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1/2024
크리스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단어는 '믿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모든 인간이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는 구원의 유일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정작 크리스찬들은 이 '믿음'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일까? 혹시 저마다 다른 의미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믿음'을 추구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너무나 심각하고 두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잘못 이해하고 해석하여 적용하고 추구하는 '믿음'이 하나님의 본래적인 의미와 다르다면 나의 '구원'은 더 이상 안전한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는 교인들에게 자주 묻는다.
"믿습니까?" 라고...
그러면 성도들은 한 목소리로 높여 답한다.
"아멘"
현대 교회의 예배의 설교나 집회 가운데 너무나 자주 대면하는 장면이며, 익숙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대답하고,내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답하였으니 이제 '구원'은 당연히 나의 결과가 된 것인가?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게 답하고 스스로 확신한 '믿음'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명하신 '믿음'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믿음' 영어로는 'Faith'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는 '에무나'이다. 이는 '아만'이란 동사를 어원으로 한 여성형 명사이다. 뜻은 어원인 '아만'이 '세우다', '지탱하다', '양육하다' '신실하게 하다' '영구하다'의 뜻을 가지고, '에무나'는 '확고함' '신실성' '꾸준성' '진실' 등의 의미이다. 구약 성경에 '에무나'는 총 49회 등장하지만, 개혁한글 성경이 '맏음'이란 말로 번역한 것은 하박국 2장 4절에서 단 한번 뿐이다.
이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믿음'이란 단어의 의미와 '에무나'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실제로 이를 통한 한국 교회가 가지는 '믿음'에 대한 이해가 왜곡된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다시 설명하지만 '아만'이라는 동사형 어원에서 명사형으로 변형된 '에무나'는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분명한 역할이다. 즉 완성된 모습이나 결과가 아니라, 이루어 가는 모든 과정과 그로 인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히브리어 '에무나'가 전하는 '믿음'은 한번에 이루어져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노력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그래서 더욱 확고하고 변함이 없이 한결같은 신뢰성을 지닌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습니까?"에 대한 대답은 "아멘"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말에 합당한 삶의 열매여야만 하는 것이다. 믿는다면, 그 삶이 믿는 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상황에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는 확고하도 신실한 것으로 드러나져야 하는 것이다.
하박국 2장 4절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는 말씀가운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결국 '믿음을 이루는 삶'을 말하며, 믿음이 드러나고 증거 되는 '증인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믿고, 그의 말과 가르침을 믿고, 그의 정신과 비번을 믿고, 그의 언약을 믿어 그의 명령과 권면을 따라 순종하여 사는 살을 살아내는 것으로 드러나고 증거 되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현대교회가 말하는 값싸고 손쉬운 믿는다는 고백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초자연적으로 주를 부인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로 인해 나와 내 가족이 고통을 당하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인하지 못하고, 나의 삶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의 언약을 증명하는 것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며, 이 '믿음'이 있어야 주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 받아 주의 밷성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여 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그리고 그에 합당한 삶의 모습과 그로 인한 열매가 풍성히 예비되어 있습니까?"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결코 어제의 은혜와 체험이 오늘의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내가 어떤 직분과 몇대째 신앙인 가문에 속하여 있다는 것으로도 불가능하다.
귀 있는 자들은 들을찌어다.
- Brother Patrick Jun / The Church - 더처치 / KHIND 코리아중공업개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