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ford Lord of Glory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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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2026

제 214회 영광의 달음질 칼럼 (Sep, 2, 2026)

배타성이란 차별을 위함이 아닌,
순전함을 위한 구별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종종 배타적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특별히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 기독교만 진리라고 말하는가? 라고 비판을 하거나 ”모든 종교에도 나름대로 구원의 길이 있지 않은가?”라고 질문합니다. 심지어 기독교 안에서도 모든 종교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의 진리로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을 무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친구를 따돌리고, 직장이나 교회에서 어떤 사람을 소외시키며,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은 잘못된 배타성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회가 외면하던 세리와 죄인에게 다가가셨고, 이방인과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사람을 미워하거나 차별하기 위한 배타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모든 배타성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랑과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정조를 지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배우자를 향한 사랑과 언약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를 낳아 주고 길러 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행동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차별을 위한 배타성은 잘못이지만, 사랑과 언약의 순전함을 지키기 위한 구별은 아름답고 반드시 필요 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요, 구원의 길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요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유일한 구주로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진리는 인간이 만들어 낸 우월의 주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믿음은 사람을 차별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복음의 순전함을 지키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이 원리는 동성애 문제를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에도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적 결혼관과 성 윤리를 지킨다는 이유로 동성애자나 성소수자를 조롱하거나 혐오하고, 인간관계에서 따돌리거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며, 누구도 모욕과 부당한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상처 입은 사람이 두려움 없이 찾아와 복음을 듣고, 함께 울며 기도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과 그가 가진 모든 생각과 삶의 방식을 성경적으로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은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맺는 언약으로 이해하며, 성적인 친밀함은 그 결혼의 울타리 안에서 누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배워 왔습니다. 이것은 동성애자만을 겨냥한 기준이 아닙니다. 이성애자에게도 음행과 간음, 정욕과 성적 무질서를 경계하도록 요구하는 동일한 거룩의 기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동성애자에게만 유난히 엄격하고 이성애자의 성적 죄에는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진리만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거짓된 위선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모습의 연약함과 죄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질 만큼 의롭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는 특정한 사람을 정죄의 대상으로 삼는 공동체가 아니라, 모든 죄인이 은혜 앞에서 함께 회개하고 새로워지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셨지만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정죄하지 않으시면서도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혐오와 무조건적 승인 사이의 양극단을 넘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랑하되 성경의 진리를 감추지 않고, 진리를 말하되 상대방의 존엄을 짓밟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 없는 진리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진리 없는 사랑은 사람을 참된 생명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고로 교회는 동성애 문제를 논쟁의 소재로만 다루어서는 안 되고, 실제로 고민하고 아파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되, 함부로 판단하거나 낙인을 찍지 말아야 합니다. 억지로 변화시키려 하거나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바른 것은 아닙니다. 한 영혼을 오래 참고 품으며, 말씀과 기도와 진실한 공동체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헛된 것에 사로잡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무신론에 빠져 창조주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범신론에 빠져 하나님의 피조물과 선물을 하나님 자체로 오해하거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사랑하지 못한 채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거짓된 신과 헛된 우상에게 우리를 내어 주실 수 없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를 참된 생명 안에 지키시려는 사랑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여러 신을 함께 섬기며 하나님을 그중 하나로 여기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이시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구원을 베푸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람에게는 열려 있어야 하지만 진리에 대해서는 분명해야 합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이웃과 성적 지향이나 삶의 모습이 다른 이웃의 인격과 자유를 존중하고 사랑하되, 우리의 신앙고백까지 희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모든 것을 진리로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을 품지만, 진리는 모든 선택을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격적인 배타성이 아니라 순전한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며 자신을 높이는 신앙이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낮추면서도 복음의 진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말로 상대방을 이기려 하기보다 사랑과 섬김으로 복음의 참됨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차별을 위한 배타성은 버려야 합니다. 사랑의 언약을 지키되 복음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거룩한 구별은 지켜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오직 하나님만 예배하고, 모든 사람을 존중하면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담대히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배척하기 위해 구별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을 더 깊이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진리에는 확고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며, 이웃에게는 겸손하고 따뜻해야 합니다. 이것이 차별을 위한 배타성이 아니라 순전함을 위한 거룩한 구별이기 때문입니다,

Sep, 2, 2026, 노스켈롤리아나 그린빌에서 수요일 아침 김병규 목사

08/30/2026

2026년 8월 30일 주일 새벽 예배

거룩한 실상을 살아가는 새 언약의 백성
에스겔서 48: 15 –22 찬송 334장, 위대하신 주를

오늘 마지막 48장에서는 회복된 백성에게 새 땅을 분배하십니다. 이어오면서 에스겔서의 흐름은 분명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이 다시 돌아온다는 겁니다.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으로 끝나며, 폐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삼마”, 곧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 는 약속으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새롭게 분배되는 땅 가운데 성읍의 거주지와 경작지, 그리고 군주가 받을 땅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얼핏 보면 토지 분배에 관한 행정적인 기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새 언약의 백성이 살아가야 할 거룩한 삶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거룩함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15–20절은 거룩한 구역 안에 마련된 성읍의 거주지와 경작지를 설명해 주는 말씀으로 기록이 됩니다. 그리고 15절은 이 구역이 성읍의 거주지와 들, 곧 경작지를 위한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성읍의 크기는 사방으로 각각 사천오백 척이며, 그 둘레에는 이백오십 척의 빈터가 마련됩니다. 오늘날로 계산하면 성읍은 사방의 길이가 각각 약 2.36km이였으며, 그 둘레에는 폭 약 131m의 빈터가 마련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성읍 좌우에 남은 땅은 농사를 짓는 경작지가 되어 성읍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회복이 성전이나 제사장들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반 백성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회복된 땅에는 성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집과 일하는 장소와 농사를 짓는 밭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공간뿐 아니라 백성이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도 회복시키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은 성전 안에만 머무는 거룩함만이 아니고. 가정과 일터와 인간관계와 물질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거룩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배드릴 때는 경건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가정에서는 상처를 주고, 예배에서는 정직을 고백하면서 일터에서는 작은 거짓을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백성은 예배와 생활을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거룩함은 주일의 예배만 아닌 삶으로 증명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가족을 대함에서 나타나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정직한 거래와 책임 있는 생활로 나타나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전 가까이에 거주지와 경작지가 있었다는 것은 예배와 삶, 신앙과 노동이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정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일터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밭을 경작하는 일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거룩함은 어디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거룩한 말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실상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정직하게 일하고, 책임을 다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 새 언약의 백성이 보여 주어야 할 거룩한 실상입니다.

둘째) 거룩한 공동체는 함께 일하고 함께 누려야 합니다, 18절에 성읍 옆에 남은 땅에서 나는 농산물은 성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양식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19절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성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땅을 경작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회복된 공동체는 특정한 사람만 일하고 특정한 사람만 혜택을 누리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함께 참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지파만을 위한 성읍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모든 지파가 함께 섬기고 함께 살아가는 성읍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몇 사람의 헌신으로만 세워지는 곳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자기가 받은 은사와 직분에 따라 함께 섬길 때 건강하게 세워집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전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하며, 어떤 사람은 안내하고,

어떤 사람은 찬양하며, 어떤 사람은 친교를 준비하고,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을 청소를 하기도 합니다. 근데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맡은 일은 서로가 다를 수 있지만,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성읍을 섬기는 거룩한 일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하나는? 이런 각자의 우리의 섬김이 크고 작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얼마나 충성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감추어진 수고와 눈물과 헌신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또 경작지의 소출이 성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양식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꾼들의 필요를 돌보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일을 맡기실 뿐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힘과 필요한 양식도 공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무엇을 받을 것인가?”묻지말고, “나는 공동체를 위하여 무엇을 심고 있는가?”물어야 합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열매를 거두고, 기도를 심으면 회복의 열매를 거두며, 헌신을 심으면 공동체가 든든히 세워집니다. 새 언약의 백성은 홀로 거룩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고, 함께 세워져 가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권위와 기업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21–22절 말씀에서는 군주가 받을 땅에 관하여 말씀을 주십니다. 군주는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땅 좌우에 있는 땅을 받습니다. 군주에게도 기업이 주어지지만, 그 땅은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속한 거룩한 구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분명한 경계 안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에스겔 시대 이전의 지도자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백성의 땅을 빼앗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웠습니다. 에스겔 45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군주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 땅을 주신 것의 의미는?

지도자의 특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도자의 권한에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군주에게도 필요한 기업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군주는 백성의 몫을 빼앗아서는 안 되며, 거룩한 구역을 침범해서도 안 됩니다.

참된 지도자는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존중하며 백성의 기업을 지켜 주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도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과 가정의 책임과 사회적 지위는 자신을 높이는 수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섬기도록 주신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권위를 가진 사람일수록 더 절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이 나누어야 하며,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낮은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통치자들처럼 권세를 부리지 말라고 하시며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참된 권위라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고로 우리도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맡은 권위를 자기 뜻을 관철하는 힘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다른 사람의 몫을 존중하며, 공동체의 평화를 이루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에스겔서는 절망의 땅에서 시작하여 소망의 성읍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장면에서 시작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임하고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장면으로 마칩니다. 오늘 본문은 새 언약의 백성이 살아야 할 거룩한 실상을 보여 줍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은 성전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거주지와 경작지, 곧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모든 지파가 함께 땅을 경작한 것처럼, 우리는 각자 받은 은사로 공동체를 함께 세워야 합니다. 군주의 땅에도 경계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맡겨진 권한과 물질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용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 나라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삶 속에서 그 나라의 거룩한 실상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배가 삶이 되고, 노동이 섬김이 되며, 권위가 사랑이 되고, 소유가 나눔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게 될 때 에 세상은 우리의 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말씀은 “그 성읍의 이름을 그날부터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입니다. 그 뜻은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 ”입니다.

그로인하여서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저곳에 계신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라기는 오늘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거룩한 실상을 살아가는 새 언약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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