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링턴 좋은교회 Wellington Good Church

웰링턴 좋은교회  Wellington Good Church 웰링턴 좋은교회는 뉴질랜드 웰링턴의 나이오에 위치한 기독교 대한감리회에 속한 교회입니다.

웰링턴 좋은교회는 이런 교회 되기를 바라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1. 행복한 교회
우리교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을 얻고, 예배를 통해 삶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받고, 고민하고 걱정하는 일들이 풀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세상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가기를 원합니다.

2. 사람을 세워가는 교회
우리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꾼들이 세워져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꿈과 비젼을 발견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움받기를 원합니다.

3. 세상을 인도하는 교회
급변하는 요즘

세상 속에서 무엇이 정의요, 진리인지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선과 악도 모호해지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세워집니다.
변치않는 그 진리로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하길 원합니다.

웰링턴 좋은교회에서 한마음, 한뜻, 한비젼을 품고 함께 하나님나라를 향해 나아가길 원합니다.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이 길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실줄 믿습니다.

2026년 6월 18일 목요일 아침묵상 시편 52:1~91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3...
17/06/2026

2026년 6월 18일 목요일 아침묵상

시편 52:1~9

1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
4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셀라)
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7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8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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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은 표제에 나와있는 것처럼 다윗의 저작으로 보며 표제는 그 기록의 시기가 다윗이 사울왕으로부터 도망다니던 중 대제사장 아히멜렉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에돔사람 도엑이 이를 사울왕에게 밀고함으로 인해 놉 땅에 제사장들이 학살당하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놉 땅의 85명의 제사장들이 에돔 사람 도엑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또한 그 땅에 살던 제사장에게 속한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쳐서 죽이는데 다윗은 이 일이 자신의 연고라고 자책하게 됩니다. (삼상22장)

그런 배경을 가지고 본 시편을 읽게 되면 그 책망과 비판의 의미를 좀더 깊이 알 수 있을듯 합니다.

다윗은 포악한 자의 악한 계획과 악한 혀와 거짓으로 남을 헤치는 모습을 비판합니다(1~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포악한 자를 영원히 멸하시고 뿌리를 뽑으실 것을 선포합니다(5)

그런 악인의 멸망에 대해 의인들이 두려워하며 하나님이 아닌 재물과 힘을 의지하던 자의 최후를 비웃음으로 바라봅니다. (6~7)

반면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함으로 하나님 집의 푸른 감람나무 같을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며 영원히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사모할 것임을 노래합니다(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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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의 기록배경을 볼 때 1절의 '포악한 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분명 에돔사람 도엑입니다. 당시 놉 땅에 제사장 85명과 그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통해 비록 놉이라는 성읍이 여호수아 때에 레위인들에게 준 48개 성읍중 하나는 아니지만 레위인들과 제사장의 성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의 성읍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찾아가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사울 왕은 군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죽이라 명령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명령을 선뜻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장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거룩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엑이 그 일을 자청하여 행합니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에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 곁에서 왕의 명령을 수행할 정도로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그러한 악랄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악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를 향해 '포악한 자여' 라는 수식을 하고 있는데 개역성경에서는 '강포한 자'라고, 공동번역에서는 '악명 높은 영웅이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히브리어 원문성경에 '강하다', '용맹하다' 라는 매우 긍정적인 표현의 형용사 킵보르( גִּבּוֹר )를 사용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얼마나 악한 계획과 거짓과 간사함을 드러내는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본 시편을 통해 다윗은 그러한 악함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서에서 이후 상황에 대한 기록이 없기에 알 수는 없으나 이 일을 기억하며 노래한 다윗은 이후 자신이 왕이 된 후에라도 도엑에 대하여 철저한 심판을 통해 정의실현을 이루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요즘같이 악이 득세하는 세상이 또 있었을까요? 악함이 오히려 강함처럼 보여지고 그 악함을 통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마치 그것이 능력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요즘의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TV나 영화 속에서 악이 심판받고 정의실현이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대리만족을 이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분명히 우리에게 전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5)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그런 세상에서의 악함에 빠지거나, 그 악의 권세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같이 주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8)

다윗은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헤세드" (חֶסֶד) 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자비와 긍휼로 당신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을 기억하며 '정의실현'을 누리며 살아가는 하루되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6월 17일 수요일 아침묵상 시편 51:1~19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3...
16/06/2026

2026년 6월 17일 수요일 아침묵상

시편 51:1~19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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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은 표제에 나와있는 것처럼 다시 다윗이 지은 시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표제에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때' 라고 그 저작의 배경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밧세바와 강제로 동침하고 이를 숨기기 위해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는 씻지 못할 죄를 저지른 후 그 모든 사실을 고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나단 선지자 앞에서 보여준 다윗의 심정과 그의 회개를 기록하고 있는 참회의 시인 것입니다. (삼하 11~12장)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철저하게 깨닫고 시인하며 그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였음을 고백하며 자신의 죄악을 씻어달라 간구합니다. (1~5)

그리고 그 죄는 오직 하나님께서 씻을 수 있으니 자신에게 지혜를 가르쳐주시고 우슬초로 정결하게 씻어주시기를, 징계로 인해 뼈가 꺾어지는 고통 속에서 기쁨을 회복케 해달라고, 주의 얼굴을 자신의 죄에서 돌이키시고 죄악을 지워달라고 요청합니다(6~9)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마음과 영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성령을 거두지 마시고,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10~12)

그는 이를 통해서 자신이 주의 도를 죄인들에게 가르치며, 주의 의를 노래하며 전파할 것이며, 하나님을 향한 의로운 참 제사를 회복할 것임을 서원하며 기도합니다(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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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목도(目睹)하게 되는 상황이 될 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을 회피하거나 절대적으로 거부하거나 외면하려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그 죄에 대한 증거와 목격과 증언이 있을지라도 일단 모르는채 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법정에서 참 많이 듣는 피의자의 대답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라는 표현입니다. 일단은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가장 편하고 단순한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재판장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다윗과 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내 죄에 대한 직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나단의 책망 앞에서 다윗은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왕의 위치에서 나단을 당장에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입을 닫게 하면 또다시 자신의 죄를 숨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순간 나단이라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 선 자로 나아갑니다.

곧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본 시편은 다윗의 그런 두려움의 마음과 죄씻음을 바라는 절절한 간구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하여 자유로운 인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에 의지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당당할 수 없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이 그 회개의 간절함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게 하는 걸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슬초로 씻으시고 정한 마음을 주심으로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죄를 씻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며 오늘 하루도 우리의 입술을 열어 주를 찬송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6년 6월 16일 화요일 아침묵상 시편 50:1~23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18 도둑을 본즉...
15/06/2026

2026년 6월 16일 화요일 아침묵상

시편 50:1~23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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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은 표제에 '아삽의 시'라고 나타나고 있고 아삽은 다윗과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절 레위인으로서 성전 성가대의 책임자로 활약하였습니다(대상15:16~19) 시편 150편 중 저자를 밝히고 있는 시 중 12편이 아삽의 시로 다윗이외에 가장 많은 시편을 남긴 사람이기도 합니다.

본 시편은 지혜시로 분류되며 참된 제사는 짐승의 피로 드리는 형식적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사의 삶이라는 성숙한 신앙의 의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삽은 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해 돋는데서부터 지는데까지 온 세상 성도들을 불러 당신의 백성을 공의로써 판결하시기 위해 모으심을 선포합니다(1~6)

그 앞에 나온 백성들을 향해 저들이 드리는 번제의 제물에 대해 책망하지 않으시나 형식적인 제물은 무가치한 것이니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지존하신 이에게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주를 부르는 믿음의 온전한 실천을 촉구하고 있습니다(7~15)

따라서 아삽은 위선적인 악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를 전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법과 언약을 말하지만 정작 그 삶 속에서는 거짓과 악이 넘치며, 하나님의 침묵이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간과하신다 착각하지만 그 죄를 드러내 책망하시고 꾸짖으실 것임을 전합니다. (16~21)

그러므로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에게 돌이킬 것을 경고하며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주를 영화롭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임을 노래합니다(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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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우리는 예배를 드림에 있어 '형식'에 치우쳐 드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짜여진 예배의 순서에 따라 그 순서가 차례로 이어져가는 그런 형식 말입니다. 저 역시 그런 오랜 전통에 따라 만들어져 온 순서를 따라 예배를 진행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렇다보니 예배 시간에 아무런 주관적 의식없이 그 형식에 맞추어 예배를 따라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의 저자는 그런 순서나 형식이 잘못되었다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예배의 순서 순서 속에 얼마나 우리의 마음과 신앙의 표현을 담아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며,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 에게 구원을 보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23)

여기서 '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라는 뜻이 히브리어 원문 성경을 직역해 본다면 '길을 준비하는 자' (He who prepares the way)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학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 길을 걸어가는 자'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결국 아삽이 노래하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자는 단지 얼마나 값진 제물을 드리느냐에 대한 것도 아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예배를 준비하고 감사함으로 참여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왕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모든 것을 진멸하라 명령했지만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와 제사드리려 했다고 변명할 때 사무엘 선지자가 했던 말과 동일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감사와 그 뜻을 따르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헌금을 드리며, 얼마나 많이 예배를 드리냐가 아니라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예배 ,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026년 6월 15일 월요일 아침묵상 시편 49:1~2011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
14/06/2026

2026년 6월 15일 월요일 아침묵상

시편 49:1~20

11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셀라)
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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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은 고라 자손의 저작으로 나타나며 시편 2권에서 고라 자손의 시편은 42~49편까지 모여져 있습니다. 고라 자손의 시편은 대체적으로 공중 예배에서 사용된 내용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찬양시, 비탄시, 신정시, 시온시 등 여러종류가 나타나지만 본 시편은 그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지혜시'로 분류되며 그 내용도 인본주의적 인생관을 가지고 재물을 좇는 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용상에서 역사적 배경이나 시대를 알 수는 없지만 잠언이나 전도서와 같은 지혜 문학의 요소를 많이 담아내며 인생의 유한함, 그리고 부와 재물을 무덤까지 가져갈 수 없기에 그것을 의지해서는 안되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아내고 있기에 유대인들은 이 시편을 가까운 지인들의 장례식에서 암송했다고 합니다.

시편의 기자는 노래합니다.
세상 모든 만민들은 귀천빈부를 막론하고 내 입과 마음이 비유와 수금으로 전하는 지혜의 말씀을 들으라고 선포합니다(1~4)

세상의 재물과 부유함으로는 형제를 구원할수 없고,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 속전도 바치지 못하니, 생명을 구원할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모두 망하니 그 어떤 것도 남겨두고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생은 아무리 존귀해도 모두 짐승처럼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5~12)

시인은 세상의 부귀를 좇는 자와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자의 상반된 운명을 노래합니다.
저들은 음부와 스올로 내려가 사망과 소멸로 나아가지만 하나님은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실 것을 선포합니다(13~15)

그러므로 악인의 집에 영광이 더할 때 두려워하지 말것을 전합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죽어서 모든 것을 두고 갈것이며 그 영광도 함께 가지 못하니 살아있을때 사람들로부터 받은 칭찬과 자기 만족도 모두다 사라지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멸망하는 짐승같은 자들이라 노래합니다(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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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죽음 앞에 선 인간은 어떤 마음을 가질까요? 흔히들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죽음 이후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설까를 생각해 본다면 '죽음'이라는 찰나의 순간은 또다른 문을 여는 순간이라 할 수 있을듯 싶습니다.

그 문을 통과 할때 어떤 재물과 귀한 보석도 어떤 아름다운 옷도 다 필요없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순간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루었던 믿음의 실천만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말하지만 정말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죽어간 인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인정되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기억되고 인정되는 사람'임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더욱 세상에서의 칭찬과 자기 만족을 위한 재물과 명예와 권력의 채움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아름다운 믿음과 선행을 채워나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존귀하게 지음받았으나 그것을 깨닫지 못함으로 세상의 어리석은 길로 나아가 멸망하는 짐승과도 같은 삶을 살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한 주 그렇게 죽음으로 달려가는 존재가 아닌 새로운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6월 12일 금요일 아침묵상 시편 48:1~141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2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
11/06/2026

2026년 6월 12일 금요일 아침묵상

시편 48:1~14

1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2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3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도다
4 왕들이 모여서 함께 지나갔음이여
5 그들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지나갔도다
6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7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8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리로다 (셀라)
9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10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11 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12 너희는 시온을 돌면서 그 곳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라
13 그의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의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14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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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은 표제에 나와있는대로 고라자손의 저작으로 보며 저작의 배경이나 역사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록된 내용을 통해 시온산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은혜를 노래하는 찬양시로 분류하며 성전 찬양대의 일원이었던 고라 자손의 성전 예배시의 찬양을 위해 지어진 시로 추정합니다.

시인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 산에서 온 만방을 향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1~3)
시온을 공격하려 모인 왕들이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 도망치고 적들의 강한 배를 깨뜨리셨으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영원히 견고케 하심을 찬송합니다(4~8)

시인은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며 그 이름과 정의의 충만하심을 찬양합니다(9~10)
그리고 백성들을 향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망대를 세어보고 성벽과 궁전을 후대에 전할 것을 요청하며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믿고 노래합니다(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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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47편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면 48편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하나님의 산, 시온 산을 통한 하나님의 찬양의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인은 시온을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 '터가 높고 아름다운 곳', '온 세계가 즐거워하는 곳', '큰 왕의 성' 등으로 부르며 찬양합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이 통일 왕국을 이룬 후 수도로 삼은 성읍이었고 하나님의 성전을 모신 곳이 되었기에 가장 중요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후 역사 속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신데 어떻게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무너질 수 있느냐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무너지고 고레스 칙령으로 유다 백성들이 다시 돌아올 때 가장 먼저 이루고자 했던 것이 바로 '성전 재건'이었던 것입니다.

고라 자손들의 하나님의 성전과 예루살렘을 향한 찬양의 고백을 비난할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저들의 삶의 현실에서 그 고백과 찬양은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예루살렘과 성전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전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중동땅 지중해를 맞닿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어느 도시와 허물어져 한 쪽 벽만 남은 폐허의 한 부분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자리, 그리고 내가 믿음으로 나아가는 내 삶의 공간이 바로 나의 예루살렘이요, 하나님의 성전인 줄 믿습니다.

오늘 내가 나아가는 나의 직장, 나의 학교, 내 삶의 터전되는 가정이 우리의 예루살렘이요,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그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만방을 향해 그 이름을 선포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026년 6월 11일 목요일 아침묵상 시편 47:1~9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2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
10/06/2026

2026년 6월 11일 목요일 아침묵상

시편 47:1~9

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2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셀라)
5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6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8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9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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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은 표제에 나와있는대로 고라자손의 저작으로 보며 인도자에 따라 부르는 제의 음악으로 이해하며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왕권을 찬양하는 '신정시'로 분류합니다.

정확한 역사와 배경은 알 수 없지만 학자들 가운데에는 다윗 시대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시온산의 성막으로 옮겨올 때(삼하 6장)이거나, 전쟁의 상황 가운데 언약궤를 앞세우고 나가 승리한 후 다시 성소로 모시면서 부른 노래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혹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의 성막에서 성전으로 메어 올려 성전 성소에 안치한 사건(왕상 8장)가운데 지은 시편으로 이해하기도합니다.

그러나 후대 유대인들은 새로 한 해를 시작(나팔절)하며 하나님께 승리와 축복을 기원하며 신년제사를 지낼 때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하며 초대교회 이후로는 이 시편을 만왕의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아 예언시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만민들을 향해 온 땅에 왕이되시는 지존하신 하나님을 손뼉치며 즐거운 소리로 찬양할 것을 선포하며 주께서 만민과 만국을 당신이 택하신 백성에게 복종케하시고 주실 것을 노래합니다(1~4)

그러므로 즐거운 함성중에, 나팔 소리 가운데 올라가시는 하나님을 노래하며 온 땅에 왕이되시는 하나님을 더욱 찬양할 것을 선포합니다. (5~7)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거룩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모든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높임받으실 것을 노래합니다(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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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나눈 것처럼 본 시편의 배경을 '언약궤' 와 연관지어서 생각을 해본다면 본 시편이 연주되는 상황이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열해있는 상황에서 제사장의 어깨에 메어진 언약궤가 진행하는 가운데 악기를 든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이 뒤따르며 노래와 연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군중들이 기뻐하며 즐거워함으로 박수를 치고 그 음악과 노래에 맞추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5절의 '함성중에,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신다'는 표현을 바로 그 언약궤의 진행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 시편은 축제의 가장 큰 순간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후대에 이 시편이 새해를 시작하는 첫 제의에서 불리웠다면 그것은 새해의 시작에 가장 큰 기쁨이 함께 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며 하나님께서 백성들 가운데 함께 하고 계신다는 가장 큰 사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큰 기쁨으로 찬양하며 하나님을 노래하는 때가 언제일까요?
정말 나의 삶 속에 임재하심으로 나와 함께하시고 나의 삶을 인도해주시기를 사모하는 그 순간이 아닐까요?

우리가 그저 주일 날 교회로 찾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매 순간 내 삶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담은 언약궤가 됨으로써 내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이끄심을 통해 아름다운 믿음의 승리를 세워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며 노래하는 축제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6월 10일 수요일 아침묵상 시편 46:1~11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09/06/2026

2026년 6월 10일 수요일 아침묵상

시편 46:1~11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5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6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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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은 표제에 기록된 대로 고라 자손의 시이며 '알라못에 맞춘 노래'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은 시편에서 단 한번 본 시편에서만 사용되며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으나 학자들은 히브리어 단어 '처녀''젊은여자'를 뜻하는 ‘알마’(עַלְמָה, almah) 라는 단어의 복수형으로 추측하여 여인들의 노래라고 이해하거나 소프라노와 같은 높은 음색을 내는 악기를 사용하는 노래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본 시편은 정확한 시대와 배경을 알수는 없지만 많은 학자들이 히스기야 왕 시기에 앗수르의 산헤립의 침공을 받아 남유다 온 성읍이 함락되고 예루살렘 성마저 함락될 위기에 빠졌을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구원받은 사건(왕하18~19장)을 배경으로 한다고 추측합니다.

이를 통해 본 시편은 예루살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찬양하는 시온시, 찬양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환난 중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환난 중에 크게 도우시므로 땅과 산이 흔들리고 바다가운데 빠질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노래합니다(1~3)

그 하나님은 거룩한 성에 거하시니 한 시내가 흘러 하나님의 성소로 흐르며 뭇 나라가 떠들고 왕국이 흔들리더라도 피난처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선포합니다(4~7)

주께서 대적들을 꺾으시고 황무지로 만드시며 활과 창을 끊으심으로 전쟁을 멈추셨고 당신의 백성을 통해 당신의 이름을 높임을 받으실 것을 선포하시니 시인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피난처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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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의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심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노래합니다. (1,7,11절) 이 표현은 종교 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가 영감을 받아 찬양하는데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가 585장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입니다.

여기서 '피난처'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하쎄’(מַחֲסֶה, Machaceh)는 성경에서 ‘피난처’, ‘숨는 장소’, ‘보호처’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위험, 재난, 환난, 폭풍우를 피해 숨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장소를 뜻하는데 시인은 하나님만이 인간을 지켜주실 수 있는 안전한 도피처시며 하나님 안에 있는 안전과 평강을 방해할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피난처'가 방어적 차원에서 성도들을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다면 '힘'이라는 단어를 통해서는 우리의 공격이 아닌 하나님께서 공격하심에 어떤 대적도 무너뜨리시고 이길 것임을 알기에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10)

이 표현은 출애굽 당시 홍해앞까지 쫓아온 이집트의 병거부대를 보고 백성들이 겁에 질려있을 때 모세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으며 선포했던 말과도 일치합니다.(출14:13~14)

여러 시편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해 행하시는 섭리들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입으로는 노래하되 그 마음에 그것을 믿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지 않나요?
모세의 선포가 히스기야에게 이어지고 또 마틴 루터에게까지 이어졌듯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그렇게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의 승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026년 6월 9일 화요일 아침묵상 시편 45:1~176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7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08/06/2026

2026년 6월 9일 화요일 아침묵상

시편 45:1~17

6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7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8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9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10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11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12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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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은 표제의 기록처럼 고라 자손의 노래로 보며 '사랑의 노래'라는 소개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의 아가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내용과 표제를 통하여 결혼하는 왕을 축하하는 시로 결혼식의 아름다운 광경과 축복 환희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 시편의 역사와 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솔로몬 왕과 이집트의 파라오의 딸과의 결혼식 장면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 시편이 단지 왕의 결혼식의 축하의 의미로 단정짓지 않고 더 나아가 메시아 예언에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는데 이상적 왕을 세우시고 이끄시는 역사의 주관자로서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또한 구약시대를 지나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 히브리서 기자가 왕의 위엄과 존귀를 영화로우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비견하면서(히1:8,9) 본 시편을 인용함(6,7절)으로써 메시아의 위엄과 교회의 영광 그리고 신랑되신 예수와 신부인 성도의 천국 혼인 잔치를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시로써 해석하게 된 것입니다.

본 시편의 시인은 결혼식을 치루는 왕을 향한 찬양과 축복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복을 주시고 영화와 위엄이 함께 하며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해 나아가며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니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뛰어나게 하실 것임을 노래합니다(1~7)

시인은 또한 결혼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신부를 향해 권면합니다. 결혼식에 선 신랑 신부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며 신부는 생각하고 귀를 기울이며 아비의 집을 잊고 왕을 경배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한 신부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왕에게 나아가니 그 시종하는 친구들과 함께 기쁨과 즐거움으로 왕궁에 들어갈 것임을 전합니다(8~15)

그 아름다운 결혼식을 통해 왕에게는 영원한 영광과 자손 번성에 대한 축원으로 노래를 마무리 합니다(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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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을 묵상하며 왕의 아름다운 결혼식 장면을 떠올리며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신부를 향한 권면의 노래 장면에서는 뭔가 어색함이 느껴졌습니다.
왕에게 나아가는 신부를 향해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리라'는 표현이었습니다. (10)
도대체 이 의미가 이해가 되지 않아 주석을 찾아보니 신부가 이방인(이집트 공주)이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왕비가 되는 과정에서 이방의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대목인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의 왕비로서 이집트의 문화와 전통을 내려놓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나누었던 것처럼 본 시편을 메시아적 예언적 표상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가져야할 신앙적 태도에 대한 권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곧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믿음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에 우리가 세상에서의 삶과 행동들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권면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새 옷을 입기 위해 낡은 옷을 벗어버리듯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썩어져 가는 구습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교훈과 같은 것입니다(엡4:22~24) 바로 그러할 때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세상의 것보다 더 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됨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그렇게 우리의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세상의 것을 내려놓고 하늘의 영광과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026년 6월 8일 월요일 아침묵상 시편 44:1~26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18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
07/06/2026

2026년 6월 8일 월요일 아침묵상

시편 44:1~26

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9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2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23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4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

본 시편은 표제에 기록된 것처럼 고라자손의 마스길 즉 교훈시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으며 인도자의 지도로 연주된 제의 음악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용상으로 볼 때 외적의 침입이나 포로기 등의 국가적 재난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하는 민족적 애가로 분류되며 한편으로는 본 시편의 저자를 남 유다의 13대 왕이었던 히스기야가 지은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앗수르의 산헤립에 의해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목격한 히스기야가 애굽을 의지함으로 앗수르를 견제하게 되고 이로 인해 1,2차 앗수르의 침략을 겪게 되는 과정에서 이 민족적 어려움을 히스기야 왕의 입으로 간구하며 호소하는 내용으로 추측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시편은 왕의 노래와 고라자손의 합창이 어우러진 노래로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본 시편의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구원을 간구합니다. 곧 주께서 조상들에게 허락하신 땅에서 자신들의 칼과 팔의 힘이 아닌 주를 의지함으로 대적들에게 승리하고 원수들로부터 구원하셨던 하나님을 자랑하고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1~8)

그러나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심으로 대적들에게서 돌아서시고 우리를 그들에게 넘기시고 흩으셨음을 애통해 합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를 조소하고 조롱하며 수치와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로 인해 고통당함을 호소합니다(9~16)

그렇기에 이제 시인은 하나님 앞에 회복과 치유를 간구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지 않고 주의 길을 떠나지 않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지 않음을 호소하며 하나님의 빠른 용서과 구속의 은혜로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며 노래합니다(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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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기록들을 읽으며 생각해 보는 것은 유대인들의 역사적 기록을 담고 있는 구약에서 저들은 자신들의 힘들고 어려웠던 과거의 역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오랜 과거 왕들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자신들이 이루어낸 업적과 위대한 역사만을 기록하고 전쟁의 패배나 감추고 싶은 역사들은 삭제하거나 기록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것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실제 각 나라의 역사를 비교하여 검증해 볼 때 역사적 오류나 사실과 서로 다른 기록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역사를 읽다보면 언제나 그 패배와 아픔의 역사를 과감하게 묘사하고 드러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그 역사가 단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조차도 '하나님의 역사요 섭리하심'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역사를 통해 과거의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또 후손들에게 그와같은 선조들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역사를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 시편에서 시인의 노래는 바로 그러한 과거 역사의 반성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자신들의 역사속에 어떻게 새겨져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새겨지고 있을까요?
신앙 속에 드러나는 나의 자랑이나 업적만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수와 넘어짐의 과정 속에서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살펴볼 때 우리 자손들과 자녀들에게 좀 더 나은 신앙의 길잡이를 남겨줄 수 있지 않을까요?

새롭게 시작하는 한 주 우리는 또 실수하고 넘어지겠지만 그 때마다 내밀어주시는 주님 손 붙들고 다시 일어나 건강한 신앙의 걸음을 새겨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026년 6월 5일 금요일 아침묵상 시편 43:1~5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
04/06/2026

2026년 6월 5일 금요일 아침묵상

시편 43:1~5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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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은 표제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많은 학자들이 42편과 한편의 시였던 것으로 생각하며 따라서 고라 자손의 시로 추측합니다. 이는 마지막 5절에 기록된 구절이 42편의 5,11절과 똑같이 반복되고 시의 형식과 주제가 유사한 시온을 사모하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기자는 대적의 압제 가운데 비통한 마음으로 자신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송사를 변호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1~2)

그리고 시온산에서 예배드리던 때를 떠올리며 주께서 빛과 진리로 인도하시고 그곳으로 나아가 제단에 자신의 기쁨을 드리며 수금으로 찬양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3~4)

그럼에도 불안과 낙심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며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송할 것임을 선포하며 노래합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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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대표적인 서적 가운데 존 번연이 지은 '천로역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인 '크리스챤'은 멸망의 도시를 떠나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 끊임없이 바라보는 한 곳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빛"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그 빛을 향해 크리스챤은 끊임없이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빛의 끝에서 그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고 그동안 지고왔던 인생의 짐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 빛은 지금도 우리에게 비춰지는 놀라운 구원의 은혜입니다.
본 시편의 시인은 바로 그 하나님의 빛, 진리의 빛으로 자신을 인도해 저의 거룩한 산에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3)

수 천년의 시간이 흘러도 결국 신앙인의 걸음은 빛을 향한 걸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그 빛만이 우리의 삶을 이끌 수 있고 오지 그 진리만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빛을 향해 나아갑니까? 세상에서 우리의 눈을 현혹하는 수많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같은 빛들도 많이 있지만 별 빛과 같이 변하지 않는 빛으로 우리를 비추시는 그 하나님의 빛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Address

5 Kenya Street, Ngaio
Wellington
6035

Opening Hours

Wednesday 7pm - 9pm
Friday 7:30pm - 9:30am
Sunday 1:30pm - 5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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