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Fellowship Baptist Church

Happy Fellowship Baptist Church Haltom city에 위치한 행복한교회는 SBTC에 가입된 침례교회로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추구하는 하나님때문에 행복한 사람들의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행복한교회를 소개합니다

우리 교회의 사명
"우리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우리의 언행을 통하여 가족과 이웃이 하나님 나라를 보고 하나님의 통치를 전 삶의 영역에서 경험하게 하는 데에 있다."

우리 교회의 비전
"하나님께 겸손히 예배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하나 되어 섬기고, 세상으로 나아가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전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교회"

우리 교회의 슬로건 및 성구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

와 함꼐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8:19-20)"

우리 교회의 핵심가치
하나님 중심 사역(갈 1:10-12)
함께 하는 사역(엡 2:20-22)
균형 잡힌 사역(마 18:18)

그리스도와의 깊은 연합을 누리는 삶이 무엇이며, 그 연합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멀리해야 하는지 말씀 앞에서 묵상합니다.                                                      ...
05/30/2026

그리스도와의 깊은 연합을 누리는 삶이 무엇이며, 그 연합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멀리해야 하는지 말씀 앞에서 묵상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참여, 우상과의 단절(고전 10:14-22)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하는 공동체(고전 14-17)
14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15 나는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판단하십시오.
16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닙니까?
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가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그 한 덩이 빵을 함께 나누어 먹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질투하심 앞에서 우상을 멀리하라(고전 10:18-22)
18 육신상의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제물을 먹는 사람들은, 그 제단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19 그러니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입니까? 우상은 무엇이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무엇입니까?
20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방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귀신과 친교를 가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습니다. / ㉥신 32:17(칠십인역)
21 여러분은, 주님의 잔을 마시고, 아울러 귀신들의 잔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고, 아울러 귀신들의 식탁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22 우리가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더 힘이 세다는 말입니까?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우상 숭배를 피하라”고 강하게 권면하며 주의 만찬의 의미를 다시 상기시킵니다. 그는 우리가 잔을 마시고 떡을 떼는 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하는 실제적 연합임을 강조합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이며 동시에 한 빵을 먹는 공동체가 서로 하나임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바울은 주의 만찬의 참여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영적 실제임을 말하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우상과의 어떤 형태의 참여도 거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신앙을 깊이 비춥니다. 우리는 종종 주의 만찬을 익숙한 예식으로 여기거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삶의 중심이 아닌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주의 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음을 기억하며, 그 연합이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소중히 여기며,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한 몸으로 대하고,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답게 거룩함을 드러내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제사를 예로 들며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그 제사의 대상과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임을 설명합니다. 그는 우상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우상 제사 뒤에는 악한 영의 영향이 존재하며, 성도들이 주님의 잔과 귀신의 잔을 동시에 마실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주를 질투하게 하겠느냐”라고 경고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원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우상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우상은 멀리하지만, 성공, 인정, 돈, 쾌락, 관계 등 마음을 빼앗는 수많은 현대적 우상들과 타협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둘로 나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며, 그분과의 연합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멀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지 정직하게 돌아보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들을 내려놓으며, 주님만을 예배하는 순전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한 자로서 주님과의 연합을 깊이 누리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모든 우상을 멀리하고 주님만을 예배하는 순전한 마음을 지키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주님의 질투하심 앞에서 거룩함과 충성으로 드러나게 하옵소서.

2026년 5월 29일 말씀(고전 10:1-13)이스라엘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말씀 앞에서 깊이 묵상합니다.                                       ...
05/29/2026

2026년 5월 29일 말씀(고전 10:1-13)
이스라엘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말씀 앞에서 깊이 묵상합니다.

넘어짐을 경계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고전 10:1-13)
이스라엘의 특권과 실패에서 배우는 경고(고전 10:1-6)
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보호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2 이렇게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침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3 그들은 모두 똑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4 모두 똑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하는 신령한 바위에서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
5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6 이런 일들은, 우리 조상들이 악을 좋아한 것과 같이 우리가 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시험 가운데서도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고전 10:7-13)
7 그들 가운데 얼마는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백성들이 앉아서 먹고 마셨으며,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들과 같이 우상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 ㉢출 32:6(칠십인역)
8 간음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가 간음을 하였고,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나 쓰러져 죽었습니다.
9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였고, 뱀에게 물려서 죽었습니다.
10 그들 가운데 얼마가 불평한 것과 같이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멸시키는 이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11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은 본보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바울은 광야의 이스라엘이 모두 같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해 광야에서 멸망했다고 말하며 고린도 성도들에게 경고합니다. 그들은 구름 아래에서 인도함을 받고, 바다를 건너며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와 반석에서 나온 물을 먹고 마셨지만 그 은혜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들이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었다”고 말하며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자동으로 신앙의 성숙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신앙을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예배와 말씀, 공동체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세상의 욕망과 불평으로 기울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그 은혜가 삶의 순종으로 이어지도록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경험한 자리에서 더욱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과거의 은혜에 안주하지 않으며, 오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와 음행, 불평으로 넘어졌던 사건들을 언급하며 고린도 성도들에게 동일한 유혹을 경계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는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하며 영적 자만이 가장 위험한 상태임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시며 시험 당할 때 피할 길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은 시험과 유혹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 줍니다. 우리는 때로 유혹이 너무 강해 보이거나, 상황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 스스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며 언제나 피할 길을 준비하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혹 앞에서 스스로를 과신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피할 길을 찾기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길을 겸손히 따르고,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 이스라엘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 우리의 마음을 겸손히 지키게 하소서. 시험과 유혹 속에서도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의 길을 걷게 하소서. 받은 은혜에 안주하지 않고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을 하게 하옵소서.

2026년 5월 28일 말씀(고전 9:19-27)복음을 위해 나의 자유와 삶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말씀 앞에서 다시 깊이 묵상합니다.                                            ...
05/29/2026

2026년 5월 28일 말씀(고전 9:19-27)
복음을 위해 나의 자유와 삶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말씀 앞에서 다시 깊이 묵상합니다.

복음을 위해 자기를 절제하는 자유의 길(고전 9:19-27)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자유(고전9:19-23)
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0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1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상 받기 위해 절제하는 영적 경주(고전 9:24-27)
24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25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절제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월계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목표 없이 달리듯이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허공을 치듯이 권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27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말하며 복음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제한한 삶을 고백합니다. 그는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되었다고 말하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상대의 자리로 내려가는 사랑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바울에게 복음은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사람을 얻기 위해 자신을 비우는 삶의 방식이었고, 그는 자신의 권리보다 복음의 유익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신앙과 관계를 깊이 비춥니다. 우리는 종종 나의 방식, 나의 기준, 나의 편안함을 고집하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설득하려 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상대의 자리로 내려가는 겸손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말보다 태도가 더 중요함을 기억하고, 상대의 상황과 연약함을 이해하며, 나의 자유를 사랑으로 제한하여 복음이 걸림돌 없이 전해지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신앙의 삶을 경주에 비유하며 모든 경주자가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절제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썩어질 멸류관을 위해서도 사람들이 절제하는데 하물며 영원한 상을 위해 우리는 더욱 절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삶을 방종에 맡기지 않고 복음의 사명을 위해 철저히 절제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고도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하며 경건한 긴장감 속에서 신앙의 경주를 달렸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을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은혜를 핑계로 영적 절제를 소홀히 하거나, 신앙의 경주를 느슨하게 생각하며 세상의 유혹에 쉽게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한 상을 바라보며 절제와 집중으로 신앙의 길을 달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부터 영적 절제를 실천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마음과 몸을 다스리며,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경주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 복음을 위해 나의 자유를 기꺼이 내려놓고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는 겸손한 마음을 허락하소서. 영원한 상을 바라보며 절제와 집중으로 신앙의 경주를 달리게 하시고 제 삶이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게 하소서. 매일의 선택 속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선택하며 끝까지 충성하는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2026년 5월 27일 말씀(고전 9:11-18)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권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복음을 드러낼 수 있는지 말씀 앞에서 다시 묵상합니다.                                      ...
05/29/2026

2026년 5월 27일 말씀(고전 9:11-18)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권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복음을 드러낼 수 있는지 말씀 앞에서 다시 묵상합니다.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낮아지는 자유(고전 9:11-18)
복음을 전하는 자의 정당한 권리(고전 9:11-14)
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것으로 씨를 뿌렸으면,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으로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
12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다면, 하물며 우리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권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습니다.
13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고,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14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살아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권리를 내려놓을 때 드러나는 복음의 능력(고전 9:15-18)
15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행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하여 달라고 이 말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나의 이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7 내가 자진해서 이 일을 하면 삯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못해서 하면, 직무를 따라 한 것입니다.
18 그리하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물질적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밝히며, 씨를 뿌리는 자가 열매를 거두는 것이 당연한 원리임을 설명합니다. 그는 율법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근거로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자들이 교회로부터 생활의 지원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바울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고린도 성도들이 복음 사역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일하는 자들의 필요를 돌아보시는 분이며, 그들의 수고가 공동체 안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원리를 세우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신앙과 공동체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복음 사역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누군가의 헌신 위에 세워진 은혜를 가볍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공동체의 책임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사역을 존중하고, 사역자들의 수고를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기쁨으로 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정당한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밝힙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자신의 자랑이 아니라 맡겨진 사명이며,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값없이 전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았고, 그 이유는 복음이 어떤 오해도 없이 온전히 전해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는 대신 복음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낮아졌고, 그 절제가 오히려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삶에 깊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마땅히 받을 것”을 먼저 생각하며 관계와 공동체 안에서 권리를 주장하지만,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자유를 내려놓는 삶이 더 큰 능력을 드러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권리를 내려놓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복음을 위한 헌신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에서 기쁨으로 섬기며, 복음이 드러나는 방향으로 자유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복음을 위해 나의 권리와 자유를 기꺼이 내려놓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바라보며 맡겨진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게 하소서. 제 삶이 복음의 능력과 사랑을 드러내는 겸손과 절제의 열매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2026년 5월 26일 말씀(고전 9:1-10)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권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복음을 드러낼 수 있는지 말씀 앞에서 다시 묵상합니다.                                       ...
05/29/2026

2026년 5월 26일 말씀(고전 9:1-10)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권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복음을 드러낼 수 있는지 말씀 앞에서 다시 묵상합니다.

복음을 위해 자유를 내려놓는 사랑의 길(고전 9:1-10)
사도의 권리와 복음을 위한 자발적 절제(고전 9:1-6)
1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하였습니까?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내가 일해서 얻은 열매가 아닙니까?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 몰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나의 사도직을 보증하는 표입니다.
3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변합니다.
4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5 우리에게는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동생들이나 ㉠게바처럼, 믿는 자매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 ㉠베드로
6 나와 바나바에게만은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일하는 자에게 보상하시는 분이시다(고전 9:7-10)
7 자기 비용으로 군에 복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따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양 떼를 치고 그 젖을 짜 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8 내가 사람의 관례에만 의거하여 이런 말을 하는 줄 아십니까? 율법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9 모세의 율법에 기록하기를 ㉡"타작 일을 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아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를 걱정하신 것입니까? / ㉡신 25:4
10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밭을 가는 사람은 마땅히 희망을 가지고서 밭을 갈고, 타작을 하는 사람은 한 몫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일을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임을 분명히 밝히며 사도로서 누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들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물질적 도움을 받을 권리, 결혼하여 아내와 함께 사역할 권리, 다른 사도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거나 그의 사역을 평가절하하는 상황 속에서 바울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복음이 걸림돌 되지 않도록 스스로 절제한 선택을 보여줍니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권리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것이었고, 그는 자신의 자유를 복음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았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삶을 깊이 비춥니다. 우리는 종종 “내 권리”,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하며 관계와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겪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보다 복음을 드러내는 삶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복음을 위한 헌신임을 기억하며, 나의 유익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사랑과 섬김의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군인, 농부, 목자와 같은 예를 들어 일하는 자가 그 수고의 열매를 누리는 것이 당연한 원리임을 설명합니다. 그는 율법에 기록된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일하는 자의 필요를 돌아보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동물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원리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권리를 내려놓은 이유가 복음 때문임을 다시 강조하기 위해 이 원리를 설명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삶에도 중요한 적용을 줍니다. 우리는 때로 섬김과 헌신 속에서 “나는 왜 보상받지 못하는가”, “내 수고는 왜 인정받지 못하는가”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를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보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인정이나 보상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섬기고,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과 위로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 저에게 주신 자유와 권리를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보며 맡겨진 자리에서 기쁨으로 섬기게 하소서. 제 삶이 복음을 드러내는 사랑과 절제의 열매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형제를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 말씀 앞에서 다시 묵상합니다.                                                         ...
05/29/2026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형제를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 말씀 앞에서 다시 묵상합니다.

지식보다 큰 사랑, 형제를 세우는 자유(고전 8:1-13)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머물라(고전 8:1-3)
1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방식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주십니다.
자유든 종이든, 너희는 주님의 것이다(고전8:4-13)
4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일을 두고 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 없습니다.
5 이른바 신이라는 것들이 하늘에든 땅에든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6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만물은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한 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7 그러나 누구에게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상을 섬기던 관습에 젖어 있어서, 그들이 먹는 고기가 우상의 것인 줄로 여기면서 먹습니다. 그들의 양심이 약하므로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8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는 것은 음식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볼 것도 없고, 먹는다고 해서 이로울 것도 없습니다.
9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 이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0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그가 약한 사람일지라도, 그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11 그러면 그 약한 사람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약한 신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12 이렇게 여러분이 형제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바울은 우상 제물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지식과 사랑의 관계를 정리합니다. 고린도 성도들 중 일부는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지식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식이 다른 성도들을 무시하고 상처 주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세운다”고 말하며 지식의 옳고 그름보다 그것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사랑으로 나타나며, 사랑 없는 지식은 오히려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을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맞다”는 확신 때문에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가볍게 여기거나, 진리를 말한다는 이유로 사랑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사랑으로 사용하여 형제를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옳은가보다 그 옳음을 어떻게 사랑으로 사용할 것인가를 묻고, 지식보다 사랑을 앞세우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공동체를 세우는 열매로 나타나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우상 제물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들은 이전의 우상 숭배 경험 때문에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을 여전히 죄로 느꼈고, 강한 성도들의 자유로운 행동이 그들의 양심을 흔들고 넘어지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너희의 지식이 약한 자를 멸망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하며 자유를 주장하는 것보다 형제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심지어 그는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하며 사랑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제한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임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자유 사용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내 양심에 문제 없으면 된다”, “나는 자유하다”는 말로 행동을 정당화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가 형제를 세우는 방향으로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피고, 형제의 연약함을 존중하며, 사랑을 위해 자유를 기꺼이 내려놓는 성숙한 신앙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길입니다.


주님, 지식보다 사랑을 앞세우며 형제를 세우는 마음을 우리 안에 부어주소서. 우리의 자유를 사랑으로 사용하여 공동체를 세우고 연약한 자를 보호하는 성숙한 믿음을 갖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선택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2026년 5월 23일 말씀(고전 7:17-24)하나님이 주신 관계의 자리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지 말씀 앞에서 다시 묵상합니다.                                           ...
05/29/2026

2026년 5월 23일 말씀(고전 7:17-24)
하나님이 주신 관계의 자리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지 말씀 앞에서 다시 묵상합니다.

부르심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고전 7:17-24)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머물라(고전 7:17-20)
17 각 사람은, 주님께서 나누어주신 분수 그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처지 그대로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내가 모든 교회에서 명하는 지시입니다.
18 할례를 받은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굳이 그 할례 받은 흔적을 지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할례를 받지 아니한 처지에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굳이 할례를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19 할례를 받은 것이나 안 받은 것이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때의 처지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십시오.
자유든 종이든, 너희는 주님의 것이다(고전 7:21-23)
21 노예일 때에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런 것에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이용하십시오.
22 주님 안에서 노예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주님께 속한 자유인입니다.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23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24 형제자매 여러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 때의 처지에 그대로 있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각 사람은, 주님께서 나누어주신 분수 그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처지 그대로 살아가십시오.”고 말하며 신앙이 삶의 조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르칩니다. 당시 성도들 중에는 할례 여부나 사회적 신분을 바꾸어야 더 신령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바울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의 순종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은 신앙의 본질이 외형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충성임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삶을 깊이 비춥니다. 우리는 종종 환경이 바뀌어야 더 잘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지금의 자리보다 더 나은 조건을 찾아야 신앙이 성장한다고 오해하지만 하나님은 지금의 자리에서 그분을 따르는 것이 믿음의 본질임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의 변화보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두신 이유를 묻고, 비교와 불만보다 감사와 순종을 선택하며, 현재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기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그 신분이 신앙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존귀함을 가진 존재임을 선포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노예는 가장 낮은 신분이었지만 바울은 “노예일 때에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런 것에 마음 쓰지 마십시오.”고 말하며 신분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자유인에게는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고 말하며 인간적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유가 참된 해방임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사회적 지위, 성취, 조건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동일한 존귀함과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이 나를 규정하도록 두지 않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어떤 자리에서도 담대하게 살아가며, 하나님이 주신 정체성 안에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그곳이 주님의 부르심의 자리임을 믿고 감사하게 하소서. 외적인 조건보다 하나님께 속한 정체성을 붙들고 현재의 자리에서 순종과 충성을 선택하게 하소서. 제 삶이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께 속한 자의 자유와 평안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2026년 5월 22일 말씀(고전 7:1-16)하나님이 주신 관계의 자리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지 말씀 앞에서 다시 묵상합니다.                                            ...
05/29/2026

2026년 5월 22일 말씀(고전 7:1-16)
하나님이 주신 관계의 자리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지 말씀 앞에서 다시 묵상합니다.

부르심 안에서 사랑하고 섬기는 결혼의 은혜(고전 7:1-16
자유의 기준: 가능한가가 아니라 유익한가(고전 7:1-7)
1 여러분이 적어 보낸 문제를 두고 말하겠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 그러나 음행에 빠질 유혹 때문에, 남자는 저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도 저마다 자기 남편을 두도록 하십시오.
3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와 같이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십시오.
4 아내가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이 주장합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가 주장합니다.
5 서로 물리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얼마 동안 떨어져 있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다시 합하십시오. 여러분이 절제하는 힘이 없는 틈을 타서 사탄이 여러분을 유혹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6 그러나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그렇게 해도 좋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지, 명령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7 나는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각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어서,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합니다.
너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고전 7:8-16)
8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과 과부들에게 말합니다. 나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그들에게 좋습니다.
9 그러나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십시오. 욕정에 불타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편이 낫습니다.
10 결혼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11 -만일 헤어졌거든 재혼하지 말고 그냥 지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남편과 화해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12 그 밖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말이요, 주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어떤 교우에게 믿지 않는 아내가 있는데, 그 여자가 남편과 같이 살기를 원하면, 그 여자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13 또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않는 남편이 있는데, 그가 아내와 같이 살기를 원하면, 그 남편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14 믿지 않는 남편은 그의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해지고, 믿지 않는 아내는 그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졌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자녀도 깨끗하지 못할 것인데, 이제 그들은 거룩합니다.
15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 쪽에서 헤어지려고 하면, 헤어져도 됩니다. 믿는 형제나 자매가 이런 일에 얽매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평화롭게 살게 하셨습니다.
16 아내 된 이여, 그대가 혹시나 그대의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압니까? 남편 된 이여, 그대가 혹시나 그대의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압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결혼과 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부부가 서로에게 속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킵니다. 당시 고린도 성도들 중 일부는 금욕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결혼 안에서도 성적 관계를 피하려 했지만 바울은 부부가 서로의 몸을 주고받는 것은 단순한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책임이라고 가르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그 의무를 다하라”는 말씀은 결혼이 자기중심적 만족이 아니라 서로를 세우고 보호하는 언약적 사랑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바울은 금욕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그것조차도 합의와 기도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며 결혼 안에서의 사랑과 절제는 영적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결혼과 관계를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결혼을 통해 나의 필요가 채워지기를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결혼을 서로를 섬기고 보호하는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우자를 통해 얻는 만족보다 배우자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 묻고, 서로의 몸과 마음을 존중하며, 하나님이 주신 언약적 사랑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은 자들과 믿지 않는 배우자를 둔 성도들에게 각각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당시 고린도교회에는 믿지 않는 배우자와의 결혼을 유지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성도들이 있었고, 어떤 이들은 신앙 때문에 결혼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믿지 않는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그 결혼을 유지하라고 말하며 그 가정 안에 하나님의 거룩함과 평화가 흘러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로 부르셨다”는 말씀은 결혼의 목적이 단순한 동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화를 드러내는 삶임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관계 속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때로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포기하고 싶어지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으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의 변화보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랑의 책임을 바라보고, 갈등 속에서도 평화를 선택하며, 하나님이 가정을 통해 이루실 은혜를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 결혼과 관계의 자리를 주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이고 사랑과 섬김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넘어 서로를 세우고 평화를 이루는 은혜를 성령께서 우리 안에 부어주소서. 우리의 가정과 관계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함과 평화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2026년 5월 21일 말씀(고전 6:12-20)하나님께 속한 몸으로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깊이 묵상합니다.                                                   ...
05/29/2026

2026년 5월 21일 말씀(고전 6:12-20)
하나님께 속한 몸으로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깊이 묵상합니다.

값으로 산 몸, 하나님께 드리는 삶(고전 6:12-20)
자유의 기준: 가능한가가 아니라 유익한가(고전 6:12-14)
12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겠습니다.
13 "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
14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셨으니, 그의 권능으로 우리도 살리실 것입니다.
너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고전 6:15-20)
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6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 ㉧창 2:24(칠십인역)
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18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음행을 하는 자는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20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유의 본질을 다시 정의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육체적 욕망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지만, 바울은 자유가 방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몸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을 포함한다고 가르칩니다. “음식은 배를 위하고 배는 음식을 위한다”는 말처럼 그들은 육체를 일시적이고 소모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바울은 하나님이 주님을 다시 살리신 것처럼 우리의 몸도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선언하며 몸의 가치를 높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묻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정도는 괜찮다”, “누구나 다 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영적 민감함을 잃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몸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임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가능한가보다 무엇이 유익한가를 묻고, 순간의 만족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바라보며,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 속한 귀한 선물임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하며 몸의 영적 의미를 가장 강하게 강조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몸을 영혼과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며 육체적 죄를 가볍게 여겼지만, 바울은 몸이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이기에 음행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훼손하는 심각한 죄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자”라는 선언은 우리의 몸이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존재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삶을 깊이 비춥니다. 우리는 몸을 쉽게 피곤함, 욕망, 습관의 도구로 사용하며 영적 의미를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성령이 거하시는 집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죄의 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자리로 사용하며,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드러내는지 돌아보고, 일상 속에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 값으로 산 몸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도록 우리의 마음과 삶을 새롭게 하소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을 기억하여 우리의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 지키게 하시고, 순간의 욕망보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선택과 행동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드러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2026년 5월 20일 말씀(고전 6:1-1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새 사람으로 부르시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형제자매로 대하라고 초대하신 은혜를 기억하며 말씀 앞에 마음을 엽니다.                   ...
05/29/2026

2026년 5월 20일 말씀(고전 6:1-1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새 사람으로 부르시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형제자매로 대하라고 초대하신 은혜를 기억하며 말씀 앞에 마음을 엽니다.

새 사람으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의 관계를 세우다(고전 6:1-11)
형제를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지 말라: 공동체의 정체성 회복(고전 6:1-6)
1 여러분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소송할 일이 있을 경우에, 성도들 앞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불의한 자들 앞에 가서 재판을 받으려 한다고 하니, 그럴 수 있습니까?
2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겠거늘, 여러분이 아주 작은 사건 하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겠습니까?
3 우리가 천사들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한데, 하물며 이 세상 일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4 그러니, 여러분에게 일상의 일과 관련해서 송사가 있을 경우에,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앉히겠습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형제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여 줄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형제가 형제와 맞서 소송을 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 한다는 말입니까?
패하는 것을 감수하는 사랑과 새 사람의 정체성(고전 6:7-11)
7 여러분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여러분의 실패를 뜻합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8 그런데 도리어 여러분 자신이 불의를 행하고 속여 빼앗고 있으며, 그것도 형제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9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나,
10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술 취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중상하는 사람들이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11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겨지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서로 다투다가 세상 법정으로 형제를 고소하는 모습을 책망합니다. 그는 성도가 세상을 심판할 자로 부름받았는데, 어떻게 세상의 판단을 의지하여 형제를 고소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 지혜로운 자가 없어서 형제 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이미 세상의 방식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세상 법정에 형제를 세우는 것은 단순한 분쟁 해결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정체성과 복음의 증거를 훼손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성도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세상과 달라야 하며,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형제로 존중하는 것이 복음의 본질임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세상의 방식과 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권리와 정당함을 주장하며 상대를 이기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제를 세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등이 생길 때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공동체 안에서 지혜로운 조언과 중재를 구하며, 형제를 세우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말과 행동이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세상 앞에서 복음의 증거를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가족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형제를 세우는 관계를 선택해야 합니다.

바울은 형제를 고소하는 것 자체가 이미 성도에게는 패배라고 말합니다. 그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이 낫다고 말하며, 형제를 해치는 행동이야말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죄라고 지적합니다. 바울은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지 못한다고 말하며, 고린도 교인들이 과거에는 음행, 우상숭배, 탐욕, 술 취함 등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주 예수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기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그들의 정체성이 과거의 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 정체성에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결국 바울은 성도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실제적인 자리임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삶으로 드러내라고 초대합니다. 우리는 종종 손해를 두려워하고, 억울함을 참지 못하며,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데 집중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듯이, 우리도 형제를 위해 양보하고 용서하며,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자신을 낮추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정체성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야 하며,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을 선택하는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부르셨으니 공동체 안에서 형제를 세우는 길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사랑으로 갈등을 해결하며, 손해를 감수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씻기고 거룩하게 된 정체성을 드러내며, 하나님 나라의 증거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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