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교회 말씀

청파교회 말씀 기독교대한감리회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 말씀입니다.

[경향신문-사유와 성찰] 가르치는 사람, 가리키는 사람- 김기석 목사
25/05/2026

[경향신문-사유와 성찰] 가르치는 사람, 가리키는 사람
- 김기석 목사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나이 든 이들이 은사를 모시고 이 노래를 부를 때, 그 공간은 돌연 따뜻해진다. 추억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신산스러운 삶의 굴곡을 통과해온 이들이지만 이 시간만...

성령을 받으라 (2026/05/24, 성령강림절 예배) by 김재흥 목사님요 20:19~23[음성] https://www.youtube.com/live/C_gcljgEvO8?si=kDgdOLMspGSqU5Uj[그 날...
24/05/2026

성령을 받으라 (2026/05/24, 성령강림절 예배) by 김재흥 목사님
요 20:19~23

[음성] https://www.youtube.com/live/C_gcljgEvO8?si=kDgdOLMspGSqU5Uj

[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1. 정신의 계승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 만에, 그리고 승천하신 후 10일 만에 제자들 위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음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신 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던 제자들이 성령강림 이후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감으로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곧 성령강림일은 모든 교회의 생일인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을 맞아 성령강림의 본 의미를 생각해봄으로 교회를 더욱 교회답게 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스승의 날이 얼마 전에 지났는데요, 스승과 제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입니다. 부모님이 우리의 육신을 낳아주신 분이라면 스승은 우리의 정신을 낳아주신 분이십니다. 스승은 스승의 스승으로부터 정신을 이어받아 그 정신을 제자에게 물려주고, 그 제자는 또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 그 정신을 물려줍니다. 이런 정신의 계승은 동서고금 모든 인간 사회 속에서 이어져왔고 앞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공자에게는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는 10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공자가 가장 사랑하던 제자는 안회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회가 요절하고 맙니다. 공자는 만년에 증자라는 제자를 얻었습니다. 증자는 스승의 뜻을 잘 이어받아 편찬에 큰 역할을 하였고 을 저술하게 되었습니다. 달마대사에게는 네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임종의 순간 달마는 네 명의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나의 피부를 얻었고, 너는 나의 살을 얻었고, 너는 나의 뼈를 얻었고,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달마의 골수를 얻은 제자 혜가가 달마의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이 됩니다. 신기합니다. 스승의 정신이 제자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그 정신을 가지고 살던 스승은 사라지지만 그 정신은 제자에게로 이어지고, 그리고 또 다른 제자에게로 이어집니다.

2. 요한복음의 성령강림
우리는 성령강림하면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을 먼저 떠올립니다.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 위에 성령이 불과 바람으로 임하던 장면을. 그런데 요한복음의 성령강림은 좀 다릅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나타나셔서 직접 그들에게 성령을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신 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신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하던 제자들에게 당신이 하시던 일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고 세상으로 파송을 받은 제자들은 이후 어떻게 살아갔습니까? 또 한 명의 예수가 되어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갔습니까? 그 뒤의 기록인 요한복음 21장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은 다시 디베랴 바닷가로 돌아갔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답게 또 한 명의 예수가 되어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가기는커녕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되어 고기잡이 생활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제자들이 많은 고기를 잡게 해 주심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를 기억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답했고, 그렇게 답을 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내 양 떼를 먹이라.” 부탁하셨습니다. 이 묘하게 긴장감이 흐르는 문답과 부탁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의미가 그 안에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그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3. 성령을 받으라
달마대사는 자신의 정신을 이어받은 제자 혜가에게 자신이 사용하던 밥그릇과 자신이 입던 옷을 물려주었습니다. 밥그릇과 옷을 물려주는 것은 불가에서 정신의 계승을 상징합니다. 밥그릇은 공급, 곧 인풋을 상징합니다. 자신이 삶의 양분으로 삼았던 정신을 제자 또한 양분으로 삼고 살라는 뜻입니다. 옷은 발현, 곧 아웃풋을 상징합니다. 자신이 세상에 드러내었던 정신을 제자 또한 세상에 드러내며 살라는 뜻입니다. 스승으로부터 밥그릇과 옷을 전수받은 제자는 스승이 되어 살아갑니다. 아니 스승이 물려준 정신이 되어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양분으로 삼고 사셨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무엇을 이 세상에 드러내며 사셨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가장 큰 두 계명에 드러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39절에 나온 말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의 삶의 공급원, 양분, 인풋은 ‘하나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힘은 ‘하나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득 채운 ‘하나님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발현되었습니까? 그것은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씩이나 물으시고 답을 들으시고 양떼를 먹이라고 부탁하신 이유는 제일 중요한 것, 당신의 정신을 물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힘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에 베드로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신 것입니다. 이후 베드로뿐 아니라 성령강림의 체험을 한 제자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정신을 이어간다는 것이며,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힘을 양분 삼아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이 역사하시는 범위는 정신보다 훨씬 큽니다. 그러나 성령은 정신 그 이상의 것이지 정신 이하의 것은 아닙니다. 성령을 받았다며 예수 정신에서 어긋난 일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참 단순합니다. 구약의 수많은 계명에 비하면 너무 빈약해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키려 하면 금방 알게 됩니다. 지키기 쉽지 않다는 것을.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습성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사랑’보다는 ‘자기 사랑’을 양분으로 삼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나, 내 욕망, 내 계획, 내 취향, 내 성취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삶의 동력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는 ‘이웃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자기 사랑’에만 매몰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자기 사랑’은 건강한 자기 돌봄이나 자기 존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기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기 사랑’을 추구하는 이에게는 스승의 가르침이나 정신의 계승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자기의 동물적 본능을 따르면 됩니다.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자기 사랑’만을 추구할 때 이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상이 그런 세상이지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골수를 이어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릇된 자기 사랑을 양분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 사랑을 양분으로 삼고, 그 힘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위에도 그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님이 가신 사랑의 길을 이어가는 청파의 교우들과 믿음의 백성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성령을 받으라 (2026/05/24, 성령강림절 예배)by 김재흥 목사님예배 실시간 방송 (다시 보기)[요 20:19~23][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
24/05/2026

성령을 받으라 (2026/05/24, 성령강림절 예배)
by 김재흥 목사님
예배 실시간 방송 (다시 보기)

[요 20:19~23]
[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성령강림절 예배 (2026년 5월 24일)말씀: 성령을 받으라본문: 요 20:19~23설교자: 김재흥 목사-----* 기독교 대한감리회 청파교회 주일 예배 실시간 방송입니다.* 예배 시간 중에는 예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실시간 채팅창을 닫습니다. ...

[수요저녁집회] 조너선 색스,  11강11. 최초의 심리치료사    (Vayigash 그리고 그가 다가갔다)   [창 44:18~47:27]
20/05/2026

[수요저녁집회] 조너선 색스, 11강
11. 최초의 심리치료사
(Vayigash 그리고 그가 다가갔다)
[창 44:18~47:27]

#청파교회 #김재흥목사11강. 바이가쉬 (그가 가까이 가다)청파교회 수요저녁집회입니다. 조너선 색스의 "오경의 평화 강론"을 함께 공부합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해야 (2026/05/17, 부활절 제7주, 승천주일 예배) by 김재흥 목사님출 1:15~22[음성] http://www.chungpa.or.kr/pastorate/preach/preach...
17/05/2026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해야 (2026/05/17, 부활절 제7주, 승천주일 예배) by 김재흥 목사님
출 1:15~22

[음성] http://www.chungpa.or.kr/pastorate/preach/preach_files/s20260517.mp3

[한편 이집트 왕은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이 아이 낳는 것을 도와줄 때에, 잘 살펴서, 낳은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다. 이집트 왕이 산파들을 불러들여, 그들을 꾸짖었다. "어찌하여 일을 이렇게 하였느냐? 어찌하여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느냐?" 산파들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히브리 여인들은 이집트 여인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운이 좋아서,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불어났고, 매우 강해졌다. 하나님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집안을 번성하게 하셨다. 마침내 바로는 모든 백성에게 명령을 내렸다.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고, 여자 아이들만 살려 두어라."]

1. 두려운 게 없는 사람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기온이 올라가며 점점 더워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 남산에 올라가서 풍경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푸른 하늘 아래로 초록색과 연두색이 섞여 있는 봄산의 풍경이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 많습니다. 남성의 폭력에 의해 여성이 목숨을 잃는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지난 5일 새벽, 다른 여성에게 교제를 거절당한 남성이 분풀이로 길을 가던 여고생을 살해했습니다. 어떻게 분풀이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까? 그것도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을. 당연한 말이지만 그에게는 다른 이의 생명을 앗아갈 권리가 없었고, 그 여고생의 생명은 그렇게 비참하게 사라져서는 안 되는 생명이었습니다. 희생자의 영혼과 유족들을 하나님이 깊이 위로해 주시길 빕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두 번 다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강의」라는 책에서 사람은 무례한 사람,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p.89) 사람들은 보통 ‘두려움’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두려움을 인간의 인간됨을 억누르는 부정적 감정 중에 하나로 여겨 떨쳐내려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맞는 말이지요. 인간은 부정적인 두려움을 떨쳐내야 좀더 자유롭고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두려움이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 중에는 우리로 하여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게 해줌으로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긍정적 두려움도 있는 것입니다.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을 보십시오. “너의 아우가 어디에 있느냐?”는 하나님의 물으심에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답했던 가인의 자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마치 아랫사람에게 말하듯 하나님께 답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인간으로서 결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쉽게 넘은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말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두려워할 줄 알았던 사람, 십브라와 부아
출애굽기는 요셉 이후에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히브리 백성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이집트의 왕 바로는 히브리 백성이 이집트의 백성보다 많고 힘이 강한 것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혹 전쟁이 날 때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의 적국과 합세해 자기들을 공격하고 도망갈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바로는 히브리인들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가 생각해낸 히브리인 탄압 방법은 강제 노역이었습니다. 곡식을 저장하는 신도시인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일에 히브리인을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사람들은 억압받을수록 더 많은 자손을 낳았습니다. 바로가 생각해낸 두 번째 탄압 방법은 히브리인의 산아제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전에 우리나라처럼 ‘둘만 낳아 잘 키우자’나 중국처럼 ‘한 자녀 정책’과 같은 산아제한이 아니라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그 자리에서 죽이는 산아학살이었습니다. 바로는 히브리인의 출산을 담당하던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 명령했습니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이 아이 낳을 때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끔찍한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으로부터 히브리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십브라와 부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이 문장에는 비교급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으므로’. 바로의 명령은 누가 보아도 부당했습니다. 아무리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의 노예라고 해도 산파에게 아기를 죽이라는 명령은 내려져서는 안 되는 명령이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아무 죄가 없는 어린 생명을 죽일 수가 있습니까? 이는 어린 생명을 귀히 여기는 인간의 본능에도 맞지 않고,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맞지 않고, 생명을 받아내는 십브라와 부아의 직업윤리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은 지엄한 것이라 그것을 어기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바로가 명령을 내린 이후, 한 히브리 산모가 출산을 하게 되어 그 자리에 산파로 가게 되었던 십브라와 부아는 사내아이가 태어났을 때 심장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뛰었을 것입니다. ‘이 아이를 죽이면 나는 살고 이 아이를 살리면 나는 죽는다.’ 그 고민의 순간 그들은 아이를 살리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산다’는 것은 그렇게 드러납니다. 나의 생명이 위협을 받는 순간에도 옳음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바로는 산파들을 불러들여 “어찌하여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느냐?” 꾸짖으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산파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히브리 여인들은 이집트 여인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운이 좋아서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 자기들이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일부러 살려준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도착하기 전에 아이들이 태어났기에 자기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왕 앞의 자리였습니다. 왕이 ‘실제로 그러했는지 조사해보라’고 말했다면, 그래서 실사가 이루어졌다면 산파들의 목숨은 죽은 목숨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십브라와 부아의 답변은 죽기를 각오하고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살려주었을 때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한 답변이었을 것입니다. 천만다행으로 왕은 더 이상 산파들을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면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집안을 번성하게 해 주셨습니다. 은혜로운 결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권력이 내리는 부당한 명령에 불복종하고 저항했던 이들 중 많은 이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그 후손들이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았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분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잊히거나 폭도로 왜곡되었는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3.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해야
내일이면 광주 5.18 민주화운동 4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5.18 당시 전라남도지방경찰청장은 안병하 청장이었습니다. 그는 강원도 출신이었습니다. 상부에서 그에게 시위대를 무장 진압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안 청장은 광주 시내 금남로를 가득 매운 군중을 보면서 옆에 있던 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겁이 난다. 전쟁이 난 거면 싸우면 되는데 그런 게 아니니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겁이 난다’는 안 청장의 말 속에서 우리는 십브라와 부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상부에서는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무장 진압하라고 계속 압박했습니다. 그때 안 청장은 “나는 그럴 수 없다.”며 전라남도의 모든 경찰에게 다음과 같은 지침을 내렸습니다. “일반 시민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라. 시민들에게 반말이나 욕설을 하지 말라. 주도자 외에는 연행하지 말라. 경찰봉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 모든 총기 사용을 금한다.” 안병하 청장은 권력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 것입니다. 안병하 청장은 불의한 권력자의 법이 아니라 생명의 하나님의 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 경찰의 대처와는 다르게 군부는 공수부대를 앞세워 광주를 잔인하게 진압했습니다. 군부는 안병하 청장을 끌고 가 고문했습니다. 그리고 안 청장을 따라 군부에 복종하지 않은 경찰 간부 21명을 직무유기죄로 직위해제했고 고문했습니다. 그중 여러 분이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안병하 청장도 고문 후유증으로 8년 동안 고생하다가 6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안병하 청장과 그의 부하들은 그 시대의 바로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의로운 선택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군부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해서 광주 시민들에게 총을 쏘았다면 훨씬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들의 명예는 회복되지 못했고 유족들은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아픔과 더불어 생활고와 불명예를 견디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이 되어서야 국가에 의해 안병하 청장과 함께 군부에 맞서 시민을 보호했던 경찰관 21명에 대한 부당한 징계가 취소되었습니다. 40년 만에 명예가 회복된 것입니다.

지난 4월 중순, 이스라엘 군인이 레바논을 공격할 당시 그곳에 있던 예수님의 십자가상을 거꾸러뜨리고 예수님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찍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5월 초에는 이스라엘 군인이 성모 마리아상 입에 담배를 물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이 수만 명의 가자지구 사람들과 수천 명의 레바논 사람들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것은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두려워하고 겁을 냅니다. 자신의 언행이 하나님이 정하신 선을 넘는 것은 아닌지, 혹시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고 겁을 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 십브라와 부아처럼, 안병하처럼,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공동체와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쓰는 사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그런 사람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청파교우들과 이 시대 믿음의 백성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해야 (2026/05/17, 부활절 제7주, 승천주일 예배)by 김재흥 목사님예배 실시간 방송 (다시 보기)[출 1:15~22][한편 이집트 왕은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이...
17/05/2026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해야 (2026/05/17, 부활절 제7주, 승천주일 예배)
by 김재흥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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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15~22]
[한편 이집트 왕은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이 아이 낳는 것을 도와줄 때에, 잘 살펴서, 낳은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다. 이집트 왕이 산파들을 불러들여, 그들을 꾸짖었다. "어찌하여 일을 이렇게 하였느냐? 어찌하여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느냐?" 산파들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히브리 여인들은 이집트 여인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운이 좋아서,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불어났고, 매우 강해졌다. 하나님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집안을 번성하게 하셨다. 마침내 바로는 모든 백성에게 명령을 내렸다.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고, 여자 아이들만 살려 두어라."]

부활절 제7주 예배 (2026년 5월 17일)말씀: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해야본문: 출 1:15~22설교자: 김재흥 목사-----* 기독교 대한감리회 청파교회 주일 예배 실시간 방송입니다.* 예배 시간 중에는 예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실시간 채...

[수요저녁집회] 조너선 색스,  10강10. 유대인과 경제학    (Miketz 끝에)   [창 41:1~44:17]
13/05/2026

[수요저녁집회] 조너선 색스, 10강
10. 유대인과 경제학
(Miketz 끝에)
[창 41:1~44:17]

#청파교회 #김재흥목사10강. 미케츠 (끝에)청파교회 수요저녁집회입니다. 조너선 색스의 "오경의 평화 강론"을 함께 공부합니다.

기꺼이 먹이려는 사람 (2026/05/10, 부활절 제6주 예배) by 김재흥 목사님마 26:26~28[음성] http://www.chungpa.or.kr/pastorate/preach/preach_files/s20...
10/05/2026

기꺼이 먹이려는 사람 (2026/05/10, 부활절 제6주 예배) by 김재흥 목사님
마 26:26~28

[음성] http://www.chungpa.or.kr/pastorate/preach/preach_files/s20260510.mp3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모두 돌려가며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1. 어버이 주일과 스승의 날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며 이번 주중에는 스승의 날이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와 스승에 대한 말씀을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어버이에 대한 노래와 스승에 대한 시 한 편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진호 가수가 부른 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에 /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우리 엄마 /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 피우길

이번에는 박노해 시인의 이라는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세상 직분 중에 으뜸은 사람 농사다 / 사람은 제자를 잘 길러야 하는 법
훌륭한 제자란 선생을 잡아먹는 자 / 훌륭한 선생은 추격하는 제자에 앞서 도망가는 자
생을 두고 끝까지 정진하며 / 나이 들수록 간소하고 단순하게
버리고 비우고 작아지고 날렵해져 / 제자에게 잡아먹히기 전
저 아득한 우주의 아가리로 몸 던져 / 꽃씨처럼 표표히 사라지는 자

어버이와 스승의 공통점은 먹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박노해 시인은 스승은 제자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아득한 우주로 사라지는 자라고 했지만, 잡아 먹혀야, 제자에게 자신을 먹으라고 주어야 진짜 스승입니다. 어버이와 스승의 위대함은 거기에 있습니다. 생명은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삽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생명은 다른 생명을 먹여야 생명다운 생명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생명의 본령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생명을 먹을 생각만 하지 좀처럼 먹일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못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본령에서 어긋나서 살기에 잘못 사는 것입니다. 갈등, 다툼, 시기, 사기, 분쟁, 전쟁 등 인간사 대부분의 문제는 거기서 발생합니다. 오직 남을 먹으려 할 뿐 남을 먹이려 하지 않음에서.

2. 성만찬에 담긴 뜻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집집마다 양을 잡고 그 양고기를 먹으며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출애굽 때 유대인들은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유월절 식탁에 어린양이 놓여 있었다는 말은 없지만, 당연히 그 식탁 위에도 어린양 고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한참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그 이후에는 포도주가 든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어린양으로 제자들에게 내어주신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살과 피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듯이 당신의 살과 피가 제자들과 이스라엘과 세상을 구원하길 바라시며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라는 말씀을 우리는 성찬식 때마다 듣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는 사이에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성찬 제정사’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성찬의 예전을 만들어 이 천 년 동안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정말 후대의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어서 성만찬 예식을 하라는 뜻에서만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라고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뜻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만 당신의 살과 피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늘 당신 자신을, 당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주셨던 것을. 예수님은 주린 자에게는 빵과 물고기를, 병든 자에게는 나음을, 죽은 자에게는 생명을, 소외된 자에게는 곁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는 당신의 목숨까지 주셨습니다. 성찬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찬식보다 중요한 것은 성찬식에 담긴 뜻입니다. 한 해 몇 차례 성찬예식에 참여한다고 해도, 아니 매주 성찬예식에 참여한다고 해도 성찬의 뜻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성찬식은 작은 전병을 먹고 적은 양의 포도주를 마시는 형식적 의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찬식에 담긴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우리의 살과 피를 주며, 다른 이를 먹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찬식에 담긴 뜻이며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을 바르게 기억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3. 기꺼이 먹이려는 사람
가나안의 신 중에는 몰렉이라는 신이 있었는데 인간이 자신의 자식을 불살라 바치면 복을 내려주는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극악한 방법으로 드리는 희생제사를 받고 복을 내려주는 신은 참된 신일 수 없습니다. 몰렉은 신에게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바치면 신 또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어야 한다는 인간의 계산과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지켜야 할 가장 귀한 가치까지 기꺼이 희생시키는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거짓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몰렉과 비슷한 발음의 단어로 멜렉이 있는데 멜렉은 이스라엘의 왕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최고의 권력자인 왕 멜렉은 몰렉이 되기 십상입니다. 겉으로는 국가와 민족과 백성을 위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 권력을 이용해 백성을 희생시켜 자기 배만 불리는 왕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왕들이 많이 있지요. 그런데 왕만 몰렉이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 다른 생명을 먹으려는 하나의 방향성만 가지고 살 뿐 다른 생명을 먹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또 하나의 방향성을 갖추지 못하고 사는 이는 모두 몰렉일 수 있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곳곳에서 몰렉이 늘어날 때 이 세상은 몰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황선미 작가가 쓴 이라는 동화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양계장 철망에 갇혀 알만 낳는 암탉 잎싹이 있었습니다. 잎싹은 알을 품어 병아리를 부화시키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잎싹은 알만 낳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모이도 물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내 바짝 말랐고 병든 닭들과 함께 양계장 밖으로 버려졌습니다. 그때 족제비가 나타나 잎싹을 잡아먹으려 덮쳤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나그네 청둥오리가 나타나 잎싹을 살려 주었습니다. 잎싹은 들판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들판에는 청둥오리와 수달 친구도 있었지만 잎싹의 생명을 노리는 족제비도 있었습니다. 나그네 청둥오리는 짝을 만나 알을 낳았지만 족제비가 그 짝을 잡아먹었습니다. 잎싹은 청둥오리의 알을 대신 품어주었습니다. 어느 날 밤 족제비는 나그네 청둥오리까지 잡아먹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잎싹이 품던 알이 부화했습니다. 잎싹은 새끼 청둥오리에게 초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엄마와 새끼로 함께 살았습니다. 초록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점점 어엿한 청둥오리가 되어 갔습니다. 어느 겨울날 잎싹은 작은 굴 앞을 지나가다가 어떤 동물의 새끼 울음소리를 듣고는 멈추었습니다. 족제비의 어린 새끼들이었습니다. 마침 족제비는 초록이를 잡아 동굴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잎싹과 족제비의 눈은 마주쳤고 둘 다 멈칫했습니다. 잎싹은 재빨리 족제비 새끼를 죽일 듯이 움켜쥐며 말했습니다. “네 아기를 지키려면 초록이를 더 이상 건드리지 마!” 족제비는 초록이를 놓아주었고, 잎싹은 족제비 새끼를 놓아주었습니다. 청둥오리들이 이동할 때가 되었습니다. 청둥오리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초록이도 엄마 잎싹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는 먼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잎싹은 초록이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았고, 족제비는 그 잎싹을 바라보았습니다. 잎싹은 도망가지 않고 족제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나를 잡아먹어. 그래서 네 아기들 배를 채워.”

생명의 원칙은 준엄하면서도 단순합니다.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삽니다. 그것이 생명의 본능적 원칙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신앙적 원칙은 다릅니다. 모두가 먹을 생각만 하며 살면 이 세상이 멸망하니 다른 생명을 먹을 뿐 아니라 다른 생명을 먹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생명의 신앙적 원칙입니다. 어버이와 스승이 우리 삶의 본이 되는 이유는 그분들이 생명의 신앙적 원칙을 삶으로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인류의 참된 어버이요 스승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신 그 ‘먹이는 길’이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어버이 주일과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를 위해 자신을 먹이로 내어준 어버이와 스승을 고맙게 기억합시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어버이와 스승이 우리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다른 이를 먹이며 살아갑시다. 그렇게 이곳저곳에서 기꺼이 자신을 다른 이에게 먹이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이 세상은 좀더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 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함께 이루어가는 청파교우들과 이 시대 믿음의 백성들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기꺼이 먹이려는 사람 (2026/05/10, 부활절 제6주 예배)by 김재흥 목사님예배 실시간 방송 (다시 보기)[마 26:26~28][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
10/05/2026

기꺼이 먹이려는 사람 (2026/05/10, 부활절 제6주 예배)
by 김재흥 목사님
예배 실시간 방송 (다시 보기)

[마 26:26~28]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모두 돌려가며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부활절 제6주 예배 (2026년 5월 10일)말씀: 기꺼이 먹이려는 사람본문: 마 26:26~28설교자: 김재흥 목사-----* 기독교 대한감리회 청파교회 주일 예배 실시간 방송입니다.* 예배 시간 중에는 예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실시간 채팅창을 .....

[CBSTV - 잘 믿고 잘 사는 법]잘잘법 Ep.270 김기석 목사자산과 근력만큼 ‘이것’도 모아가야 합니다-------------------------------------돈도 집도 아닌 언어가 삶을 풍성하게 할...
07/05/2026

[CBSTV - 잘 믿고 잘 사는 법]
잘잘법 Ep.270 김기석 목사
자산과 근력만큼 ‘이것’도 모아가야 합니다
-------------------------------------
돈도 집도 아닌 언어가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있을까요?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 비트겐슈타인

어휘가 풍성하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언어를 잃는 순간,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김기석 목사님을 통해 '삶의 해상도'를 높이는 어휘력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돈도 집도 아닌 언어가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있을까요?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 비트겐슈타인어휘가 풍성하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언어를 잃는 순간,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

[수요저녁집회] 조너선 색스,  9강9. 있을 법하지 않은 결말과 절망의 패배    (Vayeshev 그리고 그가 정착했다)   [창 37:1~40:23]
06/05/2026

[수요저녁집회] 조너선 색스, 9강
9. 있을 법하지 않은 결말과 절망의 패배
(Vayeshev 그리고 그가 정착했다)
[창 37:1~40:23]

#청파교회 #김재흥목사9강. 바예셰브 (야곱이 거주하다)청파교회 수요저녁집회입니다. 조너선 색스의 "오경의 평화 강론"을 함께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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