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영성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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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영성센터는 교파를 초월해 사목자와 평신도 누구나 회원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성공회 영성센터는 2001년 12월 9일 발족하였으며 묵상집 을 매달 발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달 성공회 영성월례마당과 월례피정을 통해 기도와 활동의 일치를 지향합니다.

11/09/2026

■ 9월 12일 토요일: 루가 6:43-49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어떤 나무든지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딸 수 없다. 선한 사람은 선한 마음의 창고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그 악한 창고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이 입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너희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하면서 어찌하여 내 말을 실행하지 않느냐?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주겠다. 그 사람은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큰 물이 집으로 들이치더라도 그 집은 튼튼하게 지었기 때문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큰물이 들이치면 그 집은 곧 무너져 여지없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 오늘의 말씀
그 사람은 깊이 파고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 오늘의 묵상: 불편함으로 짓는 튼튼한 집
반석 위에 집을 튼튼하게 짓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래밭 위에 쉽고 편하게 집을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반석을 찾기 위해 불편함을 인내하고 주님과 대화하며 지내시는 성도도 계시고, 커다란 공간에서 내면에 귀기울이지 않고 성직자의 설교나 강론을 편하게 듣는 성도도 계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좇는 분이야말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완덕에 이르는 길을 비유로 이렇게 말씀해 주신 주님을 우리는 기억하게 됩니다.
인터넷을 통해, 전기나 엔진을 사용하지 않은 채 기본적인 도구를 사용하며 집을 짓는 영상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분명히 불편하지만 보람 있게 해 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도 훈련만 받으면 저렇게 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하느님께서 저렇게 해 보라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기꺼이 따를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떠오릅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불편함을 기꺼이 감내하고 튼튼한 집을 짓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하느님, 어떠한 악으로도 무너질 수 없는 집을 성도들이 지을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10/09/2026

■ 9월 11일 금요일: 루가 6:39-42
예수께서는 또 이렇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소경이 어떻게 소경의 길잡이가 될 수 있겠느냐? 그러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을 수는 없다. 제자는 다 배우고 나도 스승만큼밖에는 되지 못한다. 너는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면서도 어째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더러 ‘네 눈의 티를 빼내 주겠다.’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꺼낼 수 있다.”

■ 오늘의 말씀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더러 ‘네 눈의 티를 빼내 주겠다.’ 하겠느냐?

■ 오늘의 묵상: 반듯한 거울
간혹 놀이공원에서 경험하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울퉁불퉁한 거울 앞에 서면, 자신의 모습이 길게 늘어나 보이거나 우스꽝스럽게 보입니다. 심리학에서는 ‘크레이지 미러’(Crazy Mirror)라고 하는데요. 우리는 흔히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이 거울이 굴곡져 있거나 깨져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런데 내 거울이 상처와 굴곡으로 얼룩져 있다면 나와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게 비칠 것입니다. 내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동료의 작은 티에 분노하는 모습이 그렇지요. 우리는 자신의 상처에는 극도로 예민하지만 타인의 고통에는 무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자들을 예수께서 위선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오늘 ‘소경이 소경의 길잡이가 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로운 인도하심을 따를 때, 우리 손을 잡은 누군가도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모습이 좀 더 반듯한 거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보다 자신의 소망과 욕망을 보고 있는 우리 눈의 들보를 빼주시고, 우리의 눈이 당신을 향하게 해 주십시오.

10/09/2026

■ 9월 10일 목요일: 루가 6:27-38
“그러나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빼앗는 사람에게는 되받으려고 하지 마라.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너희가 만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너희가 만일 자기한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큼은 한다. 너희가 만일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것을 알면 서로 꾸어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어라. 그리고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며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비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서 너희에게 안겨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되어 주는 분량만큼 너희도 받을 것이다.”

■ 오늘의 말씀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오늘의 묵상: 자비의 마음으로 걸어가는 길
복음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이를 축복하며, 아낌없이 내어 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마주합니다. 인간의 셈법과 기준으로는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높은 산처럼 느껴지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거룩한 요청의 중심에는 단 하나의 진리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선행의 나열이 아닙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그 깊고 넓은 마음을 온전히 닮아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철저하게 조건을 따지거나 받을 자격이 있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제한된 사랑이 아닙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이에게도, 끊임없이 넘어지는 죄인에게도 언제나 한 걸음 먼저 다가가시는 숨결과 같습니다.
나 자신의 지난 날을 조용히 돌아봅니다. 수없이 부족하고 연약하여 넘어지면서도, 오직 그분의 한없는 자비 덕분에 오늘까지 숨 쉬고 살아왔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는 타인의 사소한 잘못은 옹졸하게 기억하고, 마음에 난 상처는 오랜 시간 쥐고 놓아주지 않으며, 사랑보다는 날 선 판단을 먼저 앞세울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진정한 자비란 상대방의 잘못을 단순히 무마하거나 없던 일로 덮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영혼과 마음이 미움이라는 감옥에 묶여 썩어 가지 않도록 풀어 주는 거룩한 선택입니다. 용서는 결코 약함의 발로가 아니라,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온전함을 믿는 참된 용기입니다. 결국 자비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 메마른 힘으로 쥐어짜며 애쓰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를 끝없이 품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매일의 삶 속에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다짐해 봅니다. 누군가를 향한 날카로운 판단의 칼날을 거두고 그를 먼저 이해하려 애쓰겠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갚으려 하기보다 따뜻한 사랑으로 응답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내게 거저 주신 그분의 자비를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고 싶습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하늘 아버지의 참된 자녀로서, 그분과 함께 걷는 사랑의 길 위에 당당히 서게 될 것입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내 힘으로는 미움을 이겨 낼 수 없사오니, 날마다 당신의 자비로 제 마음을 채우시어 저 역시 아낌없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08/09/2026

■ 9월 9일 수요일: 루가 6:20-26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 오늘의 말씀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 오늘의 묵상: 위로와 도전
예수님이 가난한 나, 굶주리고 있는 나, 울고 있는 나, 남들에게 미움을 받고 억울한 취급을 받고 있는 나를 보시고 계십니다. 제 마음은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는 막막한 심정입니다. 그때, 주님이 내 얼굴을 보시며 부드럽게 말을 건네십니다. 행복할 것이라고 위로하십니다. 이 말씀에 눈물이 흐르면서 얼어 버린 내 마음이 녹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나의 다른 모습을 봅니다. 부요하고 배부른 나, 남들에게 칭찬받고 웃고 있는 나를 봅니다. 예수님이 나를 보며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러고 있을 때 한쪽에서 굶고 있고, 아무런 위로도 받지 못한 채 슬퍼하고 있는 사람, 칭찬은커녕 모함을 당해 힘들어하고 있는 네 이웃을 보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이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기도를 마치며 주님으로부터 받은 이 위로를 저도 제 이웃에게 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저를 위로의 사도로 써 주소서.

07/09/2026

■ 9월 8일 화요일: 마태 1:1-16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은 야곱을,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았으며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제라를 낳았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헤스론은 람을, 람은 암미나답을,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았으며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아비야는 아삽을, 아삽은 여호사밧을, 여호사밧은 요람을, 요람은 우찌야를, 우찌야는 요담을, 요담은 아하즈를,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므나쎄는 아모스를, 아모스는 요시야를 낳았고,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으로 끌려갈 무렵에 요시야는 여고니야와 그의 동생들을 낳았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다음 여고니야는 스알디엘을 낳았고 스알디엘은 즈루빠벨을,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아비훗은 엘리아킴을, 엘리아킴은 아졸을,
아졸은 사독을, 사독은 아힘을, 아힘은 엘리훗을, 엘리훗은 엘르아잘을, 엘르아잘은 마딴을, 마딴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는데 이분을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 오늘의 말씀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

■ 오늘의 묵상: 우리와 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나열됩니다. 그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로 이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이 족보에 담겨 있는 수많은 이름은 인간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 안에는 아브라함, 다윗, 예언자, 이스라엘의 왕들처럼 위대하고 저명한 인물의 이름뿐 아니라, 그 시대 안에서 감추어질 수 있었던 여성들의 이름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곱씹어서 묵상하여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위대한 인물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이름을 포함한, 그야말로 우리의 초라하고 일상적인 삶 가운데에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한가운데에서 우리와 함께 이 삶을 살아가고자 우리 인간을 통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삶을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이제 우리는 저 멀리,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차원에 있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삶 안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는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고, 진실로 느끼며, 하느님과 한 발 한 발 함께 걸으며, 이 은총의 삶을 살아가는 중입니다.

■ 오늘의 기도
우리와 언제나 동행하여 주시는 하느님, 오늘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와 같은 삶을 통하여 우리와 당신의 거리를 좁혀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당신의 동행하심을 잊지 않고 남은 삶을 걸어갈 수 있도록 끝까지 인도하여 주소서.

06/09/2026

■ 9월 7일 월요일: 루가 6:6-11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고 계셨는데 거기에 마침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한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기만 하면 그를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속셈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 서라." 하셨다. 그가 일어나 가운데로 나서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다. 율법에 어떻게 하라고 하였느냐?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악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사람을 살리라고 하였느냐? 죽이라고 하였느냐?" 이렇게 물으시며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 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펴라." 하셨다. 그가 손을 펴자 그 손이 이전처럼 성하게 되었다. 그들은 잔뜩 화가 나서 예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서로 의논하였다.

■ 오늘의 말씀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 서라.” 하셨다.

■ 오늘의 묵상: 치유의 은총
오늘은 말씀에 등장하는 오른손이 오그라든 이와 기적을 지켜보는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의 모습에 제 묵상이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회당 한구석에서 가르침을 듣던 그에게 가운데로 나아오라는 말씀이 떨어지자, 그는 부끄럽고 주저하는 마음을 누르고 예수님께 나갔을 것입니다. 고쳐 주시리라는 믿음을 추스르며 마침내는 담대하게 회당 가운데에 서자, 주께서 그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주체하기 힘든 은혜의 감격을 안고 달려 나가 주님이 베푸신 기적을 간증하는 그의 모습이 상상되며, 조용히 제 마음에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다른 한쪽은 똑같은 치유의 기적을 눈으로 보면서도 자신들의 영향력에 해가 미칠까 두려워 예수님을 죽일 마음을 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만 그들의 완악함 쪽으로 묵상이 넘어가는 순간, 제 안에도 숨어 있는 그것이 들여다보였습니다. 교묘하게 진리와 정의를 외면하고, 욕심과 이기심에 몸과 마음을 맡겼던 일들이 줄줄이 떠오르며, 이번에는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졌습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상한 모든 이들을 고쳐 주시는 주님, 내 앞으로 나오라는 당신의 음성을 듣게 되길 원합니다. 음성을 듣고 회당 안의 그처럼 용기를 내어 떨치고 일어나 당신께 나가길 원합니다. 마침내 회복의 은총을 안고 달려 나가 언제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길 간구합니다.

■ 오늘의 기도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05/09/2026

■ 9월 6일 연중 23주일: 마태 18:15-20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들어 확정하여라.’ 한 말씀대로 모든 사실을 밝혀라. 그래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 오늘의 말씀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 오늘의 묵상: 단 두세 사람이라도
오늘 말씀은 공동체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공동체 안에 누군가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에도 쉽게 내치지 말고 두세 번 더 깨우칠 기회를 주라고 말씀합니다. 생각해 보면, 실로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못을 해서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권면을 위해 두세 번 찾아가기까지 해야 하다니요. 하지만 예수께서는 다른 이들을 용납하는 용서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자리에 함께하시겠다 약속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공동체 안에는 우리와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늘 있기 때문이지요. 제 자신을 가만히 성찰해 보아도, 멀리 있는 이들에 아픔과 상처는 공감하기 쉽지만, 가까이 있는 제 주변 이웃의 상처를 보듬는 것은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 이웃일수록 우리에게 적은 의무감을 주고, 가까운 이웃일수록 큰 부담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가까이 있을수록 사람들의 약점이 더 도드라지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모을 때 예수께서는 그 자리에 함께하십니다. 다른 이들에 대한 용납과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공동체를 이룰 수 없고, 공동체를 이루지 않는 것은 예수가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품어 주어야 할 이웃은 누구인가요? 오늘 우리는 누구의 얼굴에서 예수님을 보고 있나요?

■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에게도 두세 번 찾아가서 권면할 것을 말씀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약한 이웃을 사랑과 용서로 품어 주며, 그 공동체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소서.

04/09/2026

■ 9월 5일 토요일: 루가 6:1-5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 때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 먹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 몇몇이 "당신들은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물으셨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다윗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들밖에 먹을 수 없는 제단의 빵을 먹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 오늘의 말씀
다윗이 한 일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오늘의 묵상: 다윗이 한 일오늘 복음 말씀을 읽으며, 사실 다윗이 한 일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해 다시 성서를 찾아보았습니다. 다윗은 굶주린 자신과 부하들을 위해 사제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함께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해 율법의 형식보다 사람의 생명과 필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선언하시며,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며, 율법이나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알려주십니다.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과 성과로 수많은 식재료와 먹을거리가 넘쳐 납니다. 놀라운 기술과 거대한 자본은 우리의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목숨이 위험한 아이들이 있고, 마실 물을 구할 수 없어 학교 대신 물을 뜨러 다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새로운 기술과 자본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눈부신 발전에 그늘에 가려져 당장 생명을 부지할 방법조차 찾지 못해 헤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매우 많습니다. 전 지구적인 발전과 변화가 정말 ‘사람’을 생각하는 세상으로 향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됩니다.다윗의 굶주림을 외면하지 않으셨던 하느님, 그리고 안식일에도 ‘사람’을 먼저 생각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회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변화 많은 세상 속에서도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어 주소서.

03/09/2026

■ 9월 4일 금요일: 루가 5:33-39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요한의 제자들은 물론이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제자들까지도 자주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합니까?” 하며 따지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잔칫집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그들을 단식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제 때가 오면 신랑을 빼앗길 것이니 그 때에는 그들도 단식을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내어 헌 옷을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못쓰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새 옷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 술을 헌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릴 것이니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는 못쓰게 된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또 묵은 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 하면서 새 것을 마시려 하지 않는다.”

■ 오늘의 말씀
잔칫집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그들을 단식하게 할 수 있겠느냐?

■ 오늘의 묵상: 단식과 잔치의 선상에서
‘광야에 외치는 소리’인 세례자 요한은 죄에 있어 한 치의 망설임과 양보가 없었던 최후의 예언자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며 회개를 촉구하던 그의 외침은 우리 내면의 죄악과 연약함을 반성하게 합니다. 그 반성은 단식으로 이어집니다. 한편 우리 죄에 대한 완전한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회개는 단식의 삶으로 이어지고 죄의 용서는 잔치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나의 삶에 주인으로 모신다면 그 삶은 잔치의 삶이고, 내 삶이 주님을 떠나 죄악 가운데 머문다면 그 삶은 회개와 단식이 필요한 삶일 것입니다. 내 안에는 어느 하나의 삶만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 안에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처럼 회개가 필요한 모습도 존재하고,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누리는 아름다움 또한 함께 있습니다. 매주일 감사성찬례를 시작하며 죄의 고백 시간에는 내 안에 있는 허물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성찬의 전례에 예수님의 은총과 용서의 잔치를 경험합니다.
늘 단식과 잔치라는 두 가지 삶의 선상에서 살아가는 ‘나’이지만, 새로워지기 위해 늘 주님께 자신을 드려 봅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내가 죄악의 길로 들어설 때는 회개하게 하시고, 당신의 용서를 깨달았을 때는 기뻐하게 하소서. 삶의 순간순간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변화시켜 주시고, 나를 새롭게 하여 주소서.

03/09/2026

■ 9월 3일 목요일: 루가 5:1-11
하루는 많은 사람들이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는 예수를 에워싸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 때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대어둔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시몬의 배였는데 예수께서는 그 배에 올라 시몬에게 배를 땅에서 조금 떼어놓게 하신 다음 배에 앉아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그의 동료들과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 오늘의 말씀
너는 이제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 오늘의 묵상: 사람 낚는 일
그동안 물고기 잡는 일만 해 오던 시몬이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어땠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에워싸고 하느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도 시몬과 동료들은 그 옆 호숫가에서 그저 그물을 씻고 있던 어부들이었습니다. 고기 잡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던 어부로 보이는 이들이 어떻게 사람 낚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에 모든 걸 버리고 따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예수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을수록 더 놀라게 되는 것은, 시몬이 예수님 말씀대로 많은 고기를 잡은 일이나 그 이후 시몬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른 일보다 그 이전, 예수님의 능력을 알기 전에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시몬의 태도입니다. 밤새도록 일을 했으니 피곤했을 텐데도 예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라고 하시니 그대로 합니다. 그런 시몬에게 예수께서 사람 낚는 일을 함께하자고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겟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하느님 말씀을 듣겠다고 몰려온 이들도 많았는데 그 옆에서 그물 씻고 있는 어부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시는 것엔 그만한 이유가 분명 있으셨을 겁니다.
고기가 잡히지도 않는데 밤새 애쓰는 우직함, 밤새도록 애쓰고 한 마리도 못 잡은 좌절, 허탈한 상태에도 예수님 말씀을 따라 깊은 데로 가서 다시 그물을 치는 순종, 예상치 못한 큰 수확에 두려워하며 자신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겸손까지. 과연 시몬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을 만합니다. 이제 시선을 내게 돌려봅니다. 내게 이 우직함과 순종과 겸손이 있는지 말입니다. 이 시몬의 미덕을 겸비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무엇”이 아니라 “누구”를 얻고자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숭고한 일인지는 알고 있는지 스스로 묻습니다.

■ 오늘의 기도
자비하신 주여, 시몬의 우직함과 순종, 겸손함을 제 마음에 허락해 주시고, 사람 낚는 귀하고 숭고한 일을 기쁨으로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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