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아버대학촌교회

앤아버대학촌교회 Pastor : Samuel Sang Park (박상춘 목사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상실한 이 시대를 애통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이루어 지기만을 소망하는 교회 입니다. 미련하고 연약한 자 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는 교회 입니다. CTC Ann Arbor is a church that strives to live as Christ did in this world, to seek after God with a repentant heart, and waits for His kingdom. The Living God, who works through the people that the world considers foolish and weak, leads and guides this church through the Spirit.

08/11/2019
07/21/2019
“다윗 주위의 사람들 ” (People around David)(삼하 2:12-23)다윗은 이유없는 시기와 질투로 10여년의 광야생활로 도망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골리앗과 사울, 블레셋과의 전쟁등으로 살아오며 하나...
02/17/2015

“다윗 주위의 사람들 ” (People around David)

(삼하 2:12-23)

다윗은 이유없는 시기와 질투로 10여년의 광야생활로 도망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골리앗과 사울, 블레셋과의 전쟁등으로 살아오며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 모시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그러한 삶에도 다윗 주위의 사람들은 다윗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스루야의 아들들과 같은 하나님의 법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다윗 가까이에서 다윗을 지치게 만듭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며 나아가야하는지 한번 묵상해봅시다.
1. 다윗은 힘든 세월을 마치고 이제 이스라엘의 왕의 위치에 올라있다. 그러나 다윗을 지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넬의 아들 아브넬과 요압, 스루야의 아들들 (삼하2: 12)
2. 같은 상황과 여건에서 살아오지만 다윗이 끊임없이 갖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법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
3. 자신들은 다윗의 동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다윗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
4.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5. 마가복음10: 35-37,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교훈) 우리의 신앙을 보면 이러한 사람들이 결코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늘 주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엘과 아히멜렉이 있는 가하면, 요나단 같은 사람이 다윗에 있는가 하면 요압과 아브넬같은 정치와 술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다윗의 주위에서 힘들고 지치게 합니다. 복음은 이러한 상황속에서 복음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 속에서 복음은 복음으로 역할을 하고 잇다는 사실입니다.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아브넬과 요압 그리고 스루야의 아들들의 이야기를 3장에 걸쳐서 이야기 하는 이유는 뭘까요? 믿는 다윗과 같은 신앙인의 삶을 지치게하는 이러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이 다윗의 삶을 통해 이뤄지고 그들의 삶이 다윗의 삶의 열성적인 조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적용) 우리의 신앙은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더없는 열정으로 살며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법을 함께 즐거워하고 싶지만, 오히려 다윗의 삶을 지치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보려고 할 때 오히려 나의 가까운 친구/ 형제/자매들이 나의 신앙을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할 때 가 흔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더욱 우리신앙을 견고케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대위임령" (The Great Commission) - 김성모 선교사님[마태복음 28:16-20]마태복음 28:18-20 절에는 ‘대위임령 또는 지상사명(the Great Commission)’이라는 타이틀이 붙여...
02/10/2015

"대위임령" (The Great Commission) - 김성모 선교사님

[마태복음 28:16-20]

마태복음 28:18-20 절에는 ‘대위임령 또는 지상사명(the Great Commission)’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모든 인류를 구속하실 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기 바로 직전에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이기에, 교회가 그 만큼 중요하고 비중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제자를 삼으라”는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을 남겼을까요?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민족에 교회를 많이 세우라!”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라고 하셨을까요?

1. 교회 망할 수 있다.
2. 내 신앙도 망할 수 있다.
3. 교회, 내 신앙이 망하지 않으려면
4. 앤아버 대학촌교회 10 년 후 모습은?

적용)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입니까? 그러면, “제자를 삼으라”는 대위임령(Great Commission)은 선택이 아닙니다. 어떻게 현재의 나의 삶을 통해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이 위임해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제자를 삼으라”는 사명에 순종하기 위해서 내가 가야할 곳은 어디일까요?

“하나님의 방법” (The Way of God)(역대상 23:1-6)이스라엘의 두번째 왕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660 번 그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고, 오늘 본문이 속한 역대상 총 29...
02/02/2015

“하나님의 방법” (The Way of God)

(역대상 23:1-6)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660 번 그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고, 오늘 본문이 속한 역대상 총 29 장 중에서 11-29 장이 다윗의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다윗의 삶은 분명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산 증거가 아닐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삶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려는 마음이 누구에게든지 절실한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서전을 남기는 일에, 어떤 분들은 자녀들에게 물려줄 유산을 위해,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위해 선교로 등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산 다윗은 그의 삶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다윗이 나이가 많아 늙으매 아들 솔로몬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1 절).
2. “이스라엘 모든 방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모았더라”(2 절)
3. “레위 사람은 삼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니 모든 남자의 수가 삼만 팔천 명인데 그 중의 이만 사천 명은 여호와의 성전의 일을 보살피는 자요 육천 명은 관원과 재판관이요 사천 명은 문지기요 사천 명은 그가 여호와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만든 악기로 찬송하는 자들이라” (3-5 절)
4. 레위사람이 다시는 성막과 그 가운데서 쓰는 모든 기구들을 멜 필요가 없다 한지라 (역대상 23:26 절) (적용) 당신이 다윗왕이라면 무엇을 하실것입니까? 젊은 한 때를 하루 24 시간도 모자라서 바쁘게 일과 싸우며, 일에 지져서 살면서 나의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지 않겠습니까? 레위인의 일이 뭐그리 중요하냐? “하나님도 좋고 예배도 좋지만 일을 열심히 해야 먹고 사는 일이 아니냐?”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레위인 즉 교회섬기는 일 (찬양팀/성가대/예배준비/헌금/ 안내/주일학교)등이 나의 성공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주부들은 좀 아이가 크면 섬기지… 건강이 회복되면 하지… 일단 공부 졸업한 후에, 직장 잡은후에, 애기낳고 키운후에, 좀 직장이 안정이 된 후에… 내 직장 일이 바쁘고 공부가 바쁘고, 가정일이 바쁘면 그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 일은 나중에 시간 남을 때 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다윗은 왕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이 작은 레위인의 일(?)들을 소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방법을 배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http://youtu.be/wvj5ceaLtR0

"다윗을 통해 본 그리스도의 사랑"(사무엘하 9: 1-13)오늘 말씀은 다윗의 일생에서 수많은 고난과 광야생활을 거쳐 이제 이스라엘 왕으로 자리를 굳혀가고있었던 상황에서 힘없이 인생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서서히 죽어...
01/27/2015

"다윗을 통해 본 그리스도의 사랑"

(사무엘하 9: 1-13)

오늘 말씀은 다윗의 일생에서 수많은 고난과 광야생활을 거쳐 이제 이스라엘 왕으로 자리를 굳혀가고있었던 상황에서 힘없이 인생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사울왕가의 유일한 후손 “므비보셋”을 감정이 아닌, 맑은 샘물에서 올라오는 진정한 사랑으로 대하는 다윗의 모습은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운데 성숙된 풍성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한 영혼을 통해 표출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체를 다윗의 삶을 통해 배우도록 합니다.

1.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의 어린시절 (삼하 4: 4)
a. 자신의 인생이 그 누군가에 의해 짓밝힌 불구자 “므비보셋”
b. 이제 조용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울왕가의 후손으로 살아가는 “므비보셋”

2. 다윗의 부르심으로 다윗 궁전에 선 “므비보셋” (삼하 9:1-13)
a. 자신의 이름같이 “지독한 치욕”아래 살아가고 있을 때 드디어 다윗왕에게 나타나는 “므비보셋”
b. 선정하는 다윗왕 옛 친구 요나단과의 우정의 약속을 잊지 않는 다윗왕의 신실함 (삼상 20:42)
c. 하나님께 신실했던 다윗왕은 자신의 절친했던 친구 요나단에게도 신실하다. (삼하 9:7)

3. 다윗이 잠깐 왕권의 위기에 있을 때 배신한 “므비보셋” (삼하 16:3, 19:24-30)

교훈 1)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무한한 희생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박하나 힘이있는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생명을 살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교훈 2)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약속에 신실하다. 사랑은 신실함으로 시작한다.
교훈 3) 사랑은 배신까지 당할 수 있음을 미리 받아드리는 결정이다. 사랑의 대가를 원수로 갚는다 해도 그것을 묻지 않겠다는 결정이요 결단이다.

“헌신의 진정한 성경적의미”(요한복음 15:1-16)오늘은 앤아버대학촌교회 2015년 임원/집사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저는 오늘 성경에서 의미하는 “헌신”에 관한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눔으로 자칫 잘못된 “헌신”으로...
01/20/2015

“헌신의 진정한 성경적의미”

(요한복음 15:1-16)

오늘은 앤아버대학촌교회 2015년 임원/집사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저는 오늘 성경에서 의미하는 “헌신”에 관한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눔으로 자칫 잘못된 “헌신”으로 빚어지는 각종 오해와 부작용을 피하고, 주님의 구원받은 자녀로서의 진정한 “헌신”을 통해 영향력있는 주님의
제자로 우뚝 서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 먼저 선경적인 “헌신” 이란?

헌신한다 = 위임한다 = 맡긴다. = 내어놓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에게 부탁할지어다 (파라티데수도산)“ (벧전4:19)

헌신한다 = 신뢰하다 = 믿다.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하지 (에피스도산) 아니하셨으니“(요2:24)

2. “헌신한다” 라는 뜻은?

= 나의 주가되신 예수님께 맡긴 나의 모든 것을 더 이상 내 것으로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3. 연합한다. (4절)

= 가지가 포도나무에 의탁하는(부탁하는) 것과 같다.
= 주님의 몸에 연합(침례/세례)되었다는 뜻이다.

4. 헌신의 결과 (예수안에 거하면) (6-7절)

= 가지가 열매를 맺는다.

교훈1) 그러므로 부분적 헌신이란...마치 누구를 위하여 나의 일부분(시간과 일부와 나의 물질 일부 또는 나의 삶의 일부)을 그에게 드리겠다는 것이 헌신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적인 헌신은 열매가 없다.

교훈2) 그러므로 온전한 헌신이란...가지가 포도나무(예수)에 붙어있는 온전한 연합을 말하며, 예수안에 있는 사랑이 우리(가지)를 통해 과실을 맺는 삶이 헌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헌신이란 내가 무슨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내안에 내가 주님안에 거하는 관계속에 이뤄지는 사랑의 열매가 바로 헌신이라는 것이다.

교훈3) 그러므로 헌신은 어느특정인의 것이아니라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의 몫이다.

신년특별새벽기도회 “세상을 이기는 이김” (6) 은혜(사무엘하 7:1-28)1절: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원수를 무찌르시고,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입니다. 다른 왕하고 다릅니다. 평...
01/17/2015

신년특별새벽기도회

“세상을 이기는 이김” (6) 은혜

(사무엘하 7:1-28)

1절: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원수를 무찌르시고,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입니다. 다른 왕하고 다릅니다. 평안히 궁에서 사는 왕 하나님이 세우시고 통하여 일하시는 왕이 바로 다윗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증거하는 왕이라는 것입니다. 골리앗도 사울도 죽었습니다. 만사가 하나님으로 자리가 잡혔습니다, 하나님의 종 왕입니다. (묵상: 이런 삶을 살았던 다윗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면에서 더욱 친근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이 증거하시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까? 다윗이 하나님이 증거하시는 왕이 되었다는 것은 다윗의 삶속에 숨쉬는 것 부터 모든 관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늘 함께 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2-3절; 다윗은 막내 “하카톤” 주목받지못했던 목동시절 베들레헴에서 시작한 그의 인생은 오랜시간을 걸쳐 광야의 삶을 지난후에 이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왕(예루살렘)의 자리에 약 20여년만에 도착하였다. 이제 다윗성의 집도 있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젠 많은 것을 받은 다윗은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것이 생겨 그의 선지자 나단에게 이야기합니다. 나단선지자는 대찬성을 합니다(3절). (묵상: 늘 기도만하며 “주세요” 받으면 응답받았다고 하며 받는 신앙을 갖고있었던 다윗이 웬일로 하나님꼐 드린다고하며 하나님의집을 짓어드린다고 합니다. 참 기특하지요?

4-5절 : 하나님께서 나단선지자에게 멈추라고 하신다. 당혹스럽다. 성도가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한다는 데 기쁜 일이 아닌가? 헌신이 매말라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성도들이 이젠 은혜를 받고 안정된삶을 살면서 감사의 제목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마음에 “아니오”라고 말해야하는 나단 선지자의 입장이 참으로 당혹스럽기 짝이없습니다. 나단선지자는 혹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이 우리인간으로볼떄 기특한 일이고 감사한 일이고 가득이나 헌신이 않된 성도들가운데 하겟다고 하는데 대론 그것이 위험할떄가 있음을 나단선지자는 꺠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만들어야하는가?

6-17절: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고? 잊어버려라. 지금 내가 너를 왕으로 세운 것은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세워줄려고 한다. 네가 나를 위하여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너를 통해 이 왕국을 세우는 중이다. 집을 짓는 자는 나지 네가 아니다. 하나님의 집을 짓는다는 것을 너는 착각하고 있구나.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짓는다고하면서 온통 나라를 일터로 만들며 망치소리 벽돌나르는 소리등으로 사람들은 나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하는 일에 집중하게될 것 아니냐? 지금까지 내가 이 땅에서 집이 있었느냐? 내가 집을 원한다고 이야기 한적이 있느냐? 네가 집을 짓는다면 내가 하는 일에 사람들이 집중하도록 하는 일이 바로 네가 해야하는 일이지 네가 나의 집을 짓는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온통 너의 일에 집중시키는 것은 옳치 않다. 사울왕은 이일에 실패를 했다. 처음엔 내일을 한다고 했다가 점점 내 이름으로 자기일을 했다. 나의 주권을 증거하기위한 왕권이 바로너다. 그리고 내 아들때에 주권자가 바로 나임을 내아들이 지을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에게 집을 짓겠다고 한 말에 대한 하나님의 충고는 참으로 자세하고 섬세하시다. 먼저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신일 과 지금하고계신일과 그리고 앞으로 하실일을 일인칭 “내가”라는 말씀으로 간략명료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윗이 집을 짓겠다고 한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묵상: 다윗의 말과 마음은 하나님을 위한 마음으로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참으로 다윗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으로 가득찬 다윗이 자신으로 가득차게되는 순간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7:2절에서와 같이 그만 성공에 취해서 호의를 베플겠다는 것이다. 위험한일이다. 이 말씀가운데는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좋은 집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집을 자신의 지위를 사용해서 좀 대단한 일을 해드릴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다윗왕이 계속나아갔다면 아마도 그의 왕업은 실패했을것입니다. 이럴 때 바로 나단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이러한 것을 즉각 분별할 수 있는 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16:13-20 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막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주님꼐서 가르쳐주시는 것과 흡사합니다.

18절: 다윗은 앉아서 식은 땀을 흘리면서 주님의 이 말씀이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소중하게 기도하는 장면이다. 이것은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한 순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다윗의 삶의 총 결산지가 바로 여기다. 다윗이 다윗이 된 것은 비로 여기다. 다윗은 옳바로 깨닫고 나단 선지자의 말씀을 받아드린다. 자신이 다른 욍들처럼 권력과 부와 권세를 휘두르는 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왕권을 위한 세우심을 받은 왕이라는 사실을 똑바로 깨닫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의 계획을 멈춥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입니다.아주 잘나갈 때 남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막는데 다윗은 그 음성을 듣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세상을 이기이라는 지난 5일간 다윗의 삶속에 역사하시고 빚으시는 하나님의 작품 다윗의 영성이라는 것 아닙니까?

19-29절: 다윗의 기도입니다. 이기도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일인칭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셨다는 뜻입니다. 이제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을 24번의 일인칭 동사로 말씀하셨습니다. (4-17절). 다윗은 이제 “그것”으로 부르던 것을 “당신”으로 부르는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이인칭 대명사가 45번 나옵니다. 자신으로 가득찼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 바뀌었음을 고백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시편 2편을 보면 이때 심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교훈) 때로는 무엇을 만들어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정확히 통찰하는 일…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주님의 말씀이 아닌가요? 여기서 가만히 있는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볼수있는 영성을 갖추고 그 말씀이 꺠달아졌을 떄 즉각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하는 일임을 힘주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년특별새벽기도회 “세상을 이기는 이김” (5) 당신의 진정한 승리를 위하여(사무엘상 30장, 마태복음 25:37-40)1-6절:  이당시 다윗은 자기와 함께한 병사 600명과 불레셋 가드왕 아기스와 함께 군사작전을...
01/16/2015

신년특별새벽기도회

“세상을 이기는 이김” (5) 당신의 진정한 승리를 위하여

(사무엘상 30장, 마태복음 25:37-40)

1-6절: 이당시 다윗은 자기와 함께한 병사 600명과 불레셋 가드왕 아기스와 함께 군사작전을 위해 떠나있을떄 오랜기간동안 원수였던 아말렉 족속이 침략하여 남겨놓은 시글락에 있던 젊거나 늙은여인들 한사람도 남기지않고 노예로 모두 끌고 그곳을 떠났다고 기록합니다. 이때 그당신 돌아온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슬픔에 잠기고 급기야는 리더인 다윗의 본질로 이 급한 사태를 수습하며 나아갑니다. 그의 책임으로 이것을 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슬픔이 분노가 되어 주민들은 다윗을 돌로 쳐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다윗은 본질로 수습합니다. 다윗은 역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의 분별력이 잇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가 분별함을 얻고 용기와 확신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참으로 소중한 영적 리더십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광야생활동안에 하나님의 법을 재우고 기도하는 삶을 배웟고 익혔으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몸에 베었습니다. (묵상: 리더십의 핵심입니다. 이유는 리더기떄문에 감당해야하는 몫입니다. 리더에게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분노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분노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해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몸되신 교회/가정/직장 어느공동체의 리더십은 본질위에 서서 분별을 해야하는 자리이므로 영적인 분별과 영성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한 실정입니다. 특히 목회자와 목자 그리고 임원집사님들께서 헌신한다는 것은 이러한 교회공동체를 위해 본질적인 말씀의 분별이 리더십의 소중한 덕목이라는 아니라 할수없는것입니다)

7-8절: 영적인 멘토를 찾아갑니다. 이비아달 제사장을 찾아가 조언을 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앞에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아 확신하게 됩니다. 외부의 급한 상황가운데서도 요동치 않고 자신이 광야생활에서 배운 자신의 정체성을 기반으로한 기초를 세우고 아비아달과 함께 기도한후 하나의 계획을 가지고 나옵니다.(묵상: 모든 정책이 단편적이고 근시적인경우는 문제를 문제로 보는 데서 옵니다. 분노를 테러로 해결해보자는 것은 결국 분노만을 낳을뿐입니다.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노표출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복음의 본질앞에서 다시 문제와 상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합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본질을 택하여야 합니다)

9-10절 그들을 뒤쫒아가서 다시 찾으라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600명의 병사를 데리고 추격을 합니다. 그러자 브솔시내라는 곳에 도착하여 더 이상 지치고 탈진하여 따라올수없는 사람들을 그곳에 머물러 있으라 한후 400명만 데리고 브솔시내를 건너 추격을 합니다, (묵상: Leader는 follower 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따라올수없는 사람을 끌고가지 말아야 합니다. 연약한 자/ 지친자/나약한 자는 브솔시내에서 머물게하는 것은 진정한 영적 리더십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11-15절: 그떄에 애굽출신인 아말렉 군사가 몽이아파 병들어 쓸모가 업다고 느껴져 버림을 받은 죽어가는 한 병사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병사를 먹이고 치료하여 살립니다.일단 사라립니다. 생명이 소중하기때문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냐고? 이것이 아말렉 리더십과 다윗의 리더십의 차이입니다. 삯군과 목자의 차이입니다. (묵상: 다윗의 군사들은 속히 브솔시내를 건너 하루라도 속히 잃어버린 자기백성들을 찾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세요. 다윗은 아말렉은 그 한사람 병든자를 버렸으나 다윗은 그 한사람을 살리는 데 우선을 둡니다. 다윗이 그 애굽출신 아말렉종을 살린 이유가 그들의 향방을 알려고 이 한사람을 살렸다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11-12절에 최선을 아해 한사람을 살려냅니다. 한사람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다윗의 모습은 역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그 종을 살리기전에 그 종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아말렉의 정보를 얻으려고 살린 것이 아닙니다. 그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여겨 살린것입니다. 잃어버린 자기 백성성을 살리는 것은 아말렉의 종 그한사람 살리는 일부터 시작된다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진실된 리더십입니다. 우리교회 집사님들은 기본적으로 만나며 사랑하며 를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있습니다. 한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다는 것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자기를 희생해서 섬기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섬길수가 없습니다. 다윗의 600명을 섬길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한사람에 대한 철저한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왕으로 섬길수가 있었습니다. 영혼에 관심이 없으면 일단 공동체리더는 될수가 없습니다. 선교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만사로 섬기지않는 분은 임원으로 또는 단기선교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한 사람을 섬겨본 경험과 마음이 없는 사람의 단기선교는 동정심/행동없는 마음뿐일수가 있습니다. 복음은 행동(사도행전)을 낳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섬기는 단기선교가 자칫 단기여햏이 될수있습니다. 생명의 열매가 없습니다)

16-20절: 이제 그 종으로부터 그들이 있는 곳을 알고 추격하여 모든 것을 다시찾아 돌아옵니다. 한 영혼을 버린 아말렉 민족은 춤추며 향락을 즐기나 결국 멸망하고 맙니다.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승리한것 같으나 실패합니다. 승리한줄알고 춤추고 잔치를 벌리나 그것은 하나님의 열매가 될수가 없습니다)

21-25절: 돌아올떄 함께가지아니한 200명에대하여 악한자들과 불량배들은 그들에게는 분깃을 주지말자고 합니다. 다윗은 그것을 본질로 분별합니다. 이전쟁은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리더입니다. 말씀의 분별을 갖고 행동하고 사고히는 것이 불량배와 다윗의 차이입니다. (묵상: 교회공동체는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분리하고 이간하고 나누는 일은 해서는 않됩니다. 그이유는 교회/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
교훈) 진정한 주님의 자녀는 내가 공동체의 속한 지체라는 의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만의 신앙, 나만의 생각, 함께 함이 없는 개인주의등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분리시키고 급기야는 우리가 열매없는 일에 시들어진 초라한 능력없는 신자로 전락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김은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영혼을 자기 목숨처럼 섬길떄 그때 하나님과 당신주위의 공동체는 당신을 기억하게 될것입니다.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브솔시내가…에서 있었던 일…(시편36편)

신년특별새벽기도회 “세상을 이기는 이김” (4) 당신이 신앙의 위기를 만날떄(사무엘상 25:1-35)1절, 4절: 사무엘에 죽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적인 멘토가 사라졌습니다.(묵상: 그동안 자신이 의지하였던 사무엘...
01/15/2015

신년특별새벽기도회

“세상을 이기는 이김” (4) 당신이 신앙의 위기를 만날떄

(사무엘상 25:1-35)

1절, 4절: 사무엘에 죽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적인 멘토가 사라졌습니다.(묵상: 그동안 자신이 의지하였던 사무엘에 죽은 것은 광야를 전전긍긍하던 다윗에게는 여간 실망이 아닐수가 없었을것입니다. 이제 자신이 있던 광야로 갑니다. 자신이 시작하지 않았던 광야, 이젠 거친 바람과 저녁의 추위가 그리고 수많은 돌들과 벗하면서 살아가는 광야생활 10여년…. 이젠 다윗이 어느덧 광야에 더욱 적응한 듯합니다. 그러나 광야는 적응하는 곳이 아니라, 유혹과 싸워가며 잘 통과해야하는 시험장이기도 합니다.
7-8절: 나발이라는 심히 부자집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3-4절). 그의 아내는 아비가일이라고 합니다. 하루는 양털을 깍는 날이되었습니다. 양털을 깍는 날은 일년중 양모를 거둬들이는 수확의 날입니다. 그간 일년동안 갈맬이라는 곳에서 나발의 소년들이 양을 칠때에 다윗과 그의 소년들이 나발의 목자들을 돕고 돌보며 한마리의 양도 손실되지 않도록 정성껏 도운 것을 상기하면서 이제 먹을 양식을 보내도록 다윗의 소년들을 보냅니다. 참으로 선한 일을 했고 또한 그 선한 일로 당연히 좀 대가를 요구한들 당연한 요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묵상: 양치는 나발의 목자들을 도왔던 것이 선을 행하였다하며 그것을 후회한다고 말하고 있는 다윗은 예정의 다윗모습이 아닙니다. 음식을 주지않겠다고 거절한 나발의 어리석음에 화를 내며 보복을 하겠다는 다윗의 모습은 그전의 다윗의 모습과는 사뭇 다름니다.)
10-12절: 그러나 나발은 다윗도 모르고 그 아버지 이새도 모르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왜 귀한 떡과 양치는 자들을 위한 고기를 주어야 하느냐?” 라고 하며 거절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가 다윗에게 고하자 흥분한 나머지 모든 사람을 다 멸하겠다고 결심을 하며 무장을 한후 길을 나섭니다. (묵상:다윗 답지 않습니다. 이런한 일로 너무 지나친 화를 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사울왕까지 기름부으신자로 하나님을 경외했던 다윗 답지 않게 격노합니다. 이미 기름을 부음을 받은 왕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듯 합니다. 도리어 다윗은 사울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도전하는 사람은 그누구라도 제거하려는 사울의 모습을 다윗에게 보게됩니다.
14-16절: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대처로 인해 다윗의 마음을 돌이킵니다. 여호와를 위해 싸울 분이 나발(어리석은 자)을 위해 왜 피를 흘린다는 것입니까? 라고 말합니다. 29절 말씀: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묵상: 아비가일의 지혜는 다윗이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이 다윗의 삶이 되어야 함이지 나발 같은 어리석은 자를 보복하는 자로 전락되어서는 안된다며 다윗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지혜를 발휘하게 합니다. 광야는 당신을 통해 하나님을 일하심과 능력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지 어리석은 나발에 피를 보는 것은 결코아님을 알려줍니다.)
32-35절: 아비가일은 무기를 갖고있지 않았다. 아비가일은 어리석은 남편을 다윗으로부터 살리게됩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살인자의 낙인을 찍이는 다윗왕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다윗을 살리고 이스라엘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아비가일의 이 지혜는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일을 하게됩니다. (묵상: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을 사로잡은 것은 남편을 살리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을 다 살리려는 것이었다. 아비가일이 위대하다면 그것은 남편을 보호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생명을 살린다는 데에 있습니다. 자신을 던져 어리석은 죄많은 인간을 살리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가운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볼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자신을 통해 다윗자신을 회개하도록 이끕니다. 아비가일은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칼로 죽이려는 다윗을 자기십자가로 다윗이라는 왕을 살리고 이스라엘을 살리게 된것입니다.)
교훈)
나발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금물이다. 그것은 광야생활을 연장할뿐이다. 그것은 광야에서 실패이다. 다윗은 자신의 영성의 위기앞애서 아비가일(복음)을 만남으로 살인자, 죽이는 자를 살리는 자리에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불화하는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불화하고 분리시키는 일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꺠어 기도해야 합니다. 분리는 사망을 낳게됩니다. 화목은 생명을 낳습니다.
처음 믿음을 잃어버리고 신앙의 파선은 참으로 쉽습니다. 타락과 부패가 문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다며 보복하겠다고 벼릅니다. 반드시 깊아주겠다고 두고보자 뭔가보여 주겠다고 한다. 이때 우리를 돌이키는 것은 아비가일이다. 나 자신에게 하나님을 보게도우는 지혜를 말합니다. 나발의 함정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어느 택시운전사이야기)

신년특별새벽기도회 “세상을 이기는 이김” (3) 광야(사무엘상 24:1-15)> 이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하는 것이 개인적인 질투로 인한 감정싸움을 넘어 현상수배자로 몰아 마치 범죄자를 찾아나서는 사울왕을 보게됩니다...
01/14/2015

신년특별새벽기도회

“세상을 이기는 이김” (3) 광야

(사무엘상 24:1-15)

> 이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하는 것이 개인적인 질투로 인한 감정싸움을 넘어 현상수배자로 몰아 마치 범죄자를 찾아나서는 사울왕을 보게됩니다. 이제 다윗은 본의 아니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쫒겨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신성모독이냐 거룩의 삶이냐 갈림길에 선택을 해야 하는 처절한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 다윗은 사울왕의 이유없는 공격과 위협에도 다윗은 거룩을 택했다는 것이 너무도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다윗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모든 일을 연관을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칠 정도로 “하나님, 하나님”을 부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을 다윗답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나친 거룩은 부담감을 줄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윗의 단호한 하나님 중심의 사고와 거룩한 삶은 이광야에서 빼놓을수 없는 유익이었고 다윗을 다윗으로 세워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다윗의 광야생활은 15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중의 첫번째가 바로 이 엔디게 광야이야기입니다. 다윗과 그를 따르는 젊은 이들이 사해의 절벽에 나있는 어느 동굴속에 숨어있습니다. 그들은 동굴속에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곳까지 추격해온 사울왕이 대변을 보기위해 들어온곳이 바로 다윗이 쉬고 있었던 굴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그들 따르는 자들이 죽이려하자 다윗은 그것을 저지합니다. 그이유인즉 기름부은 왕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성모독임을 알립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지시합니다, 사을을이 떠나는 뒷모습에 이야기합니다. 왕의 옷을 벤 옷자락을 보입니다. 삼상26장에도 하길라산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여기서 다윗은 사울왕을 자기를 죽이려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의 능력을 훈련받게 된 다윗의 영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광야시험: 광야는 하나님의 시험대에서 우리의 반응을 보자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1장 12-13정에서 성령님께 이끌리어 광야에 시험에 들어가셨다. 4가지 유혹에 맞서 시험을 치르십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역시 말씀을 통한 회복이요 반응이었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시작 이 광야 시험은 제1아담이 지은 죄값을 제2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완성 회복시키십니다. 그래서 광야 시험과 유혹은 반드시 회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40년 광야 생활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이었습니다. 애굽노예에서 성장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은 참으로 곤혹스럽기까지 합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이 거룩을 따르지 않음으로 오는 아픔의 기록들입니다.
앤아버대학촌교우여러분> 다윗에게 광야는 사울로 두려워함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게됩니다. 이곳 미국이민 또는 학생으로의 삶은 하나님으로 가득찬 삶이어야 합니다. 그라고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 왕성하게 움직이실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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