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戸恩恵教会

神戸恩恵教会 神戸市中央区元町6丁目の元町商店街に建つキリスト教会です。

2015. 7. 12(일)
13/07/2015

2015. 7. 12(일)

감사합니다!!
19/05/2015

감사합니다!!

김씨 부부가 영락고 앞에 분식집을 연 것은 2006년이다. 김씨는 “예수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겼다는 이야기처럼 ‘작은 것으로 나누는 가게가 되자’는 의미로 가게 이름을 지었다”고...
11/03/2015

김씨 부부가 영락고 앞에 분식집을 연 것은 2006년이다. 김씨는 “예수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겼다는 이야기처럼 ‘작은 것으로 나누는 가게가 되자’는 의미로 가게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1450.html

독일에 사는 일본인학생이 후꾸시마 원전사고로 방사능에 고통받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 국제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일본언론은 이를 보도조차 하지않고 있다.https://www.youtube.com/watc...
11/03/2015

독일에 사는 일본인학생이 후꾸시마 원전사고로 방사능에 고통받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 국제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일본언론은 이를 보도조차 하지않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OlE6JxQ4us

祝福の山教会
19/02/2015

祝福の山教会

이스라엘 평원
05/02/2015

이스라엘 평원

19/04/2014

***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 ***

영국에는 국민 모두가 긍지를 가지고
지켜 내려오는 전통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
는 말을 나누는 것이다.

항해 중에 재난을 만나면
선원들이나 승객들은 서로서로
상대방의 귀에 대고
조용하고 침착한 음성으로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라고
속삭인다.

해양국가인 영국의 해군에서 만들어진
이 전통 덕분에 오늘날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명이 죽음을 모면해왔다.

일찍이 인류가 만든 많은 전통 가운데
이처럼 지키기 어려운, 또 이처럼
고귀한 전통도 아마 다시는 없을 것이다.
이는 실로 인간으로는 최대한의 자제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18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해군의 자랑으로 일컬어지고 있던
수송선 ‘버큰헤이드호’가 사병들과
그 가족들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를 향하여
항해하고 있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은
모두 630명으로 130명이 부녀자였다.
항해 도중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으로부터
약 65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배가 암초에 부딪쳤다.

시간은 새벽 2시.
승객들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선실에는
대번에 커다란 소란이 일어났다.
부서진 판자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
그 사이를 기어 갑판으로 나가려는 사람,
우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그때 파도가 밀려 배가 다시 한번
세게 암초에 부딪쳤다.
배는 이제 완전히 허리통이 끊겨
침몰되어가고, 그 사이 사람들은
가까스로 배의 뒤쪽으로 피신했다.

이들 모두의 생명은 이제 말 그대로
경각에 달려 있는 셈이었다. 게다가
선상의 병사들은 거의 모두가
신병들이었고 몇 안 되는 장교들도
그다지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사관들이었다.

남아 있는 구조선은 3척밖에 없었는데
1척당 정원이 60명이니까 구조될 수 있는
사람은 180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더구나 이 해역은 사나운 상어가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반 토막이 난 이 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물 속으로 가라앉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풍랑은 더욱더 심해져갔다.
죽음에 직면해 있는 승객들의
절망적인 공포는 이제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아래서도 승객들은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전 병사들에게 갑판 위에 집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수백 명의 병사들은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마치 아무런
위험이 없는 듯 훈련을 할 때처럼
민첩하게 열을 정돈하고 나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동안 한쪽 편에서는 횃불을 밝히고
부녀자들을 3척의 구명정으로 하선시켰다.
마지막 구명정이 그 배를 떠날 때까지
갑판 위의 사병들은 사열식을 하고 있는
것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구명정에 옮겨 타 일단 생명을 건진
부녀자들은 갑판 위에서 의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흐느껴 울었다.

마침내 ‘버큰헤이드호’가 파도에 휩쓸려
완전히 침몰하면서 병사들의 머리도
모두 물 속으로 잠겨들었다.
얼마 후에 몇 사람이 수면 위로 떠올라왔다.
용케 물 속에서 활대나 나무 판자를
잡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날 오후 구조선이 그곳에 도착하여
살아 남은 사람들을 구출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436명의 목숨이
수장된 다음의 일이었다.
사령관 세튼 대령도 죽었다.

목숨을 건진 사람 중의 하나인
91연대 소속의 존 우라이트 대위는
나중에 이렇게 술회했다.

“모든 장병들의 의연한 태도는
최선의 훈련에 의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누구나 명령대로 움직였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 명령이라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모두 잘 알면서도
마치 승선 명령이나 되는 것처럼
철저하게 준수하였다.”

이 사건은 영국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버큰헤이드 호’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기념비가 각지에 세워졌다.

이전까지는 배가 해상에서 조난될 경우
저마다 제 목숨부터 구하려고
큰 소동을 벌이고는 했다.
즉, 힘센 자들이 구명정을 먼저 타고
연약한 어린이와 아녀자들이
남아 죽어야 했다.

‘여자와 어린이가 먼저’라는
훌륭한 전통이 ‘버큰헤이드호’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그 이후 죽음 앞에서도
명예롭고 의연하게 혼란을 축소함으로써
여자와 어린이는 물론 수많은 인명을
살려낸 것이다.

12/02/2014

*** 감사의 마음 ***

미국의 어느 시골학교 선생님이 음악교육을 위해
피아노 한 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 갑부였던
포드 자동차 회사의 포드 회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회장님, 학교에 피아노 한 대가 필요합니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후 답장이 왔는데 열어보니 단 돈
100달러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실망치 않고 100달러로
땅콩을 사왔다. 대개 사람들은 갑부가
피아노를 살 수 있는 돈을 줘야지.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뭐야 라며
불평했을것이다.

그러나 이 선생님은 사온 땅콩을
학교부지에 심었다. 그 해 땅콩을
수확하여 팔았다. 몇 년을 그렇게 했더니
피아노를 살 수 있는 돈이 모아졌다.

선생님은 포드 회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회장님의 도움으로 피아노 살 돈이
모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포드회장으로부터 답장과 함께
만 달러가 송금되어 온 것이다.

답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생님 같은 분이 미국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했지만 기부금을
주면 작다고 투덜대거나 모르는 척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작은 기부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이익까지 돌려주시니 제가
감격하였습니다.
여기 만 달러를 드리니 학교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도움을 청하시면 액수와 상관없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받기에 익숙해 있거나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불평한다면
그 영혼에는 감사의 샘이 이미
말라버린 것입니다.

2013年12月22日『主日礼拝』
23/12/2013

2013年12月22日『主日礼拝』

23/12/2013

2013年12月22日『主日礼拝』でOh, holy night!!

住所

Kobe-shi, Hyogo
650-0022

電話番号

+81 78-351-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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