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영어학원교회

서울영어학원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서울영어학원교회 페이스북 공식페이지입니다. 우리 교회는 Happy, Healthy, Holy를 표어로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본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우리가 서로 잘 알아가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4/08/2026

365말씀나누기-237 하나님을 아는 특권을 받은 사람은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여러 나라로 둘러싸이게 하였거늘,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행하며 내 율례도 그러하기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심히 하였으니"(5:5-6).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이 특권을 받았음에도 다른 나라들보다 악을 더 행했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받았음에도 그 특권을 저버렸기 때문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하리라”는 법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이 책임은 엄중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이삭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이삭은 기근이 들어 애굽으로 옮겨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으로 가지 말고 기근이 든 땅에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기근이 든 땅에 머무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은 목축을 하였으므로 가축들이 많았고 식구들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기근이 든 땅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이삭은 우물을 팠습니다. 우물은 이삭의 식구들에게는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우물을 메워버렸습니다. 이삭은 옮겨서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이번에도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우물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삭은 자리를 옮겨서 또 우물을 팠습니다. 또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다시 자리를 옮겨서 우물을 팠습니다. 우물들은 많아졌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내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결코 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축복하셔서 큰 풍년의 추수를 하게 하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삭을 찾아와서 언약을 맺고 서로 상부상조하기로 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특권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특권이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기근이라는 큰 재난을 만났지만 하나님의 사람답게 온유하고 넉넉하게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므로 그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시련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련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살지 않도록 붙드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고난 중에도 온유함을 잃지 않고 인내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사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하옵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23/08/2026

365말씀나누기-236 성경의 모든 장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면...

“너는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담당하라. 그들이 지은 죄 때문에 너는 거기서 390일 동안 누워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며... 이번에는 네가 누워서 고통을 받아야 할 날을 40일로 정하였으니 그 하루는 1년을 가리킨다”(에스겔 4:4-6).

에스겔 4장에서는 에스겔이 말이 아닌 몸으로 예루살렘의 심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감당하되 390일을 있어야 했습니다. 오른쪽으로 누워서는 유다의 죄를 감당하기를 40일 동안 있어야 했습니다. 에스겔은 줄에 묶여 이 기간 동안 몸을 돌이킬 수도 없었습니다. 묶여있는 선지자의 몸 자체가 백성의 죄악의 무게를 짊어지는 상징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1일을 1년으로 계산하라”(4:6)고 말씀하셨습니다. 390+40=430일(년)인데 이 기간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기간과 일치합니다. 이것은 죄의 축적된 무게와 심판의 기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판단됩니다.

여기의 430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중요한 것은 에스겔이 몸으로, 삶으로 하나님의 기별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의 삶인 것을 이것은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우리가 말하는 기별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에스겔은 줄에 묶인 채 백성의 죄악을 담당합니다. 이것은 훗날 이사야 53장에서 그려지는 고난 받는 종,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이사야 53:4). 에스겔이 백성의 죄를 담당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악을 대신 짊어지신 십자가를 예표적으로 가리킵니다.

어떤 성경 연구가는 성경의 모든 장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에스겔 4장에서도 고난 받는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성경을 잘 읽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에스겔의 모습은 온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5-6).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드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모든 성경의 장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영적 안목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셔서 우리 죄의 짐을 지시고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오니 감사합니다.

목회자 최상재 드림^^

22/08/2026

365말씀나누기-235 너를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에스겔 3:17).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리고 엄중한 책임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악인에게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하고 말할 때에 네가 만일 그에게 경고하지 않거나 잘 타일러 그를 악한 길에서 돌이켜 그를 살게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로 죽겠지만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너에게 물을 것이다”(3:18). 어떤 사람이 잘못된 길로 행하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기 죄의 저주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고하지 않은 책임은 하나님이 사명을 맡긴 그 사람에게서 찾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만일 그 악인을 경고하고 타일러도 그가 악한 행실과 죄를 버리지 못하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을 것이며 너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을 것이다”(3:19). 어떤 사람이 경고의 사명을 받고 어떤 악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는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는 악인의 운명에 대하여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만약 악인이 회개하지 않고 악을 계속 행한다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악을 지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악을 방치합니다. 점점 악은 커집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망가뜨려 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이고 한 가족을 완전히 망가뜨려 놓았습니다. 광야에서 사울에게 쫓겨 도망다닐 때에는 아침마다 하나님을 찾았던 다윗이지만 왕이 되어 어려움이 없어지자 하나님 앞에 끔찍한 악을 범한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을 강력히 경고하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구약 성경에 왕의 죄를 경고하여 죽임을 당한 선지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단의 사명은 극히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단은 다윗왕에게 현명하면서도 단호한 경고를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은 나단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그의 맡은 바 사명을 훌륭하게 담당했습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악한 세상을 경고하는 사명을 주셨으니 그 사명을 엄중히 생각하게 하옵소서.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주시는 담대함을 갖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경고의 사명도 감당하게 하시고, 경고 받은 자가 회개하는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21/08/2026

365말씀나누기-234 주의 말씀으로 성령이 임하고...

“사람의 아들아, 너는 내 말을 명심하고 그들처럼 반역하지 말아라. 너는 입을 벌리고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 먹어라”(에스겔 2:8).

에스겔은 하나님의 압도적인 영광에 엎드려 있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2:2). 하나님의 말씀과 동시에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일으켜 세웁니다. 여기에 중요한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누가복음 11:13).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내 말을 명심하고 그들처럼 반역하지 말아라. 너는 입을 벌리고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 먹어라”(2:8).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먹으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전달할 정보가 아니라 먼저 자기 존재 깊숙이 소화되고 내면화되어야 할 것임을 상징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줄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큰 책은 시편입니다. 성경을 앞에 두고 펼쳐보면 한 가운데가 열리는데 그것이 시편 119편입니다.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성경장입니다. 한 장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176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주옥 같은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여, 진리의 말씀이 언제나 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내가 희망을 주의 법에 두었습니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변함없이 지키겠습니다. 내가 주의 교훈을 따랐으니 참 자유 가운데서 살 것입니다”(119:43-45).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말씀이 참 자유를 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주신 법은 나에게 천금보다 더 소중합니다... 주의 말씀은 나를 안내하는 등불이며 내 길을 비춰주는 빛입니다. 여호와여, 내 감사의 기도를 받으시고 나에게 주의 법을 가르치소서”(119:72, 105).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이 우리 안과 삶에 임재하심을 알고 주의 말씀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은 천금보다 귀하고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는 것이며 우리 인생에 참 등불이 되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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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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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님반 교과 공부 안내 교과 소그룹 새가족 및 손님반이 학원 2층 215호에서 진행됩니다. 학원 2층 강의실에서 진행하시는 교과반은 교과공부를 마친 후 책상과 의자를 원위치 시켜주시기 바랍니다. 2. 새벽기도회 안내 일시: .....

20/08/2026

365말씀나누기-233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십니다

“나는 환상 중에 북쪽에서 폭풍을 몰고 오는 큰 구름을 보았다.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고 주위에는 찬란한 빛이 비치고 있었으며 그 불 가운데는 벌겋게 달아오른 쇠 같은 것이 보였다”(에스겔 1:4).

에스겔은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이상을 보게 됩니다. 그는 제사장 출신의 선지자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성전이 아니라 바벨론에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파격입니다. 고대 근동 세계관에서는 그들의 신이 자기의 나라나 신전에 결박된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상이 바벨론에서 에스겔에게 임하였다는 것은 고대 세계관에서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속박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느 나라에 국한되는 분도 아니십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쉽게 납득되거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만의 하나님이요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제한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큰 힘과 위로를 줍니다. 낯선 타향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병실에서도, 낙담과 좌절의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여건에서도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어디서도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에스겔은 이상 중에 바퀴들을 봅니다. 바퀴들은 사방으로 흔들리지 않고 곧장 나아갑니다. 이것은 상황이 아무리 불확실하게 보이고, 포로생활처럼 절망스러운 상황이며, 난리가 만연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변함없이 전진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좌우로 흔들리고, 넘어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변함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결코 길을 잃지 않습니다. 역사가 혼란스러워 보이지요?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음을 에스겔서는 보여줍니다. 요셉의 일생을 생각해보십시오. 형들에게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갔고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가고 단숨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요셉의 생애는 결국은 애굽을 구원하고 자신의 모든 가족을 구원하는 일로 끝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습니까? 인생이 많이 혼란스럽고, 자녀들의 삶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처럼 보이고, 시련과 역경이 압도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여건에서 함께하신다는 위대한 진리를 늘 잊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를 돌보시고 계심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힘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주의 나라를 향해가고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19/08/2026

365말씀나누기-232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에스겔 1:1).

선지자 에스겔은 바베론에 있는 유대인의 거류지 그발강가 델아빕에서 백성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스겔서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2:16)라는 구절이 49번이나 나타납니다. 에스겔서는 포로의 땅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의 비전 곧, 무너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회복의 마스터플랜입니다. 에스겔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서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기 20년 전쯤에 다니엘을 바벨론 궁정에 앞서 보냄으로써 에스겔의 봉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출신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유와 그것이 회복되는 과정을 성소를 중심으로 묘사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시내산에서 성막을 건립한 후 성소의 그룹 사이에 빛의 모양으로 머문 이래 거의 900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임재의 가시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영광은 오랜 세월 이스라엘의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영광은 백성들의 죄로 더럽혀진 성소와 하나님의 선택한 땅을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머뭇거리며 떠나지를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성소를 벗어난 영광의 빛은 고향을 떠나는 피난민처럼 성전 동쪽 문에서 서성거립니다.

그리고 지나간 천 년을 회상하듯 잠시 성전 문지방 위에 떠 있다가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와 감람산으로 향합니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다가 그 땅을 떠나 바벨론의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심판이 시작되고 여러 나라들에 대한 이상이 주어지고 최종적 회복에 대한 마스터플랜의 이상이 제시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은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죄의 저주에 내몰린 땅에 대한 안타까움을 보여주고, 끌려간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 낯선 땅으로 가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신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오, 하나님의 영광이여!

하나님,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인류는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무슨 궁극적인 소망과 기대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의 상실만큼 끔찍한 일이 없음을 깊이 생각하고 깨닫는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18/08/2026

365말씀나누기-231 공동체와 개인의 깊은 심연을 바라보며...

“아 그렇게 붐비던 도성이 이렇게 쓸쓸해지다니. 예전에는 천하를 시녀처럼 거느리더니 이제는 과부 신세가 되었구나. 열방이 여왕처럼 우러르더니 이제는 계집종 신세가 되었구나. 밤만 되면 서러워 목 놓아 울고 흐르는 눈물은 끝이 없구나”(예레미야 애가 1:1, 2).

유대력으로 BC586년 아빕월(5월) 9일, 아름다운 처녀,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의 말발굽 아래 무너져 내렸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예루살렘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온 데 간 데 없습니다. 기품을 뽐내던 지도자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여인들은 욕을 보았으며 어미들은 배고파 우는 어린 자식을 삶아 먹습니다. 예루살렘을 위로하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의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애가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한 눈물의 책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은 없습니다. 이 책은 신음소리만 새어나오고 무너진 성벽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예레미야의 “흐느낌의 바다”입니다.

이 책은 “슬프다,” “어찌하여,” “오호라”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히브리어 ‘에카’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이 책을 에카라고 부릅니다. “고통의 오경”으로 불리우는 애가는 성경에서 가장 정교한 문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5장의 중심에 있는 3장은 3절 X 22다발 = 66절입니다. 1, 2, 4, 5장은 22절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각 절 첫 단어의 첫 음절이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시작됩니다. 욥기가 개인적인 고난의 의미를 다루고 있다면, 애가는 공동체적인 고난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처럼 많은 울고 마음 아프게 산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는 고난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비애의 선지자를 통해서 영원한 “새 언약”(예레미야 31:33; 32:40)이 계시되었습니다. 그는 눈물 속에서, 극한 고통 속에서, 처절한 고독 속에서, 죽음의 심연에서 “새 언약”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3:19-26).

하나님, 때로는 인생의 깊은 골짜기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신음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17/08/2026

365말씀나누기-230 유다의 마지막왕 시드기야와 예루살렘의 멸망

“시드기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시드기야가 바벨론왕을 배반하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을 대하여 진을 치고 사면으로 흉벽을 쌓으매”(예레미야 52:2, 4).

예레미야 52장은 예레미야의 마지막 장입니다. 이 장은 예루살렘의 철저한 멸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드기야왕은 21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그는 예레미야의 권고를 끝까지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고 바벨론에 저항하지 말라는 권고도 듣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몰려왔습니다. 성은 포위 되었고 기근이 시작되었습니다. 성안에 있었던 시드기야왕은 성을 나와 도망치다가 붙잡혔습니다. 그는 아들들과 함께 느부갓네살왕 앞에 끌려나왔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시드기야왕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시드기야는 칼에 찔려 소경이 되었습니다.

이보다 처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의 눈앞에서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았으니 시드기야는 죽는 날까지 그 광경이 잊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10년 뒤에 느부갓네살왕의 장수 느부사라단이 다시 예루살렘에 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철저히 파괴하고 성전의 기물들을 가져갔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아 가고 빈천한 사람들만 남겨 농사짓게 했습니다. 그렇게 유다는 철저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사랑하고, 의와 진리와 생명의 하나님을 버렸을 때 그들은 아무런 방비가 없는 성과 같은 처지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쌓기는 어렵지만 유지하기는 더 어렵고 버티다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무언가를 이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유지하기는 더 어렵고 무너지는 것은 하룻밤이면 충분합니다. 유다의 역사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다의 역사를 보면서 나라를 생각하게 됩니다. 일단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전쟁이 일어나고 망하게 되면 그것의 처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 우리가 분명히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족, 재산과 자녀들의 행복의 비결은 유다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나라를 굽어 살펴주시고 난리와 전쟁에 휩싸이지 않도록 붙드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민족을 붙드시고 축복하여 주옵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16/08/2026

365말씀나누기-229 바벨론의 멸망이 실제였던 것처럼 영적 바벨론도 그러합니다

“바벨론에서 도망하여 모두 자기 생명을 구하라. 바벨론의 죄 때문에 멸망당하지 말아라. 지금은 나 여호와가 복수할 때이므로 그가 행한 것만큼 갚아 주겠다... 바벨론이 이처럼 가라앉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예레미야 51:6, 64).

예레미야 51장에서는 바벨론의 멸망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은 "온 세계를 취하게 하는 금잔"(51:7)으로 묘사됩니다. 열방이 그 잔의 술(권력과 화려함)에 취해 날뛰었으나, 그 잔은 떨어져 깨어집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우상숭배를 질책하십니다. "만물을 지으신 이는 이런 것들과 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이시라"(51:19). 손으로 만든 바벨론의 우상들의 무력함과 천지를 창조하신 야곱의 하나님을 극명히 대조시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흠모하는 대상을 닮게 마련입니다. 바벨론은 그들의 우상들을 닮아가고, 하나님과 인류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멸망 때 유브라데 강물이 마를 것이라는 예언(51:36)은 BC539년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바벨론성을 멸망시킬 때 유브라데강 물줄기를 돌려 성벽 아래로 진입해 함락시킨 사건과 맞아떨어집니다. "바벨론의 성벽은 매우 넓어도 헐릴 것이요 그 성문은 높아도 불에 탈 것이라"(51:58). 이 말씀은 심판의 확실성을 재확인합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왕과 바벨론으로 가는 스라야(바룩의 형제)에게 심판의 말씀을 두루마리에 적어 주며, 바벨론에 도착하면 소리 내어 읽은 후 돌을 매달아 유브라데강에 던지며 이렇게 선언하라고 명합니다: "바벨론이 이같이 가라앉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그에게 내릴 재앙 때문이라"(51:64).

바벨론의 멸망은 역사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에서 스스로 구원하라"(51:45). 이 표현은 수백 년 후 요한계시록 18장 4절에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는 형태로 다시 인용됩니다. 바벨론이 단순히 역사적 제국을 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속적 권세와 유혹 체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대적한 이래로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대표해왔습니다. “그것에서부터 나오라”는 호소는 바벨론은 멸망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영적인 바벨론에서 나와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하나님, 바벨론의 멸망이 역사적 사건으로 확실했던 것처럼 영적 바벨론의 멸망도 분명한 것임을 기억하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과 일들이 번성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의 결국은 정해져 있음을 밝히 알게 하옵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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