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018
전북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김종술 목사
“오늘날 미국의 400년이 못되는 역사의 정신적 지주는 바로 청교도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청교도의 신앙만이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갱신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전북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김종술 목사.
그가 말하는 청교도 신앙은 “칼빈주의적인 예배와 교리, 그리고 경건을 강조하면서 로마 천주교회에 의하여 영국교회에 뿌려진 무지와 미신적인 잔재를 제거하고 성경이 다스리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삶과 신앙의 회복이라고 김 목사는 역설한다. 때문에 사람의 삶 전체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영역을 드러내야 한다는 신본주의 사상이 바로 청교도 신앙이라며, 이 신앙을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잃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김 목사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지난해에는 전북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으로 취임해 전북지역 성시화를 위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김 목사는 “영구에서 메이플라워를 타고, 1621년 1월과 2월에 많은 사람이 추위와 굶주림을 당하다가 102명의 승선자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50명에 불과 했다. 참된 신앙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했던 청교도들의 꿈은 깨어지고 결과는 비참했다”며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청교도들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사랑으로 하나돼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세계청교도대회를 유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하는 김 목사는 20여년 전, 당시 유종근 전북도지사 재임 시절에 한국청교도운동본부장을 역임하면서 전주에 세계청교도대회를 유치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전주에 대형 숙박시설과 대형 식당의 부재로 결국 유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항상 빈틈 없이 성실히 목회에 전념해온 김 목사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중요시한다. 특히 정직함을 목양일념으로 펼쳐온 김 목사를 만나본다.
-. 전주에서 세계청교도운동대회를 추진하려고 준비했다가 열악한 숙박시설 등 문제로 결국 포기했다고 하는데.
“아쉬운 것은 세계청교도 대회를 전주에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가졌다. 그때가 유종근 전라북도지사 재임시절이다. 그러나 유치하지 못했다. 세계청교도 대회는 500여명이 한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청교도가 추구하는 것 가운데 교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주는 그러한 장소가 없었다. 숙박시설도 없었다. 청교도운동은 특히 하나님과의 교제를 중요시한다. 그 다음에는 사람과의 사귐도 소중히 여긴다. 함께 떡을 나누며 먹고 마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4년마다 대회를 가진다. 무엇보다 한국이 세계청교도 회원국으로 가입을 못한 것도 아쉽다. 그 이유는 신뢰가 문제이었다. 필리핀도 회원국으로 가입됐다. 한국이 가입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그당시 한국청교도 본부장을 역임했다.”
-. 오는 6월 21일 제12회 영호남한마음성시화대회가 전주바울교회에서 열린다. 이 대회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제12회 영호남성시화한만음대회를 위해 몇 차례 준비모임을 가졌다. 오는 6월 21일과 22일 양일간에 걸쳐 전주바울교회(담임 신용수 목사)에서 열리는 영·호남 한마음성시화대회 전북대회를 개최한다. 지난 2007년부터 영남지역과 호남지역을 순회하며 성시화한마음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는 부산성시화운동본부가 주관해 제11회 지도자대회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마쳤다. 올해는 전주바울교회에서 열린다. 전북성시화가 가장 취약한 지역이다. 전북기독교총연합회와 함께 협력해가고 있다. ‘전 교회가 전 복음을, 전 시민에게 전하자’라는 슬로건으로 거룩한 도시 성장과 복음을 회복하는 복음운동을 펼쳐온 세계성시화운동본부는 그동안 전도 및 기도, 회개와 섬김 그리고 나눔운동을 펼쳐왔고, 국가정책과 지역 자치단체의 공공정책의 반기독교 정책 및 이단 사이비 단체 활동의 조장을 나타내는 악법퇴치와 정책평가를 펼쳐왔다.”
-. 40여 동안 목회활동을 펼쳐오셨는데, 목회방침은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나타나심의 역사에 따라 목회에 전념했다. 목회 현장에도 청교도 신앙을 따라 목회에 전념했다. 특히 내가 기대 이상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 또, 주 안에서 제일 편안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왔다. 결과적으로 저와 성도들 대부분 평강을 누리며 살아왔다. 지금도 성도들이 청교도 신앙을 이해하며 따라온다. 청교도 신앙은 첫째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둘째는 언약의 신앙을 견지하는 것이다. 셋째는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는 헌신의 자리로 나온다. 성도들이 많이 출석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이 신앙을 따라 헌신한다. 그러나 성도들이 주의 종의 목회방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가는 것이 가장 아쉽고, 안타깝다. 정읍용산교회를 개척하고, 진안평강교회에서 6년 동안 시무하고, 84년도에 샬롬교회를 개척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목회 동기는.
“목회동기 74년이다. 군대 제대 후에 익산보건소에 근무했다. 그당시 익산은성교회 출석했다. 그러나 1974년도에 폐결핵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당시 결핵 환자들이 많았다. 폐에 구멍이 생기는 등 중증환자이었다. 좌절과 함께 방황하던 어느날, 진안 운일암으로 요양하기 위해 들어갔다. 그곳에서 천막치고 6개월여 동안 생활했다. 지금의 샬롬수양관 장소이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면 살려주세요. 그러면 주의 사역의 길을 걷겠다고 서원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받으셨다. 중증 폐결핵이 하나님의 역사로 치료를 받았다. 1974년도에 곧바로 신학교에 입학했다. 6개월 동안 폐결핵과 싸우다가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경험했다. 81년도에 설립한 샬롬수양관은 교회보다 먼저 설립됐다. 초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 교회에 출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북한에서 피난온 작은어머니의 신앙이 우리 가족들을 모두 살렸다. 7세 이후에 부안장로교회 출석했고, 63년 됐다. 할아버지 고향은 부안이다. 7세까지 부산에서 살았다. 부안으로 이사 후에 작은어머니 전도로 교회에 출석했다. 작은어머니는 부안장로교회 집사이었다. 신실한 분이셨다. 농번기 때에도 아무리 바빠도 작은어머니는 핍박을 견뎌내며 교회에 출석하신 분이다. 대단한 분이셨다. 작은어머니는 양복점을 하시는 작은아버지와 함께 시부모님을 정성껏 섬기셨다. 삶과 신앙에 있어 모범이 되는 작은어머니의 신앙에 인해 일가친척 대부분 교회에 출석했다. 무엇보다 아내는 나누며 섬기는 은혜가 있고, 남편보다 항상 주님 먼저이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아내의 내조가 있었기에 오늘날 이 자리에 이르렀다.”
임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