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영어학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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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026

365말씀나누기-144 인간 역사가 반복해서 가르쳐 주는 것은?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곧 그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니라”(이사야 20:1-2).

앗수르의 왕 ‘사르곤’에 관한 기록은 세상의 역사책에는 오랫동안 없었습니다. 비평가들은 그런 이유로 이사야서의 진실성과 성경의 역사적인 기록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인 보타(Botta)가 코르사바드(Khorsabad)에서 사르곤 2세의 왕궁을 발굴하면서 역사책을 다시 써야 했습니다. 이라크 북쪽 모술에서 20km 떨어져 있는 코르사바드(Khorsabad)는 고대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1843년부터 1845년까지 보타는 사르곤의 왕궁을 발견하였고, 그 유력한 왕의 역사를 다룬 유명한 명각들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역사적 진실성의 다툼에서 패한 적이 없습니다.

사르곤의 기록들이 입증한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하였느니라”(20: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르곤 11년(BC 711)의 사료에는 아스돗의 왕 아주리(Azuri)가 반역하였기 때문에 사르곤은 즉시로 군대를 보내 아주리를 폐위시키고 그의 동생 아히미티(Ahimiti)를 왕에 앉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스돗 사람들은 사르곤이 지명한 왕을 거절하고 한 헬라인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사르곤이 군대를 보내자 그 헬라인은 구스로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구스 왕은 헬라인을 잡아 차꼬에 채워 사르곤에게 보냈습니다.

이런 기록들은 수치를 상징했던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예언이 분명했음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왕의 기록이라고 할지라도 그 기록이 피와 눈물과 전쟁의 기록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위대하다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왕들의 대부분의 기록은 피의 역사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제국은 역사에 피를 뿌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서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를 반복하여 미리 보여주시고, 경고하시고, 교훈하시는 것은 사람이 인간 역사에서 지혜를 배우기를 진실로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진정한 평화의 왕은 누구입니까?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노력 그 이상의 것, 인간이 바라고 추구하는 진정한 평화가 사람이 가져다 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구원과 평화의 어떤 시도도 결국은 실패할 것을 알게 하옵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http://pf.kakao.com/_vkcJxb/113422490
22/05/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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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한 안식일입니다. 예배에 참여하신 성도들과 손님들, 온라인으로 참석하시는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서울영어학원교회'를 치시면 모든 설교를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2. 교과 소그룹 안내 교...

22/05/2026

365말씀나누기-143 온 세상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그날에 애굽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이사야 19:19, 25).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나라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그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많은 이방인 나라들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방 나라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행하십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꾸지람이나 회초리가 없듯이 애굽이 열 재앙을 받았던 일도, 요셉 때에 기근에서 구원하셨던 일도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애굽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애굽에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이 세워진 적이 있었을까요? 애굽에 히브리인 성전이 세워진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BC525년 이전에 건축되었다가 BC410년에 파괴된 엘레판티네 성전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멤피스 근처의 삼각주에 있던 레온토폴리스(Leontopolis)에 건축된 것으로 BC150년 경에 오니아스(Onias)가 클레오파트라에게 호소해서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언급한 성전이 이 성전들일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이 예언은 조건적이었고 선지자는 온 세상이 하나님을 섬길 때를 내다보며 예언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애굽과 앗수르를 고치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것이라도 고치실 것인 고로 그들이 여호와께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를 고쳐주시리라”(19:22).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고치시기 위하여 징책하십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애굽에 회초리를 내리신 것은 그 목적이 파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복과 구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7).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해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잊지 않게 하시고 온 세상을 위한 기도와 봉사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만 생각하는 것은 고대의 이스라엘과 같은 잘못을 범하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22/05/2026

365말씀나누기-142 사람은 바라보는 자를 닮습니다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그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아니하며”(이사야 17:1, 7-8).

이사야 17장은 다메섹과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집트에 대한 경고도 있고, 모압에 대한 경고도 있으며, 다메섹에 대한 경고를 포함하여 많은 이방나라들에 대한 기별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나라들도 하나님의 교훈이 필요하고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하나님이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나라가 되어 특별한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편애하시지 않으십니다. 이방나라들에 하나님의 백성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경고나 기별을 주시거나 선지자들을 보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특별한 이스라엘도 결국 깊이 타락하여 다른 이방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여 이방나라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셨던 목적을 이스라엘은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다메섹에 대한 경고를 이스라엘도 동일하게 받았습니다. 경고에 이은 심판도 받았습니다. 심판의 유익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아니하며”(17:7-8). 심판은 헛일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눈이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시련은 불과 같아서 사람의 삶에서 찌꺼기를 태워 없애 버립니다.

이사야 때의 기별중의 하나는 “너희 하나님을 보라”(이사야 40:1)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고,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않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사람은 지혜로운 것 같으면서 어리석습니다. 자기가 만들어 세운 우상에게 절하고 의지합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얼마나 사람이 미련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우상을 닮습니다. 돈을 섬기는 사람은 탐심의 정신의 지배를 받습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을 닮고 그 정신을 전수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바라보도록 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을 닮게 하시고, 하나님의 정신을 선물로 받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21/05/2026

365말씀나누기-141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알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루 밤에 모압 길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거리에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이사야 15:1, 3, 5).

악의 번성과 악인의 번창은 하나님을 진실히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의문점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들은 이런 문제로 씨름할 때에 불가지론이나 무신론이나 비관론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독대를 요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주시기를 인내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바국 선지자도 그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시고 그에게 그 큰 질문에 대답하셨습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 2:4). 하나님은 자신을 하바국에게 보이심으로 그 질문에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므로 하나님의 임재는 모든 것에 대한 대답입니다.

악의 번성과 악인의 번영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주권으로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가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이사야는 죄악이 만연한 나라, 모압의 멸망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죄악은 결코 영원할 수 없는 것은 심판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압의 정치적 영향력과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모압은 자주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1868년에 디본(Dibon)의 폐허에서 발견된 유명한 모압돌(Moabite stone)에는 모압이 이스라엘 왕 오므리와 아합에게 지배당했음을 기록하고, 모압 왕 메사(Mesha)가 반란에 성공했음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압돌에는 모압 왕 메사가 모압의 신 그모스로부터 느보를 이스라엘로부터 빼앗으라는 명령을 받고 그 성읍을 포위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는 그의 신에게 바치기 위해 7,000명의 남녀들과 아이들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사람의 악함을 고발하는 고발장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사람의 악함을 날마다 보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사람의 죽음을 하나님께 불평하지만, 때로는 사람이 왜 살아야하는지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이사야는 죄악의 잔이 차서 넘쳐흐르는 모압의 멸망을 놀람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모압은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늘날의 악한 세상에서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하나님, 악의 번성과 악인의 번창함은 잠시잠깐의 일이며 안개와 같이 허망한 것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여 죄악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가 시작되기를 소망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가 그런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19/05/2026

365말씀나누기-140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성경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하도다”(이사야 14:12-14).

이사야의 이 말씀은 에스겔서 28:12-19절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의 대쟁투의 시작과 현상을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당, 도사, 점성술사 등이 신내림을 받고 활동하는 근원을 제시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 있지 않습니까? 또한 그런 자들을 포함하여 세상의 고통과 시기와 질투와 살인의 정신과 철학의 근원을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있다면 이 정신과 영의 세력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계명성은 히브리어로 “헬렐”이며 “할렐”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빛나는 자,” “찬란한 자”라는 뜻입니다.

제임스 왕 역에서는 “루시퍼”(Lucifer)로 번역했습니다. 루시퍼는 “빛을 가진 자”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루시퍼는 하늘의 천사장으로 빛나는 지위를 차지했다가 교만하고 타락하여 사단, 마귀가 된 한 영적인 존재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시퍼의 타락은 피조물인 그가 하나님의 보좌를 차지하려는 탐심과 교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오만과 교만과 이기심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정신입니다. 하나님을 싫어하는 마음도 타락한 루시퍼의 정신에서 사람들에게 전이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한 일만 하시기를 작정하시는데 욕을 먹고 싫어함을 당합니다. 참으로 신비한 현상입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하도다.” 바벨론 신화의 신들은 높은 산에 모여 회의를 열고 지상의 일들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이사야서에서 상징적인 바벨론 왕으로서의 사단은 이와 유사하게 하늘 회의 즉, 하나님의 우주를 지배하기를 열망했습니다. 피조물의 지위를 떠난 교만입니다. 이 세상의 무서운 일들과 최악의 전쟁들이 이런 정신에 근거해 있는 것입니다. 루시퍼는 지위와 능력 그리고 영광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아지기를 탐했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는 원치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자리에까지 낮추신 그리스도와 극한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성경을 통하여 보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활동하는 타락한 존재들이 있음을 알게 하시옵고, 그 존재들의 정신이 세상에 만연함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세계와 사람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가 있음을 감사합니다.

목회자 최상재 드림^^

18/05/2026

365말씀나누기-139 “여호와의 날”을 준비시키시려 역사와 하늘을 흔드시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이사야 13:1, 6, 10).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을 통하여 고대의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의 멸망을 “여호와의 날”로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동시에 요한을 통하여 세상의 마지막 때의 혼돈의 상태를 바벨론으로 묘사하여(계시록 14, 17-19장) 세상의 마지막 때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여호와의 날”로 이중으로 적용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결코 멸망할 것 같지 않았던 고대 바벨론이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듯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죄악이 만연한 지구성도 결국은 사람의 손이 아닌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죄악의 역사를 마칠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20회 이상 나타납니다. 어떤 도시나 국가 또는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사람의 날’로 말할 수 있는 “구원의 날”(이사야 49:8; 고린도후서 6:2)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사람들을 위한 은혜의 기간이 여전이 남아 있는 때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은혜의 기간에 살고 있지만 마지막 시대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사야, 요엘, 예수님, 요한을 통하여 하나님은 마지막 때의 역사, 해, 달, 별들의 징조를 말씀하셨습니다.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하며... 달이 핏빗같이 변하려니와...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떨어지며”(이사야 13:10; 요엘 2:28; 마태복음 24:29; 계시록 6:12-13).

이런 사건들은 “그날 환난 후에”(마태복음 24:29) 순서대로 일어날 것입니다. 기독교가 종교암흑시대를 거치며 “큰 환난”을 겪었습니다. 그 후에 1780년 5월 19일, 대낮부터 해가 빛을 잃고 저녁에 떠 오른 달은 핏빛같이 변했던 “암흑일”이 찾아왔습니다. 그 후에 1833년 11월 13일 밤,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한 20만개의 별들이 떨어져 내려 마치 “태풍에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보였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세계적인 ‘대백과 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큰 환난”을 통하여 역사를 흔드시고, 천체에서 일어날 일을 하늘을 흔드셔서 순서대로 일어나게 하시므로 “여호와의 날을 준비하라” 명하셨습니다.

하나님, 역사에서 큰 난리가 날 수도 있고,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핏빛같이 변하며, 유성이 가끔 떨어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하늘에서 그런 사건이 순서대로 일어나는 것은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관리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할 수 없음을 알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

목회자 최상재 드림^^

17/05/2026

365말씀나누기-138 하나님은 나의 노래시며 생수의 샘이십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지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이사야 12:1-3).

이사야 12장은 감사의 시입니다. 찬양의 노래입니다. 그리스도가 그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심을 기록한 11장의 속편으로 감사의 노래를 기록하는 것은 적절한 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벗어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사야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욱 많이 찬양한다면 낙담과 험담은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들 삶에서 노래가 사라졌습니까? 찬양이 없어졌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지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진실로 그렇습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12:3).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막을 지날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반석을 쳐서 물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이것을 기념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 기간 중에 한 예식을 행했습니다. 제사장들이 레위인들로 구성된 찬양대와 함께 실로암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와 성전의 번제단에 부었습니다. 백성들은 시원한 물을 마시기 위해서 우물까지 함께 행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과 치유함을 주시는 생수가 흘러넘치는 샘이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나오리라”(요엘 3:18). 사막과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생수의 샘이신 그리스도는 갈증을 해갈하십니다.

“하나님을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이사야 12:5).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행하신 일은 선하시고 자비로운 일이십니다.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놀라운 일들은 노래와 찬양으로 화답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마음의 찬양은 낙담과 두려움, 그리고 유혹을 물리치게 하는 것임을 그리스도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임마누엘 하나님, 곧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체험하므로 그의 마음에는 노래와 찬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노래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의 기쁨이 더욱 넘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노래와 찬양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때로는 사막과 광야와 같은 인생길이지만 생수의 샘이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오니 우리의 인생의 갈증이 해갈되나이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마음의 악기가 아름다운 음으로 연주되게 하소서.

목회자 최상재 드림^^

16/05/2026

365말씀나누기-137 700여전 전에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이사야 11:1, 10).

이사야 선지자는 한 예언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새는 다윗 왕의 아버지입니다. 줄기는 “그루터기” 또는 “뿌리 줄기”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죽은 후 유다 지파가 다윗을 받들어 왕으로 세웁니다. 후에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됩니다. 아름답고 무성한 나무로 성장했던 이스라엘은 죄악으로 인하여 베임을 당할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10장에서는 앗수르와 유다의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시면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빛과 진리의 전달자가 되어서 온 세계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불순종으로 인하여 나라는 분열되어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후손으로 한 왕이 일어나서 다윗과 그의 계승자들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성취할 것이었습니다. 나라가 베임을 당해 “그루터기”만 남았지만,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뿌리 줄기”로부터 한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날 것입니다. 그것은 의로운 “나무”가 될 것이며 마침내 온 땅을 덮을 것이고 모든 인류에게 평화와 기쁨을 줄 것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이 장면을 여러 번 되풀이합니다(35:6-10; 65:17-25; 66:22, 23). 이것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새의 아들 다윗의 후손의 혈통을 따라 이 세상에 탄생하셨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의의 가지”로서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예레미야 25:5, 6). 예수님의 탄생 700여 년 전에 이사야는 그분의 탄생과 하실 일을 예언해 놓은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이 예언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근본이 영원인”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고 평화의 왕, 지혜의 왕, 진리와 공의의 왕으로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온 인류에게 희망을 주셨으니 하나님의 무한하신 이름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진실로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류의 연결통로이십니다.

목회자 최상재 드림^^

15/05/2026

365말씀나누기-136 사람과 세상의 운명을 사람이 바꿀 수 있을까? 희망은 있을까?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에서 한 설문조사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장 많은 대답은 “평화”였습니다. 오늘날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하마스가 촉발한 이스라엘과의 전쟁은 이란에게까지 확대되어 전세계가 여러 면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거의 항상 1위를 기록했는데 최근에는 총기사고로 죽은 자들의 수가 1위로 올라섰습니다. 사람들은 외부 환경에서 평화를 보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마음의 내면이 잔잔한 호수도 아닙니다. 사람은 외부와 내면의 갈등 사이에 끼인 속절없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창조 때에 세상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창세기 1:2) 상태에 있었습니다. 사람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는 이유입니다. 사람은 생노병사의 수레바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운명을 수천 년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평화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혼란이 자연스러운 것이요, 왕자와 공주처럼 대우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고난과 혼란과 슬픔이 당연한 것이 사람과 세상의 운명입니다. 그런 운명에도 사람의 죄악은 날로 심각해지며 세상을 무정하게 만들어오고 있음을 역사는 명백히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을까요? 그 본질과 운명 때문에 역사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위대한 기별을 전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이사야는 다가오는 평화로운 시대의 모습을 위대한 평화의 왕이 등장하는 놀라운 예언을 선포합니다. 평화는 사람의 노력으로는 이 땅에서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사야가 묘사한 이 표현들을 완전하고 분명하게 적용할 수 있는 분은 한 분 외에는 없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표현의 아름다움, 감정의 강렬함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낸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 이 세상을 무시하셨다면 세상은 그 죄악과 비참함의 영원한 수레바퀴를 멈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 우주의 창조주께서 우주 안에서 찾기도 어려운 지구성을 사랑하셔서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평화를 주시며, 세상도 회복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목회자 최상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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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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