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2/2016
주일 청소년부 예배
16.02.07
▶더럽다? The Love다!
[마가복음 10장 49-52절]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어느 중년 남성에게 한 청년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청년은 중년 남성에게 길을 알려주었고 청년과 중년 남성의 가는 길은 같은 방향이었기에 함께 지하철을 타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중년 남성은 사고로 시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도와주는 교회의 사무실을 가는 길이었고, 청년은 중년 남성을 위해 동행하기로 합니다. 물이 고인 웅덩이, 계단, 비가 오는 날씨 등 청년이 중년 남성을 위해 신경 써야할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이후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중년 남성은 청년에게 감사함을 여러 번 표하였습니다. 그런데 청년 또한 중년 남성에게 감사하다고 말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향기로운 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웠던 여리고성입니다. 그러나 눈이 먼 바디매오에겐 그런 아름다움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돈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그가,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여리고성에서의 일을 마치고 성을 떠나는 중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병든 자를 고치는, 바디매오에겐 그 순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즉시 일어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쳐 부르짖습니다(47절).
사람들은 바디매오에게 조용히 하라며 그를 꾸짖지만 그는 더욱 크게 외치며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짖습니다.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은 그의 부르짖음을 듣고 바디매오를 예수님께로 나아오게 하실 때 바디매오는 입고 있던 겉옷을 벗고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보기를 원한다는 바디매오의 말에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후 바디매오는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을 쫓아 따라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52절).
일교차가 심한 그 지역에서 어쩌면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겉옷을 벗어던진 바디매오의 행동을 통해 그의 간절한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겉옷을 벗어던진 행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격식 없이 나아갔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바디매오라는 뜻은 ‘불결한 자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시대에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벌을 받아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결핍되었다고 인식되었습니다(요9:1). 죄를 지은 행위에 의해 벌로써 병을 받은 것이라 생각되었던 당시 시대, 죄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병이 고침받는 것이었기에 바디매오에겐 눈이 고쳐진 것은 단순히 병이 치료된 것을 넘어 죄인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던 마음과 사람들의 정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구원’이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청년은 중년 남성에게 왜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중년 남성과 동행하며 청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의 따뜻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을 닮아가려 했을 때 그는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의 소리를 들으셨고 그를 부르셨던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의 외침에 반응하셨습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고쳐지겠다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 여인의 병이 사라진 것처럼 예수님은 여인의 간절함에 응답하셨습니다(막 5:25-34).
사람들이 더럽다고 하는 때에 예수님은 The Love, 사랑스럽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지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나누는 자가 되길 원하셨기에 스스로 거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세상은 자격과 요건을 요구하는 마귀의 소리에 현혹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바디매오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입니까?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자신을 바디매오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선 “내가 너의 신음소리를 듣고 있고, 너의 눈물을 보고 있다”, “세상이 말하는 더러운 자가 아닌, 사랑을 통해 아름다운 모습으로 고쳐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바디매오가 겉옷을 벗어던질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길가에 찢겨 버려진 나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십시오.
자신이 제자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우리 주변의 바디매오에게 잘 대해주기를 말씀하십니다. 교회 안에서 상처받아 몰려있는 바디매오를 잘 부탁하기를 바랍니다.
열두 명의 제자들은 누가 더 예수님의 수제자에 가까운지 다퉜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기꺼이 우릴 위해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누군가를 위해 단단한 바닥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의 모습이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가장 더럽다고 여겼던 그 자리에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자리가 됨을 알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생각하신 여러분은 지금 당장 사랑을 시작하십시오. 더럽다가 The Love다라고 불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