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2022
김정주와 이어령의 죽음에서
최근에 우리는 두 저명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들었다. 한 사람은 넥슨 창업자 김정주 씨로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의하면 그는 2022년에 삼성 이재용 씨를 제치고 한국에서 자산 1위가 되었다. 그가 하와이에서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포기했다. 또 한 사람은 한국의 지성이라고 하는 이어령 씨다. 그는 암에 걸렸는데 의사가 수술하면 연장할 수 있다고 했는데도 수술을 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이어령 씨도 김정주 씨도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가장 큰 숙제다. 그래서 생각하기도 싫어하거나 그 부담스러운 숙제를 미루어 두려고 한다. 이런 죽음에 대한 잘못된 태도에 로망 로랭은 정곡을 찔렀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런데 앞에 두 사람은 이런 보편적인 생각을 뒤엎은 것에 사람들은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김정주 씨에 대해 사람들은 말한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두고 자살할 수 있을까? 우울증이란 병이 그렇게도 무서운가!”
반대로 이어령 씨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치료를 받고 조금 더 살아서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들이 크는 것을 볼 것이지! 길을 찾았다고 하는데 그 길을 좀 있다가 가면 안 되나?”
이런 반응에서 두 사람이 우리 산 자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김정주 씨는 생과 사에 대한 더 큰 숙제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돈이 있어도 삶은 죽음보다 괴롭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보다 중하다는 울림을 주었는데 반해 이어령 씨는 지금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다. 지금 돈이 있고 없거나 사랑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지금 소망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그 소망이 있을 때가 죽음이란 숙제를 하기 가장 쉬운 때라는 울림을 준 것이다. 그런 울림이 전자에게서는 죽음은 물론 삶도 허무하고 두렵다는 것이고 후자는 소망이 있을 때가 죽음에 적기(適期)라는 것이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김정주 씨 사망에 대해서는 “아깝다, 무섭다.” 이어령 씨의 사망에 대해서는 “믿음의 용기, 지성의 고뇌”라는 서술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나도 이어령 씨에게서 죽음의 숙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 즉 언제 죽는 것이 좋으냐는 것이 나이나 삶의 성취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도 소망이 있는 때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