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2024
❝당신이 손을 내밀면❞
_이승우,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
겨울마다 자선냄비 봉사를 하며 이웃사랑을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비록 종을 울리던 손은 추웠지만, 모금액이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됐을 때의 온기는 모든 추위를 녹이는 듯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에서 이승우 소설가는 우리의 손길에 담긴 생명의 능력을 따뜻하게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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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때에 사람들이
온갖 병으로 앓는 사람들을 다 예수께로 데려왔다.
예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 주셨다.
누가복음 4:40
혜화동 길을 걷다가 발견한 조그만 카페의 간판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분위기가 따뜻하고 정겨울 것 같았던 그 집의 이름은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였다.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이 말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손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신성한 대행자임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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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이나 융이 간파한 것처럼 손은 우리의 마음을 대행한다. 인체의 수많은 부위 가운데 가장 예민하게 마음을 전달하는 기관이 손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기도할 때면 두 손을 모으고, 약속을 할 때면 손가락을 걸고, 그 약속을 보증하는 뜻으로 지문을 찍는다. 헤어질 때 손을 흔드는 것도 실은 손의 정신적인 능력을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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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친근한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가 고백한 한 체험담은 손의 정신적인 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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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는 대단치 않은 질병으로 잠시 입원했던 것 같다. 옆방의 폐암 환자가 밤새도록 내지르는, 흡사 짐승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신음 소리 때문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엔도 슈사쿠는 이튿날 아침에 간호사에게 물었다. 환자가 그렇듯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워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무슨 방법이 있는지. 그의 질문에 대한 간호사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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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우린 그저 곁에 앉아 환자의 손을 꼭 쥐고 있을 뿐입니다. 한동안 그러고 있으면 통증이 차차로 가시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교대로 손을 잡아 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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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는 순간 엔도 슈사쿠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진통제를 맞고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짐승처럼 울부짖는 환자에게 그까짓 손을 붙잡아 주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간호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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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 년쯤 후에 엔도 슈사쿠 자신이 무슨 수술인가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수술 후 마취가 깨기 시작하면 통증을 견디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누구든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 역시 통증을 참지 못해 빨리 다시 마취 주사를 놓아 달라고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러나 중독을 염려한 의사는 그의 부탁을 거절했고, 그는 한층 절망적으로 소리만 지르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때, 한 간호사가 침대 곁에 앉아 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엔도 슈사쿠는 “그러자 참으로 믿기지 않은 일이지만, 그 지독하던 아픔이 조금씩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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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마음을 대행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일화로 읽힌다. 모든 인간의 손이 어느 정도는 소유하고 있기 마련인 치유와 진정의 힘을 엔도 슈사쿠의 체험이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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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이 길을 만지니
누워 있는 길이 일어서는 길이 되네.
당신이 슬픔의 살을 만지니
머뭇대는 슬픔의 살이 달리는 기쁨의 살이 되네.
아, 당신이 죽음을 만지니
천지에 일어서는 뿌리들의 뼈
―강은교, 「당신의 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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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손을 내밀면, 누워 있는 길이 일어서고, 슬픔이 기쁨이 되며, 죽음조차 생명으로 바뀐다는 이 시인의 고백이 감동적인 이유를 ‘당신’의 손을 체감한 사람은 안다. 참으로 기적이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은 안다. 기적의 참된 뜻이, ‘당신’의 그 손이 ‘나’라는 인간의 손을 붙잡는 바로 그 순간에 ‘나’에게 나타나는 결정적인 사건을 부르는 이름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터득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당신이 내게 손을 내미네.
물결처럼 가벼운 손을 내미네.
산맥처럼 무거운 손을 내미네.
―같은 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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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
지은이: 이승우
판형: 128*188mm l 무선 280쪽 l 13,000원
인간은 평생 구도자의 길을 걷는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끝없이 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삶의 순간을 품고 이해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문학을 가까이한다.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는다. 그리스도인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문학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내면에서 자연스레 신앙과 문학이 교직할 수밖에 없다. 예수를 향해 난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문학을 어떻게 향유해야 할까. 신앙과 문학을 아우르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신학을 공부한 그리스도인이자 저명한 소설가인 저자의 산문은, 그런 면에서 깊은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