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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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관계, 연합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선교적 공동체

주일예배 (Sunday Service)
12:30 pm Central City Library 옆 거리예배

Zoom새벽기도회(Dawn Prayer) - 05:30 am Mon-Fri

목장 모임 : 매주 금요일 7:00 pm

상담센터 : 부부관계, 자녀관계, 마음회복을 위한 상담
교재 : 행복의 길, 감사의 삶, 회복의 삶

*page, Youtube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갈 때 나름의 목표와 계획을 세웁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목표, 무계획적인 삶보다는 확실히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루어 갈 로드맵...
03/09/2026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갈 때 나름의 목표와 계획을 세웁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목표, 무계획적인 삶보다는 확실히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루어 갈 로드맵이 있을 때 방향을 유지할 수 있고,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목표와 계획에 지나치게 매몰된 나머지 그보다 더 중요한 생명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나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생명의 길이 아닌 죽음의 길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명은 목표나 계획보다 더 우선합니다. 생명이 없으면 목표나 계획은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전도서9장4절) 아무리 위대하고 성공한 사람이라도 죽은 뒤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 존재를 통한 모든 가능성이 사라집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습니다. 사업의 실패, 건강의 악화, 관계의 단절 등으로부터 오는 고통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서 이 생명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생명을 그토록 귀하게 지으셨을까요? 이사야 38장18절에는 죽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나열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릴 수 없고, 주님을 찬양할 수 없고, 주님을 의지할 수 없다.’ 이어서 19절에는 생명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나열합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자녀들에게 주님을 일러줄 수 있다.’ 여기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영원한 소망을 주신 이유를 발견합니다. 생명이 있는 우리는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을 대대로 전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이 있는 한 이 일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짜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생명의 길을 갈 때 우리는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목적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스올에서는 아무도 주님께 감사드릴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도 주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 제가 오늘 주님을 찬양하듯, 오직 살아 있는 사람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주님의 신실하심을 일러줍니다.”(이사야38장18-19절)

우리는 때때로 생명의 귀중함을 잊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그 놀라운 생명을 거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생명을 창조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거저 받을 수밖...
28/08/2026


우리는 때때로 생명의 귀중함을 잊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그 놀라운 생명을 거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생명을 창조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거저 받을 수밖에 없고, 거저 받다보니 그 귀중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고, 숨쉬고, 먹고, 자는 모든 것, 그리고 이 땅에서 거저 누리는 모든 좋은 것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생명도 갉아 먹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시티 거리예배에서 만나는 홈리스 형제자매님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립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피조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지만, 그 귀함을 모른 채 정신줄을 놓고 거리에서 비참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스스로 학대하고, 병들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 반대의 사람들은 어떨까요? 엘리트 교육을 받고 한번의 실패도 없이 승승장구하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보는 것을 즐깁니다. 그러면서 더 높은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삶을 삽니다. 결국 세상에서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쉽게 생각합니다. 교만함으로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한 생명의 귀중함을 모르고 이웃과 자신을 학대하고 병들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 출세 본능에 사로잡힌 짐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전도서9장4절)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 말씀합니다. 성경에 보면 고대 이스라엘 문화에서 개는 가장 밑바닥 인생을 비유하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반면에 사자는 왕의 상징으로 영광과 힘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위대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생명이 있으면 귀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생명이 있는 한 하나님 안에서 다시 시작할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고 초라한 존재일지라도 살아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변화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으며,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다시 일으키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생명은 죽은 자가 남긴 명예나 성공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나라를 팔아먹었던 사람들을 우리는 “친일파”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너무 고상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친미파”라고도 부르기 때문...
19/08/2026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나라를 팔아먹었던 사람들을 우리는 “친일파”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너무 고상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친미파”라고도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취향과 선택의 문제로 그 의미가 축소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친일파는 “민족반역자”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굳이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그런 죄인도 주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깨끗이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주안에서 회개함으로 얻는 구원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회개를 그저 자신의 과거를 세탁하는 도구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이 성경을 오해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민족반역자의 후손들 중에는 진정한 회개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변명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자기 자신이 민족반역자의 자손임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조상들의 죄를 반성하고 회개합니다. 어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은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역사관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았고, 영국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수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가 조용히 불러서 말했습니다. “너가 어떤 집안의 자손인지 아느냐? 우리 집안은 친일파 집안이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노인분은 증조부의 묘지 앞에 세운 공적비를 뽑아버리는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공적비는 증조부의 독립활동을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집안 사람 중의 하나가 증조부와 동명이인인 독립군의 공적으로 조작해서 세운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각 국가에 서훈 취소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공적비를 뽑아내 버렸습니다. 또 한 국회의원의 조부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악질적인 민족반역자였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될 때까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는 형제들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직하게 과거를 밝히는 길을 택했습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민족의 아픔을 청산하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 친일파 재산 환수법” 등을 추진한 그의 진심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이런 회개가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런 회개는 집안의 과거를 세탁하고, 인간적인 체면을 지키기 위한 조작된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선택하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구원의 선물이 약속된 진정한 회개입니다.

한국에서는 광복절을 몇일 앞둔 시점에서 한 연예인이 공개한 자신의 집안 이야기 때문에 소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한 방송에서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 모두 의사다…증조할아버지는 내가 듣기로는 ...
13/08/2026


한국에서는 광복절을 몇일 앞둔 시점에서 한 연예인이 공개한 자신의 집안 이야기 때문에 소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한 방송에서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 모두 의사다…증조할아버지는 내가 듣기로는 양의학을 일본에 가서 배워오시고 한양에서 개원을 하신 첫 의사셨다고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가는 곳마다 하게 되었고, 엘리트 집안이라는 이미지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솔한 행동은 AI시대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우연히 한 역사학자가 그녀의 증조부되는 분을 추적하게 되었고, 알고 보니까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증조부는 철저히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민족반역자임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의사로서 이완용이 기획한 고종 독살에 직접적인 관련성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방송에서 이 사건을 해설하던 역사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집안의 역사와 사건에 대해 정직하게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도였습니다. 잘못된 과거의 행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숨기고, 그저 좋은 것만 자랑했기 때문에 그의 자손들은 자기 조상들이 세상에서 최고인줄 알았습니다. 이 연애인은 나이가 30세가 넘을 때까지 자신의 증조부가, 자신의 조부가 민족반역자 집안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누리는 것들을 경솔하게 자랑하기만 했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올바르게 알지 못하면 이런 경솔한 자식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 커녕 전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는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그에게서 예수님의 향기를 맡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을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구주 예수님을 올바로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는 달리 완전하시며 말씀만으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저버리고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십자가에 못박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올바로 전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실 것을 축복합니다.

1996년 뉴질랜드로 이민 왔을 때 당시 뉴질랜드는 그저 조용한 시골 동네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보면 기본적으로 친절함이 몸에 베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
08/08/2026


1996년 뉴질랜드로 이민 왔을 때 당시 뉴질랜드는 그저 조용한 시골 동네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보면 기본적으로 친절함이 몸에 베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밝게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차를 운전해서 가다가 잠시 갓길에 서있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차를 세우고 뛰어와서 도와줄 것이 없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이민자로서 너무 따뜻한 느낌을 받았고, 친절함에 몸둘바를 모를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 올해로 이민온지 만30년이 넘었습니다. 한국에서 성장하고 지냈던 세월만큼 뉴질랜드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에서도 동일하게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다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도둑도 맞아보고, 사기도 당하고, 경찰을 부르는 소동도 겪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돌아보면서 역시 뉴질랜드도 사람 사는 곳일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최근에 하게 된 경험은 다시 한번 뉴질랜드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대해 깊이 생각케 했습니다.

2년째 Support worker로 연로하신 노인분들의 집을 방문해서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뉴질랜드 사람들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서구권 사람들은 효도에 대한 개념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교육하고, 일찍 자립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만큼은 아니겠지만, 부모 자식간의 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20대 뉴질랜드 청년은 약혼녀와 함께 치매가 있는 아버지를 집에서 돌보고 있었습니다. 치매가 심해져서 기저귀에 싼 대변을 손으로 찍어서 먹기까지 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또 홀로 투병생활을 하는 한 노인의 딸이 런던에서 아버지를 방문했습니다.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는 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울음이 터졌습니다. 집에서 나와 택시를 기다리면서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오열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정서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을까요? 뉴질랜드는 전통적으로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주말이 되면 가게는 문을 닫았고, 주일에는 술을 팔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주안에서 어릴 때부터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생활이 되고 문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안에서 이런 문화를 세워갈 것을 축복하며 감사합니다.

올겨울은 예년에 비해 비는 적게 내리는 대신에 기온은 더 추운 것 같습니다. 몇주간 한겨울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당 잔디에는 서리가 내리고, 자동차 유리가 얼어 붙기도 합니다.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갈 때는 옷...
01/08/2026


올겨울은 예년에 비해 비는 적게 내리는 대신에 기온은 더 추운 것 같습니다. 몇주간 한겨울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당 잔디에는 서리가 내리고, 자동차 유리가 얼어 붙기도 합니다.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갈 때는 옷을 최대한 따뜻하게 챙겨 입어야 합니다. 이처럼 얼어붙은 겨울을 보내면서도 마당의 식물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번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내어 주었던 만다린 나무의 가지를 쳤습니다. 병든 나뭇잎을 치료하는 약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씨앗이 날아와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뽑아내고 정리했습니다. 추운 날씨에 땀이 날 정도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는 걸까요? 몸이 움츠러들고 외출도 꺼려지는 날씨에 왜 나뭇가지를 치고, 치료약을 뿌리고, 마당을 정리하는 것일까요? 다가올 봄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풍성한 열매가 맺게 되는 그날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복음의 역사는 결코 우호적인 상황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 일가족이 먹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이후로 세상은 항상 하나님께 적대적이었습니다. 이 적대적인 상황을 끝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호적인 상황이 아니라, 철저히 적대적인 상황에서 구원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구원의 제물이 되는 모습으로 구원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세워진 교회는 항상 적대적인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선교적 본질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영적인 상황은 크리스천들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순수하게 봐주질 않습니다. 개독교라는 선입견을 갖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싸늘한 눈길은 차가운 겨울 날씨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이 건물안에서 자기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현실에 부딪히기 보다는 아예 눈을 감는 쪽이 쉬운 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차가운 공기를 박차고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차가운 눈길을 보내는 세상과 소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소망이 있습니다. 교회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구원의 역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복음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비누공장에서 포장기계의 오작동으로 가끔씩 비누가 안들어간 빈케이스가 발생했습니다. 경영진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 빈케이스를 찾아내기 위한 X-lay 투시기를 포장공정에 설치...
24/07/2026


어느 비누공장에서 포장기계의 오작동으로 가끔씩 비누가 안들어간 빈케이스가 발생했습니다. 경영진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 빈케이스를 찾아내기 위한 X-lay 투시기를 포장공정에 설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위한 예산은 컨설팅비 10만불, 기계값 50만불, 그리고 이 기계를 운용하기 위한 인건비로 매년 5만불의 예산이 책정되었습니다. 회사가 이 예산대로 X-lay 투시기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현장에서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기계를 기다리는 사이에 공장의 불량률이 제로가 되고만 것입니다. 담당자들은 현장에 내려가 부랴부랴 원인을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이유가 최근에 입사한 한 직원 때문이었습니다. 그 직원은 집에서 사용하던 중고 선풍기를 가져와서 라인을 타고 지나가는 빈 케이스를 바람으로 날려 보내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도 탁상공론과 물량주의의 목소리가 커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물량이 구원한다고 믿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적인 규모를 추구하던 번영과 승리주의에 변질된 복음은 금새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교회가 쪼그라들고, 성도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을까요? 목회의 목표가 사람이 아니라, 인간적인 명예를 드러내는 건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역을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삶을 나누는 진정성 있는 방식으로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은 원통한 자, 상처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칠 때 사울왕이 준 최첨단 무기인 투구와 갑옷과 칼을 거절했습니다. 대신에 시냇가에 쓸모없이 나뒹굴고 있던 돌 다섯을 취했습니다(삼상17:40). 또 우리 구주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를 가지셨지만, 오히려 겸손하게 낮아지셨습니다. 이 땅에서 일정한 거처도 없이 머리 둘 곳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눅9:58). 또 사도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이방인 선교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행9:15). 그러나 그는 천막 만드는 기술자로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며 겸손하게 복음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는 외형을 추구하는 명예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작고 볼품없는 것들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주님은 지난 8년동안 보잘 것 없는 예산으로 연인원 28,000여명의 홈리스분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물량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화려함이 아니라 진정성입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곳이 교회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인 로타리클럽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홈리스사역을 후원해 주시기 위해 초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인 사회에서 선한 일에 힘쓰는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190...
18/07/2026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인 로타리클럽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홈리스사역을 후원해 주시기 위해 초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인 사회에서 선한 일에 힘쓰는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1905년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된 로타리클럽은 세계 최대의 봉사단체입니다. 뉴질랜드 한인 로타리클럽은 2005년 오클랜드에서 창립되어 한인사회와 뉴질랜드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봉사와 국제적 우정을 실천하는 모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초기에 회원들의 사무실을 돌아가며 모임을 가졌기 때문에 'Rotary'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 200여개 국가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로타리의 기본 정신은 '초아의 봉사(Service Above Self)'입니다. 주요 목적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친목(Fellowship)을 통한 신뢰와 우정 형성, 둘째 직업윤리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책임 실천, 셋째 지역사회 봉사를 통한 삶의 질 향상, 넷째 국제봉사를 통해 세계 평화와 이해 증진입니다. 현재는 질병예방, 빈곤퇴치, 소아마비퇴치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임에 많은 크리스천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사에 초대해주신 분도 홈리스사역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시는 장로님 부부이십니다. 그리고 뉴질랜드 한인 지부의 창립 멤버이신 초대 회장 부부께서도 크리스천이십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볼 때 특별한 마음의 감동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할 때 교회나 기독교적인 색깔을 드러내는 기관에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드러내지 않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겸손하게 섬기는 크리스천들이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님 처럼 겸손하게 섬기는 것이 더 선교적이고, 더 성경적인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에 대해 소망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 주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크리스천들의 책임이 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교적인 태도로 세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만 갇혀서 자신들만의 축제를 벌이며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세상적인 생각과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들입니다. 이미 우리는 모든 것을 받았고, 우리에게는 거저 받은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오직 겸손과 섬김으로 드러내며 악을 선으로 이기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형태는 오늘날의 교회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지금은 교회하면 먼저 건물을 떠올립니다. 믿는 사람이나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들도 교회를 건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사실 신약교회는 애초에 건물...
10/07/2026


신약 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형태는 오늘날의 교회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지금은 교회하면 먼저 건물을 떠올립니다. 믿는 사람이나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들도 교회를 건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사실 신약교회는 애초에 건물이 없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순간 유대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쫓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약교회는 복음을 거리에서 전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거리에서 전도된 사람들은 성도의 가정으로 초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16장에 보면 빌립보에 복음이 최초로 전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 일행이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으러 강가 거리로 나왔다가 여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빨래터였을 수도 있고, 여인들의 사교모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했고, 루디아라는 자주옷감 장수를 전도하게 됩니다. 후에 루디아의 집이 그 지역의 교회가 됩니다.

또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사도행전3장에 보면, 베드로 사도가 솔로몬 행각에서 군중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베드로 사도가 군중 앞에서 설교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오후 기도 시간에 요한 사도와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다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키는 기적을 행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앉은뱅이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일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은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3:12) 하면서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은혜임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설교하는 이 장면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에 기간동인 바로 이곳에서 설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셨던 그때는 광야에서부터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었습니다. 기둥과 지붕만 있는 사방이 다 터진 솔로몬 행각에서 예수님은 차가운 바람을 맞으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요10:22-42). 아직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없었던 베드로도 그때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 하고, 예수님을 저주할 만큼 믿음이 없었던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예수님께서 설교하셨던 바로 그 솔로몬 행각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하보다도 귀한 한 영혼이 살아나는 곳은 거리였습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고 살아나는 그곳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행사 당일 아침은 맑고 화창한 날씨였습니다. 시티 거리에 도착하니 이미 홈리스 형제자매님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모여 있었습니다. 속속 도착한 봉사자들이 테이블을 설치하고, 음식들을 준비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연주팀의...
02/07/2026


행사 당일 아침은 맑고 화창한 날씨였습니다. 시티 거리에 도착하니 이미 홈리스 형제자매님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모여 있었습니다. 속속 도착한 봉사자들이 테이블을 설치하고, 음식들을 준비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연주팀의 선율에 맞춰 은혜로운 찬양이 시티 거리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5주간에 걸쳐서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준비한 음식과 선물을 나누어 줄 때 홈리스 형제자매님들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섬기는 봉사자들의 얼굴에도 행복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행사 중에 소동이 있었습니다. 늦게 와서 선물팩을 받지 못해 화가 난 홈리스 형제님이 봉사자를 향해 음료수캔을 던지고, 욕설을 내뱉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눔의 행복과 기쁨을 깰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께서 주신 복음의 사명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행패를 부리는 한영혼에 대해 끝까지 인내하며 주님의 사랑으로 품습니다. 에스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과 같은 그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설 그날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난 8년동안 시티 거리를 예배당 삼아 홈리스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거리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일은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다가도 홈리스분들끼리 시비가 붙으면 그 자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맙니다. 시티 거리의 상황은 여느 선교지 못지 않게 예측할 수 없는 극단의 선교적 상황입니다. 그러나 참가한지 오래된 봉사자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늘상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희생없는 헌신은 있을 수 없습니다. 험한 일을 겪고, 수모를 당하더라도 끝까지 섬기는 것이 헌신입니다. 더구나 한 영혼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까지에는 엄청난 수고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어둠의 세력들이 필사적으로 한 영혼의 구원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엡6:12)

홈리스사역은 눈에 보이는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임과 동시에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사역입니다. 이 사역에 동참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성령의 능력과 영육의 강건함과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임하실 것을 축복하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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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도서관 옆 거리
Auckland
1010

Opening Hours

12:30pm - 12:3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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