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교회

성실교회 성실교회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

2015년 춘계 및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가 진행 중입니다.3월 23일(월) ~ 4월 5일(주)* 교구별 특송은 다음주인 30일(월)부터 진행됩니다
22/03/2015

2015년 춘계 및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가 진행 중입니다.
3월 23일(월) ~ 4월 5일(주)

* 교구별 특송은 다음주인 30일(월)부터 진행됩니다

2015년 신년특별새벽기도회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교회"(행9:31)내일 5일(월)~10일(토)까지, 오전5:30 본당 사랑홀에서 진행됩니다.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다짐하며 올 한 해를 기도로 시작합시다! 하나님...
04/01/2015

2015년 신년특별새벽기도회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교회"(행9:31)

내일 5일(월)~10일(토)까지, 오전5:30 본당 사랑홀에서 진행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다짐하며 올 한 해를 기도로 시작합시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우리에게도, 교회에도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2015년 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 특송순서 - 장우회, 안수집사회, 권사회, 목자, 주일학교 교사, 청장년 및 청년교구 순으로 진행되오니, 각 담당은 오전 5:00까지 찬양대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주무시면 일어나실 수 있어요!)

2014년 산상말씀사경회가 준비중에 있습니다. 8월 4일(월)부터 6일(수)까지 진행되오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25/07/2014

2014년 산상말씀사경회가 준비중에 있습니다. 8월 4일(월)부터 6일(수)까지 진행되오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2014년 8월 4일부터 6일까지 2박 3일간 산상말씀사경회가 준비중에 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 참여하셔서 은혜를 경험하는 귀한 사경회 되기를 바랍니다.
17/07/2014

2014년 8월 4일부터 6일까지 2박 3일간 산상말씀사경회가 준비중에 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 참여하셔서 은혜를 경험하는 귀한 사경회 되기를 바랍니다.

12/07/2014

이번 여름, 여러분의 자녀와 손자, 손녀들을 주일학교 각 부서의 성경학교와 수련회에 보내주시고, 그 아이들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뉴욕에는 두 개의 큰 공항이 있다. 케네디 공항과 라과디아 공항이다. 케네디 공항은 미국 35대 대통령을 역임했던 J. F. 케네디를 기념해서 이름 붙여진 국제공항이다. 라과디아 공항은 1934년부터 1945년까지 ...
10/05/2014

뉴욕에는 두 개의 큰 공항이 있다. 케네디 공항과 라과디아 공항이다.

케네디 공항은 미국 35대 대통령을 역임했던 J. F. 케네디를 기념해서 이름 붙여진 국제공항이다. 라과디아 공항은 1934년부터 1945년까지 뉴욕 시장을 역임했던 피오렐로 라과디아라는 인물을 기념해서 이름을 붙인 공항이다.

라과디아 시장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시장이 되기 전에 그는 판사였다. 하루는 한 노인이 빵을 훔치다가 붙잡혀 그가 주재하는 재판정에 섰다. 그 노인은 정말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자백했다.

라과디아 판사는 잠깐 고심한 뒤 이렇게 판결을 내렸다. “당신이 행한 일은 10달러의 벌금을 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행위에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립니다.”

20세기 초반 10달러는 지금으로 하면 굉장히 큰돈이었다. 하지만 라과디아 판사는 원칙을 따라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 10달러는 제가 내겠습니다.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거리를 헤맬 때 저는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있었습니다. 그 벌금으로 10달러를 내겠습니다.”

그리고 라과디아 판사는 노인의 모자를 배심원들과 방청객들에게 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중에도 저와 같이 벌금을 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벌금을 내십시오.”

그러자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벌금을 냈고, 그날 그 노인은 47달러 50퍼센트를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내 믿음은 어떻게 세상에 전해지고 있는가? 내 믿음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가?’

믿음의 본질은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건네는가에서 드러난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말 한 마디가 긍휼이다.

또한 자신이 타인보다 더 섬기겠다는 열정에서 드러난다.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는 배려가 있을 수 없고, 참된 섬김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사와 재물을 더 나누며 살아가는 삶의 실천에서 드러난다.

예수님은 긍휼로 무장하시고 이 땅에 성육신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제자들을 사랑하고 섬기셨다. 성도는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긍휼로 이웃에게 나아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 말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마태복음 5장 7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 에베소서 2장 4,5절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 빌립보서 2장 3,4절

† 기도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의 성품을 묵상합니다. 병들고 약한 자들의 친구되신 주님, 주님의 그 발자취를 기억합니다. 저 또한 주님처럼 이웃에게 긍휼을 베푸는 주의 종 되길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주변 사람들에 대한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말 한마디를 오늘 내 이웃에게 전해보세요.

우리에게서 떠난 적이 없는 ‘왜?’라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가 꿈에서라도 알기 원하는 것이다. 사라예보 사태와 같은 전쟁들에 대해 우리는 인간의 악을 탓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해일 같은 자연재해에 대해서...
08/05/2014

우리에게서 떠난 적이 없는 ‘왜?’라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가 꿈에서라도 알기 원하는 것이다. 사라예보 사태와 같은 전쟁들에 대해 우리는 인간의 악을 탓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해일 같은 자연재해에 대해서는 어떤 인간을 탓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분류한다.

2004년 성탄절 다음 날, 아시아에서 또 다른 해일이 일어나 28만 명이 희생되었을 때 헤더 맥도날드는 “이제 신을 거부할 때가 되었다”라고 온라인 잡지에 기재를 했다.

하지만 동방정교회 신학자인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David Bentley Hart)가 용기를 내어 이런 회의론자들에게 응수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고통이 대규모로 일어난다고 해서 그 고통의 밑바닥에 잠재해 있는 문제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어차피 이 세상은 고난과 악과 죽음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고, 대규모 재난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고통을 집약적으로 발생시킬 뿐이다.”

내가 그동안 느낀 것은 양적(量的)인 관점에서 고통을 해석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2004년의 쓰나미가 2011년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샌디훅 초등학교에서보다 버지니아 공대에서 더 많은 학생이 희생되었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의 사건이 다른 쪽보다 더 비극적인 사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기독교 작가 C. S. 루이스가 말했듯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합해 놓은 것은 없다.

고통의 양적인 크기란 일부 철학자들이 만들어낸 추상적 개념일 뿐이다. 존재하는 것은 고통을 겪고 있는 개인들이고, 그들은 ‘하나님이 왜 고통을 허락하셨을까’ 하고 고민할 뿐이다.

대규모 재앙이 닥치면 회의론자들은 신앙을 관에 넣어 영원히 매장하려는 듯이 핏대를 올리며 “선한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저런 참사를 허락하셨는가”라고 소리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질문이고, 또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질문은 종교적 신앙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성립된다.

고난을 당할 이유가 거의 없었음에도 가장 큰 고난을 견뎌야 했던 욥을 보자.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그토록 원했던 욥이 그분을 만나게 되었을 때 고난의 문제에 대한 ‘왜’라는 질문에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큰 계획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다만 그분 자신을 드러내실 뿐이다.내가 볼 때 대부분의 성경 기록자들은 ‘왜 선한 사람들에게 악한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를 끌어안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앉아 있지 않았다.

그들이 볼 때 이 세상은 원수 사탄의 영토이다. 이 세상의 임금 사탄이 세상의 문제들을 손쉽게 해결해주겠다고 유혹했을 때 예수님은 그의 ‘권위 사칭(詐稱)’을 비웃지 않으셨다.

다만 그분은 손쉬운 해결책의 유혹을 거부하고 대신 더 느리고, 어렵지만 영원한 해결을 선택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멸하실 때가 올 거라고 믿는다. 그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선에서 악을, 생명에서 죽음을 뽑아내시고 우리의 몸과 영을 다시 살리실 것이다. 이것이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라는 선언과 함께 도래할 그분의 영원한 해결 방법이다.

† 말씀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 이사야 25장 8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요한계시록 21장 4절

† 기도
주님. 이 악한 세상이 주는 고통에 나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거친 파도처럼 요동치는 세상에서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며 주의 진리를 주의 마지막 때에 승리를 바라보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고통의 양에 집착하지 않고 당장에 마주한 고통에 정신을 쏟지 않고 마지막 날에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라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오늘도 주님을 붙잡고 나아 갈 것을 결단해 보세요!

마음은 사탄과 거룩한 성도가 벌이는 영적 격전지이다. 성도의 마음이 거룩한 영역이라는 경계를 정할 때 영적 전투에서 중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죄의 종, 사탄의 종으로 살아갈 수밖에 ...
06/05/2014

마음은 사탄과 거룩한 성도가 벌이는 영적 격전지이다. 성도의 마음이 거룩한 영역이라는 경계를 정할 때 영적 전투에서 중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죄의 종, 사탄의 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탄은 끊임없이 성도의 생각과 마음을 공격한다. 성도로 살겠다고 서약하고, 삶의 경계를 정했다고 해서 안주한다면 사탄은 그 빈틈을 타고 반드시 잠입하여 성도의 마음을 혼란케 할 것이다.

‘너한테 이런 문제가 있어!’ ‘너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성도가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흔들리기 시작하면 기도와 말씀에 집중할 수 없다. 사탄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도록 지연 전략을 사용한다. 이럴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기 위해서는 로마서 말씀을 기억하며 무기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매일 영적 제물로 드리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삶의 뿌리를 뒤흔드는 적이 바로 사탄임을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사탄은 우리가 성도로 살아가는 현재가 무가치하고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것처럼 속인다. 사탄은 우리 자신을 영적 제물로 드리려면 거창하거나 값지고 주목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속인다. 이때 성도는 마음이 흔들리고 넘어져버린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어떤 때는 강하게 공격하고, 어떤 때는 부드럽게 회유하기도 한다. 우리의 기분을 나쁘게도 하고, 감정적으로 우울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두렵게도 한다. 인간의 지정의 중에 가장 연약한 부분이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인간의 감정을 잘 이용한다. 성경이 마음을 주님께 드리라고 강조하는 것은 감정보다 의지가 앞서야 하며, 의지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가 거룩하도록 붙들고 계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다. 이 사실을 믿고 우리는 의지의 중심인 마음을 주님께 날마다 드려야 한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주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의 본질이다.

세상 속에서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들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다. 사랑이 그렇고, 성공의 자리나 보상도 그렇다. 하물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고통과 인내가 따를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고 계신다. 거룩한 삶을 사는 당신을 보고
헤매던 이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주님이 사용하신다.

† 말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 베드로전서 5장 8,9절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잠언 4장 23절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 에스겔 36장 26,27절

† 기도
주님, 무기력하고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나의 마음을 지켜주옵소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으로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거룩한 삶으로 결단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주님께 고정하고 매일 내 마음을 영적 제물로 드려지길 결단해보세요.

우리는 스스로 ‘사랑’이라는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만일 우리의 노력만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성경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라는 말씀 대신에 “인간은 사랑이라”라는 구절이 필요했을 것이다.“하...
03/05/2014

우리는 스스로 ‘사랑’이라는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만일 우리의 노력만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성경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라는 말씀 대신에 “인간은 사랑이라”라는 구절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이자 공급자이시라는 의미를 가르치고 있다.

즉,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사랑도 없다.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며 그분 자신이 사랑의 공급자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선사한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우리 학생들을 괴롭힌 학생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높은 문턱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무거운 내 심령을 번쩍 들어서 그 높은 문턱을 가볍게 넘겨주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충분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나’라는 존재를 채우기에 충분하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쏟아져서 나라는 존재를 휘감고는 이내 세상으로 흘러내린다.

또한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그 사랑은 한결같다. 만일 상황의 어떠함에 따라 사랑의 정도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 한낱 기호(記號)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큰 강물처럼 풍족하면서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한결같다.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시 102:27

아버지의 사랑이 한결같다는 것에 참으로 감사드린다. 우리가 스스로의 부족한 모습에 낙심하고 절망할 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인해 안타까워할 때, 그분은 여전히 우리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실 것만 같다.

“괜찮아, 그래도 널 사랑해.”

† 말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요한일서 4장7,8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스바냐 3장17절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 시편 100장5절

† 기도
주의 풍성한 사랑을 메마른 심령가운데 부어주소서.

† 적용과 결단
주의 사랑은 큰 강물처럼 풍요롭고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한결같습니다. “괜찮아 그래도 널 사랑해”라고 말씀하시는 주의 사랑 안에 거하며 주께 완전히 붙들린 자 되길 원합니다.

지난 세기에 인도에서 활동한 저명한 감리교 선교사인 스탠리 존스는 평생 동양철학을 연구했고, 그의 친구 마하트마 간디와 고통의 문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인도인들이 고통을 차분히 받아들이는 걸 높이 평...
02/05/2014

지난 세기에 인도에서 활동한 저명한 감리교 선교사인 스탠리 존스는 평생 동양철학을 연구했고, 그의 친구 마하트마 간디와 고통의 문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인도인들이 고통을 차분히 받아들이는 걸 높이 평가했다. 그들의 종교가 고통의 존재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그들이 고통에 순응하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스탠리 선교사에 따르면 힌두교와 불교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지만, 기독교는 아주 조금만 설명해주고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병을 치료하기 원하신다고 말한다. 어떤 병은 수술이나 의학적 치료를 통해, 어떤 병은 건강한 생활 습관을 통해, 어떤 병은 기적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또 어떤 병은 부활 때의 최종적 치료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하나님은 고통 그 자체를 선하게 사용하신다. 그는 “모든 고통과 고난과 좌절과 실망은 극복되거나 더욱 높은 목적에 선용된다”라고 말한다.

소위 ‘번영 복음’이라는 걸 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성경은 고통이 제거될 거라고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고통이 속량될 거라고, 현대적 표현을 사용해 말하자면 고통이 ‘재생 사용될’(recycled) 거라고 가르친다.

나는 빈 알루미늄 캔을 납작하게 만들어 누군가 그것을 다시 활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재활용 센터에 가져간다. 또한 구식 컴퓨터를 재활용 센터에 가져가면 기술자가 컴퓨터에서 금이나 진귀한 토류(土類)를 빼내 재생하여 사용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고통도 재생되어 더욱 풍성한 삶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나는 고통이 낳은 선한 결과를 많이 보았다. 유대인 출신의 할리우드 배우인 마이클 J. 폭스는 그의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내 파킨스병을 받아들이기까지 힘들었던 여러 해가 나중에 보니 내 인생 최고의 십 년이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였다는 게 아니라 '바로 그 병 때문에’ 최고였다는 것이다.”

그의 시련은 그를 변화시켰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 무섭게 자신을 몰아치던 성격에서 좀 더 자신을 살피고 남을 이해하는 성격으로 변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만일 지금 당장 누군가 이 방으로 뛰어 들어와 내게 ‘기뻐하십시오! 내가 타협을 성사시켰습니다. 돈을 조금만 주면 당신의 파킨슨병 진단 이후의 십 년이 마술처럼 사라지고 그 대신 이전의 건강한 몸으로 십 년을 더 살아갈 수 있는 타협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미안하지만 이 방에서 빨리 나가주시죠’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병 진단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에 쫓겨 웅크리고 있는 협소한 삶, 단절과 고립과 탐닉에 의해 겨우 버티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말씀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 사무엘하 22장 7절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 시편 119장 107절

† 기도
주님,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이 상황만을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인도하실 그 길이 무엇인지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정말 이해하기 힘든 상황가운데 놓여있을 지라도 주님은 선하신 분이시며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거라는 그 믿음을 붙잡으세요!

사도 바울은 건강한 교회에 대해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전 12:26)라고 말했다.기독교 공동체, 다시 말해서 ‘십...
30/04/2014

사도 바울은 건강한 교회에 대해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전 12:26)라고 말했다.

기독교 공동체, 다시 말해서 ‘십자가’라는 상징물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져 있는 교회는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독특한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교회가 오히려 고통을 더 준다는 지적이 자주 내 귀에 들렸다.

테러 분자들이 세계무역센터를 비행기로 들이받아 3천 명을 죽였을 때, 버지니아의 한 유명한 근본주의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들의 삶의 방식을 온 세상에 확산시키려는 이교도, 낙태옹호자, 여권신장주의자, 동성연애자, 미국자유인권협회, 그리고 진보성향의 단체 ‘미국의 길을 위한 사람들’(PFAW) 때문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그들에게 이 참사를 가리키며 ‘당신들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요!’라고 소리치고 싶다.”

뉴타운 총격 사건으로 인해 스무 명의 어린이와 여섯 명의 교직원이 죽었을 때 라디오에 자주 출연하는 목회자요 정치가인 또 다른 사람은 “우리가 하나님을 학교에서 추방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범인이 무고한 어린이들을 죽이는 것을 막지 않으셨다”라고 말했다.

자칭 ‘기독교 대변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이런 극단적인 말들이 언론을 통해 널리 퍼져나갔다. 그런데 하나같이 욥의 친구들처럼 대형 재난을 하나님의 계획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왜 우리는 좋은 일과 나쁜 일 그리고 즐거움과 고통이 우리의 공과에 따라 주어진다는 사상에 계속 사로잡혀 있는가? 욥기가 그 정반대의 사상을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앞을 보지 못하거나 다리를 저는 고통을 하나님의 비밀스런 뜻으로 받아들이라고 주님이 가르치신 경우는 성경에 한 구절도 나오지 않는다. 그분은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고쳐주셨을 뿐이다!

물론 하늘에는 전쟁, 총격 사건, 테러, 자연재앙, 눈물 그리고 죽음이 없을 것이다.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뜻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복잡한 논쟁은 신학자들에게 맡기고, 이 땅의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말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보좌에서 다스리신다”라고 말하기에 가장 적절치 못한 때는 큰 재앙이 일어난 직후이다. 슬픔과 고통의 상황이 발생하면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한 말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슬픔과 고통을 증폭시킬 수 있다.

직장을 잃거나 사업을 그만둔 가족에게 “이렇게 된 데는 틀림없이 깊은 뜻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시련을 주시지는 않습니다”와 같은 말이 당사자들에게 이해가 될 리가 없다. 이미 한계 상황에 와 있는 사람에게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내가 볼 때, 예수님처럼 위로와 치유를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슬픔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당신보다 더 슬퍼하십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신학자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죽음을 볼 때 내 눈에는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그분의 원수의 얼굴이 보인다. … 그분은 어둠 속에서 고통당하는 어린 소녀의 눈물이 그분의 나라 건설에 얼마나 필요했는지를 우리에게 설명해주시지 않고, 대신에 그 아이를 일으켜 세워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왜 고통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편을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대답이 만족스런 설명이 되지 못할 것이며, 심지어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사랑과 동정을 보이면 그들의 상처가 아물고, 마음의 고통이 치유될 것이다.

† 말씀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 고린도전서 12장 26절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 시편 31장 8절

† 기도
주님, 다른이들의 고통에 대해 나의 섣부른 위로가 그들에게 더욱 큰 고통이 되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그들과 마음을 온전히 같이하여 사랑의 마음으로 섬기고 기도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상투적인 위로의 말보다 기도를 통한 온전한 이해와 헌신으로 고통을 나누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결단하며 작은 것부터 지금 실천하는 삶을 살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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