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2014
***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 ***
영국에는 국민 모두가 긍지를 가지고
지켜 내려오는 전통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
는 말을 나누는 것이다.
항해 중에 재난을 만나면
선원들이나 승객들은 서로서로
상대방의 귀에 대고
조용하고 침착한 음성으로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라고
속삭인다.
해양국가인 영국의 해군에서 만들어진
이 전통 덕분에 오늘날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명이 죽음을 모면해왔다.
일찍이 인류가 만든 많은 전통 가운데
이처럼 지키기 어려운, 또 이처럼
고귀한 전통도 아마 다시는 없을 것이다.
이는 실로 인간으로는 최대한의 자제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18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해군의 자랑으로 일컬어지고 있던
수송선 ‘버큰헤이드호’가 사병들과
그 가족들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를 향하여
항해하고 있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은
모두 630명으로 130명이 부녀자였다.
항해 도중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으로부터
약 65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배가 암초에 부딪쳤다.
시간은 새벽 2시.
승객들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선실에는
대번에 커다란 소란이 일어났다.
부서진 판자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
그 사이를 기어 갑판으로 나가려는 사람,
우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그때 파도가 밀려 배가 다시 한번
세게 암초에 부딪쳤다.
배는 이제 완전히 허리통이 끊겨
침몰되어가고, 그 사이 사람들은
가까스로 배의 뒤쪽으로 피신했다.
이들 모두의 생명은 이제 말 그대로
경각에 달려 있는 셈이었다. 게다가
선상의 병사들은 거의 모두가
신병들이었고 몇 안 되는 장교들도
그다지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사관들이었다.
남아 있는 구조선은 3척밖에 없었는데
1척당 정원이 60명이니까 구조될 수 있는
사람은 180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더구나 이 해역은 사나운 상어가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반 토막이 난 이 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물 속으로 가라앉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풍랑은 더욱더 심해져갔다.
죽음에 직면해 있는 승객들의
절망적인 공포는 이제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아래서도 승객들은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전 병사들에게 갑판 위에 집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수백 명의 병사들은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마치 아무런
위험이 없는 듯 훈련을 할 때처럼
민첩하게 열을 정돈하고 나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동안 한쪽 편에서는 횃불을 밝히고
부녀자들을 3척의 구명정으로 하선시켰다.
마지막 구명정이 그 배를 떠날 때까지
갑판 위의 사병들은 사열식을 하고 있는
것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구명정에 옮겨 타 일단 생명을 건진
부녀자들은 갑판 위에서 의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흐느껴 울었다.
마침내 ‘버큰헤이드호’가 파도에 휩쓸려
완전히 침몰하면서 병사들의 머리도
모두 물 속으로 잠겨들었다.
얼마 후에 몇 사람이 수면 위로 떠올라왔다.
용케 물 속에서 활대나 나무 판자를
잡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날 오후 구조선이 그곳에 도착하여
살아 남은 사람들을 구출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436명의 목숨이
수장된 다음의 일이었다.
사령관 세튼 대령도 죽었다.
목숨을 건진 사람 중의 하나인
91연대 소속의 존 우라이트 대위는
나중에 이렇게 술회했다.
“모든 장병들의 의연한 태도는
최선의 훈련에 의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누구나 명령대로 움직였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 명령이라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모두 잘 알면서도
마치 승선 명령이나 되는 것처럼
철저하게 준수하였다.”
이 사건은 영국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버큰헤이드 호’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기념비가 각지에 세워졌다.
이전까지는 배가 해상에서 조난될 경우
저마다 제 목숨부터 구하려고
큰 소동을 벌이고는 했다.
즉, 힘센 자들이 구명정을 먼저 타고
연약한 어린이와 아녀자들이
남아 죽어야 했다.
‘여자와 어린이가 먼저’라는
훌륭한 전통이 ‘버큰헤이드호’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그 이후 죽음 앞에서도
명예롭고 의연하게 혼란을 축소함으로써
여자와 어린이는 물론 수많은 인명을
살려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