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 예수 One Way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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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하늘비젼교회는 워싱턴지역 한인교회협의회(The Council of Korean Churches in the GW)속한 교회로서 2017년 6월 장재웅목사님께서 담임으로 부임이후 지금까지 복음적 영성으로 현재까지 예배(Pointing Up), 교육(Pointing In),나눔과 섬김(Pointing Out)을 실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온전히 따르는 Glocal(Global+Local)Impact Ministry 선교적 교회입니다.

온유한 자의 기도는 역사합니다시편 76:9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셀라)1950년 6·25 전쟁 초기, 북한군의 기습으로 한 달 만에 대구와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
09/08/2026

온유한 자의 기도는 역사합니다

시편 76:9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셀라)

1950년 6·25 전쟁 초기, 북한군의 기습으로 한 달 만에 대구와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가 함락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낙동강 전선이라는 마지막 보루만 남겨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앗수르의 공격으로 북이스라엘이 초토화 되고 남은 것은 남유다의 예루살렘 성 하나였던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이 위급 상황에 전국의 ‘피난민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부산 초량교회에 모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의 협박 편지를 성전에 펼쳐놓고 기도했던 것처럼, 그들은 국가 위기 상황에 통곡하며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건져주옵소서."

국군과 UN군의 힘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되던 그 순간, 기적적으로 낙동강 전선이 사수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전세가 단번에 역전되었습니다.

당시 군사 전문가들도 무모하다고 했던 작전이 성공한 것은, 시편76:5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한 부산 초량교회의 기적이었습니다. “마음이 강한 자도 탈취를 당하여 잠을 자고 장사들도 자기 손을 놀릴 수 없도다"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갔지만, 이 사건을 부산 초량교회에 모인 성도들의 기도 응답으로, 대적의 손을 묶으시고 민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개입이 역사한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 76편의 역사적 배경은 유다 왕 히스기야 시절,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하나님께서 단번에 그들을 멸하신 사건입니다.

기원전 8세기 앗수르는 티그리스강 상류인 니느웨(현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시작해 철제 무기와 강력한 기마대를 앞세워 사방으로 영토를 넓히던 최강의 제국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의 시리아에 위치하여 이스라엘의 방파제 역할을 하던 아람을 패퇴시키고, 북이스라엘 마저 초토화 시켜버립니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후, 쓴 정책은 매우 계산적이고 잔인했습니다.

피정복민의 민족정신을 없애기 위해 사마리아 주민들을 다른 나라로 흩어버리고, 바벨론 등 다른 지역 사람들을 사마리아에 와서 살게 합니다. 이로 인해 생긴 혼혈 후손들이 바로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들을 이방인 취급하며 멸시했던 역사적 배경이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북이스라엘을 삼킨 앗수르는 여세를 몰아 남유다까지 쳐들어와 예루살렘성을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이때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이사야 선지는 예언을 했습니다. 그 결과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이 죽임을 당하면서 예루살렘은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됩니다.

아삽은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실 때, 온 땅은 두려워하며 잠잠해질 것이다.” 아삽이 말씀하는 ‘온유한 자’는 단순히 성격이 착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아닙니다.

’온유한 자'는 히브리어 ‘아나브, עָנָו’로, ’낮아진 자', '압제와 고난을 당하는 자'를 뜻합니다. 세상의 강포한 권력이나 폭력 앞에서 스스로 피를 흘려 복수하거나 혈기를 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자의 구원은 "내 혈기와 무기를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나의 재판장이자 전사가 되어 대신 싸워주신다"는 강력한 공의의 선포입니다. 억울함 속에서 침묵할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한 집사님이 절친했던 지인에게 철저하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 지인은 집사님의 회사 기술과 거래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오히려 집사님이 공금을 횡령했다며 거짓 소문을 내고 법적 소송까지 걸어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등을 돌렸고, 억울함과 분노 때문에 밤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습니다. 당장이라도 똑같이 폭로전을 벌이고, 돈을 써서라도 상대를 처절하게 짓밟아주고 싶다는 혈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배시간에 시편 76편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 힘으로 복수하려는 혈기를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잠잠히 엎드리는 온유한 자를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말씀이 가슴을 때렸습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무기와 분노를 내려놓기로 결단했습니다. 법적인 절차는 차분히 밟되, 매일 새벽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 저는 힘이 없습니다. 주님이 재판장이 되어 주옵소서"라고 엎드렸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바보처럼 가만히 있으면 당한다"며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소송이 진행되던 중, 상대방 회사의 직원이 양심선언을 하며 지인이 저지른 모든 불법 장부와 모함의 증거를 법원에 제출한 것입니다.

이렇게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상대방은 무고죄와 사기 혐의로 법적 심판을 받게 되었고, 집사님의 회사는 억울함을 벗고 신용을 회복하여 이전보다 더 큰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집사님은 간증을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내 혈기로 싸우려 했다면 둘 다 파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 온유함으로 잠잠히 엎드렸을 때, 하늘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가장 정확한 때에 일어나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온유한 자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역사하십니다.

오 주님
우리의 혈기, 우리의 분함, 가슴에 맺힌 원한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소서
온유한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하소서

By Rev. Kenny 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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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2026

세상이 씌운 안경을 벗고

시편 17편 1~8절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안경을 쓰고 자신과 타인을 바라봅니다. 성적과 학력의 안경, 직책과 재산의 안경, 외모와 나이라는 안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숫자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성과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얼마나 쓸모 있는 존재인가?”

이러한 물음 속에서 실패를 겪거나 남들보다 뒤처질 때, 우리는 성취의 실패를 곧 존재 자체의 실패로 착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묻습니다.
‘나는 이제 별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닐까?’

그러나 시편 기자는 세상이 씌워준 안경을 벗어 던지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봅니다.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시편 17:8)

사실 시편 17편을 기록할 당시 기자는 평안한 상황에 있지 않았습니다. 원수들이 사방에서 그를 에워싸고 있는 위기 속에 있었습니다(시 17: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가치를 원수의 평가나 절망적인 현실에서 찾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시선 속에서 찾았습니다. 세상은 항상 “무엇을 이루었는가?”를 묻지만, 하나님은 먼저 “너는 나에게 누구인가?”를 물으십니다.

신앙이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내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진 존재임을 겸손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성취했기에 소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으로 바라보시기에 소중한 존재입니다.

시편 17장 8절의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라는 고백에서, 이 눈동자는 바로 하나님의 눈동자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어로 ‘눈동자(ishon)’는 ‘작은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눈을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볼 때, 검은 동공 속에 내 모습이 작게(비쳐)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멀리서 우리를 숫자로 계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의 눈동자에 내 작은 모습이 가득 비칠 만큼 우리를 가까이에서 바라보십니다.

또한 눈동자는 매우 작고 연약한 부위입니다. 작은 티끌 하나만 들어가도 쓰리고 아프며, 무언가 날아오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아 눈동자를 보호합니다. 여기에 바로 복음의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세심한 보호를 더욱 받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 역시 강해서 선택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들을 찾아내시고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다”(신 32:10)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던 광야의 백성이 하나님의 눈에는 가장 귀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어서 시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시편에서 하나님의 날개는 반복해서 ‘피난처’를 상징합니다(시 36:7, 57:1, 61:4). 이는 단순히 위험이 사라진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품 안에서 “나는 여기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깊은 평안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비바람과 폭풍이 없는 삶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요동치는 삶 속에서도 내가 숨을 하나님의 품이 있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품으려 하셨다고 탄식하셨습니다(마 23:37).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두 팔을 널리 벌리셨습니다. 시편 기자가 그토록 찾던 하나님의 날개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향해 펼쳐진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선언입니다.

“너는 나에게 이토록 소중한 존재란다.”

오늘도 세상은 우리에게 여러 안경을 씌우려 합니다. 성과의 안경, 비교의 안경, 타인의 평가라는 안경입니다.

그 안경들은 날마다 우리의 가치를 오르내리게 만들며 불안하게 합니다. 하지만 시편 17편은 그 안경을 벗고 하나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그분의 눈동자 속에는 작지만 소중한 내 모습이 비쳐 있습니다. 나는 강해서 소중한 것이 아니며, 성공했기에 사랑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눈에 담긴 존재이기에 소중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이 사실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나의 쓸모를 묻지만, 하나님은 나의 존재 자체를 품어주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길 아래에서, 그리고 그분의 따스한 날개 아래에서 살아가는 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세상이 씌워 준 안경으로 나의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주님의 눈동자처럼 소중하고 귀한 존재임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려 우리를 품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믿게 하시고, 오늘도 그 크신 사랑 안에서 담대하고 평안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통곡의 기도 시편(Psalms)74:1-22시74:22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주의 원통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동업이 쉽지 않습니다. 비즈니스를 하다가 동업자에게 철저하게 사기를 당...
09/02/2026

통곡의 기도

시편(Psalms)
74:1-22

시74:22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주의 원통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

동업이 쉽지 않습니다. 비즈니스를 하다가 동업자에게 철저하게 사기를 당하고 모든 재산을 날린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동업자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유유히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집사님을 무고죄로 고소하겠다며 협박했습니다. 분노로 잠을 못 이루던 집사님은 답답한 마음에 전화로 하소연하며 기도를 부탁합니다. 사연을 듣던 목사님의 마음도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이럴 땐 말씀 뿐이 없습니다. 말씀에서 답을 찾아봅시다.”하고 지혜문서인 시편과 잠언을 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지혜의 교훈인 ‘마스길’에는 억울한 일을 당한 이스라엘을 위한 지혜가 있습니다.

마스길로 분류된 시편 중에는 억울함, 고난, 배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토해내며 지혜를 구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단어의 뜻은 ‘교훈’이나 ‘지혜’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지혜는 평탄할 때 뿐만 아니라 극심한 억울함과 고통을 통과할 때 어떻게 믿음을 지키는가를 깨닫는 과정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 집사님이 시편의 마스길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리고 시편 74편 말씀에 눈이 갔습니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주의 원통’을 푸소서”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하고 영어 성경과 여러 성경을 대조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원통을 풀다'는 법정에서 "소송을 수행하다"라는 뜻임을 발견했습니다. 현대적인 의미는 “소송을 이기소서"입니다. 아삽은 세상의 부조리함과 대적들의 교만을 하늘 법정에 고발하고 있습니다.

공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악인을 심판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집사님은 이 말씀을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저주하고 칼을 갈면, 내 영혼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어차피 ‘이전투구’ 진흙탕 싸움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깨달음도 왔습니다.

집사님은 즉시 기도를 바꿨습니다. ”하나님, 내 억울함을 주님의 법정에 고발합니다. 주님이 이 소송을 이겨주소서. 제가 저 사람과 진흙탕 싸움을 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게 하소서.“

”이 억울한 재판을 하늘의 법정에 고소합니다. 주님의 공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소서." 집사님이 고소를 취하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 지 불과 몇 달 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상대방의 또 다른 대형 금융 범죄 장부가 검찰에 포착된 것입니다. 집사님이 손 하나 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고 구속된 것입니다.

집사님은 이 사건을 경험하고 이렇게 간증합니다. “내가 원수를 갚으려 미쳐있을 때 보다, 주님의 공의에 맡겼을 때 하나님이 가장 정확하고 깨끗하게 일하셨습니다.“

성전이 파괴된 것처럼 우리 삶의 기초가 흔들리고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질 때, 아삽은 시편 74편을 통해 우리에게 "낙심을 기도로 바꾸라"고 도전합니다. 회복을 구하는 기도로 바꾸고 하나님께 맡길 것을 권합니다.

현실에 답이 보이지 않을 때, 과거 내 삶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영적 침체를 이기는 열쇠입니다. 그 경험을 기억하고 믿고 맡기는 기도를 올리는 것입니다.

아삽은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주의 원통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내 억울함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져 원통한 마음을 풀어달라는 기도입니다.

지금 혹시 마음속에 억울함이나 풀리지 않는 원통함,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문제를 마주하고 계시나요?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아삽의 마스길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주의 원통함을 푸소서"라며 주님의 공의에 믿음으로 맡겨보십시오. 이는 인간의 복수심을 뛰어넘는 고백입니다. 모든 원한과 원통함을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드리는 영적 성숙을 이루는 기도입니다.

단순히 적이 망하기를 바라는 저주를 넘어, 무너진 영적 질서와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다시 세워지기를 원하는 간절한 열망을 주님께 기도로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통곡의 기도

통곡의 기도 하나님, 하나님, 나의 통곡의 기도를 들으셨나요하나님, 하나님, 나의 애통의 기도를 들으셨나요 사...

Prayer of LamentationPsalms(74:1-22)Psalm 74:22 “Arise, O God, and vindicate You; remember how the fool slanders You all...
09/02/2026

Prayer of Lamentation

Psalms(74:1-22)

Psalm 74:22 “Arise, O God, and vindicate You; remember how the fool slanders You all day long.”

Partnerships are not easy. There was a deacon who lost all his assets after being thoroughly defrauded by a business partner. That partner took advantage of loopholes in the law and slipped away unscathed.

Furthermore, he threatened to sue the deacon for false accusation. Unable to sleep due to anger, the deacon called to vent his frustrations and ask for prayer. The pastor, listening to his story, felt just as helpless.

“In times like this, the Word is the only answer. Let us find the answer in the Word,” he said, recommending the wisdom books of Psalms and Proverbs. In particular, the ‘Masquil,’ a collection of wisdom teachings, contains wisdom for Israel, who had suffered injustice.

Among the Psalms classified as Maskils, there are many passages in which people pour out their hearts to God and seek wisdom amidst grievances, suffering, betrayal, and desperate situations. The meaning of the word is "instruction" or "wisdom."

However, in the Bible, wisdom comes not only during smooth times but also from the process of realizing how to maintain faith when passing through extreme injustice and suffering. Upon hearing this, the Deacon looked up and read the Maskils of the Psalms.

Then his eyes fell upon the words of Psalm 74. "Arise, O God, and vindicate your grievances." He began to compare the English Bible with various other Bibles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is phrase.

He discovered that "vindicate" means "to conduct a lawsuit" in a court of law. The modern meaning is "win the lawsuit." Asaph is accusing the injustices of the world and the arrogance of his adversaries before the heavenly court.

He was requesting that God, the righteous Judge, personally judge the wicked. Upon realizing this message, the Deacon was jolted to reality. It was the guidance of the Holy Spirit. And he thought.

He realized that if he cursed that person and sharpened his sword, his soul would crumble and obscure the glory of God. He also realized that there was no chance of winning in a "wild, mudslinging" battle anyway.

The Deacon immediately changed his prayer. "God, I accuse my injustice before Your court. Please, Lord, win this lawsuit. Do not let me be pointed at by the world while fighting a mudslinging battle with that person."

"I accuse this unjust trial before the court of heaven. Show me that Your justice is alive." Just a few months after the Deacon withdrew the complaint and entrusted everything into God's hands, the situation unfolded in a completely unexpected place.

Another ledger of major financial crimes belonging to the opposing party was discovered by the prosecution. Even though the Deacon had not laid a hand on it, the opposing party was arrested and subjected to the severe judgment of the law.

Experiencing this event, the Deacon testifies as follows. “God worked most accurately and purely when I entrusted myself to the Lord’s justice, rather than when I was madly seeking revenge.”

When the foundations of our lives are shaken as if the temple were destroyed and God’s silence is prolonged, Asaph challenges us through Psalm 74 to “turn discouragement into prayer.” He encourages us to shift to prayers seeking restoration and to entrust everything to God.

When no answers are visible in reality, remembering God’s salvation and grace that worked in my life in the past is the key to overcoming spiritual stagnation. It is to remember those experiences and offer prayers of trust and entrustment.

Asaph cries out, “Arise, O God, and vindicate You; remember how the fool blasphemes You all day long.” It is a prayer asking for relief for a heart aggrieved by God’s name falling to the ground, rather than for my own grievances.

Are you currently facing a grievance, unresolved sorrow, or incomprehensible pain in your heart? Rather than trying to solve it with your own strength, engrave Asaph’s Maskil in your heart.

Try entrusting yourself to the Lord's justice with faith, saying, "Relieve my grievances, Lord." This is a confession that transcends human vengefulness. It is a prayer that achieves spiritual maturity by fully lifting up all resentment and grievances to God.

It goes beyond a mere curse wishing for the enemy's downfall; it is offering up to the Lord in prayer a fervent desire for the broken spiritual order and God's justice to be re-established on this earth.

Prayer of Lamentation
https://youtu.be/WRNd5LVc_Q8?si=o_bEwkAjIcyA5LUX

대규모 홍수로 네팔 북부 이웃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많은 이재민들이 통신 전기 단절 및 식수 부족 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절망에 빠진 네팔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해지도록 기도로 동참해 주세요. O...
09/02/2026

대규모 홍수로 네팔 북부 이웃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많은 이재민들이 통신 전기 단절 및 식수 부족 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절망에 빠진 네팔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해지도록 기도로 동참해 주세요.

Our neighbors in northern Nepal have lost their homes due to massive floods.

Many displaced people are facing threats to their survival due to cuts in communication and electricity, as well as a shortage of drinking water. Please join us in prayer so that the love of Christ may be conveyed to Nepal, which is in despair.

빛 앞에 선 사람민수기(Numbers)8:1-2 사람은 누구나 빛나고 싶어합니다. 오늘 우리는 보이는 것을 통해 존재를 확인받습니다. 성취, 평가, 이미지 반응이 곧 나의 가치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꾸 묻...
09/02/2026

빛 앞에 선 사람

민수기(Numbers)
8:1-2

사람은 누구나 빛나고 싶어합니다. 오늘 우리는 보이는 것을 통해 존재를 확인받습니다. 성취, 평가, 이미지 반응이 곧 나의 가치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꾸 묻습는다. "나는 얼마나 빛나고 있는가?"

그러나 민수기 8장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빛나고 있는가?"가 아니라, "너는 빛 앞에 서 있는가?"

성막 안의 등불은 자기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켜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등불을 켤 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게 할지니라"(민 8:2)

1.

성막 안의 등불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빛을 표상합니다. 하나님은 “등잔대 앞으로 비추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빛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그 빛은 어둠을 몰아내며 동시에 방향을 세웁니다. 등불은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방향으로 타오른 것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내가 얼마나 빛나는가"가 아니라 "내 빛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입니다. 빛이 나를 향하면 자기애가 되고, 하나님을 향하면 예배가 됩니다. 빛이 사람의 박수를 향하면 공연이 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향하면 봉헌이 됩니다.

2.

민수기 8장은 등불 이야기 다음에 레위인의 정결과 봉헌을 다룹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등불이 먼저 나오고, 레위인의 봉사가 뒤따른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빛 앞에 서야 합니다. 그 다음에야 섬김이 가능한 것입니다. 레위인들은 먼저 ‘속죄의 물’의 뿌림을 받고, 온 몸의 털을 밀고, 옷을 빨아야 했습니다(민 8:7). 이것은 단순한 위생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의 통과의례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정결입니다.

하나님은 "일 잘하는 사람" 이전에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을 찾으십니다. 빛 앞에 선 사람은 겸손합니다. 자신이 빛의 근원이 아님을 알기에 교만하지 않습니다. 겸손은 나를 작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를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3.

성막의 등불은 골방의 촛불이 아닙니다. 그것은 회중을 향한 빛이며, 광야의 밤을 견디는 백성을 지키는 불입니다. 민수기는 본래 광야의 책입니다. 한 사람의 영성이 공동체의 어둠을 밝히고, 한 사람의 순종이 공동체의 방향을 세운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빛나는 사람"과 "빛 앞에 선 사람"을 혼동합니다. 빛나는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지만 빛 앞에 선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빛나는 사람은 자기 이름을 남기려 합니다. 그러나 빛 앞에 선 사람은 하나님의 흔적을 남깁나다. 빛나는 사람은 무대가 필요하지만, 빛 앞에 선 사람은 성소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빛을 설명하신 분이 아니라, 친히 빛이 되신 분이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 8:12). 예수님은 가장 빛나는 분이셨지만,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서셨고, 그 영광을 비추셨습니다. 성육신은 빛의 겸손입니다. 십자가는 빛의 자기 비움(케노시스, 빌 2:7)입니다. 부활은 꺼지지 않는 생명의 새벽입니다. 예수님은 빛나는 사람을 모으신 것이 아니라, 꺼져 가는 사람을 다시 빛 앞에 세우신 분이십니다(사 42:3).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는 이것입니다.
"주님, 나를 빛나게 해 주소서“가 아니라, "주님, 나를 주님의 빛 앞에 세워 주옵소서."

빛 앞에 선 사람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습는다. 빛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빛나는 사람은 잠시 눈길을 끌지만, 빛 앞에 선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빛나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을
빛이신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말씀의 빛 앞에서 우리의 어둠을 보게 하시고,
은혜 안에서 우리를 다시 정결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겸손히 걷게 하소서.
그리하여 공동체를 밝히는 작은 등불로 살게 하옵소서. 아멘.

CCM ,찬송가 최다 컨텐츠, 최고의 찬양 주님께 드리는 찬양을 나누고자 운영중인 채널입니다,감사와 기쁨, 평안과 ...

소명 (Calling)행(Acts18:2-3)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우리는 때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주...
09/02/2026

소명
(Calling)

행(Acts18:2-3)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우리는 때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주님께 기도로 여쭐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삶에 주님의 인도를 느끼지 못하고 삶이 ‘공전’되는 듯 할 때, 그 의문은 증폭됩니다.

자신이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다고 느끼는 ‘사명자’일수록 그런 ‘자괴감’은 더 깊습니다. 마치 삶이 ‘제 자리에서 맴돌고 전혀 진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런 고민은 더 깊어집니다.

어떤 목사님이 10년 동안 고생하며 목회를 했는데 성도가 전혀 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낙심해서 십자가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주여, 저의 사역은 이렇게 실패로 끝나는 겁니까?“

”주여, 저를 부르신 목적이 뭡니까? 저는 실패한 목사입니다.” 한참 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실패한 것이다.” “아니요, 주님 제가 실패한 겁니다. 어찌 주님이 실패하실 수가 있으십니까?”

그러자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만약 성도 수가 많이 늘었다면 네가 성공한 것이냐, 내가 성공한 것이냐?“ 이 목사님은 그 음성을 듣고, ‘사명’에만 집중한 채, 자신을 드리는 ‘소명’에는 무관심했던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을 더 깊히 깨닫고, 회개하며 회복하셨다는 간증입니다. 소명(召命)과 사명(使命)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명은 무엇일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맡겨주신 일일까?

흔히 ‘부르심’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소명은 “생명을 요구하신다“는 뜻입니다. 소명은 그냥 우리의 존재를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무언가 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은 ‘사명‘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배반할 것을 미리 아셨던 주님께서 왜 가롯 유다를 구태여 제자로 부르셨을까? 소명과 사명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가롯 유다는 소명의 의미를 사명과 혼동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주님께 무언가 해 드리려고 주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그가 세속적인 계산에 빨라 주님께서 그에게 돈주머니를 맡기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일이 그에게 독이 됩니다. 그는 점점 자기 식으로 주님을 섬기려 했고 결국 주님을 팔아넘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명에 집중하는 사람은 ‘업적 주의자’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 일을 해내지 않으면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처럼 여깁니다. 그런 그의 배반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13:27).

사명은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인생의 목적은 소명입니다. 소명이 있으면 사명은 필요할 때 저절로 주어집니다. 기도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시46:10).

예수님은 우리의 일이 아닌 우리를 원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큰 고초를 당한 후, 베뢰아를 거쳐 아덴에 이릅니다. 아덴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일도 없었지만, 성령의 역사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철학적 토론과 변증만 했을 뿐, 데살로니가와 같은 성령의 역사와 삶의 변화가 나타난 기록이 없습니다. 단지 데살로니가 교회의 추이를 근심했던 바울이 디모데와 실라를 데살로니가로 보냅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덴에서 고린도로 이동합니다. 그곳에서도 별다른 역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더. 그저 평일에는 장막 깁는 일을 하였고, 안식일에만 회당에 나가 말씀을 증거하였습니다. 침체된 모습입니다.

그의 사역이 ‘위축’되었을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납니다. 위축된 영혼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때, 디모데와 실라가 데살로니가에서 돌아와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바울님, 데살로니가가 안정되었고, 그들의 믿음이 성장해서 엄청난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 사랑의 수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게도니아 전역에 믿음의 소문이 자자합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바울은 기쁨을 회복하고 복음을 힘있게 전합니다. 누가는 이 상황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행18:5).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행적에서 배울 것은 아무 역사가 없는 듯 보여 우리 영혼이 위축될 때, 묵묵히 주를 기다리며 주 안에 안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주어진 일, 할 수 있은 일에 전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때가 오매 주님의 인도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일을 시키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주 안에 있을 것을 당부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는 가지다. 나에게 붙어 있어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분께 우리의 영혼을 맡겨드리고, 붙어 있을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명은 그때그때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끔 인도하십니다(빌2:13). 마침내 주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소명을 사명으로 오해하지 않게 하소서
주 안에 머물며 주의 뜻을 깨닫게 하소서
Show me your way!
주의 길을 보이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s://youtu.be/WbfWboDgLvM?si=GfzRUcclDCnluEKT

https://youtu.be/ELKKKGLgDdc?si=YoR9UrrNXmy4SUlp

2011년 작곡한 '소명' 입니다. 노래- 지선 작사,곡 - 손경민 편곡 - 손경민 우리는 너무나 바쁜 일상...

내가 버틴 힘, 다시 일어난 힘시편 Psalms 18: 1-6시편 18편은 다윗이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건짐을 받은 뒤 부른 노래입니다. 그는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4절)라고 고백할 만큼 짙은 죽...
08/31/2026

내가 버틴 힘, 다시 일어난 힘

시편 Psalms
18: 1-6

시편 18편은 다윗이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건짐을 받은 뒤 부른 노래입니다. 그는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4절)라고 고백할 만큼 짙은 죽음의 그림자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16절)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게 힘을 주셨다”고 말하지 않고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라고 선언합니다.

”나의 힘“은 하나님 그분 자신입니다. 내가 버틴 힘, 다시 일어난 힘, 여기까지 살아온 힘의 이름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신앙은 내 안의 강함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약함 속에서도 나를 끝까지 붙들어 주신 분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곧이어 ”내가 주(당신)를 사랑하나이다“라는 깊은 애정이 담긴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사랑하다’(라함)는 ‘어머니의 자궁’을 뜻하는 어근에서 파생된 말로 단장의 슬픔과 애틋함을 담은 긍휼의 사랑입니다. 보통은 하나님이 연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실 때 사용되나 여기서는 다윗이 용감하게 하나님을 향해 사용합니다.

다윗의 사랑은 죽음에서 건지시고, ”나의 흑암을 밝히시며“(28절),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신“(32절) 하나님을 생생히 기억하면서 올려 드리는 절절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치열한 생존의 전쟁터를 통과한 후, 다윗은 가장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인격적인 애정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18편의 마지막에서 다윗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50절)라고 노래합니다. 다윗의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는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에 대한 마땅한 응답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나를 붙드시고 살리신, 그리고 여기까지 이끄신 사랑이 먼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서 하나님의 힘은 원수에게서 건져내는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기름 부음 받은 자’)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힘은 더 놀라운 방식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원수를 쓰러뜨리는 대신 자신을 내어주어 원수까지 품어내는 ‘연약함의 힘’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십자가는 사랑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에게 ”이제 얼마나 강해졌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오직 한가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라고 물으셨습니다.

어쩌면 신앙의 마지막 질문도 이것일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강했는가, 무엇을 성취했는가“보다 더 깊은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끝까지 누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았는가?“

아침에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라“는 무조건적인 용납의 은혜를 입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저녁이면 상처입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 다윗처럼 ”주님,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응답합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의 마지막에 드리는 이 고백이 언젠가 내 인생의 마지막에도 드릴 수 있는 고백이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 여기까지 나를 붙드신 분은 주님이셨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침마다 나를 사랑하신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죽음과 같은 두려움의 순간에도 나를 붙드신 손을 잊지 않게 하소서.

십자가로 끝까지 인자를 베푸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하루를 마감하며 “주님,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s://youtu.be/a2SezZciV0Q?si=tHrs1VBpIQTxYuZH

청춘찬양단 사역동참 : https://linktr.ee/chchpraise싱어 : 박은총, 유승아, 이하은, 초롬,...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행 Acts 28:1-31코카콜라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사람은 ‘로버트 우드러프’회장이었습니다. 그가 33년간 CEO로 재임하면서 코카콜라를 북한과 쿠바만을 제외한 전세계 모든 나라에 ...
08/26/2026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행 Acts
28:1-31

코카콜라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사람은 ‘로버트 우드러프’회장이었습니다. 그가 33년간 CEO로 재임하면서 코카콜라를 북한과 쿠바만을 제외한 전세계 모든 나라에 대표 음료로 우뚝서게 했습니다.

코카콜라의 이미지를 미국이란 국가 이미지와 동일시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기자들이 사업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때 그가 했던 답변은 지금도 마치 ‘레젠드’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내 몸의 혈관 속에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라 코카콜라다.” 이렇게 그의 혈관 속에 흐르던 코카콜라가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을 뚫었고, 북한에서조차 고려항공에서 기내식으로 제공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 사람 안에 무슨 코카콜라가 흐르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얼마나 코카콜라에 대해 열정을 가졌으면 그렇게 표현했을까? 그러면 바울을 콕 찌르면 그의 혈관에서 무엇이 나왔을까? 복음이 흘러나오지 않았을까?

전 28장으로 이루어진 사도행전은 그 전반부 1-12장까지는 베드로를 중심 인물로 전개되었고, 13장부터 28장까지는 그 포커스가 사도 바울의 행적을 중심으로 맞춰지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는 바울의 행적입니다. 멜리데 섬에서 3개월을 지낸 후, 다시 배가 출항하여 이탈리아 반도의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 타베르네를 지나 로마로 들어가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압비오 광장까지 나와 그를 영접합니다. 바울과 일면식도 없던 그들이 오직 ’복음에 매인 죄수 신분’으로 오는 사도를 영접한 것입니다.

얼마나 큰 감격이었을까? 하나님의 마음이 그 성도들을 통해 바울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비였습니다. 마치 천성문을 향해 가는 그를 환영하는 천사들과 먼저 간 하나님의 백성들의 환영과 같았습니다.

성도들은 아마 이런 영접 퍼레이드에 ‘성자의 행진’(Oh when the saints)을 함께 부르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만나 하나님께 감사했고 큰 격려를 얻어 다시 담대한 마음을 얻게 됩니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명의 군사와 따로 지낼 수 있도록 허용이 되었습니다. 또 상당한 자유가 주어져서 로마의 크리스천 형제들을 만나고 그들의 도움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곳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만나 자신이 반유대교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한 어떤 선입견도 없었기에 그의 가르침에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반응은 늘 그랬던 것처럼 갈렸습니다. 참된 복음이 전파된다고 모든 사람이 거기에 잘 반응하여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말씀 앞에서는 둘로 갈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 이 사실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괜히 전했다가 저 사람이 껄끄러워 하면 어떡하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겁니다.

그걸 불편하게 여길 필요도 없고, 싫어하거나 거부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사랑과 겸손의 태도로 전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전합니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행 28:23)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롬14:17)이라고 전한 것입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정통했던 그가 예수께서 전하신 말씀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를 재해석한 것입니다. ’안에’란 헬라어 ’entos’는 ‘안에’와 ’사이에’ 두 번역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마음 안에 있을 수도 있고, 우리 관계 사이에 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우리의 증언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 삶에 어떻게 역사하셔서 이렇게 변화되었는가? 내가 이전에는 저랬는데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되었다..어떻게 믿게 되었고 믿은 후에는 이렇게 변화되었다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며, 동시에 말씀을 가지고 전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이것을 말씀하며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벧전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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