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하는교회

예배하는교회 종교개혁 정통교리 위에서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종말을 준비하고, 모든 일체의 종교혼합과 이단 사상을 배척합니다!

[한국교회차세대목회자연합 북스터디 8월 모임]다들 바쁜 여름사역으로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영국사 산책' 입니다.수백 년 전 영국의 흥망성쇠 속에 투영된 인간의 부패함과 오늘날 우리 교회가 처한 ...
02/09/2026

[한국교회차세대목회자연합 북스터디 8월 모임]

다들 바쁜 여름사역으로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 이번에 읽은 책은 '영국사 산책' 입니다.
수백 년 전 영국의 흥망성쇠 속에 투영된 인간의 부패함과 오늘날 우리 교회가 처한 영적 위기를 책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역사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증명하는 거울이자, 오직 하나님의 주권만을 드러내는 무대입니다.

1. 전적 타락(Total Depravity)과 권력의 이기심
역사 속 왕권의 무능과 귀족들의 정치는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이 고발했던 '인간의 전적 타락'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왕은 자기 잇속만 차렸고, 귀족들의 계산 속에 '백성'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거대해 보이는 권력자들도 실상은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연약한 죄인일 뿐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 어떤 제도를 통해서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역사가 증명합니다.

2. 하나님을 떠난 문명의 영적 혼탁함
무속과 미신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영적 소경이 된 모든 죄인은 본질적인 불안을 채우기 위해 우상을 만듭니다. 우리가 한 명의 여전사로만 기억하는 잔다르크의 배경 역시, 당시 가톨릭교회와 사회를 지배했던 영적 혼탁함과 미신적 산물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외에 다른 영적 통로를 찾을 때 반드시 길을 잃습니다.

3. 오직 하나님의 주권(Soli Deo Gloria)
수많은 내전과 외세의 전쟁을 통해 세상 권력은 흔들리고 바뀌었습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지략과 칼로 승리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웨슬리가 고백했듯 세상 모든 섭리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얼룩진 전쟁과 역사마저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공의와 주권 가운데 다루어 가십니다.

4. '섬나라 특수'를 통한 개혁주의와 부흥의 섭리
역사의 지리적 환경마저도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륙이 로마 가톨릭화되어 갈 때, 하나님은 영국이라는 '섬나라의 특수성'을 사용하셨습니다. 대륙과 구별된 이 땅에서 역사적인 개혁주의의 뼈대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예배모범'이 태동하게 하셨고, 이후 존 웨슬리를 통해 영국을 성령의 용광로로 만드시며 종교개혁 이후의 위대한 부흥 역사를 이어가셨습니다.

5. 복음의 영토를 넓히신 하나님의 경륜
섬나라의 특수성은 영국의 전유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영국을 다리 삼아 청교도들을 통해 미국을 개척하게 하셨고,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복음이 흘러가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제국주의적 야망 뒤편에서, 열방을 향해 구원의 복음을 확장해 가신 하나님의 신비로운 경륜입니다.

6. 사사기와 같은 영국사, 오직 전적인 은혜(Sola Gratia)
영국의 역사는 영적으로 타락하고 범죄 하기를 반복했던 이스라엘의 사사시대와 똑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적 암흑기의 나라가 종교개혁과 세계 선교의 도구로 쓰임 받은 것은, 영국이라는 나라나 민족이 특별하고 대단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죄인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 은혜'요, 구속사의 신비일 뿐입니다.

7. 교회의 정치화·권력화를 향한 선지자적 경고
과거 로마 가톨릭은 교황을 넘어 지역 주교들까지 토지와 세상 권력을 쥐며 철저히 부패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이 목숨 걸고 개혁했던 자리에 오늘날 개신교회가 다시 주저앉고 있습니다. 현재 교회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유혹은 바로 '정치화'와 '세력화'입니다.

성도가 세상 속에서 성경적 가치를 외치고, 목회자가 좌우 진영 논리를 넘어 선지자적인 경고를 하는 것은 당연한 사명입니다.(물론, 저는 좌파, 중도좌파 등 성경과 반대되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등의 반성경적인 사상들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스스로 세력화되어 '연합 권력'의 이름으로 정부와 거래하거나 정치적 협상을 벌이는 순간, 교회는 반드시 변질됩니다.

현재 국내외 여러 연합기관(한교총, 한기총, WCC, NCCK, 로잔, WEA 등)의 행보가 이를 적나라하게 방증합니다. 역사와 신학이 경고하듯, 인간의 조직은 세상 권력의 방식을 탐하는 순간 타락의 순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 루터와 칼빈, 웨슬리가 부르짖었던 복음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 힘을 빌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겠다는 영적 교만을 버리고, 오직 십자가의 능력과 말씀 앞에만 엎드리는 순결한 신부로 바로 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국교회차세대목회자연합 #종교개혁 #오직하나님의주권 #인간의원죄 #교회의본질 #기독교세계관 #북스터디

생명의 살리는 전도 캠프 재공지(복음이 능력이다!)예정되었던 전도캠프 일시를 9월 5일 토요일에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목사님과 논의 후 9월 19일 토요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른 마음으로 양해를 부탁...
22/08/2026

생명의 살리는 전도 캠프 재공지(복음이 능력이다!)

예정되었던 전도캠프 일시를 9월 5일 토요일에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목사님과 논의 후 9월 19일 토요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른 마음으로 양해를 부탁드리며, 변경된 일정을 아래와 같이 안내해 드리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리며, 주위에도 권유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 신중하게 작성했습니다.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준비하는 사역을 통해 영혼이 회복되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하심만을 기대합니다.

이번 9월 5일에 원천감리교회와 예배하는교회는 전도캠프를 준비합니다. 이유는 우리의 열심이나 행사, 사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복음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믿음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때 언제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런즉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롬 10:17)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고, 복음을 통해 사람을 부르시며,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통해 자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 때문에 전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 때문에 담대히 복음을 전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거룩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1 웨슬리의 복음 전도와 영혼 구원

예배하는교회는 종교개혁을 통해 회복된 루터와 칼빈의 강조했던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섭리를 성경의 중요한 진리로 받아들이며, 동시에 존 웨슬리가 평생 외쳤던 복음 전도의 열정과 영혼 구원의 사명 또한 귀하게 여깁니다.

존 웨슬리는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의 설교 가운데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났으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음을 분명히 외쳤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능력을 강조했던 개혁주의적 신앙의 흐름 안에 서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웨슬리가 말한 선재적 은총을 인간의 구원 가능성이나 공로를 인정하는 사상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웨슬리가 말한 선재적 은총은 인간에게 구원의 능력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로 인해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인간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는 표현이었습니다. (John Wesley, "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 in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3, Sermons III: 71-114, ed. Albert C. Outler (Nashville: Abingdon Press, 1986), 203-219 “Whatsoever good is in man, or is done by man, God is the author and doer of it.”)

그래서 웨슬리는 단 한번도 인간이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역사하시며, 그 은혜 앞에서 인간은 회개와 믿음으로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자유주의 신학이나 펠라기우스주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죄의 심각성을 외쳤고, 회개를 선포했으며,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칭의를 가르쳤고,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화와 거룩한 삶을 평생 외쳤습니다. 그리고 웨슬리에게 복음전도는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일이 아니라,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하나님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합니다.

2 하나님의 주권과 복음 전도

구원은 인간에게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 15:16)

성경이 말하는 예정은 하나님의 충동적이거나 임의적인 변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혜와 뜻 가운데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으며,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는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에 기초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시작은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누가 택함 받은 자인지, 누가 그렇지 않은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기에 하나님께서 감추신 영역을 인간이 판단하려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오늘도 복음을 통해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사실을 믿기에,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웨슬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약화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것에 먼저 있다는 사실과, 그 은혜 앞에서 인간이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는 성경적 긴장을 함께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인간의 책임을 약화시키는 주권이 아니었습니다. 개혁주의가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 아래 인간의 필연적 책임을 논한다면, 웨슬리는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로 찾아오시고, 그 은혜 안에서 인간의 믿음과 순종의 응답까지도 허락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었습니다.

그러니 웨슬리가 말한 선재적 은총은 인간에게 구원의 공로가 있다는 의미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인간에게 먼저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서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로 인간의 마음을 깨우시고,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회개의 길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응답은 하나님의 주권과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능하게 된 책임 있는 응답입니다.

그리고 웨슬리는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은혜와 독립된 능력으로도 보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응답조차도 먼저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이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성도가 자신의 힘으로 끝까지 서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에게는 그 책임과 경고, 유기가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성도에게는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은혜의 견인 역사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가 타락한 인간의 의지를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로 새롭게 하사 구원에 자발적으로 순종케 하시는 ‘불가항력적 주권’을 고수한다면, 웨슬리는 죄인을 먼저 찾아오시는 선재적 은총을 통해 인간의 의지를 회복시키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반응하도록 인도하시는 ‘은혜의 주권’을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은혜의 수단과 믿음 안에서의 순종, 그리고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화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은 종교개혁 정통에서 동일하게 고백하는 중요한 진리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응답이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설명하는 방식과 강조점이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사이에 차이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웨슬리의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개혁주의의 신학적 지형과 영국 국교회의 시대적 상황, 그리고 모라비안 경건주의 내에서 불거진 정적주의 논쟁에 이르기까지 교회사라는 넓은 틀 안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타인의 해석이 담긴 2차 문헌에 의존하기보다 웨슬리 본인의 1차 저작들을 면밀히 읽어 내려갈 때, 우리는 비로소 그에 대한 수많은 신학적 오해를 바로잡고 그의 본래 의도를 온전히 규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돕는 신인협동주의가 아닙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혜의 수단에 따라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지 알 수 없기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복음의 선포를 통해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성령의 역사 가운데 믿음과 순종의 사람으로 세워 가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도 미리 판단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향하여 회개를 선포하고,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품고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합니다.

3 전도는 은혜에 대한 순종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전도는 사람이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이미 역사하고 계시는 구원의 현장에 순종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자는 구원의 주인이 아닙니다.
전도자는 복음을 맡은 청지기이며, 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말씀이 선포될 때,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부르십니다.

그래서 전도는 인간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는 믿음의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합니다.

4 하나님께서는 이 전도캠프를 먼저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은 우연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남을 통해 일하시고, 사람을 통해 사람을 세우시며,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번 전도캠프 역시 우리 안에는 사실 아무런 계획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만남을 준비하시고,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심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얼마 전 올림픽공원 기도회를 마친 후, 여러 목회자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교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박온순 목사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선친이신 장로님께서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라셨고, 선친께서는 평생 복음을 전하시다가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하는 삶을 마치셨습니다.

또한 우리 예배하는교회의 이한나 전도사님 역시도 선친이신 목사님께서 평생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시다가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고, 어린 시절에는 그 삶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직접 그 복음의 현장을 경험하며 오늘까지 그 발자취를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한 분은 장로이셨고, 한 분은 목사이셨지만, 두 가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살아가고, 복음을 전하다 하나님께로 돌아간 삶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가운데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다음 세대 가운데 다시 복음 전도자의 마음을 일으키시기를 원하신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오래전부터 목회 가운데 품고 있던 마음을 자연스럽게 목사님들께 나누었습니다.
'다음 세대가 다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대로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배우는 신앙이 아니라, 직접 한 영혼을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거리 전도를 두려워하는 시대가 아니라, 복음을 기뻐하는 시대가 다시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을 나누던 가운데 자연스럽게 "그럼, 올 여름 사역이 모두 끝난 후, 다음 세대와 성도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전도캠프를 열어 보면 어떻겠습니까?"

그 제안 앞에 누구도 오래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같은 마음을 여러 사람에게 주고 계셨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우연한 만남이라 말할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실 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걸음이며, 하나님께서 문을 여실 때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도캠프는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남 가운데 허락하시고 마음을 하나로 묶어 주셔서 시작된 순종의 걸음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리에서 한 영혼을 품고 복음을 전하며 영혼 구원의 사역을 감당해 오신 박온순 목사님의 귀한 믿음과 헌신을 더 많은 성도들이 함께 배우고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윗세대가 감당해 온 복음전도자의 사명이 그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 가운데 우리 세대로 이어지고, 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져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영혼 구원의 사명이 끊임없이 계승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지금 복음을 아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신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만,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리는 사람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특히 복음을 아는 다음 세대는 많지만, 복음을 전하는 다음 세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신앙을 배우는 것은 익숙하지만, 잃어버린 영혼을 향해 직접 걸어가는 삶은 점점 낯설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도캠프는 단순히 전도의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나 '전도를 잘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많이 모으기 위한 행사나 일회성 이벤트도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다시 복음의 능력을 회복시키시고,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 주시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복음전도자의 마음과 사명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며, 하나님의 구속사에 동참하는 믿음의 순종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에게 일어나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시작은 사람을 향한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가 먼저 무너지는 것입니다.
내 의가 무너지고, 내 자랑이 무너지고, 내 경험과 방법을 의지하던 마음이 무너지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의가 되심을 다시 붙드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전도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우리는 그 은혜에 순종하는 작은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도캠프를 통해 우리가 가장 먼저 기대하는 것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5 복음을 전하기 전에 복음 앞에 다시 서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녹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잃어버렸던 첫사랑을 회복시켜 주신다면, 복음을 전하는 삶은 우리의 억지가 아니라 성령께서 맺게 하시는 자연스러운 열매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참된 부흥이며,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진정한 부흥입니다.

참된 부흥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아니라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입니다.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높아지시는 역사입니다.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내 영광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간절히 구하는 것은 프로그램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심으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 다음 세대와 한국교회 가운데 다시 복음의 생명이 흘러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번 전도캠프를 통해 특별히 다음 세대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다시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각 가정이 다시 복음을 전하는 가정으로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복음을 전하고, 자녀가 친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한 가정이 하나님 나라의 선교지가 되는 은혜가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각 교회가 다시 복음전도의 사명을 붙들기를 기도합니다.
교회의 크기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이 다시 복음 전도자의 심장을 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인 동시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며, 교회는 모이는 공동체인 동시에 세상으로 파송받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과 삶으로 증거되는 복음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회개와 부흥이 우리 안에서 먼저 시작되어 우리를 통해 다음 세대와 한국교회 가운데 이어지는 것이 우리가 이번 전도캠프를 통해 가장 간절히 기대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복음의 능력으로 무너진 다음 세대들이 회복되고 깨어진 가정들이 다시 살아나며 흐려진 교회 안에서의 복음이 분명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한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약 20년 전, 신학생이었던 저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참된 목회자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 한 분의 은사님이 계십니다.그분은 단순히 신학 지식을 가르쳐 주신 교수님이 ...
12/08/2026

약 20년 전, 신학생이었던 저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참된 목회자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 한 분의 은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단순히 신학 지식을 가르쳐 주신 교수님이 아니라, 신앙과 목회의 길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셨던 스승이셨습니다.

개척 이후 예배하는교회 는 매년 은사님을 말씀 사경회 강사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올해 예배하는교회는 특별히 상반기에는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를 가르쳐 주시는 김진성 교수님을 모시고 정통 개혁의 강해 말씀을 들었고, 하반기에는 복음주의 신학의 깊이를 지켜오신 이선희 교수님을 모시고 복음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배하는교회가 지향하는 신앙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예배하는교회는 루터와 칼빈, 그리고 웨슬리로 이어지는 종교개혁의 신앙과 신학적 유산을 소중히 붙들고, 개혁주의와 복음주의가 서로 대립해야 할 것이 아니라 성경과 복음 안에서 함께 세워져야 할 귀한 신앙의 유산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다른 전통을 무리하게 섞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을 기준으로 무엇이 참된 복음이며 무엇이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인지를 분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순수성을 흐리고 교회를 세속화시키는 종교통합주의와 혼합주의, 로마 가톨릭의 비성경적 교리, 신사도주의와 같은 잘못된 가르침과 풍조, 그리고 이에 대해 앞장서는 WCC, NCCK, Lausanne, WEA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과 교회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믿음의 싸움을 싸워가고자 합니다.

이번 말씀 사경회에서 이선희 교수님께서는 로마서 8장 17절의 말씀을 중심으로「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이선희 교수님은 목원대학교 신학과와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독일 Bonn대학교 개신교 신학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이후 목원대학교 신학대학 학장을 역임하셨으며, 현재 목원대학교 신학대학 명예교수(조직신학전공)이자 웨슬리신학연구소(MRN) 소장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특히 존 웨슬리의 신학과 복음주의적 감리교 신학을 깊이 연구해 오셨으며, 「존 웨슬리 신학의 탐구」, 「복음주의적 감리교신학의 모색」을 비롯하여 웨슬리의 설교와 신학에 관한 여러 저술과 번역서를 통해 성경과 복음에 기초한 웨슬리 신학의 본질을 바르게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힘써 오셨습니다.

웨슬리신학연구소(MRN) 또한 웨슬리의 생애와 신학을 바르게 연구하여 감리교회의 신학적 토대를 더욱 튼튼히 하고, 목회자들의 신학적·목회적 소양을 지속적으로 세우며, 교회 안팎에서 감리교회의 건강한 발전을 해칠 수 있는 잘못된 사상과 이단사상을 분별하여 건강한 신학과 신앙의 기풍을 지켜가는 일을 중요한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약 20년 전, 한 신학생에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원받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목회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던 그 은사님과 함께, 오늘 우리도 다시 말씀 앞에 서고자 합니다.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번 말씀 사경회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다시 말씀 위에 굳게 서고, 복음의 본질이 다시 우리 안에 회복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교회와 사명을 예배하는교회가 다시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로잔, WEA, 7.14 기도회, 복음과도시TGC, CTC, 그리고 나팔수가 되어주는 리포미디어긴 말 않겠다. 할말하않!이런 자들이 개혁주의라고?이정규 목사, 팀켈러, 로잔? WEA?직접 두 눈으로 보고 판단하시라!...
16/07/2026

로잔, WEA, 7.14 기도회, 복음과도시TGC, CTC, 그리고 나팔수가 되어주는 리포미디어

긴 말 않겠다. 할말하않!
이런 자들이 개혁주의라고?

이정규 목사, 팀켈러, 로잔? WEA?
직접 두 눈으로 보고 판단하시라!

그리고 또 한 가지 기독교 변증하는 크리에터들, 양시무스나 차성진 기타 등등 이른바 '변증'을 빌미로 기독교를 가십거리로 전락시키는 관종들까지 기어 나오는 리폼드미디어. 처음에는 관심 있게 봤는데 이제는 완전히 아웃!

아...존 파이퍼, 데이비드 플랫(이러니 침례교는 교리가 없다거나 약하다는 소리를 듣는거다! 아무리 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 같아보여도 결정적일 때에는 배도의 길을 가게 되는 구나!)정말 정통교리 안에 있는 자라면 이런 것쯤 구별이 안될까? 유명한 사람들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거나 시비걸고 싶진 않다. 그런데,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어떻게 교리적으로 틀린 사람들과 함께 할수 있지? 그리고 이런 자들이 잘못된 교리로서 후배 목회자들을 양성하고 개척하는 것을 도와주니, 당연히 계속해서 그 흐름들은 종교혼합적일 수 밖에는 없지.

눈에 많이 띄는 사람, 자꾸만 세상에서 밀어주는 사람, 이유가 다 있다.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

결국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어 있다...

†주 오실 길을 예비하는 예배하는교회2026년 🇰🇷 안보특강 안내「6·25전쟁과 대한민국의 기적」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6·25전쟁에 대한 기...
04/07/2026

†주 오실 길을 예비하는 예배하는교회
2026년 🇰🇷 안보특강 안내
「6·25전쟁과 대한민국의 기적」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6·25전쟁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의 역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 또한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번 안보특강은 6·25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어떤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지고 지켜져 왔는지를 함께 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예배하는교회의 집회 및 특강은 주로 본 교회 성도님들을 대상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안보특강은 처음으로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뿐 아니라 다른 교회 성도님들, 그리고 지역의 이웃과 비그리스도인들까지 누구나 함께하셔서, 대한민국을 지켜 주시고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며 올바른 역사 인식을 세우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특별히 이번 강의를 맡아주시는 장삼열 박사님은 저희 외당숙 어른이시며, 오랜 군 경력과 안보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안보와 전쟁사를 쉽고 깊이 있게 전해 주실 예정입니다.

■ 강사: 장삼열 박사
악력: 현) 한미안보연구회 사무총장
육군사관학교 졸업
미 육군대학원 졸업
소말리아 PKO / 이라크 파병
육군대학 전쟁사 교관

주요 저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한미동맹 60년사』
『방위산업 40년, 끝없는 도전의 역사』
『지구촌에 남긴 평화의 발자국』 외

📅 일시: 2026년 7월 19일(주일) 오후 2시 30분
📍 장소: 예배하는교회(수지 신봉종합상가 5층)
👥 대상: 누구나 참석 가능합니다.

예배하는교회 성도님들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 다른 교회 성도님들, 그리고 관심 있는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초대합니다.
이번 특강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안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올공 부정선거를 부흥이라 말하는 자떠들썩하게 야외 집회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자존칭은 생략하겠다.유튜브: 사랑하라, 리파인(하얼교 김영현 소속 청년들, 김영현은 신사도주의자인 변승우 제자다. 따라서 김영현이 아무리 W...
04/07/2026

올공 부정선거를 부흥이라 말하는 자
떠들썩하게 야외 집회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자
존칭은 생략하겠다.
유튜브: 사랑하라, 리파인
(하얼교 김영현 소속 청년들, 김영현은 신사도주의자인 변승우 제자다. 따라서 김영현이 아무리 WCC, NCCK, WEA 로잔의 종교통합과 재림을 역사적 전천년으로 외쳐도 그의 사상은 세대주의, 신사도, 기독교 시온주의가 섞여있다.)
또 브라이언 박과 마요셉 역시 신사도주의나 성향이 있거나 신사도주의자들과 연계한다.
그러므로 야외 집회에서는 어디서 주최하며, 어디 단체인지 정확하게 밝히는 곳에 참여를 하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회개하며 일반적인 시위나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낫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부흥은 과연 성경적인가?― 평양과 원산에서 오늘의 집회까지, 성경과 종교개혁의 기준으로 '부흥'을 다시 묻다Ⅰ. 우리는 '부흥'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날 한국교회는...
28/06/2026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부흥은 과연 성경적인가?― 평양과 원산에서 오늘의 집회까지, 성경과 종교개혁의 기준으로 '부흥'을 다시 묻다

Ⅰ. 우리는 '부흥'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날 한국교회는 '부흥'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소비되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부흥이라 하고, 청년들이 많이 모이면 부흥이라 하며, 오랫동안 예배하면 부흥이라 하고, 눈물을 흘리면 부흥이라 한다.

심지어 대규모 전도집회와 초교파 연합집회, 청년집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철야기도회, 매년 반복되는 여름·겨울 수련회,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대형 집회, 부정선거를 주제로 한 기도집회 등도 '부흥'이라는 표현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질문해야 한다.

과연 성경도 그것을 부흥이라고 말할까?
나는 어느 집회를 폄하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말하고 싶다.
'부흥'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면, 누구도 성경의 검증을 피해 갈 수 없다.

평양과 원산도 예외가 아니며, 현대의 어떤 집회도 예외가 아니다.

Ⅱ. 성경이 말하는 부흥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부흥은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현상도 아니고, 강한 감정의 경험도 아니다.

구속사의 흐름을 보면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실 때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질서가 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된다.
그 말씀 앞에서 죄가 드러난다.
참된 회개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 회개는 삶과 예배와 공동체의 개혁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하나님 나라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느헤미야가 그러했고, 에스라가 그러했으며, 요시야 시대가 그러했고, 사도행전의 교회 역시 그러했다.

성경에서 부흥은 언제나 말씀의 회복 → 회개 → 개혁 → 거룩 →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열매로 이어진다.

회개는 출발점이며, 개혁은 그 회개의 열매이다.

회개 없는 개혁은 있을 수 없지만, 개혁 없는 회개 역시 성경이 보여 주는 부흥의 완성된 모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Ⅲ. 종교개혁은 왜 참된 부흥이었는가?

종교개혁은 단순한 감정의 운동이 아니었다.

성경으로 돌아갔다.
복음을 회복했다.
교리를 개혁했다.
예배를 개혁했다.
교회를 개혁했다.
삶을 개혁했다.
종교개혁은 회개의 눈물보다 개혁의 열매를 남겼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은 회개와 개혁이 함께 이루어진 대표적인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Ⅳ. 평양과 원산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나는 평양과 원산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는 분명 죄의 자백이 있었고, 회개의 역사가 있었으며, 기도 운동과 복음 전도, 선교의 열정도 있었다.
이러한 열매는 귀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그 회개는 한국교회를 지속적인 개혁으로 이끌었는가?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 이 질문을 다시 던질 수밖에 없다.

교회는 더욱 말씀 중심이 되었는가?
예배는 더욱 성경적으로 회복되었는가?
교리 교육은 더욱 견고해졌는가?
세속화는 극복되었는가?
교회는 지속적으로 개혁되었는가?

회개는 분명 있었지만, 종교개혁적 의미의 지속적인 개혁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Ⅴ. 현대의 '부흥'은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동일한 기준은 오늘날의 모든 집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평양과 원산도 예외가 아니다.
아주사도 예외가 아니다.
에즈베리도 예외가 아니다.
대규모 전도집회도 예외가 아니다.
초교파 연합집회도 예외가 아니다.
청년집회도 예외가 아니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대형 집회도 예외가 아니다.
G2A의 장시간 예배도 예외가 아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철야기도회도 예외가 아니다.
부정선거를 주제로 한 기도집회도 예외가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수련회와 각종 집회도 예외가 아니다.

집회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부흥인가?
청년들이 많이 모였다고 해서 부흥인가?
오랫동안 예배했다고 해서 부흥인가?
뜨거운 찬양과 눈물이 있었다고 해서 부흥인가?
유명한 강사가 설교했다고 해서 부흥인가?
세계적인 운동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부흥인가?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언제나 그 이후의 열매를 묻는다.

말씀이 회복되었는가?
회개가 있었는가?
삶이 변화되었는가?
교회가 개혁되었는가?
복음이 더욱 선명해졌는가?
예수 그리스도만 높아졌는가?

이 질문 앞에서 모든 집회는 동일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Ⅵ. 오늘날 더욱 필요한 것은 교리적 분별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다양한 신학과 운동들이 존재한다.
교회의 연합을 강조하는 흐름도 있고, 다양한 성경 해석과 실천을 강조하는 흐름도 있다.
이러한 흐름들에는 서로 다른 입장과 실천이 존재하며, 모두를 하나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종교개혁 신학의 관점에서는 언제나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복음의 충분성이 약화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이 흐려지고 있지는 않은가?
말씀보다 체험이 앞서고 있지는 않은가?
교리보다 연합이 우선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질문은 특정 진영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교회 전체를 향한 질문이다.

Ⅶ. 결론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부흥 집회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개혁이다.
복음으로 돌아가는 개혁이다.
교리로 돌아가는 개혁이다.
예배의 개혁이다.
교회의 개혁이다.
회개 없는 개혁은 죽은 개혁이다.
그러나 개혁 없는 회개 또한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성경이 증언하는 참된 부흥은 언제나 회개와 개혁이 함께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역사였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부흥'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할 것이 아니라, 평양과 원산에서부터 현대의 다양한 집회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일한 성경의 기준과 종교개혁의 기준 앞에서 다시 점검해야 한다.

그것은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가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굳게 서기 위함이다.

참된 부흥은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말씀의 회복으로 증명되며, 회개의 눈물이 아니라 그 회개가 낳은 개혁으로 증명된다.

「그들이 다시 온다면 — 개혁자들의 심문」— 한국교회를 향한 세 개의 칼날1막. 어두운 강단(무대는 어둡다. 스크린에는 ‘시국선언’, ‘부정선거’, ‘정의’, ‘기도회’, ‘선교’, ‘부흥’이라는 단어들이 교차한다....
16/06/2026

「그들이 다시 온다면 — 개혁자들의 심문」
— 한국교회를 향한 세 개의 칼날

1막. 어두운 강단

(무대는 어둡다. 스크린에는 ‘시국선언’, ‘부정선거’, ‘정의’, ‘기도회’, ‘선교’, ‘부흥’이라는 단어들이 교차한다.)

강단 위, 목회자는 원고를 들고 있으나 읽지 못한다.
문이 열린다.
세 사람이 들어온다.
루터. 칼뱅. 웨슬리.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2막. 루터 — “너희는 무엇에 사로잡혔는가”

루터 (비웃듯) “정의? 시국? 선언?”
(강단을 손으로 내려친다)
“그 전에 묻겠다.”
“너희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는가, 아니면 시대의 이슈에 사로잡혀 있는가?”

목회자
“우리는 침묵하지 않습니다. 말씀도 전합니다.”

루터 (즉시 쏘아붙인다)
“아니다. 너희는 선택적으로 말한다.”
“세상이 좋아하는 말은 크게 외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조용히 덮는다.”
“나는 교황을 향해 ‘거짓’이라 했다. 황제를 향해 ‘아니다’라고 했다.”
“너희는 누구에게 그렇게 말했느냐?”

(침묵)

“말씀을 전한다고? 말씀을 ‘사용’하는 것과 말씀에 ‘사로잡히는 것’은 다르다.”

3막. 칼뱅 — “너희는 이미 무너진 교회다”

칼뱅 (차갑게)
“문제를 잘못 짚고 있다.”
“부정선거? 그건 결과다.”
“원인을 보라.”
(강단을 짚으며)
“말씀이 사라졌다. 교리가 무너졌다. 하나님의 주권 대신 인간의 경험이 올라왔다.”

“그리고 지금—”
“그 썩은 뿌리에서 정치적 열매가 나온 것이다.”

목회자
“우리는 나라를 위해 싸웁니다.”

칼뱅
“틀렸다.”
“교회가 무너졌는데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고?”
“너희는 순서를 모른다.”
“교회가 세상을 닮으면 그 순간 끝이다.”

(강하게)

“거짓 복음, 종교혼합, 인본주의 신앙—”
“이것을 눈감고 무슨 개혁을 말하는가?”

4막. 웨슬리 — “너희 열심은 거룩이 없다”

웨슬리 (슬픔과 단호함이 함께)
“나는 너희를 안다.”
“너희는 모인다. 기도한다. 금식한다.”

“선교도 한다.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한다고 말한다.”

(잠시 멈춘다)
“그러나 묻겠다.”
“너희 안에 거룩이 있는가?”

목회자 (작게)
“우리는 최선을 다합니다…”

웨슬리
“아니다.”
“너희는 뜨겁지만 깨끗하지 않다.”
“열심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부서지지 않았다.”

“거룩 없는 열심은 결국 자기 의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위선이다.”

5막. 세 사람의 심문

루터
“왜 거짓 교리 앞에서 침묵하는가?”

칼뱅
“왜 교회의 뿌리를 고치지 않는가?”

웨슬리
“왜 자신을 회개하지 않는가?”

6막. 결정적 폭로

세 사람이 동시에 말한다.
“너희는 불의에는 분노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에는 관대하다.”

루터
“우상숭배를 가볍게 여긴다.”

칼뱅
“종교혼합을 문제로 보지 않는다.”

웨슬리
“거룩의 부재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의를 외친다.”

7막. 공통 선언

루터
“말씀으로 돌아가라.”

칼뱅
“교리로 돌아가라.”

웨슬리
“거룩으로 돌아가라.”

세 사람 (함께)

“복음으로 돌아가라.”

8막. 마지막 판결

루터
“거짓 앞에 침묵하는 교회는 이미 타락했다.”

칼뱅
“교리가 무너지면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웨슬리
“거룩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은 헛것이다.”

9막. 후대에게

(세 사람이 돌아선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지 않았다.”
“교회를 바꾸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세상이 변했다.”

문이 닫힌다.

목회자들은 남는다.

그는 원고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성경을 펼친다.

10막. 마지막 선언

“이것은 비단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온 나라와 전 세계 교회의 모습이다.”

“지금 교회는 여전히 열심이 있다. 많이 모인다. 기도한다.”
“말씀도 전한다고 말한다. 선교에도 진심이라 말한다. 주 오실 길을 준비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불의와 부정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 교회를 변질시키는 것,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숭배와 종교혼합에 대해서는 지금 외치고 있는 그 어떤 문제보다도 더 관대하다.”

“관심 없다. 우리와 상관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외면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세상이 아니다.”
“정치도 아니다.”

“주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난 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꾸기 전에 교회가 먼저 돌아와야 한다.”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교회다.”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요즘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혼란스럽다보니, 나 역시도 최근 이러한 부분에 대해 여러 차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며 오히려 더 강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이런 때일수록 교회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12/06/2026

요즘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혼란스럽다보니, 나 역시도 최근 이러한 부분에 대해 여러 차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며 오히려 더 강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이런 때일수록 교회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번 특강 종교개혁사를 보며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은 정치운동이 아니었다. 교회를 교회 되게 하고, 성도를 성도 되게 하며, 말씀을 말씀 되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그리고 결국 교회의 진정한 회복은 사람이나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1. 종교개혁자들은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었다.

종교개혁자들의 글과 설교, 신학 체계를 접할수록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루터와 칼빈, 츠빙글리와 녹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놀라운 통찰력과 분석력, 그리고 성경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읽어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교리를 체계화하고 교회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했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목사는 머리가 좋아야 한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 심지어 "천재여야 한다"는 식의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그 말 속에는 성도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진리를 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수많은 반대 사례들도 보게 되었다.

오랜 세월 공부하고, 해외의 유명한 신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방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며, 성경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경우들을 적지 않게 보아 왔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많이 배웠다는 것, 지적으로 뛰어나다는 것 자체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공부를 많이 해도 믿음이 없을 수 있고, 성경을 연구해도 하나님을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단순한 지식지상주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목회를 하면서 과거에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도 깨닫게 되었다.

목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공부를 요구한다. 성경을 연구해야 하고, 교리를 공부해야 하며, 교회사를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을 상담해야 하고, 시대를 분석해야 하며, 수많은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만약 내가 처음부터 목회가 이렇게까지 평생 공부해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았다면, 내 성격과 지적 한계를 생각할 때 쉽게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목회자는 평생 배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목회자의 공부는 단순히 정보를 쌓는 공부가 아니다. 하나님을 더 알아 가는 공부이다. 진리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공부이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깨닫게 된다. 문제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의 방향이라는 것을, 세상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람을 지혜롭게 만든다는 것을, 돌이켜 보면 나 역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본래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변화는 결코 내 힘으로 설명할 수 없다.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을 알아 갈수록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졌으며,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화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단순히 종교적 열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자들의 위대함은 단순히 그들이 천재였다는 데 있지 않다.

물론 그들 가운데는 뛰어난 학자들도 있었고, 특별한 지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종교개혁을 설명할 수는 없다.

성경은 참된 믿음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분리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바로 알수록 사람은 진리를 분별하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종교개혁자들은 자신의 지혜를 자랑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특별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생각을 높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사람들이었고, 그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믿음에서 나온 지혜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사용하여 교회의 문제를 진단하게 하셨고,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게 하셨으며, 교리를 체계화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그들을 사용하셨고, 그 결과 교회는 다시 복음의 본질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종교개혁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이다.

2. 종교개혁의 유산은 반드시 다음 세대에게 전수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사를 공부하면서 또 하나 크게 느낀 것은 신앙 전수의 중요성이다.

특별히 칼빈이 제네바에서 시행했던 교육 사역과 아카데미의 모습을 보며 깊은 도전을 받았다.

교회의 사명은 단순히 현재 세대를 돌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진리와 복음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것 역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 청소년 집회와 캠프를 준비하는 계절이다. 겨울 수련회까지 포함하면 교회는 매년 수많은 다음 세대 사역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이러한 수고와 헌신 자체는 참으로 귀한 일이다. 복음을 전하고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해 애쓰는 모든 교회와 교사들의 헌신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도 해 보게 된다.

과연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모였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얼마나 유명한 강사가 왔는가, 얼마나 프로그램이 재미있었는가, 얼마나 아이들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

물론 이런 요소들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사명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전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수많은 교육 프로그램과 수련회, 컨퍼런스가 존재한다. 선교를 강조하는 집회도 많고, 꿈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성경을 말하고 십자가를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모임들도 적지 않다.

물론 선교도 중요하고 꿈도 중요하다.

그러나 선교와 꿈은 믿음의 뿌리가 아니라 믿음의 열매이다.

선교는 믿음이 자라날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삶의 방향이며, 자신의 꿈 역시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삶 가운데 주권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열매의 영역이다.

열매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통하여 다양하게 맺게 하신다. 어떤 이는 목회자로, 어떤 이는 선교사로, 어떤 이는 교사와 직장인으로, 또 어떤 이는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당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육은 열매 자체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모든 신앙교육은 결국 믿음을 세우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뿌리가 건강하면 열매는 하나님께서 맺게 하신다. 그러나 열매를 먼저 강조하다 보면 정작 그 열매를 맺게 하는 본질인 믿음을 놓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다음 세대 교육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복음이 무엇인지,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그리고 교회가 역사 속에서 어떤 믿음을 고백하며 지켜 왔는지를 가르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정작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지금까지 지켜져 왔는지, 복음과 교회가 어떠한 싸움과 희생 속에서 보존되어 왔는지, 종교개혁이 왜 필요했는지, 정통 교리가 어떻게 형성되고 전수되어 왔는지에 대한 교육은 너무나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혼합주의와 상대주의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복음과 세상이 섞이고, 진리와 오류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이다.

더욱이 성경을 말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복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말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신앙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다양한 신학적 흐름과 운동들이 공존하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신사도 운동의 영향이 나타나고, 어떤 곳에서는 신복음주의적 흐름이 스며들며, 또 어떤 곳에서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이나 유대적 색채가 강한 기독교 사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문제는 많은 다음 세대들이 이러한 다양한 가르침들을 접하면서도 무엇이 성경적 기준인지, 무엇이 교회가 역사 속에서 고백해 온 정통 신앙인지 분별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신앙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과 교부들은 수많은 이단들과 싸우며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을 지켜냈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왜곡 속에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진리를 회복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청교도들과 믿음의 선배들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기 위해 헌신했다.

지금 우리가 읽는 성경과 우리가 고백하는 복음,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신앙의 자유는 그렇게 흘린 눈물과 기도와 피 위에 세워진 유산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다음 세대는 이러한 역사를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하고 있다.

교회사와 종교개혁사는 단순한 역사 공부가 아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오류인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무엇이 정통 신앙이며 무엇이 이단인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교회가 어떤 싸움을 통해 성경적 복음을 지켜 왔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지금 다음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프로그램이 아니다.
더 화려한 행사도 아니다.
더 유명한 강사도 아니다.

무엇이 진리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무엇이 성경적 신앙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무엇이 교회가 역사 속에서 지켜온 정통 교리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무엇이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회복하고자 했던 복음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다음 세대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교리를 가르치고, 교회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수련회도, 교회학교도, 청년 사역도, 각종 교육과 컨퍼런스도 결국은 성경으로 돌아가고 종교개혁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종교개혁과 교회 역사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다음 세대의 교회 출석자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의 종교개혁자들을 길러내야 한다.
루터와 칼빈을 흉내 내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처럼 말씀 앞에 무릎 꿇고, 시대를 분별하며, 교회를 사랑하고, 진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세워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다음 세대에게 성경적 복음을 물려주어야 할 곳이다. 정통 교리에 대해 더 가르쳐야만 한다.

교회가 다음 세대에게 이 복음을 전수하지 못한다면 결국 교회는 미래를 잃게 된다.

반대로 교회가 이 유산을 온전히 전수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또 다른 종교개혁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전수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3. 진리를 위해 살았던 사람들의 삶은 생각보다 짧았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여했던 신학자들의 생애를 살펴보며 놀라웠던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질병과 과로, 박해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도 서른셋의 나이에 십자가를 지셨다. 사도들 역시 대부분 고난 속에서 생을 마쳤다. 초대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오래 사는 것이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장수 역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안락함을 위해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진리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사명에 붙들린 사람들은 결국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가게 된다.

그들의 삶을 보며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4. 그래서 나는 아직도 준비하는 사람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삶을 바라볼수록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감당했던 고난과 박해, 수고와 헌신에 비하면 내가 겪는 어려움은 매우 작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생명을 걸고 진리를 지켰고, 나는 아직 편안한 환경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낙심하기보다 오히려 감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직 나를 훈련하고 계시고, 준비시키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길을 말씀하셨다.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지금은 불평할 때가 아니라 믿음을 준비할 때이다.

말씀을 더 배우고, 기도를 더 쌓고, 복음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 나라를 더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

종교개혁사를 배우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교회가 살 길은 여전히 같다.
사람이 아니라 말씀으로, 유행이 아니라 진리로,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복음으로,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그 구호처럼, 오늘도 우리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교회의 미래는 결국 여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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