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타 지구촌교회 Global Mission Church of Atlanta

아틀란타 지구촌교회 Global Mission Church of Atlanta 아틀란타 지구촌교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샬롬!
환영합니다.

21세기는 네트워킹을 통한 만남의 시대입니다.
좋은 만남은 좋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바울이 바나바를, 여호수아가 모세를 만나 변화되었듯,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길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받고 거기서부터 인간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꿈이 있는 공동체
사랑이 있는 공동체
좋은 만남이 있는 공동체
지구촌교회에 방문하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담임목사 권석균

09/09/2026

오늘의 양식 묵상과 나눔
2026년 9월 9일 수요일

성경읽기 : 잠언 6–7장 / 고린도후서 2장
찬송가 : 287장(통 205장)
오늘의 말씀 : 누가복음 14:15–24 [개역개정]
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LUKE 14:15–24 [NIV]
15. When one of those at the table with him heard this, he said to Jesus, "Blessed is the man who will eat at the feast in the kingdom of God."
16. Jesus replied: "A certain man was preparing a great banquet and invited many guests.
17. At the time of the banquet he sent his servant to tell those who had been invited, 'Come, for everything is now ready.'
18. "But they all alike began to make excuses. The first said, 'I have just bought a field, and I must go and see it. Please excuse me.'
19. "Another said, 'I have just bought five yoke of oxen, and I'm on my way to try them out. Please excuse me.'
20. "Still another said, 'I just got married, so I can't come.'
21. "The servant came back and reported this to his master. Then the owner of the house became angry and ordered his servant, 'Go out quickly into the streets and alleys of the town and bring in the poor, the crippled, the blind and the lame.'
22. " 'Sir,' the servant said, 'what you ordered has been done, but there is still room.'
23. "Then the master told his servant, 'Go out to the roads and country lanes and make them come in, so that my house will be full.
24. I tell you, not one of those men who were invited will get a taste of my banquet.' "

오늘의 성구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누가복음 14:23)

>

오늘의 양식 저자는 친한 친구의 결혼식 피로연을 위해 200명의 하객이 앉을 식탁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냅킨을 접고, 식기를 맞추고, 꽃을 장식하며 손님들이 와서 그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많은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준비한 사람에게 빈자리는 큰 아쉬움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14장에서 큰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많은 사람을 초청해 풍성한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초청받은 사람들은 밭을 샀다거나, 소를 시험해야 한다거나, 결혼했다는 이유를 대며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종들에게 말합니다.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그래도 빈 자리가 남자 다시 말합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 비유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아직 자리가 남아 있고, 하나님의 초청은 계속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스스로 하나님 나라에 당연히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반면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치 없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잔치에 초대되었습니다.
복음은 사람의 조건을 보고 초청하지 않습니다.
잘 사는 사람도,가난한 사람도,배운 사람도,배우지 못한 사람도,신앙의 배경이 있는 사람도,교회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습니다.

오늘 읽은 잠언의 말씀은 이 초청에 응답하는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도 보여 줍니다.
잠언 6장은 게으름과 악한 행실을 경고하며, 개미에게서 부지런함을 배우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거짓말과 다툼을 일으키는 마음, 무죄한 피를 흘리는 손, 악을 꾀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잠언 7장은 유혹의 길을 경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지혜의 길에서 떠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초청장을 전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말로는 복음을 전하면서도 게으름과 거짓, 다툼과 이기심으로 살아간다면 사람들은 복음의 아름다움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선을 행하며, 정직하고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잠언의 지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복음의 초청은 입술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도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초청장을 누구에게 전하고 있는가?”
우리는 전도를 생각하면 먼저 사람을 예배당으로 데려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비유에서 종들은 집 안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길로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모습입니다.
복음은 교회 안에서만 머무는 소식이 아니라 밖으로 들고 나가야 하는 초청장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아직 이 초청장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사람도 있고,신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으며,외롭고 지쳐 있지만 어디에서 위로를 받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처음부터 긴 설명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관계를 맺고,식사를 나누고,이야기를 듣고,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잠언의 말씀처럼 정직하고 선한 삶으로 신뢰를 쌓아 가며,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 때문에 이런 소망을 갖고 삽니다.”
“함께 예배드려 보시겠습니까?”
“우리 같이 기도해 볼까요?”
이것이 초청입니다.

오늘 함께 읽는 고린도후서 2장에서 바울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합니다.
향기는 말없이도 퍼집니다.
우리의 친절과 정직과 섬김과 사랑을 통해 먼저 복음의 향기가 전해질 수 있습니다.
잠언 6–7장의 권면처럼 부지런하고 정직하며 지혜롭게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세상 가운데 복음의 신뢰를 세우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나 향기가 퍼지는 데서 끝나지 않고, 언젠가는 그 향기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야 합니다.
선교적 교회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오는 교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알려주는 교회입니다.
자, 이제 생각해봅시다.
“내 주변에 아직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복음의 초청장을 건넬 수 있을까?”
오늘도 하나님의 잔치에는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초청장을 맡기셨습니다.
교회는 초청장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그 초청장을 세상에 전달하는 공동체입니다.

< 기도 >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초청장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게으름과 거짓을 버리고, 정직하고 지혜로우며 부지런한 삶을 살게 하소서.
교회 안의 우리끼리만 그 기쁨을 누리지 말게 하시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사랑과 소망을 전하게 하소서.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게 하시고, 때가 될 때 담대하고 따뜻하게 예수님을 소개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9/09/2026

오늘의 양식 묵상과 나눔
2026년 9월 8일 화요일

성경읽기 : 잠언 3–5장 / 고린도후서 1장
찬송가 : 221장(통 525장)
오늘의 말씀 : 빌립보서 1:27; 2:1–4 [개역개정]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Philippians 1:27; 2:1–4 [NIV]
27. Whatever happens, conduct yourselves in a manner worthy of the gospel of Christ. Then, whether I come and see you or only hear about you in my absence, I will know that you stand firm in one spirit, contending as one man for the faith of the gospel
1. If you have any encouragement from being united with Christ, if any comfort from his love, if any fellowship with the Spirit, if any tenderness and compassion,
2. then make my joy complete by being like-minded, having the same love, being one in spirit and purpose.
3. Do nothing out of selfish ambition or vain conceit, but in humility consider others better than yourselves.
4. Each of you should look not only to your own interests, but also to the interests of others.

오늘의 성구
“한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고.”(빌립보서 1:27)

>

레이첼은 청각 장애인입니다.
그는 3년 동안 여러 교회를 찾아다녔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속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전통적인 교회 예배 형태가 아닌 작은 가정교회 공동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유튜브로 청각 장애인을 위한 예배를 함께 보고, 말씀을 나누고, 함께 식사하며 삶을 나누었습니다.
레이첼이 찾았던 것은 단순히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나누고 함께 믿음으로 살아갈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회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라고 하면 먼저 예배당을 떠올립니다.
주일이 되면 사람들이 예배당으로 모이고, 찬송하고, 말씀을 듣고, 예배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건물이나 예배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한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으라.”
여기서 중요한 말이 “성령의 교제”입니다.
성령의 교제는 교회 건물 안에서 성도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서로 연결하실 뿐 아니라 세상 속으로 보내십니다.
직장에서 사람을 만나고,이웃을 만나고,학교에서 사람을 만나며,식당과 마트와 공원에서 사람을 만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전체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선교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잠언 3–5장은 이러한 삶의 방향을 지혜롭게 보여 줍니다. 잠언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며, 모든 길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지혜를 얻고 그 길을 지키며, 악한 길을 멀리하고 생명의 길을 선택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신앙이 예배 시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과 관계와 일상생활 전체에서 드러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지혜롭게 사랑하고 섬깁니다.
그래서 선교적 교회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로 오십시오.”
라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먼저 우리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힘든 일은 없습니까?”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라고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을 기다리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우물가로 가셨고,세리 삭개오를 만나셨으며,병든 사람과 가난한 사람과 외로운 사람들 곁으로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사람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오늘 바울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이 말씀은 선교적인 삶을 아주 잘 설명합니다.
내 삶만 바라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삶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외롭고 힘들게 살아갑니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 온 사람,유학이나 취업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사람,어린아이를 키우며 지친 부부,직장을 잃은 사람,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먼저 교회를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그들을 발견해야 합니다.
오늘 함께 읽는 고린도후서 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받은 위로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우리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위로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힘이 되고,받은 사랑은 누군가를 품는 사랑이 되며,받은 도움은 또 다른 사람을 돕는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기 시작하면 작은 공동체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커피 한 잔일 수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가정의 필요를 함께 돕다가 관계가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고, 서로의 삶을 돌보기 시작한다면 그곳에 이미 교회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먼저 건물을 만들고 사람을 불러 모은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삶을 나누며, 그 가운데 예수님을 모실 때 공동체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번 주 하나님께서 내 생활 속에서 만나게 하시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작은 섬김은 무엇인가?”
거창한 전도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됩니다.
식사 한 끼를 함께하고,이사를 도와주고,아이를 잠시 돌봐주고,병원에 함께 가주고,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관계가 깊어지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 볼까요?”
그 작은 만남에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교회로 오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교회가 되어 그들에게 가야 합니다.
예배당은 교회가 모이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오늘도 잠언의 지혜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의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합시다. 고린도후서의 말씀처럼 우리가 받은 위로로 다른 사람을 위로합시다. 그리고 빌립보서의 권면처럼 한마음으로 복음을 위해 협력하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람들에게로 나아갑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들과 삶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를 세워갑시다.
교회는 사람을 기다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사람에게로 가는 공동체입니다.

< 기도 >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으로 불러 주시고 세상 속으로 보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잠언의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길에서 주님을 인정하게 하소서. 우리의 신앙이 예배당 안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일터와 이웃과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사람들을 사랑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도움이 필요하고 외롭고 지친 사람들을 지나치지 않게 하시며, 먼저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실제적인 필요를 섬길 수 있게 하소서.
고린도후서 1장의 말씀처럼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하시고, 작은 만남과 식사와 섬김을 통해 새로운 관계가 생기고 믿음의 공동체가 세워지게 하소서.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오기만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로 가게 하시며, 우리의 삶이 복음을 보여주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성령께서 우리의 만남을 인도하시고,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9/07/2026

오늘의 양식 묵상과 나눔
2026년 9월 7일 월요일

성경읽기 : 잠언 1–2장 / 고린도전서 16장
찬송가 : 384장(통 434장)
오늘의 말씀 : 시편 32:6–8
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Psalms 32:6-8 [NIV]
6. Therefore let everyone who is godly pray to you while you may be found; surely when the mighty waters rise, they will not reach him.
7. You are my hiding place; you will protect me from trouble and surround me with songs of deliverance. Selah
8. I will instruct you and teach you in the way you should go; I will counsel you and watch over you.
오늘의 성구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편 32:8)

>

오늘의 양식 저자와 아내는 미시간의 매키낵 다리를 걷는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약 8킬로미터를 걸은 뒤 공원 벤치에서 쉬고 있는데 한 가족이 곁에 앉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고, 놀랍게도 두 가족 모두 십대 딸을 잃은 깊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날 행사에는 약 3만 3천 명이 참가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비슷한 아픔을 가진 두 가족이 우연처럼 한 벤치에서 만나 서로의 경험과 믿음을 나누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그 만남을 통해 오늘 시편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길을 가는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무엇을 해야 할지,언제 움직이고 언제 기다려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날을 모두 볼 수 없습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하는 길까지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답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길을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는 잠언 2장도 말씀합니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단순히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길만 열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때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가 기대한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문이 열리는 것으로 인도하실 때도 있지만,문이 닫히는 것으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기다리게 하실 때도 있고,계획을 바꾸게 하실 때도 있으며,어떤 사람을 만나게 하심으로 길을 보여주실 때도 있습니다.
매키낵 다리에서 만난 두 가족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경우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벤치에 앉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만남을 특별한 하나님의 표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분명히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이 아닐까?”
내가 위로가 필요할 때 누군가가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지도처럼 “이쪽으로 가라”​고 방향만 알려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통해 우리를 격려하고 방향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32편은 이어서 말합니다.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하나님의 사랑은 목적지에서만 기다리고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랑입니다.
오늘 함께 읽는 고린도전서 16장에서 바울도 자신의 여행과 사역 계획을 말합니다.
바울에게는 분명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계획을 절대화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마음으로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자세입니다.
계획은 세우되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것입니다.
길이 열리면 감사하며 가고,길이 막히면 이유를 묻고,사람을 만나면 그 만남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자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어느 길로 인도하고 계시는가?”
그리고
“그 길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만나게 하신 사람과 사건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어쩌면 내가 예상하지 않았던 만남이 하나님의 위로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내 계획이 막힌 것이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연히 만난 사람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작은 사명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아시고, 그 길을 걷는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이렇게 기도하며 걸어갑시다.
“주님, 제 길을 인도하시고, 그 길 위에서 주님의 손길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소서.”

< 기도 >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우리의 앞길을 아시고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앞날을 알 수 없기에 내 생각과 경험만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 가운데 주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내가 원하는 길만 고집하지 않게 하시며, 문이 열릴 때나 닫힐 때나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살펴보게 하소서.
또한 오늘 만나는 사람과 겪는 일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그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알아보게 하소서.
필요한 때에 위로받게 하시고, 또 누군가에게 내가 위로와 도움이 되어야 할 때 기꺼이 사용되게 하소서.
오늘도 나의 길을 아시고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걸어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9/06/2026

오늘의 양식 묵상과 나눔
2026년 9월 6일 주일

성경읽기 : 시편 148–150편 / 고린도전서 15:29–58
찬송가 : 357장(통 397장)
오늘의 말씀 : 유다서 1:20–23 [개역개정]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Jude 1:20-23 [NIV]
20. But you, dear friends, build yourselves up in your most holy faith and pray in the Holy Spirit.
21. Keep yourselves in God's love as you wait for the mercy of our Lord Jesus Christ to bring you to eternal life.
22. Be merciful to those who doubt;
23. sn**ch others from the fire and save them; to others show mercy, mixed with fear--hating even the clothing stained by corrupted flesh.

오늘의 성구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유다서 1:23)

>

일본에서 유학하던 스물일곱 살의 한 학생이 후지산에 올랐다가 위험한 기상 상황 때문에 헬리콥터로 구조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조된 뒤 휴대전화와 소지품을 산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불과 나흘 뒤 경고를 무시한 채 다시 산에 올랐습니다. 결국 이번에는 고산병 증세로 또다시 구조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놀란 것은 이미 위험을 경험하고 구조받았는데도 다시 그 위험한 곳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죄와 잘못된 습관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옛자리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유다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전합니다.
유다서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짧은 편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자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소개합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잘못 이해하여 도덕적인 타협을 정당화하고 성도들을 미혹하는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처음에는 구원에 관하여 편지를 쓰려고 했지만, 상황의 긴급함 때문에 성도들에게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권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싸우라”는 말은 사람과 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거짓된 가르침과 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붙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유다는 자기 믿음만 지키라고 하지 않습니다.
먼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
믿음을 위한 싸움은 먼저 나 자신을 하나님 안에 바로 세우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말씀 위에 서고,성령으로 기도하며,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흔들리는 사람들을 돌아보라고 합니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믿음이 약해지고 의심에 빠진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믿음이 왜 그것밖에 안 돼?”
라고 몰아붙이기보다 그 사람의 형편을 이해하고 다시 믿음 위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은 잘못된 길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아닙니다.
유다는 말합니다.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는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 길은 위험합니다. 돌아오십시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중요한 모습입니다.
정죄하지 않지만 방관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죄는 미워하지만 사람은 긍휼히 여기고,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도록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는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긴 부활의 가르침을 마치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린도전서 15:58)
우리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유혹 앞에서도 다시 싸울 수 있으며, 흔들리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붙들어 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두 가지를 질문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미 건져 주셨는데 내가 다시 돌아가려는 옛자리는 없는가?”
그리고,
“내 주변에 지금 믿음이 흔들리고 있어 내가 손을 내밀어야 할 사람은 없는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긴 설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화 한 통,따뜻한 격려 한마디,함께 드리는 기도,다시 교회와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도록 붙잡아 주는 손길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넘어질 때 다시 일으켜 주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은혜는 우리를 변화시켜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은혜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고 성령으로 기도하며, 흔들리는 사람을 긍휼히 붙들어 줍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 주신 옛 자리로 다시 돌아가지 말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견실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 기도 >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믿음의 길로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건져 주신 옛 삶과 죄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켜 주소서.
말씀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하소서.
믿음이 흔들리고 의심하는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게 하시고, 긍휼히 여기며 다시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도록 사랑으로 붙들어 주게 하소서.
거짓과 죄는 분별하여 멀리하면서도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지혜와 사랑을 허락하여 주소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견실하고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오늘도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9/05/2026

오늘의 양식 묵상과 나눔
2026년 9월 5일 토요일

성경읽기: 시편 146–147편 / 고린도전서 15:1–28
찬송가: 366장(통 485장)
오늘의 말씀: 민수기 22:22–23, 25–32 [개역개정]
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2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25.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26.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27.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29.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3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32.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Numbers 22:22–23, 25–32[NIV]
22. But God was very angry when he went, and the angel of the LORD stood in the road to oppose him. Balaam was riding on his donkey, and his two servants were with him.
23. When the donkey saw the angel of the LORD standing in the road with a drawn sword in his hand, she turned off the road into a field. Balaam beat her to get her back on the road.
25. When the donkey saw the angel of the LORD, she pressed close to the wall, crushing Balaam's foot against it. So he beat her again.
26. Then the angel of the LORD moved on ahead and stood in a narrow place where there was no room to turn, either to the right or to the left.
27. When the donkey saw the angel of the LORD, she lay down under Balaam, and he was angry and beat her with his staff.
28. Then the LORD opened the donkey's mouth, and she said to Balaam, "What have I done to you to make you beat me these three times?"
29. Balaam answered the donkey, "You have made a fool of me! If I had a sword in my hand, I would kill you right now."
30. The donkey said to Balaam, "Am I not your own donkey, which you have always ridden, to this day? Have I been in the habit of doing this to you?" "No," he said.
31. Then the LORD opened Balaam's eyes, and he saw the angel of the LORD standing in the road with his sword drawn. So he bowed low and fell facedown.
32. The angel of the LORD asked him, "Why have you beaten your donkey these three times? I have come here to oppose you because your path is a reckless one before me.

오늘의 성구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민수기 22:32)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밝히실 때

13세기 프랑스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기사가 어린 아들을 사냥개에게 맡기고 외출했습니다. 돌아와 보니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고 요람은 뒤집혀 있었으며, 개의 입에는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기사는 개가 아들을 해쳤다고 생각하여 그 자리에서 개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요람 아래에서 무사한 아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옆에는 개에게 물려 죽은 커다란 뱀이 있었습니다.
개가 아기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아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기사가 본 것은 틀리지 않았습니다.집은 어질러져 있었고 개의 입에는 정말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본 것을 잘못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민수기 22장의 발람도 비슷한 일을 경험합니다.
발람이 길을 가는데 그의 나귀가 갑자기 길을 벗어납니다. 발람은 말을 듣지 않는 나귀에게 화를 내며 때렸습니다.
길이 좁아지자 나귀는 다시 몸을 피했고 발람의 발이 담에 부딪혔습니다. 발람은 또 나귀를 때렸습니다.
마침내 나귀가 길에 주저앉자 발람은 더욱 화를 내며 세 번째로 때렸습니다.
발람의 눈에는 나귀가 고집을 부리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나귀가 보고 있던 것을 발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길 앞에는 칼을 든 여호와의 사자가 서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선지자인 발람보다 나귀가 먼저 하나님의 사자를 보았습니다.
마침내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민수기 22:31)
그제야 발람은 자신이 보지 못했던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가지고 쉽게 판단합니다.
“저 사람이 왜 저러지?”
“왜 일이 이렇게 꼬이지?”
“왜 하나님께서 내 길을 막으시는 걸까?”
그래서 화를 내기도 하고 사람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일 수도 있고, 내가 불편하게 생각했던 사람이 오히려 나를 돕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나를 멈추게 하시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상황을 바꾸어 주십시오”라는 기도와 함께,
“하나님, 제가 보아야 할 것을 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함께 읽는 시편 146편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물론 육체적인 눈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지만, 우리의 영적인 눈도 하나님께서 밝혀 주셔야 합니다.
또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에게 보이셨다고 증언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눈을 현재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게 하고, 죽음을 넘어 부활과 영원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열심히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계속 살피는 것도 중요합니다.

발람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서 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혹시 나는 지금 내가 옳다고 확신하면서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그리고
“최근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사건을 통해 내 길을 막으셨는데, 나는 그것을 단순히 방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실 때에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계획을 수정해야 하며,누군가에게 사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내가 항상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 주실 때 기꺼이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기도해 봅시다.
“주님,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게 하시고, 주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을 보게 하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밝히실 때 겸손히 듣고 순종하며 방향을 수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도 >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제가 보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소서.
감정과 선입견으로 사람과 상황을 쉽게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소서.
때로 제 길을 막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일 수 있음을 믿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고집을 내려놓고 멈출 수 있는 겸손을 주소서.
제가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을 때 인정하고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믿음과 용기도 주옵소서.
오늘도 제 눈을 밝혀 주셔서 주님의 뜻을 보고, 듣고,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9/04/2026

오늘의 양식 묵상과 나눔
2026년 9월 4일 금요일

성경읽기 : 시편 143–145편 / 고린도전서 14:21–40
찬송가 : 420장(통 212장)
오늘의 말씀 : 히브리서 12:1–7, 10, 14 [개역개정]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NIV]
1. Therefore, since we are surrounded by such a great cloud of witnesses, let us throw off everything that hinders and the sin that so easily entangles, and let us run with perseverance the race marked out for us.
2.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scorning its shame,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3. Consider him who endured such opposition from sinful men, so that you will not grow weary and lose heart.
4. In your struggle against sin, you have not yet resisted to the point of shedding your blood.
5. And you have forgotten that word of encouragement that addresses you as sons: "My son, do not make light of the Lord's discipline, and do not lose heart when he rebukes you,
6. because the Lord disciplines those he loves, and he punishes everyone he accepts as a son."
7. Endure hardship as discipline; God is treating you as sons. For what son is not disciplined by his father?
10. Our fathers disciplined us for a little while as they thought best; but God disciplines us for our good, that we may share in his holiness.
14. Make every effort to live in peace with all men and to be holy; without holiness no one will see the Lord.

오늘의 성구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브리서 12:1)

>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알림이 뜹니다.
“정크 파일이 저장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임시 파일과 오래된 데이터들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저장할 공간이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의 양식 저자도 이런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휴대폰의 정크 파일을 정리하고 나면 사랑하는 딸의 수영 경기와 같은 정말 중요한 순간을 충분히 담을 공간이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혼에도 이와 비슷한 “정크 파일”이 쌓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은 말씀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성경이 단지 죄만 버리라고 하지 않고 “모든 무거운 것”도 벗어버리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죄는 분명히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죄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믿음을 무겁게 만들고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나친 염려,사람에 대한 미움,상처받은 기억,끊임없는 비교,인정받고 싶은 욕망,지나친 욕심과 집착,
이런 것들이 마음속에 계속 쌓이면 영혼의 공간을 차지하게 됩니다.
마치 휴대폰의 저장 공간이 가득 찬 것처럼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감사와 기쁨을 누릴 공간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경주에 비유합니다.
달리기 선수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뛰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려면 불필요한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경은 바로 다음 절에서 답을 줍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서 12:2)
정크 파일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마음만 계속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가 보입니다.
내 자존심보다 사랑이 중요하고,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며,붙잡고 있는 미움보다 용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함께 읽는 시편 143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것이 영혼을 정리하는 좋은 기준입니다.
“이 생각과 습관과 관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방해하는가?”
이 질문을 해보면 우리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조금 더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바울은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해, 그리고 질서 있게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린도전서 14:40)
우리 마음에도 질서가 필요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고, 정말 중요한 하나님과 사람과 사랑이 뒤로 밀려난다면 영적인 정리가 필요합니다.
자, 이제 오늘 나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내 마음의 저장 공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걱정입니까?미움입니까?욕심입니까?비교입니까?과거의 상처입니까?
그리고 또 하나 질문해 볼까요?
“이것이 내가 예수님을 더 잘 따라가도록 돕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내려놓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물론 휴대폰의 파일처럼 버튼 하나를 눌러 마음의 상처와 습관을 즉시 삭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며 하나씩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용서해야 할 것은 용서하고,회개해야 할 것은 회개하고,끊어야 할 것은 끊으며,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은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지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사랑과 평안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짐을 하나씩 내려놓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 걸음 더 달려갑시다.

< 기도 >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제 마음속에 쌓여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소서.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버리게 하시고, 죄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불필요한 걱정과 미움과 욕심도 내려놓게 하소서.
제 힘만으로 마음을 정리하려 하지 않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의 뜻을 행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내려놓고, 제 마음을 말씀과 사랑과 감사와 평안으로 채워 주옵소서.
오늘도 가벼운 마음으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9/03/2026

오늘의 양식 묵상과 나눔
2026년 9월 3일 목요일

성경읽기: 시편 140–142편 / 고린도전서 14:1–20
오늘의 말씀: 신명기 10:12–15 [개역개정]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Deuteronomy 10:12–15 [NIV]
12. And now, O Israel, what does the LORD your God ask of you but to fear the LORD your God, to walk in all his ways, to love him, to ser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13. and to observe the LORD's commands and decrees that I am giving you today for your own good?
14. To the LORD your God belong the heavens, even the highest heavens, the earth and everything in it.
15. Yet the LORD set his affection on your forefathers and loved them, and he chose you, their descendants, above all the nations, as it is today.

찬송가: 28장(통 28장)
오늘의 성구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신명기 10:12)

>

필리핀 시에라 마드레 산맥의 일롱고트 부족 출신인 타니탄은 예수님을 믿기 전 사람을 죽이는 헤드헌팅 문화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죽는 것은 두려웠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두렵고,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 그의 두려움의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이전에는 죽음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것이 더 두려워졌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묻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가장 먼저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가는 공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경외는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시고 크신 분인지 알기 때문에 그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사랑과 존경, 두려움이 함께 있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삶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모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즉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단지 마음속으로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라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경외는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정말 크게 보는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기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면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손해를 보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이 우리의 선택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다른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어떻게 보실까?”
이 질문이 우리의 삶을 바꿉니다.
오늘 함께 읽는 시편 141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말 한마디도 함부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과 마음을 아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바울은 교회 안에서 은사를 사용할 때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것을 중요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예배도, 말도, 은사도 결국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세우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주일예배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돈을 사용할 때에도,사람과 대화할 때에도,혼자 있을 때에도,누군가에게 화가 날 때에도,아무도 모르는 선택을 할 때에도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한 번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나님보다 무엇을 더 두려워하고 있는가?”
사람의 평가일까요?경제적인 손해일까요?실패일까요?미래에 대한 불안일까요?
그리고 또 하나 물어봅시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오늘 내가 순종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끊어야 할 습관이 있을 수도 있고,정직하게 바로잡아야 할 일이 있을 수도 있으며,미루고 있던 섬김을 시작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게 합니다.
사람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죽음까지도 넘어서는 담대함을 줍니다.
타니탄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자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작아졌습니다.
오늘도 사람의 눈보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갑시다.
하나님을 크게 볼수록 세상의 두려움은 작아집니다.

< 기도 >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주님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마음 깊이 경외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사람의 시선과 세상의 평가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하시고,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실제적인 순종으로 나타나게 하소서.
우리의 말과 생각과 선택을 지켜 주시며,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게 하소서.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더욱 담대하고 정직하게 살아가게 하시고,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높임 받으시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9/02/2026

오늘의 양식 묵상과 나눔
2026년 9월 2일 수요일

성경읽기 : 시편 137–139편 / 고린도전서 13장
찬송가 : 370장(통 455장)
오늘의 말씀 : 고린도후서 4:7–18 [개역개정]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2 CORINTHIANS 4:7-18 [NIV]
7. But we have this treasure in jars of clay to show that this all-surpassing power is from God and not from us.
8. We are hard pressed on every side, but not crushed; perplexed, but not in despair;
9. persecuted, but not abandoned; struck down, but not destroyed.
10. We always carry around in our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revealed in our body.
11. For we who are alive are always being given over to death for Jesus' sake, so that his life may be revealed in our mortal body.
12. So then, death is at work in us, but life is at work in you.
13. It is written: "I believed; therefore I have spoken."With that same spirit of faith we also believe and therefore speak,
14. because we know that the one who raised the Lord Jesus from the dead will also raise us with Jesus and present us with you in his presence.
15. All this is for your benefit, so that the grace that is reaching more and more people may cause thanksgiving to overflow to the glory of God.
16.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17. For our light and momentary troubles are achieving for us an eternal glory that far outweighs them all.
18. So we fix our eyes not on what is seen, but on what is unseen. For what is seen is temporary, but what is unseen is eternal.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고린도후서 4:16)

오늘의 양식 저자는 스위스로 여행을 떠나면서 눈 덮인 알프스와 아름다운 호수, 그림 같은 풍경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취리히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복잡하고 단조로운 고속도로를 지나야 했고, 숙소에 가까워지자 위험한 비포장도로를 올라가야 했습니다. 도착해서도 무거운 여행가방을 들고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했습니다.
지치고 실망한 채 테라스에 나갔을 때 비로소 눈앞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푸른 루체른 호수 위로 웅장한 알프스 산맥이 솟아 있었고, 작은 마을들의 불빛이 반딧불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고생을 하고 올라올 만한 가치가 있었구나.”
우리의 인생도 때로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 길이 조금 더 편해지고 문제가 쉽게 풀릴 것이라고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는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몸이 아프기도 하고,경제적인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고,가족이나 사람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며,기도해도 상황이 좀처럼 달라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바울도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린도후서 4:8)
바울에게 믿음은 고난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은 고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는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17절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현재의 고난이 가볍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 그 고통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현재의 고난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영광을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우리는 쉽게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고린도후서 4:18)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지금은 거칠고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지금 보는 것보다 훨씬 크고 아름답습니다.
오늘 함께 읽는 시편 139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험한 길을 걸을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목적지에서만 기다리고 계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길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함께 읽는 고린도전서 13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난의 길을 지나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힘들다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낙심했다고 섬김을 포기하지 않으며,앞이 보이지 않아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붙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험한 길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눈앞의 어려움만 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고 있는가?”
지금 걷는 길이 우리가 원했던 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가파르고, 때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이 길이 마지막은 아닙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우리는 지금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뜻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에는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이 모든 길을 지나올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낙심하지 맙시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며 한 걸음 더 걸어갑시다.

<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삶의 길이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낙심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눈앞의 문제만 바라보지 않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과 장차 나타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게 하소서.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소망을 붙들며,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주님과 함께 한 걸음씩 걸어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Address

4480 Peachtree Corners Circle
Norcross, GA
30092

Opening Hours

Friday 8pm - 9:30pm
Sunday 11am - 2pm

Telephone

(404) 579-4570

Website

Alerts

Be the first to know and let us send you an email when 아틀란타 지구촌교회 Global Mission Church of Atlanta posts news and promotions.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used for any other purpose, and you can unsubscribe at any time.

Contact The Place Of Worship

Send a message to 아틀란타 지구촌교회 Global Mission Church of Atlanta:

Shortcuts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