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0/2026
2026년 8월 30일 주일 새벽 예배
거룩한 실상을 살아가는 새 언약의 백성
에스겔서 48: 15 –22 찬송 334장, 위대하신 주를
오늘 마지막 48장에서는 회복된 백성에게 새 땅을 분배하십니다. 이어오면서 에스겔서의 흐름은 분명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이 다시 돌아온다는 겁니다.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으로 끝나며, 폐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삼마”, 곧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 는 약속으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새롭게 분배되는 땅 가운데 성읍의 거주지와 경작지, 그리고 군주가 받을 땅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얼핏 보면 토지 분배에 관한 행정적인 기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새 언약의 백성이 살아가야 할 거룩한 삶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거룩함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15–20절은 거룩한 구역 안에 마련된 성읍의 거주지와 경작지를 설명해 주는 말씀으로 기록이 됩니다. 그리고 15절은 이 구역이 성읍의 거주지와 들, 곧 경작지를 위한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성읍의 크기는 사방으로 각각 사천오백 척이며, 그 둘레에는 이백오십 척의 빈터가 마련됩니다. 오늘날로 계산하면 성읍은 사방의 길이가 각각 약 2.36km이였으며, 그 둘레에는 폭 약 131m의 빈터가 마련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성읍 좌우에 남은 땅은 농사를 짓는 경작지가 되어 성읍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회복이 성전이나 제사장들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반 백성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회복된 땅에는 성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집과 일하는 장소와 농사를 짓는 밭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공간뿐 아니라 백성이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도 회복시키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은 성전 안에만 머무는 거룩함만이 아니고. 가정과 일터와 인간관계와 물질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거룩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배드릴 때는 경건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가정에서는 상처를 주고, 예배에서는 정직을 고백하면서 일터에서는 작은 거짓을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백성은 예배와 생활을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거룩함은 주일의 예배만 아닌 삶으로 증명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가족을 대함에서 나타나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정직한 거래와 책임 있는 생활로 나타나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전 가까이에 거주지와 경작지가 있었다는 것은 예배와 삶, 신앙과 노동이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정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일터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밭을 경작하는 일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거룩함은 어디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거룩한 말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실상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정직하게 일하고, 책임을 다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 새 언약의 백성이 보여 주어야 할 거룩한 실상입니다.
둘째) 거룩한 공동체는 함께 일하고 함께 누려야 합니다, 18절에 성읍 옆에 남은 땅에서 나는 농산물은 성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양식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19절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성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땅을 경작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회복된 공동체는 특정한 사람만 일하고 특정한 사람만 혜택을 누리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함께 참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지파만을 위한 성읍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모든 지파가 함께 섬기고 함께 살아가는 성읍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몇 사람의 헌신으로만 세워지는 곳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자기가 받은 은사와 직분에 따라 함께 섬길 때 건강하게 세워집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전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하며, 어떤 사람은 안내하고,
어떤 사람은 찬양하며, 어떤 사람은 친교를 준비하고,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을 청소를 하기도 합니다. 근데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맡은 일은 서로가 다를 수 있지만,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성읍을 섬기는 거룩한 일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하나는? 이런 각자의 우리의 섬김이 크고 작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얼마나 충성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감추어진 수고와 눈물과 헌신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또 경작지의 소출이 성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양식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꾼들의 필요를 돌보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일을 맡기실 뿐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힘과 필요한 양식도 공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무엇을 받을 것인가?”묻지말고, “나는 공동체를 위하여 무엇을 심고 있는가?”물어야 합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열매를 거두고, 기도를 심으면 회복의 열매를 거두며, 헌신을 심으면 공동체가 든든히 세워집니다. 새 언약의 백성은 홀로 거룩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고, 함께 세워져 가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권위와 기업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21–22절 말씀에서는 군주가 받을 땅에 관하여 말씀을 주십니다. 군주는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땅 좌우에 있는 땅을 받습니다. 군주에게도 기업이 주어지지만, 그 땅은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속한 거룩한 구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분명한 경계 안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에스겔 시대 이전의 지도자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백성의 땅을 빼앗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웠습니다. 에스겔 45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군주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 땅을 주신 것의 의미는?
지도자의 특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도자의 권한에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군주에게도 필요한 기업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군주는 백성의 몫을 빼앗아서는 안 되며, 거룩한 구역을 침범해서도 안 됩니다.
참된 지도자는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존중하며 백성의 기업을 지켜 주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도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과 가정의 책임과 사회적 지위는 자신을 높이는 수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섬기도록 주신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권위를 가진 사람일수록 더 절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이 나누어야 하며,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낮은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통치자들처럼 권세를 부리지 말라고 하시며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참된 권위라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고로 우리도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맡은 권위를 자기 뜻을 관철하는 힘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다른 사람의 몫을 존중하며, 공동체의 평화를 이루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에스겔서는 절망의 땅에서 시작하여 소망의 성읍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장면에서 시작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임하고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장면으로 마칩니다. 오늘 본문은 새 언약의 백성이 살아야 할 거룩한 실상을 보여 줍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은 성전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거주지와 경작지, 곧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모든 지파가 함께 땅을 경작한 것처럼, 우리는 각자 받은 은사로 공동체를 함께 세워야 합니다. 군주의 땅에도 경계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맡겨진 권한과 물질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용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 나라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삶 속에서 그 나라의 거룩한 실상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배가 삶이 되고, 노동이 섬김이 되며, 권위가 사랑이 되고, 소유가 나눔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게 될 때 에 세상은 우리의 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말씀은 “그 성읍의 이름을 그날부터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입니다. 그 뜻은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 ”입니다.
그로인하여서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저곳에 계신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라기는 오늘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거룩한 실상을 살아가는 새 언약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