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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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관계, 연합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선교적 공동체

주일예배 (Sunday Service)
12:30 pm Central City Library 옆 거리예배

Zoom새벽기도회(Dawn Prayer) - 05:30 am Mon-Fri

목장 모임 : 매주 금요일 7:00 pm

상담센터 : 부부관계, 자녀관계, 마음회복을 위한 상담
교재 : 행복의 길, 감사의 삶, 회복의 삶

*page, Youtube

 지난 몇 주간에 걸쳐서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주일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해봤지만, 속시원한 답변과 신속한 조치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13/06/2026


지난 몇 주간에 걸쳐서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주일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해봤지만, 속시원한 답변과 신속한 조치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인터넷을 통해 해오던 모든 작업이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그저 해결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인터넷 없이 보내야 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갑자기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 졌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이전에 내가 얼마나 인터넷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상황은 마치 금식을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금식은 쉽게 말하면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음식물을 먹지 않음으로써 내가 얼마나 유혹에 연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금식입니다. 성경에서도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6) 말씀합니다. 금식을 하기 전에는 내가 흉악에 결박되어 있는지, 멍에의 줄에 묶여 있는지, 어둠의 세력의 압제에 눌려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금식을 할 때 비로소 알게 되고 거기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인터넷 금식을 하면서 그동안 내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너무 많은 일들에 시간을 빼앗기며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알지 못해도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들까지 걱정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삶을 갉아먹는 습관적인 행위가 있는지 돌아보십시다. 그리고 그 행위를 중단하고 금식해보십시다. 만약 그 행위를 중단함으로써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답답하고, 당황스럽다면 우리는 그 행위에 너무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영적인 공황 상태에 있는 자신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우리를 건지실 분은 오직 주님이심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올해는 마당에 있는 만다린 나무 열매가 풍년입니다. 지난해는 나뭇잎에 병이 들어서 수확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는 약을 구입해서 뿌리고, 가지치기도 하면서 정성으로 관리를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올해...
05/06/2026


올해는 마당에 있는 만다린 나무 열매가 풍년입니다. 지난해는 나뭇잎에 병이 들어서 수확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는 약을 구입해서 뿌리고, 가지치기도 하면서 정성으로 관리를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올해는 열매가 풍성합니다. 얼마나 풍성했는지 이웃 사람들이 우리 만다린 열매에 눈독을 들일 정도입니다. 어느 날에는 도로 건너편 집에 사는 사람이 열매를 몇 개 따갔습니다.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날에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와서 몰래 따가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아내가 발견했고 그 사람은 당황해 하면서 황급히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만다린 열매를 금액으로 따진다면 얼마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얼마든지 공짜로 나누어 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매년 열매를 거두어서 교회 성도들, 홈리스봉사에 참여하시는 분들, 또 일터에서 만나는 노인분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훔쳐가는 것에 대해서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풍성히 열매가 맺기까지 나무를 가꾸고 정성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나무 열매 하나하나가 내 자식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고, 잃어버렸을 때는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셔서 온 세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누리고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거대한 창조역사이자,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런 헌신과 사랑이 들어갔기 때문에 한 영혼이라도 어둠의 세력에게 빼앗겼을 때 하나님은 마음이 상하시고, 안타까워하십니다. 특히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보내신 아들 예수님을 영접하고, 아버지의 자녀가 된 사람이 믿음을 버릴 때 말할 수 없이 마음 아파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영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풍성한 이 가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그 사랑의 무게를 인식하는 만큼 깊어지는 은혜를 경험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변함없는 믿음을 지키십시다. 그 믿음 가운데 가을의 풍성함을 누리십시다.

 *한인사이트에 올린 행사 광고 내용입니다.* “한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는 지난 8년동안 오클랜드 시티에서 매주 홈리스들에게 음식과 사랑을 나누는 봉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 누군가는 따뜻한 집에서 가족과 함...
29/05/2026


*한인사이트에 올린 행사 광고 내용입니다.*
“한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는 지난 8년동안 오클랜드 시티에서 매주 홈리스들에게 음식과 사랑을 나누는 봉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 누군가는 따뜻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겨울을 보내지만, 누군가는 차가운 거리에서 외로운 밤을 버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 우리가 매주 거리에서 만나는 분들은 단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 올해도 겨울이 다가오는 이때에 따뜻한 식사와 음악, 그리고 사랑의 온기를 전하는 “제11회 홈리스를 위한 Mid Winter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특별한 재능이 있으십니까? 음악 연주로, 음식으로, 후원으로, 봉사로 누구든지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함께 하셔서 거리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잊지 못할 위로와 용기를 주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한인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 감사합니다.“

오는 6월28일(주일) 오후12시30분 시티도서관 옆 거리에서 11회째를 맞는 홈리스를 위한 Mid Winter행사를 갖습니다. 매년 홈리스들을 위해 갖는 행사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겨울에 있는 Mid Winter행사와 둘째로 여름에 있는 크리스마스 행사입니다. 이 행사들은 무엇보다 먼저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행사를 통해서 외부적으로는 한인분들과의 협력을 촉진하고, 내부적으로는 홈리스사역의 지속을 위한 펀드레이징이 목표입니다. 결국 홈리스사역은 세상 속의 교회로서 세상을 향한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지난 8년동안 홈리스사역을 감당하면서 구제봉사를 하는 많은 단체들을 만났습니다. 비즈니스를 하는 개인으로부터 그룹 단체에 이르기까지 선한 일에 사명감을 갖고 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필요를 채우기 위해 모이는 한 영혼, 한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역이라 믿습니다. 선교적 열정을 품고, 영혼구원의 사역을 성취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행사가 될 것을 믿고 기대하며 감사합니다.

목회 10년만에 안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형네가 살고 있는 미국 아틀란타에서의 20여일은 꿈을 꾼듯한 느낌입니다. 향공편으로 약30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아틀란타에서의 일정은 설렘과 어색함이 교차했습니다....
23/05/2026


목회 10년만에 안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형네가 살고 있는 미국 아틀란타에서의 20여일은 꿈을 꾼듯한 느낌입니다. 향공편으로 약30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아틀란타에서의 일정은 설렘과 어색함이 교차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곳에서 경험하게 될 일들에 대한 설렘이었고, 그동안 바쁘게 일하던 것들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 어색하고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자체가 설렘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들을 기대하는 것이 여행인 것 같습니다. 이런 여행을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살던 익숙한 곳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리 중요한 것이 있더라도 과감히 내려놓고 떠나야 합니다. 떠날 때 진정한 안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행의 과정은 마치 천국으로 가는 여정의 축소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실 천국에 간다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천국에 가는 지를 모릅니다.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모릅니다. 그냥 때가 되면 마주하는 죽음과 같이 천국도 때가 되면 가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 은퇴도 준비해야 하듯이 천국을 갈 준비도 의도적으로 해야 합니다. 훈련이 되어야 천국을 갈 수 있습니다. 그 훈련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떠나는 훈련입니다. 하던 것을 내려 놓고 과감하게 떠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천국을 간다는 것은 내가 땅에서 추구하던 모든 것들을 미련없이 내려 놓음을 의미합니다. 익숙한 그곳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세계, 천국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려놓음의 대상은 이 땅에서 얽혀 있던 모든 것을 말합니다. 혈연, 지연, 학연 등의 모든 관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갖고 있던 모든 소유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갖고 있던 모든 지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의 인간적인 계획과 꿈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떠나야 합니다. 새로운 천국의 삶에 대한 설렘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막상 천국에 가게 되면 당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각과 내 계획으로 열심을 낼 일이 없는 천국에서 어색하고, 낯설더라도 적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원한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생활하면서 떠나는 훈련을 하십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도록 내려놓으십시다. 여행을 떠나십시다. 더큰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기 위해, 하나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나십시다. 그래서 천국을 준비하십시다. 영원한 천국의 삶을 누리십시다.

 지난주 목요일에 뉴질랜드를 출발해서 처형네가 살고 있는 미국 아틀랜타에 도착했습니다. 목회 10년만에 주어진 안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목회자가 일정기간 휴식의 시간을 갖는 것을 교회에서는 흔히 ...
25/04/2026


지난주 목요일에 뉴질랜드를 출발해서 처형네가 살고 있는 미국 아틀랜타에 도착했습니다. 목회 10년만에 주어진 안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목회자가 일정기간 휴식의 시간을 갖는 것을 교회에서는 흔히 안식년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실제로 교회의 형편에 따라 7년마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1년동안 안식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갖는 휴식 기간을 안식년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 용어의 잘못된 적용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레위기25장에 보면 안식년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레25:3-4) 안식년은 7년 주기의 마지막 해로서 그 해에는 하나님께서 땅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에 의해 땅이 주어진 것임을 기억하기 위해 땅을 묵힙니다. 그리고 그 전 해에 비축해 둔 농산물을 먹습니다. 땅 주인은 안식년 기간에 저절로 자란 농산물을 거두어서도 안 되었습니다. 또 일곱번째 안식년인 희년에는 진 빚을 탕감 받을 수 있었고, 종들은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율법은 특정한 사람이 아닌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안식년은 안식일과는 달리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안식년을 오직 목회자에만 적용시키기 때문입니다. 나는 교회에서 성도들이 7년째마다 생업을 내려놓고 길게는 1년씩 쉼의 시간을 갖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이 생깁니다. “지금 각 교회들에서 목회자들에 대해 시행되고 있는 안식년 제도가 과연 성경 말씀에 합당한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시대와 지역과 인종을 초월해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차별없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안식일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제도라면 안식년 역시도 목회자 평신도 구분없이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성도들이 안식년의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7일째마다 안식일을 누리듯이 7년째마다 안식년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자신의 생업을 내려놓고, 몇 개월에서 1년을 쉬더라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고, 살아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고, 그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의리와 염치”의 개념은 유교의 근본이 되는 성리학에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의리”는 사회적 관계에서 지켜야 할 도리와 예의를 말하며, 인간관계의 질을 결정짓는 기준입니다. 그리고 “염치”는 ...
18/04/2026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의리와 염치”의 개념은 유교의 근본이 되는 성리학에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의리”는 사회적 관계에서 지켜야 할 도리와 예의를 말하며, 인간관계의 질을 결정짓는 기준입니다. 그리고 “염치”는 개인의 도덕적 감정과 성찰을 말하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포함합니다. 이 두 개념은 서로 보완적이며 예절과 의리를 지키고 청렴하며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로 인간의 도리를 유지하는 핵심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에도 인간관계에서 말하는 “의리”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관계를 통해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기 위해 사람을 만날 때 처음부터 다짜고짜 예수님에 대해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나마 조금 생기려고 했던 관계 마저도 깨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전도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먼저 관계를 쌓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함께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삶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친밀한 관계가 되었을 때 보다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관계가 깊어지면서 “염치”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관계 속에서 대접을 받았다면 언젠가는 나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볼 때 “전도는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전도는 전인적인 변화의 과정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창조주의 존재를 인식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단순히 믿고 않믿고의 문제로 치부해 버려서는 않됩니다. 전도는 전인적인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고, 이 과정을 통해서 결국 한 영혼이 진정한 구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다 보면 의리라고는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염치없이 얻어 먹기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관계를 가볍게 여기고 의리를 헌신짝처럼 벗어 던지는 사람을 언제까지 참아줄 수 있겠습니까? 얻어 먹기만 하면서 염치라고는 없는 사람을 언제까지 품어 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믿고 않믿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인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자기의 이익만을 쫓아서 의리없는 삶을 살던 사람이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베풀 줄 모르던 염치없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이고, 구원이고, 성경에서 의미하는 전인적인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복된 삶과 신앙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한 봉사장학금 행사는 부활절에 맞춰서 진행합니다. 그 이유는 영혼구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실제적으로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09/04/2026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한 봉사장학금 행사는 부활절에 맞춰서 진행합니다. 그 이유는 영혼구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실제적으로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날은 한주가 시작되는 일요일입니다. 그런데 구약에 나오는 원래 안식일은 지금의 토요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안식일인 토요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많은 논란이 되어왔고, 이것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예배를 토요일에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단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고, 그로부터 3일째 되던 날 일요일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 부활은 너무도 놀라운 사건이었고, 이 날을 영원히 기념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심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부터 자기들 세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지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이 도대체 봉사장학금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봉사장학금은 세상의 가치와 논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사입니다. 왜 그런가? 세상의 가치관 아래에서 주어지는 상은 강한 자의 논리가 깔려 있습니다. 실력이든 능력이든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서라도 최고가 된 사람들에게 상을 줍니다. 그리고 그들을 영웅시하고, 삶의 모델로 삼도록 부추깁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없는데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속임에 넘어가서 집단최면에 걸린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미래의 리더들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봉사장학금 행사의 목적입니다. “1등이 되지 않아도 좋아! 일류가 되지 않아도 좋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어려운 이웃을 돕고, 주님과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보자!” 이 일에 함께하는 자녀들이 사회의 리더가 될 때 세상이 바뀔 것입니다. 공중권세 잡은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브람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다윗이 그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세상을 뒤집어 엎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능력이고, 봉사장학금 행사의 목적입니다.

 깊은 어둠의 밤이 있었기 때문에 새벽이 더욱 밝고 감격스럽게 느껴집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기에 빛이 더욱 눈부십니다. 고요한 밤이 있었기에 아침의 새소리가 더욱 생생하게 들립니다. 혹독한 겨울이 있었기에 봄의 ...
02/04/2026


깊은 어둠의 밤이 있었기 때문에 새벽이 더욱 밝고 감격스럽게 느껴집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기에 빛이 더욱 눈부십니다. 고요한 밤이 있었기에 아침의 새소리가 더욱 생생하게 들립니다. 혹독한 겨울이 있었기에 봄의 따뜻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차가운 바람을 견뎠기에 햇살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긴 가뭄을 견뎌내었기에 단비가 더욱 반갑습니다. 깊은 슬픔을 겪었기에 작은 기쁨도 크게 다가옵니다. 긴 기다림이 있었기에 만남의 순간이 더욱 설렙니다. 실패의 아픔이 있었기에 성공의 기쁨이 더욱 값지게 느껴집니다. 외로운 시간이 있었기에 누군가의 곁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긴 침묵이 있었기에 한마디 말이 더욱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눈물로 적신 날들이 있었기에 웃음이 더욱 빛납니다. 길을 잃어본 적이 있기에 올바른 방향을 찾는 기쁨을 압니다. 상처를 안고 살아왔기에 치유의 순간이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어둠 속을 헤매었기에 한 줄기 빛이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무너짐을 겪었기에 다시 일어서는 용기의 위대함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영광스러울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 고난이 혹독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난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고,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피하지 않으시고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인간의 손에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로서 모든 권세와 능력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권세와 능력으로 인간의 계략과 판단을 무너뜨리고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사역의 성취를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굳이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셔도 되셨습니다. 보다 고상한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조롱과 침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인류가 개발한 처형도구 중에 가장 무자비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십자가에 달린 채로 처절하게 숨을 거두셨습니다. 깊은 죽음의 골짜기를 경험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런 혹독한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 부활이 더없이 영광스러울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뒤집는 강력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한다면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당하는 모욕과 수치를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의 상은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은 예수님께서 겸손의 왕으로 나귀를 타고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한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기까지 고난을 받으셨던 그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종려...
26/03/2026


이번 주일은 예수님께서 겸손의 왕으로 나귀를 타고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한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기까지 고난을 받으셨던 그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은 강력한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하나님 안에서 계획된 전 우주적인 사건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단지 역사적 사실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실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때까지도 예수님의 주변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올바로 이해하고 믿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열두 제자들 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그토록 연약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셨을 때 주님을 배신하고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큰 기적들을 보고 따라 다녔지, 하나님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신해서 따라다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런 영적인 상태를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며, 평화의 왕, 구원의 왕으로 오셨음을 드러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한 행위가 바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예수님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는데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습니다. 그들은 벌떼 같이 일어났고, 곧바로 예수님의 혹독한 고난으로 이어졌습니다.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온갖 모욕과 조롱과 폭력을 당합니다. 이유는 진리를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시며 인간의 몸을 입고 구원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이심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의 진리를 선포했기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고, 결국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셨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원치 않게 갈등과 다툼 속으로 휘말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크리스천으로써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고, 또 하나님을 높여 드릴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모델 되신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실 것을 아시고도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진리의 길을 가심으로 구원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진리를 행하는데 있어서는 망설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물러남이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믿음의 전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몇 주전 주일 홈리스 거리예배에서 소동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시티 거리에서 홈리스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선포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선한 마음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의 헌...
19/03/2026


몇 주전 주일 홈리스 거리예배에서 소동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시티 거리에서 홈리스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선포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선한 마음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의 헌신으로 준비된 음식을 풍성하게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거리예배가 마무리되었을 때 뒤늦게 홈리스 자매와 형제가 차례로 도착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봉사자들도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미안한 마음이 교차하고 있던 순간에 그홈리스 자매는 대뜸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왜 음식이 없느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봉사자들을 향해서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짱깨들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쏟아 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우리가 자기들이 싫어하는 중국 사람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홈리스 형제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욕을 하면서 자신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고 소리쳤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를 두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봉사자들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입니다. 선한 마음으로 시티에서 방황하는 이웃들을 돕겠다고 나왔는데 그들은 그 마음을 몰라주었습니다. 오히려 욕을 하고 인종차별적인 모욕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봉사자들은 그들과 똑 같이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들의 흥분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곧 잠잠해졌습니다.

우리가 선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고 섬길 때 모든 사람이 감사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 밖에 못해주느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홈리스사역도 모두가 잘한다고 박수 쳐주지 않습니다. 게을러서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을 왜 도와주느냐고 비판합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평생동안 조건없이 이웃을 돕는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또 조건 없이 주는 은혜를 받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지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결코 나의 만족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모욕을 당하고, 모함을 당하는 일도 선한 일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할 때 홈리스사역을 계속할 수 있고, 그 일을 통해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선을 행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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