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스신학원

호도스신학원 일본무목교회는 한국의 소명받은 헌신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HODOS聖書通読黙想예레미야 24장 묵상: 바벨론까지 따라간 하나님의 눈길
15/09/2026

HODOS聖書通読黙想
예레미야 24장 묵상: 바벨론까지 따라간 하나님의 눈길

거짓된 부지런함예레미야 23장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수많은 말이 쏟아지던 시대에, 그 말들이 과연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 장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에게는 거짓된 부지런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그들...
14/09/2026

거짓된 부지런함
예레미야 23장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수많은 말이 쏟아지던 시대에, 그 말들이 과연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 장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에게는 거짓된 부지런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그들은 말했습니다(21절). 사람들에게 “평안하리라”고 말했지만(17절), 그 말로 악한 길에서 돌아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말은 많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알곡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참된 예언자는 달랐습니다.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18절). 사람들 앞에서 자기 마음에서 나온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내놓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 앞에 서야 했습니다.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을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22절).
말이 많아질수록, 이상하게도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은 짧아지기 쉽습니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할수록, 그것이 정말 주님의 마음인지 오래 묻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충분히 서 보지 않은 사람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말에도 쉽게 하나님의 이름을 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묻습니다.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28절). 알곡은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을 먹입니다. 참된 말씀도 그렇습니다. 듣기 좋기만 한 말이 아니라, 때로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우리의 발길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놓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가 뜨겁게 만들지 않아도 이미 “불”이며, 굳은 바위를 깨뜨리는 “방망이”입니다(29절).
주님!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전에 주님 앞에 오래 서 있게 하소서. 내 마음의 소리를 주님의 음성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내 입에서 겨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알곡이 나오게 하소서.
HODOS聖書朗読黙想(9/15)
예레미야 23장 묵상: 거짓된 부지런함

예레미야 23장 묵상: 거짓된 부지런함 예레미야 23장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수많은 말이 쏟아지던 시대에, 그 말들이 과연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 장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에게는 거짓된 부지런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도, 나사로가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었는가?"(37절).이런 물음은 삶 속에서 몇 번이고 불쑥불쑥 나타나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죽음을 막아서서 목숨을...
12/09/2026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도, 나사로가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었는가?"(37절).
이런 물음은 삶 속에서 몇 번이고 불쑥불쑥 나타나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죽음을 막아서서 목숨을 지켜내는 데 그치시는 분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죽음이 들이닥친 그 깊은 곳까지 친히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죽음에 붙들려 간 이에게로 다가가, 굳게 닫힌 무덤 앞에서 그 이름을 부르시고, 다시금 생명의 빛으로 깨워 부르시는 분입니다. 무덤이라는 짙은 죽음의 어둠 속에서도 생명을 다시 일깨우시는 것,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盲人の目を開けたこの人も、ラザロが死なないようにはできなかったのか」(37節)。この問いは、日々の営みの中で幾度となく頭をもたげ、...

예레미야 22장 묵상: 하나님을 알수록 보이지 않던 사람이 보입니다예레미야 22장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왕궁의 화려한 벽 앞에서 다시 묻게 되는 장입니다. 여호야김은 넓은 방을 만들고, 큰 창을 내고, ...
09/09/2026

예레미야 22장 묵상: 하나님을 알수록 보이지 않던 사람이 보입니다
예레미야 22장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왕궁의 화려한 벽 앞에서 다시 묻게 되는 장입니다. 여호야김은 넓은 방을 만들고, 큰 창을 내고, 백향목으로 벽을 입혔습니다(14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름다운 궁전에서 다른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품삯을 받지 못한 일꾼의 손이었습니다. 왕은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며”(13절) 자기 집을 높였습니다. 사람들은 백향목의 빛깔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 벽에 스며 있는 누군가의 억울함을 보셨습니다.
왕은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의 후손이었고, 성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뜻밖의 곳에서 그가 정말 하나님을 아는지를 물으십니다. 네 아버지 요시야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했지 않았느냐?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16절).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전에는 지나쳤던 사람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편안함 뒤에서 누가 힘들어하는지, 내 풍요를 위해 누군가의 몫이 작아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더 서늘한 말씀도 있습니다.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21절). 우리는 어려울 때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서운해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했을 때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주님! 나의 신앙이 말과 지식에만 머물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더 알아 갈수록, 내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을 보게 하시고, 그들의 작은 신음까지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예레미야 21장 묵상: 죽는 길, 사는 길 예레미야 21장은 기적을 구하러 하나님을 찾은 왕에게,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가 살아온 아침들을 물으시는 장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자 시드기야 왕은 다급해졌습...
08/09/2026

예레미야 21장 묵상: 죽는 길, 사는 길
예레미야 21장은 기적을 구하러 하나님을 찾은 왕에게,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가 살아온 아침들을 물으시는 장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자 시드기야 왕은 다급해졌습니다. 평소에는 듣지 않던 예레미야의 말을 이제야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사람을 보내 부탁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2절). 위기의 밤이 깊어지자 왕에게는 기적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왕이 기다리던 기적 이야기를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말씀하십니다. “다윗의 집이여 너희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12절). 왕은 성벽 밖의 적을 없애 달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성벽 안에서 오래 울고 있던 사람들을 가리키셨습니다. 왕은 하늘에서 내려올 큰 기적을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매일 아침 그의 손으로 행했어야 할 정의를 물으셨습니다.
우리도 삶이 흔들리면 큰 기적을 구합니다. 병이 낫고, 문제가 사라지고, 닫힌 문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위기의 밤보다 그 이전의 평범한 아침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아무 일 없던 날, 누구의 눈물을 지나쳤는지, 내가 할 수 있었던 선을 왜 미루었는지를 물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뜻밖의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8절). 그 길은 싸워 이기는 길이 아니라 성을 나가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길이었습니다(9절). 붙드는 것이 믿음인 줄 알았는데, 내려놓아야 살 수 있는 때도 있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기적을 부탁하는 일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길이 내 생각과 달라도 그 길을 걷는 일입니다.
주님! 위기의 밤에 기적만 구하지 않게 하소서. 평범한 아침마다 정의를 행하게 하시고, 붙들어야 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을 분별하여 주님이 가리키시는 생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예레미야 21장 묵상: 죽는 길, 사는 길 예레미야 21장은 기적을 구하러 하나님을 찾은 왕에게,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가 살아온 아침들을 물으시는 장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자 시드기야 왕은 다급해졌습니다. .....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말씀을 관리하고 통제하려 든다.예레미야 20장은 결국 입을 닫고 싶은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돌아온 것은 박수보다 조롱이었고, 위로보다 매질이었습니다. 심...
07/09/2026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말씀을 관리하고 통제하려 든다.
예레미야 20장은 결국 입을 닫고 싶은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돌아온 것은 박수보다 조롱이었고, 위로보다 매질이었습니다. 심지어 가까운 사람들까지 그가 넘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10절). 그래서 그는 마음먹습니다. “다시는 그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9절). 말씀을 내려놓으면 조금은 편해질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입은 다물 수 있어도, 뼛속의 불은 끌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9절). 예레미야는 그제야 알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말씀을 붙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말씀이 자신을 붙들고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을. 말씀은 필요할 때 꺼내 드는 등불만이 아니라, 때로는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을 수 없는 불이 됩니다.
그러나 이 장의 가장 깊은 곳은 그 다음입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노래하라”(13절)고 외친 바로 뒤에서 다시 깊은 탄식 속으로 떨어집니다(14절 이하). 방금 전까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고 고백했는데, 곧이어 자신의 삶 전체가 너무 무겁다고 토로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고백이 상처의 깊이를 단숨에 지워 주지는 못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우리 마음에 그런 때가 있습니다. 입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서러움이 남아 있습니다. 눈물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마친 뒤에도 가슴이 다시 무너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방금 드린 찬송이 거짓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믿었고, 동시에 아팠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도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성숙한 믿음은 슬픔을 없애는 능력이 아니라, 슬픔까지 하나님 앞에 데려가는 용기인지 모릅니다. 예레미야는 무너졌지만 하나님과의 대화를 끊지 않았습니다. 원망도, 두려움도, 믿음도 모두 하나님께 가져갔습니다.
주님! 말씀을 놓아 버리고 싶은 날에도 이미 내 안에 심어 두신 말씀으로 나를 붙들어 주소서. 찬송 뒤에 다시 눈물이 찾아와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울면서도 끝내 주님께 말하기를 멈추지 않게 하소서.

예레미야 20장 묵상: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말씀을 관리하고 통제하려 든다. 예레미야 20장은 결국 입을 닫고 싶은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돌아온 것은 박수보다 조롱이었고, 위로보...

人々は言う。「盲人の目を開けたあの方なら、ラザロを死なせずに済んだのではないか」と。しかし、主がその栄光を現される道は、人の思いをはるかに越えている。主は、すでに死の静寂に呑まれたその深淵へと、あえて歩み寄られるお方である。冷たい墓の闇に閉...
05/09/2026

人々は言う。「盲人の目を開けたあの方なら、ラザロを死なせずに済んだのではないか」と。しかし、主がその栄光を現される道は、人の思いをはるかに越えている。主は、すでに死の静寂に呑まれたその深淵へと、あえて歩み寄られるお方である。冷たい墓の闇に閉ざされ、命を奪い去られた者のもとへ降り立ち、その名を呼び、ふたたび息吹を吹き込まれる。絶望という名の暗闇のただ中でなお、魂を命へと呼び起こすことによって、神の真の栄光を余すところなく証しされるのです。

9月6日、お会いしましょう! 人々は言う。「盲人の目を開けたあの方なら、ラザロを死なせずに済んだのではないか」と。しかし、主がその栄光を現される道は、人の思いをはるかに越えている。主は、すでに死の静寂に呑...

예레미야 19장 묵상: 하나님께 낯선 삶이 되어버린 사람들예레미야 19장은 옹기 하나를 들고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는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제사를 드렸던 이곳을 향하여 하나님은 오히려 말씀하십니다. “그들...
03/09/2026

예레미야 19장 묵상: 하나님께 낯선 삶이 되어버린 사람들
예레미야 19장은 옹기 하나를 들고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는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제사를 드렸던 이곳을 향하여 하나님은 오히려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이곳을 불결하게 하여…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라”(4절). 예배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 예배가 사람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섬기기 시작하자 제단만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 이웃을 대하는 손까지 잔인해졌습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삶도 함께 무너집니다.
본문에는 더 서늘한 말이 나옵니다. 그들이 이곳을 하나님께 “낯선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4절). 우리는 때로 하나님이 멀어지셔서 내 삶이 낯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 없는 삶을 너무 오래 되풀이하다 보면, 내가 살아가는 자리 자체가 하나님께 낯선 곳이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타협이었는데, 어느새 마음의 지붕 위까지 다른 것들이 올라와 똬리를 틀고 앉습니다(13절).
예레미야는 마침내 옹기를 깨뜨리며 선포합니다.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다”(11절)고. 18장의 망가진 진흙은 다시 빚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장의 그릇은 너무 오래 굳어 있었습니다. 깨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더 이상 토기장이의 손길을 받아들일 수 없도록 굳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마음도 그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오늘 지나치고, 내일도 못 들은 척하다 보면 어느 날 아무 말씀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의 굳어짐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듣지 않은 말씀들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지는지도 모릅니다(15절).
주님! 주님의 말씀이 아직 내 마음을 아프게 할 때 듣게 하소서. 삶의 자리가 주님께 낯선 곳이 되기 전에, 굳은 마음을 다시 부드럽게 하시고 주님의 손길 안에 머물게 하소서.

예레미야 19장 묵상: 하나님께 낯선 삶이 되어버린 사람들 예레미야 19장은 옹기 하나를 들고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는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제사를 드렸던 이곳을 향하여 하나님은 오히려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한현욱 목사님은 호도스신학원 재학생입니다.일본 선교에 소명을 받은 한 목사님은 현지 교단에 가입하여, 그 나라의 교회와 함께 걸어가는 선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돕는 선교가 아니라, 현지 교회의 ...
02/09/2026

한현욱 목사님은 호도스신학원 재학생입니다.
일본 선교에 소명을 받은 한 목사님은 현지 교단에 가입하여, 그 나라의 교회와 함께 걸어가는 선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돕는 선교가 아니라, 현지 교회의 한 지체가 되어 함께 섬기고 책임을 나누는 선교입니다. 이것이 호도스신학원이 추구하는 일본 선교의 방향이기도 합니다.

지난 여름방학 동안 한 목사님은 호도스신학원의 하기 선교실습으로 약 두 달간 일본의 한 무목교회를 섬겼습니다. 매주 주일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기도회를 인도하며, 교우들과 함께 생활하고 교제하는 가운데 실제적인 목회와 선교의 훈련을 쌓았습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실습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무목교회의 현실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그 교회와 함께 예배하며 살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호도스신학원이 추구하는 일본 선교의 방향이 한 사람의 삶과 섬김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한현욱 목사님의 보고와 간증을 통해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한현욱 목사님은 호도스신학원 재학생입니다.일본 선교에 소명을 받은 한 목사님은 현지 교단에 가입하여, 그 나라의 교회와 함께 걸어가는 선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돕는 선교가 아니라, 현지 교회의 .....

住所

栃木
Tochigi-shi, Tochigi
3280033

営業時間

月曜日 09:00 - 17:00
火曜日 09:00 - 17:00
水曜日 09:00 - 17:00
木曜日 09:00 - 17:00
金曜日 09:00 - 17:00

電話番号

+821067225820

ウェブサイト

アラート

호도스신학원がニュースとプロモを投稿した時に最初に知って当社にメールを送信する最初の人になりましょう。あなたのメールアドレスはその他の目的には使用されず、いつでもサブスクリプションを解除することができます。

共有する

カテゴリ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