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5/2026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희망은 깃털달린 것
by Emily Dickinson, 번역 주인돈신부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That perches in the soul,And sings the tune--without the words,And never stops at all,
And sweetest in the gale is heard;And sore must be the storm That could abash the little bird That kept so many warm.
I've heard it in the chillest land,And on the strangest sea;Yet, never, in extremity,It asked a crumb of me.
희망은 깃털달린 달린 것
희망은 날개 달린 것(또는 깃털 달린 것)영혼에 둥지 틀고,말이 없는 노래를 부른다네끝없이 이어지는 그 노래를,드센 바람 속에서 가장 감미로운 그 노래를,매서운 폭풍에도 굴하지 않고그 작은 새는 수많은 이들을따뜻하게 지켜주리니.가장 차가운 땅에서도,그리고 가장 낯선 바다에서도 나는 그 노래 들었네.그러나 최악의 처지일 때도,단 한 번도,그 새는 내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지 않았네.
에밀리 디킨슨Emilly Dickinson
어둠 속에서 일어나 바라보는 웃음꽃
주인돈 신부 (성공회, 한마음교회)
[글쓴이 노트]1월 6일은 공현일(Epiphany)이다. 이날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개정공동성서정과(RCL)는 이날의 제1독서로 이사야 60:1-6, 9를 제시한다.
1. 이사야 60:1-6, 9: 폐허 위에 핀 영광
절망의 한복판에서 기쁘게 웃으며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까?
눈앞에 펼쳐진 무너짐의 폐허 속에서,
모든 것이 복구되어 눈부시게 빛나는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바빌론 유배 생활 70년을 끝내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맞이한 것은 고향 땅의 환희가 아니라, 짙은 어둠과 흑암이었다(이사야 60:2).
그러나 예언자 이사야는 바로 그 절망의 현장에서
기쁨에 넘치는 희망을 선포한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네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고 기뻐서 너의 가슴은 설레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밀려오고 뭇 민족의 재물이 너에게로 밀려오리라.” (이사야 60:5, 공동번역)
비극적 현장에서 예언자는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이사야 60:1)라고 선언한다. 하느님께서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닌 능동적인 '일어섬'을 촉구하시며, 현재의 어두운 현실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길 주문하신다.
2.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와 '희망의 원리'
유대계 독일인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20세기의 비극적인 역사를 관통하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어둠을 경험했다. 유대인 지식인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그는 나치 집권과 동시에 '살생부'에 올랐다. 1933년 독일을 탈출한 그는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체코를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긴 망명길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조국과 언어, 동료를 잃는 극심한 상실감을 맛보아야 했다.
미국 사회에서도 그는 쉽게 융화되지 못했다. 경제적 궁핍과 문화적 소외라는 또 다른 어둠 속에서 그는 대작 『희망의 원리』를 집필했다. 전쟁 후,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동독으로 돌아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가르쳤으나, 그의 자유롭고 인본주의적인 철학은 다시 스탈린주의 교조주의자들과 충돌했다. 결국 '이단적 철학자'로 몰려 교수직을 박탈당했고,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질 무렵 다시 서독으로 망명해야 했다.
그에게 희망은 단순히 낙관적인 기분이 아니라, 학습된 감정'이자 '행동하는 투쟁'이었다.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현실의 결핍을 넘어서려는 구체적 유토피아의 의지다. ... 중요한 것은 희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희망의 일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며, 희망은 안락함보다 개척을 선호한다.”— Ernst Bloch, 『희망의 원리』 중에서
블로흐에게 희망의 근거는 풍요가 아니라 오히려 '결핍'그 자체에 있었다. 배고픈 자가 밥을 꿈꾸듯, 어둠 속에 있는 자만이 진정한 빛의 도래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가 평생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Noch-nicht)”현실 때문이었다. 그는 결핍을 넘어 결핍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희망의 힘이라고 믿었다.
3. 에밀리 디킨슨: 어둠 속에서 노래하는 날개
우리의 현실이 비록 절망과 어둠 속에 있을지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영혼에 내재된 본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이를 날개 달린 작은 새에 비유하여 아름답게 노래했다.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That perches in the soul -And sings the tune without the words -And never stops - at all -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영혼 위에 내려앉아 -가사 없는 선율을 노래하네 -결코 멈추는 법 없이 -
디킨슨은 희망을 가녀린 새에 비유한다. 매서운 폭풍우(sore must be the storm)가 몰아치고 몹시 추운 땅(chillest land)에서도 이 작은 새는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새해 첫 주일 저녁, 설교를 다 마치고 난 뒤 어디선가 그 희망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사야의 예언과 블로흐의 철학, 그리고 디킨슨의 시가 말하는 희망은 모두 절망의 한복판에서 일어나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어둠 속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가녀린 새의 노래를 듣는 것,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느님이 바로 '희망의 하느님'이시며,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희망. #절망. #공현일. # 에밀리 디킨슨. #이사야 6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