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움교회

다움교회 창원시 진해구 두동에 위치한 다움교회는 교회다운 교회, 목사다운 목사, 성도다운 성도를 꿈꾸는 개척교회입니다.

표어 :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

교회다운 교회, 목사다운 목사, 성도다운 성도를 꿈꿉니다.

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에 는 뜻입니다. 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은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나와 우리가 추구해야 할 푯대입니다

의 또 다른 표현은 입니다. 는 말은 우리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은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라는 말은 로 나타나야 합니다. 는 말은 세상 사람과는 다르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은 세상과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라는 말은 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는 말은 세상이 모르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은 세상이 모르는 기쁨이 넘쳐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기쁨이 넘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존재이유)을 이루어가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 서울 다움교회(양승언 목사)의 ‘다움설명’을 허락을 받고 그대로 사용합니다.

23/05/2026

『성령강림, 교회와 성도의 가장 큰 은혜』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2천여 년 전 예루살렘에서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시작되고 그렇게 시작된 교회가 온전하고 굳건할 수 있는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부활절과 성탄절에 비해 성령강림절은 비교적 조용히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성령님을 너무 익숙하게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강림은 지금의 성도와 교회에 절대 작지 않은 사건입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교회도, 지금 우리의 신앙도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구약에도 성령의 역사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특정한 사람들에게, 특정한 사명을 위해, 특정한 기간 동안 임하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떠나시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울에게 임했던 성령은 그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자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령이 자기 안에 영원히 거하시는 은혜를 아직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이루신 후, 오순절에 성령께서 이 땅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성도 안에 임하십니다. 제한적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일시적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가변적이 아니라 불가변적으로 함께하십니다. 이것은 구약의 성도들도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놀라운 은혜입니다.
성령님은 단지 어떤 능력이나 분위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말씀이 깨달아지며, 죄를 미워하게 되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또한 성령께서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붙드시고 성도를 보호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주일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 안에 친히 거하시며 떠나지 않으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번 성령강림주일에는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사실 자체를 깊이 묵상하며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 안에서 다시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16/05/2026

『함께 살아가고, 함께 기뻐하는 교회』

오늘 우리 교회는 협력 선교사님들과 도움이 필요한 지역 주민을 돕기 위한 긍휼 사역의 하나로 바자회를 진행합니다. 오늘 진행하는 바자회는 단순히 음식과 반찬을 사고파는 행사가 아닙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작은 실천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들을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셨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외롭고 지친 사람들을 찾아가 품어 주셨습니다. 교회 역시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만 전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고 긍휼을 흘려보내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이번 바자회도 바로 그런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작은 정성과 섬김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다시 살아갈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흐름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바자회에 새신자와 새가족으로 초청받아 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다움교회에 처음 오신 모든 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다움교회 성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처음 교회에 오는 분들은 예배보다 먼저 교회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교회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작은 인사와 미소, 따뜻한 관심과 친절이 참 중요합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 작은 친절 하나가 “교회는 따뜻한 곳이구나”, “하나님은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는구나”라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품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진짜 아름다움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 안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모든 분에게 여러분이 받은 사랑과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바자회와 예배 가운데, 서로를 향한 사랑과 섬김이 풍성히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처음 오신 분들이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을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듯, 우리도 한 사람을 소중히 품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09/05/2026

『하나님이 세우신 첫 번째 공동체, 가정』

5월이 되면 사람들은 “가정의 달”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여러 교회에서 달력 기념일 날짜에 맞춰서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스승의 주일 등을 지킵니다. 우리 교회 역시 아이들을 축복하고, 부모님과 어르신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이 시간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교회는 이런 날들을 절기처럼 특별한 형식의 예배로 드리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정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가정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공동체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가정 안에서 부모를 통해 자녀를 돌보게 하시고, 자녀를 통해 부모를 공경하게 하시며,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배우게 하십니다. 생각해 보면 믿음의 가정에서는 우리의 신앙도 대부분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부모의 기도, 함께 드리던 예배, 믿음으로 살아가려 했던 모습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물론 완전한 가정은 없고, 부족함도 있고, 때로는 상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가정을 통해 우리를 붙드시고 자라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가정의 의미가 점점 약해져 가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도 마음은 멀어져 있고, 대화보다 각자의 삶에 더 익숙해져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의도적으로 가족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과 기도를 필요로 하고, 부모는 자녀의 공경과 관심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교회에서 그리고 각 가정에서 가정의 달인 5월에 특별한 행사를 크게 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의 중요한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고 그냥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5월을 보내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되새기고, 교회는 모든 성도의 가정이 믿음 위에 바로 서도록 더욱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각 가정에서는 부모 세대가 믿음의 본을 보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녀들을 품고, 자녀들은 부모의 모범에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안에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함께 모였을 때 다음 세대, 장년, 어르신들이 서로를 존중과 사랑을 품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5월,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감사의 표현 하나, 함께 드리는 짧은 기도 하나가 가정을 다시 세우는 은혜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가장 가까운 공동체인 가정을 다시 돌아보며, 믿음 안에서 서로를 세워가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02/05/2026

『많이 보다 바르고 제대로』

오늘은 정창훈 선교사님이 심장 부정맥 정기 검진으로 귀국하여 함께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벌써 선교사 파송 예배를 드린 지가 4년이 흘렀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한 영혼, 한 지역을 향한 선교를 감당하게 하신 은혜를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선교는 어떤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 사명입니다. 그런데 올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아픈 결정을 하나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교 재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그동안 후원하던 협력 선교사 네 분의 후원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결정이었고, 마음 한편에 계속 부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 가운데 “한 번이라도 마음을 모아 다시 돕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 마음을 모아 5월 17일 주일에 선교와 긍휼 사역을 함께하는 바자회를 열게 되었고, 수익금은 협력 선교사 후원에 사용하려 합니다.
저는 정창훈 선교사님 방문과 선교&긍휼 바자회를 통해 우리 교회가 선교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움교회는 많은 선교사를 넓게 돕는 교회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선교를 바르게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파송 선교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파송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이름만 올려두는 관계가 아니라, 재정으로 책임지고, 기도로 동역하며,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함께 사역하는 교회 말입니다. 선교사는 혼자 사역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가 함께 보내고, 교회와 함께 사역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현실적이고 좋은 방법은 재정의 방향을 바로 세우는 것인데, 저는 우리 교회가 경상회계의 10%를 선교에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 교회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드러내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또한 협력 선교사들과의 관계도 다시 세워가야 합니다. 단순한 후원 관계를 넘어, 서로의 사역을 이해하고, 정기적으로 소통하며, 실제적인 협력으로 이어지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재정적인 한계로 인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형식적인 후원’이 아니라 ‘진실한 동역’을 고민해야 합니다.
선교는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일이 아니라, 교회라면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복음을 맡은 교회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이번 바자회가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우리 교회의 선교를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해 이루실 선교의 열매를 기대하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헌신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5/04/2026

『기울어지는 마음과 분별의 마음』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기도하고 있으니까 괜찮다. 나는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으니까 괜찮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마음이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한 방향이 더 좋아 보이고, 그쪽이 더 옳은 길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방향을 하나님의 뜻으로 확신해 버릴 위험도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이미 어느 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고, 그 마음이 판단을 이끌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단순히 “잘 생각하라”고 하지 않고, “분별하라”고 말씀합니다. 분별은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할수록 우리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더 좋아 보이는 것, 더 커 보이는 것, 더 유익해 보이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때로 더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길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온전히 순종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합니다. 분별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나누고, 함께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십니다.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 먼저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그 마음을 붙잡은 채 결론을 내리기보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분별하려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기도하며 기다리는 그 시간을 통해, 가장 좋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할렐루야~~~~

18/04/2026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지난주 월요일 봄 정기 노회가 있었습니다. 노회는 이 땅의 모든 지역 교회가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연결되어 있고 서로 책임을 나누는 공동체임을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특별히 봄 노회에서는 노회 임원과 여러 상비부 임원을 새롭게 세웁니다. 누군가는 맡아야 하고, 그 맡겨진 일을 통해 교회는 질서 있게 세워져 갑니다. 그런데 이번 노회에서 제게 여러 일이 맡겨졌습니다. (노회 부서기, 시찰회 서기, 교역자회 서기, 전도부 서기)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주어지면서 순간적으로 부담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보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로 나를 불러주셨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회는 누군가의 수고 위에 세워집니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기꺼이 맡아 섬기는 사람들을 통해 공동체는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만약 귀찮다고 모두가 한 걸음씩 물러서면 결국 그 자리는 비어버립니다. 그러나 누군가 한 사람이 한 걸음 내디딜 때, 그 자리는 다시 채워지고 교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우리는 종종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지?’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을 만납니다. 그 일이 꼭 내 몫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리라면, 그것은 짐이 아니라 사명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일을 무조건 떠안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라면, 조금 더 기쁜 마음으로 감당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때 우리는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일에 동참하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길을 기꺼이 걸으셨습니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자리를 피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완전할 수는 없지만, 그 길을 조금씩 따라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부담이 되고, 때로는 마음이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한 걸음 내디딜 때, 하나님은 그 걸음을 통해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의 삶도 더욱 단단하게 빚어 가십니다. 이번 한 주도 각자의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감당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11/04/2026

『새잎이 말해 주는 하나님의 영광』

4월이 되면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산의 모습이 분명하게 달라집니다. 겨우내 메말라 있던 나무들이 하나둘 새 잎을 내기 시작하면서 산 전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푸르러진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면 놀라운 장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비슷해 보이는 나무들이지만 그 잎의 색깔이 하나같이 다 다릅니다. 짙은 초록, 연한 연두, 그리고 그 사이의 미묘한 색들까지 수많은 나무들이 각기 다른 빛깔로 산을 채우고 있습니다. 같은 계열의 색이지만 결코 똑같지 않은 그 모습은 볼수록 신기하고 또 아름답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세밀하심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세상을 기능적으로 만드신 분이 아니라, 이렇게 다양하고 풍성하게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나무를 같은 색으로 만드실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다른 색이 어우러져 더 깊은 아름다움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풍성하심과 창조의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가기 쉽지만, 그 작은 잎사귀 하나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교회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생각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삶의 모습도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다름을 통해 공동체를 세워 가십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모여 하나의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똑같은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통해 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이 새 잎은 우리에게 생명을 말해 줍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던 나무에서 다시 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게 됩니다. 특히 부활주일을 지난 후 바라보는 이 생명의 모습은 우리에게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잎사귀를 천천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손길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크시면서도 세밀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삶을 붙들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04/04/2026

『부활로 시작된 새로운 삶』

부활주일을 맞이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빈 무덤을 함께 떠올립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기쁨으로 고백합니다. 그런데 부활은 단지 우리가 믿고 기념해야 할 사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부활은 지금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현실이며,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정의하는 시작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단순한 기적이나 역사적 사건으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며, 옛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열렸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죽은 후에 천국에 간다”는 소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깊이 연결되는 것이 바로 세례와 입교입니다. 세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물에 잠기는 것은 옛 사람이 죽었음을 의미하고, 물에서 나오는 것은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났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과거의 죄를 씻는 행위일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선언입니다.
부활주일에 세례와 입교를 함께 행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없다면 세례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 성도들은 그 사실을 교회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며, 이미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 고백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여전히 옛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부활은 단지 미래의 소망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이번 부활주일과 세례 입교식을 통해,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죽음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생명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옛 사람으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자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시며, 그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의 생명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삶 전체를 새롭게 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 성도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이 새로운 삶을 기쁨으로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28/03/2026

『고난과 연합, 그리고 새로운 생명』
이번 주는 고난주간입니다. 고난주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길을 걸으셨는지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셨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 고난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간이 지나고 부활주일에 우리는 세례와 입교식을 함께 맞이하게 됩니다. 부활주일과 세례, 이 두 사건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신앙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단지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본질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분만의 사건이 아니라, 그를 믿는 우리 모두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옛사람이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주간과 부활과 세례는 하나로 연결됩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없었다면 그분의 부활도 없고, 우리의 세례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의 새로운 생명도 없습니다. 세례는 단지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행위가 아니라, “나는 이제 옛 삶에 대하여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겠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고난주간을 보내며 우리는 단지 예수님의 고난을 바라보는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고난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 앞에서 우리의 옛 삶을 내려놓고,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세례와 입교를 받는 이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옛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고난주간은 단순히 슬퍼하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복음 앞에 서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세례는 그 복음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고백입니다. 이번 한 주간, 십자가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믿음을 새롭게 붙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주일, 새로운 생명을 고백하는 이들과 함께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 모두가 그 생명 안에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지난 주일, 이수자 집사님께서 건강한 모습으로 예배에 참석하시고, 성경 일독하셔서 축하도 받으시고, 성도들과 기쁨의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함께 예배드리고...
21/03/2026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지난 주일, 이수자 집사님께서 건강한 모습으로 예배에 참석하시고, 성경 일독하셔서 축하도 받으시고, 성도들과 기쁨의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함께 예배드리고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기에, 그 시간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수요일 밤, 집사님께서는 잠자던 중 갑작스럽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우리의 마음은 놀라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를 이렇게 보내는 일은 제게도 아픔이며, 남겨진 우리에게는 깊은 아쉬움과 슬픔을 남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슬픔 가운데서도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분명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빌 3:20)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하나님께로 옮겨지는 사건이며, 이 땅의 장막을 벗고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단순히 이 땅의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슬퍼하지만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집사님이 지금 더 좋은 곳, 주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중요한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짧고, 우리의 시간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건강해 보여도, 아무리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어도, 우리의 생명은 언제든지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을 준비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을 점검하며, 오늘 주어진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이수자 집사님의 소천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준비되어 있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으로 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고백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붙들고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14/03/2026

『하나님이 보내셔야 교회가 세워집니다』
지난 9일(월) 시찰회 모임에서 한 선배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본문은 요한복음 6장 44절 말씀이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그 목사님은 개척을 시작할 때 이 말씀을 붙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말씀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고 합니다. 교회는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가 성장하고 세워지는 일을 사람의 노력과 방법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는 성도들의 헌신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전도도 해야 하고, 섬김도 있어야 하고, 여러 사역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이 말씀은 복음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보여 줍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오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결심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전도해도 하나님이 보내 주셔야 사람이 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해도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사람이 변화됩니다. 교회는 결국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로 세워지는 공동체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생깁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사람이 모이는 것은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둘째는 기대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낙심할 이유도 없고 조급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자리에서 우리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기도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전도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섬겨야 합니다. 누군가는 묵묵히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사람을 보내 주신다는 것을. 교회는 사람의 힘으로 유지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불러 모으셔서 세워 가시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이 교회를 세우셨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도해 오셨으며, 앞으로도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요한복음 6장 44절 말씀을 마음에 붙들었으면 합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하나님이 보내 주시는 사람들을 기대하며, 각자가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되게 섬길 때 하나님은 반드시 교회를 세워 가실 것입니다.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일을 기쁨으로 함께 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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