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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에 마음을 내어줄 것인가?이사야 36장에서 전쟁은 칼보다 먼저 말로 시작됩니다. 성벽 아래 선 랍사게는 창을 겨누기 전에 마음을 흔듭니다. 믿음의 시험은 대개 환경 자체보다, 그 환경 앞에서 내가 누구를 의지...
14/06/2026

어떤 말에 마음을 내어줄 것인가?
이사야 36장에서 전쟁은 칼보다 먼저 말로 시작됩니다. 성벽 아래 선 랍사게는 창을 겨누기 전에 마음을 흔듭니다. 믿음의 시험은 대개 환경 자체보다, 그 환경 앞에서 내가 누구를 의지하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옵니다. 그래서 그는 묻습니다.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36:4). 위기는 단지 우리를 괴롭히는 사건이 아니라, 영혼의 뿌리가 어디에 박혀 있는지를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평안한 날에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협이 가까워지면 사람은 결국 자기가 진짜 붙들고 있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평소의 말보다, 흔들릴 때 내 영혼이 누구를 향해 넘어지는가에서 드러납니다.
랍사게의 말이 더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전부 노골적인 거짓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때로 완전한 허위보다, 부분적 사실에 절망을 섞는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그는 애굽이 상한 갈대와 같다고 말합니다(36:6). 그 말에는 어느 정도 사실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사실 위에 두려움을 덧칠하여, 결국 하나님까지 믿을 수 없다고 결론내리게 합니다. 이것이 거짓의 교묘함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허공에서만 속이지 않습니다. 종종 현실의 일부를 붙잡아, 그것을 전부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사람의 마음에서 마지막 남은 소망까지 지워 버리려 합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가장 위험한 거짓이 종교를 조롱하는 말만이 아니라, 종교 언어를 훔쳐 쓰는 거짓이라는 사실입니다. 랍사게는 심지어 여호와의 이름까지 입에 올립니다(36:10). 그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척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제국의 논리에 끌어다 붙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음험한 왜곡입니다. 오늘도 거짓은 종종 경건한 말투를 입고 다가오며, 믿음의 언어를 흉내 내면서 영혼을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믿음은 단지 나쁜 말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말처럼 들리더라도 그 중심이 하나님께서가 아니라 두려움과 절망에 있는지 분별하는 일입니다.
이사야 36장의 마지막에서 백성은 잠잠합니다(36:21). 이 침묵은 패배가 아닙니다. 적의 말에 곧바로 영혼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마지막 저항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먼저 크게 외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말이 거세게 밀려올 때, 성급히 대답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지키는 침묵으로 시작됩니다. 오늘도 우리를 흔드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이 더 크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말에 마음을 내어주느냐입니다. 구원은 환경이 잠잠해진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거짓의 소음 속에서도 끝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붙드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사야 36장 묵상: 어떤 말에 마음을 내어줄 것인가 이사야 36장에서 전쟁은 칼보다 먼저 말로 시작됩니다. 성벽 아래 선 랍사게는 창을 겨누기 전에 마음을 흔듭니다. 믿음의 시험은 대개 환경 자체보다, 그 환경 앞에서 내가 누....

하나님이 오시는 자리이사야 35장은 구원을 단지 위험에서 벗어나는 일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메마름의 생태가 꽃피는 생태로 바뀌는 사건으로 보여 줍니다. 광야가 기뻐하고,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나며, 마른...
12/06/2026

하나님이 오시는 자리
이사야 35장은 구원을 단지 위험에서 벗어나는 일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메마름의 생태가 꽃피는 생태로 바뀌는 사건으로 보여 줍니다. 광야가 기뻐하고,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나며, 마른 땅에 물이 솟아오릅니다(35:1-2, 6-7). 이 얼마나 눈부신 반전입니까. 하나님이 오시는 곳에서는 겨우 버티던 생명이 다시 숨을 쉬고, 죽은 듯 굳어 있던 자리에서 아름다움이 되살아납니다. 구원은 단지 덜 아프게 되는 일이 아니라, 다시 피어나게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생존의 연장이 아니라 창조의 회복입니다.
이 장은 또 두려움 속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을 건넵니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35:3). 하지만 성경의 위로는 막연한 낙관이 아닙니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공허한 다짐으로 사람의 등을 떠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원하시리라”(35:4). 여기에 믿음의 중심이 있습니다. 용기의 근거는 내 마음가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내가 강해져야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시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내 안의 용기를 짜내는 일이 아니라, 나를 향해 가까이 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시면, 닫혀 있던 것들이 열립니다. 맹인의 눈이 밝아지고,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며, 저는 자가 사슴같이 뛰고, 말 못하는 자의 혀가 노래합니다(35:5-6). 이것은 단지 육체의 치유만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회복입니다. 죄와 상처와 두려움이 오래 가두어 두었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다시 보고, 다시 듣고, 다시 걷고, 다시 노래하게 되는 것, 이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겨우 숨 쉬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다시 기쁨으로 움직이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시온이 있습니다.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거룩한 길을 따라 돌아오고, 그 머리 위에는 영원한 희락이 있으며, 슬픔과 탄식은 달아납니다(35:8-10). 그러니 오늘 우리의 광야가 아직 끝나지 않았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메마름을 꽃으로 바꾸시는 분이며, 떨리는 무릎 곁에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오시는 자리에는 물이 흐르고, 길이 열리며, 노래가 다시 시작됩니다.

이사야 35장 묵상: 하나님이 오시는 자리 이사야 35장은 구원을 단지 위험에서 벗어나는 일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메마름의 생태가 꽃피는 생태로 바뀌는 사건으로 보여 줍니다. 광야가 기뻐하고, 사막이 백합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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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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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스신학원과 AMJ가 공동으로 일본무목교회 현황과 역사적 배경에 관한 강연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함께하여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내용 보고서는 천보라 기자님께서 잘 정리를 해주셔서 그것으로 대신합니다. https:...

억울함이 방치되지 않는 날이사야 34장은 불길하고 두려운 장처럼 들립니다. 하늘이 말리고, 땅은 황폐해지며, 교만한 나라의 이름은 폐허 위에 바람처럼 흩어집니다(34:4, 10-12). 그러나 이 무거운 말씀을 끝까...
10/06/2026

억울함이 방치되지 않는 날
이사야 34장은 불길하고 두려운 장처럼 들립니다. 하늘이 말리고, 땅은 황폐해지며, 교만한 나라의 이름은 폐허 위에 바람처럼 흩어집니다(34:4, 10-12). 그러나 이 무거운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있노라면, 그 심판의 중심에 단지 파괴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진노하신다는 것은, 악이 영원히 제자리를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흘린 피가 땅에 스며든 채 잊히지 않고, 조롱당한 눈물이 끝내 대답 없는 침묵 속에 묻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보복의 날”(34:8)은 무서운 말이면서도, 고통받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마침내 침묵을 끝내시는 날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악이 오래가는 것을 봅니다. 강한 자는 더 강해지고, 거짓은 질서의 얼굴을 하고 앉아 있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의 배반은 멀리 있는 원수보다 더 깊이 가슴을 찢습니다. 에돔은 바로 그런 이름입니다. 멀리 있는 적이 아니라, 형제처럼 가까이 있으면서도 끝내 함께 울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34장의 심판은 단순한 국제정치의 붕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관계의 배반과 오랜 조롱까지 기억하고 계심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인간은 쉽게 잊고, 힘없는 자의 억울함은 역사 속에서 자주 지워지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 앞에서는 오래 참아 온 침묵조차 하나의 판결문이 됩니다.
이 장이 더욱 두려운 까닭은, 심판을 단지 멸망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창조가 풀려 버리는 풍경처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세워진 질서는 결국 혼돈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이 자랑하던 성과 문명과 체제와 이름이 마지막에는 들짐승의 거처가 되고, 불붙는 역청처럼 꺼지지 않는 황폐가 됩니다(34:9-15). 이것은 단지 벌이 크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세운 세계는 스스로를 지탱할 생명을 품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악은 아무리 화려해도 창조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잔인한 파괴가 아니라, 거짓 질서를 거두어 내시는 거룩한 정리입니다.
오늘 억울함 속에 있는 영혼이여, 함부로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늦으신 듯 보여도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보복은 분풀이가 아니라 신원이며, 그분의 심판은 혼돈이 아니라 거룩한 바로잡음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침묵을 끝내시는 날,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눈물은 버려진 것이 아니었고, 정의는 죽지 않았으며, 마지막 말씀은 끝내 하나님께 있었다는 것을.

이사야 34장 묵상: 억울함이 방치되지 않는 날 이사야 34장은 불길하고 두려운 장처럼 들립니다. 하늘이 말리고, 땅은 황폐해지며, 교만한 나라의 이름은 폐허 위에 바람처럼 흩어집니다(34:4, 10-12). 그러나 이 무거운 말씀을 끝까....

今度の説教はヨハネによる福音書10章7−12節から聴きます。イエスが「門」となられるということは、私たちがこれまで味わったことのない、全く新しい命の可能性を開く「唯一の通路」となられることを意味します。世の偽りの羊飼いたちが提示する門は、人...
05/06/2026

今度の説教はヨハネによる福音書10章7−12節から聴きます。
イエスが「門」となられるということは、私たちがこれまで味わったことのない、全く新しい命の可能性を開く「唯一の通路」となられることを意味します。世の偽りの羊飼いたちが提示する門は、人間を既存の体制の中に縛り付け、閉じ込める絶望の門にすぎません。しかし、イエスという命の門は、私たちを厳しく縛り付けていたすべての鎖を断ち切り、真の解放へと導く希望の門なのです。これでいい?

今度の説教はヨハネによる福音書10章7−12節から聴きます。 イエスが「門」となられるということは、私たちがこれまで味わったことのない、全く新しい命の可能性を開く「唯一の通路」となられることを意味しま.....

악은 언제나 자기는 예외로 여긴다!이사야 33장은 악이 얼마나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여 줍니다. 자신은 당하지 않으면서 남을 무너뜨리고, 자기는 안전한 곳에 서 있다고 믿으면서 타인의 삶을 허무는 손길...
05/06/2026

악은 언제나 자기는 예외로 여긴다!

이사야 33장은 악이 얼마나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여 줍니다. 자신은 당하지 않으면서 남을 무너뜨리고, 자기는 안전한 곳에 서 있다고 믿으면서 타인의 삶을 허무는 손길, 성경은 그것을 악이라 부릅니다(33:1). 악은 언제나 자기를 예외로 여깁니다. 자기의 탐욕은 필요라 부르고, 자기의 폭력은 질서라 부르며, 남의 눈물 위에 앉아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무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계산이 끝내 서지 못합니다. 사람의 약탈은 잠시 번성하는 듯 보여도,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는 이미 자기 무너짐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악이 커 보이는 순간에도, 역사의 마지막 줄을 악인이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 눈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부르짖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33:2). 이 기도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터져 나오지만, 실은 우리의 모든 아침에 필요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구원은 한 번의 극적인 사건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아침마다 다시 필요한 은혜입니다.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 수 없고, 지난날의 감격만으로 오늘의 두려움을 건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환난 때의 구원일 뿐 아니라,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어 주시는 분입니다(33:2). 그래서 신앙은 거대한 기적만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라, 오늘도 내 손보다 하나님의 손이 먼저 나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 장이 보여 주는 구원은 단지 적을 없애 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랴”(33:14)라는 물음은 우리를 더 깊은 자리로 데려갑니다. 진짜 구원은 위험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33장의 절정은 전쟁의 종결이 아니라 “왕을 그의 아름다움 가운데에서 보리라”(33:17)는 약속입니다. 얼마나 눈부신 결말입니까. 두려움에 길들여진 눈이 마침내 아름다움을 보게 되고, 계산과 경계로 굳어진 마음이 마침내 영광 앞에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그날, 시온에는 병든 자가 없고, 그 가운데 사는 백성은 죄 사함을 받습니다(33:24). 그러니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주님, 저를 단지 살아남게 하지 마시고, 끝내 당신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 주십시오. 아름다운 왕을 뵈옵는 날까지, 아침마다 은혜로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이사야 33장 묵상: 악은 언제나 자기는 예외로 여긴다! 이사야 33장은 악이 얼마나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여 줍니다. 자신은 당하지 않으면서 남을 무너뜨리고, 자기는 안전한 곳에 서 있다고 믿으면서 타인의 삶을...

무너시는 시대 한복판에서이사야 32장은 무너지는 시대 한복판에서, 참된 평안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사람은 평안을 원하지만, 종종 안일함을 평안으로 착각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03/06/2026

무너시는 시대 한복판에서
이사야 32장은 무너지는 시대 한복판에서, 참된 평안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사람은 평안을 원하지만, 종종 안일함을 평안으로 착각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오늘의 질서만 유지되면 괜찮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얕은 고요를 평안이라 부르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세우시는 나라는 의로 다스리는 왕 아래에서 시작되고, 공의로 세워진 질서 속에서 자랍니다(32:1). 그러므로 사람을 살리는 통치는 높이 군림하는 권력이 아니라, 광풍을 피하는 곳과 폭우를 가리는 곳, 마른 땅의 냇물과 곤비한 땅의 큰 바위 그늘 같은 통치입니다(32:2). 참된 권위는 사람을 짓누르지 않고 쉬게 합니다.
그 통치 아래에서는 닫혔던 감각이 다시 살아납니다. 보던 눈이 비로소 제대로 보고, 듣던 귀가 이제야 참으로 기울이며, 조급하던 마음이 깨달음을 얻고, 더듬던 혀가 분명히 말하게 됩니다(32:3-4). 이것이 회복입니다. 상황만 조금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감각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가 피곤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릅니다. 너무 많은 소리를 듣지만 정작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너무 많은 것을 보지만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세상을 바꾸시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과 귀부터 고치십니다.
그러나 이 장은 또한 안일한 마음을 흔듭니다. 위기 속에서도 태연하고, 무너지는 징조 앞에서도 괜찮다고 말하며, 오늘의 풍요가 내일도 계속될 것처럼 살아가는 태도를 향해 경고합니다(32:9-14). 진짜 평안은 무감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한 채 웃는 얼굴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떨 줄 아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장의 가장 큰 전환은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32:15)라는 말씀에서 옵니다. 인간의 애씀만으로는 광야가 밭이 되지 않습니다. 위로부터 생기가 와야 하고, 하늘에서 영이 부어져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정의가 평안을 낳고, 공의가 고요와 안전을 맺습니다(32:16-17).
그러므로 믿음은 그저 버티는 일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영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참된 평안은 세상이 잠잠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분의 영이 임하실 때, 메마른 삶에도 다시 씨를 뿌릴 수 있게 되고, 두려움이 머물던 자리에도 평안한 거처가 마련됩니다(32:18-20). 오늘 우리의 기도도 이러해야 하겠습니다. 주님, 제 삶의 광야 위에도 영을 부어 주십시오. 제 눈을 열어 다시 보게 하시고, 제 귀를 열어 다시 듣게 하시며, 제 마음을 살려 주셔서 안일함이 아니라 참된 평안 안에 살게 하소서.

이사야 32장 묵상: 무너시는 시대 한복판에서 이사야 32장은 무너지는 시대 한복판에서, 참된 평안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사람은 평안을 원하지만, 종종 안일함을 평안으로 착각합니다. 아...

HODOS聖書通読黙想(6/3)이사야 31장 묵상: 두려움이 향하는 곳
02/06/2026

HODOS聖書通読黙想(6/3)
이사야 31장 묵상: 두려움이 향하는 곳

이사야 31장 묵상: 두려움이 향하는 곳 이사야 31장은 위기의 시대에 사람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31:1). 이 한 문장 안에는 두려움의 본성...

https://mubokumission.org/meditation/?mod=document&uid=2841
02/06/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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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0장 묵상: 하나님 없이, 백성 없이 이사야 30장은 한 나라의 외교 실패를 꾸짖는 장이기 전에, 한 백성의 마음이 얼마나 멀리 떠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슬픈 기록입니다. 유다는 앗수르의 칼날 앞에서 하나님보다 애굽.....

住所

栃木
Tochigi-shi, Tochigi
3280033

営業時間

月曜日 09:00 - 17:00
火曜日 09:00 - 17:00
水曜日 09:00 - 17:00
木曜日 09:00 - 17:00
金曜日 09:00 - 17:00

電話番号

+82106722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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