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초동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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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8/2013

2013년 8월 25일 주보 속 편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참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여러분을 향해 앉았답니다. 여러분과의“작별”을 말해야 하는 때문이지요. 언젠가 끝이 있으리란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막상 그 시간을 맞고 보면 온갖 상념이 한꺼번인 것을 막을 길이 없지요.

하느님께서야 늘 크신 뜻을 가지고 하시는 일이긴 하시겠지만 막상 그 깊은 마음을 다 헤아릴 길 없는 우리네로선 당장은 얄궂고 심술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행복한 시간, 사랑하고 정든 사람들과 왜 뜻밖의 생이별을 해야 하는 것인지… 세상사에서도 다반사인 이런 때마다 푸념은 감출 길이 없지요.

이번에도 한참 시간이 지난 후,“아~!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셨었구나…!”훗날 그 뜻을 어렴풋이 알아채고선 또 계면쩍을 생각에“예”라고 대답하며 새 임지로, 새 상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랍니다. 물론 여러분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제일까 어떤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지나고 보면 항상 좋은 길을 열어 주셨던 하느님을 신뢰하며“예”하고 그 상황을 용기있게 받아들이길 바라면서요. 그리고 이번 저를 떠나보내는 마음도 그러시길 바라고 있구요.

늘 행복했었답니다. 환한 웃음에 수줍음 담아 제게 인사를 건네던 눈빛들, 제 강론이며 이야기에 귀와 마음을 열고 경청하시던 모습들, 열일 제치고 성당 일에 두손 두발 다 내어 놓으시면서도 기쁜 낯을 잃지 않으셨던 몸짓들, 저의 말 몇 마디를 위로요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용기와 위안을 얻으셨다던 열린 마음들,“우리 신부님”을 최고로 알아주셨던 저를 향한 화려한“립 서비스”들… 모두모두 제 분에 넘치도록 고마웠답니다. 그리고 그런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여러분을 향한 저의 마음을 담은 편지의 첫 문장“사랑하는 교우 여러분”은 정말로 저의“진심”이었답니다.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더 잘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더 좋은 본당신부였어야 했었을 텐데…

이제 저를“우리 신부님”이라 불러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다시 소임을 맡을 것이랍니다. 그래서도 여러분들과의 기억이 더욱 애틋할 것이구먼요.

어디에 있든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긴 순례의 여정에 함께 있는 사람들. 한 마장이었지만 여러분과 함께 걸어왔던 서초동에서의 순례길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길 신앙의 여정, 늘 지금처럼 기운차시길…

오늘까지 아직“여러분의 본당 신부가”

19/08/2013

사제인사발령으로
서초동 본당 주임신부님이신 임병헌 베드로 신부님께서는 교구사무처장으로 발령이 나셨고
송천동 본당 주임신부님이신 이찬일 신부님께서 새로이 12지구장 겸 서초동 본당 주임신부님으로 오시게 되셨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19/08/2013

2013년 8월 18일 주보 속 편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겠지만, 막상 제가 새 소임을 받아 본당을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글을 쓰려 여러분을 떠올리니 만 가지 상념이 한꺼번에 스치는 것을 지울 길이 없구먼요.

4년 전 꼭 이맘때, 가톨릭 대학교의 총장 임기를 잘 마치고 20여년의 학교생활을 떠나 이 곳 본당에서의 새로운 사목생활을 시작하던 때의 기쁨이 얼마나 생생한지요. 하루하루의 해가 뜨고 지고 뜨고 지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일, 온갖 일을 그 날들에 담고 있었으련만, 정작 그 날들을 세월이란 단위로 묶고 보니 여러분과의 지난 4년이 어쩌면 이렇게 어제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인생, 결국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긴“순례의 여정”. 그 긴 여정 길, 이곳에서 여러분을 만나 한마장이었지만 여러분과 함께 동행 했던 지난 4년의 시간이 참으로 기쁨이었고 감사의 날들이었답니다. 순간의 만남도 영원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짧다고만 할 수 없는 지난 4년 여러분과의 동행길, 내 안에 그리고 여러분 안에 깊은 여운으로 남아 오랜 울림이길 바라고 있지요.

여러분과의 동행길에 나누었던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들. 그것은 곧 저의 신앙고백이기도 하였답니다. 좋은 길동무를 만났던 고운 추억은 앞으로의 인생 긴 순례여정을 위한 큰 자산임에 틀림이 없지요. 만남은 이별을 전제하는 것이요 이별은 또 다른 형태의 만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미 제가 이곳에 부임할 때 마음 한 구석 여러분과 함께 하느님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만들려 다짐을 하였었지요. 이별 뒤에도 그 기억이 깊은 여운으로 남아“삶의 자산”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지요. 내 안에 그리고 여러분 안에도…

“울긋 불긋 꽃 대궐!”제게는 여러분과 함께 있었던 곳, 함께 걸었던 시간을 대변하는 말이 될 것이랍니다. 여러분도 그러셨으면 좋겠구요.

제가 어디로 가는거냐구요? 우리 서울 대 교구의 모든 사무를 관장하는 명동 교구청 내 사무처장의 소임을 맡게 되었답니다. 또 본당이 아니어서 여러분의 얼굴이 명동 하늘에 잔뜩 두둥실 일 것 같구먼요.

그리고 새로 오시게 되는 본당 신부님. 참으로 좋으신, 제가 무척 좋아하는 신부님이 오시게 된답니다. 좋은 인상으로 따뜻하게 맞아 주시길 부탁드려요.

무지 덥지요? 다음 주일에 또 뵈어요.

여러분의 본당 신부가

12/08/2013

2013년 8월 11일 주보 속 편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찜질방이 따로 없지요? 도시전체가 불가마 찜질방이네요. 미리 예상을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막상“현실”이 되구보면 날씨든 무엇이든 힘든 것은 우선 당장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 모양예요. 암튼 그래도 이참에 더위를“데리고 사는” 나름대로의 방법과 지혜는 각자 터득하고 계시지요? 혹여 훗날 힘든 현실을 만나면 크게 보탬이 될 것이구먼요.

이 더위에 여러말 늘어놓을 것보다 더 좋을 글이 있어 공감하려 한답니다.

삶에 가장 소중한 때
- 오 광수 -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힘들 때가 있으면 편안할 때도 있고
울고 싶은 날이 있으면 웃을 날도 있고
궁핍할 때가 있으면 넉넉할 때도 있어 그렇게 삽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식을 키우느라 많이 힘이 들었어도
자식들이 다 커서 각자 제 몫을 하는 지금에는
힘들었던 그때가 왠지 좋은 때같고

한창 일할 때에는 몇 달 푹 쉬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부르는 이 없고 찾는 이 없는 날이 오면
그때가 제일 좋은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답니다.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 중에서
힘들 때와 궁핍할 때가 어려운 시절 같지만
그래도 참고 삶을 더 사노라면
그때의 힘듦과 눈물이 오늘의 편안함이고
그때의 열심과 아낌이 오늘의 넉넉함이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다 버리고 살 수 없고
편안하고 넉넉하다고 다 혼자 가질 수 없는 것은
우리네 사는 것이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고
나를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서로 소중한 시절을 가꾸며 함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요즘 부쩍 저 역시“나를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지금이“제일 좋은 시절이었다” 회상하게 될“가장 소중한 때”임을 자주 생각하고 있답니다.

입추(入秋)를 지냈으니 가을이 곧 오겠지요?

여러분의 본당 신부가

12/08/2013

2013년 8월 4일 주보 속 편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팔월이네요~
성당 마당을 가득 채우는 매미들의 우렁찬 울음소리. 사연을 알고 보면 짜증에 앞서 애처로움이구먼요. 고속도로의 소음도 이겨내야 하고 다른 매미들보다 소리가 더 크고 높아야 하기에 저리도 쉴 새 없이 목청을 돋아대는 모양예요. 글쎄 우리네 세상살이의 한 단면과도 흡사해 안쓰럽기까지 하구요.

그런가요? 살아야 하는, 그래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니 애처로움이나 안쓰러움이 아니라 부러움인지도 모르겠다구요? 매미들이 꼭 그러한 사실들을 알고 의식하며 그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들의 삶에 끝이 있고 그 끝 이전에 자신들이 이루어 놓아야 하는 무엇(존재이유, 소명의식)을 채우기 위해 저리도 치열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은 분명 나를 반성케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네요. 세상 더위만을 탓하고 짧디 짧은 수명을 원망하고만 있을 법도 한데…

오늘 주일의 독서와 복음 내용은 온통 나에게 선사된 생명, 언젠가 끝이 있을 나의 삶에 부여된“존재 이유”와“소명 의식”을 진지하게 숙고토록 하는 말들로 꽉 차있어요. 어찌 살아야 가치있는 것일까요? 무엇을 위해 내가 치열해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화답송의 시편 말씀:“‘사람들아, 돌아가라’.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그래서도 자칫 한눈을 팔거나 자신의 존재이유와 목적지조차도 설정하지 못한 채 방황과 방종에 자신을 내어 맡긴 사람의 절규가 다름 아닌 오늘 코헬렛 예언자의 말씀“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이지요.

영원과 무한에서 보면 짧디 짧은 내 생명이지만 과연 나의 수고가, 어쩌면 저 처절한 매미의 울음소리 보다 훨씬 더 치열했을 나의 삶이“허무”로 끝장 이어야 할까요?“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 끝장이 허무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찰나를 넘어 영원을 생각했던 사람(목적과 존재이유를 의식했던 사람)의 끝이야말로“허무”가 아닌“새로운 시작을 위한 설레임” 아니겠어요? 그래서 지난 한평생이, 내 한평생 매미의 울음을 능가했던 커다란 수고가 허무가 아닌“감사”일 것이구요.

내가, 나의 삶이 그럴 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본당 신부가

09/08/2013

인천교구 성소국 '신앙의 해' 신앙체험 최우수상

하느님 향한 굳은 믿음, 기쁨의 묘약

http://web.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38194&path=201301


글 : 이은숙 아녜스 ㅣ 인천교구



우리는 주님 안에서 얼마나 큰 기쁨을 맛보며 살까요?
우리는 기쁨도 경험하지만 고통도 많이 겪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고통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참된 기쁨이 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 또한 어려움이 더하면 더할수록
주님과 가까워지는 신비를 맛보았습니다.
제 신앙의 성장을 도와준 저희 오빠와 엄마를 통해서 말이죠.

저희 오빠는 문턱 높은 서울대를 나왔습니다.
학창시절엔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대학에서도 장학금을 받으며 수재(秀才)란 소리를 들으며 지냈습니다.
이후 행정고시를 2차까지 무난히 통과하면서
내로라하는 기업에서 러브콜(?)도 받았었지요.

그때 오빠와 저는 틈틈이 시각장애인선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봉사를 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운 생활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때 저희보다 더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도록 하시면서
일찍이 당신의 신비를 일깨워주고 계셨어요.

오빠는 고 3때부터 신장이 좋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혈액투석을 해야 했습니다.
급기야 오빠는 저희 엄마 신장을 이식받는 대수술을 했습니다.
저희는 하느님 안에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오빠를 보며
기쁨을 맛보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은 어디에 있었는지….
저희 식구에게는 더 큰 시련과 고난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모든 식구가 그분만을 바라보며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 참례와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어느 날 새벽, 오빠가 그만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왼쪽 몸에는 마비까지 왔습니다.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오빠는 몸이 점점 더 나빠져 혼자 대소변을 해결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희 식구는 그럴수록 더욱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기쁨과 은총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찾으면 찾을수록 이상하게도 고통은 커져만 갔습니다.

날이 갈수록 오빠의 신장은 나빠졌고 오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쓰러졌습니다.
하루 4~5번씩 해야 하는 복막투석의 고통도 따랐습니다.
그 와중에도 오빠는 제 아이와 성당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무료로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그중에는 예비신학생 모임을 나가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래와 함께 오빠의 과외 시간을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챙겨주며 하루하루 지냈습니다.
그러던 2009년 어느 날, 아이들과 과외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데
며칠 전 받았던 오빠의 검진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결과는 간암.
정말이지 기도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믿음과 신앙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주님, 당신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얼마나 더한 믿음을 지녀야 당신 뜻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당신이 가신 길, 몇 번이고 넘어지신 그 길을 생각하며
또 한 번의 고통을 이겨냈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굳은 믿음으로 확신을 갖고 말입니다."

이후 오빠는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 몇 번이고 실려갔습니다.
오빠는 수십 차례에 달하는 극한의 고통을 넘기며
7차례에 걸쳐 암시술과 수술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수술 후 오빠는 청력을 잃었습니다.
다섯 번째 수술 후에는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오빠는 안 들리고 안 보이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과를 방문한 날, 의사 선생님께서는
'빛 감지가 안 되니 회복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던 저는 오빠의 말 한마디를 듣고
차를 계속 몰기 힘들 정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말은 지금도 제 귓가에 생생하게, 가슴 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이 얼마나 감사한 분인 줄 아니?
나는 그분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에 무척 감사드린다."

그 순간 저는 '인간적인 것에서만 만족하고 살았구나.
눈이 있고 귀가 있어도 볼 줄 모르고
들을 줄 모르고 살았구나'란 것을 느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감사하는 오빠를 보며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오히려 주님께 감사하다니, 그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주님 은총이구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데 주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 내가 미리 걱정하고 있었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오빠와 함께 계시는데….
나는 오빠에게 어떻게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오빠는 이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하루 4시간 넘게 하는 오빠의 투석을 도왔고, 먹여주고 닦아주었습니다.
묵묵히 오빠 곁을 지키며 오빠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척척 들어주고
돌봐주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성모 마리아를 떠올렸습니다.
한평생을 주님 위해 바치신 우리 엄마,
이제 예수님이 가신 길 함께 걸으시네.

간암 말기에 시력과 청력까지 잃은 오빠.
그런 오빠가 잠 못 이루며 묵주기도를 몇백 단씩 바쳤는데도
밤새 아파서 기도를 조금밖에 못 했다고 할 때면
성한 내 몸이 얼마나 죄스러운지 모릅니다.
오빠는 하루종일 누워서 기도만 하면서 기도 중에도
때론 어두운 마음이 생긴다면서 어찌할 줄을 몰라합니다.
주님께 너무 죄송하다면서요.
그런 오빠를 보면서 잡생각 속에 기도를 드리는 제가
진짜 기도를 하고 있는지 반성이 듭니다.

오빠는 최근 한 달간 중환자실에서 지냈습니다.
간암 말기라 혈관이 터져 몇 번의 색전술로 위험한 고비도 넘겼지요.
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주러 오셨을 때 오빠는 맥박도 없고 의식도 없었어요.
신부님께서는 저희도 알아 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병자성사를 주셨어요. 그런데 오빠가 신부님의
성사에 맞춰 크고 똑똑한 말투로 "아멘"을 외치는 거예요.
저와 엄마는 놀라 서로 얼굴만 쳐다봤어요.
분명 하나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오빠가 어떻게 대답했을까?

다음날 의식이 돌아온 오빠에게
'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주신 것 아느냐'고 물었더니
오빠는 "예수님께서 왔다가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멘'이라고 답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빠는
"여기 중환자실에 사탄이 있는 것 같은데, 묵주만 꼭 쥐고 있으면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저에게 묵주기도의 위력을 전해줬습니다.

오빠는 병실에 있는 동안 냉담 중인 환자들을 주님 품으로 많이 이끌었습니다.
고통이 심해 말도 못하는 오빠는 그저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정말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만 했대요.
복음전파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이 느껴졌는지 같은 병실 냉담교우가 회개하고
다시 성당을 나간다고 전해줬습니다. 오빠는 조카들에게도
"공부도 중요하지만 성경을 자주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성경 안에는 지혜가 들어있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성경의 중요성을 늘 일깨워 줬습니다.

저에게는 "아녜스야, 무엇이 먼저인지를 생각하고,
항상 기도 먼저 바쳐라.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땐
'아버지'라고 하지 말고 '아빠'라고 불러봐라.
모든 걸 들어 주시는 아빤데…"라고 말하며 웃음 지었습니다.
오빠의 말에 저는 조용히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굳은 믿음만 있으면 모든 상황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오빠가 퇴원한 후 엄마는 식사할 틈 없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빠의 기저귀 갈아줍니다. 식사는 물론,
4시간마다 하는 투석과 주사를 놓는 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입니다.
밤을 꼬박 새우다 보면 보호자도 지치고 힘이 듭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미사 때 성체성사와 성체조배의 힘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미사에 참례하는 길이 얼마나
큰 은총으로 향하는 길인 줄 모르고 지냅니다.
우리 식구는 한번 미사에 참례하려면
이른 아침부터 오빠 투석을 돕고, 씻기고, 밥 먹이고, 옷을 입힙니다.
그러면 2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뇌출혈로 손과 발이 부자연스러운
오빠의 신발 신기는 데만 30분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어렵게 성당에 도착하면 무척 기쁩니다. 성당에 와 있다는 그 자체,
주님을 모신다는 기쁨에 그야말로 감동이지요.
예수님을 모신다는 기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흥겨운 일인데
이렇게 좋은 미사참례의 기쁨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요?

엄마는 매일미사를 한 번도 거르신 적이 없습니다.
오빠 또한 거동을 못하기 전까지 매일미사에 열심히 참례했습니다.
저 또한 근심기도 중에 주님을 만나고, 그 근심이 기쁨으로
변화될 때 제 마음이 하얀 깃털이 되어 가벼운 마음이 됩니다.
걱정하지 말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으십시오.

기도 없이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주님과 더 가까워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얼마 전 오빠가 너무 힘들어하며 고해성사 드리는 것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빠가 병상 중에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해줬어요.

유리창이 깨져있는 지하 단칸방에 할머니와
아기가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오빠는 선뜻 지갑의 돈을 꺼낼지 말지를 망설였대요.
꿈에서 깨어난 오빠는 재물을 버리지 못했던 마음에
하느님 앞에 죄인이라며 부끄러워했어요.

얼마 전 장애연금을 받은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빠는
'십일조는 주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주님의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천국의 집을 짓고 재물을 쌓아둬야지
이 지상의 것은 있다가도 없어진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때 알았어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가슴 한구석에 까만 점하나만 있어도 못 견뎌하며
성사로 주님께 다시 나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온통 까만점으로
뒤덮여 있는데도 그걸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길로 곧장 고해성사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선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어요.
저희의 고통을 대신하고 저희를 위해 죽음까지 맞이하셨죠.
신앙의 해는 지금 이 시대에 교회 안에서
절실히 필요한 결정임이 틀림없습니다.
교황님 뜻을 따라 우리 신앙인은 회개하고,
복음선포와 성사, 기도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빠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장애인입니다.
암 투병과 복막투석으로 손과 발의 거동은 불편합니다.
수십 군데로 전이된 암과의 사투 속에서도 오빠가
기쁨과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향한다는
분명한 신앙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 생명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저는 모든 걸 주님께 맡길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
곧 구원에 이르는 길이 주어진다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 출처 : 평화신문 ㅣ인천교구 성소국 '신앙의 해' 신앙체험 최우수상 -

01/08/2013

2013년 7월 28일 주보 속 편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유학시절 을씨년스럽게 춥던 독일 겨울날 안개와 부슬비가 햇빛을 가려 두어 달 가량 푸른 하늘 한 번 보지 못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네요. 꼬박 7월 한 달 푸른 하늘 한 번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선 결국 떠날 모양예요. 긴 장마의 심술이 유난했던 한 달, 그래도 그 심술을 받아주는 여유와 견뎌내는 방법을 알게 해 주었다면 감사할 일이지요. 삶도 때론 그와 같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예요.

눅눅 날씨와 무더위에도 한 달이 알차셨었나요? 이 날씨, 이 상황에서 나름 힘을 들이고 최선을 다 했는데도 별루 손에 잡히시는 것은 없으셨나요? 문득 나를 둘러싼 성벽의 높기가 이를 데 없어 보이고 내 앞을 가로막은 절벽과 같은 거대함이“나 혼자 죽어라고 이런들 무엇하나?”“도대체 소용은 있을까?”하는 실망감이든 우울감이 기운을 빼놓은 적은 없으셔요? 구조적 모순이든 구조적 한계 앞에 한없이 왜소해 보이는 자신을 보며 차라리 망가지고 제멋대로이고 싶은 유혹도 왜 없으셨을까요. 장대비에 터진 봇물을 혼자 삽으로 막고 있는 듯한 한심함이랄까?

오늘의 독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두고 벌이는 하느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긴 줄다리기가 한편으론 씁쓸하면서도 다른 한편 위로가 되고 힘이 되네요. 그“선의의 열명!!”만 있었어도 멸망을 면할 수 있었던 거대 도시 소돔과 고모라! 그 열 명을 그 도시의 인구 비례로 환산하면 몇 퍼센트의 숫자였을까요? 3%의 소금이 전체 바다를 썩지 않게 한다누먼요.

내가 힘들여 노력하고 애써 유지하려는 나의“선의”(善意) 몇 퍼센트가 금방 망해버릴 것 같은 구조적 모순과 한계를 지닌 세상 속의 내 삶을, 나를 지탱해 주고 버텨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나의 선의 몇 퍼센트”가 결국 내 가정을 지탱해 주고 이 사회를 버텨주고 이 세상을 견디도록 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내 주변의 절벽으로 인해 내가 아무리 왜소하고 초라해 보여도 나의 그“선의 몇 퍼센트”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오늘 창세기의 말씀이 깨우쳐 주네요. 이 장마가 걷히고 나면 푸른 하늘의 반가움은 잠깐 또 태양의 이글거림이 우리를 시험하겠지요? 그래도“내 선의 몇 퍼센트”를 잃지 말고 치열하게 주어진 상황에 맞서는 일! 그것이 결국 나를 살게 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팔월 맞이하시길 빌며…
여러분의 본당 신부가

22/07/2013

2013년 7월 22일 주보 속 편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막바지 장마의 심술. 나를 중심으로 보면 푸념거리이지만 지구(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바쁜 움직임이 아닐까요? 그 안에 순응해야 하는 인간이 왜소해 보이기 이를데 없지만, 또 다른 한 편 우리의 태도 여하에 따라 우주를 담고도 남을만한“마음의 그릇”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니 그 크기며 위대함이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 큰“마음의 그릇”으로 날씨의 장마뿐 아니라 이따금씩 불쑥 찾아드는“삶의 장마”까지도 잘 담아내고 계시지요?

글쎄말예요. 이 장마가 걷히면 막바로 선선 가을이라면 좋으련만 또 그렇지가 않다네요. 벼도 익어야 하고 들판의 곡식이며 과수들도 영글어야 한다누먼요. 늘 그랬던 것처럼 한 고비를 넘기면 다른 고비가 나를 시험하려 들고 그 때마다“나”아닌 다른 이유를 들어“나의 인내”만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길이 없지요. 그래서도 억울하구요.
그럴땐 어떻게 하셔요? 신경질과 짜증을 부리는 일?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요. 잠시 우쭐하고 후련한 마음도 들것이구요.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차분해지면 그랬던 내가 얼마나 초라해 보이던지요. 알고 보면 그도 그리고 삼라미물까지도 주어진 환경,“산넘어 산”을 인내하며 버티고 있는 것인데요.

“마음의 그릇”은 자신만이 구워낼 수 있는 것이랍니다. 그 크기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은 결코 아니지요. 산 넘고 산을 넘다보면 그 그릇도 그만큼 커져 있어 그 삶에 담긴 내용 또한 더욱 풍성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날씨든 삶이든 장마의 우중충함이 길어져도“내 그릇이 얼마나 큰데…”하는 배짱 잃지 마셔요.

이제 장마가 걷히고 애들 방학하면 이러 저런 모양의“더위 끌어안기”(휴가)를 하시겠지요? 마음의 그릇에 채워진 엉뚱한 것은 털어버리고, 또 내 인내를 시험하는 어떤 일이 닥쳐도 그것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만들어 놓는 좋은 기회 되시길…

휴가, 일상과 다른 또 다른 모습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시길…

여러분의 본당 신부가

16/07/2013

2013년 7월 14일 주보 속 편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짙푸름에 신이 난 나무들이며 화초들, 들판에 쑥쑥 자라는 볏잎의 건강함과 덩달아 제철을 만난 잡초들의 신명! 참으로 오묘하지요? 사람들은 덥고 습해 죽을 지경인데 온갖 수목들은 이런 날씨 이런 기후를 그렇게 좋아라 할 수가 없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지요. 자연의 조화를 위한 배려일까요? 만물이, 만사가, 만인이 똑같이 좋고 똑같이 나쁠 수가 없는“모순”역시“현실 삶”의 한부분임을 인정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한 주간 어떠셨나요? 금세 지난 시간이었어도 좋은 일과 궂은일들에 우여곡절까지도 섞여 있었던, 생각해보면 짧았지만 긴 시간은 아니셨나요? 엊그제 장대비가 지난 다음 성당 마당을 산책하다가 문득 짙푸른 녹음의 절정을 바라보며 후텁지근 무더위를 내가 미워만해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우산 장사와 소금 장사의 두 아들을 둔 에미의 마음을 조금 헤아렸다고나 할까요?

우리네 삶에도 분명 좋은 일과 궂은 일이 적당히 섞여 있으련만 눈에 먼저 들어오고 오래 마음에 남는 일은 늘 궂은일이어서 삶이 있는 모습 그대로보다는 항상 더 힘겹게 느껴지는 모양예요. 날이 습하고 더우면 내 몸에 땀을 닦는 일이 우선이지 눈을 돌려 주변의 짙푸른 녹음을 보며“그래! 너두 살아야 나두 산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얻기가 힘든 모양이거든요.

주일이 그런 날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느님 앞에 나와 일상과는 다른 시선으로 내 삶을 잠시 바라보며 삶의 조화와 균형을 떠올리고, 좋은 일. 좋을 일을 찾아보며 궂은일에 위로와 격려를 얻어갈 수 있는 날이라면 말이에요!!

심리요법의 대가로 알려진 비엔나의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사람이 위대한 것은 그가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서도 의미를 향한 결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기 때문이래요. 아무리 좋은 일도 내가 좋게 볼 수 없으면 궂은 일이고, 아무리 궂은 일도 좋게 보면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의미요법(Logotheraphy)이지요.

오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말씀. 푸른 녹음을 보며 더위를 마다하지 않을 균형 잡힌 여유의 마음 아니었을까요? 우리의 마음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그 마음이길!!

그런 마음의 한 주간 되시길 빌며…
여러분의 본당 신부가

08/07/2013

2013년 7월 7일 주보 속 편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습하고 꿉꿉한 공기, 장맛비를 머리에 이고 지내셨을 지난 한주.“그러련~”하는 마음의 여유 잊지 않으려 애를 쓴 지난 한 주간 아니셨을까요? 또 남은 반년의 시작을 의식하며 새달 7월을 장맛비와 함께 알차게 잘 시작하셨으리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우리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참으로 익숙하고 친숙한 이름이지요. 물론 그 분이 한국인으로서의 첫 번째 사제이시기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세계 어디에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천주교회의 초창기 역사가 그 분의 짧은 생애 속에 압축되어 우리에게 전해지는 때문이겠지요. 바로 오늘이 그 김대건 신부님을 기억하며 기념하는 대축일예요. 본래는 7월 5일 비오 11세 교황님에 의해 복자(福者:교회가 성인(聖人)으로 선포하기 전의 아래 단계로서 여러 고증과 사료를 조사한 뒤 복자로 선포하신 분)의 품위를 선포하신 날이 신부님의 대축일이지요. 그런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신부님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 주일로 옮겨 신부님의 축일을 지내는 것이랍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는 것처럼 신부님은 1821년 충청남도 솔뫼에서 태어나셨지요. 15살의 나이로 요동과 만주를 거쳐 마카오로 건너가 사제가 되기 위한 유학의 길을 시작하셨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1845년 상해 진자상(金家巷)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귀국하시어 채 1년이 못되는 기간 동안 사목하시다 체포되시어 스물여섯의 나이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를 하셨지요.

예쁜 꽃봉오리가 먼저 꺾이게 되는 것인지… 참으로 하느님은 기이하시고 오묘한 분이셔서 우리가 모두는 알아들을 길이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위한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시거든요. 한참 후에야 그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을 알아채고선 계면쩍음을 감출길이 없도록 만들지요. 26의 나이로 한강변에서 참수형을 당하실 때야 누가 알았겠어요? 그 열매가 오늘은 물론 앞으로의 후대에까지도 엄청난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하느님과 김대건 신부님을 생각하며 우리의 믿음, 우리의 신앙생활을 새삼 감사히 돌아볼 수 있는 오늘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날이 덥고 많이 습하구먼요.
일상의 너그러움과 유쾌함 잃지 않는 한 주 되시길…
여러분의 본당 신부가

축하드립니다~~~^^
03/07/2013

축하드립니다~~~^^

03/07/2013

2013년 6월 30일 주보 속 편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느덧 유월의 마지막 주일, 마지막 날이예요. 우리를 향한, 나를 향한 하느님의 배려와 사랑을 생각하며“예수 성심 성월” 유월이 기운차길 바랬었는데… 그대로는 아니었어도 이따금씩은 적어도 그러려 마음을 다잡곤 했던 지난 한 달이셨지요?

글쎄 말예요. 일년의 딱 반이 접혔어요. 그래도 아직 반년이나 우리 앞에 남아있으니 오늘이 또 새삼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아볼 그 날이네요. 삶이야말로“과거”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미래를 지향해 있는 것이니, 그것이 무엇이든 삶에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지금”이 바로 그 시작점이요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일 수 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바로 그“지금”은 나 홀로 서있고 헤쳐야 하는 망망대해가 아니라 주님께서 내편이 되시어 나와 함께 해 주시는 바로 그 은총의 시간이니 더더욱 말이지요.“돌아보니 걸음마다 은총이었네!!”란 훗날의 고백은 바로 이런 하루하루의 지금이 모여 이루어진 삶을 외둘러 표현한 것이랍니다. “지금이 바로 은총의 때요 구원의 시간”이란 성서의 표현도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지요. “일어나 용기를 내어라!!”는 성서의 주님 말씀이야말로 내가 지금 어떤 상황, 어떤 싯점에 있더라도 내 귓전을 맴돌며 내 마음을 두드리는 말씀으로 다가왔으면 싶어서요.

이제 또 남은 반년의 새 시작, 7월입니다. 내 자신, 내 삶의 주변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작은 것 한 두개라도 꼭“마음의 다짐”을 굳게 하는“지금”이면 오늘 주일이 얼마나 큰 은총일까요?

지난 주일 그리고 어제 제 축일 당일에 이르기까지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축하해 주신 큰 마음들, 제 가슴에 곱게 간직합니다.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어린이에서부터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저를 향한 환한 얼굴들과 수줍은 눈빛들. 오래 오래 기억될 듯 싶습니다. 기쁘게 기분좋게 빈대떡도 부치고 상도 차렸다는 잔치를 위해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의 말씀. 감사했습니다.

좋을 새달, 힘차게 시작하셔요!
여러분의 본당 신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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