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6/2016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성도
열왕기하 6:1~7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 하는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제목을 가져다가 그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 온 것입니다 하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 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할렐루야! 오늘은 참 기쁜 날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새벽에 나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어렵습니다. 부활을 믿는 것보다는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이 훨씬 쉬운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어 왔습니다. 기절설(예수가 완전히 죽지 않고 기절했다가 탈출했다는 주장), 도난설(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다 숨겨 놓고 부활을 전파했다는 주장), 환각설(예수를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허깨비를 보았다는 주장), 신화설(예수는 실재 인물이 아니라 신화라는 주장) 등이 있어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것이 더 신뢰가 갑니까?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비밀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감추려해도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몰래하는 것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사극을 보는 것이 재미 있습니다. 궁중궁궐에서는 비밀이 없다고 합니다. 낮에는 새가 듣고 밤에는 쥐가 듣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다가 숨겨놓고 예수님께서 부활했다고 전파했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결국에는 비밀이 폭로되었을 것이고 오늘날 기독교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저 같은 목사들은 정말로 억울합니다. 목회하다보면 속상한 일도 많구요, 교인들이 속을 썩여도 참아야하고요, 괴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에외입니다만 보편적으로 목회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참 재미없고 힘든 일이 목회일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도 의미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죄를 용서 받을 수도 없습니다. 죄를 용서받지 못하면 천국에도 못갑니다. 아니!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천국도 없습니다.
천국이 없다면 정말로 세상은 살맛나지 않습니다. 여기 이자리에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신분들이 꽤 있을텐데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천국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희망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보낸분들은 아무리 그리워도 다시 만날 수 없으니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때문에 예수 믿는 성도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행복한 분들입니다. 저는 카톡을 합니다. 제 프로필을 보면, 오늘도 행복하세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행복한 사람이 되기에,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기에 오늘도 행복하세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재미 있는 일이 많아서, 돈이 많아서, 권세가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구요! 예수 믿는 다는 것이 부활의 소망을 안고 살아가는 삶이기에 행복한 인생인것입니다.
부활은 기적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겠습니까? 성도들은 기적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은 기적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어떤 분들은 부활절새벽연합예배에 설교분문 성경말씀이 부활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이상하다고 생각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2016년 부활절 아침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선포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사가 베푼 기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호숫가에 빠진 쇠도끼를 물에 떠오르게 한 사건입니다. 쇠덩어리는 물에 가라안ㅅ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쇠덩어리가 떠오르게 되는 사건입니다. 눈을 속이는 속임수 마술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기적 사건입니다.
저는 오늘 삶의 희망을 잃어 버린 분이 있다면 다시 희망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죽음의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면 이번 부활절에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엘리사 선지학교의 한 생도처럼 쇠도끼가 물에 빠져 한숨과 탄식으로 눈물로 지새우는 분들이 혹여나 계시다면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의 부활의 승리가 희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부활은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교회생활하면서, 이민생활하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이런 저런 신앙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헤메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번 2016년 부활절 새벽을 기하여 다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은 ‘다시’, 즉 again,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의미합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갖게 된다면 그것처럼 행복한 일도 없을것입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얻지 못해서 한 평생을 슬픔에 젖어 한 맺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얻지 못하여 죽을 병에 걸려 다시 살지 못하고 스러져 가는 인생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의 기회를 얻지 못하여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 주고 평생을 공허하게 살아가는 인생들도 꽤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제기할 힘이 없어서 기술고 있고 경험도 있는데 세상에서 성공할 기회를 잃고 망연자실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침에 잘 갖다와라! 배웅했는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고, 세월호 배 안에 갇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다시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신앙의 첫사랑을 찾고, 하나님의 첫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잘 해보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세상 일이 그렇습니다. 마음대로 되는 일보다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의 경우에 봉착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무언가 해보려 하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신앙생활을 잘해야지, 예배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야지, 멋지게 봉사도 해야지, 성경도 열심히 봐야지, 새벽기도도 해야지, 목사님도 잘 섬겨야지…
그런데 무엇인가 해보려 할 때에 ‘도끼’가 물에 빠져 기가 꺽일 때가 있습니다. 다시 일어서고 싶은데 안됩니다. 왜입니까? 부활신앙이 가라 앉았기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도끼’가 가라 앉았습니다. 물속에 빠져서 쓸 수가 없습니다.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진지라”(4-5절)
물에 빠진 도끼를 쓸 수 없듯이, 가라 앉는 인생은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열심이 가라 앉으면 냉랭해져서 써먹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라 앉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주 받은 인생이라고 한탄하며 세상을 의지하려 합니다.
믿음이 가라 앉으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꼬인 인생은 절대로 풀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풀리는 것 같아도 또 다시 꼬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슬퍼하는 자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믿음 생활이 가라앉았다고 생각되어진다면, 내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내 환경이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내 짐이 너무 무겁고 힘겹다고 생각한다면 오늘 본문 말씀처럼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가로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어온 것이니이다” (5절)
여기서 “아아, 내 주여” 라는 구절에서 우리들은 애타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1.도끼를 떠오르게 한 것은, 애통하며 갈급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고 찾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나아가 주님을 찾아 부르짖으면 잃어버린 쇠도끼가 떠오르는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 나아가십시요. 다시 살아나신 주님께 나아가십시요. 우리로 하여금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실것입니다. 다시 신앙생활 할 믿음을 주실것입니다. 다시 주님을 사랑할 마음을 주실것입니다.
2.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애통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뿌려보세요. 다시 살아나신 주님께서 안아 주시고 눈물을 닦아 주실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 눈물로 호소하면 죽음과 어둠의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라앉은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는 기적을 보게 될것입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눈물이 있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회복될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통곡은 배신자에서 순교자로 변화될 수 있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살인을 하고도 눈물이 없는 가인은 구제불가능이었습니다.
간음을 했던 다윗은 통곡의 눈물이 있었기에 다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도끼’를 잃어 버리고도 눈물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성결하고 정결한 심령에 대한 사모하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3.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시는 행복한 삶을 위하여서 엘리사의 도움을 받으십시요. 주의 종이 도우심을 받으십시요.
도끼가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기도가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지학교의 생도가 쇠도끼를 찾을 있었던 것은 엘리사, 주의 종의 손을 통해서 나뭇가지를 던질 때에 도끼가 떠올랐습니다. 나뭇가지를 던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모세의 손에 있던 나무 지팡이가 던져질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바로의 신하 술객의 뱀을 이기고 승리한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나무 가지가 던져질 때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가라 앉았던 기도가 떠올라야 합니다. 내 능력을 의지 했던 자아가 부서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잃은 도끼를 찾아야 합니다.
믿음의 도끼, 기도의 도끼, 찬양의 도끼, 헌신과 봉사의 도끼, 말씀의 도끼, ….를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새벽에 예수님 무덤을 다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기적중에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엘리사가 일으킨 기적처럼, 엘리사가 행한 가라 앉은 쇠도끼를 물 위로 떠오르게 하는 기적처럼, 우리를 가라앉히고, 주저 앉히는 어둠과 죽음의 세상을 부활신앙으로 이기는 저와 여러분들과 우리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역 연합회 소속교회들과 전 세계의 하나님의 교회들과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절에 다시 살아나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살기 위해서는 오늘 기적 사건의 시작은 안타까운 형편과 사정에서 주님을 찾는 외치는 외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부활신앙은 가라 앉은 우리를 떠오르게 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