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교회

하나교회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인천노회 소속 하나교회입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하나교회입니다.

수요 성경통독 제 1과정 토라 오경 수료식 밀납 추가
08/05/2019

수요 성경통독 제 1과정 토라 오경 수료식
밀납 추가

하나교회 가정의 주일 아이들 선물과 부모님선물
05/05/2019

하나교회 가정의 주일 아이들 선물과 부모님선물

부활의 아침...
21/04/2019

부활의 아침...

22/12/2018

(사 7: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사 7: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사 7: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사 7: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오늘 하나님을 붙잡고 기적을 경험하는 한 사람 한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 번주는 대림절 4째주입니다.
이 대림절기는 성탄을 기다리는 기대와 소망의 절기인데, 성도여러분 정말 성탄을 기다리시는 지요?
옛날에는 성탄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는데 요즘은 다들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과 관련한 사람들을 찾아가, 선물을 돌릴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는 날이거나 물건 팔기 바쁜 시즌의 하나, 또는 잠깐 하루 쉴 수 있는 하루,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줘야 하는 날,
연인들은 서로의 만남에 색다름을 가져다줄 하루.
또 어떤 사람들에겐 우울한 하루일 수도 있는 그런 여느 기념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 성탄절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별로 기대하지 않는 날이 되어버렸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성탄절에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영화나 소설에나 나오는 것이지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별일 없을 그런 날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 분주할 뿐이지 그날은 그날일 뿐입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탄절에 정말 예수님을 만나는 기적을 경험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요.
크리스마스날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고 만져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요.
내 인생을 바꾸고 내 삶에 의미와 열정, 생명을 불어넣는/ 그 기적의 순간이 성탄절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들 하나님을 만나고 붙잡고 싶어합니다만/ 뜬 구름 잡는 것 같으니 그냥 하던데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도 그렇게 하나님을 붙잡고 싶었던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아하스라는 사람입니다.
아하스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어려운 세상을 해쳐나기기를 바라면서
그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하스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붙잡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유다왕 아하스는 그 이름처럼 하나님의 손을 붙잡아야만 되는 어려운 시절을 살았습니다.
역대하 28장을 보면 북쪽의 아람제국과 북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어 유다를 맹공격 하였습니다.
아람제국은 유다 전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고 북이스라엘 군대는 아하스가 그토록 의지하던 정예군사 십이만명을 전멸시켰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아하스의 아들이 이스라엘군에 전사한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꼭 지켜달라고 부탁했던 궁내 대신과 총리대신도 그날의 전쟁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아들도 죽고 나라의 요직을 맡았던 모든 신하들도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군사들 20만명도 북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온 땅은 적에게 유린당했고 이제 마지막으로 자기와 수도 예루살렘 성 하나만 덩그러니 남게된 것입니다.

아들의 복수와 내일을 기약 할수조차 없는 그런 비참한 아하스였습니다.
아하스에게는 정말 기적이 필요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하루 하루는 내일을 꿈꾸고 계획하고 살아가는 그런 소망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내일을 바라볼 수 없어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계십니까?
세상 살이 다 똑같아 하며 체념하며 살아고 있지 않습니까?
나도 아하스처럼 기적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오늘 읽은 이사야 7장 10절로 14절은 아하스 왕이 그렇게 기다리던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런데 그 응답에 대한 아하스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사 7: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사 7: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구원을 약속하시며 흔들리지 않도록 징조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징조는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깊다는 단어는 영적인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감추인 것들이란 말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도단성을 둘러싼 아람 군대에 기가 질렸을 때
엘리사가 기도해서 그 눈을 열어서 하늘과 땅에 가득한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해달라고 했던 것이 바로 이 깊은 것입니다.

이사야는 지금 적군에게 포위되어 있는 예루살렘 성에 적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아하스에게와 똑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눈앞에 보이는 문제에 압도되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 그것보다 강한 하나님의 천군과 천사가 나를 지키고 있다. 내가 이것을 보여주겠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높은 데의 징조는 이사야 선지자가 봤던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말합니다.
이사야가 자기의 빽과 힘이었던 사촌형 웃시야왕이 죽어서 다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엎드렸을 때 봤던 그 영광. 그 영광을 보게 해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오늘 소망을 잃어버리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말씀이 오늘도 교회에서 선포되고 성경에 기록되어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아하스왕과 똑같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시험하다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해보다 확인해보다 라는 말입니다.
정확히 번역하면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계신가 확인해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당신같은 거룩한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보이지도 않고 열리지도 않을테니 헛수고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현실은 하나도 모르고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데 기도하고 앉아 있나.
지금 적군이 성 앞에 와있는데 한가하게 하나님이 계신가 안계신가 확인해보라니 말이 되는가?
지금 시급한 일로 마음에 여유가 없이 바쁩니다. 예배와 기도의 준비가 되면 그때 하겠습니다.
이것이 아하스왕의 대답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시는지 13절에 나옵니다.

(사 7: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이 말씀은 네가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가지 않으면,
네가 이리 저리 세상에 도움의 손을 구하고 방황하다 더 상하고 더 다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네 주변 사람들도 네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지 않아서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그 모습을 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아느냐?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것을 구해야 합니다.
그동안 해오던 것은 그저 최선을 다해온 것 뿐이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람군대와 이스라엘 군대의 포위속에서 할 일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나 그 것을 완전히 뚫고 나갈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상황에 이끌려 이리 저리 뛰어 다닐 뿐입니다.

우리도 내가 당하는 지금 일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봐야 이게 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무얼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지못하면 몸과 마음만 계속해서 지쳐서 상해갈 뿐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징조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우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말씀은 바로 성탄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성탄절이 징조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했다는 분명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죄인이라도 기도를 지금까지 않했어도 거룩하지 않아도
세상 때가 다 뭍었어도
지금 믿고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엎드리기만 하면 응답해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만나러 오시지 않고 방황하고 상한 우리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다만 내가 그 주님을 만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내 얼굴을 주님께로 향하기만 하면 됩니다.

문제에서 얼굴을 들어 하나님을 봅시다.
이사야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봅시다.
아하스처럼 많은 일과 걱정에 눈을 돌리지 맙시다.

(시 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대림절과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으로 주께 말합시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다시한번 함께 부르짖읍시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한번더 부르짖읍시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기도합니다.

하나교회 추수감사 예배.
18/11/2018

하나교회 추수감사 예배.

17/11/2018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를 드리는 주일 아침입니다.
이 복된 감사의 주일 아침 진짜 기쁨과 감사가 우리 마음 속에서부터 가득히 넘쳐 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삼천년 전에 이스라엘에 한나라는 여인이 살았습니다.
이 한나에게는 자기를 끔찍이 사랑해주는 엘가나라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다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식네 뭐네 합니다만 한나의 남편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사랑이 뭐 밥 먹여 주냐 하지만 남편 엘가나는 능력도 있는 남자였습니다.

사무엘서 1장 3절에 보면
이 남편 엘가나는 매년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렸는데 그날이 오늘 추수감사절과 같은 수장절이요 초막절이었습니다. 1)
엘가나는 매년 풍성한 소출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러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풍성한 수확을 가족들에게 나누었습니다.

(신 16: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신 16: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4절 말씀을 보면 함께 기뻐해야 할 사람들이 나오는데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너와 네 자녀입니다. 즉 가족이 먼저 기쁨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교회는 추수의 감사를 교회 재정으로 받지 않고 각기 성도들께서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도록 하고 있습니다.

(삼상 1: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엘가나는 온 가족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나가도록 추수한 것들은 나누어 주었습니다. 가족들은 그 받은 것들을 가지고 기쁘게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실 오늘이 추수감사절이라 감사한다고 나왔지만 진짜 감사함으로 나오셨는지요.
엘가나가 가족들에게 나누어준 것처럼 정말 내 손에 뭔가 주어져야 진짜 감사가 나오지 빈손에 근심이 가득하니 감사가 잘 안 나옵니다.
하나님 엘가나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주셨는데 왜 나한테는 안주십니까?
감사하라고 나왔습니다만 사실 마음 속에 진짜 감사한 마음은 없고 서러운 마음 뿐입니다.
왜 나만 안주시고 다른 사람들은 다 풍성하게 받았습니까?

혹시 이런 마음이 드시는 분들이 계시는지요.
그런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지 내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라고 주신 감사절마다 사탄은 감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별별 일들을 다 벌입니다.
감사는 놀라운 축복과 기적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을 때,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감사의 기도는 언제나 배불리 먹고 남는 풍성한 기적을 일으킵니다.

(출 34:24)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여기 말씀에 감사절 때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올라올 때 주시는 축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곡식을 창고에 잘 넣어놓고 성전에 올라가면 외적들이 이때를 틈타 빼앗아 갈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분명히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내게 주신 것을 감사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내게 주신 것이 되어 사탄이 건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 기적은 몇천명이 먹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사탄은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벌이겠습니까?
추수감사절을 알리는 광고가 나간 후 어떤 일들이 있으셨는지요.
마음 따뜻해지는 푸근한 기억 보다는 뭔가 빼앗기고 억울하고 서운한 일들만 있지 않으셨습니까?
아예 감사의 마음이 전혀 들지 않도록 우리를 괴롭혔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한나는 능력있는 남편에게 변함 없는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부족한 것만 보게 해서 온 가족이 감사를 드리러 올라가는 그 날마다 괴롭힙니다.

(삼상 1: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하나님께 감사하러 올라가는 매년 마다 남편 엘가나는 한나에게 갑절이 넘는 분깃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사탄은 브닌나를 시켜 한나를 격분시켰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탄은 하나님의 사람을 감사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분노하게 하고 마음을 무너져 내리게 합니다.
내게 없는 것만 계속 보여주며 어떤 위로의 말과 사랑의 말도 들리지 않게 합니다.

사탄은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을 괴롭히고 감사하지 못하게 해서 축복의 기적을 못 누리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감사를 회복하는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가 괴로워하는 것에 너무나 도취되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그 괴로움의 끝에 기도하기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립니다.

사탄이 아차 하는 이때를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됩니다. 괴로움과 고난의 때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한나는 그 괴로움의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삼상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의 기도가 얼마나 엄청났냐하면 엘리 제사장이 보기에 술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16절에 보면 한나는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아서 그렇다고 제사장에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픔과 괴로움과 화를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지 마시고 기도에 자리로 쏟아내세요.
죽을 것 같고 답답하여 불이 막 치밀어 오르는 것으로 기도의 자리를 만드세요.

그럼 언제까지 기도합니까?
그 화와 분노와 아픔이 가실 때 까지 기도하세요.
그 모든 불안과 눈물을 하나님께서 사라지게 하실 때까지 기도하세요.

(삼상 1: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응답을 들었지만 그 전에도 제사장이 기도 때마다 그런 권면의 말씀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근심과 아픔이 사라질 때까지는 기도를 멈추지 마세요.
응답의 때가 오면 늘 듣던 말씀이 내게 정말 위로의 말씀으로 들려질때가 올 것입니다.
말씀이 내 마음이 빛처럼 환하게 밀려올때까지 내게 들려올때가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생기고 기도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 기대가 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절망에 빠뜨리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괴로움과 절망을 기도로 바꾸고 놀라운 기적의 역사로 만들어갑니다.

진주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은 조개의 살을 찌르는 날카로운 이물질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나를 찌르는 브닌나의 이름의 뜻은 보석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고통은 찾아오지만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그 고통을 보석으로 만들어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정과의 말씀은 한나의 찬양인데
이것은 아픔의 기도가 변하여 감사의 찬양이 된 것입니다.

(삼상 2: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1절 말씀에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우는 것 중에 하나가 꿩 대신 닭이란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에겐 꿩대신 닭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서 내 눈이 열려서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로 나를 짖눌렀던 사탄을 이기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는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다고 고백합니다.
이 뿔은 기도로서 다윗이 시편에서 공격 무기를 표현할 때 자주 썼던 단어입니다.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아픔으로 하나님을 찾는 기도가 커졌다는 것이고
그 기도가 커진 만큼 하나님께서 응답했을 때 기쁨의 찬양이 크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쁘게 될 것입니다.

3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삼상 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이제 기도하면서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내가 얼마나 교만했는지 얼마나 죄인이었는지를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참된 감사는 이 회개를 통해서 나오는 감사가 참된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 만큼 감사한 것이 있습니까?
이 감사도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름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맨날 이 감사가 나올 것 같은데
아닙니다.
기도를 통과하지 않으면 그 기쁨이 없습니다.

브닌나가 한나를 격분하게 할때마다 격분했던 것처럼 내 영혼이 상했거든요.\
엘가나가 한나를 지극히 사랑한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는데 그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기도하지 않으면 구원의 감격도 감사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실한 아픔을 넘어 기도까지 나아간 사람에게 알지 못하는 큰 축복을 주시는데요.
그것은 처음에는 내게 필요한 것을 구하며 기도하다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구하게 하시는 축복입니다.

8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삼상 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4절로 6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역전 시켜주시고 기도하고 구하는 자에게 다 주셨다는 말씀인데 8절은 다릅니다.

한나는 8절에서 사무엘이 기름부어 왕이 될 다윗 왕가를 예언하기 시작합니다.
한나는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8절의 거름더미에서 올린 가난한 사람은 다윗을 말합니다.
그가 귀족이 되며 영광의 자리에 올라 땅의 기둥 곧 왕이 될 것이며
장차 하나님께서 그 다윗왕의 후손인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게 되실 것을 한나는 예언합니다.

10절 말씀도 같이 읽겠습니다.

(삼상 2: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그리고 한나는 그 동안 자기를 괴롭혔던 것이 브닌나가 아니라 사탄임을 깨닫고 그 대적이 하나님의 심판 날에 망할 것을 예언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계속해서 승리하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한나가 어떻게 이런 기도와 찬양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그저 자기에게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로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기도가 세상을 바꾸는 능력의 기도가 되게 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기 원하십니다.
감사를 빼앗긴 시대, 감사가 없는 시대에 그냥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은 그 빼앗긴 감사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의 씨를 뿌릴 때이지
다들 그렇게 힘들게 사는거야 하는 때가 아닙니다.
사탄은 그렇게 빼앗긴 감사의 때를 낭비하게 합니다.
이 감사의 때에 감사를 회복하는 눈물의 기도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 날이 바로 오늘이 되게 하십시오.

(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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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므나헴 하란은 매년제를 또 다른 제의로 여기고 있으나 초막절은 남자들만의 절기가 아닌 모두가 지키는 절기이다. 남자가 성전에 나오라는 이야기는 가장으로서 참석이다. 여자가 올라간다고 매년제를 3대 절기가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온 가족 구성원이 감사를 드리며 참석하는 절기 만큼 큰 절기는 없다. 초막절은 온가족이 참여하며 광야기간과 수추의 시작을 말한다. 므나헴 하란은 남자는 성전에 올라온다는 것을 너무 확대 해석하고 있다. 이것을 개신대 김구원 교수는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의 견해와는 다른 독특한 견해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Menahem Haran, "Zebah Hayyamim," Vetus Testamentum 19 (1969) 11-12 에서 매년제는 가족 혹은 부족의 축제로 그 참가자가 가족에 국한되며 가족 구성원은 하나도 빠짐없이 참가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이 축제는 어디까지 사적 행사이며 공적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 여느 다른 축제 . ,, 처럼 매년제는 제사의식 음식나눔 포도주 마시기 등으로 구성되며 성소에서 치루어졌다 만약 자신의 동 . 네에 성소가 없으면 다른 동네에 있는 성소에 가서 지켜야 했다 이.스라엘의 민족 절기들이 특정한 날과 연관되어 지켜졌다면 매년제의 기간은 가족의 전통에 따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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