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 예수 One Way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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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 VA, MD)하늘비젼교회는 워싱턴지역 한인교회협의회(The Council of Korean Churches in the GW)속한 교회로서 복음적 영성으로 현재까지 예배(Pointing Up), 교육(Pointing In),나눔과 섬김(Pointing Out)을 실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온전히 따르는 Glocal(Global+Local)Impact Ministry 선교적 교회입니다.

[2026.6.17,수 /말씀 묵상][Wednesday, June 17, 2026 / Scripture Meditation]"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06/17/2026

[2026.6.17,수 /말씀 묵상]
[Wednesday, June 17, 2026 / Scripture Meditation]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19:8)

세상 말은 자주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 없고, 흔들림 없으며, 정직하기 때문에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말씀은 언제나 진리며, 바른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은 힘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상한 마음을 회복시키고 영혼에 참된 기쁨을 주십니다.

샬롬! 오늘도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복된날 되시기를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The precepts of the LORD are right, giving joy to the heart. The commands of the LORD are radiant, giving light to the eyes." (Psalm 19:8)

While the words of the world often change, God’s Word is unerring, steadfast, and upright, bringing joy to the heart. His Word is always the truth and guides us along the right path.

The joy of walking with God is a joy that does not fade, even in difficult times. God’s Word restores a broken heart and fills the soul with true joy.

Shalom! I pray and bless you to have a truly blessed day—overflowing with the joy and peace that God gives—as you love and obey His Word. ^^


MARKERS WORSHIP마커스 목요예배 실황 [18.03.01]-" 말씀하시면 "-* Worship Leader : 심종호* Inst.- E.Guitar : 임선호 / B.Guitar : 곽노연- Piano : 권미성 / Synthesizer : 임세라- Drums : 김다니엘...

평안을 전합니다.*2026 워싱탄 통일선교사 세계대회* 참가신청서.Application for the *2026 Washington Global Conference for Unification Missionaries...
06/17/2026

평안을 전합니다.

*2026 워싱탄 통일선교사 세계대회* 참가신청서.

Application for the *2026 Washington Global Conference for Unification Missionaries*

워싱턴북한선교회 주최 2026 통일선교사 세계대회 일시: 2026년 7월 10일(금)~13일(월) 장소: 열린문 장로교회 & 버지니아 크리스챤대학

JESUS The Light of Nation
06/17/2026

JESUS
The Light of Nation

질투하시는 하나님 포기하지 않는 사랑신명기(Deutronomy)4:1-40"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
06/17/2026

질투하시는 하나님
포기하지 않는 사랑

신명기(Deutronomy)
4:1-40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신 4:40)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이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증언합니다. 이 표현은 낯설고 불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질투는 인간의 불안한 소유욕이나 병든 집착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상에게 자기 백성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태우시는 분이지만, 우상에게 묶인 인간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본문의 깊은 역설입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차가운 분노가 아니라, 뜨거운 사랑입니다.

“여호와 네 하나님은 삼키는 불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신 4:24)

“소멸하는 불”이란 하나님이 폭력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불은 태우는 동시에 정결하게 합니다. 죄를 태우는 심판의 불이면서, 동시에 새롭게 하는 정화의 불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부르시고, 새롭게 하시는 살아계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 앞에서 신앙은 존재 전체의 재정비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불 앞에서는 거짓된 우상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언약적 사랑이 지닌 배타성입니다. 참된 사랑은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침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거짓 우상에게 마음을 넘기는 것을 묵과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투는 억압이 아니라 회복의 열정입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직 사랑하신다는 뜻인 것입니다. 버려진 관계에는 질투도 없습니다. 완전한 무관심보다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신앙은 보이는 형상을 붙드는 신앙이 아니라, 들려오는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29-31절은 고통과 환난의 자리에서도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신 4:29-31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이것이 복음의 씨앗입니다.
우상은 크신 하나님을 인간의 욕망에 맞게 축소합니다. 오늘 우리의 우상은 금송아지가 아닐 수 있습니다. 성공, 돈, 인기, 이념, 권력, 심지어 종교적 업적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상은 늘 “나를 가지면 네가 안전해질 것”이라 속삭입니다. 우상은 편안한 감옥이고, 하나님은 불편한 듯하지만 참된 자유인 것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질투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우상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십니다. 동시에 죄인을 포기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태우시되, 우상에게 묶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자기희생적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질투가 포기하지 않는 사랑임을 증언하는 표징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두려운 말씀이지만 동시에 복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중심, 사랑의 중심, 예배의 중심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는다.
우리는 무엇을 잃을까 가장 두려워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얻으면 살 것 같다고 믿는가?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우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사랑 앞에서 우상은 무너지고, 우리 영혼은 다시 살아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 마음의 숨은 우상을 보게 하소서.
거짓 안전과 헛된 의지를 내려놓게 하소서.

소멸하는 불 앞에서 우리 영혼을 정결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질투를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깨닫게 하소서.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보게 하소서.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며 자유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youtu.be/aZpchc-6bEE?is=3jcG4bfYdRTz32X4

Best of all in the world is being with GOD.
-John Wesley(1703-1791)-

Photos by Gapeong chapel Light of Life.

우리들의 사랑이야기 아가(Song of Songs)8:1-14 아가서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아가’는 한자로 雅歌(맑을 아, 노래 가)로 쓰며 ‘지고하고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Song o...
06/16/2026

우리들의 사랑이야기

아가(Song of Songs)
8:1-14

아가서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아가’는 한자로 雅歌(맑을 아, 노래 가)로 쓰며 ‘지고하고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Song of Songs’로 ‘노래 중의 노래’ 즉 최상의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은 아가서를 신랑 여호와 하나님께서 신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이야기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유월절에 읽습니다. 우리는 신랑 예수께서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는 사랑 이야기로 읽습니다.

아가서는 단순한 ’남녀상열지사‘를 뛰어 넘습니다. 신랑인 솔로몬은 ‘왕’인데, 그가 포도원에서 일하며 얼굴이 검게 탄 ‘시골처녀’ 술람미 여인과는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를 상징합니다. ‘죽음 같이 강한’ 그 사랑 때문에 병이 나고, 그 사랑으로 목숨까지 아낌없이 주신 ‘십자가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사랑을 비유로 설명합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6절)

고대 근동 지역에서 도장은 소유에 대한 확인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장은 항상 목이나 팔에 매달거나 반지처럼 낄 수 있는 형태로 지녔습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6절)

‘도장 같다’는 것은 “나는 당신 것이요 당신은 내 것입니다.”라는 소유의 고백입니다. 이는 완전하고도 신비한 ‘연합’을 상징합니다. 또한 ‘죽음 같이 강하다’고 비유합니다.

왜 사랑을 죽음에 비유했을까? 이것은 사랑의 위력, 곧 사랑의 힘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가장 큰 위력과 힘을 발휘하는 것 옆에 사랑을 갖다 놓고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삶의 끝자락에 무지막지한 힘으로 버티고 서있는 이 죽음의 위력을 보기 좋게 끝장내버리는 더 강한 힘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두려움을, 죽음을 내어 쫓는다고 말씀합니다.

어느 여성잡지에 희귀병에 걸렸던 한 자매의 사랑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한 여름에도 너무 추워 이가 딱딱 부딪히도록 떨어야 했던 병입니다. 그래서 한 여름에 난로를 피워놓아야만 했습니다.

밍크코트를 두 벌씩 걸치고 앉아있어야 하는 희한한 병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잡지에 실린 이유는 남편의 지극정성의 보살핌으로 그 병이 나았기 때문입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남편은 오랜 기간 아내와 함께 펄펄 끓는 방에서 한 여름을 지냈습니다. 아내가 남편은 나가있으라 해도, 남편이 끝까지 아내와 함께 하겠다고 하여 그 고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약도 먹었지만, 약이 병을 낫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매는 고아로 자라서 사랑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사랑이 너무 컸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받아보지 못했던 사랑을 받으니 몸이 그 사랑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자매의 마음에는 ‘한기’가 가득 했었던 모양입니다. 그 차가움은 마치 죽음과 같았습니다.

그러던 자매가 남편의 사랑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그 ’한기‘가 자신 밖으로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차가움이 다 빠져나가자 그 안에 따듯한 사랑이 피어오르게 된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이 그때까지 갇혀있었던 아내의 사랑을 솟아오르게 한 것입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었습니다. 그 자매는 남편을 위해서 자신도 목숨을 바칠 수 있다면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맺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사실은 우리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인생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죽음의 힘을 무용지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심장에 이 사랑이 깊이 새겨지기 원합니다. 그 사랑에 감읍하여 이제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쓰기 원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웃게 하고, 그 사랑이 우리를 울게 하는 살아있는 이야기입니다.

https://youtu.be/ZDLg85ebkP8?is=FJgIy4tww2hpQ4NH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주님의 사랑의 편지임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도 주님과의 사랑 이야기를
매일 써내려 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기도합니다. 아멘.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아(EunK Chang)

어느날 문득 당신이 찾아온 푸르른 저 숲 속에 평온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당신이 지나온 이 거리는 언제나 낯설게...

쉼은 거룩한 저항신명기 Deutronomy (5:12-15)우리는 스마트폰, 인공지능, 자동화 기술을 가졌지만 오히려 더 바빠졌습니다. 시간을 아끼는 도구는 늘었는데, 마음의 여백은 줄어들었습니다. 현대인의 피로는 ...
06/15/2026

쉼은 거룩한 저항

신명기 Deutronomy
(5:12-15)

우리는 스마트폰, 인공지능, 자동화 기술을 가졌지만 오히려 더 바빠졌습니다. 시간을 아끼는 도구는 늘었는데, 마음의 여백은 줄어들었습니다.

현대인의 피로는 육체의 피곤이 아니라 존재의 피로입니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쉬어도 불안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올라옵니다. 이것은 단순한 몸의 피로가 아니라 "나는 아직 쓸모있는 사람인가?"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피로입니다.

신명기 5장의 안식일 계명은 단순한 휴식 명령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의 노예를 끊고 하나님의 자유 안으로 들어오라는 거룩한 초대입니다.

1. 기억하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신명기 5장의 안식일 계명은 출애굽의 기억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출애굽기 20장의 안식일 계명(8-11절)이 하나님의 창조와 일곱째 날의 쉼에 근거한다면, 신명기 5장의 안식일 계명은 애굽에서의 종살이와 하나님의 해방에 근거한 것입니다. 전자가 창조의 리듬이라면, 후자는 구원의 기억입니다.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해방자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인 것입니다.

1. 멈추라
“안식”(샤바트)은 본래 “멈추다, 그치다”라는 뜻입니다. 신명기 5장은 이 멈춤을 주인에게만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들과 딸, 남종과 여종, 소와 나귀와 모든 가축, 성문 안에 머무는 나그네까지 “너 같이” 쉬어야 한다(14절)는 것입니다. 주인이 누리는 쉼을 종도 똑같이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개인 경건의 규례를 넘어 사회적 해방의 계명입니다.

그래서 쉼은 거룩한 저항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멈추면 뒤처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멈추어야 네가 누구인지 안다." 멈춤은 게으름이 아니라 성찰입니다.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자유의 선언입니다. 안식일은 인간을 기계로 만드는 세계에 맞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외치는 시간의 예배입니다.

1. 거룩하게 하라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12절)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시간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소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시간은 하나님께 받은 선물입니다. 안식일은 내가 시간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신앙 행위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인간다워지는 시간입니다. 예배하고, 기억하고, 감사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의 리듬에 다시 맞추는 일입니다. 쉼은 삶의 빈칸이 아니라 은혜가 들어오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안식일의 주인”(막 2:28)이라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된 안식 그 자체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초대는 안식일 계명의 성취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자기증명과 자기구원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안식은 거룩한 하나님의 브레이크입니다.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복음의 고백입니다.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자유입니다. 안식은 게으른 자의 변명이 아니라, 자유함을 얻은 백성의 거룩한 저항인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니 쉬어라. 그리고 자유인으로 살아라." 안식일은 창조의 기쁨을 회복하고, 구원의 기억을 새기는 날입니다.

주님을 경배함으로 참된 자유를 배우고 참된 쉼을 누리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기도문

쉼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성과와 비교와 불안의 노예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해방된 존재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가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멈춤 속에서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하게 하소서.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로서
몸과 마음이 하늘의 평강과 쉼, 자유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By JiChul Kim
https://youtu.be/4qFEbiLKGD8?si=LDxk5zyUeIOd1MG3

하늘연가 은빛 금빛 색색의 실로주사랑의 세마포를 짭니다 주의 능력 힘입어 매일의 호흡속에 주의 사랑...

발품행전 행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좋은 생...
06/14/2026

발품행전

행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좋은 생각이란 잡지에 중세 신성로마 제국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제2차 십자군 전쟁을 지휘한 ‘콘라트 3세’때 스토리입니다.

콘라트 3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등극한 직후 골치 썩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후들 가운데 하나가 그의 황제 등극을 심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입니다.

자신에게 저항하는 게르프 성의 제후 ‘바바리아’를 굴복시키기 위해 그는 군대를 이끌고 진격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끝날 것으로 생각했던 싸움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치열한 전투와 지리한 대치 상황이 반복해서 이어졌습니다. 결국 완전 포위된 게르프 성은 외부와 철저히 고립되었고 성에 마실 물과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콘라트 3세는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힌 바바리아를 쉽게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항복에 성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성 안의 모든 남자는 이제부터 우리의 포로다. 다만 여자들에게는 자유를 줄 터이니 각자 자신이 들 수 있을 만큼의 짐만 들고 성을 나가도 좋다.”

황제의 명령이 전해지고 굳게 닫혔던 성문이 스르르 열렸지만 여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 여자들이 우르르 성 밖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콘라트 3세는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즉 여자들 모두 유난히 더디게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콘라트 3세는 직접 말을 타고 성문 근처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습니다. 성문 밖으로 힘겹게 걸어 나오는 여자들의 등엔 모두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업혀 있었습니다. 많은 여자들이 커다란 남자를 업고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은 우습기까지 했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낙뿐만 아니라 제후의 부인까지 남편 바바리아를 업고 나오는 모습에 그냥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들의 지혜로운 사랑에 감동을 받은 콘라트 3세는 결국 모든 남자들도 풀어 주었습니다.

저런 아내들을 두고 있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남편들은 아내에게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갈까? 또 아내가 얼마나 예뻐 보일까? 무거운 남편을 업고 힘겹게 걷는 아내들의 ‘발’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자신들의 자유를 함께 공유하기 위해 무거운 남편을 업고 걷고, 뛰는 발이 사도바울이 말씀한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롬10:15)이 아닐까?

사도행전을 많은 경우에 성령께서 행하신 일을 기록한 책이라는 의미에서 ‘성령 행전’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헬라어 타이틀은 ‘Praxeis’(프락세이스)로 사도들의 acts 또는 deeds(행함)을 기록한 책입니다.

요즘 많이 쓰이는 말로 사도들이 성령을 받은 후 열심히 ’발품‘을 팔았던 것을 기록한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발품'은 순수한 우리말로 ’걸어다니는 수고'를 의미합니다.

‘발품을 팔다'는 어떤 일을 위해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노력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간과하면 안되는 것은 사도들의 열심입니다. 사도들이 열심히 발품을 팔았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 멀고 광활한 지역들을 걸어다니며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행전을 ’발품행전’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사도행전에는 일일이 직접 찾아 다녔던 사도들의 열심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그냥 기도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발품‘을 팔았습니다.

멀리 다소까지 직접 가서 사울을 불러와 공동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 결과로 제자들이 양육되고 그들이 처음으로 ’크리스티아누스‘(그리스도에 속한 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후에도 그들의 ’발품행전‘은 이어집니다. 안디옥교회는 선교기지가 되었고 소아시아와 마게도니아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는 ’발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전도와 선교는 어떻습니까? 혹시 ’발품'을 주저하거나 남의 일로만 여기지는 않습니까?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발품팔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큰 명제는 ‘오라’이지만, 신약의 명제는 ‘가라’인 것입니다. 이제는 걸어다니는 수고 ’발품행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걸어다니는 수고를
주저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발품을 통해
성령의 나타나심을 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8.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시편 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일상의 삶속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막 1:17)Come, follow me, Jesus said, and I will send you...
06/12/2026

일상의 삶속으로
찾아오시는 주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막 1:17)
Come, follow me, Jesus said, and I will send you out to fish for people.(Mark 1:17)

예수님의 공생애는 사람들을 부르시는 일로 시작됐습니다. 주님은 화려한 배경이나 특별한 능력을 갖춘 이들이 아니라 갈릴리 바닷가에서 일상의 삶가운데 묵묵히 그물을 던지던 평범한 어부들을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는 말씀 앞에 제자들은 그물과 배를 내려놓고 곧바로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의 순종은 복잡한 계산보다 믿음이 앞선 걸음이었습니다. 물고기를 잡던 평범한 일상은 주님 안에서 사람을 살리는 사명으로 새롭게 변화됐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찾아옵니다. 익숙한 자리를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지만 주님은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부르셔서 더 깊은 은혜와 생명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다듬으셔서 들어 사용하십니다.

나의 작은 삶을 통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면...작은 것에도 주신 것에 감사하며, 그 감사를 나누며 살아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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