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1/2018
동아리를 지도해주시고 계신 류호영 교수님의 리처드 미들턴,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비평적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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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성경은 성과 속의 구별이 없는 창조와 구속에 관한 하나님에 대한 단일한 세계관은 단순히 인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피조세계에 관한 것이며, 이런 점에서 성경은 죽음 이후 혹은 종말의 시점에 하늘에서 있을 내세적인 삶에 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창조의 하늘과 땅이 근본적으로 새롭게 갱신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 가운데 살게 될 새 인류에 관한 것이라는 핵심적인 전제로부터 시작한다. 한 마디로 본서는 배타적인 내세- 지향적 종말론이 아닌 총체적 종말론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저자의 전제이지만, 이 전제는 인류 지성사의 크나큰 영향을 미친 헬라적 전통의 이원론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며, 동시에 분명 구약 성경이 담고 있는 히브리적 사고의 핵심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헬라적 전통의 이원론은 크리스천 전통의 신앙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쳐서, 크리스천들은 몸/육체의 부활을 고백하면서도, 실존적으로는 영으로 영원히 하늘에서 살 것을 소망한다는 크나큰 역설을 낳게 했다. 정말로 기독교 전통의 신앙은 인류 지성사의 크나큰 족적을 남긴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사고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본의 아닌 가현설적인 잘못된 신앙에 의해서 크게 훼손되어져서 거의 내세적인 문제로 축소되는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인 미들턴은 이러한 영육의 이원론적인 분리와 성과 속의 분리에 덧붙여서 예수의 선포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를 교회와 동일시하는 뿌리 깊은 사고와 하나님의 나라를 땅과 반대되는 하늘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총체적인 종말론적 세계관을 훼손시킨다고 주장한다.
미들턴은 책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1장에서는 통상적인 기독교인들의 내세적인 소망이 지닌 문제점을 다룬다. 2장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사는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의 문제를 다루며, 3장에서는 이 소명이 최초 인류 아담에게 주어졌으며, 족장을 대표하는 아브라함과 이스라엘로 이어졌고 마침내 새 인류의 대표이신 새 아담 예수로 인해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4장-6장은 구원 특히 이스라엘의 구속이 현세적이며 단순히 한 사람의 영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총체적이며, 율법과 지혜문헌이 말하는 참된 삶의 의미 역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참된 생명을 누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현세적이며, 선지서가 말하는 심판 역시 속박아래 있는 현 세대의 삶을 참된 해방과 구속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현세적인 차원의 구속을 말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속이 단순히 이스라엘에게 국한된 구속이 아니라 열국을 포함한 구속이라는 점에서 총제적인 구속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7-10장은 신약의 종말론을 집중적으로 살피면서, 신약의 부활과 종말은 내세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의 번영과 이 땅에서 참 생명의 삶을 억압하고 속박하고 구속하는 왜곡된 창조 질서를 바르게 잡아 원래 창조를 새롭게 갱신하시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역사임을 주장한다. 특히 하늘에서의 내세적인 삶에 관한 것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약본문들도 저자의 의도와 문맥적인 자세한 읽기를 통해 볼 때, 매우 중요한 묵시론적인 패턴 즉 ‘하늘에서 준비되어 종국적으로 땅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는’ 신약의 특이한 묵시론적인 패턴을 보여줄 뿐이라고 바르게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중간상태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약본문들 조차도 피조물 전체의 회복 내지는 갱신 즉 근본적으로 새로워진 창조세계에서의 삶을 뜻하는 부활에 일관되게 관심을 두고 있는 신약의 메시지로 통합될 수밖에 없으며, 결코 중간상태는 피조세계와 온 인류의 갱신인 부활과 분리될 수 없음을 바르게 주장한다. 이상의 성경계시가 지닌 현세적인 특성 또는 총제적인 종말을 중심으로 11장과 12장은 총체적인 종말이 우리로 하여금 이 땅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한다고 요구하는 가라는 하나님 나라-중심적인 삶의 문제인 윤리를 다룬다.
분명 성경적 신앙은 단순히 몸의 부활의 문제만이 아니라, 성경이 천명하고 있는 우리 중에 거하시는 성육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고 싶으셔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고, 이 땅에 인류를 내셨다. 물론 성경이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지만, 창조본문은 분명 하나님의 첫 창조는 종말론적인 지향을 지니며, 이런 점에서 성경은 과정 중에 있는 창조를 말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과정 중에 있는 창조(creation in process)는 첫 창조가 불완전한 창조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창조를 지향하는 옛 창조의 잠정성을 뜻한다(이러한 잠정성에 대한 분명한 예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존재, 첫 인류의 벌거벗음의 상태, 생명나무의 존재와 타락 이후 생명나무 접근의 금지를 들 수 있다).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이 이 땅에서 우리 중에 영원히 거하시려는 일이, 어떻게 타락이란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거하시는 것이 다시 정상궤도로 들어설 수 있을가? 라는 (인류의 구속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 우리 인류와 함께 거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원래 계획이 취소되거나 이 계획이 후순위로 밀려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인류 구속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이 아닌 ‘저 하늘’의 삶을 위한 일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께 함께 사는 일을 가능케 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미들턴은 하나님 나라의 현세적인 성격을 누가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복음 선포(눅4:18-19)를 통해서 잘 예증하고 있다. 교회사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진 누가가 전하는 예수의 복음에 대한 오해와 왜곡은 예수의 복음을 현세적인 삶의 문제로부터 모두 영적인 차원의 문제로 환원시켰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구약은 현세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신약은 구약의 현세적인 차원들을 모두 영적인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뿌리 깊은 기독교 전통의 잘못된 해석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신약은 구약의 메시지를 초역사적이고 초현실적인 저 하늘에 관한 것으로 영적화시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약은 하나님이 뜻하신 이 땅에 이루어지는 구약의 현세적인 번영과 참된 안식과 정의와 평화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이고도 은혜로운 역사 개입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약은 예수를 통해서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다스림만이 이 땅과 이 땅의 인류를 근본적으로 갱신할 수 있다고 천명한다. 즉 피조세계의 근본적인 갱신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다스림은 오직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 땅에 구현되어지며, 예수를 통한 근본적인 갱신은 이런 점에서 영적인 갱신을 뜻하며 동시에 특정한 지역이나 사람들에 국한된 국지적인 갱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온 피조물과 온 인류에 관한 우주적인 갱신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미들턴이 말하는 하늘에 대한 보다 진전된 이해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늘의 나라는 완곡어법으로서 단순히 하나님의 나라를 대체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초월성과 우주적 통치를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주의 기도에서 예수께서 ‘하늘에 계신 우리들의 아버지’가 뜻하는 바와 동일하다. 여기서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장소를 뜻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은 그 어떤 피조물도 마음대로 조정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그 분은 온 우주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우주적 왕권을 지닌 분이라는 것을 뜻한다. 놀라운 점은 바로 이 분이 이 땅 위에 현존하는 실존적인 우리와 생명의 관계를 맺고 우리와 친밀하게 교제하시는 아버지라는 점이다. 이것 역시 우리의 신앙과 삶의 현세적이고도 우주적인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