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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수, 성루카“젊은이, 우리의 스승” 한 여자아이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습니다. 점심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죠. 돈보스코아동복지센터로 뛰어가는 초등저학년 아이였는데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저와 시선이...
17/10/2023

10/18 수, 성루카
“젊은이, 우리의 스승”

한 여자아이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습니다. 점심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죠. 돈보스코아동복지센터로 뛰어가는 초등저학년 아이였는데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저와 시선이 마주치자 해맑게 웃는 것이었습니다. 가쁘게 숨을 쉬면서도 저를 향해 웃어준 어린이 덕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직 왜 웃어줬는지 이유는 모릅니다만^^

젊은이들의 미소와 밝은 에너지는 살레시안으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지난 총회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살레시오회의 흐름 안에서 아이들은 단순한 우리 사목의 대상이거나 원동력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지난 여정을 돌이켜보고 최근의 삶을 음미해보아도 저에게 이 사실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청소년을 통해 제가 느끼고 깨달은 바가 결코 다른 깨달음의 원천에 비해 적거나 작지 않습니다. 일찍이 그들이 저의 스승이요 사목의 파트너임을 간파했더라면 저는 청소년들을 통해 더 많은 걸 배우고 깨우쳤을 것입니다.

오늘날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라 명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성소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 이상의 말씀입니다. 특히 살레시안에게 이 말씀은 평신도들, 특히 우리와 함께하는 모든 젊은이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스승이요 동료임을 깨달으라는 호소임이 분명합니다. 성소가 급감하는 오늘날 교회와 함께 우리가 실천해야 할 시노달리타스 정신의 실천에 있어 반드시 요구되는 태도는 경청입니다. 청소년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복음의 음률에 우리가 공명하고 반응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성소와 더불어 청소년들의 성소도 풍부해지고 구체화 될 것입니다. #청소년 #젊은이 #스승 #동료 #시노달리타스 #살레시안

10/14 토“말씀을 지키는 이들의 공동체”  독서의 요엘서를 읽어보며 자꾸 이스라엘 사태가 떠올랐습니다. 요엘 예언자가 저주한 유다 자손들이 피를 흘리게 한 적들의 모습에서 지금 분노에 압도당해 있는 이스라엘의 모...
17/10/2023

10/14 토
“말씀을 지키는 이들의 공동체”

독서의 요엘서를 읽어보며 자꾸 이스라엘 사태가 떠올랐습니다. 요엘 예언자가 저주한 유다 자손들이 피를 흘리게 한 적들의 모습에서 지금 분노에 압도당해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와 자기 땅을 지키려는 그들의 동기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당장 제 지인과 가족들이 희생되었다면 저도 그들처럼 신앙도 잊어버린 채 미워하고 저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지금 분노하는 이들에 대한 복수에 눈이 멀어 적들과 같은 잔혹한 방식을 선택했고, 규모 면에서는 더 대대적이고 처참한 피의 보복을 벌이고 있습니다. 가자는 지금 이스라엘에 의해 초토화되기 직전으로, 얼마나 더 많은 무고하고 약한 이들이 희생당할지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우리는 압니다. 오늘 예언서가 약속한 ‘대대로 이룩될 예루살렘의 평화’는 정작 지금의 이스라엘이 차지할 몫이 아님을 압니다. 그 번영과 평화는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 나라는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완수해야 할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신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 각자가 말씀을 기준으로 자신을 정화하고, 우리 공동체가 말씀으로 의롭게 되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배었던 모태와 젖을 먹인 가슴 대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을 축복하셨습니다. 혈연 · 민족 · 국가와 같은 울타리로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서로 연결된 나라를 이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몫이요 의무입니다. 이를 위해 용서하지 못하는 자아를 내려놓고, 마음으로부터 말씀에 동의하고 우리부터 말씀을 지키기 위해 나설 때, 지금 여기에 평화의 나라가 임하기 시작한다는 걸 기억합시다.
#평화 #말씀의실천

10/11 수, “주님의 기도를 외울 때”  제자들은 주님께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요청합니다. 이를 영어로는 “Lord, teach us to pray.”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11/10/2023

10/11 수, “주님의 기도를 외울 때”

제자들은 주님께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요청합니다. 이를 영어로는 “Lord, teach us to pray.”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스승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 요청한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랬지만 기도를 잘 모르는 사람이든, 기도에 대해 나름 안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든 우리 중 많은 이가 ‘기도 방법’을 아는 것을 기도를 아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통해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르쳐주십니다.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전해주는 기도의 본질 혹은 기도의 정신은 매우 풍부합니다. 그 가운데 제가 오늘 주목하는 바는 바로 ‘일치’의 정신입니다. 아버지의 거룩함 안에서 이루는 신성과 인성의 일치, 아버지의 뜻 안에서 이뤄지는 그 나라와 땅의 일치,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에 대한 감사를 통해 도달하는 피조물과 인간의 일치, 용서를 삶으로 살아가며 이르게 되는 사람들 사이의 일치, 매일같이 전쟁이 벌어지는 우리 양심이 하느님의 자비 안에 머물게 될 때 딱딱한 마음의 묵은 긴장을 해소하시는 주님을 통해 이르게 되는 구원의 일치. 이렇듯 주님의 기도는 우리의 모든 일치를 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넘치도록 풍요로운 은총이 이 기도에 숨어 있으니 우리는 발견하고 음미하고 살아야겠습니다. 열심한 신자의 경우 묵주기도와 미사 참여, 아침기도나 성무일도를 통해 하루에 최소 열 번 정도는 주님의 기도를 암송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외우면서 단순히 읊어 나가는 것을 넘어,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자비로운 마음처럼 넓어지게 되기를 마음 깊이 바랍시다. 그렇게 되면 기도 중에 우리가 외는 ‘우리’나 ‘저희’라는 단어의 의미도 한층 더 깊어지고 넓어질 것입니다.

#연중27주간수 #루카11장 #주님의기도 #일치

10/4 수.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 기념  사춘기부터 시작해서 불과 얼마 전까지 직면하기 힘들었던 느낌을 문장 하나로 갈무리해보건대, 아마도 이런 종류의 느낌이었던 듯합니다. “삶은 늘 혼자다.” 아직도 관성적으로는...
04/10/2023

10/4 수.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 기념

사춘기부터 시작해서 불과 얼마 전까지 직면하기 힘들었던 느낌을 문장 하나로 갈무리해보건대, 아마도 이런 종류의 느낌이었던 듯합니다. “삶은 늘 혼자다.” 아직도 관성적으로는 이 한마디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렇게 서성이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삶의 이런 면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 중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혼자임을 인정할 때에만 한 인간으로 홀로 설 수 있고, 홀로선 다음에야 함께하는 것의 의미를 오롯이 구현할 수 있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라는 불가의 격언이 그래서 저에게는 관계에 대한 앞선 생각과 맞물려 이해됩니다. 소중한 관계든 어려운 관계든, 가족이나 친구나 공동체를 포함하는 여러 관계에 대한 집착과 의존에서 깨어나는 길이야말로 내가 삶의 길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중요한 관문일 거라고, 스스로 다그치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의 모진 말씀,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둥지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기댈 곳조차 없다.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는 것보다,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보다 너는 나를 따라라.”라는 말씀이 저에게는 이렇게 해석됩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법도 여러 가지, 가정을 이뤄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길도 여러 가지지만 너는 나를 택하였다. 너는 사람들 사이에 속한 자로서 나를 따르려 하지 말고, 나를 따르는 자로서 사람들 사이에 머물러라.”

관계에 대해 여전히 나약하지만, 이렇게 깨달은 바를 언젠가 오롯이 실천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싶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 하나로도 주님께서 저를 위해 마련하신 하늘나라를 차지한 게 아닐까 생각하며, 그렇게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주님을따름 #제자됨 #관계로부터의자유 #홀로서기 #진정한사랑의시작

9/30 토,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  오늘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는 복음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왜 이해하지 못했을지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
04/10/2023

9/30 토,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

오늘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는 복음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왜 이해하지 못했을지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 심각성이나 중요함을 체감하기 힘든 것이 제자들을 비롯한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생각한 예수는 기적을 일으키는 메시아였습니다. 제자들에게 메시아의 이미지는 구약의 판관들처럼 유다 민족을 구원하는 영웅의 모습일 터이므로 메시아가 그렇게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 아마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께서 수난 당하시고 죽고 부활하시는 전체 여정에 대한 앎이 부족했고, 예수님의 사명과 복음선포 여정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파스카의 여정과 거기서 드러난 예수의 사랑을 통해 양성된 후에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을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순교자 성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순교자들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면 단지 허망하고 비참한 삶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들 삶을 끝까지 밝혀준 단 하나의 등불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른 순교자의 삶을 일상에사 사는 것, 교회는 이를 증거라고 하고 또 성덕이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삶의 첫 자리에 둬야 하는 등불, 마지막까지 그 기름이 부족하지 않도록 해야 할 등불이 무엇인지 미사를 통해 새기도록 합시다. 아멘. #수난예고 #주님수난예고 #예수님을사랑함 #순교 #성덕 #증거

9/27 수,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 “그리고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마르 6,7) 이는 오늘 루카 복음에 대한 마르코 복음 병행 구절입니...
04/10/2023

9/27 수,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

“그리고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마르 6,7) 이는 오늘 루카 복음에 대한 마르코 복음 병행 구절입니다. 루카 복음 9장에는 둘씩 짝지어 보내시는 내용이 없습니다. 대신 이어지는 10장의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하시는 대목에 “둘씩 짝지어” 보내시는 내용이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차이를 염두에 두고서 오늘 복음을 찬찬히 읽어보면 파견된 이의 고독이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러 떠나는 이는 오직 하느님께 의지해야 한다, 고을과 길에서 말씀을 전할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복음 사이, 그들과 하느님의 뜻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오면 복음 전파자는 주저없이 복음을 따라야 한다고 루카는 말합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함께하는 이들은 나의 가치관과 양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들이 신앙 여정을 도와주고, 내가 세속적인 바로부터 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부추기고 격려한다면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자신이나 이웃의 복음적 삶을 끌어 내린다면 어찌할까요(물론 내가 그런 영적 빌런인데 인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죠)? 이는 여전히 고민으로 남습니다. 여기서 평화에 대해 고민하는 이는 어떻게든 중재하고 유지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돈 보스코도 오라토리오에 혼란을 일으키는 소년을 내보낸 후 개별적으로 보살피고 길을 인도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포기해도 좋은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식별 기준은 필요해 보입니다. 내가 구원을 위해 그를 붙잡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용기가 없거나 내 실패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그를 붙잡고 있는가.

오직 하느님 나라를 위한 선택. 이 선택이 늘 아름답거나 고상하진 않다는 걸 복음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복음선포 #복음의사도 #하느님나라 #하늘나라를위한선택

9/23 토,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사제 기념일  종종 청년들은 복음에 대해 질문합니다. 복음에 대한 대화를 통해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거나 그들 삶에 말씀이 주는 도전과 그로 인한 고민을 해소하며 기뻐하는 청년들의 ...
04/10/2023

9/23 토,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사제 기념일

종종 청년들은 복음에 대해 질문합니다. 복음에 대한 대화를 통해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거나 그들 삶에 말씀이 주는 도전과 그로 인한 고민을 해소하며 기뻐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통해 저도 적지 않은 보람을 느낍니다. 물론 항상 명쾌하게 상황이 마무리되는 건 아닙니다. 찾아보고 답을 주는 때도 많고, 때로 “아마 이런 의미가 아닐까?”라고 얼버무리기도 합니다. 분명한 건 그들의 호기심 덕에 저도 자극받고 공부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다가오는 청년들이 기쁘기만 한 건 아닙니다. 성경에 대해 알고 또 답을 줄 수 있다고 한들 해소되지 않는 불안 때문입니다. 그렇게 동반하다가 그들이 복음적 삶에 대한 제 초라한 실상을 알아챌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더구나 저에 대한 실망이 교회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굳어지다 보면 결국 그들과 나 사이에 더 안전한 선을 그으려 할 것입니다. 물론 선이란 건 개인과 개인 사이에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서 다룬 이유로 만들게 된 선이라면 지키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당신 가까이 부르시어 복음의 깊은 뜻을 일깨워주신 것처럼, 저희에게 다가오는 젊은이들이 살아있는 복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젊은이들의 삶을 거룩함으로 이끄는 것은 성경에 대한 지식과 깨우침보다는 말씀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범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모범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주님을 향한 우리의 방향성이 틀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발걸음을 추적하던 젊은이들이 우리 때문에 길을 잃거나 하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살레시안 형제들이 말씀 앞에 부끄러운 자가 아닌 말씀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자가 되도록 도와주십사고 미사를 통해 기도하도록 합시다. #성경 #복음 #복음적삶 #모범

9/20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환생”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내 모든 게 다 달라졌어요. 그대 만난 후로 난 새사람이 ...
22/09/2023

9/20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환생”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내 모든 게 다 달라졌어요. 그대 만난 후로 난 새사람이 됐어요. … 아침 일찍 깨어나 그대가 권해줬던 음악 틀죠. … 할 때도 안된 샤워를 하며 그 멜로딜 따라 해요. 늘 힘들었던 나의 아침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나요. 오 놀라워라, 그대 향한 내 마음. 오 새로워라, 처음 보는 내 모습.” 노래가 많이 사랑받았던 건 아마도 가사가 주는 공감 때문일 겁니다. 사실 저도 돌아보면, 가장 자발적이고 또 열심이었던 때는 지금보다 더 젊었고, 제가 사랑에 빠졌던 시기였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목숨을 바친 신앙의 선배들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합니다. 이들은 신앙을 목숨과 같이 여겼고, 회유나 협박 또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그 신앙을 증거했습니다. 분명 그들은 ‘배교’라는 단어 한 마디면 바로 풀려날 수 있었고, 김대건 신부나 정하상 바오로 같은 거물급 천주쟁이들에게는 그 댓가로 후한 상과 벼슬이 내려졌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거리를 떠돌며 구걸하던 김대건 신부님의 어머니나 옥중에 갇혀 있던 정하상 성인의 가족들도 구명할 수 있었을 테죠. 그러나 조선의 순교자들은 서로 독려하고 신앙을 지켜줄 뿐, 사사로움에 사로잡혀 신앙을 등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들이 보여준 증거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 예수님께 대한 열망, 성모님께 대한 의탁의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입니다. 나아가 그들의 그런 마음은 그들 자신에게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어주신 사랑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죽는 순간에도 기쁨에 차 하느님께 찬미를 드린 모습이 그 증거입니다. 충절과 효를 귀하게 여긴 우리 조상들의 마음은 이들 순교자들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충실과 예수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변모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순교자들은 무모하지만 아름답고 잔혹하지만 거룩한 순교의 월계관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앙을 증거한 그들에게서 젊은이들의 열정을 봅니다. 오늘날 우리 곁에서 우리를 탄복게 하고, 우리 심장에 불을 지피는 우리 젊은이들, 훗날 그들이 경험이 쌓이고 성숙해가더라도, 지금의 거룩한 열망만은 한결같을 수 있도록 잘 동반할 일입니다. 무엇보다 젊은이를 동반하는 우리가 그들에게 나쁜 표양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세상처럼 즐기고 생각하고, 선택하며 판단하는 습관을 우리부터 내려놓아야겠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열정과 순결함을 회복하여 사랑하며 증거할 수 있도록, 매일 회개하고 갱신하는 신앙을 살아갑시다.

#김대건안드레아 #김대건 #정하상바오로 #순교자 #거룩한열망

9/16토, 루카 6,43-49  낙숫물도 쌓이면 댓돌에 구멍을 뚫는다고, 10년 전, 서품 당시에 비하면 한결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뭐 대단한 걸 이룬 것은 아닙니다. 다만, 힘 빼는 법을, 즉 내가 아닌 예...
22/09/2023

9/16토, 루카 6,43-49

낙숫물도 쌓이면 댓돌에 구멍을 뚫는다고, 10년 전, 서품 당시에 비하면 한결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뭐 대단한 걸 이룬 것은 아닙니다. 다만, 힘 빼는 법을, 즉 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법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문해봅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영적 지도 신부님께서 부제인 저를 위해 해주신 한마디를 떠올려 봅니다. 그 신부님은 ‘좋은 사제로 살 수 있을까.’라는 자격지심으로 고민하던 저를 위해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제님은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세요. 그런 마음이면 사람들을 회개로 이끄는 좋은 사제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무너져 버렸다.” 제가 요즘 느끼는 모종의 안정감, 이는 분명 감사드려야 할 대목이지만, 그런 안정감에 안주하거나 안심한다면 믿고 있던 그 지점이 저의 약한 기반이 되고 허물어진 토대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오히려 확실하다고 할 만한 저의 토대는 제가 나약했고 지금도 나약한 자라는 사실, 즉 초래한 인간 실존 자체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 늘 회개하며 돌아와야 할 존재라는 사실보다 더 확실하고, 더 흔들리지 않는 토대는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 내가 누구인지 곰곰이 묵상하고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달라며 주님께 먼저 청해야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교만이라는 이름의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반석위의집 #죄인 #부족함 #교만

“가족이 되어줄 때”9/15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돈 보스코 성인의 유명한 일화 가운데 하나는, 그가 자신의 어머니가 죽자 성모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제 성모님께서 나와 저의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주십시오....
15/09/2023

“가족이 되어줄 때”

9/15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

돈 보스코 성인의 유명한 일화 가운데 하나는, 그가 자신의 어머니가 죽자 성모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제 성모님께서 나와 저의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주십시오.’라고 기도드렸던 일입니다. 돈 보스코는 자신의 오라토리오에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여 아이들이 지내게 했습니다. 아이들의 수가 늘어나자 고향에서 조용히 노후를 보내고 있는 자기 어머니, 마르게리타에게 가서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합니다. 마르게리타는 결국 아들과 함께 도시에 있는 오라토리오로 가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그녀를 맘마 마르게리타라고 불렀습니다. 맘마는 이탈리아어로, ‘엄마‘라는 뜻입니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오라토리오의 아이들을 위한 엄마로 살았습니다.

성모님께 부탁드렸기 때문인지, 맘마 마르게리타가 죽은 후에도 아이들은 부모 없는 아이들답지 않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중에는 살레시오회원이 된 이들뿐 아니라 자립에 성공해 훌륭한 가정을 이루고 남을 돕는 사람이 많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없다고 할지라도 좋은 어른과 건강한 공동체가 있다면 아이들은 잘 자라서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와 젊은이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들의 친구가 되고 선생님과 부모가 될 어른이 곁에 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왔음을 아시고 마리아께서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사랑받는 제자 요한에게 마리아를 맡기십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에게는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요한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이런 맡김은 어머니에게도 위로가 되었겠지만, 요한에게도 삶의 구심점이 마련되는 큰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아이를 낳지 않고, 더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걱정들이 많습니다. 당장 저도 자신의 노후와 제가 교류하며 지내는 많은 이들의 노후가 어찌 될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는 사회가 아프고 어려운 결과 그리된 것이기에 젊은이들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어떤 기적보다도 사람을 통해 사람을 도우시는 분입니다. 어쩌면 사람이야말로 사람에게 기적이고 은총입니다. 여러 뉴스로 어지럽고 우려되는 미래가 혼란케 해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지어내셨기에 우리는 서로를 지켜낼 힘이 있고, 서로 지지할 능력이 있습니다. 서로가 가족이 되어 줄 때, 우리는 살아갈 또 다른 이유를 얻게 됩니다.

사진: 왕요셉 신부와 생전의 노숭피 신부

#고통의성모마리아 #마리아의고통 #마리아 #가족

“이 십자가는 우리의 것”9/14 성 십자가 현양 축일저도 십여 년 전 마드리드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지만 세계청년대회(WYD) 한국 개최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한국 교회나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의 제반...
13/09/2023

“이 십자가는 우리의 것”

9/14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저도 십여 년 전 마드리드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지만 세계청년대회(WYD) 한국 개최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한국 교회나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의 제반 여건상 현실적으로 이것이 가능하겠는가.’라는 회의적 입장에서 그러했습니다. 물론 저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죠. 그러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이제는 가부可否의 차원이 아니라 어떻게 가능케 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4년의 여정을 준비할 것인가 하는 국면으로 바뀐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남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누가 할 것인가?’, ‘니가 할 거냐? 내가 할 거냐?’ 이런 질문입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 내가 하는 거다.’, ‘우리가 하는 거다.’라고요.

작년부터 지금까지 미디어 일을 하며 보고 느낀 관구와 세계살레시오회 및 교회의 흐름을 반추해보면서 또, 오는 시월에 마무리하는 시노드의 3년 여정에 대해서 찾아보고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교회와 살레시오회와 살레시오 가족은 지금 매우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구나. 특히 한국 관구와 한국 교회가, 그리고 나 자신이 지금 ‘지나고 나면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음을 깨닫게 될 몇 년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 드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WYD는 어떤 식으로든 이런 중요한 여정을 준비하고 종합하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WYD가 확정된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살레시안들에게는 사람의 아들과 함께, 사람의 아들처럼 현양 되어야 하는 과제가 던져진 듯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맙시다. 십자가를 들어 높이는 어느 순간에 이르더라도 우리 자신들은 구리뱀이나 사람의 아들 역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현양되신 어린양인 그리스도를 들어 올리는 십자나무요 그분의 성체聖體를 모신 성광聖光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를 잊지 않고 나아간다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마련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뭘 하고 계셨을까?20230913 수 - 강론이탈리아인 살레시오 선교사 원선호 신부님, 원 신부님은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전쟁으로 고통받는 한국에 다시 자원했고, 한국이 살만해지자 1980년대 초 정든 ...
12/09/2023

그때 예수님은 뭘 하고 계셨을까?

20230913 수 - 강론

이탈리아인 살레시오 선교사 원선호 신부님, 원 신부님은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전쟁으로 고통받는 한국에 다시 자원했고, 한국이 살만해지자 1980년대 초 정든 한국을 뒤로하고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떠난 후에도 원 신부님은 몇 번인가 한국을 찾아오셨습니다. 10년 전쯤 한국에 방문한 원 신부님을 뵌 것이 처음이었지만, 저는 그 전에 이미 내적 친밀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저희 살레시오회 선배 회원들의 얘기뿐 아니라 동문인 아버지께 입회 전부터 신부님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신부님이 한국을 다시 찾은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 100개를 짓기 위해 도움을 청하러 여든 넘은 몸으로 한국에 방문한 것입니다. 지금은 나이 백 세를 바라보고 계시고, 바깥 활동이 힘들어 수도원에서 남은 봉헌의 삶을 기도로 한 땀 한 땀 채우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10년 전 신부님께서 가물가물해져 가는 한국말을 더듬어 강론대에서 토해낸 한 마디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복음보다 먼저 빵을 줘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진복팔단에 대한 구절입니다. 행복에 대한 이 첫 마디로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가 시작됩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복음은 이렇게 운을 떼는 예수님께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계셨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을 시작했다고 복음은 기록합니다.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본다고 했는데, 뭘 하시다가 눈을 들어야 했을까요? 바로 예수님은 당신께 몰려드는 군중의 질병을 고쳐주고 계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라고 선언하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속 편한 사람이 하는 공허한 한마디가 아니었습니다. 친히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시는 가운데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가난한 눈물을 닦아주고, 병든 이를 돌보며, 상처받은 이를 싸매주는 순간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진정 세상에서 그 나라가 오시는 것을 보고 싶다면, 우리에게 복음을 말씀하시는 분의 손이 어디에 있고 그 발이 누구를 향하는지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진복팔단 #산상수훈 #하느님나라 #연중23주간수요일 #참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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