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018
(사 7: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사 7: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사 7: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사 7: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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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나님을 붙잡고 기적을 경험하는 한 사람 한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 번주는 대림절 4째주입니다.
이 대림절기는 성탄을 기다리는 기대와 소망의 절기인데, 성도여러분 정말 성탄을 기다리시는 지요?
옛날에는 성탄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는데 요즘은 다들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과 관련한 사람들을 찾아가, 선물을 돌릴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는 날이거나 물건 팔기 바쁜 시즌의 하나, 또는 잠깐 하루 쉴 수 있는 하루,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줘야 하는 날,
연인들은 서로의 만남에 색다름을 가져다줄 하루.
또 어떤 사람들에겐 우울한 하루일 수도 있는 그런 여느 기념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 성탄절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별로 기대하지 않는 날이 되어버렸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성탄절에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영화나 소설에나 나오는 것이지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별일 없을 그런 날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 분주할 뿐이지 그날은 그날일 뿐입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탄절에 정말 예수님을 만나는 기적을 경험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요.
크리스마스날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고 만져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요.
내 인생을 바꾸고 내 삶에 의미와 열정, 생명을 불어넣는/ 그 기적의 순간이 성탄절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들 하나님을 만나고 붙잡고 싶어합니다만/ 뜬 구름 잡는 것 같으니 그냥 하던데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도 그렇게 하나님을 붙잡고 싶었던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아하스라는 사람입니다.
아하스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어려운 세상을 해쳐나기기를 바라면서
그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하스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붙잡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유다왕 아하스는 그 이름처럼 하나님의 손을 붙잡아야만 되는 어려운 시절을 살았습니다.
역대하 28장을 보면 북쪽의 아람제국과 북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어 유다를 맹공격 하였습니다.
아람제국은 유다 전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고 북이스라엘 군대는 아하스가 그토록 의지하던 정예군사 십이만명을 전멸시켰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아하스의 아들이 이스라엘군에 전사한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꼭 지켜달라고 부탁했던 궁내 대신과 총리대신도 그날의 전쟁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아들도 죽고 나라의 요직을 맡았던 모든 신하들도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군사들 20만명도 북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온 땅은 적에게 유린당했고 이제 마지막으로 자기와 수도 예루살렘 성 하나만 덩그러니 남게된 것입니다.
아들의 복수와 내일을 기약 할수조차 없는 그런 비참한 아하스였습니다.
아하스에게는 정말 기적이 필요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하루 하루는 내일을 꿈꾸고 계획하고 살아가는 그런 소망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내일을 바라볼 수 없어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계십니까?
세상 살이 다 똑같아 하며 체념하며 살아고 있지 않습니까?
나도 아하스처럼 기적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오늘 읽은 이사야 7장 10절로 14절은 아하스 왕이 그렇게 기다리던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런데 그 응답에 대한 아하스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사 7: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사 7: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구원을 약속하시며 흔들리지 않도록 징조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징조는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깊다는 단어는 영적인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감추인 것들이란 말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도단성을 둘러싼 아람 군대에 기가 질렸을 때
엘리사가 기도해서 그 눈을 열어서 하늘과 땅에 가득한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해달라고 했던 것이 바로 이 깊은 것입니다.
이사야는 지금 적군에게 포위되어 있는 예루살렘 성에 적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아하스에게와 똑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눈앞에 보이는 문제에 압도되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 그것보다 강한 하나님의 천군과 천사가 나를 지키고 있다. 내가 이것을 보여주겠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높은 데의 징조는 이사야 선지자가 봤던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말합니다.
이사야가 자기의 빽과 힘이었던 사촌형 웃시야왕이 죽어서 다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엎드렸을 때 봤던 그 영광. 그 영광을 보게 해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오늘 소망을 잃어버리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말씀이 오늘도 교회에서 선포되고 성경에 기록되어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아하스왕과 똑같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시험하다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해보다 확인해보다 라는 말입니다.
정확히 번역하면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계신가 확인해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당신같은 거룩한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보이지도 않고 열리지도 않을테니 헛수고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현실은 하나도 모르고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데 기도하고 앉아 있나.
지금 적군이 성 앞에 와있는데 한가하게 하나님이 계신가 안계신가 확인해보라니 말이 되는가?
지금 시급한 일로 마음에 여유가 없이 바쁩니다. 예배와 기도의 준비가 되면 그때 하겠습니다.
이것이 아하스왕의 대답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시는지 13절에 나옵니다.
(사 7: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이 말씀은 네가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가지 않으면,
네가 이리 저리 세상에 도움의 손을 구하고 방황하다 더 상하고 더 다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네 주변 사람들도 네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지 않아서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그 모습을 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아느냐?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것을 구해야 합니다.
그동안 해오던 것은 그저 최선을 다해온 것 뿐이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람군대와 이스라엘 군대의 포위속에서 할 일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나 그 것을 완전히 뚫고 나갈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상황에 이끌려 이리 저리 뛰어 다닐 뿐입니다.
우리도 내가 당하는 지금 일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봐야 이게 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무얼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지못하면 몸과 마음만 계속해서 지쳐서 상해갈 뿐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징조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우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말씀은 바로 성탄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성탄절이 징조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했다는 분명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죄인이라도 기도를 지금까지 않했어도 거룩하지 않아도
세상 때가 다 뭍었어도
지금 믿고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엎드리기만 하면 응답해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만나러 오시지 않고 방황하고 상한 우리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다만 내가 그 주님을 만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내 얼굴을 주님께로 향하기만 하면 됩니다.
문제에서 얼굴을 들어 하나님을 봅시다.
이사야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봅시다.
아하스처럼 많은 일과 걱정에 눈을 돌리지 맙시다.
(시 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대림절과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으로 주께 말합시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다시한번 함께 부르짖읍시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한번더 부르짖읍시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