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0/2022
날짜 : 2022년 10월 30일 주일예배
본문 : 여호수아 19:49-51
제목 : 시작과 끝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
말씀 : 김현 담임목사
신앙의 열정이 식어가는 걸 느낄 때가 있는가.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꿈과 비전이 없을 때 우리의 삶은 뜨겁다가도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 우리 삶 속에 믿음의 흔적이 차곡 차곡 쌓여져갈 때 그 힘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리라는 믿음 안에서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 멈추어 있으려 말라. 예배는 우리들을 꿈꾸게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꿈을 꾸며 나아가라.
오늘 본문은 남은 여섯 지파의 기업 분배를 다루고 있다. 각 지파 마다 기업 분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새겨보자.
*시므온, 기업 안의 기업 : 폭력적인 시므온, 유다의 넉넉함으로
“시므온 자손의 이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취하였으니(수 19:9)”
여동생 디나의 강간 사건으로 세겜 땅 남자들을 모두 다 죽여버린 선두에 섰던 시므온은 야곱의 마지막 축복을 받을 때에도 축복이 아닌 저주(“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라, 창 49:7)”를 받았던 바, 예언대로 따로 땅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시므온 지파를 유다 지파가 끌어안는다. 강한 유다 지파는 혈기 넘치는 시므온 지파를 통제할 능력이 있었다. 부족한 형제를 그대로 두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힘있는 자가 보호하고 감당해주어야 한다. 많이 가진 자에게는 없는 자, 연약한 자, 꺼리는 자, 외면당하는 자들을 포용할 거룩한 책임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스불론, 척박한 땅을 불평 없이 ‘거룩한 처소’로
가장 작고 척박한 산지를 기업으로 받은 스불론은 이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앞장서서 목숨을 걸고 전쟁에 임했던 기특?한 지파였다. ‘거함, 처소’라는 이름의 뜻 그대로 스불론은 훗날 거룩하신, 빛 되신 예수님의 사역지(갈릴리)가 된다.
“스불론 땅과…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4:15,16)”
우리의 가치는 보여지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우리 안에 누가 거하고 있는가로 그 가치가 결정된다. 보잘 것 없는 척박한 땅일지라도 예수님이 거하심으로 아름답고 존귀한 빛의 땅이 되었듯, 우리 안에 존귀하신 주님이 계실 때, 존귀한 그릇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잇사갈, 값을 지불하여 얻은 은혜
레아가 라헬에게 값을 지불하여 얻은 아들 잇사갈은 야곱이 그의 강성함을 예언한 바 있다(창 49:14). 예언대로 잇사갈 지파는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진 구원이 아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생명으로 값을 지불하심으로 얻게 된 구원의 의미는 우리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영역이 있고 또 노력해도 얻을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깨닫게 하며 그 은혜 앞에 엎드리게 한다.
*아셀, 참된 기쁨과 행복이란
‘행복’.,’기쁨’이란 이름의 뜻대로 아셀 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크지는 않지만 아주 비옥한 땅이었고, 모든 후손과 형제들의 환영과 기름진 땅의 풍요를 누릴 것이라는 예언(신 33:24)대로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그 땅의 원주민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과 기쁨을 지속적으로 누리지 못한 아셀의 모습은 감정의 기복이 심한 가벼운 신앙인의 모습과 같다.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의 다른 점이 무엇이랴. 그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환히 빛나는 얼굴로 살아갈 수 있음이 아닐까.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자들의 얼굴, 그리스도를 품고 살아가는 자들의 얼굴이다.
*납달리, 영적인 긴장감을 품으라
이스라엘 맨 북쪽, 타 족속과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땅을 기업으로 받은 납달리 지파는 결코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들은 다른 지파와 입장이 달랐다. 이들이 무너지면 곧 이스라엘 전 지파에게 위협이 가해지는 상황 속에서 ‘책임감’으로 그 땅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거룩한 부담감, 영적 긴장감을 품고 살아가야함을 보여준다. 내 가족과 친척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영적인 노동, 기도를 성실히 붙잡고 살아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하자.
*단, 내 눈에 좋은대로의 결과로 하나님의 심판이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수19:47)”
단 자손은 기업으로 분배받은 땅을 떠나 그들이 보기에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 취했다. 훗날 이 땅은 우상 숭배의 발원지가 된다. 분배 받은 땅은 그들이 보기에 탐탁치 않았고 그들 눈에 개척할 만한 땅을 찾아 나선 것이 이름대로 심판(단,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시작과 끝이 아름다운 사람들 : 갈렙과 여호수아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더라….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더라”(수 19:50,51)
가나안 땅 정복 후 이스라엘 민족의 기업 분배는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땅, 헤브론 산지를 개척하겠다고 요구한 노장 갈렙의 요구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모든 분배를 마치고 난 뒤, ‘여호와의 명령대로’ 딤낫 세라를 받음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영적 지도자들이 가장 힘든 땅을 시작으로, 또 가장 마지막에 기업을 받음으로써 모든 분배가 마무리된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 참된 리더십의 핵심은 자신의 뜻에 의함이 아닌, 기꺼이 험한 것을 먼저 택하고 가장 마지막에 취하며,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여호와의 명령대로’의 준행하는 자의 모습임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