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우리교회

사랑하는우리교회 ‘사랑하는 우리교회’는 KAICAM (한국독립교회 선교단체연합회)에 소속된 건강한 복음주의 교회입니다.

31/10/2022

날짜 : 2022년 10월 30일 주일예배
본문 : 여호수아 19:49-51
제목 : 시작과 끝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
말씀 : 김현 담임목사

신앙의 열정이 식어가는 걸 느낄 때가 있는가.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꿈과 비전이 없을 때 우리의 삶은 뜨겁다가도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 우리 삶 속에 믿음의 흔적이 차곡 차곡 쌓여져갈 때 그 힘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리라는 믿음 안에서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 멈추어 있으려 말라. 예배는 우리들을 꿈꾸게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꿈을 꾸며 나아가라.
오늘 본문은 남은 여섯 지파의 기업 분배를 다루고 있다. 각 지파 마다 기업 분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새겨보자.

*시므온, 기업 안의 기업 : 폭력적인 시므온, 유다의 넉넉함으로
“시므온 자손의 이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취하였으니(수 19:9)”
여동생 디나의 강간 사건으로 세겜 땅 남자들을 모두 다 죽여버린 선두에 섰던 시므온은 야곱의 마지막 축복을 받을 때에도 축복이 아닌 저주(“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라, 창 49:7)”를 받았던 바, 예언대로 따로 땅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시므온 지파를 유다 지파가 끌어안는다. 강한 유다 지파는 혈기 넘치는 시므온 지파를 통제할 능력이 있었다. 부족한 형제를 그대로 두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힘있는 자가 보호하고 감당해주어야 한다. 많이 가진 자에게는 없는 자, 연약한 자, 꺼리는 자, 외면당하는 자들을 포용할 거룩한 책임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스불론, 척박한 땅을 불평 없이 ‘거룩한 처소’로
가장 작고 척박한 산지를 기업으로 받은 스불론은 이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앞장서서 목숨을 걸고 전쟁에 임했던 기특?한 지파였다. ‘거함, 처소’라는 이름의 뜻 그대로 스불론은 훗날 거룩하신, 빛 되신 예수님의 사역지(갈릴리)가 된다.
“스불론 땅과…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4:15,16)”
우리의 가치는 보여지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우리 안에 누가 거하고 있는가로 그 가치가 결정된다. 보잘 것 없는 척박한 땅일지라도 예수님이 거하심으로 아름답고 존귀한 빛의 땅이 되었듯, 우리 안에 존귀하신 주님이 계실 때, 존귀한 그릇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잇사갈, 값을 지불하여 얻은 은혜
레아가 라헬에게 값을 지불하여 얻은 아들 잇사갈은 야곱이 그의 강성함을 예언한 바 있다(창 49:14). 예언대로 잇사갈 지파는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진 구원이 아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생명으로 값을 지불하심으로 얻게 된 구원의 의미는 우리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영역이 있고 또 노력해도 얻을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깨닫게 하며 그 은혜 앞에 엎드리게 한다.

*아셀, 참된 기쁨과 행복이란
‘행복’.,’기쁨’이란 이름의 뜻대로 아셀 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크지는 않지만 아주 비옥한 땅이었고, 모든 후손과 형제들의 환영과 기름진 땅의 풍요를 누릴 것이라는 예언(신 33:24)대로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그 땅의 원주민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과 기쁨을 지속적으로 누리지 못한 아셀의 모습은 감정의 기복이 심한 가벼운 신앙인의 모습과 같다.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의 다른 점이 무엇이랴. 그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환히 빛나는 얼굴로 살아갈 수 있음이 아닐까.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자들의 얼굴, 그리스도를 품고 살아가는 자들의 얼굴이다.

*납달리, 영적인 긴장감을 품으라
이스라엘 맨 북쪽, 타 족속과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땅을 기업으로 받은 납달리 지파는 결코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들은 다른 지파와 입장이 달랐다. 이들이 무너지면 곧 이스라엘 전 지파에게 위협이 가해지는 상황 속에서 ‘책임감’으로 그 땅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거룩한 부담감, 영적 긴장감을 품고 살아가야함을 보여준다. 내 가족과 친척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영적인 노동, 기도를 성실히 붙잡고 살아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하자.

*단, 내 눈에 좋은대로의 결과로 하나님의 심판이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수19:47)”
단 자손은 기업으로 분배받은 땅을 떠나 그들이 보기에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 취했다. 훗날 이 땅은 우상 숭배의 발원지가 된다. 분배 받은 땅은 그들이 보기에 탐탁치 않았고 그들 눈에 개척할 만한 땅을 찾아 나선 것이 이름대로 심판(단,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시작과 끝이 아름다운 사람들 : 갈렙과 여호수아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더라….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더라”(수 19:50,51)
가나안 땅 정복 후 이스라엘 민족의 기업 분배는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땅, 헤브론 산지를 개척하겠다고 요구한 노장 갈렙의 요구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모든 분배를 마치고 난 뒤, ‘여호와의 명령대로’ 딤낫 세라를 받음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영적 지도자들이 가장 힘든 땅을 시작으로, 또 가장 마지막에 기업을 받음으로써 모든 분배가 마무리된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 참된 리더십의 핵심은 자신의 뜻에 의함이 아닌, 기꺼이 험한 것을 먼저 택하고 가장 마지막에 취하며,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여호와의 명령대로’의 준행하는 자의 모습임을 기억하자.

31/10/2022

10월30일(주일)
세례식의 은혜를 영상으로 만나보실까요?

(촬영 및 편집해주신 황선영집사님 감사합니다)

#세례식영상
#믿음의고백
#아름다운시작
#아름다운다짐

29/10/2022

날짜 : 2022년 10월 23일 주일예배
본문 : 여호수아 18:1-11
제목 : 하나님의 꿈을 꾸는 자들이 되라
말씀 : 김현 담임목사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그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늘 어디론가 가서 하나님의 메세지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곤 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며 용기와 격려를 통해 사명을 일깨우고, 백성들이 불만에 사로잡힐 때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 다시 참된 예배자들로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동안은 길갈을 찾았던 여호수아가 이제 실로로 이동하여 회막을 세운다. 실로는 이후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안에서 예배의 중심지, 영적 근거지가 된다.

오늘 본문은 나머지 땅 분배를 앞둔 일곱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 대한 내용이다. 우선 일곱지 파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이들은 공통적으로 영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남은 일곱 지파는 땅 분배에 있어 무관심했고 무기력했다. 땅을 달라고 요구하지도, 싸우러 갈 생각도 없었다. 이들을 향해 영적 지도자로서 여호수아가 보여준 모습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무관심한 일곱지파를 향한 여호수아의 리더십

1. 책망했다 :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수 18:3)
인내와 격려의 리더십을 보여왔던 여호수아가 일곱 지파를 향해서는 강하게 책망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었다(딤후 3:17). 그리고,

2.비전을 제시했다 : “그 땅에 두루 다니며…그 땅을 그려 가지고 돌아오라”(수 18:4)
여호수아는 일곱 지파에게 ‘나가라’ 명한다. 땅을 두루 다녀보게 한다. 웅크리고 있지 말고 나가서 땅을 밟고 다니다보면 그 땅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주셨는지 상기하게 되리라 여겼다. 백성들이 [일어나서, 보면, 꿈이 생길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들이 머물러 있지 않고 나가서 보게 해주는 것까지가 지도자의 역할이라 여겼던, 여호수아의 리더십이었다.

*베냐민 안에 예루살렘 있다 : 성전을 품으라

“그 제비 뽑은 땅의 경계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중간이라”(수 18:11)

베냐민 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가장 작은 규모로, 덩치가 큰 유다 지파와 요셉 자손 지파의 땅들 사이, 정중앙에 끼어 있었다. 베냐민 지파의 상황은 마치 미,중,일 초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과 흡사해보인다. 막내였지만 결코 성정이 유약하지 않고 호전적이며 고집스러웠던(물어뜨는 이리라, 창49:27) 베냐민 지파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바로 ‘성전을 품고 사는 것’이었다.
“베냐민 자손의 지파가.. 받은 성읍들은…곧 예루살렘과..”(수 18:28). 하나님은 베냐민 자손의 기업으로 이스라엘 성전의 땅, 예루살렘을 품게 하셨다.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예배의 순수성’을 지켜내는 것만이 초강대국 사이에서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모든 상황과 성격에 맞게 기업을 분배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우리를 정금으로 만들어가기를 원하신다. 세상 사람들의 보는 기준으로 우리의 삶은 형통할 수도 형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풀무불에 타 죽을 수도, 사자의 먹이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꿈을 꾸자. 보이는 상황에 불평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 보며, 그리며, 꿈을 꾸자. 우리 삶의 성전을 지키자. 예배자로서 내가 아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품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자.

29/10/2022

날짜 : 2022년 10월 16일 주일예배
본문 : 여호수아 16:9-10
제목 : 우리는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자들이다
말씀 : 김현 담임목사

이스라엘 민족이 정복한 가나안 땅은 야곱의 자손 열두 지파에게 분배되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야곱의 아들 열두 지파 중 레위 자손을 제외한 열 한 지파, 그 중 요셉의 경우는 요셉이 아닌 그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에게 기업이 분배된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 열 지파와 요셉의 아들 두 지파를 합해 총 열두 지파가 된다. 오늘은 열두 지파 중 요셉의 아들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창 49:22,25)

담장을 넘어가는 축복, 한계를 초월하고 지경을 넓혀가리라는 요셉을 향한 축복은 실현되었고, 그 복은 흘러 넘쳐 아들들에게까지 이어졌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 즉 은혜로 주어진 구원이 무조건적인 복이라면,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한 순종으로 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조건적인 복도 있다. 실제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딱히 한 것이 없었던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아버지 잘 만나서 삼촌들과 똑같이 땅을 분배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금수저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태도

1. 욕심으로 인한 불순종 -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수16:10), “쫓아내지 못하매”(수 17:12,13)
죄로 인해 더럽혀진 땅들은 그 범죄한 자들을 토해내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로 더럽혀진 땅들을 회복하기 원하셨기에, 정복한 땅의 모든 범죄한 자들을 멸하라 명하셨다. 그러나 므낫세도, 에브라임도 정복한 땅의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고 이는 노역을 시킴으로 유익을 취하고자 함이었다. 자신의 유익을 취하고자 자신의 불순종을 하나님을 향한 불평으로 정당화하려 했다.

2. 감사 대신 불평 -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주심은 어찌함?(수 17:14)”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기업으로 받은 땅은 다른 지파들과 비교해볼 때 결코 적지 않은 규모의 땅이었으며 오히려 자격에 비해 넘치게 받았다고 여겨질 만큼 충분히 넓은 땅이었다. 그런데 '적다'고, '더 달라' 요청한다. 이 배은망덕한 태도 앞에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여호수아의 반응이다.

*영적 리더 여호수아의 반응

1. 용납과 격려 - “스스로 개척하라”(수 17:15)
적다 불평하는 에브라임 지파에게 여호수아는 책망과 화에 사로잡히지 않고 도리어 부족한 걸 스스로 개척함으로 지경을 넓히라 권면한다. 성숙한 리더의 자세다. 물론 여호수아의 이런 도전적 권면이 그들에겐 반갑지 않았다. 애초에 편하게 얻은 땅, 충분히 가진 입장에서 더 취하고자 하는 욕심만 있었을 뿐, 애써 힘들여 개척할 의지는 없었다.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수 17:16)
철 병거는 전쟁에서 매우 큰 위협 요인인 것은 분명하나, 이스라엘 민족에게 철 병거를 가진 족속과의 전쟁은 이미 두 번이나 치른 바 있었다. 모두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를 증거하는 짜릿한 승리의 경험[1)출애굽시 바로의 병거와 군대를 홍해에 잠기게 하심,출15:4. 2)가나안 정복시 아이성, 여리고성 전투, 수 11]이었기에 에브라임 지파의 철 병거 운운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부재, 안이한 게으름으로 인한 핑계에 불과했다.

2. 믿음의 권면 – “네 것이 되리니 네가 개척하라…네가 능히 쫓아내리라”(수 17:18)
유다 지파 사람이었던 갈렙은 헤브론 산지를 개척하고, 또 옷니엘을 다음 세대 리더로 세우며 믿음의 세대 교체까지 성공적으로 이뤄가고 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 수장이었던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향해 분노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끝까지 인내로서 용기를 북돋워주며 개척을 권면한다.

오늘날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동일하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이 아닐까. 섬기는 리더의 자리에 있다면 여호수아와 같은 인내와 격려, 세우는 자로서의 역할을, 또 에브라임 지파의 모습을 통해서는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믿음의 부재로 인함이라는 걸 인식하며 날마다 마주하게 되는 수 많은 영적 전쟁에서 몸부림치며 믿음으로 산지를 정복해 나가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15/10/2022

날짜 : 2022년 10월 9일 주일예배
본문 : 여호수아 15:1-8
제목 : 하나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준 기업
말씀 : 김현 담임목사

오늘 본문은 유다 자손에게 분배하신 땅의 경계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은 유다 자손에게 가장 넓은 땅을 기업으로 주셨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크게 두가지로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유다 자손에게 가장 많은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유 : ‘유다의 리더십’과 ‘하나님의 언약’

‘유다의 리더십’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흉년의 시기에 곡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에 갔을 때 베냐민이 볼모로 잡히게 된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대신 희생하려 했던 모습, 며느리 다말을 통해 자신의 과오가 드러났을 때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했던 것, 또 실제 싸움에 능한 전사로서 전쟁마다 선봉에 서서 싸움을 이끌었던 유다는 다른 형제들보다 상대적으로 넓은 지역을 물려받음이 타당해 보이기도 하다.
또한,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측면이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 그를 통해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는 말씀으로, 이 언약 안에서 유다 지파에게 많은 땅을 분배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실제 유다가 분배 받은 지역의 동서남북 경계는 모두 예수님의 사역지였으며, 그 중에 몇 군데 눈에 띄는 지명들이 있다.

*’아골 골짜기’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아골골짜기(수 15:7) :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이다. 여리고성 남쪽에 위치한 땅으로 유다 지파 아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전리품을 감춰두었던 죄의 땅으로 이후 전투에서 처참한 패배를 경험케 된다.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도 공동 묘지로 사용된 땅으로 ‘괴로움과 고통, 절망과 죽음의 땅’이라는 역사적,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수 15:8) : ‘불타는 지옥’이라는 뜻을 가진 곳으로 바알을 섬기며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제사가 이뤄졌던 땅이다. 외국인들의 묘지와 쓰레기 소각장으로 쓰였던 더러운 땅이었다.
이 땅들은 유다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회복과, 괴로움이 소망으로 전환되는 회복의 땅으로 전환되는 ‘언약적 의미’를 갖고 있기도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 죄가 가져다주는 무거움을 우리가 결코 잊지 않길 바라시며, 우리를 새롭게 회복시키시고 정결한 땅으로 이끌어가신다.

*갈렙과 유다의 차이 : 영적 근육을 키우는 자 Vs 안주하는 자

유다 자손은 하나님의 명령(신 20:16-18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대로 여부스 족속을 온전히 다 쫓아내지 않았다(수 15:63). 여부스 골짜기의 주민들이 철 병거를 가지고 있었기에 만만치 않은 강한 상대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에게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수 17:18)’고 약속하셨음에도, 그들은 싸우지 않았다(삿1:19). 이로 인해 여부스족속은 이스라엘의 정중앙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다윗 왕이 그 땅을 점령할 때까지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내내 골치아픈 존재로 함께 하게 된다.
그에 비해 갈렙은 거인족이었던 아낙 자손의 땅 헤브론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자신의 영적 근육을 키워왔었다. 팔십 오세가 된 나이에도 담대히 ‘이 산지를 내게 달라’며 여호수아에게 요구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 날을 바라보며 사십여 년을 대비해왔던 것이다. 또한, 혼자서만 그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지 않았다. ‘다음 세대와 함께' 사명을 감당해가는 지혜를 발하기도 하였다. 세대 교체를 위해 신앙의 영적 콜라보를 실현한 것이다(수15:16-17: 기럇 세벨 점령을 위해 그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는 공약으로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로 하여금 점령케 함)

하나님의 분명한 언약이 있음에도 싸우지 않은 유다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굳이 싸우겠다고 요구한 갈렙, 이들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사명이다. 사명을 좇는 자는 멈추지 않고 영적 근육을 키워간다. 영적 근육은 단번에 붙는 것이 아닌, 매일 조금씩의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키워진다. 사명을 잃은 자는 결국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게 된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사명을 좇고 있는가.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6)"

14/10/2022

날짜 : 2022년 10월 2일 주일예배
본문 : 고전 15:35-44
제목 : 복음을 말하고 들려주는 자가 되라
말씀 : 김현 담임목사

*복음의 ‘선포’가 필요한 시대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딤후 4:3)”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시대다. 복음을 전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초대교회 시대가 아님에도 오히려 그때보다 더 전하기 어려워졌다. ‘과학주의(성경 부정)’, ‘상대주의(범신론주의:유일신 부정)’, 해체주의(작가의 의도보다 독자의 해석이 중요:하나님의 뜻 부정)’가 시대의 풍조를 이루고 있다. 모두 다 ‘반(anti)기독교주의’다.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이라고 입을 떼지 못한다. 믿지만, 전하지 않는다. 불편한 진리보다는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인문학 강의와 심신 안정과 위로를 전하는 심리 상담이,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거슬리는 주제는 가급적 피하는 게 상책인 현실이다. 극단보다는 모호하게 뒤섞어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막고, 문화와 풍조로 입을 떼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린 이 시대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외치는 소리’, ‘복음의 선포’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부활의 복음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7-19)”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사느냐, 는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꾼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생명이 죽음에게 지배를 당한 것으로 종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첫 아담으로 인해 주어진 육의 몸은 아담의 죄(원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고(‘정녕 죽으리라’, ‘죽음’=하나님과의 단절), 그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죄 없는 존재로서 인간을 대속하려면, 신이신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셨어야만 했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셔야 했으며(‘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우리의 죄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심), 장사한 지 사흘만에 말씀의 예언대로 부활하셨다(사망을 이기신 하나님의 절대 권능). 이로써 예수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얻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하나님과의 단절, 영원히 죄 가운데 머물렀을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자로) 옮겨진 것이며, 예수님 재림하실 때(예언), 영의 몸을 입고 부활하여 함께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부활의 복음이다.

*어떤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가?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영의 몸도 있느니라….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였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35-49)”

하나님의 뜻대로 형체를 주셨고(고전 15:38) 그 육체는 썩어 없어지나, 욕된 것으로 심어진 몸이영광스러운 몸으로, 약한 것으로 심어진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고전 15:43,44). 어떻게?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고행이나 선행이나 속죄나 그 어떤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죄의 댓가를 단번에 치르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정하신 그 날에 다시 오실 때(그 날은 오직 하나님만 아심 마24:36), 죽은 자와 산 자 모두 영의 몸으로 일어나 천국 백성으로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이며,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다.

*믿음은 들음으로, 들음은 말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 ‘말 대신 삶으로’ 보여준다는 말로 우리 스스로의 나태함을 변명하고 있지는 않은지,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말 뿐이 아닌 삶으로’ 살아내는 크리스천의 모습은 깊은 의미에서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 전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면 알 수 없다. 복음은 말그대로 복된 소리, 생명의 소리이다. 복된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길 기도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자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3-15)”

29/09/2022

날짜 : 2022년 9월 25일 주일예배
본문 : 여호수아 14:6-15 (강해)
제목 :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살아온 청년들
말씀 : 김현 담임목사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 14:11,12)”

가나안 정복의 여정에 들어선지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출애굽 1세대는 모두 죽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남은 상황. 팔십오 세가 된 노인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가장 힘세고 강한 거인족 아낙 자손의 땅 헤브론을 기업으로 청한다. 갈렙의 이 담대한 요구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산 사람들,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갈렙 : ‘충성’의 본, 진심을 넘어 전심으로

‘갈렙’은 히브리어로 ‘개’, ‘마음을 전부 드린 자’라는 뜻이다. 출애굽시 섞여 나온 ‘잡족’(출 12:38)의 혈통으로 추측되는 갈렙은 ‘출신과 환경’을 탓하는 자들을 무색케 한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신1:36),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민14:24)'과 같은 하나님의 평가를 받은 자이다. 가나안 정탐 후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이스라엘 백성, 그 모습을 통탄해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자 했던 갈렙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노하며 돌을 들어 그를 치려했다(민14:9-10). ‘어떠한 상황에도 요동치 않는 사람’을 하나님은 ‘충성스럽다’ 하신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를 각오로 찾아왔던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이 요구한 것은 ‘전심’이었다. 충성은, 진심을 넘어 ‘전심을 드리는 것’이다.

*갈렙과 여호수아 : ‘인정’과 ‘축복’의 아름다운 동역

“그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수14:6)”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수14:13)”

갈렙의 입장에서,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와 비교할 때, 지도자의 자리에 앉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대해 조금아라도 불만과 불평의 감정을 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갈렙은 오직 동역자로서 여호수아의 권위를 인정하며 그 앞에 나아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정중히 청하고 있다. 또, 그렇게 나아온 동역자 갈렙을 축복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여호수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 앞에서의 존중과, 사명 앞에서 순종하는 모습, 이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참 신앙 안에서의 리더십과 성도의 모습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헤브론’의 의미 :

1. 갈렙 : ‘영적 전투력을 유지시켜준 땅’

가나안 땅 정탐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메뚜기처럼 초라하고 두렵게 만들었던 결정적인 땅이었던 헤브론은 거인족 아낙 자손들이 거주하는 땅이라는 장벽뿐 아니라, 해발 1000m 높이에 위치한 천연 요새 지역으로서, 한마디로 ‘정복하기 어려운 땅’이었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의 언약(신1:36,민14:9)을 붙잡고 요동치 않음과 동시에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민14:9)'고 지난 날 담대히 외쳤던 고백, 그리고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실 것(수 14:13)’이라는 믿음을 새기며, 지난 45년의 세월 동안 영적 전투력을 놓지 않고 유지시키려 부단히 애써왔을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무너뜨렸던 땅, 바로 그 땅의 정복을 벼르며 무장해 온 85세 청년 갈렙에게, 그 산지는 더 이상 난공불락의 땅이 아닌 ‘먹이’일 수 밖에 없었으리라.

2. 아브라함 : ‘값을 치르고 산 땅’ – 보이지 않는 약속을 믿고 나아갔던 땅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창13:18)”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창23:19)”

헤브론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라’ 하셨을 때 '순종함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나 나아갔던 땅’, '여호와의 제단을 쌓았던 곳'이었으며, 후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매장지로 거저 주겠다는 헷 족속들에게 굳이 값을 주고 산 땅이었다. 헷족속으로부터 정식으로 아브라함의 소유지가 되었던 땅이다. 이후 아브라함 자신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라헬이 그곳에 묻혔다. 보이지 않고, 아직 주어지지 않은 땅을 두고 값을 주고 취했던 아브라함, 그것은 그가 ‘주리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편안한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사명과 비전을 따라 살아간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이 지금 살아있는 이유, 그리고 살아가야 할 이유, 아래 다윗의 고백에 가장 잘 나타나있다고 여겨진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시 118:17)”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사는 자들은, 언제나 ‘청년’이다. 영적 전투력을 상실하지 않고, 늘 사명을 따라 힘차게 달려가는 청년들로 살자.

20/09/2022

날짜 : 2022년 9월 18일 주일예배
본문 : 여호수아 13:32-14:5 (강해)
제목 :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자
말씀 : 김현 담임목사

하나님은 맨 처음 우리에게 정결한 땅을 주셨다. 땅이 더럽혀진 것은 우리의 죄로 인해서다.
‘정결한 땅으로 회복하라’, 말씀하시는 주님. 우리가 속한 땅, 내가 선 땅의 정결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만 한다. 우리가 선 땅, 우리 삶에 죄를 용납, 타협하지 말고, ‘맞서 싸워’ 거룩함으로 세워라.

*정결한 땅으로의 회복을 위해, ‘싸우라!’

“헤스본과 그 평지에 있는 모든 성읍 곧 디본과 바못 바알과 벧 바알 므온과(수 13:17)”

‘벧’은 집이라는 뜻으로, ‘벧엘’은 하나님의 집, ‘벧 바알 므온’은 ‘바알의 성전, 바알의 집’이라는 뜻이다. 르우벤 지파에게 기업으로 준 지역들의 지명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우상을 섬기던 땅들을 군주로부터 귀족들, 점술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여 멸하게 하였다. 죄인이 자기 죄를 깨끗케 할 수 없듯(예수님 이 땅에 오신 이유), 더럽혀진 땅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법으로 그 땅을 다스림으로서 가능하다. 하나님의 법이 서기 위해서는 그 땅을 지배하는 죄의 법과 싸워야만 한다. 우리가 속한 땅, 내 삶의 현장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땅의 정결을 위해 우리는 매일 싸우고 있는가. 죄가 주는 잠시의 즐거움을 선택하지 말라, 죄가 주는 삶의 결국은 파멸이다. 나 홀로 신앙으로 자만하지 말라.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중보하며 ‘함께’ 세워가야 한다. 건강한 신앙 생활을 위해서는 ‘지켜내야 할 나만의 영역’도 분명 존재하지만 ‘함께 싸워나가야 할 영역’ 또한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길의 길을 걸으라 : 마길 Vs 발람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에게 돌린 것이니 곧 마길 자손의 절반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으니라”(수 13:31)

매우 호전적이었고 싸움에 능한 족속이었던 마길은 막강한 아모리 족속의 땅 길르앗을 기업으로 받는다. 마길의 후손은 훗날 요나단의 다리 저는 아들 므비보셋,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주한 다윗 일행을 도와준(삼하17:27) 자들로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감당한 영광스럽고 중요하게 기억되는 족속이다. 반면 발람은,

”…헤스본에서 다스리던 아모리족속…모세가 시혼을 그 땅에 거주하는 시혼의 군주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수 13:21)”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세상과 타협하게 만들어 결국 타락시키는 거짓 교사’(벧후2:15,16),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한 자’(계 2:14)로 지목되며 기억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 후손들에게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는 삶을 살것인가.

*레위 지파의 기업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음이라(수 13:14)”

레위 지파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었다.
이 땅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인생일 뿐이며, 오직 ‘하나님’을 기업으로 살아가는 레위 지파를 보며 ‘우리의 진짜 기업은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며 살라, 는 의미가 있다.

둘째, ‘땅’이 아닌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었다.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수18:7)”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받은 성읍은 모두 마흔여덟 성읍이요 또 목초지들이라(수21:41)”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은 레위인들에게 이 마흔 여덟의 성읍은 그들의 기업이 아니었다. ‘마흔 여덟의 성읍’은 이스라엘 각 지파로 레위인들이 흩어져 그들의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다른 열한지파를 섬기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레위 지파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함이었다.

삶의 현장에서 죄와 맞서 싸우는 성도들의 삶을 정결하게 회복하고 지켜나가도록 돕는 것, 또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업으로 살아가는 레위 지파의 삶을 보며 ‘우리의 궁극적인 기업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은 의미다.

우리의 영원한 기업되신 주님을 바라보며, 하루하루의 삶을 정결함으로 회복하고 세워가자.

사랑하는 우리교회 남한산성 등반 -1산책팀^^등반팀^^오랬만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19/09/2022

사랑하는 우리교회 남한산성 등반 -1
산책팀^^
등반팀^^
오랬만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교회 남한산성 등반 -1산책팀^^등반팀^^오랬만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19/09/2022

사랑하는 우리교회 남한산성 등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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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2022

날짜 : 2022년 9월 11일 주일예배
본문 : 여호수아 13:1-7 (강해)
제목 : 내게 주어진 시간, 내게 맡겨진 영역
말씀 : 김현 담임목사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수13:1)

* 하나님께서 나이 든 여호수아에게 돌직구로 표현하신 이 두 문장, ‘너는 나이가 많다’와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다’, 무슨 의미일까.

- ‘너는 나이가 많다’ : ‘알맞은 때’가 있다는 것과 ‘네 사명은 여기까지다’라는 것이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으며”(전 3:1,2)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영원히 살 수는 없으며, 누구나 죽음이라는 때를 맞이한다. 이루었으면 멈추고 내려가기도 해야 하며,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도 해야한다. 마찬가지로, ‘그때 그럴 걸’하며 ‘하지 않은’ 지난 과거를 후회하는 삶도 의미 없는 일이다. 지금, 조금이라도 나에게 재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그 힘을 온전히 주를 위해 헌신하며 달려갈 수 있어야 한다. ‘때’가 있는 것이다.

-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 ‘완성할 분은 따로 계시다’라는 것이다.

모세의 사명은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요단강까지였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 정복을 감당한 여호수아 역시 완전한 정복을 통해 안식을 줄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이제 여호수아에게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완전한 정복을 완성할 자가 따로 있음을 표현하고 계신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8,9)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와 ‘예수’를 상징하는 ‘여호수아’의 삶은 참된 안식에 이르는 길에서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향하라 말하고 있다. 가나안의 (남은 땅이 없는) 진정한 정복, 참된 안식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역과 사명의 끝엔 ‘하나님’만이 보여져야 한다. 우리의 삶은, 누구를 보여주고 있는가. 우리의 사명 속엔 누가 보이는가.

이 외에,
* 정복한 땅들의 분배가 장황하게 나열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깨닫게 하시는 의미를 살펴보면,

-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다’는 것을 믿고 충성하라

싸우는 것도 힘들지만 분배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싸울 땐 오히려 하나가 되지만, 분배할 때는 마음도 갈라지고 분배되기 쉽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 분배를 두고 ‘인구 수대로’와 ‘제비뽑기’를 통해 분배하라 미리 말씀하셨고(민 26:52-55) 실제 정복한 땅 분배는 제비뽑아 이루어졌다(수 14:2). 주인이 알아서 종의 역량에 알맞게 그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다(달란트 비유-마25장). 분배의 핵심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충성’의 문제임을 말씀하신다. 그 충성에, ‘비교 의식’이 자리잡을 곳은 없다. 비교하지 말라. 직분자들에게 구할 것은 오직 ‘충성’이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 것’에 대한 믿음으로 충성하기만 하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을 거룩히 잘 지키라’
각 지파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정복한 땅의 분배를 이루신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은 맡은 땅들을 각자의 기질과 성향에 맞게 잘 지켜내라는 의미가 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우리의 기질과 성향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죄가 지배하던 땅’을 우리에게 알맞게 분배하시며 다스리고 누리며 지키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각자 다르나(지체) 한 몸인 성도로서 맡겨진 각자의 사명과 사역, 직분에, 비교함으로 힘을 낭비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거룩히 지켜나가는 일에 충성하자.

04/09/2022

날짜 : 2022년 9월 4일 주일예배
본문 :창세기 3:6-8, 20-21
제목 : 가죽옷
말씀 : 김현 담임목사

인과성, 어떤 결과이든 그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죽음’을 운명처럼 여기며 살아가지만, 죽음이라는 결과의 ‘원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 죽음의 원인
인간이 임의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하지 못하고, 그것을 거부한 데에서 ‘죽음’이 시작되었다. 죽음은 곧 ‘하나님과의 단절’이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창 3:2,3)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

[죄의 속성]
- 간교함 : 결코 상대방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며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한다. 책임지지 않으며 결국 상대방을 파멸로 이르게 한다(가장 간교한 뱀의 속삭임 창3:1)
- 거짓된 찬양 : 귀에 듣기 좋은 찬양의 언어에 우리는 영혼을 판다.(하나님과 같이 됨)
- 전염성 : 결코 죄는 혼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꼬리를 이어가는 파급력을 지녔다(하와->아담)

*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어떤 현상이 나타났는가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다. 자신이 ‘벗겨진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 3:8)

하나님을 나타내며 보여주는 자로 살아가야 할 자들이 하나님을 피하는 자로 살아가게 되고 말았다. 인간이 느끼는 수치심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주어진 것. 하나님이 없다, 말하는 자들이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은 가장 좋은 ‘영원한 것’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 벌거벗은 인간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범죄하여 수치심을 느끼게 된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그대로 벗겨진 채로 두지 않으시고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가죽옷, 먼저 피 흘려 죽는 희생이 필요하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마 27:35)

하나님과의 단절, 죽음을 선택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친히 찾아오셔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다. 친히 가죽옷의 희생양, 어린 양이 되어주신 것이다.

* 부끄러워 말고 자유하라!
이미 범죄함으로 죽음을 선택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를 희생시켜 어린양의 가죽옷으로 우리의 수치를 가려주시고 죽음에서 부활의 생명으로 옮겨주셨음을 기억하라.
이 사랑 앞에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 자로 살지 말고 나아오라. 어린 양의 가죽옷을 입은 자로서 주님을 바라봄으로 살아가라. 십자가의 복음을 취한 자로, 자유하라, 당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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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압구정로46길 23, 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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