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코너스톤 교회 Cornerstone Church of VA

버지니아 코너스톤 교회 Cornerstone Church of VA 우리 버지니아 코너스톤 교회는 진정교회를 제자화하고 선교화하여 교회다운 교회세워가며 우리2세 자녀들을 잘양육하여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사명에 충실한 공동체가 되려고합니다.

09/15/2026

예수님을 바로 아는가 Part 2

요한복음 8장 26-30절

26 내게는 너희에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 참되시매 내가 그분에게서 들은 그것들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니라.
27 그들은 그분께서 자기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28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그인 줄을 알며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 대로 내가 이것들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도다. 내가 항상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그것들을 행하므로 그분께서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시니라.
30 그분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더라.

오늘 아침에는 “예수님을 바로 아는가? Part 2” 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26절 말씀으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27-28절에서는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28절 하반절에, “오직 내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 대로 내가 이것들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성경도 달라져야 합니다.” 오늘 날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동성결혼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관 그 시대에 적용되는 것이고 지금은 시대적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동성결혼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의견,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 말씀만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9–50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이야기할지 명령을 주셨느니라.”

그러므로 오늘 날 강단에서는 오직 진리의 말씀만 선포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회개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심판과 지옥의 복음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 복음만이 영혼들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안타깝게도 그런 복음은 선포되지 않습니다. 성도들도 듣기 거북하거나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특별히 이 마지막 시대에는 귀에 듣기 좋은 설교만 쫒아서는 안됩니다.
디모데후서 4장 3–4절,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며 자기들의 욕심을 따라 자기 귀를 즐겁게 해 줄 선생들을 많이 쌓아 두고 또 진리로부터 귀를 돌이켜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리라.”
마지막 시대에 징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설교 홍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YouTube 들어가시면 수많은 설교를 접할 수 있고 취향에 따라 설교자를 선택하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 직접 여러분의 성경책을 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시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역사가 성령님 통해 체험하실 것입니다.
진정 우리 심령에 찔림을 주며 구원케하는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27절 보시면,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말씀합니다.
주님이 그렇게까지 진리의 말씀을 선포 하시지만 그들은 꺠닫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과 종교리더들은 마귀의 자식입니다. 어두움의 자식입니다. 그들은 영적 눈이 멀었고, 귀가 막혔습니다.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자들입니다. 이미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 또는 말씀을 묵상할 때, 아멘이 절로 나오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마음에 찔림이 있어 회개가 터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며 순종으로 나아간다면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도전을 드립니다.
오늘 아침에 성경을 읽고 말씀을 받을 때 단순히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오늘 저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깨닫을 수 있는 영적 귀를 허락하시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간절히 간구하기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끊임 없이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라디오를 그렇게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가 라디오를 켜면 방송국에서는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크리스찬 라디오 스테리션을 선호합니다. 찬양과 말씀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파수가 95.1 이나 105.1에 맞지 않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방송국이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신호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주파수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의 주파수 말씀에 맞춰 있지 않고 다른 것에 맞춰 있기 때문에 세상의 소리만 듣고 있지,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는 하루 종일 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뉴스의 소리, 소셜미디어의 소리,
사람들의 의견, 세상의 가치관, 내 자신의 욕심과 감정의 소리를 듣는 것은 내 마음의 주파수를 거기에 맞추고 있기 떄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나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얼마나 조용히 있는가?” 내 마음의 주파수가 하나님께 얼마나 많이 맞춰지고 있는가? 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나는 순종하는가?”
여러분, 말씀을 많이 아는 것과 말씀대로 사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 아침에 성령님께 도움을 청하시며 질문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말씀속에서 제가 순종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최근에 제게 말씀하신 것 가운데 제가 아직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하루 예수님 말씀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앞에 순종으로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9/14/2026

예수님을 바로 아는가 Part 1

요한복음 8장 26-30절

26 내게는 너희에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 참되시매 내가 그분에게서 들은 그것들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니라.
27 그들은 그분께서 자기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28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그인 줄을 알며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 대로 내가 이것들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도다. 내가 항상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그것들을 행하므로 그분께서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시니라.
30 그분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더라.

오늘 아침에는 “예수님을 바로 아는가? Part 1” 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누군가를 안다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과 그 사람을 실제로 아는 것은 다릅니다. 유명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도, 그 사람과 개인적인 관계가 없다면 그 사람을 정말 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면서 예수님에 관한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정말 알고 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이신가?”입니다.

오늘은 26절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기를 원합니다.
26절, “내게는 너희에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 참되시매 내가 그분에게서 들은 그것들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누가 보냈는지가 그 사람의 권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를 보내신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연히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계속 논쟁해 왔습니다.
목수의 아들, 좋은 선생, 어떤 선지자, 귀신 들린 자, 이단 창시자, 군중을 선동하는 자로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무지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에 대해서 그렇게 논쟁하고, 판단하는데, 나도 너희에 대해 판단하고, 말할 것도 많지만, 나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만 말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증거는 참되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개인적인 주장이나, 생각이 아니라 철저히 아버지의 뜻 만을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목회자의 자세이며, 성도들의 자세인줄 믿습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담은 말씀을 전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설교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강해설교를 하면서 한구절, 한구절씩 강해할 때, 그 구절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성도님들에게 전해 드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생각을 그대로 전해주는 설교를 할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성도님들도 하나님 말씀을 나의 목적과 뜻을 이루기 위해 갖다 붙이는 식으로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뜻만, 마음만 말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 [새번역] 나는 이 책에 기록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덧붙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 책에 기록한 재앙들을 덧붙이실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한 말씀에서 무엇을 없애 버리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한 생명 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서 그가 누릴 몫을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증언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아침에 말씀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창조주이시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구원하시는 구세주가 되시며, 또 다시 오셔서 우리를 심판하실 영광의 왕이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과연 주님이시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혹시나 나는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삶에서는 내가 주인이 아닐까요?
내 시간은 내가 결정하고, 내 돈도 내가 결정하고, 내 미래도 내가 결정하고, 내 삶의 방향도 내가 결정하면서, 혹시 주일에만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예수님이 정말 나의 주님이시라면, 오늘 내 삶에서 무엇을 그분께 맡겨야 할까요?
깊이 묵상하시며 오늘도 나의 주인되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하루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9/12/2026

영적 눈을 열어주소서

요한복음 8장 12-20절
12 ¶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가운데 살아가지 아니할 것이요, 오히려 생명의 빛을 소유하리라.” 하셨느니라.
13 그러므로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분께 말씀드리기를, “당신께서는 자신에 관하여 확증하시나이다. 당신의 확증은 참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비록 내가 자신에 관하여 확증할지라도 여전히 나의 확증은 참되도다. 이는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라. 그러나 내가 어디에서 오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는 분간할 수 없느니라.
15 너희는 육신을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 그런데도 불구하고 만일 내가 판단한다면 나의 판단은 참되니라. 이는 내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
17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참되다고 기록되었느니라.
18 나는 자신에 관하여 증거하는 이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는 나에 관하여 증거하시느니라.”
19 그때 그들이 그분께 말씀드리기를, “당신의 아버지께서 어디에 계시나이까?”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는 나도, 나의 아버지도 모르노라. 만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너희는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라.” 하셨느니라.
20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동안 성전 금고에서 이 말씀들을 하셨더라. 그런데 아무도 그분께 손들을 대지 아니하였으니, 그분의 시각이 아직 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오늘 아침에는 “나의 영적 눈을 열어주소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948년, 미국 마이애미의 한 남자가 이상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빌 하스트(Bill Haast). 그는 코브라, 맘바, 살모사 같은 맹독성 뱀들을 다루는 파충류 전문가였는데, 자신의 몸에 극소량의 뱀독을 직접 주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적은 양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독의 양을 늘려갔습니다.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는 수십 년간 이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혈액 속에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없는 강력한 항체가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실제로 독사에 물려 죽어가던 환자들에게 그의 피가 수혈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혈액을 수혈을 받은 환자들은 하나같이 살아났습니다. 심지어 1970년대에는 베네수엘라 정글에서 산호뱀에 물린 한 소년을 살리기 위해, 그가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자신의 피를 수혈해 준 일도 있었습니다. 그의 피를 받고 살아난 사람이 최소 21명이었다고 합니다.

그 21명 살수 있었던 것은 그 어떤 의사의 치료와 노력도 아니었고, 또 그 어떤 특별한 약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 특정한 독을 자기 몸에 지니고 이겨낸 단 한 사람의 피만이, 그 독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다른 누구의 피가 아닌 오직 그 사람의 피만이 살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인 줄 믿습니다. 다른 피가 아닌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만이 우리를 죄의 죽음에서 살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담대하게 선언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철학도, 그 어떤 종교도, 또한 그 어떤 위대한 선한 행위도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죄에 물들지 않으신 정결하며 거룩한 하나님의 피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떻게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지 살펴 보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누차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정말 희망과 소망을 잃어버린 시대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세계를 돌아보면 엄청난 자연재해 때문에 수많은 나라와 백성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엄청난 강도의 지진과 홍수와 산불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엄청난 피해을 입었습니다. 또 전쟁은 점점 심각할 정도입니다. 특히 중동쪽 전쟁은 더 크게 진전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는 더 악해 져 가는 것 같습니다. 정말 예수 믿기 힘든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미국은 그래도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순교할 각오를 하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기독교인들, 정치범죄자들의 간과 신장, 심장등을 떼다가 판다고 합니다. 정부가 돈을 벌기위해 그런 엄청난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어떻게 저런 범죄를 저지를수 있지 하는 생각을 하며, 정말 악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이러한 상황속에서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12절,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가운데 살아가지 아니할 것이요, 오히려 생명의 빛을 소유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에게 소망의 메세지를 전하십니다. 예수를 믿으며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고, 참 생명의 빛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참 빛이 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므로 낙심과 좌절속에서 절망하던 내 영혼에 생명이 임하고, 매일 매일 소망으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복음입니다.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이들이 이 복음을 다 받아드리지는 않습니다.
13절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당신께서는 자신에 관하여 확증하시나이다. 당신의 확증은 참되지 아니하나이다.”’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복음의 메시지를 믿지도 않고, 받아드리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반박하고, 거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논리적으로, 율법적으로 예수님의 증언은 받아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여러 예를 드시면서 자신의 증거가 옳음을 주장하십니다.
14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비록 내가 자신에 관하여 확증할지라도 여전히 나의 확증은 참되도다. 이는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라. 그러나 내가 어디에서 오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는 분간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것은 영적인 진리인데, 너희가 영적으로 죽었기에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메시아이며, 이 세상을 구원할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온 메시아인데 너희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내 증언은 확실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5-16절 보시면, ‘너희는 육신을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 그런데도 불구하고 만일 내가 판단한다면 나의 판단은 참되니라. 이는 내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육체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에, 너희 판단이 바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므로 항상 의롭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은 지금 예수님을 외모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는 갈릴리에서 온 가난한 목수 아들로만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행하신 기적을 듣고, 보고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육신의 눈으로만 판단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의 판단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육신의 눈은 오직 볼 수 있는 것만 봅니다. 학위, 배경, 인맥, 외모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진리를 볼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의 오류는 지적 무능력이 아니라 영적 눈멀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영적인 눈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 영적 눈이 열리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인 것을 볼 수도 없고, 분별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코 이 마지막 시대에 바르게 믿음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국적으로 이 세상에 곧 다가올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과 다시 오실 영광의 주님을 잘 준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깨여서 기도하지 않고 잠자고 있는 교회와 성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변질된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와 목회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영적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영적
눈이 멀어 육신에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내가 판단할지라도 내 판단은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판단이 참된 이유는, 그것이 고립된 개인의 주관적 견해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일치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증언은 아무리 진실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진실은 부분적이 될 수도 있고, 어떨 때는 편향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그런 한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두 분이 완전히 하나이시기 때문에 아들의 증언은 곧 아버지의 증언이며, 그것은 절대적으로 참된 것입니다.

그래서 17-18절 보시면 예수님은 율법의 예를 드십니다, 두 사람의 증언이 있으면 참되다고 율법에 말하지 않았느냐? 하시면서 이 증거는 나와 하나님 아버지가 동시에 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증언이 옳다고 말씀하십니다‘.

19절 보시면, ‘그때 그들이 그분께 말씀드리기를, “당신의 아버지께서 어디에 계시나이까?”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는 나도, 나의 아버지도 모르노라. 만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너희는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라.”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분노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너의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냐고? 묻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이지만, 진정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가 누구이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평생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불쌍한 인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또한 우리가 바리새인들과 같지 않은가 깊이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나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섬긴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데, 내가 정말 하나님을 아는가? 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나를 아실까? 그 질문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식적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관계, 생명이 있는 관계로 알고 계십니까? 묻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죽음후에 주님 앞에 섰는데, 우리 주님이,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떠나가라” 하시면, 그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면, 그것처럼 황당하고, 불행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교회 생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님을 깊이 알고, 그 주님을 사랑하면 나의 헌신과 수고는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며 기쁨과 감격으로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믿음이 반석이 되시는 예수님 위에 세워진 믿음이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안에 생명의 빛이 있으며, 주님과 깊은 교제속에서 동행하시므로, 하나님도 여러분을 인정하시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새벽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꺠달을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영적 눈이 열리면 됩니다. 기도하십시오. 주님! 나의 눈을 열어 주소서.

내 눈이 열리면 됩니다. 지금 세상이 어둡고, 절망적이며,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예수안에 참 소망이 있고, 예수안에 참 생명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예수님이 보이고, 그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오늘 새벽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내가 세상의 빛이라. 마음의 문을 열고, 영접하라! 나를 따르라!

여러분이 영접하고, 따르기로 결단할때 두 가지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삶에 어두운 세력이 물러갈것입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집니다, 슬픔과 근심에서 기쁨과 평안으로 바뀔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며, 여러분의 삶은 남에게 소망이 되며, 생명을 주는 삶을 살게 될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9/11/2026

소망과 생명을 주는 삶을 살라

요한복음 8장 12절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가운데 살아가지 아니할 것이요, 오히려 생명의 빛을 소유하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아침에는 “소망과 생명을 주는 삶을 살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세계적인 탐험가이자 해군 장군이었던 리처드 버드(Richard E. Byrd)의 이야기를 혹시 아십니까?
그는 남극을 탐험하던 중, 홀로 작은 오두막에 남아 수개월 동안 기상 관측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남극의 겨울은 해가 전혀 뜨지 않는 지독한 밤이 몇 달 동안 이어집니다. 온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에 갇히고, 기온은 영하 50도 이하로 떨어지는 곳입니다.

어느 날, 그 오두막의 난로가 고장 나면서 일산화탄소가 누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독한 어둠 속에서 점점 의식을 잃어갔습니다. 몸은 마비되어 가고, 희망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구출 되었고 훗날 그는 자신의 일기에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둠은 단순히 빛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소망과 생명을 하나씩 갉아먹는 거대한 괴물과 같았다."

여러분, 그를 살린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수개월 만에 그를 구하러 온 구조대의 작은 플래시 불빛이었습니다. 칠흑 같은 남극의 어둠을 뚫고 다가온 그 작은 빛 하나가, 죽어가던 그에게 다시 숨을 쉬게 했고, 살 수 있다는 소망을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어떻습니까?
겉으로는 화려한 도시의 네온사인과 밝은 조명 아래 살고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어쩌면 그 남극의 오두막에서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있지 않습니까? 불안이라는 어둠, 절망이라는 어둠,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방향 상실의 어둠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어둠 속에서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어둠속에 있는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가운데 살아가지 아니할 것이요, 오히려 생명의 빛을 소유하리라.”

왜 이 말씀을 선포하셨을까요?
사실 이 말씀은 이번주에 살펴본 간통한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 후에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그 간통 죄는 죽음입니다. 그녀에게는 정말 소망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돌을 들고 그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를 정죄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그녀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하시며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남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여러분! 주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 말씀 하실 때는 이 세상이 어두움 / Darkness, 이라는 전제하에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후에 세상은 더 이상이 에덴이 아니었습니다. 죽음과 죄가 충만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종말에는 개인종말이 있고, 우주적인 종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종말은 무엇일까요? 전에 이 세상은 물로 심판을 받았지만, 이제 곧 이 세상은 불의 심판으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 세상을 보십시오. 악으로 너무나 충만하지 않지 않습니까? 각종 테러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이슬람은 유럽을 장악했고, 미국을 넘보고 있습니다. 수 많은 어린 여자아이들이 납치되어 성노예가 되는 것이 미국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동성애와 트렌스젠더의 세력이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청소년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며 영혼들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병든 문화 때문에 수많은 자살과 잔인한 살인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어두움 세력에 잡혀 있는 세상입니다. 이제 곧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바로 코 앞에 다가왔음을 저는 인지하고 있습니다. 정말 소망이 없고, 희망이 없는 세대가 지금의 세대인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점점 소망을 잃고 절망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무슨 말씀일까요?
예수님이 세상의 소망, 세상의 생명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주님이 나의 소망이 되십니다. 오직 주님이 우리 가정의 소망이 되십니다. 오직 주님이 우리 교회에 소망이 되십니다. 오직 주님만이 이 나라와 인류의 소망이 되십니다. 할렐루야!
그 어느 나라도, 그 어느 정치인도, 그 어느 리더도, 우리에게 소망이나 희망이 될수 없고, 줄수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참 소망이요, 그분만이 주실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명예, 재물, 권력이라는 촛불을 켜고 인생의 어두움을 밝혀보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언젠가 다 꺼지고 맙니다. 예수님만이 꺼지지 않는 영원한 참 빛이십니다. 어둠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다른 촛불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의 영혼을 맡기는 것입니다.

두번쨰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했습니다.
전에는 어두움 세력에 붙들려, 죄를 사랑하고, 죄를 위하여 살아있는데, 이제는 어둠에 다니지 않으며, 이제는 빛에 자녀로 빛 가운데 거하는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바라만 보면 안됩니다. 계속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빛을 멀리서 구경만 하는 사람은 어둠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빛을 따라 가야 그 어둠 속에서 벗어 날 수 있습니다.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 매일 진을 치고 행진했던 것처럼, 신앙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날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좇아 가는 동행입니다. 내 어두운 육신의 정욕과 욕망을 내려놓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를 때, 우리는 비로소 어둠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멘!
영적으로 죽은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의 빛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하여 생명을 주고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에베소서 5장 8절 보시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했습니다.
여러분, 달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지만 태양 빛을 반사하여 어두운 밤을 밝히듯, 성도는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반사하는 영적 반사경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이 암흑 같은 세상에 소망과 생명을 주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정 여러분 가정에 소망과 생명을 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모든 관계속에서 소망과 생명을 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간통으로 끌려온 여인은 이미 죽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녀에게 소망을 주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녀를 용서를 하시고, 다시한번 희망을 가지고 살수 있는 기회를 주신것입니다. 우리 또한 받지 않았습니까? 죽을수 밖에 없는 죄인인데, 용서를 받았습니다. 참 생명을 받고, 이제 소망안에서 살지 않습니까?
이 한주 이 어두운 세상에서 소망을 주고, 생명을 주는 통로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9/10/2026

더는 죄를 짓지 말라

요한복음 8장 10-11절
10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 여자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자 친히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 자들이 어디에 있느냐? 아무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였더냐?” 하셨느니라.
11 그녀가 말씀드리기를, “주여, 아무도 없나이다.” 하였더라. 이에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가라. 그리고 더는 죄를 짓지 말라.” 하셨느니라.

오늘 아침에는 “더는 죄를 짓지말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미국에 한 소년원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판사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판사는 수십 년간 수천 건의 청소년 범죄 사건을 다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열여섯 살 된 한 소년이 그의 법정에 섰습니다. 절도로 세 번째 붙잡혀 온 아이였습니다. 검사는 소년원 송치를 요청했고, 서류상으로는 그것이 합당한 처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판사는 판결을 내리기 전에 소년에게 딱 한 가지를 물었습니다.

"네가 왜 훔쳤는지, 그건 묻지 않겠다. 내가 묻고 싶은 건 이거다 — 여기서 나가면,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소년은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아무도 지금까지 그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늘 "왜 그랬냐", "몇 번째냐", "형량이 얼마냐"만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판사는 그 아이의 죄의 무게를 확인하는 대신, 그 아이 앞에 놓인 다른 길을 보게 한 것입니다.

판사는 그날 소년을 석방 시켰습니다. 그 대신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방을 나가면,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지 말아라."

그 소년은 훗날 그 도시의 사회복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날 판사님이 저를 풀어주신 것이 저의 인생을 바꾼 게 아닙니다. 저를 바꾼 건, 그분이 저에게 '가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신 그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이 스토리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은 율법과 사람들의 정죄아래 벗어날 길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녀를 고발하던 모든
손가락을 다 물리치시며, 그녀에게 말씀하십니다.
11절,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가라. 그리고 더는 죄를 짓지 말라.” 하셨느니라.’
이것이 바로 복음이 아니겠습니까? 죄에 대한 용서함이 있고 다시 새로운 피조물로 살수 있는 2nd Chance,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늘 즐겨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가지입니다. 바로 고발과 정죄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 죄를 고발하고, 정죄합니다. 너가 그러고도 크리스챤이냐? 너가 목사냐? 너가 집사냐? 너는 그런 죄를 짓고도 뻔뻔하게 교회에 나가냐? 너는 그러고도 살고 싶으냐? 이렇게 우리 죄를 고발하고, 정죄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고발과 정죄와 죄책감에 시달려, 고통을 느끼며, 힘들어 합니다. 잠을 못자고, 우울증 빠지고, 잘망과 좌절속에서 믿음도 포기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영적으로 서서히 죽어가게 만들어 버립니다.

여러분! 정죄가 이렇게 무서운 마귀의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는 절대로 남을 고발하거나, 정죄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우리는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되신 여러분은 남을 긍휼이 여기시고, 용서하는 작은 예수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가 연약하여 언제든 죄에 무너지면 마귀가 찾아와 정죄할 것입니다. 그 때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전혀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살아가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을 따라 살아가느니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이 나를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였기 때문이라.” 아멘!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고,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는 끊임없이 넘어지고, 죄를 짓지만,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 모든 죄는 다 씻음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아무리 마귀가 고발하고, 정죄해도, 이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자유함 속에 거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녀를 죽이려는 모든 사람은 떠나고, 그녀는 살게 되었습니다. 2nd Chance 거듭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내가 지금 죽을 것 같은 환경에 있을지라도, 주님이 함께하시고, 말씀하시면, 절망은 떠나 갈 줄로 믿습니다. 저주는 떠나갈 것입니다. 비극은 물러갈 것입니다. 불행도 떠나갈 것입니다. 병마도 물러갈 것입니다. 후회되는 과거는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 남는 것은 참 생명이요, 기쁨이요, 자유요, 감동이요, 평안 일줄로 믿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보혈의 은혜를 남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용서하신다고, 막 죄를 지으면서 살라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네 마음대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여인은 예수님 만난 후 어떻게 살았을까요? 또 간통하며 막 살았을까요? 아니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헌신의 삶과 거룩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과 율법주의자의 차이점이 먼지 아십니까?
율법주의자는 변해야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복음은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용서 받았으니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삶을 살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혈의 능력을 체험하신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신 여러분! 막 사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룩하게 삽시다. 헌신의 삶을 삽시다.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복음 사역을 위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9/09/2026

나를 먼저 바라보라

요한복음 8장 7-9절
7 그런 이유로 그들이 그분께 여쭈기를 계속하였는데 그분께서 자기 몸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그가 먼저 돌을 그녀에게 던지라.” 하셨느니라.
8 그러고는 다시 그분께서 몸을 굽히신 후에 땅바닥 위에다 적으셨더라.
9 그러자 그것을 들은 자들은 그들 자신의 양심에 의하여 가책을 받아 가장 나이가 많은 자부터 시작하여 심지어 가장 막내인 자까지 한 명씩 빠져나갔더라. 그러자 예수님께서 홀로 남으셨고 그 여자는 한가운데 서 있었더라.

오늘 아침에는 “나를 먼저 바라보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어제는 “정죄에서 은혜로” 라는 제목으로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죄를 보지 말고 긍휼이 필요한 죄인으로 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그녀는 자신의 죄가 들통난 죄인이라 종교 리더들에게 정죄를 받았지만 우리 또한 그녀와 다를 바 없는 것은 우리는 아직 들통나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은혜의 자리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과거를 보고 우리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실패를 보고 우리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실수와 죄에 대한 연약함으로 인해 정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의 죄와 실수를 정죄하기 보다 주님처럼 남을 긍휼히 여기며 용서와 은혜를 베푸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8절 보시면, ‘그런 이유로 그들이 그분께 여쭈기를 계속하였는데 그분께서 자기 몸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그가 먼저 돌을 그녀에게 던지라.” 하셨느니라. 그러고는 다시 그분께서 몸을 굽히신 후에 땅바닥 위에다 적으셨더라.’ 하셨습니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 지라 했는데, 영어 성경에는 They demand the answer. 빨리 대답하라고 요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일어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주님이 또 무엇을 쓰셨을까요? 저는 이렇게 추측해 봅니다. 6절에서 쓰신 것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 쓰셨고요.

8절에서 쓰신 것은 거기 있는 사람들의 죄를 기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일 먼저 가까이 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은밀한 죄를 쓰고, 그 다음에 정말 날뛰는 사람들의 죄를
썼을것입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9절입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그곳에 돌을 들고 서있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한마디에 모두 떠나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그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럴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 있습니다. 그 말씀은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우리의 영과 혼과 마음을 찔러 쪼개는 것입니다. 그 한 말씀이 한 순간에, 그들의 양심을 깊이 찌른 것입니다. 자신들도 더러운 죄인이구나 깨닫게 된 것입니다. 순간 자신도 부끄러워 남을 정죄할 수 없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돌을 다 던지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저는 그 말씀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매일 매일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모든 은밀한 죄를 드러나게 하시고, 회개의 자리로 인도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남을 정죄하는 자리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늘 겸손하며, 남을 긍휼이 여기는 자리에 서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여러분, 먼저 예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간음한 이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실까요?
그 이유는 무조건 예수님께서 그녀의 죄를 외면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녀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죄의 값을 담당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우리가 받아야 할 정죄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고 그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치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죄가 없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정죄가 없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며 Good News입니다.

9절에 그들이 다 떠나갔습니다. 그들의 시선이 그 여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추어 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고백 가운데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죄인입니다.” 입니다.
“저 사람이 문제입니다”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저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가 아니라, “주님, 내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저 사람에게 은혜가 필요합니다”가 아니라, “주님, 나에게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정죄의 돌을 내려 놓기를 원합니다,
나의 의가 얼마나 걸레 같은가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십자가에 앞에 세우십시오.

그 때 우리에게 큰 은혜가 임할 수 믿습니다.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회복되고 우리의 영이 살아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9/08/2026

정죄에서 은혜로

요한복음 8장 1-6절
1 예수님께서 올리브산으로 가셨더라.
2 그리고 아침에 일찍 그분께서 성전으로 다시 나아오셨으니, 모든 백성이 그분께 왔더라. 그리고 그분께서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더라.
3 그러자 서기관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그분께 데려왔더라. 그리고 그들이 한가운데 그녀를 세워 두었을 때,
4 그들이 그분께 이같이 말씀드리니라. “스승이여,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바로 그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이때 모세는 율법 안에서 그러한 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명령하였나이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시나이까?”
6 그들이 그분을 고소하려고 그분을 시험하며 그들이 이렇게 말하였더라.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치 그분께서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하신 것같이 몸을 굽히셔서 그분의 손가락으로 땅바닥 위에다 적으셨더라.

오늘 아침에는 “정죄에서 은혜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십니다.
그 날은 초막절 마지막날이었습니다. 축제가 절정에 이르는 날로, 사람들이 마시고. 즐기고, Palm Branch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춤출 때, 주님이 그들에게 초청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 배에서 생수가 흘러 나오리라 하셨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놓고 논쟁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또는 그리스도로 인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이들은 귀신들린자로 취급을 했습니다. 종교 권력자들은 그가 위험한 사람으로 평가를 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사람을 풀어 그를 체포하려고 했지만, 하수인들이 그냥 빈 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빈손으로 왔냐? 물었더니, “그가 말씀하실 때, 그 영적권위에 눌려, 어떻게 할수 없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너희도 미혹을 당했느냐? 하며 분노하며, 다음 기회를 잡으려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그날 계속 가르치시다가, 이제 감람산으로 돌아가십니다. 왜 거기로 가셨을까요?
여러분! 누가복음 9장 58절 말씀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주무실 곳이 없어서 새벽이슬을 맞으면서 감람산에서 지내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또 너무 풍요롭고 편안하게 사는 것만 추구하는 우리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정말 가신 이유는 주님께 이 감란산은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의 장소이었습니다.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전에도 여기 오셔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언제나 지치고 힘드실 때 오신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주님과 친밀히 교제할수있는 기도의 감란산 장소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때 무릅을 끊고 나아 갈수 있는곳이 있기를 바랍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만나주십니다. 내 기도를 들어 주시고, 나에게 말씀해 주시고 위로와 힘을 받을수 있는 감란산으로 자주 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절 보시면,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예수님이 아침에 다시 성전에 들어오시니까, 백성들이 다 나오는지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주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얼마나 싫어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주님을 잡기위해서 함정을 만들었습니다.

3절을 보시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웁니다.
자 우리는 여기서 몇가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첫번째로 어떻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인 현장에서 그 여인을 잡아 왔을까입니다.
음행은 몰래, 사람들이 잘 볼수 없는, 찾을수 없는 곳에서 하는데, 그 현장을 덥쳐, 그 여인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는 있는데, 남자는 없습니다. 여러분! 율법에는 남, 녀 둘다 죽여야합니다. 그런데 남자는 사라지고, 여자만 끌려 온것입니다. 이것을 볼때, 이미 계획된 음모이며, 그 여인이 희생양이 된것입니다.

두번째로 그 여인이 느끼는 수치와, 괴로움과 공포입니다.
현장에서 잡힌 그녀가 옷은 제대로 입고 끌려왔겠습니까? 헝클어진 머리에, 옷은 걸쳤는지 모르겠습니다. 길거리에서는 사람들이 분노하며, 씩씩대며, 온갖 욕을 하며, 손에 돌을 들고 따라옵니다. 그 여인이 얼마나 수치를 느끼며, 공포에 떨었겠습니까?

여러분, 중동국가에서는 간통하다가 걸리면 돌로 쳐 죽이는데요, 땅에 구덩이를 판 다음 여자를 집어 넣고, 허리 밑까지 매장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돌을 던져 죽이고 그 돌이 쌓여, 돌 무덤이 되게 합니다. 정말 잔인하게 여자를 죽이는 것이죠.
그러니 여자의 머리속에서 어떤 생각들이 지나가고 있을까요? 정말 공포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가운데 서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둘러서서 자기를 보고있습니다.
무섭고, 챙피해서 고개도 못들고 있는 것입니다.

4-5절 보시면, ‘그들이 그분께 이같이 말씀드리니라. “스승이여,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바로 그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이때 모세는 율법 안에서 그러한 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명령하였나이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시나이까?”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 여인을 끌고 와서 주님께 묻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간음하다가 잡혔는데, 율법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 어떻게 하라고 하시겠습니까? 묻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들이 지금 어떻게 할지 몰라서 주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율법에 분명히 죽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0장10절, 보시면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알면서도 묻는 목적이 있습니다.

6절 보시면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하시 위함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를 체포할 건수를 만들려고 함정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지금까지 예수님은 율법의 근본 정신인 바로 사랑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잡혀 온 이 여인을 용서하라고 말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 ‘이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하시면 지금까지 가르치신 사랑의 정신이 다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 함정을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른 말씀을 안하시고,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십니다.
성난 군중들 앞에서, 땅에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많은 성경학자들이 추측을 합니다.
아마도 돌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죄를 쓴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배우기 원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죄를 드러내지만 예수님은 죄인을 바라보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죄하지만 예수님은 회개와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실제 모습이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는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부모로 보이고 싶습니다.
직장에서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꾸며낸 겉모습만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 가족이나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우리 마음과 생각속에 있는 추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보십니다. 우리는 남을 속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자신의 죄가 모든 사람 앞에 공개된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여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정죄하려고 했습니다. 구들은 돌을 들고 있었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죄의 값을 치루어야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 또한 그 여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가 들통난 죄인이고 우리는 우리 죄가 아직 들통나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또 생각으로 그리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합니까? 다만 들통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남의 죄가 드러나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정죄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죄인을 정죄하지 아니하십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죄를 모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는 죄를 가볍게 여기신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죄만 보지 않으시고 긍휼이 필요한 죄인으로 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죄를 아시면서 우리를
긍휼히 바라보십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과거를 보고 우리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실패를 보고 우리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실수와 죄에 대한 연약함으로 인해 정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의 죄와 실수를 정죄하기 보다 주님처럼 남을 긍휼히 여기며 용서와 은혜를 베푸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9/08/2026

예수님에 대한 반응

요한복음 7장 45-53절
45 ¶ 그때 수석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관원들이 왔더라. 그러자 그들이 관원들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는 그를 데려오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46 그 관원들이 대답하기를, “이 사람같이 말한 사람이 결코 없었나이다.” 하였더라.
47 그때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더라. “너희도 속았느냐?
48 치리자들 중이나 바리새파 사람들 중에 누가 그를 믿은 적이 있느냐?
49 그러나 율법을 모르는 이 백성은 저주받은 것이라.”
50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이같이 말하니라. (그는 그들의 일원으로서 밤에 예수님께 왔었더라.)
51 “우리의 율법이 당사자의 말을 듣고 그가 행하는 것을 알기 전에 그것이 아무 사람이나 판단하느냐?”
52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너도 갈릴리 출신이냐? 찾아보고 살펴보라. 이는 갈릴리에서는 예언자가 아무도 일어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하였더라.
53 그런 다음에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기 자신의 집으로 갔더라.

오늘 아침에는 “예수님에 대한 반응”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7장에 마지막 부분입니다. 아시는 대로 예수님이 초막절 마지막날, 사람들이 축제로 푹 빠져 있었을때, 사람들에게 초청을 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오라! 내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떄 어제 주일에 말씀 드린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놓고 논쟁을 했습니다.
어떤이들은 선지자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진정 그가 그리스도라고 말을 했고요. 좀 성경 지식이 있는 사람은 갈릴리 사람이 어떻게 메시아가 될수 있느냐? 하며 반박을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권력자들은 그는 이단이다. 그는 귀신들린자다. 사람들을 선동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다 해서 그를 체포하고 죽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수인들을 풀어 끌고 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냥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45절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묻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했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긴다는 사람들이었지만, 오히려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그 하나님을 미워하고 죽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하수인들이 빈손으로 오니 분노하는 모습을 우리가 본문을 통해 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진정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지는 않는가?

여러분! 그들은 제사를 열심히 드렸습니다. 율법, 열심히 지켰습니다. 기도 열심히하고, 금식하고, 십일조 잘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 한것입니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듯이, 그들은 백성들을 자신도 빠져 죽을 구덩이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보십시요. 교회 리더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엄청난 죄를 범하고, 싸우고, 밀어내고, 고소하지 않습니까? 그들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신다 고백하며, 그 분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며, 예수님이 피값으로 사신 이 교회를 위해 온전히 섬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6절 보시면,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지금까지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말씀하실때 엄청난 영적 권위로 말씀하시는데 너무 눌려서 어떻게 할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아무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지만, 설교를 하실때 그 영적 권위, 상상이 되십니까?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제가 참 존경하던 목사님이 계십니다. 방지일 목사님이신데. 저의 아버님의 멘터가 되시는 분이었습니다. 방효원 목사님 아들로 태어나셔서, 평양신학교 졸업하시고,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시며, 길선주 목사님과 같이 사역도 하셨습니다.

후에 중국선교사로 21년동안 섬기시고 영등포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저의 아버지 멘터가 되시니까 가끔씩 뵈었습니다. 90이 넘으셔도 복음의 설교를 하시는데 목소리도 쩌렁쩌렁하십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설교하시면 정말 말로 설명할수 있는 영적 권위에 완전히 눌리는 것을 체험합니다. 완전 몰입하게되고, 가슴이 뜨거워지게 됩니다.

그당시 주님이 말씀하실때, 그 권위는 상상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감히 주님에게 손을 댈수가 없었을것입니다.

47-49절 보시면, 그들이 분노하며 말합니다. 그 예수를 체포하라고 보냈는데, 오히려 너희들이 그 가르침에 넘어갔느냐?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보라 우리 가운데 그 예수를 믿는 사람이 누구 있느냐?

그는 가짜다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했는데, 이것은 자신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 이유가 있는것처럼 보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성경으로 자신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싸인들에 대해서도 제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4장 27절 보시면,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오신것은 Fact 입니다, 역사입니다.
그것을 믿으실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50-51절 보시면,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이같이 말하니라. (그는 그들의 일원으로서 밤에 예수님께 왔었더라.) “우리의 율법이 당사자의 말을 듣고 그가 행하는 것을 알기 전에 그것이 아무 사람이나 판단하느냐?” 했습니다.

여러분! 니고데모를 잘아시지요? 그가 예수님을 변호하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말하는것은, 정말 성경대로 판단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그를 판단하기 전에,
그의 말이나 가르침에 어떤 거짓이나, 성경적이 아니었는지 먼저 알아봐야 되지 않겠느냐?

또 그가 행한 모든 일들 중에 어떤 도덕적인 악이 있는지 조사를 해야 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성경적으로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들이나, 행동 속에서 그 어떤 악이나, 잘못을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그를 체포할수 없었던것입니다,

단지 그가 갈릴리 지방 사람이었고, 자신들의 위치와 파워를 흔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 두려움에 예수를 죽일려고 하는 것입니다.

52-53절 보시면,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너도 갈릴리 출신이냐? 찾아보고 살펴보라. 이는 갈릴리에서는 예언자가 아무도 일어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하였더라.
그런 다음에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기 자신의 집으로 갔더라.”
니고데모가 그런 말을 하니, 그들은 갑자기 화를 냅니다. 왜 우리 편이 아니냐? 라는 뜻이지요.
그러면서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즉 너도 그와 같은 편이냐? 하며 빈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올수 없다는 말하며, 갈릴리를 완전 무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놓고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안에도 그런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진정 그리스도 이신가? 진정 예수가 성경에서 말한것 같이 그런 분이실까? 아닐수도 있지 않는가?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말한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며, 모든 죄와 불행과 죽음의 문제의 해결자라고 말한 자는 역사상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단이나 사이비 종파의 교주들은 그런 말을 하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진 종교의 창시자들은 그렇게 말을 못했습니다. 석가모니도 모하멧도 공자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만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꼐로 올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로 오셔서,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실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예수님을 바로 믿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감동받고, 도전을 받았을지라도 — 만약 우리 또한 본문 53절 말씀처럼 그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리새인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진리를 접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그 진리에 바르게 반응하는 것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진정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 분에게 합당한 반응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오직 주님만 경배하시고, 신뢰하시고 순종으로 끝까지 따라가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 잔치에 참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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