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5/2026
악동뮤지션을 악마화하고 공격하고 비판하는 소리들이 있지만 그 소리가 오히려 돈벌이와 조회수를 올리려는 악마의 유혹은 아닌가를 고민하면서 악뮤의 수현이를 응원한다. 은둔과 고립 속에서 다시 나와 세상 속으로 다시 걸어가는 수현과 찬혁 오누이를 응원하고 싶다. 고립·은둔 청년 54만 시대이다. 교회는 ‘온기의 공동체’로 혼자사는 사회 에서 관계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길 원하는 마음으로 나눈다.
1. 악동뮤지션의 수현은 2년 동안 은둔과 고립 속에 살았다고 고백한다.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밤과 낮의 경계가 없을 정도로 게임에 빠졌다. 살이 찌고 어느 순간 자신감이 사라졌다. 노래를 하고 싶지만 점점 위축 된다. 자존감도 바닥을 친다.
2. 그런 수현이를 다시 세상 속으로 이끈 것은 오빠 찬혁이었다. 수현이를 비난하지 않는다. 비판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간섭하지도 않는다. 그냥 곁에 누군가 있음을 알게 한다. 조급함 때문에 관계를 망치지 않았다. 그냥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용히 다시 세상으로 나오도록 규칙적인 기상, 식사, 운동을 도왔다. 은둔에서 다시 세상으로 복귀하는데 2년이 걸렸다.
3. 그나마 수현이는 오빠 찬혁이가 있어서 회복의 길로 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은둔 고립 청년에게는 도우미가 없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고립, 은둔에서 돌아 온 악동 뮤지션의 수현이를 응원한다.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다.
4.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전국 단위로 실시한 국내 고립·은둔 청년 첫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은 약 54만명으로 추산됐다. 왜 고립, 은둔의 길로 갔을까? 이들은 취업(24.1%)과 대인 관계(23.5%), 가족 관계(12.4%)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5. 목회데이터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고립·은둔 청년은 전체 청년의 5.2%이다. 대한민국 1인 가구 비율은 2024년 기준 36.1%이다. 대략 804만 가구이다. 그중 2030세대가 3분의 1이 넘는다. 이들은 생활비 중 주거비를 가장 부담스러워 한다.
6. 그래서 점점 주거비의 부담으로 지옥고의 삶으로 밀려나고 소외된다. 지하실, 옥탑방, 고시원을 일컫는 말이 지옥고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곰팡이와 싸우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리며 점점 고립과 은둔의 길로 향한다.
7. 상당수가 이성교제나 결혼을 꿈꾸지 못한다. 월세도 빠듯하고 비정규직이 대부분 많아 자기 집을 살 희망조차 갖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점점 심해진다. AI시대로 가면서 그마나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알바 자리가 점점 사라진다. 정규직이나 미래를 열어갈 수준의 좋은 조건의 직장 취업의 문이 좁아지고 있다.
8. 더 늦기 전에 청년 세대가 왜 고립되고 있을까를 고민할 때다. 고립, 은둔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9. 첫째, 생존 경쟁 시대에 무한 경쟁에 노출되어 치열한 외톨이로 살아가다보니 육체적, 정서적 번 아웃이 오기에 숨는 것이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 두렵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두렵다.
10. 둘째, 디지털 원주민 세대의 특징이다. 쇼츠, 릴스, 틱톡의 쾌락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SNS 세대의 그림자가 생각보다 짙다. SNS에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몰입할수록 그만큼 더 외로워진다. SNS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비례하여 상대적 박탈감도 커진다. 또 SNS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알고리즘에 포로가 된다. 한 쪽의 견해만 계속 추천을 받고 들으니 확증편향에 사로잡힌다. 그 결과는 극단적 성향으로 향하고 고립으로 향한다. 무엇보다 비대면 접촉의 증가로 관계의 면역력이 약화 된다.
11. 셋째, 선진국에서 자란 세대의 고민이다. 개발도상국의 부모님의 기대치와는 달리 바늘구멍이다. 대기업, 공기업, 다 가고 싶어 하는 취업의 문은 좁아지고 실패에 대한 공포와 완벽주의적인 경향으로 도전마저 머뭇거린다. 부모세대는 성장의 시대이기에 계층사다리도 열려져 있었고 기회가 많았다. 안타깝게도 자녀세대는 스펙은 더 좋지만 기회는 덜 주어진다. 그러니 기대치와 취업의 현실 앞에서 머뭇거리면 어느 순간 기회를 놓치고 고립되고 만다.
12. 넷째, 출산율 감소의 세대이다. 형제자매가 거의 없는 외톨이 세대이다. 과거에는 친지 친척끼리 자주 만나고 함께 놀았다. 수박 서리도 함께 다니고 원두막에서 참외도 함께 먹었던 기억들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친지 친척도 장례식이나 결혼식 때만 만나는 세대이다. 이제 그마저도 조문조차 받지 않고 인터넷 뱅킹으로 끝나는 세대이다. 그러니 사람을 만나는 것이 스트레스의 요인이 된다.
13. 다섯째, 사회구조의 문제이다. 실패하면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구조, 계층 사다리가 고장이 난 구조가 버겁다. 계층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발버둥 치다가 자포자기하고 은둔과 고립의 늪에 빠진다. 어느 순간 부의 세습이라는 말이 보편화되어 간다. 부모의 부, 명예, 권력의 수준이 자녀에게 세습 되는 세습 사회가 되어 간다.
14. 끝으로 가족 해체와 1인 가구 증가이다. 가족이 점점 사라지고, 이웃이 사라진 시대이다. 1인 가구의 증가로 혼밥, 혼술, '나 혼자 산다'에 익숙해서 타인을 만나고 어울리는데 대한 부담감을 느낀다.
15. 그런데 고립과 은둔 가운데 있던 청년들이 다시 사람들 사이로 나아가고 있다. 왜일까? 러닝크루, 독서모임, 취미 공동체, 소규모 네트워크 등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외로움과 단절을 벗어나 소속감과 정서적 지지를 얻고자 하는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16. 특히 청년들 사이에서 찜질방과 노래방 모임이 증가하는 것은 좋은 신호이다. 이들은 느슨한 연대를 통해 부담감은 줄이고 소속감을 통해 외로움을 해결한다. 그야말로 저비용, 고효율이다. 실속이 있는 것이다. 비교, 경쟁, 스펙, 취업의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정서적 요새를 구축하는 것이다.
17. 관계를 찾아 청년들이 다시 모이는 데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18. 첫째, 인간의 온기의 힘이다. 인간은 고립과 은둔이 아닌 만남과 사귐의 존재다. 그것이 없으면 외롭다. 괴롭다. 청년들이 관계를 찾아 모이는 곳은 온기가 있지만 자신이 통제 가능한 곳이다. 예측 가능한 관계이다. 낄 때 끼고 빠지고 싶을 때 빠지는 곳이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찜질방이 그 예이다. 서로 먹고 마시면서 각자 게임을 한다. 느슨한 관계 속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그 속에서 외로움을 해결한다.
19. 둘째, 부담이 없는 곳의 힘이다. 청년들이 모이는 곳은 긴장, 갈등, 스트레스 없는 곳이다. 경쟁 관계가 아닌 사람들의 모임이다. 동호회, 취미 그룹이 그 예이다. 같이 러닝 크루에 소속이 되어 소속감을 느끼며 함께 달린다. 자전거 동호회에 속하여 함께 강변을 달린다. 달리면서 서로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건강도 챙기고 외로움도 잊는다. 무엇보다 부담감이 없다. 부담감을 느끼면 다른 소그룹을 찾아 이동한다.
20. 셋째, 삼겹살과 삼겹줄의 힘이다. 삼겹살은 먹고 마시며 피로를 푸는 것이다. 삼겹줄은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은 회복 탄력성을 준다. 함께 버티고 견디고 이기는 힘을 준다. 먹고 마시면서 가벼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청년들에게 온라인은 오프라인으로 나가는 통로이다. 온라인에서 만나서 소통하다가 마음이 맞으면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시간을 보낸다.
21. 개인적으로 청년의 때 먼지 나는 창고에서 일하면서 1년간 사람을 피해 다니고 고립과 은둔의 삶을 보낸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차였다. 하루 종일 박스를 나르는 막노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자신감이 없었다. 누구도 만나기 싫었다. 창고 속에서 1년의 시간들을 보냈다.
22. 그때 필자를 세상으로 끌어낸 것은 청년공동체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청년공동체는 비교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다. 다시 꿈을 꾸도록 환대해 주었다. 리더는 월급날이면 창고 속에 있던 필자를 불러 밥을 사 주었다. 또 다른 형님은 편지와 엽서를 써서 격려를 꾸준히 해 주었다. 그분들은 동굴이 아닌 터널로 이끌었고 긴 터널을 지나 고립과 은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교회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던 것이다.
23. 비록 여전히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함께 모여서 기도를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필자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강하게 경험하였다.
24. 어쩌면 아직도 청년사역을 섬김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그때 그 온기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우리 시대 교회는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점점 늘어가는 듯하다. 고립과 은둔으로 가는 청년들에게 온기가 담긴 환대를 하는 문화가 교회에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25. 고립과 은둔의 길에 있는 또 다른 수현이 또 다른 상갑이에게 말해 주고 싶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단다. 일어나 함께 가자."
출처: https://www.pckworld.com/article.php?aid=11071321982
이상갑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