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코너스톤 교회 Cornerstone Church of VA

버지니아 코너스톤 교회 Cornerstone Church of VA 우리 버지니아 코너스톤 교회는 진정교회를 제자화하고 선교화하여 교회다운 교회세워가며 우리2세 자녀들을 잘양육하여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사명에 충실한 공동체가 되려고합니다.

05/21/2026

성경일독 [목]: 역대하 16-19장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 Part 2

로마서 14장 3-6절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오늘 새벽에는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 Part 2’ 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3절을 보시면,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했습니다.
로마 교회 안에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부닥치는 이슈가 바로 음식이었습니다;
3절에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라고 했는데, 이 성도들은 율법에 매이지 않고, 음식에 대해서 자유한 성숙한 성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성도들은 정말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것을 확실히 믿는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 성도들은, 유대인 성도로서 유대교에서 개종한지 얼마 되지 않기 떄문에, 아직도 율법이 가르치는 음식 규례를 계속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에는 우상 신전에서는 매일같이 많은 양들을 제사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상 앞에 드려진 고기는 그 일부만 완전히 태워지고, 나머지는 시장으로 보내 시민들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시장에서 고기를 살 때 이것이 우상에 바쳐졌던 고기이지. 아닌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매여 있던 성도들은 너무 염려가 되는것입니다. 혹시나 이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가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결단을 합니다. 아예 고기를 사먹지 말자.
그래서 그들이 고기는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서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받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하니 아무거나 먹을수 있다. 왜 채소만 먹느냐? 한심하다!고 비판합니다.
한쪽에서 어떻게 감히 그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어, 너희 몸을 부정하게 하느냐?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말합니다. 서로 업신여기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 네가 가지고 있는 작은 신앙의 지식으로 함부로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잣대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하지 말아야합니까? 3절 후반절에,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양쪽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믿음이 너의 믿음보다 더 낫다 말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1절 보시면,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여러분!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요. 그들은 믿음이 참 좋은척했습니다. 율법을 늘 연구하고, 십일조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비판하거나, 업신어겼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경건한척 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을 드려다 보면 주님이 말씀하신것처럼 회칠한 무덤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
겉으로는 믿음 있는 사람 같아요. 교회에서 열심히 하기 때문에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혹시 속으로는 내가 교만해서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만약 주님이 내 마음을 드려다 보시다면, 정말 겸손하며,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일까요?
아니면 바리새인 처럼 악하고 썩은 것으로 가득한 회칠한 무덤일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 형제도, 저 자매도 모두 주님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나은것 없습니다. 온전히 그들을 받아드리고, 격려하고, 사랑할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절을 보시면,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비판하지 말아야 될까요? 여기보니 남의 하인이 바로 서있던지, 넘어져 있던지, 판단하는 것은 너의 몫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녀들을 키울때, 각각 부모님들의 방식이 있습니다. 어떤 부모님은 좀 엄격하게, 규칙을 정해서 키우는 분도 있고, 어떤 분들은 굉장히 풀어주면서, 자유롭게 키우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느 방식이 정답이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엄격하게 키우시는 부모는 다른 가정의 자녀 교육을 보면서, 버릇 없이 키운다고, 어떻게 저렇게 키우지 말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다른 가정 부모는 엄격히 키우는 부모에게, 저 애를 완전히 죽이네, 어떻게 저렇게 키울수 있지 말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성도가 바로서고, 넘어진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이 판단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넘어뜨리지 않으십니다. 자꾸 세워 주려고 합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서 우리가 비판하고, 판단해서 자꾸 넘어뜨린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서 남을 허무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진 성도들을 세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약 그 성도가 허무러 져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하실것입니다. 심판하시는 분도, 원수를 갚는 분도 하나님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사랑으로 받아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의 잘못을 들추는 일에 앞장서지 마시고, 때로는 알아도 모르는 척 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의 악을 덮어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연약함에 대해 속아 달라는 것입니다. 정말 위대한 것은 속아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속아주셨습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정말 형편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 주님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받아 주셨습니다. 그들을 바라보실때, ‘너는 후에 나를 배신하고, 저주하고, 도망할 정말 형편없는 놈이야.’ 말하시지 않고, ‘너희는 복음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할것이야!’ 라며 믿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너무 비판만 하지 마시고, 그들을 안아주고, 격려해주고, 기도해 주고,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내 되시는 성도님! 남편들을 위로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 못한다, 저거 왜 안하느냐? 말하지 마시고, 안아주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편 되시는 성도님! 아내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세요. 위로해 주세요.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말씀해 주세요. 얼마나 수고하는지 감사의 말을 전하시고 사랑하세요.
여러분의 가족을 세우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다른 성도들에게 세워주는 말과 행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위로의 말, 격려의 말, 감사의 말과 사랑의 섬김을 통해 다른 성도들이 세워지고,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6절 보시면,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자 이제는 절기의 날로 다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요일을 안식일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초대 교회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일요일에 모여 안식일로 지킨것입니다.

안식교 교회들은 토요일날 예배를 드리죠. 그래서 그들이 믿는 것은 우리 개신교가 이단이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믿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개신교 교회안에서도 별에별것 가지고 서로 싸웁니다.
왜 요즘은 대형교회에서 주일외에 토요일도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그래서 주일날 못오면, 토요일에 와서 주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한편에서 비판합니다. 성경적이 아니다. 왜 사람의 편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느냐? 반대쪽은 아니다! 형편이 그렇다면 그렇게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분들은 십일조는 구약시대때만 적용된다. 우리는 은혜 시대에 살고 있으니 낼 필요가 없다. 그것을 토론하고 다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6절에서 그렇게 믿고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을 주를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 율법을 위해서 가 아니라 주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다투는 것 보다 좀 더 본질에 충실해야 될줄로 믿습니다.
‘안식일이 주일이다. 토요일이다’ 가 중요한것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거룩하게 지키느냐? 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또 주일만 그렇게 지키면 될까요? 지금 나머지 날들은 혹시 마음껫 죄를 지으며 살아도 됩니까? 아닙니다. 매일 매일 거룩하게 살도록 몸부림쳐야합니다.

여러분! 십의 일은 드리고,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 막 써도 되는 것일까요? 교회에 와서 천사같이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봉사하지만, 나가서는 욕하고, 남을 힘들게하며 살아도 될까요? 그렇게 살면, 그런 주장들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진정 위선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질적인 것에 대해 충실하기 원합니다. 정말 쓸데 없는 것에 우리가 싸우고, 사람들을 넘어 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할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연약한자를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안에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들보다 더 나은것 없습니다. 온전히 그들을 받아드리고, 격려하고, 사랑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판단과 비판은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또한 쓸데 없는 것에 다투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통과 종교 습관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일 중요한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위해서 정말 믿음 생활의 본질에 충실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남을 평가하고, 비판라기 앞서, 내가 어떻게 더 거룩하게 살것인가? 주일 뿐이 아니라, 어떻게 매일 매일 삶을 경건하게 살것인가? 고민할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정에서, 우리 교회에서, 우리 사회에서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세우는 사람이 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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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2026

성경일독 [수]: 역대하 12-15장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

로마서 14장 1-2절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오늘 새벽에는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절을 보시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했습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는 믿음이 있는자가 있고, 교회는 다니지만 믿음이 없는자도 없습니다.
다 믿음이 있는것 같지만, 어떤분들은 모양은 있는데 내용은 없습니다.
또 믿음이 있는자 중에, 믿음이 강한 사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생각에는 누가 믿음이 좋고, 누가 믿음이 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너무 쉽게 일반적으로 판단합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 하신분들, 주일 성수하시는 분들, 십일조 하시는분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들은 믿음이 좋고, 그렇지 못하면 믿음이 좀 약한자로 판단을 합니다.

복음서를 보시면 가끔씩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왜 이렇게 적느냐? 책망하실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에게는 이렇게 믿음이 큰자를 본적이 없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깊이, 믿음의 강도는 어떻게 판단 하실까요?
여러분 우리는 판단할 자격이 없지만, 우리의 믿음이 되시며, 믿음의 완성이 되시는 주님은 자격이 충분하시며. 우리는 주님의 판단에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의 깊이는 교회를 몇년 다녔느냐 하고 전혀 상관 없습니다.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느냐? 교회의 전통을 잘 지키느냐? 와 상관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느냐? 그 말씀을 신뢰하여 순종하느냐? 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이시지 깨닫게 되고, 그 하나님을 믿고, 그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며, 순종하면 할수록 그 체험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아버지라고 불리울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신뢰하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을때, 그는 순종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미친짓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을때, 아브라함은 의심하지 않고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죽일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순종할수 있죠?
히브리서 11장 19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능력자임을 믿었습니다. 그에게 부활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한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믿음이 연약한자입니까?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을 신뢰하지 못해, 순종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더 의지하기에 순종하지 않는자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말라기 3장 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드립니다. 그러나 신뢰하지 못하면 드릴수 없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 12장 3절, ‘지혜 있는 사람은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전도를 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믿고, 신뢰하면 전도합니다.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대는 전도 안돼… 욕만 먹어.. 자신 먼저 결론을 내려 버리면 전도 평생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누굴까요? 그 배경을 보시면, 로마 교회안에
유대인도 있었고,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후 49년경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도 할례를 강요할것인가? 율법을 지키게 할것인가? 그때 내린 결정은 할례와 율법을 강요하지 말고, 대신 우상의 제물과 피는 금하고, 음행을 멀리하도록 결정을 했습니다.

이 내용은 이미 로마교회에 전달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방인 성도중에 옛 습관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자꾸 넘어지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성도중에도 자꾸 전통과 종교 습관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 살아야 되는데 그런것들이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안에 이런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고 싶은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싶은데, 영적인 싸움에서 무너져, 옛 습관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에 청년 예배를 드리는데, 청년 멤버 한명이 술에 취에 들어왔습니다. 쫒아내지 않았습니다. 맨 뒤에 눕도록했습니다. 술 취했지만, 그래도 교회로 오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온것이 아닙니까? 저는 그 행동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연약한 자매를 정죄하고 쫒아내면 다시는 교회 나가지 않을것입니다. 그런자들을 품어주고, 도와주고, 세워주자는 것입니다.

솔직히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다른 성도보다 믿음이 좋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과연 우리는 술취한 자매보다 정말 많이 낳을까요? 교회안에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으로, 생각으로 죄를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은 믿음이 약한 사람을 받아주고, 이해하고, 격려해 주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그들을 받아주고, 사랑해 주면, 그들의 삶속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교회는 죄없는 거룩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병든 사람과 죄인들이 모인 병원 같은 곳입니다. 그분들을 끊어 안고, 사랑하고, 치유해 주는 곳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해야 될것은 믿음이 연약한자를 비판하지 말라 는 말입니다. 믿음이 연약한자는 아직 말씀을 잘 몰라서, 성도의 삶을 이해 못합니다. 아직 말씀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수 있느냐?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수 있느냐? 비판하는데, 그들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비판에 대해서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여러분! 믿음이 성숙하다면 남을 비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먼저 여러분의 가정에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편들은 아내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되, 비판하지 마십시오. 아내들은 남편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되, 비판하지 마십시오. 부모님들은 여러분의 자녀들의 연약함과 약점을 인정하십시요. 소리를 지르고, 야단치고, 때린다고 되는것이 아닙니다. 그 상처받은 아이들은 병들어 서서이 죽어갑니다 그리고 나중엔 그 부모를 떠납니다.

내가 남을 비판하기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바로 서있는가? 내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충만한가? 혹시 내 배우자가, 내 자녀들이 볼때, 나는 정말 잘못한 것이 없는가? 돌아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판과 비난으로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가족을 병들게 하고 죽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치유와 회복을 가져오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판하고, 정죄한다고 교회가 더 거룩해 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병들게 됩니다. 그 교회는 깨지게 됩니다.
여러분! 오직 사랑 밖에 없습니다. 사랑만이 회복시키며, 치유하며, 하나가 되게 할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여러분의 가정이, 우리 교회가 회복되고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절 보시면,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했습니다.
그 당시 먹는 음식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구약의 율법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음식은 먹어도, 어떤 음식은 먹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 율법에서 자유한데, 계속 거기에 매인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먹지 않을 음식을 안 먹으면 믿음이 좋고, 먹으면 믿음이 안좋은 것일까요?
바울은 특정 음식을 먹는다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라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손도 씻지 않고 먹었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항의를 합니다. 어떻게 장로의 전통에 따라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을수 있습니까? 이것은 부정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먹는 음식이 중요한것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전통이 중요한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너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교회 안에서 진정한 경건보다도, 교회 형식에 목숨을 거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교회에서는 예배시간에 꼭 정장을 해야 되며, 정장을 강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건하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로 텍사스에 EM 교회로 급성장한 교회에 한 정통 장로교회 목사님과 장로님이 방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부흥하는가? 직접가서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충격을 받고 나왔습니다. 목사님이 강단에서 반바지를 입고 설교를 하는거에요. 제가 반바지 입고 강단에 서면 큰일 나겠지요?

둘러보니 모든 성도들도 옷을 너무 편한것으로 입고 왔습니다. 그런데 찬양이나, 기도가 뜨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선교와 구제에 엄청 투자를 합니다. 그리고 너무 자유스럽고, 행복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내일부터 반바지를 입자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과연 그 정장이 그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때 우리의 최선을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정장하지 않았다고 정죄하면서 예배를 드리면
과연 그 정장이 그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형식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What would Jesus do?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은 성경에서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는가? 늘 생각을 하며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 성숙한 믿음의 성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하기전에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이것이 남에게 유익이 되는지, 혹시 이것으로 남이 시험들지 않을까? 먼저 판단하고 그렇다면 순종하고,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는것입니다. 여러분! 전통과 습관과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형식을 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중심을 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사람들의 생각과 눈치를 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를 바라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믿음이 연약한자를 너희가 받되 했습니다.
여러분! 사랑으로 그들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도우시고,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면 그 어떤 사람도 받아 드릴수 있습니다. 그 사람하는 행동이 이해가 안되도, 잘못된 행동이라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용납하고, 사랑으로 섬기면 , 그 사람이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정죄한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밀어내고, 쫒아낸다고, 그 교회가 거룩해 지지 않습니다. 그 공동체에 예수가 없는 공동체가 됩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했습니다.
전통, 형식, 종교습관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5/19/2026

성경일독 [화]: 역대하 8-11장
성도의 위대한 의무

로마서 8장 8-14절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오늘 새벽에는 ‘성도의 위대한 의무’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8절을 보시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살면서 빚을 지지 않으면 살수 없는 것 같습니다. Loan 을 해야지 집을 살수 있고, 차를 살수 있습니다. 그런데 편리 하지만, 매달 갚아야 되기 때문에 많은 부담이 됩니다. 통계를 보니까 보통 한 가정에 빚이 평균 14만 5천불이라고 합니다.
정말 어마 어마 합니다. 그래서 평생 빚만 갚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사도 바울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엄밀히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우리 모든 인생은 정말 빚을 많이 진 인생들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것은 오로지 부모님에게, 은혜와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좀 크면, 자기네가 스스로 잘해서 그렇게 큰줄로 압니다.

그러나 성숙해지고, 돌아보면 우리 부모님이 계셨고, 우리 주변에 좋은 스승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이웃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도와 주어서 여기까지 온것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부채입니다. 누군가가의 희생으로 여기까지 온것입니다.

여러분!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위헤 섬길수
있는 특권을 누릴수 있는것은, 내가 얻은 것이 아닙니다. 자격도, 공로도 아무것도 없지만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섬길수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이 놀라운 특권을 누리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 사랑의 빚외는 아무 빚도 지지말라! 묵상할때 한가지 깨닫게 되는 것은, 누가 이 말씀에 순종할수 있는가? 바로 예수의 사랑을 진정으로 체험한 사람만이 순종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에서 이 말씀이 실천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가시면 빚진 두 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왕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진자입니다. 일만 달란트는 도저히 갚을수 없은 엄청난 액수의 빚입니다. 그런데 왕이 그를 긍휼히 여겨서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냥 없애 준것입니다.
그 은혜를 입은자가 나가다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갚지 못하니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여러분! 백 데나리온은 얼마나될까요? 이것을 돈으로 환산해 보면 1 데나리온은 하루 일한 품싹입니다. 그러니 100일 동안 일한 품삭이죠. 그런데 1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입니다. 그러니 일만달란트는 6000만 데나리온입니다. 그 종이 6000만 날을 일해야 값을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놀랍고, 엄청난 은혜를 받았는데도, 그 은혜를 조금도 남에게 베풀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모르는 자이며, 감사할줄 모르는 정말 악한 종이었습니다.
실제로 마태복음 18장 보시면, 왕이 탕감을 했는데, 기뻐했다. 감사했다 라는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받은 구원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희생하여 받은 엄청난 구원이라면, 그 받은 구원이 진짜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용서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종과 다를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 종은 다른 동료를 탕감해 주지 않고, 감옥에 가두므로, 나중에 왕에게 다시 불려가, 책망을 받고, 자신이 오히려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히 나오지 못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Lesson 입니다. 여러분! 용서 할것이냐, 말것이냐? 문제가 아닙니다. 저 사랑을 사랑할것이냐? 말 것이냐?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제대로 체험했는가? 내가 진정 구원을 받았는가 돌아봐야합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주일날 예배만 드리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삶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 높고, 넓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내가 감격하고, 그 사랑을 드러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남이 가지 않는 곳으로 가고, 남이 할수 없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면 그것이 무슨 사랑이냐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에게 친절하고, 잘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와이는 6개의 섬으로 되어 있는데, 옛날에는 나병환자들을 몰로카이섬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거기서 비참한 삶을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벨기엘 출신 다니안이라는 신부가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섬에 나이 33살 때 들어갔는데 나환자들이 그 신부님을 거부합니다. 당신은 건강한 사람인데, 어떻게 당신이 우리의 마음과 고통을 알수 있겠습니까? 그냥 떠나십시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안 신부님은 신부되기 전에 의사이었습니다. 그는 그 나병환자 원주민들을 위해 엄청난 결심을 합니다. 문둥병 병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의 몸을 비비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문둥병 증상이 나타나자, 뛸뜻이 기뻐하며, 섬 주민들에게 외쳤습니다. 나도 당신과 같은 환자요. 그때 그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감동을 받아 복음을 받아 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그 섬에서 그들과 함께 나병으로 죽게됩니다.
그의 인생 구절은 요한 복음 15장 13절, ‘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이었으며, 오늘 우리가 살아내야 될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자로, 그 누구도 용서하고, 사랑할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9-10절 보시면,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율법의 완성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일까요?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왜 사람들이 간음을 할까요? 분명 배우자가 있는데, 왜 간음을 할까요?
솔직히 말하면 배우자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이하는 대상도, 사랑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쾌락의 대상으로 이용하기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왜 살인을 합니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에 하는것입니다. 도덕질하는것도, 탐욕을 가지는것도 결국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에 그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찌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을 훔치며, 사랑하는 사람에 것을 탐할수 있겠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죄는 인간의 노력을 스탑할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이러한 죄를 다 범한 사람들입니다. 육체적으로 간음은 안해도, 마음으로 음욕을 품습니다. 직접 생명을 빼앗지 않아도, 형제를 미워했습니다. 예수님에 의하면 그것은 살인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율법으로 의를 얻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길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의 사랑을 나누십시요. 그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아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늘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므로 율법의 완성을 체험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1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이 말씀은 구원의 완성의 때가 가까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사모하고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돌아오실 그 때가 가깝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할렐루야!
요한계시록 1장 7절,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하여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로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요한계시록 22장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더욱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구원을 위해서 어둠의 일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 일까요?
13절, 14절 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방탕하거나, 술취하지말고, 음란하거나 사치와 싸움과 시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정욕대로, 죄만 지으며 살지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옷은 삶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가벼운 옷을 입으면 가볍게 행동하고, 정장을 입으면 좀 무겁고 거룩한 행동을 하고, 야한 옷을 입으면 야하게 행동하고 싶어집니다. 편한 옷을 입으면 편하게 늘어지고 싶어지는 동기가 부여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어떤 옷을 입느냐 중요합니다. 그 옷은 우리 하루의 삶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옷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표현이 될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와 온유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새벽에 말씀 앞에 서시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이 말씀이 내 심령에 새겨지면, 나는 예수의 옷을 입은자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 옷에 합당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드러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의 빚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정말 놀랍고,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에 빚진자로서 다른 형제, 자매를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육의 일을 도모하지 마시고, 예수의 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의 삶을 통해 드러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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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2026

성경일독 [월]: 역대하 5-7장
성도와 국가적인 책임

로마서 13장 1-7절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오늘 새벽에는 성도와 국가적인 책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개인적으로 이러한 삶을 살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13장에 들어 가서는 갑자기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존경하고, 복종 하라는 일종의 정치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좀 연결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당시 배경을 좀 이해해야 오늘 말씀을 이해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정부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정부에 대해서 반감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중에서는 극우파들은 굉장히 과격해서, 로마의 황제를, 그들의 왕으로 인정 하지 않았습 니다. 우리의 왕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면서 세금을 내지 않을려고 했고, 주위에 세금을 고분고분하게 바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집에 불을 지르고, 위험을 가하는 그런 시대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유대인 성도들은 갈등이 생긴것입니다. 자신들의 동족들은 그렇게 로마 정부를 미워하고, 반대하는데, 우리 믿는 성도들은 어떻게 행동을 해야 되는가? 어떻게 해야지
하나님이 기뻐하시까? 고민하는데 사도 바울이 정리를 해줍니다.

너희는 국가에 대해서 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부에 복종하라. 존경할자를 존경하고, 두려워할자를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이웃에게 원수 갚지 말라는 원리와 같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로마가 원수일지라도,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에게 맡기고, 너희 성도들은 그저 따르라는 것입니다.

1절과 2절을 보시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먼저 우리를 통치하는 사람들의 권위를 존중하고, 높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싫어도,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이 바르게 통치할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됩니까?
그 이유는 그 권세는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싫든 좋든,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때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모택동에개, 스탈린에게, 김일성, 지금 김정은 같은 인간들에게 허락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하는가? 우리는 이해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심판을 받게되며, 우리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할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력을 존중하지 않으면, 그 권력을 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되기 떄문에,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3-14절 새번역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주님을 위하여 복종하십시오. 주권자인 왕에게나,
총독들에게나, 그렇게 하십시오. 총독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고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게 하려고 왕이 보낸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므로 그들을 인정하고, 존경을 표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메세지는 우리 성도의 마음을 좀 불편하게 합니다. 우리 위에 있는 권위에 순종하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좋은 리더면 순종하지요. 그런 리더면 우리가 목숨을 걸고, 순종하며 따를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로만 가득차 있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며, 남을 지배하는 것을 즐기는
리더는 따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잘못 인도하고, 어렵게 하여, 싫을지라도, 그 사람을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을 존중하기에, 우리가 따라야 되는것이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공동체든지, 사회에서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면, 그 공동체나 사회는 완전히 무너지고, 큰 혼란에 빠지게 될것입니다.
백성들이 대통령을 나라의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에서 목사를, 장로를, 안수 집사님들을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정에서 남편들을 리더로 세우셨는데, 부인과 자녀들이 무시하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혼란에 빠지고,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것입니다.

여러분! 잘아시는대로 예수님은 당시의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에게 끌려가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재판은 사실은 불법 재판이었습니다.
죄가 없음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사형에 넘겨 주었습니다. 이것은 불법이요, 악한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이것은 불법이다. 너를 인정할수 없다. 이 판결 거부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폭동을 일으킬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말한 말을 기억하시나요? 내가 너를 석방할 권한도 있고, 너를 죽일 권한도 있다는 것을 네가 모르느 냐? 그때 예수님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1절, ‘위에서 주지 않아니 하였더 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라’
현대성경 번역을 보시면, ‘빌라도야, 네가 하나님께로부터 권한을 받지 않았다면 나를 이렇게 다룰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것은 예수님은 빌라도를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 권력을 주신 하나님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실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3절을 보시면,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법을 지키라 그러면 그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고 칭찬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각 나라마다 법이 있습니다. 법을 가지고 그 나라 백성을 안전하게 지켜 주고, 자유롭게 살도록 보장 해 줍니다. 악한자들의 행동을 억제하고 그들의 죄를 징계하고 벌을 줍니다. 그러므로 법이 있는 이상 그 나라 국민은 어디까지나 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가시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세금에 대헤서 질문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 됩니까? 그때 예수님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내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시민이면, 그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믿는 성도로서 이 미국의 법을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혀 드리는 것입니다.

4절 보시면,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진정으로 바른 권위가 바로 세워졌을 때,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바른 권위는 악을 몰아내고, 선한 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투표를 해야되고, 제일 중요한것은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5절 보시면,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 하다보면, 어떤 때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와도 우리가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우리 양심 때문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니,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 리더들이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들에게 신령한 지혜를 부어 달라고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6절 보시면,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조세는 세금을 말합니다. 그리고 내야될 세금을 내라는 것입니다.
사실 세금이 있어야 나라가 운영됩니다. 나라를 지킬수 있고, 국민들을 위해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수 있습니다.
누가 세금의 중요성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고 싶지 않는것은 너무 많이 내거나, 그것이 잘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낭비되거나, 원치 않는 곳에 사용되어지기 때문일것입니다.
뉴욕 같은 경우는 버는 것에 거의 45%가 세금으로 갑니다.
참 숨이 막히는 것이죠. 잘못된 곳에 사용되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성도들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정치운동을 교회에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알고 한 시민으로서 주어진 권리의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언제부터 정치와 교회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는 기독교에 중요한 영향을 주기에 성도들은 시민으로서, 해야돨 책임을 다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많은 교회들은 이제 대통령, 상원, 하원 출마하는 사람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해서 알려줍니다. 이분은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슈에서 이것을 지지합니다. 낙태에 대해서, 결혼관에 대해서…. 왜요? 성도들이 성경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투표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는 그 도시, 그 county 또 학교 board 에도 성도들이 출마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들이 통치할때, 그 도시, 그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시민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시면,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조세는 국가가 국민에게 부과하는 세금이고, 관세는 소득세를 말합니다.
내야 될것은 반드시 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해야될 모습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위에 있는 권위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물론, 그들이 법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다든가, 부도덕한 행동을 할 때에는 그것을 비평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그들이 정당하게, 합법적이게, 행하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사회의 질서와 평안을 위해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정해진 세금을 내는 것처럼 시민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바르게 그들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믿는 성도로서 국가적 책임을 다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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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2026

성경일독 [목]: 역대상 24-26장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장 14-21절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오늘 새벽에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4절 보시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했습니다.
어제 말씀을 드렸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하게 합니다. 희생할 수 없는 것도 희생하게 만드는 것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본문에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중동나라, 중국, 아프리카, 북한에서는 성도들이 엄청난 박해를 받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그런 박해를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실천할수 있을까요?

이런 스토리가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에르멜로에서 섬기는 앤드류 목사님이 그 당시 공산치하에 있던 열두명의 헝가리 목회자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얼마전 감옥에서 풀려난 루마니아 출신의 늙은 목사님이 이 모임이 들어오셨습니다.

앤드류 목사님은 성경 공부를 멈추고, 그 루마니아 목사에게 말씀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참 후에 루마니아 목사는 입을 열었습니다.
"앤드류 목사님, 네덜란드에는 옥에 갇힌 목사가 몇 명이나 됩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왜 없지요?" 라도 루마니아 목사님은 물었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있으니 당연히 감옥에 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자 루마니아 목사님이 좀 더 어려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앤드류 목사님, 그렇다면 당신들은 디모데 후서 13장 12절을 어떻게 실천했습니까?"
앤드류 목사는 성경을 펴서 그 본문을 큰소리로 읽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앤드류는 성경을 덮으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희를 용서해 주길 바랍니다. 우리 네덜란드 성도들은 경건하게 산적이 없어서, 핍박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은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면, 하나님을 마음껏 사랑하며, 섬길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면 그보다 더 어려운 선택이 주어집니다. 나의 신앙의 양심과 싸워야 합니다. 내 육의 유혹과 더욱 싸워야합니다,
앤드류 목사는 알았습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곳은 신앙의 자유가 있는 네덜란드가 아니라 박해를 받고 있는 루마니아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진정으로 경건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세상이 우리를 박해합니다. 그때 우리가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안에서, 세상 것을 사랑하며, 세상의 것을 추구하고, 세상 방법으로 살기에, 그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박해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먼저 여러분이 참된 구원을 얻기위해, 값싼 복음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우리는 파멸로 향하는 세상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고, 돈 많이 버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진정 복된 자 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삶으로, 세상에서 박해를 받을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목사님! 그게 무슨 축복입니까?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43-4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바르게 믿고 있다는 증거요. 이렇게 실천할수 있는자가 복된자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매달려 돌아가실때 못박는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스데반 집사도 마찬가지 이었습니다.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 저들은 자기의 죄를 모릅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원수를 축복할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자,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자만이 할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 경건한 신앙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박해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그러한 자들을 용서하며, 축복할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5절 보시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성도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거나, 남이 잘 안될 때 고소하게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남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라는 것입니다.

2014년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한 사고를 다 아실 것입니다. 476명이 타고 있었는데 304명이 사망했습니다. 그중에 많은 사람이 바로 단원 고등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그 나이 어린 아이들이 수학여행 중에 죽었습니다. 그들의 부모님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때 온국민이 슬퍼하고, 많은 자원봉사자가 도왔습니다. 그중에 다람쥐 택시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죽은 아이 시신이 확인되면 앰뷸런스 실려가는데 교통편이 없으니, 그들이 유가족을 태워 그 앰뷸런스를 따라가는데 4시간 걸립니다. 시간과 Gas 비를 기사가 부담합니다.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믿지 않는 분들도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삼는데, 하물며 우리 믿는 성도들은
더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해야 됩니까?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6-27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했습니다.
손가락이 칼에 베이면 온 몸이 아픈 것처럼, 같이 아퍼하며, 같이 울어 주는 것이 우리 교회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문둥병자와 함께하시고, 창녀들과 함께하시며, 죄인들과 먹고 나누셨습니다. 그들의 상처와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시고, 그들을 용서하시며, 위로하시며,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소외되고, 어렵고, 고통에 있는 성도와 함께하며, 나눌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6절 보시면,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누가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모두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낮다, 높다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겸손히 자신을 낮추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되십니다.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실려고, 하찮은 인간의 모습으로,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고, 자신을 낮추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하고 싶다면 낮은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높은곳, 화려한곳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병든자 들 속에 계십니다. 억울한 자들 가운데 계십니다. 고통과 괴로움속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이 계시는 그 낮은 자리에 여러분도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7절 보시면,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하십니다.
여러분 율법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했습니다. 그게 정당한것 같습니다.
우리도 누군가가 잘못하면, 배상을 요구합니다.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새계명을 주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시며, 오히려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은 이해 못해도, 수용 못해도,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여러분! 미국에 38만개의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복음의 부흥이 없을까요? 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까요? 교회가 세상과 비슷해서 그렇습니다. 성도가 불신자의 삶과 다를 것이 거의 없어서 그렇습니다.

똑같이 저주하고, 똑같이 미워하면 세상을 변화시킬수 없습니다. 세상과 다른 삶을 사시므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므로,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를 변화 시키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8절 보시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성도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평화를 만드는 자들입니다.
우리 주님이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화평케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무너진 관계들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계시는 곳은 잔치집이었습니다. 기쁨과 평강이 넘쳐 났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화목케하는 통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계시는 곳에 기쁨이 넘치며, 웃음이 끊이지 않으며, 평화를 만드는 통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19절에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원수를 친히 갚지 말라 하십니다, 주님께서 갚아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할일은 무엇입니까? 선으로 갚는것입니다.
20절,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말씀을 신뢰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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