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7/2024
내일 26일은 저희 부부가 결혼한지 40년째되는 결혼기념일입니다.
1980년 4월, 믿음을 지키기 힘드니 가지 말라는 모친의 간절한 반대에도 무릅쓰고 해병대에 지원해 306기로 진해 훈련소에 입대하였으나 가입소교육을 마치고 군복 나누어 주는 날 귀가조치되어 낙담하여 집에 돌아 갔을때, 모친께서는 대문앞에서 두팔을 벌리고 "할렐루야"를 외치셨습니다. 제가 입대한 후 그때부터 금식에 들어가신 모친은 제가 다시 돌아오도록 기도하셨고 그 기도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후에 여동생이 증언해줌).
제 결혼은 군대이야기와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 이 이야기로 먼저 시작되어야 하네요.
6월에 육군입영통지서가 나와 논산훈련소에 들어가 기본 교육을 마치고 대전 통신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주특기 321, 무선통신병, CW병)을 마친후 배치된 자대가 6사단 청성부대 8706 155밀리 포병부대 본부중대였습니다. 신앙을 지키느라 모진 고생을 하던차에, 새로 부임하신 신앙좋으신 박무신대대장(당시 중령, 감리교집사님)의 눈에 띄어 상병되던해에 본부중대에 위치한 군인교회의 군종병으로 전격적으로 발탁이 됩니다. 그 기쁜날을 생각하면 - 저를 미운오리새끼라며 그렇게도 미워하며 괴롭히던 고참들이 더블백메고 소총들고 군인교회로 걸어가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 보던 그 날 -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3년간 비어있던 군목이 새로 오셨는데 고신파 군목이셨습니다. 전 본래 고향이 충청도라 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그 군목을 모시면서 꿈같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분이 소개해주신 소교리문답강해서는 제게 신앙적 노선을 전격적으로 전환하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신학도서였습니다. 그리고 제대후 저는 그분의 조언대로 "신학은 넓게 얕게 파는 것보다 처음에는 좁게 깊게 파는 것이 좋다"는 권유를 받아 들여 고신대학 신학과에 입학하여 사역자의 길을 준비하게 됩니다.
군종병시절, 군목님은 총각이셨는데 결혼을 하셨고, 부대인근에 집을 얻어 부친과 여동생과 함께 지내시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여동생은 군인교회에서 저와 함께 주일학교도 섬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여동생과 사랑에 빠졌고 마침내 제대후 신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동생은 지금까지 40년동안 충성된 아내로서, 사모로서, 선교사로서 함께 주님을 섬기는 복되고 행복한 길을 같이 걷고 있습니다.
주님의 정확한 시간표와 섭리를 보며 살아계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해병대 귀가조치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도 없었겠지요. 주님은 때가 되매 저의 삶에 간섭하셨고 창세전에 작정해 놓으셨던 일들을 착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톱니바퀴는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서 저의 앞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께서는 군대생활을 통하여 제가 세가지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첫째 참된 목자로서의 멘토를 주셨고(주원명 목사님),
둘째 좋은 신학을 알도록 인도해 주셨고(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셋째 진주보다 갚진 아내를 얻게 하셨습니다(잠 31:10).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의 저의 저됨은 모두 주님의 은혜요,
아내 주음용 선교사의 희생과 헌신과 인내와 용납의 결과입니다.
주음용선교사가 없었다면 제 선교사역도 없었을 것입니다.
주께서 주선교사에게 하늘의 상급으로 가득 안겨 주실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