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영성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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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영성센터는 교파를 초월해 사목자와 평신도 누구나 회원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성공회 영성센터는 2001년 12월 9일 발족하였으며 묵상집 을 매달 발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달 성공회 영성월례마당과 월례피정을 통해 기도와 활동의 일치를 지향합니다.

08/06/2026

■ 6월 9일 화요일: 마태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 데에도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 오늘의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오늘의 묵상: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우리를 일컬어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김장철 배추에 넣는 소금과 어둠 속에 켜져 있는 촛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김장 소금은 배추의 숨을 죽여 절임 상태를 만들고, 유해균을 막아 김치가 썩지 않게 하고, 동시에 젖산균 생육을 도와 배추의 식감을 아삭하게 합니다. 또한 촛불은 어둠을 밝히고, 특별히 기도할 때 정신을 집중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이 둘을 가만히 보면, 소금은 자신을 녹여 배추를 살리고, 촛불은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면서 우리의 정신을 집중케 합니다. 모두 자신을 비우는 ‘무아’(無我)를 통해 그 대상을 돋보이게 합니다.
주님이 당신의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는 말씀으로 ‘나’라는 ‘자아’(自我)를 넘어서, ‘무아’가 되어 세상을 맛깔나고 환하게 하라고 하셨듯이, 저도 그러한 제자의 길을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빛과 소금이신 주님, 당신이 가신 ‘자기 비움’의 길을 저도 닮게 하소서.”

07/06/2026

■ 6월 8일 월요일: 마태 5:1-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예수께서는 비로소 입을 열어 이렇게 가르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 오늘의 말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오늘의 묵상: 감사와 만족의 마음
예수께서는 산에 올라 산상설교를 하시며 여덟 가지 형태의 복 있는 삶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마음이 가난한 자의 행복’에 대하여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벌어지는 부정적인 일들은 탐욕과 욕심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 하는 욕심, 남의 것을 탐하여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분별을 잃는 경우들에서 많은 부정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심과 탐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욕심과 탐욕대로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절제와 만족의 삶은 ‘마음의 가난함’에서 비롯됩니다. 마음이 가난한 상태란 나의 만족이 내가 가진 것이 얼마인가에 달려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마음이 이미 가난하기에, 마음이 이미 비어 있기에, 나에게 주어지는 만큼만을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여 비어 있지 않고 부유하여 가득 차 있다면, 같은 상황에서도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언제나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물이 반쯤 담겨 있는 물잔을 보고 누군가는 물이 반밖에 없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말한다는 익숙한 비유 속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가난한 마음을 지닌 자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당신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나이다. 우리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오니, 당신께서 우리의 마음을 비워 주시고 그 비워진 마음을 언제나 감사와 만족으로 충만케 하소서.

06/06/2026

■ 6월 7일 연중 10주일: 마태 9:9-13, 18-26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부르셨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 나섰다. 예수께서 마태오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세리와 죄인들도 많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게 되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께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집에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일어나 그를 따라가셨다. 마침 그 때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던 어떤 여자가 뒤로 와서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 예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 "안심하여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하고 말씀하시자 그 여자는 대뜸 병이 나았다. 예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러 피리 부는 사람들과 곡하며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다들 물러가라.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만 쳤다. 그 사람들이 다 밖으로 나간 뒤에 예수께서 방에 들어가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그 아이는 곧 일어났다. 이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 오늘의 말씀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던 여자가 뒤로 와서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

■ 오늘의 묵상: 작은 용기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면 자신의 병이 낫게 되리라는 기대로 손을 내민 여인의 믿음에 묵상이 머무는 동안 얼마 전 교회 주보에 실린 글이 떠올랐습니다. “믿음은 확신의 결과가 아니라 초대에 응답하는 작은 용기이며, 그 응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 계신 주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이런 작은 용기의 이야기는 성서 속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인이 중풍에 걸린 백인대장, 딸의 죽음을 겪는 야이로 회당장, 예리고와 베싸이다의 소경, 지붕을 뚫어 중풍병자를 주님 앞으로 내려 보낸 지인들,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리아와 마르타까지. 작은 용기에서 비롯된 그들의 간청으로 예수님께서는 아픈 이들의 병을 낫게 하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셨으며, 그 기적을 목격한 많은 이가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고난의 연속인 일상 때문에 절망의 터널 속에 누워 있는 이들이, 아들을 포함해 여럿 제 주변에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기적을 베풀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곁에서 들어주고 쓰다듬고 안아 주려 애를 써봅니다. 우리 주님이 늘 약자들을 초대하고 환대하는 분이심을 믿고, 그들이 작은 용기를 내어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게 되는 그날까지 기도로 견디며 함께 걷는 동행자로 남기를 원합니다.

■ 오늘의 기도
어둠 속에 누워 머뭇거림과 두려움에 머물기보다 용기를 내어 떨치고 일어나 빛을 향해 나오는 그들이 될 수 있도록 주 성령께서 도와주시길 간구합니다.

05/06/2026

■ 6월 6일 토요일: 마르 12:38-44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기다란 예복을 걸치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찾으며 잔칫집에 가면 제일 윗자리에 앉으려 한다. 또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오래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그만큼 더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 헌금궤 맞은편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 때 부자들은 여럿이 와서 많은 돈을 넣었는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겨우 렙톤 두 개를 넣었다. 이것은 동전 한 닢 값어치의 돈이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헌금궤에 넣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셈이다.”

■ 오늘의 말씀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셈이다

■ 오늘의 묵상: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렙톤 두 개를 넣은 여인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해당 본문만 떼어 읽으면 예수님께서 여인의 봉헌을 칭찬하시며 우리의 모든 재산을 털어서 교회에 헌금하라 하시는 것처럼 읽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앞선 이야기와 함께 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여인의 이야기에 앞서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 말씀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언제나 자신을 높이는 사람들이고, 약한 이들의 재산을 가로채는 위선자들이기 때문이지요. 이 맥락에서 여인의 두 렙톤 이야기를 읽으면 그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율법학자들에게는 종교적인 형식은 있었지만 사랑이 없었습니다. 오늘 이야기에 나온 여인 역시 그들에게 재산을 빼앗긴 피해자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여인에게 빼앗은 재산을 하느님께 자랑스레 바쳤겠지요. 여인이 내일 먹을 음식을 구해야 할 돈 역시 율법학자들이 생색내며 낸 헌금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점을 꼬집습니다. 여인의 재산은 그녀의 재산을 착취한 이들의 헌금으로 하느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모든 재산을 하느님께 바쳤다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만일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우리보다 약한 이들을 착취하고 돌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율법학자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중 가장 큰 계명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꼽으셨습니다.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느님을 진정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아야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랑해야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주님께서는 연약한 과부의 편에서 그녀를 착취하던 율법학자를 비판하셨습니다. 비오니,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고, 우리 주변에 약하고 힘없는 이들을 돌볼 수 있는 너그러움과 사랑을 부어 주소서.

04/06/2026

■ 6월 5일 금요일: 마르 12:35-37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다윗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 스스로, '주 하느님께서 내 주님께 이르신 말씀,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하지 않았더냐? 이렇게 다윗 자신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 오늘의 말씀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 오늘의 묵상: 나의 뿌리
아이가 묻습니다. “아빠, 우린 무슨 ○ 씨야?”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오래전 기억이 떠오릅니다.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이야기, 우리가 얼마나 뼈대 있는 집안인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라서 족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그 이야기조차 허풍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고아였고, 어린 시절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라 부르며 제사를 드리러 다니던 그 집은 실제로는 혈연이 아닌, 가깝게 지내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에게는 족보를 길게 이야기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우리 집은 이런 과정을 거쳐 왔다”고 조심스럽게 말해 줄 뿐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알고 있던 ‘다윗의 자손’이라는 이해를 넘어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십니다. 그 모습을 보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던 이들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저 역시 한때는 아버지가 말해 주시던 ‘위대한 조상’ 이야기가 자랑스럽고 뿌듯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큰 실망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진짜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이제 저는 아이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뿌리는 혈통이나 족보가 아니라, 하느님께 있음을 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다.”

■ 오늘의 기도
주여. 제 뿌리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사랑 안에서 오늘도 제 삶의 이름을 잃지 않게 하소서.

04/06/2026

■ 6월 4일 목요일 그리스도의 성체일: 요한 6:51-58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유다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서로 따졌다.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은 너희의 조상들이 먹고도 결국 죽어간 그런 빵이 아니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 오늘의 말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 오늘의 묵상: 생명의 빵 되신 예수
주님은 ‘빵집’이라는 의미를 지닌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주님은 본인이 태어난 곳의 지명과 같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빵 되신 주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것은 그분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관계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고, 우리의 인생에 그분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내가 그분이 되고 그분이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받아 모시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작은 예수입니다. 한 명의 작은 예수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겠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오늘도 당신을 닮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한 명의 작은 예수로 살아가게 하소서.주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 땅 위에 살아가신 것처럼, 저 또한 이 땅 위에서 살아갈 때 당신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02/06/2026

■ 6월 3일 수요일: 마르 12:18-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정해 준 법에는 '형이 자녀가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자기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전에 칠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얻었다가 자식 없이 죽어서 둘째가 형수를 자기 아내로 맞았지만 그도 또한 자식 없이 죽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 일곱 형제가 다 자식 없이 죽고 마침내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칠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부활 때에 그들이 다시 살아나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성서도 모르고 하느님의 권능도 모르니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다음에는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 너희는 모세의 책에 있는 가시덤불 대목에서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거기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4)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 이사악의 하느님이요,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셨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너희의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 오늘의 말씀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 오늘의 묵상: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
지금 우리 공동체는 한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충격과 상처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모든 죽음이 다 마음 아프지만, 특별히 한창 삶의 꿈을 품고 성장할 나이의 아이가 세상을 떠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이 아픈 마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마주합니다.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설정한 이상한 이야기에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성서도 모르고 하느님의 권능도 모르니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라고 하신 성서의 말씀이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글이라고 하십니다.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의 모든 한계를 초월하시고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분께서 당신 자신을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하신다면, 지금 당장 우리 눈에 안 보인다고 그들을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하느님께 살아 있는 이들이라면 우리는 그들의 부활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느님과 관계 맺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들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내가 살아 있는 존재인지를 물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너무 일찍 떠나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한 아이의 죽음 앞에 위안과 소망을 품게 하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살아 계시며 영원하신 하느님, 우리가 당신 안에서 참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01/06/2026

■ 6월 2일 화요일: 마르 12:13-17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트집잡아 올가미를 씌우려고 바리사이파와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예수께 보냈다. 그 사람들은 예수께 와서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진실하시며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아무도 꺼리시지 않고 하느님의 진리를 참되게 가르치시는 줄 압니다. 그런데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교활한 속셈을 알아채시고 "왜 나의 속을 떠보는 거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다오." 하셨다. 그들이 돈을 가져오자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경탄해 마지않았다.

■ 오늘의 말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 오늘의 묵상: 하느님을 인정하는 삶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기도를 하다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요구를 포함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제 필요를 털어놓으며 기도를 시작하지만, 기도의 끝은 나의 결심으로, 때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면서 마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속셈을 알아차리시는 예수님의 시선이 제게 닿자 부끄러워졌습니다. 입으로는 늘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고백하지만, 제 삶의 주인은 여전히 ‘나’임을 제가 알듯이 주님께서도 아시기 때문입니다. 제 힘으로 ‘나’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를 수 없음을 고백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제 연약함을 잘 아시오니,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저를 도와주소서!’ 그때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제게 위로를 주십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하시는 말씀을 통해, 제가 할 일은 제게 주신 하느님의 것, 곧 생명을 포함한 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주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제가 진실하게 살아가며 제게 맡기신 것들을 잘 돌보는 청지기로 살아가게 하소서.’ 제게 주신 것들을 돌아보며 제 마음은 점점 감사로 채워집니다. 그 감사의 마음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으로 다가옵니다. 제 안에 가득한 욕심과 걱정과 두려움이 어느새 사랑으로 변화되었음을 느끼며 주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기도를 마무리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내 모든 것! 아멘.

31/05/2026

■ 6월 1일 월요일 성모 방문 축일(5월 31일에서 이동): 루가 1:39-56
며칠 뒤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서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오늘의 말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 오늘의 묵상: 부드러운 동반자가 되기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루가 1:31)라는 천사의 말을 들은 처녀 마리아는 놀랍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약혼한 요셉에게는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을 어딘가 풀어야 할 때 친척 언니 엘리사벳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늙은 여자가 임신을 했으니 마리아가 겪고 있는 상황을 의논하기에 적절합니다. 두 여자 모두 “하느님의 손길”이 자신과 함께하고 있다는 체험을 나누고 “성령의 권능”을 확신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합니다.
같은 신앙으로 함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교우들 사이에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좋은 모범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신자가 같은 교회에서 엘리사벳 같은 신앙의 선배를 만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교회 안에 마리아와 엘리사벳 같은 신자들이 많이 있기를 바라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힘들고 고민이 될 때 교회 안에서 좋은 안내자를 찾기보다는 교회 밖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봅니다.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신앙의 선배들이 엘리사벳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회에서 그런 교육과 훈련을 더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헨리 나우웬이 설파한 신앙의 신비가 있습니다. 충고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어둠에서 은총의 빛을 먼저 체험한 선배들이 자연스럽게 지금 어둠 속에 있는 후배들에게 위로자가 되고 안내자가 되어 함께 비를 맞으며 동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충고하고 가르치려고 하면서 그걸 잘하는 걸로 착각했습니다. 이제는 부드러운 동행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 성령님, 상처 입은 사람들의 동반자가 되는 길을 보여 주십시오!

31/05/2026

■ 5월 31일 성삼위일체대축일: 마태 28:16-20

열한 제자는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갈릴래아에 있는 산으로 갔다. 그들은 거기에서 예수를 뵙고 엎드려 절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오늘의 말씀
“그들은 거기에서 예수를 뵙고 엎드려 절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오늘의 묵상: 어디에 서 있는가?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엎드려 절하던 제자들과 동시에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말씀이 마음 한 편에 남습니다. 주님을 신뢰하여 걱정하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정작 통장 잔고나 아이의 앞날, 혹은 풀리지 않는 관계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집니다. 정말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 맞을까. 매 순간 경험하면서도 왜 의심과 불안은 멈추지 않는 걸까요.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건 제가 불안과 의심이 없는 사람이냐가 아니라, 어디에 서 있느냐는 것 말입니다. 제자들은 완전히 확신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산으로 갔습니다. 마음이 흔들렸을지라도 그냥 함께 같은 산 위에 서 있었습니다. 어쩌면 믿음이란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의심이 있어도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그래서 오늘 말씀은 제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냐고, 수많은 불안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알려 주신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느냐고.

■ 오늘의 기도
주님, 제 믿음은 여전히 흔들리지만, 주님께서 부르신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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