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6/2026
0607 목회서신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라고 부릅니다. 예전의 사회가 금지와 명령으로 사람을 억압했다면, 오늘의 사회는 자유와 성취라는 이름으로 우리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붙이게 합니다. 우리는 누가 강제로 시키지 않아도 더 생산적이어야 하고, 더 매력적이어야 하고, 더 많은 정보를 알아야 하며, 더 빨리 반응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 결과 인간은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성과주체가 됩니다.
그는 또 “리추얼의 종말”에서 현대인이 예식과 반복과 상징의 세계를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리추얼(종교 의식)은 단순한 형식이 아닙니다. 예배, 기도, 절기, 침묵, 식탁, 인사, 애도와 축복의 언어는 인간을 자기중심성에서 꺼내어 공동체와 타자와 초월 앞에 세웁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모든 것을 정보와 효율과 표현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예식은 낡은 것이 되고, 침묵은 불편한 것이 되며, 기다림은 비효율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삶은 편리해졌지만 깊이를 잃었고, 소통은 많아졌지만 만남은 빈약해졌습니다.
시몬 베유는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신비주의적 사상가로, 노동자와 고통받는 이들의 삶 속으로 직접 들어가며 ‘주의’, ‘기다림’, ‘불행’, ‘은총’을 깊이 사유한 인물입니다. 최근 한병철은 “신에 관하여—시몬 베유와의 대화”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종교의 위기를 말합니다. 그는 종교의 위기를 단지 신앙 인구의 감소나 제도의 쇠퇴로만 보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깊은 문제는 “주의(注意, 어떤 한 곳이나 일에 관심을 집중하여 기울임)의 위기”로 진단합니다. “종교의 위기는 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보기와 듣기의 위기인 것이다. 신은 죽지 않았다. 과거에 신은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냈는데, 신의 드러남을 마주할 인간이 죽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이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마주할 눈과 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성경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깨어 있으라.” “주의하라.” 신앙은 단지 어떤 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고통받는 이웃의 얼굴을 바라보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며, 내 안의 욕망과 두려움을 성찰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자주 정반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보라고 하신 것은 외면하고, 보지 않아도 될 것에는 눈을 빼앗깁니다. 하나님이 들으라고 하신 탄식과 부르짖음에는 무심하면서 세상의 부동산에 주의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라 하신 은혜와 약속은 잊어버리고, 하찮게 여기라 하신 허영과 비교와 평판에는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회복은 주의의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예배는 우리의 흩어진 주의를 하나님께 다시 모으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소음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마음의 방향을 돌리는 일입니다. 안식은 생산성의 노예가 된 우리에게 “너는 성과가 아니라 은혜로 사는 존재”라고 선언하는 거룩한 멈춤입니다.
우리는 신, 곧 하나님이 주의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외면하고, 하찮게 여기라고 말씀하신 것들에 너무나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