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2014
란 무엇인가 / 두날개시리즈6
복음의 절대적 능력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3절
중세 암흑시대, 계몽주의 시대가 지나고 기독교는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그러나 계몽주의시대 이후에 서구의 자연과학주의, 합리주의, 이성주의, 지성 중심의 사상이 신학에 이입되면서 인본주의와 결합된 신학 사상들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인본주의적 사상과 타협하면서 성경을 부인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희석시켰는데,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중시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실존과 능력을 부인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성경의 초자연적인 내용들은 신화로 취급했다.
성경 내용들을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 경험으로 해석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들은 과감하게 비판했다.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능력이 축소된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온 천지를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시고 말씀 한 마디로 복종케 하신 분이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믿지 않고 따르지도 않으면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축소하고 생략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역사를 다스리시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역사를 보면서도 말씀의 능력을 축소시켰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인본적인 사상이며, 복음을 희석시키고 변종시키는 혼합된 세속 종교나 다름없다.
왜 유럽의 교회들이 문을 닫고 신앙을 져버리게 되었는가? 이런 세속화된 인간 중심사상이 교회 안에서 난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따져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성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성령의 조명 없이는 삶을 변화시키지도 못할 뿐더러 지식만을 축적할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믿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며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믿어야 한다. 그것이 창조주를 대하는 피조물의 진정한 자세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딱 들어맞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해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시요, 구원자요, 주님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모든 인류가 따르며 순종해야 할 삶의 원칙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아도 더 많은 선행을 하며 사는데 굳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선행은 악이라는 것을 모른다. 자기 자랑에 불과하며 하나님 없는 선은 전부 자기를 위한 의이며 위선이라는 것을 모른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인간의 삶에는 선이라는 것은 없다. 악행이며 결국 저주와 심판이 있을 뿐이다.
이 세상은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시고, 역사는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아야 한다. 사사기에도 나타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싫어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계를 거부한다. 그래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의견이 중심이 되어 여론을 만들고 다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요구했다. 하나님마저도 인간 중심 세계 안에서 인간을 돕는 도우미로 존재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휴머니즘적인 이방 종교 사상은 굉장히 인간적이어서 깊은 감동을 주는 듯하다. 인간 중심적 사고는 인간을 최고로 생각하기에 하나님도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분으로 착각하게 한다.
인간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을 원한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만들지 말라’고 경고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통치관에는 대치된다. 유일하신 하나님이 최고라는 세계관과 인간이 최고라는 세계관이 대립되는 개념이다. 이런 인간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왕이시고, 그의 아들 예수가 내 인생의 그리스도시며 주님이심을 인정하는 세계관으로 바뀌는 것이 구원이다. 인간 중심의 사상과 가치 체계가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한다. 이들은 구원 받은 자다. 이들은 복음을 듣고 믿고 누리는 자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의 역동성이란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며 그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한 평생 누리는 것이다. 복음의 절대 능력은 한 평생 우리 인생을 행복의 삶으로 초대한다. 우리의 미래는 완전히 보장되고 절대 취소될 수 없는 기쁨과 영광된 삶을 보장 받는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절대 능력이다.
복음의 능력으로 받은 구원은 절대 취소될 수 없다. 하나님은 구원하신 자녀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며 그 위대한 운명의 방향을 돌이키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구원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졌다. 우리에게 이루신 하나님의 능력은 절대 취소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절대 능력은 결코 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고,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게 되는 위대한 사건이다.
복음의 능력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고 나의 인격을 변화시킨다.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세계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 내 인생의 기적이며 세상에서 구원 받은 것이다.
복음의 목적은 얼마만큼 선한 사람이 되느냐에 있지 않다. 복음 안에 감춰진 위대한 능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목적이 되시고 주인이 되셨다는 것을 알고 믿고 누리는 것이다. 복음의 능력은 갚을 수 없는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 한다. 날마다 그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며, 삶의 곳곳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들이 나타나는 능력을 보게 한다.
그 어떤 것도 사랑하는 우리 주님이 계신 그 곳에 함께 있게 될 것을 방해할 수 없다. 복음의 절대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모르기 때문에 세상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다. 복음의 절대 능력을 통해 더 깊은 영적 세계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울게 된다.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릴 때 성도는 성도다워진다. 완전한 복음을 내 삶에서 누릴 때 신앙은 성장하게 된다. 희석된 복음은 영적 성장을 막는다. 희석된 복음은 세속화시킨다.
두날개 운동은 복음의 절대 능력을 회복할 것을 강조한다. 희석된 복음이 아니라 복음의 절대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의 넓이와 측량할 수 없는 깊이를 확신해야 한다.
예수님은 나의 지성으로 판단하고 분석하는 대상이 아니다. 예수님은 나의 눈높이에 맞추셔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전인격으로 다가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와 더불어 영원히 살기를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주신 임마누엘의 축복이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내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믿음 없던 나의 삶이 믿음의 삶으로 변화된 것은 그리스도의 절대 능력 때문이다. 불순종의 영으로 충만하던 내 삶이 변화되어 순종의 삶이 된 것은 그리스도의 은총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게 된 것이 능력이다. 복음의 능력은 삶을 변화시킨다. 복음의 능력은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한다. 복음의 절대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가 나의 승리임을 믿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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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무엇인가 / 두날개시리즈6 희석된 복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3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