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ormed Church of Closter

Reformed Church of Closter A church in the Reformed Church of America located in Closter, NJ.

Our goal is to connect any and every person, which ever the ethnic background may be, within church and God -- or simply, Cross-Cultural Ministry.

05/08/2022

Happy Mother's Day!
Today, the internet service of the church has a system problem, so the virtual service could not be provided.
Sorry for the inconvinience.

02/07/2021

Feb. 7th: A snow storm day

03/21/2020

The Board of Elders of the Reformed Church of Closter made a decision that the church should not have worship service in person at the church on March 22nd and 29th for COVID-19.
It was hard decision, but safety of congregation is first. Pray for this situation, and blessed on all who fights to overcome this unseen enemy, Corona Virus!

12/03/2018

Finally the repair of sanctuary has been done. Looks almost same as before, but changed many things. Thanks be to God!

04/17/2018

새벽에 읽는 신명기 18장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믿음에서 중요한 두 축이 되는 제사장과 선지자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제사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곳에서 말씀이 나왔듯이 레위 지파에서 두고두고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서 기업이 없어서 다른 지파들이 성전에 드리는 예물로 살아가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레위인들의 기업은 땅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기업이 되어 주실 것이라고 2절을 통해 강조해 주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하고 거룩한 일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레위인들을 돌보는 것은 이스라엘 전체 지파의 공동 책임이었다.

돌보는 일을 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얻어먹는 거지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거둔 곡식, 처음 익은 포도주, 처음 짠 기름, 처음 깍은 양털을 공급하면서 한 형제로 인정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사례를 받는 직원들을 대할 때 이런 태도를 가지고 대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 교인들이 목회자들을 대하면서 존경과 사랑을 드리는 아름다운 관계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간혹 목회자나 직원들을 마치 회사의 고용인들로 생각하는 몰상식한 사람들도 있어서 서로의 관계가 어려워지던 때도 있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누구나 다 동일하다. 감사함을 드리면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하는 일이 있고, 최선을 다해 섬기면 모든 성도들과 교회가 은혜롭고 화평을 이루게 된다. 우리 교회에서 함께 목회하며 섬기는 이들에게 같은 형제를 대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격려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나누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마음을 다 헤아려 알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누구나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가질 수 있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18절의 말씀을 보면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고 하였다. 우리가 귀기울여 들어야 할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말씀이다. 가나안 종교가 행한 것처럼 아들 딸을 희생하거나, 점을 치거나, 무당이나 박수를 통하거나, 귀신을 불러내는 미신적인 행위를 통해 전달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을 예언자라고도 불렀다. 예언이라는 것은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알아내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예언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내 말을 그 입에 둔다”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그 입에 둔 사람이 예언자이다. 자기의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기에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통해 전해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려 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신앙인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가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이 일을 위해 함께 수고하며, 함께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04/17/2018

새벽에 읽는 신명기 17장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교단인 Reformed Church in America(RCA)에는 신앙의 기준이 되는 신조가 4개 있다. 그 중 가장 최근의 신조인 Belhar 신앙고백은 신앙의 3가지 핵심을 이야기한다. 바로 정의 Justice, 화해Reconciliation, 일치Unity이다.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기 위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화해가 필요하고, 그렇게 화해가 이루어진 공동체가 하나의 믿음을 고백하며 일치를 이룰 때 공의가 물같이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정의가 삶의 중요한 가치가 되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놓고 살아갈 수 있는 평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런 사회를 이루어 갈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오늘 읽은 신명기 17장에는 그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임의대로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 일을 행하는 제사장들과 재판장들의 판결을 존중하고, 또 그들 역시 임의로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뜻대로 판결하라고 가르쳤다. 이를 위해서 제사장들과 재판장들 같은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곁에 두고 평생토록 읽고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이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조심스러게 애써야 할 의무가 있었다.

목회를 하면서 가끔씩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데 정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자기 마음에 맞는 것이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믿음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엊그제 잉글우드에 있는 Nature Center에 잠간 들러 가볍게 산길을 걸어본 적이 있다. 도시 안에 있는 아주 나지막한 산이지만 산길로 들어서면 어디가 어디인지 방향을 잡기 어렵다. Trail map을 살펴보니 여러 개의 trail course가 색깔 별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그중 가까운 흰색 trail course를 돌기로 했는데, 찬찬히 살펴보니까 trail 중간 중간에 하얀색으로 된 표식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그 표식들을 따라서 가다보니 길을 잃지 않고 한바퀴를 돌아 나올 수 있었다.

우리의 삶에서 나아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때 우리를 인도해 주는 표지 역활을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정이나 사사로운 감정에 따르다보면 안개 속에 파묻혀 방향을 잃고 말 것이다. 우상을 섬기는 일이라든지, 민사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은 상대쪽에는 커다란 아픔이요 상처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러므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말씀의 기준에 맞게 판단하고, 판결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지도자가 되는 사람들은 이것을 마음 속에 단단히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지도자가 법대로 행하지 않으면 백성이 혼란에 빠지고 만다. 해서 오늘 18절 이하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이른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이 나라에 이런 지도자들이 세워지기 위해 기도하자.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런 지도자들이 되도록 기도하자. 하나님에 대해서 진실한 마음으로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요, 교인들이 되는 소박한 정의가 우리에게서 부터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자.

04/17/2018

새벽에 읽는 신명기 16장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지내면서 지킬 3대 절기를 언급하고 있다. 유월절,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이다. 각각의 절기를 지키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큼 반복해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광야 1세대에 못지않게 광야 2세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 여기에 나오는 세 절기를 설명하면서 공통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 절기를 아무데서나 지키지 말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구별해 지키라는 말씀이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우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라”고 하였다.

유월절과 연결된 무교절이 끝난 뒤 50일째 드리는 칠칠절은 나중에 오순절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이 절기를 지킬 때도 11절 후반부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 할찌니라.”고 하였다.

초막절은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축제를 벌이는 절기이다. 이 때는 집 밖에 초막을 치고 일 주일 동안 지내면서 광야의 장막 생활 속에서 지켜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였다. 그런데 15절 말씀을 보면 이 때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다.

광야의 생활은 떠도는 나그네와 같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서의 생활은 안정적인 정착생활이다. 각자 자기의 영역으로 흩어져 자기 일에 열심을 내는 생활이다. 개인의 INTERESTING에 의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인의 삶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 커다란 절기는 자기의 마음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 와서 절기를 지키도록 하였다.

이스라엘이 지키는 절기의 근원에는 출애굽의 경험이 담겨있다. 유월절도 출애굽의 기억을 잊지 않도록 하고, 칠칠절을 지키는 것도 12절을 보면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찌니라.” 하였다. 초막절의 의미도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광야 40년동안 동행하심에 대한 기억이다.

구원자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이스라엘의 절기이다. 과거의 참담했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며 기뻐하는 것이다. 새로운 터전에서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고 해서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그렇기 때문에 흩어져 살며 자기의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다가도 절기 때가 되면 함께 모이는 것이다. 함께 모여 한 가족이요, 한 운명 공동체요, 같은 경험을 나눈 사람들임을 확인하며, 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아무데서나 함부로 단을 쌓지 말고, 꼭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 모여 예배하며, 즐거워하며, 음식을 먹고, 축제를 즐기라고 하신다.

교회가 왜 중요한가? 아무데서라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데 굳이 교회가 필요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야곱이 길을 가다가 길에서 노숙하고, 잠에서 깨어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서 어디서든 예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도 꼭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들이신 뒤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중앙성소에 모여 예배하도록 하셨다. 그것에 당신의 이름을 두셨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오늘 우리가 교회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건물때문 만이 아니다. 이 교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함께 모여 우리와 우리의 자녀와 노비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가 함께 어우러지는 신앙 공동체를 이루라는 말씀을 오늘 듣는다.

이제 우리가 매 주일 마다 교회에 모이는 것은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을 celebration하는 것이다. 함께 모여 예배하며, 함께 먹고 즐거워하며, 우리 가운데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함께 이루어 가는 한 신앙공동체를 통해 어느 누구도 소외되는 일이 없는 거룩한 무리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04/17/2018

새벽에 읽는 신명기 15장

미국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신문에 총기 살인사건이 보도가 되었다. 혼자 살고 있던 백인 노인 분이 우편배달부를 총으로 쏴서 죽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죽인 이유가 너무나 황당했다. 노인 혼자 살면서 들어오는 수입은 별로 없는데 전기세, 전화세, 가스비, 모기지, 자동차세, 보험료 등등 돈이 나갈 bill들은 매 달 돌아오니 생활이 너무 힘들었더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매달 꼬박꼬박 bill들을 배달오는 우편배달부가 미워져서 홧김에 쏴버렸다는 것이다. 참 웃어 넘기기에는 너무나 씁슬한 이민생활의 이야기로 들었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말씀처럼 부채를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 나라에도 파산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부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숨 쉴 수 있는 여력을 남겨주는 법이 있기는 한 것 같다. 하지만 신명기 15장에서 말하는 면제의 제도는 모든 사회 공동체에게 다 같이 해당되는 사회법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누구나 매 칠 년 끝에는 이웃에게 꾸어준 부채를 면제해 주는 면제년을 지키도록 하였다는 말이다. 매 칠 년이라고 하는 것은 안식년을 말하는 것이다. 안식년이 돌아올 때 마다 빚진 것을 모두 탕감해주고, 탕감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법을 잘 지키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축복을 받게 될 터인데, 개인적으로는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5절)고 하였고, 국가적으로는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나라를 치리할 지라도 너는 치리함을 받지 아니하리라.”(6절)고 하셨다.

빚을 안고 산다는 것은 쫓기는 삶이다. 물론 욕심이 과하여 빚을 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지금처럼 장사가 경제의 주요수단이 아니었다. 한 해 농사가 잘못되면 살아갈 일이 막막해진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빚을 지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이런 빚이 계속 이어지면 사회적으로 빈부이 격차가 심한 사회가 된다. 빈부의 격차는 인격의 무시로 이어지기 쉬운 함정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은 인종과 지역과 언어에 관계없이 모두가 소중한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물며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이런 관계는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식년마다 경제정의를 실현하도록 하셨다. 부자들에게 양보하는 법을 따르라고 말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자선의 손길을 손해보는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당부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생각이요 믿음이다. 인격의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야 말로 성도들이 가장 조심스럽게 지켜야할 부분이다.

그리고 7년을 7번 거듭한 49년이 지난 50년 째는 희년으로 지키게 하셨다. 이 해에는 모든 토지들도 원래의 주인들에게 다 돌려보내도록 하였다. 하인으로 부리던 사람들까지 모두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도록 하였다. 그럼으로써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사회적으로는 경제정의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물론 지금 우리가 구약의 이런 희년의 법을 문자적으로 따라야 하느냐 하는 것은 시대와 문화에 따른 해석의 문제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안식년과 희년이라는 제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셨다는 것이다. 나눔과 베품이 살아있는 공동체, 재물보다 말씀이 앞서는 신앙 공동체가 세워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차별이 없고, 속박이 없어, 누구라도 자유롭고, 누구라도 하나님을 기쁘게 섬길 수 있는 그런 공동체의 모습이 우리 안에서 다시 시작되기를 소망한다.

03/16/2018

새벽에 읽는 신명기 14장

우리가 매일 변함없이 하는 일은 먹고, 마시고, 입고, 자는 일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서 의식주는 3대 기본사항이라고 말한다. 의식주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에서 삶의 방향과 내용이 바뀌기도 한다. 오늘의 말씀은 바로 이런 의식주의 문제 앞에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모습을 유지하느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내용이다.

3-21절 까지의 말씀에는 매일 대하는 식탁에서 구별된 먹거리 문화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하였다. 그리고 15-29절까지는 구별된 헌물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는 내용이다.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은 종교적인 의식의 문제만이 아니다. 주일날 교회에 온다고 해서 그것으로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오류이다. 하나님께서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신앙인으로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이지, 종교적인 행위 한 두가지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하실 분은 아니시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신다.

일상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먹는 음식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구별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구별하는 마음 씀씀이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 바로 가나안 땅에서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주인공들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지 못할 짐승의 목록이 열거되어 있다. 먹을 수 있는 짐승은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도 하는 짐승이고, 물고기는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것들이다. 새 종류에서도 먹지 못할 것들이 소개되어 있다.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맹수들과 다른 작은 새들을 잡아먹는 맹금류는 먹지 못할 것으로 분류되었다. 왜 맹수나 맹금류를 먹는 것을 금하였을까? 아마 이 짐승들이 다른 짐승들을 잡아 먹을 때 피에 대한 구별을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금하신 것은 고기를 피째 먹는 것이었다. 그것이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법도이다.

물론 우리는 지금 여기에 열거된 짐승들 가운데 무엇을 먹고 먹지 않고의 문제를 형식적으로 따르지는 않는다. 예수님께서 이미 사람이 무엇을 먹느냐에 의해 정결함과 부정함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마가복음 7:15-16에서 말씀하셨다.

중요한 것은 먹고 마심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서도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길을 걷는 것이다. 먹는 것에서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을 읽어내면서, 그 뜻을 따르는 먹거리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 작은 차이가 우리의 믿음을 바르게 세워 나가는 것이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신명기에서 보여주는 신앙공동체의 삶의 특징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그 해의 농사를 통한 소출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소출의 십일조를 구별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실제적인 주인이 누구인지를 고백하는 분명한 표시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동시에 돈을 섬길 수 없다. 가나안의 종교는 자기의 소득을 증대하는 풍요를 섬기는 종교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모든 것이 주께로 부터 왔음을 인정하라고 하신다. 소득을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우리의 분명한 신앙의 행위이다.

십일조는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 기업이 없거나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데 사용되도록 하였다. 실제적인 삶에서 만나는 어려운 사람을 위한 나눔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구별됨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고백을 무엇으로 드러내겠는가?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늘 먹고 마시는 것들을 통해서도 기뻐하시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쓰는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인정하기를 원하신다는 것도 잊지말자. Food Locker가 제대로 채워졌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며 마음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있지 않을까? 그러한 구별의식우리를 영적으로 한 걸음 더 하나님과 가까와지게 만들 것으로 믿는다.

03/16/2018

새벽에 읽는 신명기 13장

지난 12장에 이어서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만나게 될 실제상황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 이어지고 있다. 모세 시대는 고대사회이다. 청동기 문화에서 철기문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대이다. 과학의 시대가 아니라 신화의 시대요, 종교의 시대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대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회적인 힘은 종교에서 나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땅에 들어가서 만나게 될 새로운 종교 현상들은 이들이 지금까지 섬겨왔던 여호와 하나님과는 아주 다른 상황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가나안의 종교는 눈에 보이는 신앙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시므로 어떠한 형태로도 형상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가장 첫 두 계명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되, 어떠한 형태로도 형상화 할 것을 금하셨다. 형상화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이미 그 형상의 한계 안에 제한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보다 훨씬 더 크고 넓고 높고 깊으신 분이다. 그 한계를 측정할 수 없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사람들에게 찾아드는 유혹 중의 하나가 신앙의 경험화이다. 물론 체험은 우리를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않도록 붙잡아 주는 힘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그리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신 것은, 우리의 감각적인 경험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그 말씀이 우선된다는 것이다.

가나안의 종교, 세상의 종교, 모든 우상은 이것에 반대로 나간다. 보이는 신앙, 만져지는 신, 감정적인 교감을 우선하게 만든다.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실제로 손으로 쥘 수 있는 형상으로 만들어진다. 우상과 이단을 전파하는 사람들의 신앙이 바로 이렇다. 쉽게 빠져드는 이유이다.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만히만 있어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낼 수 있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함을 누리도록 인도하신다. 그리고 그 풍성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생각과 고민과 결단, 행동이 함께 동반되는 믿음으로 가능하도록 하셨다. 그 믿음이 끝을 측정할 수 없는 무한한 하나님의 축복의 문을 매일 열어가는 열쇠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짜 선지자, 가짜 해몽가들을 가차없이 멸하라고 명하신다. 심지어 가족 친지 가운데서도 그렇게 잘못 신앙을 인도하는 사람은 용서하지 말라고 하신다. 어떤 성읍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바르지 못한 신앙으로 이끌어가려고 한다면 그 성읍 전체를 멸하라고 하셨다.

무자비한 하나님이라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 그보다는 신앙의 작은 틈도 보이지 말라는 뜻일게다. 믿음은 든든히 다지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쉽게 무너진다. 신앙이 그처럼 쉬이 무너질 수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찌 바른 신앙이냐고 반문 할 수 있다. 옳은 말이다. 말씀에 단단히 뿌리를 박은 신앙이라면 그런 일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믿음은 또한 영적인 부분이다. 누구도 완전할 수 없고 완벽할 수 없다.

그러기에 오늘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말씀하는 것이다. “내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한느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정직을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18절)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17절 후반절에 있는 약속이다. “여호와께서 그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너의 열조에게 맹세하심같이 네 수효를 번성케 하시리라.”

03/16/2018

새벽에 읽는 신명기 12장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 후에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지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말씀대로 순종하여 나라가 튼튼히 설 때에 그들이 신앙의 길을 밝혀준 것이 바로 신명기에 나타나는 율법의 말씀들이었다. 백성들과 통치자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을 때는 율법을 다 잊어버렸다. 그럴 때 신앙의 회복을 위한 기준이 되었던 것이 바로 신명기이다.

열왕기 후서에 보면 요시야가 왕이 된 이 후에 그 아버지 므낫세로 인하여 완전히 허물어진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성전을 수리하였다. 그 때 성전에서 숨겨두었던 율법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다. 그 두루마리에 적힌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요시야 왕은 옷을 찢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백성들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율법에 기록된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길 것을 명한다. 그 때 발견된 율법 두루마리가 바로 신명기의 율법서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하나님의 율법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이 신앙의 기준이 없었다. 말씀을 열어 보고 들어보니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졌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신명기 12장 부터 26장의 내용은 율법의 세부적인 지침들이다. 여기에 나오는 말씀들은 출애굽기 21-23장에 나오는 내용과 비슷하다. 하지만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게 될 때 그 땅의 다신교적인 환경에 휩쓸리지 말고 믿음의 정절을 지켜 나갈 것을 엄하게 명하고 있다.

특히나 우상의 모든 제단들과 산당을 타파한 뒤에 전쟁이 끝나고 안식을 찾게 되면 한 장소를 정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하였다. 아무데서나 자기 마음대로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반드시 하나님이 지정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엄하게 명하신다.

예배는 내 감정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드리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과 정하신 사람들로 하여금 정해진 장소에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가 된다는 것이다.

가나안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전쟁을 치뤄야 하기 때문에 한군데 머무를 수 없었다. 성막도 전쟁터에 의해 옮겨 다녔다. 광야에서 옮겨 다닐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면 모든 이스라엘 지파가 각자 분배받은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게 된다. 성막도 더 이상 옮겨다닐 이유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그럴 때 한 곳을 지정해 예배의 장소로 삼으라고 하신 것은 흩어진 백성들을 하나의 신앙공동체로 연합시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하나님 안에서는 어디에 있든지 다 한 백성이요, 한 자녀이기에 예배를 통해 하나가 되고, 예배를 통해 한 믿음을 나누고, 예물로 바친 짐승의 고기를 나누어 먹으면서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을 배려하는 복지적 기능도 감당하였다.

우리의 신앙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예배이다. 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예배 처소를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성도들이다.

가나안에 정착하고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고기를 먹는 규정이었다. 광야 생활에서는 짐승을 잡을 때 일단 성막에 끌고가서 거기서 잡아 피와 기름을 화목제로 드리고 난 뒤에 그 고기를 먹도록 하였다. 하지만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는 성막에 짐승을 끌고 가지 않아도 되었다. 단 피를 먹는 것은 여전히 금하였다. 그 피에는 생명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신앙이 내용은 가나안의 종교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가나안의 종교는 감성적이요, 현세적이었다. 예배의 주관자도 사람이요, 어디서든지 자기의 마음에 드는 곳에서 의식을 치렀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만 있다고 좋은 신앙이 아니라, 말씀을 따르는 신앙이 좋은 신앙이다.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자. 우리가 예배하는 이 택하신 처소를 소중하게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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