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4/2026
해가 탄생하는 곳, 오루로에서의 20년: 사랑과 희망의 기록
선교지 볼리비아 오루로. 김 경향 가브리엘라 수녀
1. 첫발을 내딛다: 해발 4000m의 고산증과 사투
2003년 1월 8일, 저희 두 수녀는 한국 외방 선교 수녀회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선교지를 열기 위해 볼리비아 '엘 알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해발 4,000m의 고원은 냉혹했습니다. 제 발걸음은 마치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듯 가벼웠고, 동료 수녀님은 심한 두통과 복통, 그리고 안압이 치솟는 통증으로 몸져누워야 했습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혹독한 '고산증'이 우리의 첫 인사였습니다.
다행히 언어 연수를 위해 머물기로 한 곳은 해발 2,500m의 살기 좋은 코차밤바였습니다. 그곳에서 7년 동안 언어를 배우고 사도직 활동을 하며 선교지 적응을 마쳤습니다. 수많은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한 채, 드디어 2010년 3월 16일, 우리는 새로운 선교지를 개척하기 위해 ‘오루로’로 향했습니다.
2. 오루로, 그 아프고도 거룩한 땅
오루로(Oruro)는 우루스 부족어로 ‘해가 탄생하는 곳’이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주 전체가 고원지대인 이곳은 볼리비아에서 가장 열악하고 선교사가 부족한 교구 중 하나입니다. 거대한 광산들 덕분에 지하자원은 풍부하여 땅은 부유할지 모르나,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은 지독히 가난합니다.
이곳은 광부들의 아프고 슬픈 역사가 서린 곳이며, 지금도 많은 이들이 위험한 광산에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저희 아동센터에서 자라 청년이 된 레이날도가 광산으로 돈을 벌러 갔다가 갱도가 무너져 주검으로 돌아오는 비극이 있었습니다. 제 가슴 한구석에도 깊은 멍이 든 곳, 그곳이 바로 오루로입니다.
3. ‘뿌마스 안디노스’에서의 낮은 삶
우리는 해발 3,874m의 고지대에 적응할 수 있는지 5개월간의 시험 기간을 거쳤습니다. 이후 오루로 시 외곽의 불법 거주지인 ‘뿌마스 안디노스(안데스의 표범)’ 마을을 선교지로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주민들과 똑같은 흙집을 빌려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2005년 볼리비아 전역에서 일어난 ‘무주택자 운동(sin techo)’으로 형성된 지역입니다. 조상 대대로 원주민의 땅이었으나 대지주에게 빼앗겼던 이곳을 되찾기 위해, 주민들은 수년간 경찰의 진압에 몽둥이와 삽, 심지어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맞서며 터전을 지켜왔습니다.
아이들의 환경은 처참했습니다. 흙벽돌로 지은 단칸방에서 온 가족과 개, 고양이, 닭이 함께 뒤섞여 지냈습니다. 그곳은 침실이자 주방이었고, 아이들이 숙제를 하고 밥을 먹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부모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며 수도 라빠스까지 수일간 시위 행진을 떠날 때면, 아이들은 집에 홀로 방치되거나 부모의 손에 끌려 험한 길을 나서야 했습니다.
4. 소외된 아이들의 눈물과 마주하다
마을에 들어온 지 일주일째 되던 밤, 마을 지도자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사나운 개 떼를 돌로 물리치며 도착한 곳에는 13~17세 소년들로 구성된 갱단 아이들이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아이들을 매주 만나며 그들이 처한 위험한 환경을 목격했습니다. 배고픔, 가정폭력, 사회적 불안 속에 아이들은 보살핌도 교육도 없이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물 부족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1m만 파면 물이 나왔지만 소금기가 많은 짠물이라 마실 수 없었습니다. 저희 수녀원 마당에도 우물이 있었으나 세탁과 청소용으로만 썼고, 식수는 수도가 있는 집에서 몰래 연결한 관을 통해 겨우 얻어다 썼습니다.
한 번은 비극적인 사고도 있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생계를 위해 일하러 간 사이, 네 살 오빠와 놀던 두 살 여동생이 마당 우물에 빠져 숨진 것입니다. 이토록 고단한 주민들의 삶을 보며,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5. 척박한 땅에 피어난 기적의 아동센터
볼리비아에 온 지 10년, 오루로에 정착한 지 3년 만인 2013년, 드디어 비록 수도도 전기도 없는 곳이었지만 우리의 '집'을 마련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삽과 괭이를 들고 며칠간 땅을 파서 수도관을 놓고, 1년 넘게 전기회사를 설득한 끝에 드디어 밤에만이라도 불이 켜지는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2015년 한국 신자분들과 ‘바보나눔’의 도움으로 아동센터를 지었습니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많은 아이가 선생님들의 보살핌 속에서 밝게 자라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곡식을 나누었고, 2022년부터는 매주 120명의 아이에게 도시락을 나누어 그 가족들까지 약 450명이 끼니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과 한국 신자분들의 기도 덕분입니다.
6. 사람의 마음속에 세우는 참된 성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우리의 거처는 방 두 개뿐인 작은 흙집이었습니다. 하나는 손님용, 하나는 경당 겸 침실로 썼습니다. 주님과 우리는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함께 살았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가난과 혼란 속에 버려진 이곳에 성체를 모시고 기도를 바치며, 주님의 현존인 '성체성사'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제를 보내달라는 청에 주교님께서는 “사제회의에서 누구도 이 위험한 지역에 가겠다고 손을 들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오직 ‘기도’와 ‘발품’뿐이었습니다. 비록 교회 건물은 없지만, 참된 성전인 사람들의 마음을 하느님께 이끄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간절한 청 끝에 네 분의 신부님이 점심을 거르면서까지 매주 번갈아 오셔서 미사를 집전해주시기로 했습니다.
2011년부터 꾸준히 이어온 신앙 교육의 결실은 놀라웠습니다. 꼬마였던 아이들이 자라 첫영성체와 견진성사를 받았고, 이제는 복사단과 성가대, 교리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엄마들도 주일 미사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단 한 명의 신자도 없던 이곳에, 이제는 인근 본당 신자까지 합해 120여 명의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기적’입니다.
7. 하늘이 원하시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절실한 꿈이 있습니다. 더 이상 남의 집이나 아동센터를 빌려 전전하지 않고, “성당에 오세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공소(작은 성당)를 갖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주민들이 미사를 드리고, 교리를 배우고, 성체조배와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어렵게 작은 땅을 마련했습니다. 이곳에 공소와 무료 급식소, 그리고 미래의 사제와 수도자, 신실한 평신도를 길러낼 ‘그리스도인 양성소’를 지으려 합니다.
“하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마카베오 1서 3장 60절)
이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오루로의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처럼, 하느님의 사랑이 이 성전을 통해 온 마을에 흐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