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평화연대

천주교정의평화연대 천주교 평신도, 사제, 수도자들의 높낮이 없는 평등한 연대를 희망합니다.

아이들의 생명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던 결단-네팔 라젠드라 다와디 교장의 판단과 용기네팔의 한 교장이 1,643명의 학생을 살렸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학교는 강 수면보다 60m나 높은 곳에 있었고, 3층짜리 콘크리트 ...
31/08/2026

아이들의 생명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던 결단
-네팔 라젠드라 다와디 교장의 판단과 용기

네팔의 한 교장이 1,643명의 학생을 살렸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학교는 강 수면보다 60m나 높은 곳에 있었고,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습니다. 규정과 기존의 상식대로라면 ‘이 정도면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젠드라 다와디 교장은 상류에서 급류가 내려오고 있다는 연이은 경고를 듣자 즉시 학교 종을 울렸습니다. 학생들에게 고지대로 대피하라고 명령했고, 등교 중이던 통학버스에는 학교로 오지 말고 돌아가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다른 교사 한 명과 함께 가장 마지막으로 학교를 빠져나왔습니다.

홍수가 학교를 덮쳤을 때 학교에는 단 한 명의 학생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위기의 순간에는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확인한 뒤 결정할 시간이 없습니다. 매뉴얼을 다시 펼쳐볼 수도, 책임 소재를 따지며 결재를 기다릴 수도 없습니다. 책임자는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도 판단해야 하고, 그 판단의 결과를 자신이 감당해야 합니다.

특히 사람의 생명이 걸려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다와디 교장이 보여준 리더십은 특별한 영웅주의가 아니었습니다. 위험을 과소평가하지 않았고,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때 받을 비난보다 판단을 미뤘을 때 잃게 될 아이들의 생명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장면이 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이 마지막에 학교를 떠났습니다.

권한은 앞에서 행사하면서 위험 앞에서는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할 때는 가장 먼저 결정하고 위험 앞에서는 가장 마지막에 떠나는 사람. 우리가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책임의 모습은 어쩌면 이렇게 단순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재난과 기후위기, 전쟁과 사회적 참사, 기술의 급격한 변화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과 끊임없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지도자의 능력은 위기가 지나간 뒤 얼마나 그럴듯하게 설명하는가가 아니라, 위기가 닥쳐올 때 사람을 살리는 결정을 얼마나 신속하고 책임 있게 내리는가에서 드러납니다.

생명 앞에서 지나친 신중함은 때로 무책임이 될 수 있습니다. 결정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결정이며, 그 결과에도 책임이 따릅니다.

천주교정의평화연대는 1,643명의 아이들을 살린 라젠드라 다와디 교장과 교사들의 용기와 책임감에 깊은 존경과 연대를 보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든 책임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위기의 순간, 당신의 결정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생명보다 앞서는 규정도, 체면도, 조직의 이해관계도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마지막에 학교를 떠났던 한 교장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책임 있는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배웁니다.

2026년 9월 1일
천주교정의평화연대

빛의 혁명을 완수하라 2-혁명은 성공한 다음부터 더 위험해진다혁명은 대개 거대한 적과 싸우면서 시작된다. 프랑스혁명에는 왕정이 있었고, 러시아혁명에는 차르 체제가 있었다. 독재와 특권, 불평등과 억압이라는 분명한 상...
28/08/2026

빛의 혁명을 완수하라 2
-혁명은 성공한 다음부터 더 위험해진다

혁명은 대개 거대한 적과 싸우면서 시작된다. 프랑스혁명에는 왕정이 있었고, 러시아혁명에는 차르 체제가 있었다. 독재와 특권, 불평등과 억압이라는 분명한 상대가 있을 때 사람들은 서로의 차이를 뒤로 미룰 수 있었다. 그러나 혁명이 성공하고 나면 문제가 달라진다.

외부의 적이 사라진 자리에서 내부의 차이가 커지기 시작한다. 함께 싸웠던 사람들이 이제 서로에게 묻는다. 누가 더 혁명적인가. 누가 더 순수한가. 누가 혁명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가. 역사의 비극은 대개 여기에서 시작됐다.

혁명의 적을 무너뜨린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서로에게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충분히 혁명적인가?”

처음 혁명가들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왕정을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 그런데 혁명 이후 질문은 바뀌었다. “우리 가운데 누가 진짜 혁명가인가?”

혁명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과거를 평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오늘 우리의 정치를 보기 위해서다.

최근 민주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을 보고 있으면 오래된 혁명사의 질문들이 다시 떠오른다.

누가 노무현의 적통인가.
누가 김대중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았는가.
누가 이재명을 가장 어려울 때 지켰는가.
누가 더 진보적인가.
누가 더 개혁적인가.
누가 더 민주적인가.

이 질문들이 전혀 의미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에는 노선이 필요하다. 정당에는 역사와 정체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선 논쟁이 어느 순간부터 자격 심사로 바뀌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신은 진짜 민주당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노무현의 정신을 배신했다.”
“당신은 이재명을 어려울 때 지키지 않았다.”
“당신은 우리보다 덜 개혁적이다.”

이러한 언어가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순간 정치적 논쟁은 정책과 미래를 둘러싼 경쟁이 아니라 순수성 경쟁이 된다.

최근 유시민의 문제제기도 이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시민은 민주개혁 진영이 어렵게 만들어온 정치적 자산을 중도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버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 문제의식에는 충분히 귀 기울일 부분이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놓였을 때 거리로 나왔던 시민들이 있었다.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사람들이 있었다. 정권을 획득했다고 해서 그 시민들의 열망과 요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경계해야 할 지점도 있다.

혁명의 정신을 지키자고 말하는 것과 누가 혁명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지를 판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권력의 바깥에서 혁명의 본래 약속이 희석되고 있다고 경고하는 지식인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혁명의 기억을 지키는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혁명의 정통성을 판정하는 심판자가 되기 시작하면, 역사에서 반복됐던 순수성의 정치가 다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전체가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다.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 혁명을 완성하는 일보다 서로의 혁명성을 심사하기 시작할 때 혁명은 쇠퇴한다.

오늘 민주당 역시 같은 유혹 앞에 있다.
노무현의 적통은 누구인가.
김대중의 후계자는 누구인가.
이재명을 누가 가장 충실하게 지켰는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질문들은 대부분 과거를 향하고 있다. 지금 집권 여당이 국민 앞에서 대답해야 할 질문은 다른 곳에 있다.
우리가 무엇을 바꿀 것인가.

부동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청년들이 다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극심한 자산 격차와 불평등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검찰과 사법, 언론과 의회의 권력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 지역소멸과 저출생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AI와 기후 위기의 시대에 노동과 복지, 교육과 민주주의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 이것이 집권 정당의 질문이어야 한다.

정당이 과거의 정통성을 놓고 싸우기 시작하면 국민의 삶은 정치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김대중을 가장 잘 계승하는 방법은 김대중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을 계승하는 방법 역시 누가 노무현과 더 가까웠는지를 증명하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이 해결하지 못한 민주주의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도 이재명에 대한 충성 경쟁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민생을 개선하고, 불평등을 줄이고,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시민의 삶을 실제로 바꾸어내는 것이다.

혁명 이후의 정치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재와 싸울 때는 적이 분명하다. 그러나 승리한 뒤에는 자신과 다른 동지를 인정해야 한다. 권력을 나누어야 한다. 패배한 사람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자신과 다른 노선을 배신으로 규정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의 공로가 아니라 미래의 성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이것은 혁명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다. 우리 시민사회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민운동도 오래 지속되면 자신의 역사와 공로를 갖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누가 더 오래 싸웠는가”, “누가 더 순수한가”, “누가 진짜 시민사회를 대표하는가”라는 질문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누구도 시민을 독점할 수 없다.

누구도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독점할 수 없다. 촛불을 먼저 든 사람이 촛불의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다음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더 순수한가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사람을 함께 가게 할 수 있는가. 누가 더 진보적인가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사람의 삶을 실제로 진전시킬 수 있는가. 누가 민주주의의 적통인가가 아니라, 누가 민주주의를 더 넓힐 것인가.

혁명은 권력을 바꾸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혁명의 마지막 시험은 오히려 승리한 뒤에 찾아온다.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는가. 자신과 생각이 다른 동지를 적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혁명의 이름이 아니라 시민의 삶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할 수 있는가.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의 역사는 우리에게 오래된 경고를 남긴다.

혁명은 적을 쓰러뜨릴 때보다, 승리한 동지들이 서로를 적으로 만들기 시작할 때 더 위험해진다. 지금 민주당도, 민주진보진영도, 시민사회도 이 오래된 역사의 경고 앞에 서 있다. 이제 물어야 한다. 누가 더 옳았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디로 함께 갈 것인가.

백낙청 선생의 시대 진단을 접하며-빛의 혁명을 완수하라!백낙청 선생이 최근 민주당 전당대회를 두고 매우 이례적으로 강한 언어를 사용했다. 그는 이번 전당대회를 단순한 당권 경쟁이 아니라 ‘2기 촛불정부’를 둘러싼 정...
23/08/2026

백낙청 선생의 시대 진단을 접하며
-빛의 혁명을 완수하라!

백낙청 선생이 최근 민주당 전당대회를 두고 매우 이례적으로 강한 언어를 사용했다. 그는 이번 전당대회를 단순한 당권 경쟁이 아니라 ‘2기 촛불정부’를 둘러싼 정치적 충돌로 규정하고, 그 결과를 “당내 반란의 진압”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평생 절제된 언어로 한국사회의 변화를 말해온 원로 지식인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그분이 왜 지금 이토록 단호한 언어를 선택했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백낙청 선생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2016~2017년 촛불은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을 교체하기 위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앞으로 옮기라는 시민들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거대한 에너지를 제도와 정치의 구조적 변화로 충분히 연결하지 못했다.

시민이 만들어낸 정치적 공간을 기존 정치세력이 관리하는 데 머물렀고, 검찰, 사법, 언론, 경제 구조를 비롯한 개혁의 과제들은 상당 부분 미완으로 남았다. 결국 우리는 윤석열 정부의 출현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를 단순히 민주당의 네 번째 정부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백 선생의 지적은 중요하다. 이 정부에는 중단되었던 촛불혁명의 과제를 다시 이어가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가 남긴 질문은 ‘누가 누구를 이겼는가’가 아니다.

민주당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당이 되는 것이 답일 수는 없다.

민주정당에는 비주류가 있어야 하고, 이견이 있어야 하며,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어야 한다.

백낙청 선생 역시 이 점을 분명하게 인정한다. 정책과 노선을 가지고 정부를 비판하는 비주류는 오히려 정당의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비판과 권력투쟁은 다르다.
정책을 놓고 경쟁하지 않고 사람을 공격하며, 노선을 놓고 토론하지 않고 지지층을 갈라 세우며, 대통령의 성공보다 차기 권력의 향방을 먼저 계산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비주류 정치라고 부르기 어렵다.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 민주당은 너무 많은 상처를 남겼다. 친명과 친청, 친문과 반문이라는 이름들이 다시 등장했고, 정치인들의 경쟁은 지지자들의 전쟁으로 번졌다.

상대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동지가 적이 되고, 조금 다른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배신자가 되는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백낙청 선생이 ‘원팀’이라는 말 자체를 경계한 것은 역설적으로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원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동의 책임을 지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똑같아질 필요가 없다. 김민석을 지지했던 사람도, 정청래를 지지했던 사람도, 송영길을 지지했던 사람도 민주당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모두가 인정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경선은 끝났다는 사실이다.

승자는 패자를 조롱해서는 안 되고, 패자는 결과에 불복하며 또 다른 전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김민석 대표에게는 승리의 권리보다 통합의 책임이 더 크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40%의 당원까지 품어야 한다. 그것이 대표의 정치다.

동시에 정청래 후보와 그를 지지했던 세력 역시 선거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호남에서 나타난 압도적인 선택을 단순한 지역주의나 조직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백낙청 선생의 표현처럼 그 안에는 정권을 안정시키고 개혁을 계속 추진하라는 당원들의 정치적 판단, 즉 일종의 집단지성이 작동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유시민 작가를 향한 백 선생의 비판 역시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그 논쟁의 핵심에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진보정치는 중도로 가야 하는가, 더 왼쪽으로 가야 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 자체가 낡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백낙청 선생이 오랫동안 말해온 ‘변혁적 중도’에 가깝다.

중도는 적당히 타협하는 정치가 아니다. 중도는 좌와 우의 산술적 중간도 아니다. 사회를 실제로 변화시키기 위해 가장 넓은 시민의 연대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방법이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중도실용주의 역시 그렇게 평가되어야 한다.

경제를 살리고, 불평등을 줄이고, 청년에게 미래를 돌려주고, 지역소멸에 대응하고, 검찰·사법·언론개혁을 완수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낮추고, AI 시대에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권리를 지키는 것.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중도이면서 동시에 가장 급진적인 변화가 될 수 있다.

천주교 사회교리가 말하는 공동선 역시 다르지 않다. 정치는 어느 진영의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공동선을 확대하기 위해 존재한다.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 청년과 노인, 수도권과 지역, 다수와 소수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다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민생으로 돌아가야 한다.
개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시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백낙청 선생의 이번 발언 가운데 우리가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도 결국 이것이다.

촛불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빛의 혁명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광장에서 시작된 변화는 정권교체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더 나은 민주주의, 더 공정한 경제, 더 평화로운 한반도, 그리고 인간이 존중받는 대한민국을 요구했다.

그 과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번 전당대회의 진정한 승자는 김민석도, 어느 계파도 아니다. 승자가 있다면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기 위해 다시 정치에 참여한 시민이어야 한다.

이제 민주당은 그 시민들에게 답해야 한다.

누가 당권을 차지할 것인가의 정치는 끝내고,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가의 정치를 시작하라.

승리한 사람에게는 겸손을,
패배한 사람에게는 성찰을,
대통령에게는 성공할 책임을,
민주당에는 개혁할 의무를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 시민사회 역시 구경꾼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빛의 혁명은 특정 정치인을 위한 응원봉이 아니었다. 권력을 시민의 자리로 되돌려놓으라는 명령이었다.

그 명령은 지금도 유효하다.

2026년 8월
천주교정의평화연대

태도는 실력이다최민희 의원은 이제 야당 정치인이 아니다.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의 수석최고위원이다. 그 자리는 개인의 감정과 정치적 호불호를 앞세우는 자리가 아니라, 당 전체의 품격과 국정운영의 신뢰를 함께 짊어지는 ...
21/08/2026

태도는 실력이다

최민희 의원은 이제 야당 정치인이 아니다.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의 수석최고위원이다.

그 자리는 개인의 감정과 정치적 호불호를 앞세우는 자리가 아니라, 당 전체의 품격과 국정운영의 신뢰를 함께 짊어지는 자리다.

그렇다면 말과 행동, 태도 역시 그 책임의 무게에 맞아야 한다.

최근 최 의원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실언이나 우발적 충돌의 문제가 아니다. 자녀 혼인 문제로 이미 특권과 내로남불의 비판을 받았고, 이번에는 언론 취재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다시 언론탄압 논란의 중심에 섰다.

청년들이 정치에 분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특권을 누리면서 공정을 말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반복해서 보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개혁을 주장해온 정치인이라면 자신에게 불편한 언론의 자유부터 보장해야 한다. 남이 하면 언론탄압이고 내가 하면 언론개혁이라는 인상을 주는 순간, 개혁의 명분은 무너진다.

태도는 실력이다.

태도는 단순한 말투나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권력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다른 사람을 어떤 존재로 대하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태도는 그 사람의 내면과 정신세계를 드러낸다.

정치 역시 달라져야 한다. 분노에 기대어 목소리를 높이고, 상대를 몰아붙이며, 지지층의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과 선전의 정치는 이제 낡았다. 악에 받쳐 괴성을 지르는 방식으로는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를 제압하는 정치가 아니라 설득하는 정치다. 다른 의견을 적으로 만들기보다 듣고, 설명하고, 논쟁하고, 때로는 양보하면서 더 넓은 합의를 만들어내는 정치다.

특히 집권여당의 지도자는 더욱 그래야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말은 더 무겁고, 그 사람의 태도는 곧 당의 얼굴이 된다.

수석최고위원이라면 지지자들의 분노를 증폭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절제시키고, 갈등을 통합하며, 정치의 품격을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제 저항하는 야당이 아니라 책임지는 집권여당이다. 집권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큰 절제다. 더 강한 공격이 아니라 더 깊은 설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일관성이다.

최민희 의원에게 요청한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말이 아니라 더 성숙한 태도다. 개혁은 목소리의 크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듣고, 어떻게 절제하는가.
그 태도에서 개혁의 진정성이 드러난다.

태도는 실력이다. 그리고 집권여당 수석최고위원의 태도는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 전체의 실력으로 평가될 것이다.

2026년 8월 21일
천주교정의평화연대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해야 할 첫 번째 임무 -조희대 탄핵조희대 대법원장이 8월 18일 대법관 후보자 두 명을 제청했다. 후보추천위원회가 명단을 올린 지 무려 일곱 달 만이다.더 심각한 것은 그 방식이다. 대통령과의...
18/08/2026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해야 할 첫 번째 임무 -조희대 탄핵

조희대 대법원장이 8월 18일 대법관 후보자 두 명을 제청했다. 후보추천위원회가 명단을 올린 지 무려 일곱 달 만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방식이다.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두고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직접 만나지 않은 채 서류로 제청을 통보했다. 헌법기관 사이의 최소한의 존중과 협의마저 외면한 것이다.

헌법 제104조에 따르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원장의 제청은 사법부가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인사권이 아니다. 국회와 대통령이 함께 참여하는 헌법적 절차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조희대 대법원장은 그 절차를 사실상 자신의 권한처럼 행사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이것은 단순한 의전상의 문제가 아니다. 계엄의 밤에 침묵했던 사법부의 수장, 대선 국면에서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이루어진 파기환송 판결, 그리고 장기간 대법관 제청을 미루며 헌법기관의 정상적인 구성을 지연시킨 일까지 겹쳐 있다.

오늘의 기습적인 제청은 그 연장선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사법부의 독립은 사법부가 국민과 민주적 헌법질서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사법부 역시 헌법의 지배를 받아야 하며, 다른 헌법기관과 상호 존중과 견제 속에서 존재해야 한다.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헌법이 정한 임명 절차를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한 헌법기관 간 소통이다.

대통령을 '패싱'하는 것이 원칙이 될 수는 없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대통령 개인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에게 묻는다.
지금 민주당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무엇인가.

당내 경쟁과 계파 간 공방에 매몰될 때가 아니다. 정권교체 이후에도 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위협하는 낡은 권력구조를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지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 첫 번째 과제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추진이어야 한다. 탄핵은 정치적 보복이 아니다. 헌법기관의 장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를 국회가 엄정하게 따지는 헌법적 절차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사법개혁을 말하려면 사람을 공격하는 정치가 아니라 헌법의 원칙을 세우는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오늘 행위 역시 그 판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침묵하거나 미루는 것이 아니다. 헌법을 흔드는 권력 앞에서 국회가 침묵한다면, 그 침묵 역시 역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국회의원 개혁을 시작하자-국민은 저급한 정치의 진흙탕을 원하지 않는다요즘 대한민국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무겁다. 특히 민주당의 당대표 선거를 바라보면서 묻지 않을 수 없다.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13/08/2026

이제 국회의원 개혁을 시작하자
-국민은 저급한 정치의 진흙탕을 원하지 않는다

요즘 대한민국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무겁다. 특히 민주당의 당대표 선거를 바라보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정권을 되찾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정치세력이 정작 국민 앞에서는 당권을 둘러싼 말싸움과 책임 공방, 계파 경쟁에 매몰되어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정청래·김민석 후보를 중심으로 박빙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경쟁은 자연스럽고 필요하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이다.

국민은 정치인들의 싸움을 보기 위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란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원한다.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를 걱정한다.
서민들은 집값과 물가를 걱정한다.
노년층은 자신의 노후를 걱정한다.

그런데 국회와 정당은 여전히 자기들끼리의 권력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 국민의 피로도가 한계에 이르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통합하기는커녕 시민들을 서로 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념과 세대, 지역과 진영이 갈라지고, 정치적 언어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저급해져야 하는가.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지층만을 대표하고, 국민의 삶보다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먼저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의민주주의의 실패다.

정치인은 싸울 수 있다.
그러나 싸움에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모욕하고 조롱하며, 과거의 잘못을 끄집어내 공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진영논리를 만들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정치라면 국민은 정치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정치인이 보여주는 언어와 행동은 결국 시민사회에 그대로 전염된다. 그래서 정치의 수준은 단순히 정치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문화적 수준에 관한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에서도 배워야 한다
이 지점에서 민주당 역시 자신의 과거를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이 만들어낸 거대한 기대를 안고 출범했다. 그러나 인사와 권력기관 운영, 부동산 정책, 경제정책 등에서 적지 않은 실패를 경험했다.

총리 이낙연, 민정수석 조국, 경제정책의 핵심이었던 홍남기, 감사원장 최재형과, 검찰총장 윤석열, 국토교통부 장관 김현미 등 주요 인사와 정책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성찰의 대상이다.

특히 검찰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윤석열이라는 인물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던 정치적 판단의 문제까지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부동산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단순히 한 사람의 정책 실패로 설명할 수 없다.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자산 불평등, 인간의 욕망, 공급과 금융, 세대 간 자산 격차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의 책임이 더 크다. 정치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결과를 조정하고,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며, 다음 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질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그 실패를 충분히 평가하고 책임지는 정치적 문화를 만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번 지방선거 패배를 비롯한 여러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평가와 책임의 정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세력은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패배가 아니다. 패배하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이다.

청년의 절망과 저출생은 정치의 실패다
오늘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를 보라.

저출생. 청년의 불안. 주거 문제. 자산 격차.
주식과 부동산을 둘러싼 극단적인 투기적 욕망.
세대 갈등. 이념 갈등. 지역 갈등. 플랫폼 사회에서 심화되는 고립과 불안.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결국 정치의 문제이고 민생의 문제다. 청년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 청년들이 문제인 것도 아니다. 아이를 낳고 살아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지 못한 정치가 문제다.

열심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고, 부모의 자산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며,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미래를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정치는 바로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국민의 이런 절박한 현실 앞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서로의 과거를 들춰내고 있다.
당권을 놓고 싸우고 있다.
국민이 보기에는 꼴불견이다.

이제 정치개혁의 핵심은 '국회의원 개혁'이어야 한다. 이제 정치개혁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국회의원 개혁이어야 한다.

국회의원은 특별한 계급이 아니다.
국민이 잠시 권한을 위임한 대표자일 뿐이다.
그런데 현실의 정치는 언제부터인가 국회의원이 국민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권력을 자신의 경력으로 만들고,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를 다음 선거를 위한 발판으로 이용하며, 국민보다 당의 눈치를 보고, 공익보다 계파의 이해를 앞세우는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이런 정치를 걸러낼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철학이 없는 정치인. 공공성보다 사적 욕망이 앞서는 정치인.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정치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 거짓말과 선동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정치인. 국민을 갈라놓고 그 갈등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정치인.

이런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국회에 들어올 수 있는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정치인의 품격도 공적 자격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를 단순한 도덕적 검증이나 정치적 숙청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또 다른 권력의 횡포가 된다.

필요한 것은 객관적이고 투명한 제도다.
국회의원의 윤리 기준을 강화하고, 이해충돌을 엄격하게 관리하며, 막말과 혐오정치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소환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실질화를 비롯해 국민이 자신의 대표자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공천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당 지도부의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공천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당의 민주화도 필요하다.

국회의원들이 당권을 가진 소수 정치인에게 줄을 서는 구조에서는 국민주권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국민주권은 선거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민주권은 4년에 한 번 투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하지만, 그 권력이 제대로 행사되는지 감시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민주주의는 단순한 선거민주주의를 넘어 감시와 참여의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은 더 투명해져야 한다.

공약 이행 여부를 공개적으로 평가하고, 법안 발의와 표결 기록을 시민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당의 공천 과정 역시 더욱 투명해져야 한다.

국회의원의 이해충돌과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검증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문화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타락한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다. 더 강한 공격도 아니다. 더 자극적인 구호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성찰과 품격, 그리고 민생을 향한 실력이다.

정권을 되찾았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내란세력을 척결한다고 정치개혁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정권교체 이후에도 정치가 낡은 방식 그대로라면 국민은 다시 실망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질서를 만드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은 지금의 당대표 경쟁을 단순한 당권 경쟁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민주당 스스로 정치의 품격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정치 전체를 바꾸는 정치개혁의 의제를 제시해야 한다.

국회의원부터 바꾸자. 정당을 바꾸자. 공천시스템을 바꾸자. 국민이 정치인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 그리고 정치인이 국민 앞에서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

국민은 정치인의 진흙탕 싸움을 보고 싶지 않다.
국민은 싸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싸워야 할 때는 싸우되, 국민을 위해 싸우라는 것이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정치.

상대를 쓰러뜨리는 정치가 아니라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정치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정치.
그것이 민주주의다.

이제는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묻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나는 왜 국회의원이 되었는가.
나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나는 실패했을 때 책임졌는가.
그리고 지금 내가 벌이고 있는 싸움이
정말 국민을 위한 싸움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정치라면, 이제 국민이 바꿔야 한다. 대한민국의 다음 정치개혁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

국회의원 개혁부터 시작하자.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회가 아니라
국민에게 책임지는 국회.
정치인의 욕망을 위한 의회가 아니라
시민의 삶을 위한 의회.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가야 할 다음 길이다.

송영길 후보자의 긴급기자회견을 지지하며 -조희대 틴핵,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민주세력은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천주교정의평화연대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제기한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추진의 문제의...
06/08/2026

송영길 후보자의 긴급기자회견을 지지하며
-조희대 틴핵,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민주세력은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

천주교정의평화연대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제기한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추진의 문제의식을 주목하며, 헌법질서와 사법 신뢰 회복을 위한 국회의 책임 있는 논의를 촉구합니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렇기에 법원은 누구보다 정치적 중립성과 헌법 수호 의무를 엄격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사법부 스스로 헌법적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면, 국회가 헌법이 부여한 견제와 책임의 절차를 검토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일입니다.

현재 제기되는 쟁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대법관 후임 제청이 장기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대법원의 정상적인 운영에 차질이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의무가 적시에 행사되지 않았다면, 이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둘째, 국가적 헌정 위기 상황에서 사법부 최고 책임자가 헌법 수호의 책무를 충분히 수행했는지에 대한 국민적 의문입니다. 헌법기관은 위헌적 상황 앞에서 침묵이 아니라 헌법의 원칙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 특정 사건의 재판 진행과 결정이 대선 국면과 맞물리면서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의혹은 사실관계와 법리에 따라 엄정하게 검증되어야 하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책임이 뒤따라야 합니다.

탄핵은 정치적 보복의 수단이 아니라 헌법이 마련한 최후의 책임 절차입니다. 따라서 감정이나 정파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 그리고 국민의 눈높이에 따라 판단되어야 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이 직면한 과제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헌정질서의 회복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어떠한 권력 남용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입법·행정·사법 모두 헌법 앞에 동등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천주교정의평화연대는 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수호하려는 모든 민주세력이 분열을 넘어 공동의 책임을 다하기를 호소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비난이 아니라, 헌법의 원칙 위에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사법부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더욱 성숙한 법치국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논의와 헌법적 절차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2026년 8월 6일

천주교정의평화연대

민주세력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당대표 선거는 경쟁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를 성공시키는 책임의 과정이어야 한다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가 끝도 없이 과열되고 있다. 경쟁은 민주주의의 원리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05/08/2026

민주세력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당대표 선거는 경쟁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를 성공시키는 책임의 과정이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가 끝도 없이 과열되고 있다. 경쟁은 민주주의의 원리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평상시의 정당 경쟁과는 다르다.

새 정부는 무너진 국가 시스템을 복원해야 하고, 내란의 진상을 끝까지 규명해야 하며, 검찰·사법·언론·권력기관 개혁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지금 민주세력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서로를 겨누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개혁의 동력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다.

당대표 선거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흔드는 양상으로 흐른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란세력 척결을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개혁정부의 추진력을 약화시키는 모습이 된다면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치는 승부보다 시대적 책임이 먼저다.

당권은 개인의 정치적 성취가 아니라 국민이 맡긴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도구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권력을 향한 경쟁이 아니라, 정부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절제와 헌신의 자세다.

동시에 민주세력 내부 역시 지난 시기를 냉정하게 성찰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기대 속에 출범했지만 국민이 기대했던 검찰개혁과 권력개혁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등장을 막지 못했고, 민주개혁 진영은 깊은 좌절을 경험했다.

당시 인사와 권력 운영에 대한 평가는 이제 더 이상 금기일 수 없다. 사람을 믿는 정치가 때로는 제도보다 앞섰고, 검증보다 신뢰가 우선했던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역사 앞에서 성찰해야 한다.

또한 민주세력은 반복된 선거 패배의 의미도 직시해야 한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지방선거에서의 패배는 단순한 선거 결과가 아니었다. 국민은 민주개혁 진영에 더 높은 수준의 책임성과 혁신을 요구했다. 그 메시지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반성 없는 계승은 발전이 아니다.

계승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와 평화, 복지와 인권이라는 가치이지, 과오까지 함께 계승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계승은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고 더 나은 길을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지금은 서로의 상처를 확대할 시간이 아니다.

민주세력 전체가 하나로 결집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은 특정 정치인의 성공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공이며, 내란의 상처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우리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가 분열의 계기가 아니라 통합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누가 대표가 되든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검찰개혁·사법개혁·언론개혁 등 시대적 과제를 흔들림 없이 완수하는 데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한 사람의 영웅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를 이기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정치, 권력을 나누는 정치가 아니라 책임을 함께 짊어지는 정치가 지금 민주세력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이다.

천주교정의평화연대는 민주세력 모두에게 호소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연대이며, 당권이 아니라 국정의 성공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내란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민주세력의 총결집만이 개혁을 완수하고 국민이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길이다.

지금은 계파 경쟁이 아니라 '연대개혁'의 시간입니다 -민주당의 혼란에 민주시민은 불안합니다.민주당 전당대회가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당대표와 최고위원 선거는 정책 경쟁보다 계파 경쟁이 부각되고, 지지층 내부의 상호 ...
04/08/2026

지금은 계파 경쟁이 아니라 '연대개혁'의 시간입니다 -민주당의 혼란에 민주시민은 불안합니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거는 정책 경쟁보다 계파 경쟁이 부각되고, 지지층 내부의 상호 비난과 감정적 대립까지 더해지면서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상대를 향한 공격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누가 더 대통령과 가깝냐'를 둘러싼 경쟁은 국민에게 정치의 품격보다 정치의 피로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국민이 집권여당에 기대하는 것은 당내 권력 경쟁이 아닙니다.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남긴 헌정질서의 훼손과 국가 시스템의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를 회복하며, 외교의 신뢰를 되찾고, 미래 국가의 방향을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집권세력이 감당해야 할 시대적 책임입니다.

대통령 역시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국내외를 쉼 없이 오가며 국정 전반을 정상화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여당 내부의 과도한 경쟁과 분열은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합니다.

최근 백낙청 선생은 지금을 '변혁적 중도의 때'라고 진단했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리고 이제 공동선을 향한 천주교정의평화연대는 이를 '연대개혁의 시대'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연대개혁은 타협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외면하는 중립도 아닙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바로잡으면서도 더 많은 국민을 개혁의 주체로 참여시키는 정치, 진영의 승리가 아니라 공동선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정치입니다.

천주교 사회교리는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을 공동선(Common Good)에 둡니다. 공동선은 어느 계파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존엄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연대(Solidarity)는 서로를 제거해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책임을 나누는 동반자로 바라보는 사회적 덕목입니다.

오늘 민주당이 진정으로 계승해야 할 것은 특정 계파의 유산이 아니라 촛불과 빛의 혁명이 보여준 국민적 연대의 정신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앞에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 양극화 해소, AI 시대 국가혁신, 기후위기 대응,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과제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 거대한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집권세력이 먼저 하나의 책임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전당대회는 끝나면 모두 같은 정부를 함께 책임져야 하는 동지들입니다.

선거는 경쟁할 수 있지만, 국정은 협력해야 합니다. 국민은 더 이상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는 정치가 아니라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정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주교정의평화연대는 오늘 정치권 모두에게 호소합니다.

지금은 계파의 승리를 자랑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연대개혁의 시간입니다. 대통령 혼자 나라를 정상화할 수는 없습니다. 집권여당 전체가 국민 앞에 하나의 책임 있는 공동체로 서야 합니다.

역사는 지금 대한민국에 매우 드문 기회를 허락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소모적인 내부 대립으로 허비하지 말고, 민주주의의 회복과 사회 대개혁, 국민통합과 한반도 평화라는 더 큰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기를 촉구합니다.

개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책임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특정 정치인의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 아닙니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를 성공으로 이끌고, 민주당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집...
02/08/2026

개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책임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특정 정치인의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 아닙니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를 성공으로 이끌고, 민주당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집권여당으로 성숙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 앞에 서 있습니다. AI 혁명은 산업과 노동, 교육과 문화, 인간의 삶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저출생과 지방소멸, 양극화와 기후위기, 국제질서의 급격한 변화는 과거의 정치 문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집권여당의 당대표는 무엇보다 국정을 안정시키고 미래를 준비하는 책임의 리더십을 갖추어야 합니다.

개혁은 민주당의 소중한 역사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언제나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집권여당의 책임은 개혁을 외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개혁을 제도로 완성하고, 민생으로 연결하며,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성과를 경쟁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지도자입니다.

누가 더 오래 싸웠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넓게 품을 수 있는가입니다. 누가 더 강한 목소리를 내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큰 책임을 질 수 있는가입니다. 누가 더 선명한 구호를 외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대통령과 정부, 당과 국민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가입니다.

민주당의 역사는 계승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계승만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김대중의 민주주의, 노무현의 참여, 문재인의 촛불정신, 그리고 오늘의 개혁은 모두 다음 시대를 위한 디딤돌입니다. 정치는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책임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대표에게 필요한 덕목을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투쟁의 리더십이 아니라 책임의 리더십입니다. 분열을 넘어 통합을 이루는 리더십입니다. 당내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확장하는 리더십입니다. 정파의 대표가 아니라 집권여당 전체를 책임지는 리더십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위한 공동의 책무로 받아들이는 리더십입니다.

천주교 사회교리는 정치를 공동선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임 가운데 하나라고 가르칩니다. 공동선은 상대를 이기는 데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힘을 하나로 모아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이번 전당대회가 민주당이 더 큰 민주당으로 성장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혁을 넘어 책임으로.
투쟁을 넘어 통합으로.
과거의 성과를 넘어 미래의 비전으로.

그러한 선택이 오늘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집권여당의 길이며, 공동선을 향한 정치의 길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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