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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실상사입니다. 지리산, 실상사, 남원시, 인드라망, 공동체, 산내면, 한생명

25/08/2026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3차 천일정진)】
08/26 오늘은 #2200일+058일차

58일.

우주의 실상이 유기적 생명공동체임을 확신한다.
온 우주는 총체적 관계의 진리에 의해 형성된
유기적 생명공동체이다.
유형무형의 모든 것들이
총체적 관계의 진리에 따라
생성 변화하고 있다.
영원에서 영원 끝까지 관계의 진리에 의해
생명공동체로 형성되고,
생명공동체로 활동하는 것이
우주 存在의 실상이다.

[인드라망 헌장]

어제 우리는 인류가 미혹의 문명에서 길을 헤매고 있으며, 희망이 있는 본래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문구를 읽었습니다. 이러한 20세기 말의 진단과 해법은 2026년 현재에도 유효합니다.

「인드라망 헌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실상을 ‘총체적 관계의 진리에 의해 형성된 유기적 생명공동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관계가 변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관계도 변화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조건이 되고 서로의 환경이 되며, 서로 의존해 살아갑니다. 인드라망의 길은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길이 아니라, 이미 그러한 세계와 존재의 실상을 깨닫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길입니다.

인드라망 세계관, 연기적 세계관, 관계론적 세계관 등 여러 이름으로 설명하지만, 이것은 특별한 종교적 관념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언제든 확인할 수 있는 세계와 존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내 몸, 공동체, 사회, 국가에 적용되는 원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문구를 저는 “우주도 공동체, 사회도 공동체, 내 몸도 공동체”라는 도법스님의 말씀과 같은 뜻으로 이해합니다.

25/08/2026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3차 천일정진)】
08/25 오늘은 #2200일+057일차

57일.

너무 오랫동안 길 아닌 길을 달려왔다. 본래의 큰길, 유일한 영원의 길을 잃고 헤맨 것이다. 본래의 길을 찾아야 한다. 영원의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우리들의 희망이 그곳에 있다.

[인드라망 헌장]

인류는 너무 오랫동안 ‘길 아닌 길’, ‘미혹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대안과 전환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이 이 길은 생명을 해치는 길이니, 본래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외침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지난 30년 동안 크게 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자신의 문제로 안고 성찰하는 삶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본래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있고, 새롭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그래서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는 그들을 찾아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잃어버렸던 본래의 큰길을 우리는 깨달음의 문명, ‘본래붓다-동체대비-시민붓다’로 정리하고 사회에 말걸기하고 있습니다. 만일결사의 발걸음은 2200일을 넘어 2300일째를 향하고 있습니다. 인드라망 헌장이 쓰였던 20세기 말에 비해 우리의 토대는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그만큼 희망도 단단해졌습니다.

24/08/2026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3차 천일정진)】
08/24 오늘은 #2200일+056일차

56일.

전혀 뜻하지 않았던 결과인 오늘의 역사 현실은 우주存在의 실상에 대한 무지의 세계관과 방법으로 살아온 필연적 귀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드라망 헌장]

『21세기 약사경』을 읽으며 우리들이 공유했던 현실진단과 문명진단이 오늘 읽는 구절에 단호한 어조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우주 존재의 실상에 대한 무지의 세계관과 방법’을 요즘 우리는 ‘미혹의 문명’이라고 표현합니다.

인류가 처한 오늘의 위기는 악한 사람이 많아서도, 운이 없어서도, 우연히 생긴 것도 아닙니다. 세계와 존재의 실상을 잘못 이해하고, 그 잘못된 이해에 따라 살아온 결과입니다. 인드라망 헌장은 사회를 향해 이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은 세계와 존재의 실상에 대한 무지와 전도몽상이 낳은 필연적 귀결입니다.

22/08/2026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3차 천일정진)】
08/23 오늘은 #2200일+055일차

55일.

역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새로운 모색을 한다.
첨단과학기술에 대한 환상적 미래를 노래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총체적 비인간화 생명 위기의 문제로 불안‧초조하다.

[인드라망 헌장]

오늘부터는 「인드라망 헌장」을 7일 동안 읽습니다. 인드라망 헌장은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창립된 20세기 말의 문제의식을 ‘역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새로운 모색’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당시 언론(법보신문, 2002.02.15.)에서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성격을 “연기적 세계관으로 사회를 해석하고 바꿔나가, 이를 통해 문명의 새물줄기를 열자는 불교공동체운동”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립 이후 어느덧 30년을 바라보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강산이 세 번 변할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의 문제의식은 지금의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세기 말에 제기된 물음들이 지금 우리 앞에 더욱 무겁게 놓여 있습니다.

구체적인 첨단과학기술의 종류는 다르지만, 여전히 과학기술의 진보를 낙관하는 근대의 사고방식이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부작용과 사회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어쩔 수 없이 감내하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외로움, 분노, 경쟁, 혐오, 차별,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등 애써 외면해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불안과 초조를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자신의 문제로 안고 성찰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해결을 맡기거나 그 책임을 떠넘기는 쉬운 길을 선택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불안과 초조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불안하고 초조한지, 이제는 주체적으로 그 이유를 함께 묻고 성찰해야 합니다.

22/08/2026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3차 천일정진)】
08/22 오늘은 #2200일+054일차

54일.

모든 발원 마치옵고 삼보전에 귀의하네

시방세계 항상 계신 보배로운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시방세계 항상 계신 보배로운 가르침에
지성귀의 하옵니다
시방세계 항상 계신 보배로운 승가앞에
지성귀의 하옵니다

[21세기 약사경]

우리는 지난 50여 일간 『21세기 약사경』을 약사여래 부처님 앞에서 법회를 봉행하는 마음으로 읽어왔습니다. 그동안 ‘미혹의 문명에서 깨달음의 문명으로’의 전환을 함께 서원하고, 이를 위해 뭇생명들과 함께 수행하고, 그 길을 함께 걷는 도반들과 서로를 돌보며 세상을 장엄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삼보에 귀의하며 경전을 마무리합니다.

귀의는 단순히 믿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의 몸과 마음을 다해 의지하고, 그 길을 삶의 방향으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깨달은 존재의 길을 따르겠다는 뜻이고, 가르침에 귀의한다는 것은 진리의 길을 배우고 실천하겠다는 뜻이며, 승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공동체와 더불어 수행하고 서로 의지하며 그 길을 걷겠다는 뜻입니다. 모든 발원을 마치고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이제 다시 삶의 자리에서 본래붓다로 살아가겠다는 조용한 다짐입니다.

한데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다짐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 누구의 강요 때문도, 어떤 초월자의 선택 때문도 아닙니다. 그래서 선택의 책임도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을 혼자 감당하지 않습니다. 도반들과 공동체가 함께 책임을 나누며 걸어갑니다.

중국 양나라 시절의 재가 수행자 부대사(傅大士, 497~569)의 선시로 널리 알려진 게송 하나를 나누며 『21세기 약사경』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夜夜抱佛眠(야야포불면) 朝朝還共起(조조환공기)
欲知佛去處(욕지불거처) 語默動靜止(어묵동정지)
밤마다 부처를 품고 잠들고 아침이면 또 부처와 함께 일어난다.
그런데도 부처가 어디 계신지 알고 싶으면 말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바로 그 자리를 보라.

19/08/2026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3차 천일정진)】
08/20 오늘은 #2200일+052일차

52일.

여래의 뜻 삼학수행 원만하게 이루어서
한량없는 공덕으로 온세상을 장엄하니
너도나도 모두 함께 해탈열반 누리소서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21세기 약사경]

어제에 이어 오늘도 모두의 해탈열반을 위한 정진을 다짐합니다. 여래의 뜻을 삼학수행으로 원만하게 이룬다는 말은 계·정·혜를 균형 있게 닦는다는 뜻입니다.

계는 삶의 방향을 바로 세우는 일이고, 정은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하는 일이며, 혜는 세계와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보는 지혜입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바른 삶과 맑은 마음, 깊은 지혜가 함께할 때 수행은 원만하게 이루어집니다.

수행의 공덕은 나 혼자만의 성취에 머물지 않습니다. 공덕은 쌓아두는 데 머물지 않고 세상을 향해 쓰일 때 ’장엄‘으로 이어집니다. 예전에 백일법문을 나누셨던 상연스님은 ’장엄(莊嚴)‘을 서로를 존중하는 것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즉 장엄은 단순히 화려하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향상되는 관계로 세계를 아름답게 하는 일입니다.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서로를 북돋우며 각자가 제자리에서 빛나도록 하는 것, 그렇게 관계를 가꾸어 가는 것이 세상을 장엄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문명전환을 염원하는 우리의 수행은 내 삶의 전환을 넘어, 지역사회와 세상을 밝히고 뭇생명과 함께 살아갈 터전을 장엄하는 일입니다.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를 함께 하는 우리의 정진이 한량없는 공덕이 되어 온 세상을 장엄하고, 너와 나 모두가 함께 해탈열반을 누리기를 발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19/08/2026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3차 천일정진)】
08/19 오늘은 #2200일+051일차

51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부처님의 열반유훈 가슴깊이 새깁니다

[21세기 약사경]

오늘과 내일 이어지는 부분을 저는 ‘정진다짐’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 이유는 부처님의 유훈,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당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실스님은 『붓다, 중도로 살자』에서 이 경구에 대한 설명으로 “대비원력의 발심과 서원에서 살라는 의미이며, 우리가 삶을 향상시키려면 먼저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야 하고 그 변화의 열망들을 꾸준히 실행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와 존재의 실상에 바탕한 실천이어야 한다는 말씀도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정진을 불방일의 뜻과 연결해 ’마음씀‘으로 해석하고, 마음씀은 공동체와 함께하는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정진‘에는 열심히 노력하는 태도에 삶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성찰하는 노력, 수행과 깨달음을 위해 함께하는 공동체를 잘 유지하기 위한 노력까지 포함합니다.

사리불 존자와 우팔리 존자는 이러한 정진을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교단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를 지닌 사리불 존자는 갓 출가한 수행자들을 보살피고 병든 수행자들을 직접 돌보았습니다. 또한 우팔리 존자는 계율을 지키고 공정하게 적용하여 공동체의 갈등을 조정하고 승가의 질서를 세웠습니다. 한 사람은 관계를 돌보는 정진을, 다른 한 사람은 공동체를 지키는 정진을 실천한 것입니다.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은 매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살피며, 공동체를 위해 해야 할 일을 기쁜 마음으로 실천하라는 당부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그 정진의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길 발원합니다.

18/08/2026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3차 천일정진)】
08/18 오늘은 #2200일+050일차

50일.

광명진언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르타야 훔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르타야 훔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르타야 훔

[21세기 약사경]

『21세기 약사경』은 경전을 마무리하는 부분에 원성취진언과 광명진언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어제 이야기한 원성취진언은 ‘도반들과 함께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 끝까지 생명평화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합송하는 광명진언은 이름 그대로 광명, 곧 ‘빛’을 담은 진언입니다. 여러 문화권에서 빛은 깨달음을 상징합니다. 어둠이 걷히면 어두웠던 마음과 세계가 밝아지는 경험이 반영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빛은 혼자만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도 함께 환하게 합니다. 그래서 깨달음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관계와 공동체와 사회를 밝히는 힘으로 이어집니다. 그런 까닭에 광명진언은 전통적으로 자신의 업장 소멸과 다른 존재의 안락과 성불을 발원하며 독송되어 왔습니다.

우리의 언어로 풀어보면, 자신의 참회와 함께 다른 이들도 보살피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광명진언을 법회를 하는 동안 경전을 읽고 수행하며 쌓은 공덕을 타인과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회향(廻向)'의 뜻으로 읽으려 합니다. 『21세기 약사경』에서 광명진언이 이 자리에 놓인 뜻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혹의 문명에서 깨달음의 문명으로” 나아가겠다는 서원을 마치며, 우리는 다시 한번 마음을 밝히고 그 빛이 나에게만 머물지 않고 이웃과 지역, 세상으로 이어지기를 발원합니다. 그리고 그 빛을 삶으로 이어가겠다고 다짐합니다.

16/08/2026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3차 천일정진)】
08/17 오늘은 #2200일+049일차

49일.

원성취진언
옴 아모카 살바다라 사다야 시베 훔
옴 아모카 살바다라 사다야 시베 훔
옴 아모카 살바다라 사다야 시베 훔

[21세기 약사경]

『21세기 약사경』은 이제 서원을 마치고, 진언과 정진다짐, 사홍서원, 삼귀의로 진행됩니다. 서원은 이루고자 하는 바를 밝히고 부처님께 다짐하는 의미를 지니며, 그 뒤의 진언은 그 서원을 단순히 선언으로 끝내지 않고 몸과 말과 마음으로 실천하고 성취하려는 수행으로 이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진언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 신비함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진언을 함께 외우면서 같은 서원을 향한 마음과 의지를 서로 확인하고 북돋우는 데에도 그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언은 무엇인가를 이루게 하는 신비한 말이면서, 동시에 삶의 방향을 거듭 확인하는 발원이자 실천의 다짐입니다.

‘원성취진언’에는 이러한 뜻이 이름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원성취진언은 법회나 의식, 기도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품은 서원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합송합니다.

세상의 전환을 이야기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활동해 왔습니다. 얼마 전에도 이러한 사람들이 지치고 무기력함에 빠지고 일부는 자포자기에 이르렀다는 아픈 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원성취진언’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동안의 실천과 인내, 자비로 쌓은 공덕이 결실로 이어지기를 발원하고, 함께한 도반들을 돌아보는 위로와 연대가 요청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합송하는 원성취진언에는 도반들과 함께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 끝까지 생명평화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14/08/2026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3차 천일정진)】
08/15 오늘은 #2200일+047일차

47일.

최고만을 고집하는 미혹문명 넘어서서
단순하고 소박한 삶 깨달음의 문명으로

[21세기 약사경]

41일차에 저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등주의’를 비판하며, 성장은 경쟁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협력과 돌봄에서 비롯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와 이어지는 최고만을 고집하는 미혹의 문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최고’라는 말은 언제나 비교를 전제로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홀로 빛나는 것, 특출난 것, 남보다 앞서는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래서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삶에 무엇인가 덧붙이려고 합니다. 더 좋은 자리, 더 높은 평가, 더 많은 인정, 더 큰 성취를 향해 눈가리개를 한 가린 경주마처럼 앞을 향해서만 달립니다. 최고만을 추구하는 삶은 비교를 통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덧붙이려는 삶입니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계속 덧붙이는 삶에는 끝이 없습니다.
이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심해집니다. 최고를 향한 욕망도 그렇습니다. 무엇 하나를 이루면 만족할 것 같지만, 그것을 이루는 순간 또 다른 무엇이 필요해집니다. 더 좋은 자리, 더 높은 평가, 더 많은 인정이 새로운 갈증을 만들어냅니다. 최고를 향한 욕망은 충족되기보다 새로운 부족함을 만들어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것을 덧붙이는 일이 아니라,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 살피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일입니다.

소박(素朴)은 본래 꾸미지 않은 본바탕을 잃지 않는 삶입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은 부족한 삶이 아니라, 현재에 만족하며 자기 바탕을 잃지 않는 삶입니다. 더 많이 덧붙이지 않아도 이미 삶을 이루는 중요한 것들이 있음을 아는 삶입니다. 그 바탕이 있을 때 탁월함도 의미를 얻고, 성취도 사람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빛날 수 있습니다. 최고만을 고집하는 문명을 넘어선다는 것은 비교와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삶의 바탕을 회복하자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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