들은 단 1초라도 단축시키려 뼈를 깎는 훈련을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라 자처하는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리프트 밸리’와 신앙의 조건을 비교하자면, 평범한 조건보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훈련할 때 나중에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비결과 같습니다. 야구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 더 무거운 배트로 연습하거나, 달리기 선수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다 실제 경기에서 가벼움을 느끼는 것과 비견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의 경주를 뛰고 있는 우리 예수님의 제자들도 지금의 어려움을 ‘훈련’이라 생각한다면, 실전에서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에서 훈련하면 적혈구와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아져 산소 공급 능력이 뛰어나게 되듯이, 지금 환경에서 경험하는 결핍과 고난은 우리의 ‘영적 헤모글로빈’을 높이는 단련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연단이 악조건 속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믿음의 꿈나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악조건을 통한 단련의 유익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믿음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믿음의 경주자들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열심으로 달려갑시다.

Send a message to learn more

05/02/2026

[의도적인 불편함, 본질로 가는 지름길]

5-3-26 겨자씨 한알 131번째
박영관 목사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가장 불편한 점은 집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집주인이 세탁 시설 설치를 허락하지 않아 벌써 8년째 매주 동네 코인 세탁소(Coin Laundry)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생활도 익숙해질 법한데, 여전히 번거로울 때가 많습니다. 물론 아내가 전적으로 세탁을 도맡아 하기에 제가 불평할 처지는 아닙니다만, 세탁기가 없는 삶이 주는 사색의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세탁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량 생산과 상하수도 인프라의 확충에 힘입어 각 가정에 빠르게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흔히 전기 세탁기의 등장이 가사 노동에 시달리던 이들에게 해방과 여유를 선사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역사학자 루스 슈워츠 코완(Ruth S. Cowan)은 이를 ʻ가사 노동의 역설’이라 설명합니다.
세탁기가 보급되면서 개별 세탁 시간은 줄었을지 몰라도, 가사 노동의 전체 시간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마을 빨래터에서 이웃과 함께하거나 대행업자에게 맡기던 일이 전적으로 ʻ가정 내 주부’ 한 사람의 몫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ʻ청결의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빨래가 번거롭던 시절에는 겉옷을 몇 주씩 입기도 했지만, 이제는 손쉽게 빨 수 있다는 이유로 세탁의 ʻ빈도’가 압도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기술은 편리함을 주었지만, 동시에 더 자주 일해야 하는 ʻ새로운 기준’이라는 족쇄를 채운 셈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자동화 로봇에서도 나타납니다. 최근 한국 외식업계에서는 인건비를 줄이려 도입한 서빙·조리 로봇이 오히려 운영비를 상승시켰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잦은 고장과 오류, 고객의 즉각적인 요청에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결국 직원이 다시 개입하게 되어, 기계값만 추가로 지출하는 형국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형태는 어떻습니까? 이제는 SNS나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의 예배와 설교를 안방에서 편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운전하거나 걸을 때 좋아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찬양을 누리곤 합니다. 하지만 첨단 기기의 도움으로 은혜의 정보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 역설적으로 조용히 앉아 말씀을 읽고 골방에서 기도하는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어야 안심이 되고, 설교 준비라는 명목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만 늘어가는 제 모습을 보며 반성하게 됩니다. 편리함이 도리어 하나님과의 본질적인 사귐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과의 친밀감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조금은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무릎을 꿇고, 말씀과 직접 씨름하는 시간에 더 투자해 보시면 어떨까요? 최고의 뮤지션 음원보다 음정이 조금 틀리더라도 내 목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ʻ라이브 찬양과 기도’가 더 귀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영성에 있어서만큼은, ʻ의도적인 불편함’이 본질로 복귀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믿습니다.

Send a message to learn more

04/25/2026

[‘양의 문’에는 정관사 ‘THE’가 붙습니다]

4-26-26 겨자씨 한알 130번째
박영관 목사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지난 주간에 교인들과 함께 성극 ‘Joshua(여호수아)’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작년에는 교인 사정으로 가지 못했고, 재작년 처음 갔을 때는 ‘다니엘’을 보았습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연출자에 따라 ‘해석’이 어쩜 저렇게 다를까 하는 생각입니다. 큰 줄거리는 성경을 따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연출자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낼 정도로 빛나기도 합니다.
이번 성극 ‘여호수아’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여리고 성 함락 당시 성 내부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해소해 준 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6일 동안 돌고 마지막 날 일곱 번을 돈 후에 함성을 질러 성을 무너뜨린 사건을 라합과 그 가족의 구원과 연결하여 해석했습니다. 여리고 성의 모든 벽이 무너져도 라합의 집만은 무너지지 않은 장면을 통해 그 가족의 구원을 극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이전의 성극들은 구약 인물이라도 ‘기독론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해석함으로써 청중들이 은혜롭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번에는 언급은 있었지만 상황적인 묘사로만 끝나는 듯해 조금 섭섭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구약 인물들을 예수님과 다소 부자연스럽게 엮는 연출도 있었지만, 성극인 만큼 청중들은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했을 것입니다. 어설픈 브로드웨이 흉내보다는 분명한 ‘성극’의 색깔을 내는 것이 연출자나 관객 모두에게 더욱 은혜로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스쳐 지나가듯 짧은 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영상 속 진행자는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소개하면서도, 월요일마다 절에 간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예수님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다만 월요일에 절에 가면 마음이 편하고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선택은 자유이기에 그 결정을 존중합니다.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이런 말이 언뜻 듣기에 매우 ‘쿨’하고 좋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세련되어 보이고 포용력 있어 보이며, 마치 우리가 바라는 ‘현대적인 신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타 종교가 주는 혜택이나 편안함 같은 ‘바이브’를 누리는 자유가 있어 보여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까 우려됩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종교다원주의’ 혹은 ‘혼합주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는 구원이라는 진리를 얻는 것이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면, 그 길에는 여러 코스가 있다고 믿는 입장입니다. 기독교든 불교든 각자 마음 편한 길을 택해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논리입니다. 반면 종교혼합주의(Syncretism)는 일종의 비빔밥입니다. 여러 종교의 교리와 의식을 자기 취향에 맞게 섞는 것입니다. 예수는 믿지만 마음의 평안을 위해 불교식 수행을 병행하는 것은 전형적인 혼합주의적 행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다”라는 선언은 사실 매우 강력한 배타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건물에 문이 많아도 특정한 방에 들어가려면 정해진 문 하나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여러 문 중 하나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도 정관사 ‘The’가 붙어 “I am THE door of the sheep”이라고 명시합니다.
목자의 음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목자가 아침에 공동 우리에 있는 양들을 찾으러 갈 때, 양들은 자기 목자의 소리를 구분합니다. 목자들에게는 고유의 소리가 있습니다. 휘파람이든 고함이든 그들만의 독특한 소리가 있고, 양들은 그 소리를 듣고 반응합니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요 10:4) ‘그의 음성’은 여러 소리 중 하나가 아닙니다. 분명하고 고유한 목소리입니다.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으며, 도둑이나 강도가 흉내 낼 수도 없습니다.
구원은 유일합니다. 우리 영혼이 구원받는 길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사하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회개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만 따르는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됩시다.

Send a message to learn more

04/18/2026

[의심으로 닫힌 문, 믿음으로 여는 문]

4-19-26 겨자씨 한알 129번째
박영관 목사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어느 글에서 스탈린이 의심 때문에 홀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실제로 스탈린은 본인이 만든 ‘공포 정치’ 속에 고립되어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는 숙청을 통해 독재 권력을 유지했기에 그 누구도 믿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결국 홀로 방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제때 그의 방에 들어갔다면 그는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의 방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주치의조차 자신을 독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곁에 두지 않았습니다. 혹여 방에 들어갔다가 스탈린의 죽음을 처음 발견하면, 그 사람이 살해범으로 지목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누군가 방에 들어갔을 때 스탈린이 기력을 회복해 깨어난다면, 그가 자신을 해치러 왔다고 의심하여 죽일 것이 뻔했기에 누구도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스탈린의 의심은 수많은 사람을 사지로 내몰았을 뿐만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까지 철저한 고립과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처럼 의심은 모든 마음의 문을 닫게 합니다.
반면, 믿음은 사람을 살리고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최근 가수 서인영 씨의 유튜브 채널이 인기라고 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유독 눈길을 끈 브이로그는 그녀가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성가대에서 봉사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었습니다. 게시된 지 불과 며칠 만에 조회수 200만 뷰를 넘길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영상 속 서인영 자매의 신앙생활은 가감 없이 진솔했습니다. 유명 연예인답지 않게 교인들과 스스럼없이 교제하며 교회 공동체 안으로 스며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제 눈길을 끌었던 것은 시청자들의 댓글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믿음’이 어떻게 흘러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사실 서인영 자매는 근래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러 구설과 개인적인 아픔을 겪으며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웃음을 잃기도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한 채 피폐한 생활을 이어오던 중,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세례를 받으며 성가대 찬양으로 회복된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준 것입니다.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 시청자들은 열렬히 반응했습니다. “교회 안 다니는데 이 영상을 보니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진다”, “무교인데 마음이 경건해져 눈물이 났다”, “주일성수 하라는 엄마 말은 안 듣더니 인영 언니 영상 보고 탕자 생활 청산한다” 등 선한 영향력이 입증되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서인영 자매가 경험한 은혜가 영상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어, 많은 이들이 믿음으로 반응하게 된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때로는 오르락내리락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말씀 위에 바로 서 있다면, 어떤 시험의 바람이 불어도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은 누워 있는 자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습니다. 심지어 죽은 영혼도 일으켜 세워줍니다. 우리 안에 온전한 믿음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들로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약 5:15)

Send a message to learn more

04/11/2026

[하루 5분, 영적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시간]

4-12-26 겨자씨 한알 128번째
박영관 목사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ABC 방송 ‘지미 키멜 쇼’에 영화배우 존 시나(John Cena)가 출연해 자신의 독특한 습관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시계를 두 개 가지고 다니는데, 그중 하나는 고장 난 회중시계입니다. 진행자 지미 키멜이 왜 고장 난 시계를 가지고 다니느냐고 묻자, 시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손목에 찬 시계는 ‘시간(Time)’을 알려주지만, 고장 난 이 시계는 ‘관점(Perspective)’을 알려줍니다.”
의아해하는 지미 키멜에게 그는 또렷한 어투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이 관점을 늘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불편하거나 내 존재 가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면 이 시계의 뒷면을 봅니다. 거기엔 ‘비교는 기쁨의 도둑이다(Comparison is the thief of joy)’라고 적혀 있습니다. 불안하거나 자존감이 낮아질 때마다 이 문장을 통해 제가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상기합니다. 시계의 다른 면에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가 적혀 있습니다. 나는 그저 한 인간에 불과하며, 특별히 뛰어난 존재도 아님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하는 이 두 가지 면이 나의 ‘관점’을 유지시켜 줍니다.” 그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음에도 자신을 늘 돌아보는 멋진 습관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김성우 작가의 저서 『30일 5분 달리기』는 달리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하던 중 달리기에 빠졌습니다. 케냐 선수처럼 달리고 싶은 욕심에 케냐까지 가서 훈련을 받고 일주일에 100km 이상을 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다 결국 번아웃이 찾아와 6개월 이상 강제로 휴식해야 했습니다. 그때 그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달리기를 하려고 애쓰며 무리하기보다, 일상에서 매일 즐겁게 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달리기 프로그램을 만들고 책을 쓰며 달리기의 유익을 전하고 있습니다. 자기 호흡에 맞는 편안한 속도로 단 5분만 달려보아도 즐겁고 자유로운 자신만의 달리기를 경험할 수 있다고 권면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관점’을 유지해 주는 힘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비교를 강요하며 우리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쓰러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내가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일깨워 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세상 유혹에 빠져 허우적댈 때, 우리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겸허히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만의 ‘관점’을 찾고 마음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무가치한 존재라고 가스라이팅하기 전, 하루 단 5분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끝없는 세상의 속도와 비교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 존재를 지키기 위해 그 5분을 말씀에 집중해 보십시오. 말씀이 우리의 관점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절대 부담 갖지 마십시오. 하루에 딱 5분이면 충분합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잠언 4:20-22)

Send a message to learn more

Address

39-50 Douglaston Parkway
Queens, NY
11363

Opening Hours

Saturday 6am - 7:30am
Sunday 1am - 5pm

Alerts

Be the first to know and let us send you an email when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New York Ha-Il Global Methodist Church posts news and promotions.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used for any other purpose, and you can unsubscribe at any time.

Contact The Place Of Worship

Send a message to 뉴욕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New York Ha-Il Global Methodist Church:

Share

Categ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