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한인침례교회

런던한인침례교회 런던 한인 침례 교회/ London Korean Baptist Church
예배 안내
시간: 주일 오후 1시45분
장소: East London Tabernacle Burdett Road, London E3 4TU (nearest tube station:Mile End

런던한인침례교회 (London Korean Baptist Church)

Tel. 020 7790 9765
Address: East London Baptist Church, Burdett Road, Mile End, London, E3 4TU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 Mile End)
담임. 임헌삼 목사 (email: [email protected])

26/12/2021

제목: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본문: 디모데후서4:9-21절
일자: 2021년12월26일

일년 사계절은 순서가 있고 질서 정연하게 오고 갑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인생에도 반드시 겨울은 옵니다. 그러므로 저마다 언제 휘몰아쳐 올지 모를 겨울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첫째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복음을 전 해야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사랑과 우정을 갈구하는 우리의 부모 자녀 친구 이웃이 있습니다. 어려운 사정에 도움을 요청하는 음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영영 꺼지기 전에 나를 찾아 주시오 하는 신음 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둘째 겨울이 오기 전에 겉옷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람이 떨게 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날씨가 추워서 육체가 떠는 것이 있고, 죄로 말미암아 심령이 떠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비참한 것은 떨리는 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에 떠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양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에덴에서 입었던 가죽 옷은 무서운 심판의 겨울을 이기는 구속의 옷입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도 이 옷을 준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세상 죄인들을 위해 피 흘리시면서 만들어 주신 속죄의 가죽 옷을 입고 최후의 심판을 면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겨울 전에 하나님 말씀을 먹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신약과 구약이라는 영생 불사의 생약입니다. 성경은 죄를 홀로 지시고 피 흘려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진리를 담은 책입니다. 예수님이 처방해 주신 생명의 말씀을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나야 할 날이 가까워올 때 그는 영원한 나라에 대한 준비를 하기 위하여 성경 책을 손에 가까이 했던 것입니다.

넷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섭리로 신뢰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인생의 겨울이 가까이 왔을 때 그 마음이 더욱 선하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겨울을 맞을 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야곱은 죽을 때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창48:21) 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섯째 겨울이 오기 전에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풀어야 할 사람은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하고 내 불행한 운명의 잘못이 남에게 있다고 원망하고 환경을 탓하며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하는 마음 서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사도바울은 겨울이 가까이 오사 자신을 반성하고 아름다운 결론을 얻었습니다.
내가 이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이것이 그의 생의 결론 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우리의 생을 마칠 때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싸늘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도 인생의 겨울인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겨울을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아멘

19/12/2021

제목: 아기 예수께 경배한 사람들
본문: 마태복음2:1-12절
일자: 2021년12월19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나심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입니다.
인류를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태어난다는 것이 폭군 헤롯에게는 매우 눈에 거슬리는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의미도 모른 채 소동했던 것입니다. 요즘은 성탄절이 조용합니다. 이름도 부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아기예수가 나신 일에 완전히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정으로 축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동방 페르시아지방의 천문학 박사들인데 이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수 만리 길을 걸어와 보배 합을 열어 값진 황금, 유향 몰약을 아기 예수께 드렸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탄생을 축하해야 할까요?

첫째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하여 정성을 드렸습니다.
페르시아에서 베들레헴까지의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별을 따라 가야 했으니 낮에는 방향을 알 수 없었기에 밤에만 길을 걸어 갈 수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에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니 귀한 시간을 바친 정성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 중심의 정성을 보신 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중심에 누구를 모시고 있습니까?
현대인에게 깊이 만연된 정신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안일 주의와 실리주의 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따라 예수를 편하게 쉽게 믿으려고 합니다. 신앙은 좁은 문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13-14)

둘째 동방박사들은 예수님께 겸손히 경배하려고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서 최고의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이지 욕구 충족과 흥미와 사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발아래 엎드려 경배해야 합니다. 박사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 예수께 경배 하였던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나의 생전에 만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내 생전에 내가 쓴 왕관을 그의 발 앞에 엎드려 벗어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동방 박사들은 보배 합을 열어 믿음의 표시로 예물을 드려 경배 했습니다.
황금은 왕에게 드리는 제일 귀한 예물이요, 유향은 제사장들이 제사 때 사용하는 것이며, 몰약은 시체에 바르는 약으로써 사망을 폐하시는 구세주 이심을 상징하는 예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동방의 박사들이 드린 예물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의 예물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전 존재를 드려야 할 경배의 대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릴 왕이시며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단번에 속죄 시킬 대제사장이십니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믿음으로 경배하지 않으면 성탄을 맞을 자격이 없습니다. 보배 합을 연다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성탄을 맞은 우리는 마음을 열어서 신앙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에게 무릎을 꿇고 자기를 다시리는 왕으로 죄 사함을 베푸시는 구속 주로 영원한 생명으로 모실 때 진정한 성탄을 맞이하게 될 줄 믿습니다.

넷째 동방 박사들은 왕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순종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헤롯왕의 부탁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두 가지 명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먼저 절대자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동방 박사들처럼 생명을 걸고 예수님께 순종하는 충성된 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부모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될 때에는 부모님에게 겸손히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핍박을 자초하지말고 지혜롭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 한 후 다른 길로 갔습니다.
만일 박사들이 다른 길로 가지 않고 헤롯에게 돌아갔다면 헤롯은 아기 예수를 죽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박사들의 성탄 축하의 경배는 비극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사들은 해롯의 악한 길을 피하여 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 하여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방 박사들처럼 시간과 물질과 마음의 정성을 드려 성탄을 축하해야 합니다.
진정한 축하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에게서 돌아서서 주님을 모시고 바른 길을 향해 나아갈 때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12/12/2021

제목: 그리스도의 편지
본문: 고린도후서3:1-3절
일자: 2021년12월12일

하나님께서 최초로 인간에게 전달한 편지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의 돌판이었습니다. 모세가 40일 주야로 시내 산에서 금식하고서 받은 돌판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편지였습니다.
두 번째 편지는 육비에 새겨진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구약을 공의 편지라고 한다면 신약은 사랑의 편지였습니다. 구약에서는 돌비에 새겼으나 신약은 친히 예수님 몸에 새겼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있는 편지로 몸 전체가 움직이는 편지 였습니다. 예수님은 글을 쓰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삶 전체가 곧 편지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아들을 통하여 구원의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번째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을 보내시고 제자들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의 편지를 쓰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가 사도들에게 의하여 쓰여져 성경으로 우리의 손에 전승되어 온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내신 편지를 친서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재산과 축복의 지혜와 능력과 행복을 약속하는 사랑의 편지를 보내주셨으나 아직도 그것이 자기에게 온 것을 알지 못하고 휴지처럼 내버리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편지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공문서 형식으로 인쇄되어 오는 것이 있고, 사신으로 친서로 오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편지를 공문서로 받아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친서로 나에게 온 것임을 알아야 비로소 새로운 축복이 됩니다. 이 친서를 받게 되면 우리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이 편지를 통하여 부요한 자녀임을 알게 됩니다. 병든 사람은 만병의 치료자이신 예수님의 치료의 소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연약한 자들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승리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외로운 자들은 이 편지 속에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편지를 가진 자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품에 안기어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친서의 편지를 받았다는 회답이 있어야 합니다.
편지를 보냈는데 회답이 없으면 참으로 궁금합니다. 멸망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편지라면 더욱 궁금할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로 회답하든지, 기도로 하든지 어떤 모양으로든지 회답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께 드리는 편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편지로 이 세상에 보내십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언제나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 같은 인간들을 제자로 삼아 말씀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승 시켰습니다. 이제 우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소식을 기다리는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있습니다. 하늘의 소식을 기다리는 저 죽어가는 영혼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편지
예수께서는 한 장의 글도 써서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마음속에 글을 새겼습니다. 곧 먹으로 쓰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피로, 성령의 능력으로 쓰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도장이요 편지로, 불신자에게는 산 성경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소식입니다. 그래서 요한을 보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었고, 베드로를 본 자는 천국 소망을, 바울을 본 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성도의 손과 발과 말과 행위를 보고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편지를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보내기를 원하십니다(행 1:8). 그래서 그 편지를 온 세상 사람들이 읽고 구원의 기쁜 소식이 두루 퍼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편지 된 성도들은 입술에 인격에 행실에 복음을 싣고 땅 끝까지 가야 합니다. 아멘.

05/12/2021

제목: 넘어질까 조심하라
본문: 고린도전서10:1-12절
일자: 2021년12월05일

인간을 알려면 역사를 알아야 하고, 자연을 알려면 과학을 연구해야 하며 하나님을 알려면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고 우찌무라간조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바로 알려면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 원망의 죄는 민16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큰 죄악이었고, 땅이 그 입을 벌려 원망하는 무리들을 모두 삼키고 마는 죄악입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고 말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바울에 대해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어떤 이는 다른 지도자들에 대해 원망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그 섭리에 맡기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원망은 장래에 대한 소망도 사라지게 합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약 5:9) 원망의 죄는 멸망시키는 천사를 발동시키는 큰 죄입니다. 그리고 원망은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도 사라지게 함으로써 주의 십자가의 구원을 저버리는 것이므로 큰 죄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이 짜증스럽고 고통스럽더라도 원망이나 불평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원망 대신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 유혹에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믿음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유혹이 따릅니다. 믿음의 사람은 누구든지 신앙생활을 저해하는 유혹을 물리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시험을 이길 수 있을 까요?
인간은 어떤 사림도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능히 감당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신이 약한 존재임을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사탄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사망의 독을 마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시험을 이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충만 할 때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의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롬8:26) 왜 성령이 탄식 하십니까? 유혹에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28/11/2021

제목: 그리스도인의 계명
본문: 요한복음15:7-12절
일자: 2021년11월28일

사람들은 보통 '계명'이란 낱말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명령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계명은 엄격한 훈계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므로 우리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를 화합하게 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계명의 원형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살아도 죽어도 하나님의 영광이요, 성공해도 실패해도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성공만이 영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을이 오면 한때 무성하던 모든 잎은 떨어지는 낙엽이 됩니다. 그러나 일년 내내 가꾼 농부에게는 익은 곡식이나 열매가 한 없는 기쁨이 됩니다. 자연을 보면서 열매를 거두듯이 나도 열매를 거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두어야 할 열매가 무엇이며 얼마나 많은 열매를 거두야 하는지 또 거둔 열매가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계명을 지킴으로써 생기는 결과
1)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사랑의 증거를 보이고 싶다면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길이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길입니다.

2)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세상 쾌락이 주는 기쁨은 공허하여 곧 싫증을 느끼게 되지만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얻는 기쁨은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는 참 기쁨입니다. 주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곧 충만한 기쁨을 얻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계명을 지킨 결과인 것입니다.

진정한 순종 없는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지양하자.
요15:1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우리가 가지가 된다는 것은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디에 붙어도 생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열매를 거둘 것이 이 땅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 포도나무의 가지입니다. 내가 좋은 열매를 맺으므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고, 좋은 나무에 붙어 있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어서 선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소유의 열매와 인격의 열매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복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구별이 없습니다. 악해도 성공하고 출세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예수의 인격적인 복을 반드시 받습니다.
인격적인 복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복이요, 이런 복을 받아야만 행복합니다.

열매는 가지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먹으려고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나무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전적으로 열매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먹을 것이 있게 하라, 끝까지 나에게서 따 먹어 다오. 이렇게 자기 존재를 유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서 거기서 맺은 열매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존재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21/11/2021

제목: 그리스도인의 감사
본문: 하박국3:16-19절
일자: 2021년11월 21일

인간의 최대의 복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감사의 열매를 거둔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을 나무의 뿌리라고 한다면 열매는 감사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감사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특수한 감사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를 그리스도인의 감사라고 합니다.

환난 중에 감사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환난에도 감사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마다 갖는 은총입니다. 나무는 가뭄 때에 뿌리가 깊어집니다. 가을 찬 바람에 단단해집니다. 어머니들은 해산 할 때 고통 가운데서 자녀에 대한 깊은 정이 생기게 됩니다. 부부는 고생하면서 정이 듭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환경을 변화 시키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연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아서 나오는 사람은 금 같은 믿음을 얻어 나오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연단 속에서 영혼도 죽고 인격도 죽어 나오는 것입니다.

없어도 드리는 감사
다 빼앗기면서도 감사하는 마음, 잃어버리면서도 감사하는 마음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이런 감사는 감사의 근원이 철저하게 하나님에게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 광야를 지나는 동안 흑암과 공허가 앞을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 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감사야 말로 우리의 생을 온통 기적으로 바꾸는 은총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길은 적은 것에 감사함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을 지라도 우리가 분명히 고백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사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나는 물질이 없어도 환난이 와도 예수로 인하여 죄 사함의 구원을 받았기에 이것으로 만족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생명을 가졌기에 시시한 것과는 비교 할 수가 없어. 하는 자기 만족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것, 남의 가진 것을 부러워하게 되면 불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올 바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내 환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구원의 하나님 때문에 나를 부러워하게 만들면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높은 감사
우리는 은혜를 받되 높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의 높은 경지에 이르면 세상의 환난이 와도 핍박이 와도 세상의 어떤 어려움이 와도 거기에 매이지 않고 은혜로 자유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높은 곳은 성전입니다. 내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 이 성산에 올라가라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듭남의 삶은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벌래 같은 인간들을 허물 벗게 하고 믿음의 날개를 붙여 땅에서 더러운 것을 먹는 존재가 아니요, 하늘의 신령한 것을 먹으며 살 수 있는 찬송하는 하늘 시민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교회는 신앙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곳입니다.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날개를 붙여주고 사슴처럼 높은 곳으로 오르도록 힘을 주는 곳입니다. 높이 오른 사람은 불평이 없습니다. 항상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보화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도 우리의 구세주도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요한 것은 모두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낮은 곳에서 헤메이지 말고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낮은 곳은 시험이 많습니다. 이제 성령의 능력을 힘 입어 높이 올라가 감사의 세계에서 살아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14/11/2021

제목: 그리스도인의 매력
본문: 빌립보서2:25-30절
일자: 2021년11월 14일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가치 개념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보는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미래를 보고 모든 것을 평가 해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분명히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성한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존귀한 분으로 믿는다면 우리들도 존귀한 존재로 여김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존귀하 여김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핍박을 받을지언정 조롱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축복은 무엇을 소유했느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존귀한 삶을 살았느냐 하는 데에 있습니다.

성경은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을 때 빌립보 교인들이 정성껏 헌금한 것을 모아 로마까지 찾아온 에바브라디도 집사를 착하고 신실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라디도 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매력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에배브라디도를 가리켜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명예로운 명예를 부여 해준 것입니다.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있는 형제요, 봉사적인 정신으로 함께 헌신하는 자요, 죽음을 각오하고 사명감으로 충성하는 일꾼이라는 의미에서 그를 가리켜 군사 된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히 하려 하기를 원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인생관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면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겸손한 자는 자신이 존귀함을 받게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멸시와 욕을 먹지만 겸손한자에게는 영예가 따라오게 됩니다(잠11:2)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중심에 깊이 남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남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선교 사업과 어려움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짐을 질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섬기는 자의 일생이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나라. 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섬기려면 종의 위치가 되어야 하며 자기 자신이 죽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곳에 가든 소중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핍박을 받을지언정 비난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고난을 받을지언정 천대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곳마다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그에게 집중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겸손과 섬김으로 돕는 자로서 매력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07/11/2021

제목: 그리스도인의 자존 감
본문: 사도행전 26:24-29절
일자: 2021년 11월 07일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무덤으로 끝난다고 슬퍼하지만 우리는 그날 주께서 이루실 부활을 믿고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는 신령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중히 여기면서 자기 잘난 멋에 살고 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잘난 맛에 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기가 꺾이지 않고 어떤 환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나에게 주신 분복을 기뻐하면서 자신을 긍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바로 이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큰 은혜가 있음을 확신 할 때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가 자기 조카 롯과 함께 요단 들에 정착하여 살 때 많은 양떼들 때문에 그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싸웁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신성한 자존심을 가지고 이렇게 말합니다. 싸우지 말자. 이방 땅에서 싸운다고 하는 것은 신성한 자존심에 대한 상처이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여라. 아브라함은 하늘에 속한 자로서 자존심을 가지고 요단을 떠나 가나안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신성한 자존심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산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 어떤 환경에서 살든지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그들을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땅에서 부러워할 사람이 있다면 믿음으로 신성한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간 위대한 그리스도인들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멀리했던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 회개요, 아직도 주 안에서 얻은 세계에 대하여 눈이 어두운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산 자의 신앙을 가지고 있겠기에 산 자의 자존심을 가지고 이 땅 위에 불행히 죽어가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로서 가난해도 천대를 받아도 옥에 갇혀도 존귀한 그리스도를 모셨다는 신성한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삶의 목적이 숭고한 사람들은 신성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우리는 이제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을 수 있을 뿐입니다. 사는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그 목적 때문에 자기 자신이 존귀한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나는 사나 죽으나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된다.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숭고한 길입니다. 누가 알아주고 순교자로 세워져야만 순교가 아니라 주님을 생각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와 함께 고난 당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모두 순교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성한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현재의 자신을 소중히 알고 어느 환경에서나 기쁨을 잃지 않고 봉사하는 신성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31/10/2021

제목: 곤고한 날을 사는 지혜
본문: 전도서7:11-14절
일자: 2021년10월 31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형통할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형통했다고 교만 하거나 방탕할 때 그것이 바로 심판이 됩니다. 그러나 곤고할 때도 조심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곤고한 날이 자기에게 불행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솔로몬은 일생동안 형통한 날을 살아간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생에 대해 깨달은 진리 가운데 두 가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생은 허무하다는 사실이요, 또 하나는 인생은 곤고 하다는 것입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데 그것 자체도 곤고하다고 말합니다. 마음의 공허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는 지혜를 얻으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지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특별히 곤고한 날을 사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 곤고한 날도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형통한 것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하지만 곤고한 것은 사탄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곤고한 것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루 중에는 밤과 낮이 있습니다. 밤이 없고 낮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곤고한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곤고도 하나님의 큰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절대 주권을 믿는다면 지금 자기에게 찾아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곤고한 날이 올 때 우리는 원망할 것을 찾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둘째 곤고한 날에는 유익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전부 다 잃었다는 느낌이 들 때 심령이 곤고 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잃는 중에 얻는 것이 있고, 망하는 중에 남은 것이 있습니다. 손해 보는 중에 유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다윗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곤고한 날이 오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건강 할 때는 상대적인 가치관으로 살지만, 병들 때는 절대적인 가치관으로 왜 살아야 하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절대적인 존재의 의미를 절실하게 찾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통한 날을 사는 지혜가 있고 곤고한 날을 사는 지혜가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십니다.

셋째 곤고한 날에는 기도 해야 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감사하고 곤고한 날에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미래를 주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내일 일은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알면 나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위하여 염려 하지말라, 내일은 내일 염려 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 하니라 (마6:34) 이 말은 오늘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하나님 섭리에 있으니 너희는 다만 내일 염려 주께 맡기고 할 일을 그날 기도로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내 안에 있는 곤고한 것들을 내 보내야 합니다. 밖에서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에서 내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밖에서 얻는 것은 두번째이고 내 안에서 내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능히 헤아려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심령 속에 도사리고 있는 곤고한 마음의 불안 초조함 등이 모든 것을 기도로 내 보내야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시50:15) 영화로운 주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 곤고한 날에 기도 함으로써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24/10/2021

제목: 어려움을 푸는 열쇠
본문: 욥기 2:7-10절
일자: 2021년 10월 24일

모든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이 올 때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사람의 마음 같이 강한 것이 없고, 사람의 마음 같이 연약한 것도 없습니다.
어려움은 나 혼자 만이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12:8 에 보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 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이란 어려움을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가 순수해지고 장성해 짐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을 찾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도 어려움이라는 과정을 거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먼저 고난이 오고 다음에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도 단 것을 먼저 먹으면 음식이 맛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고난의 쓴 물을 마시고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은 내일 인생에는 행복의 맛이 있고, 신앙의 맛이 있고, 영적인 맛이 있어서 날마다 새로워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기르실 때 고난이라고 하는 터널을 지나가게 하십니다. 그 다음에야 승리와 영광이라는 햇빛을 안겨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후에 부활이 있고 천국이 있습니다.

고난은 훌륭한 학교입니다. 고난을 거친 사람은 인격이나 생각이나 마음이 모두 달라집니다. 고난이라는 학교를 나온 사람은 겸손이라는 공부를 하고 나옵니다. 순종을 배웁니다. 협동을 배웁니다.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감사를 배웁니다.

고난을 당할 때 원망하고 불평하고 욕하는 욥의 아내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간음이나 도둑질이나 살인이나 다른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입으로 죄를 지은 것입니다. 몸으로 짓는 죄가 큰 줄로 알지만 그보다 더 큰 죄는 입으로 짓는 죄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앞에 가장 영광스러운 것도 입으로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말 한마디 한 마디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죄악은 입으로 짓는 죄입니다. 입으로 천국 문을 열지만 지옥 문도 연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할 말이 있습니다. 누추 함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감사한 말이 많아야 합니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말은 불평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든지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잠6:2 에서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네가 잡히게 되었느니라. 우리의 말이 우리의 환경과 운명을 좌우합니다.

예수님은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입을 여셨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서는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 욕을 하고 희롱의 말을 하더라도 입을 열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입을 열 때와 침묵할 때가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고통의 순간에도 한 생명을 구원할 결정적인 순간에는 입을 여셨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박힌 한 강도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자기의 죄인 됨을 회개하고 부르짖을 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 하소서.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입을 열어 대답해 주셨습니다. 시37:7에서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라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어려움을 해결하는 열쇠가 무엇입니까? 어려울수록 기도하고 감사의 말을 하고 믿음의 말을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은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이든지 이겨낼 줄 믿습니다.

17/10/2021

제목: 하나님의 선택
본문: 사무엘상 16:8-13절
일자: 2021년10월 17일

성경에 보면 유능한 사람인데도 버림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무능한 사람인데도 크게 들어 쓰인 사람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울과 다윗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결국은 실패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을 통찰하십니다.

1. 하나님은 인간의 중심을 보고 선택하십니다.
먼저 태어났다고 모든 점에서 앞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중심이 올바른 자를 찾고 계십니다.
다윗은 다른 그의 형들과는 달리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이새와 형들에게는 무시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특별히 구별하여 택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형들 틈에 끼어들지 못했을 지라도 불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다윗은 장래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은 약한 자를 택하십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다 지나가게 하나 내가 택하지 않았다는 응답 뿐입니다. 사무엘은 묻기를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나이다. 하나님앞에서 택함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말째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의 본명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스스로 사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바울이라는 이름을 택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 자신이 가장 의로움으로 큰 자요, 학문과 문벌과 신앙이 큰 자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회개하고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요, 죄인 중에 괴수라고하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은 자기 일에 충실한 자를 택하십니다.
다윗은 밖에 양치는 일에 성실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택하실 때에는 언제나 자기 일에 성실한 자를 택하십니다. 모세가 양무리를 이끌고 호렙산에 있을 때 사무엘도 밤에 자지않고 맡은 책임을 다할 때, 엘리사는 밭에서 소를 몰고 일할 때 부름을 받았습니다. 세리 마태는 세관에 앉아 있을 때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식하고 무능하고 죄가 많은 사람을 불러 쓰시는 한이 있어도 책임감이 없는 자를 들어 쓰신 적은 없습니다. 옛날부터 크게 일한 사람들은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결과 업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을 외모로 보는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그 동기를 보십니다. 그리고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는가를 보십니다.

4. 하나님은 성령에 감동된 사람을 택해 쓰십니다.
아무리 헌신하려고 해도 성령이 감동하지 않고는 주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후에 그의 생애는 헌신적이요, 기적적인 승리가 뒤 따르게 된 것입니다. 사울은 여호와의 신이 떠나므로 그는 그때부터 완전히 악한 자가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의 헌신을 보면 성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런지 나는 알지 못한다(행20:22) 내가 복음을 전할 지라도 부득불 할 일이라(고전9:16)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끊임없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앉기를 힘쓰는 사람입니다. 성도에게서 가장 기본적인 신앙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요, 말씀을 들음으로 성령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것보다 더 큰일을 함께 하지고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끝까지 충성하는 성도는 말씀을 듣는 자들입니다. 주일날 빠지고 말씀을 듣는 것을 등한히 하면 자연스럽게 주님을 떠나게 됩니다. 다윗은 일생 동안 그에게 가장 큰 소원이 있다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것이었습니다.(시23:6) 그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주의 궁정에서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하였습니다. 그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감동을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다웟은 이스라엘민족 역사에 모세에 이은 정치적 최고의 통치자였습니다. 모든 왕 중에서 성군이요, 그를 능가할 인물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음악 가요, 시인이요, 장군이며 탁월한 지도자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큰 뜻을 이루고 있었으니 예수 그리스도가 만 왕의 왕으로 오실 것을 계시하는 예언적 인물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과 부활을 예언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으로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분명한 인생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받은 은사가 각각 있습니다. 재능이 있고 소질이 있고 시간이 있고 직업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보여 주고 있으면 쓰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을 끝까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천추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죄를 회개하므로 죄를 짓기 이전보다 더 쓰임을 받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죄를 짓고 회개하면서 그리스도의 사유하심의 은총을 깨달은 자였습니다. 나의 생애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증거하는 존재로 충성 하시길 주님으로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10/10/2021

제목: 살려내는 일(살림)
본문: 요한복음10:7-15절
일자: 2021년 10월 10일

인류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본받아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모든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살림 운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살림꾼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림 운동에 참여 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살림은 가정을 살리는 일이고, 공동체를 살리는 일이고 사회를 살리는 일이고, 나라를 살리는 일입니다.

첫째 살림은 십자가의 정신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양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나는 십자가에 죽노라. 하였습니다. 죽어야 살립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으니라. 했습니다. 내가 죽어야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믿음 소망 사랑을 주셨는데 믿음은 곧 자기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둘째 살림은 사랑의 운동입니다.
사랑은 살리는 일을 합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셔서 살려 놓으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은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하시며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율법은 죽음으로 끌고 가고, 복음은 생명으로 끌고 갑니다. 예수께 끌려온 사람은 영과 육이 살아납니다. 우리가 끝없이 남을 사랑으로 용납한다는 것은 허물을 덮는다는 것입니다. 허물을 덮는 것은 살리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허물을 덮듯이 허물을 덮어야 합니다. 이때 살아납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요, 살림은 사랑입니다. 서로 정죄 하지 않고 허물을 덮으며 사랑하게 될 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셋째 살림은 소망 운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소망 적 믿음은 부활 신앙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활 신앙은 생활을 살려 놓습니다. 살림이라고 하는 말은 우리의 생명도 살려내고, 낙심 된 자도 살려내고, 인격도 살려내고, 가정 경제를 살려 놓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희망적으로 살아서 우리의 영혼 정신 육체 사업 모든 것이 살아나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 하신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 시키는 것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신 것이라. 는 이 말씀은 인류 역사의 두 개의 사상이요, 정신사의 흐름입니다. 살리려는 사상 운동이 있고, 죽이려는 사상 운동이 있습니다. 살리려는 사상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운동이요, 죽이려는 사상 운동은 사탄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림 정신을 모르면 나라살림, 가정 살림, 학교 살림이 바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 정신으로 살림을 한다면 세상은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교회가 맡은 최대의 사명은 예수님의 살림 운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리고 도상에서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고 있는 제사장 레위 인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죽어가는 인류를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림의 표상이요, 모형입니다. 이제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 민족을 살려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살아났다고 증언했고, 그들 자신도 부활의 신앙으로 심령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살림이 되는 것이요, 복음은 곧 살림 운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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